선조와 선배에 대한 3사람의 정신

 

1987. 5. 31. 주일오전

 

본문:창세기 9장 18절∼27절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선지자선교회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약속으로 선포하신 진리는 영원히 변치 않고 그대로 역사합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최초 인류 시조 때부터 신인 계약으로 선포하신 그 모든 계약은 진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는 변하지도 않고 쇠해지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고 영원히 존속하며 역사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에서부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계약인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그 진리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상호 관계에 일 기초가 되는 계약입니다. 그후에 연달아서 하나님이 신인 계약을 선포하셨습니다.

이 신인 계약은 하나님이 직접 선포하신 계약도 있고 또 천사들을 통해서 선포한 계약도 있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선포한 계약들이 있습니다.

계약 중에는 이 문서계시인 신구약 성경에 기록으로 보존된 계약도 있고 일시 그 계약이 선포 역사하고 끝낸 그런 계약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없어진 계약이나 문서에 기록해서 보존되어 오는 계약이나 그 계약은 곧 피조물된 사람들의 생명이나 평강이나 사망이나 저주나 그 모든 것들의 기초가 되는 계약입니다.

그런고로 모든 계약을 우리는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알도록 노력하고 그 계약에 준해서 자기 걸음을 걷는 것이 슬기로운 일입니다. 더우기 없어지지 않고 문서로 기록해서 신구약 성경에 명문되어 있는 계약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기초가 되는 계약도 진리이기 때문에 변함이 없습니다. 문서로 기록한 계약은 더우기 우리에게 계속 부절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서로 다시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계약은 전인류에게 대해서 선포해 주신 계약이 있고 또 하나님이 구별하시는 택한 백성들에게만 한해서 선포해 주신 계약들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모든 계약을 사람된 자기에게 다 관련 있는 계약인 것을 생각하고, 상고 때 된 계약은 기초가 되는 계약이요, 또 중세에 된 계약은 기초되는 그 계약 범위 내에 있는 계약이요, 또 신약 시대에 와서 하나님이 신약 성경에 선포해 놓으신 모든 계약은 기초가 되는 그 계약 범위 내에서 우리에게 밝혀 주신 계약인 것을 깨닫고 이 모든 계약을 다 우리는 무시하지 말고 이 계약에 준해서 자기를 건설하고 자기에게 관련된 모든 것을 건설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 계약이 노아 때까지 이루어지고 거게서 한번 계약 관계가 어떻게 되나 하는 그것을 일차적으로 공통적으로 선포해 가지고 하나님이 심사 통과하신 일이 있으니 그것을 가리켜서 노아 홍수 심판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홍수 심판 그 후에는 전인류에게 대한 전반적인 그 심판은 없었습니다. 전반적인 심판은 없었고 기초가 되는 그 계약 토대 위에서 시대에 따라서, 혹 또 지역에 따라서, 개인에게 따라서 이렇게 선포해 주신 계약이 있습니다. 그 계약 중에 하나가 되는 한 토막을 오늘 봉독했습니다.

노아 홍수 심판 때에 세계에 전인류는 하나님이 계약하신 대로 홍수 심판에서 다 홍수 멸망을 받았고 홍수 심판에서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계약대로 노아의 여덟 식구만 이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때에 노아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는데 셈, 함, 야벳 하는 삼 형제가 있었습니다.

이 삼 형제는 셈은 장자인데 그 인종이 황인종으로 구별됐고, 또 둘째아들 함은 흑인종으로 구별됐고, 셋째아들 야벳은 백인종으로 구별되었습니다. 전인류가 여게서 나왔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 사이에 여러가지로 혼합종이 생겨 가지고 여러 종류들이 나왔지마는 다 근본은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 이 셋으로서 인종은 분류됐습니다. 그랬는데 이 삼 형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서 예언한 말씀이 있으니 그 예언 그대로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태초에 하나님이 창세기 1장에서부터 신인 관계에 계약을 선포해 주신 이 계약들을 우리가 무시하면 안 됩니다. 세월은 지나가지마는 이 계약은 진리이기 때문에 이 계약은 쇠하지도 안하고 변하지도 안하고 그대로 역사하고 사람들은 이 계약 진리에 따라서 영원한 보응과 현재의 보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세월이 지나갔다 해서 우리는 상고 제일 기초가 되는 그 계약들을 우리가 무관심하고 무시하고 이렇게 사는 데에서 인간은 다 어두워지고 자멸 자살의 그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를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태초 인류 시조에게 선포한 계약이나 또 인류 시조가 생겨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시겠다고 선포하신 계약이나 호리도 가감이 없이 그대로 다 하나님이 이행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계약의 크고 작은 데 대해서, 하나님의 계약의 크고 작은 데 대해서 우리는 한 계약이라도 무시하면 안 됩니다. 마치 식물을 보면 젖잎 속에서 속잎이 나오고 속잎 속에서 또 새 속잎이 나오고 또 속잎 속에서 줄기가 나와 가지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은 이러합니다.

그러기에 인류 전체를 보든지 어느 민족을 구별해 보든지 어느 지역을 보든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하나도 포기가 없습니다. 다 그대로 그 범위 내에서 또 새 범위가 나오고 또 그 범위 내에서 새 범위가 나왔지 한 범위도 기초를 무시한 일은 없는 이것을 우리가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로마서 11장 끝에는 보면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고 또 만물이 주로 말미암고 또 만물이 주에게로 돌아간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지극한 광대하심과 하나님의 변치 않으심과 하나님의 전지 전능의 절대성에 이행하시는 이것을 우리가 무시하면 저만 속고 망합니다. 형형색색으로 이렇게 저렇게 무시해서 멸망을 자취하고 이렇게 저렇게 경외 준행함으로 생명이 되어진 그것이 모든 현 역사요 또 영원한 지옥이요 천국인 것입니다.

노아의 세 아들 가운데에 함에 대해서는, 둘째아들 함에 대해서는 여게 25절에 “가로되 가나안은” 가나안은 하는 말은 둘째아들 함을 가리켜 말합니다. “함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한 그대로 오늘까지 그대로 되고 있습니다. 흑인종을 “종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한 것이 노아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계약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짧은 그 좁은 한 지역에 파묻혀서 그걸 구별하지 못하나 세계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까지 흑인종이 백인종과 한 시민권을 가지고서 벌써 오랫 동안 동거 생활을 해 나오지마는 이렇게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이대로 흑인종은 다른 민족보다 저질적이며 저능적이며 또 저지, 지혜가 낮고 능력이 낮고 모든 형편이 다 낮은 위치에 있습니다.

한자리 있어도 황인종과 백인종과의 차이가 있어서 그들은 황인종과 백인종이 가진 지혜를 가지지 못하고, 능력을 가지지 못하고, 부지런을 가지지 못하고, 절제를 가지지 못하고, 의욕의 소망을 강하게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조금 차이 있는 그런 위치에 있습니다.

혹 일면을 보고는 미국같은 나라에는 흑인종은 아주 번식하고 백인종은 아주 희귀하니까 조금 있으면 흑인종이 다 백인종을 다 압도할 것이라 하는 것은 그 숫자만 가지고 우리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숫자로 보면 그러합니다.

그러나 내면에 들어가 가지고 “하나님께서 가나안은 저주받아 종의 종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이 말씀을 연상해서 볼 때에 흑인종 천 명이 백인종 한 사람의 머리를 당하지 못합니다. 언제든지 인종 차별하지 말라 하지마는 인종 차별은 있을 것이고 또 지능의 차별이나 생활의 그 모든 생계의 차이점은 언제든지 예수님 재림 때까지 계속합니다.

또 장자 셈은 황인종인데 황인종에 대해서는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라” 했습니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장자에게는 하나님을 그이의 기업으로 줬습니다. 하나님을 그이의 기업으로 줘서 하나님 섬겨 찬송하는 이 종교성을 특수하게 이 황인종들에게 주셔서 거게도 택불택자가 있지마는 불택자는 불택자대로 택자는 택자대로 이 하나님에게 대한 특수한 은혜를 받는 것이 황인종들입니다.

또 그 다음에 27절에 보면은 “하나님이 야벳을ㅡ막내아들인데ㅡ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셨다” 이랬습니다. 창대케 한 것은 백인종에게는 특별히 육체의 축복과 세상 축복 이것을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시고 그 끝에 보면 “셈의 장막에 거하리로다” 했습니다.

그러면 장자의 기업인 그 하나님을 장자 셈의 집에서, “셈의 장막에서” 셈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겨 구원 얻을 것을 말했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또 흑인종은 백인종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이 선포한 이 계약이 오늘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윤곽 그대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증거하는 것은 우리 기독자들이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포된 계약이 태초부터 우리에게 선포되어 나왔는데 그 선포된 계약이 문서 계시에 보존된 것도 있고 보존되지 안하고 그대로 지나간 것도 있으나 우리는 그 계약을 세월이 지나가고 또 뒤에 새 계약이 나왔으니까 그 계약을 무시하나 그 계약이 하나도 무시되지 안하고 그대로 다 이행되고 있습니다.

선포하신 하나님은 그 계약을 그대로 이행하고 계시는데 계약의 당사자인 우리들은 그 계약을 무시하고 제대로 행하니까 이것은 다 복 없는 일이요 스스로 자멸하는 그 방편을 취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삼 형제가 이렇게 첫째는 하나님을 기업으로 받았고, 둘째아들은 저주받아서 종의 종이 되었고, 셋째아들은 창대한 축복을 받고 구원은 셈의 장막에서 구원을 얻는다 그렇게 말씀하신 그대로 곧 우리의 메시야는 셈의 아들 황인종에서 구세주가 났습니다.

여게 약속하신 대로 세계 인류들은 셈의 자손인 이 중보자 예수님을 통해서 전인류는 구원 얻는 길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변하지를 안했습니다.

또 막내 야벳에게 창대하는 그 축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대로 현시대도 백인종은 세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느 민족보다도 세상을 풍부하게 차지해 있고 세상에 머리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또 황인종인 장자의 족속에게는 어느 시대나 이 종교적으로 신앙적으로 우월한 그 근본의 종교적 은혜 이 신앙적 은혜는 이 황인종이 어느 민족보다도 탁월성을 가지고서 그 위치에 오늘까지 계속 유지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는 것은 우리는 황인종에게 속했는데 하나님이 노아 때에 전인류를 삼종으로 분류할 때에 장자의 셈에 속한 황인종으로 태어난 우리들은 그 테두리를 벗지 말아라 하는 것을 지금 말하고 싶어서 말합니다.

이러기에 야벳이 받은 그 축복은 우리의 축복이 아니요 그는 창대한 축복이니 땅위에 있는 창대한 축복을 그들이 기업으로 받았고, 둘째로 구원 얻는 하나님을 섬기는 그 구원은 황인종을 통해서 그 구원을 얻을 것을 약속했으니 셈의 아들인 황인종된 우리들이 야벳의 자손이 된 그 백인종의 입장을 부러워해서 그렇게만 욕망하는 그것은 다 이 기초 계약을 망각하고 거게서 돌출되는 것이니 그런 것은 다 유지되기가 어렵고 그 꿈꾸는 것은 다 자기를 속이고 마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황인종에 소속한 우리들은 먼저 하나님을 우리가 기업으로 받고 그 다음에 세상을 기업으로 받을 것을 말씀하셨고, 백인종 야벳의 족속은 먼저 세상을 기업으로 받고 그 다음에 하늘 구원의 이 구원을 황인종을 통한 그 메시야를 통해서 구원 얻을 것을 말씀하신 자기의 근본이며 뿌럭지인 변할 수 없는 이 뿌럭지를 벗어나서 둔갑하지 말고 그대로에 입고 살아야만 후회가 없고 앞으로 펴 나갈 것입니다.

그라고 여게 우리가 참고로 생각할 것은 이 노아가 물론 하나님의 예정이며 하나님의 계시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된 일은 된 일이지마는 이 일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우리에게 법칙으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말하지 안할 수가 없습니다.

노아가 온 세계를 다 정죄하고 그가 의인으로서 하나님의 후사를 단독 받은 것이 노아입니다. 노아를 가리켜서 당시 의인이라고 했고 하나님의 동행자라고 말씀했으니 그는 참 하나님이 아시는 의인입니다. 위대한 의인으로서 성공을 했습니다. 대성공을 했습니다.

대성공을 하고 난 다음에 그가 목축업을 하지 안하고 농업을 자기가 시작해서 포도원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포도원으로 술이 취해 가지고, 자기가 술 취해 가지고 술 취해 있지 안했으면 그 둘째아들 함이라는 아들이 그렇게 실수하지 안했을 것인데, 달리는 실수를 했을지 모르지마는 그런 실수는 하지 안했을 터인데 술 취해 눕는 것이 원인이고, 함이 보고서 조롱한 것이 조소한 것이 둘째의 원인이고 거게 따라서 노아가 저주한 것이 셋째 원인으로서 그 둘째아들이 인류 중에 가장 저급에서 저주를 받고 사는 그것이 오늘까지 계속된다 하는 것을 우리가 여게서 찾아볼 때에 우리가 주의할 것은 우리가 성공하고 난 다음에 실수하기 쉽다 하는 이것을 우리에게 강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공하고 난 다음에 실수하는 것, 성공하기 전에는 성공을 노리고 주력하니까 언제 실수할 새가 없고 그저 삣고 깎고 고 전심 전력 기울이니까 실수가 없었지마는 성공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생애에서 실수해 가지고서 이렇게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이런 실수를 빚어냈습니다.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가지고서 된 그 결과로서 삼 형제 중에 둘째아들이 그 인종도 흑인종이 됐고 그때에 노아의 아들이 함이 흑인종 된 게 아니라 그 뒤에 자꾸 자꾸 저주받아서 흑인종이 돼 가지고서 오늘까지 그와같이 내려옵니다.

암만 한 사람이 아들을, 흑인종이 열 명을 낳고 백인종은 하나만 낳았다 할지라도 열 사람이 한 사람의 그 머리를 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그 종이 되고야 말고 그만큼 차이 있는 저급 생활 하고 있습니다. 미국 같은 나라에도 절대로 동등은 안 됩니다. 사람됨의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게 동등되는 그런 심사의 사람들이 되어지지를 않습니다.

이래서 남의 조상이 될 우리들이 우리 생애에 우리가 성공할 때까지는 그 성공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전심 전력 기울여서 성공하니까 그때는 흠점이 없지마는 성공하고 난 다음에 이제는 모든 것이 다 기반이 닦였고 잔잔하다 하는 거기에 영원히 없앨 수 없는 큰 실수가 빚어지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우리 개인 개인이 이런 일이 얼마나 우리에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런 실수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되어 있는 저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범사에 성공을 했다 하는 그 성공한 거기에 다시 그 무서운 실수의 실패의 그 갈림길 그 함정이 우리에게 언제든지 따라 들어오고 있다는 요것을 우리가 지식 삼아서 이것을 방어하는 사람이 된다면 대단히 복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에게 여게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은 노아가 농업을 시작했는 그 농업이, 농업이라는 그 농업이 나쁜 게 아니지마는 그 농업을 인해 가지고, 자기 업을 인해 가지고서 노아가 대실수했고 자손이 크게 패망된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은 다 택자들이요 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왜? 거게 보면 가인과 아벨 외에도 많은 사람이 있은 것은 가인을 쫓아내니까 ‘내가 여게서 이렇게 하나님 앞에 득죄하고 쫓겨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다 만나는 사람이 죽일 것입니다’ 할 때에 ‘죽이지 못하게 하겠다’ 그렇게 말씀한 걸 보면은 그때에 가인과 아벨 외에 하나님의 사람 아닌 사람들이 많이 있은 것을 거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어데 났느냐? 내나 아담 하와에서 났는데 아담 하와는 그 가인 아벨만이 아니고 그 외에 많이 낳았는데 하나님의 택자와 불택자로 구별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지 안했고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는 섬기는 일을 한 사람들입니다.

이래서 가인이 하나님 앞에 저주받고 쫓겨난 것은 그도 자기의 직업이 농업이기 때문에 곡물로 하나님에게 제사드리는 그것이 거게서 가까와졌고 그런 유혹에 들기 쉬웠다 하는 것을 우리는 여게서 추측할 수가 있고 또 추론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기에 우리는 우리가 무슨 업이든지 못 할 것 없지마는 업을 택할 때에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업이냐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업이냐, 위험한 업이냐 든든한 업이냐 하는 그 업을 우리들은 잘 심사해서 선택할 것이고, 또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업이라도 나는 업에게 물이 들어서, 업에게 물이 들어서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것이 그 업에게 피동되어서 좌우되는 사람 되기 쉽다 하는 것을 여게서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그 함은 어떻게 했기에 그렇게 저주를 받았느냐? 노아가 술취해서 옷을 벗고 있을 때에 그 둘째아들 함은 들어가서 벗은 그 하체를 보고 ‘아버지가 벗고 있으니까 어떤고 보자’ 하고서 하체 벗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안하고 제 수치인 줄을 여기지 안하고 이렇게 보고 나와서 ‘아버지가 지금 술취해 벌거벗고 있다’ 이렇게 그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그 두 형제는 그 소리를 듣고 장자 셈이 깜짝 놀라면서 동생을 소리해서 동생으로 더불어 그 가룰 수 있는 의복을 어깨에 메고 들어가되 바로 들어가지 안하고 뒷걸음쳐서 들어가 가지고서 아버지의 그 벗은 몸을 보지 안할라고, 아버지의 수치되는 그 수치를 자기가 아버지의 수치를 보지 안할라고 이렇게 하면서 덮어 놓고 나올 때도 돌이키지 안하고 그대로 보지 안하고서 거꾸로 나왔습니다.

그라자 노아가 깨어 가지고ㅡ그는 그때는 노아는 영감에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는 노아는 그때에 하나님의 선지입니다ㅡ노아가 둘째아들 함에 대해서 “너는 저주를 받아 형제의 종의 종이 되리라” 그렇게 저주했고, 맏아들 셈은 “너는 하나님 여호와를 네가 찬양하는 사람이 되리라” 말했고, 야벳은 “땅에서 번성하고 그 셈의 장막에서 하나님 섬기게 되리라” 그렇게 예언한 그대로 오늘 그대로 됩니다.

거게 대해서, 이것이 진리요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기초 계약으로 우리에게 주신 이 계약이요 진리인데 그 무슨 이유로 그렇게 했는가 한번 좀 생각해 볼 이유가 있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함은 위선하는 일이 없습니다. 함은 그 자기 앞선 그 선조를 위하는 위선하는 일이 없습니다. 부모를 경외하는 일이 없었고 섬기는 일이 없었고 아끼는 일이 없었고 멸시했습니다. 요것이 함의 행위입니다.

자기의 선배가 되고 자기의 선조가 되고 자기의 기초가 되는, 다시 말하면 오계명은 인간 기초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고 일계명은 근본 창조주 기초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함은 그 부모를 위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분명했고, 또 그 부모를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분명했고, 그 부모를 섬기는 마음 이 없는 것이 분명했고, 부모를 아끼는 마음이 없는 게 분명했고, 부모의 수치를 자기가 견딜 수 없는 안타까와 여기는 그런 것이 없는 멸시하는 그런 일이 있었으니 이것이 둘째아들 함이 저주받은 기초적인 계약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여게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계약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 계약은 시대가 변해서 그 후에 많은 계약이 났지마는 이 계약 토대 위에 이 계약 범위 내에 그런 계약들이 있는 것이지 이런 계약을 무시하고 있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은 첫째 아담이 범죄한 그 범죄에 기초 계약을 가지고 둘째 아담의 계약이 효력 있지 기초 계약은 벗어버리고 둘째 아담의 계약만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 기초가 없으면 그게 서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의 근본이 되고, 자기의 위가 되고, 자기의 기초가 되는 이것을 귀중히 여기는 이 사람이 돼야 되겠고, 또 이를 아끼는 일이 있어야 되겠고, 또 이에 대해서 파괴나 흠점이나 불행이 있는 것을 원치 아니하여 그런 것을 보지도 안하고, 있다면 그런 것을 덮어 가루어서 없앨라고 하는, 다시 말하면 자기 근본을 위하는 요 정신이 없는 자는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일계명을 지킵니다. 일계명 지키는 자는 오계명 지키는 것이 필연하고 오계명 지키는 자는 일계명 지키는 것이 필연하지 오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자가 일계명은 지킨다는 것은 분석하면 하나의 무서운 그 사욕이지 절대 이 근본을 위하는 위선의 그 본질과 본성에서 되는 일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셈과 야벳은 어떻게 그렇게 차이 있었는가? 보면 셈과 야벳이라고 셈이 장자라는 것보다도 셈이 여게 나타내기를 먼저 나타냈습니다.

성경에는 신앙 위주로 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런데 장자 셈이 그 일을 처음에 거게서 발기했고 그 다음에 야벳이 따라서 수종들었기 때문에 셈의 축복과 야벳의 축복은 심히 다릅니다. 그들은 그 선조를 귀중히 여겨 그 선조가 망하면 제가 망할 줄 알았고 저희의 근본이 그 선조인 것을 깨달아서 선조를 소중히 귀중히 여겼습니다. 또 높여 두려워했습니다. 또 섬겼습니다. 또 아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장자에게는 “셈의 하나님”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 됐다 그 말이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는 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게서 장자 셈이 어떻게 했기에 하나님은 저의 하나님이 되었고 그는 하나님 섬기는 것으로써 만족하는 그 사람이 됐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여게서 연구해 가지고 그때의 셈만이 아니요 오늘 신구약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도 다 그 토대 위입니다. 그 범위 내에서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 일계명을 말씀하신 것은 제 일계명을 섬기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보지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도 못합니다. 제 오계명을 섬기지 안하는 자는 인간 축복을 받지를 못합니다.

거게서 셈과 야벳이 하나님 앞에 그렇게 기쁨이 돼서 축복받은 요것을 우리가 기억을 해서 이것은 그 아버지 노아지마는 곧 자기의 근본되는 먼저되는 위선을 말합니다, 위선. 자기 어머니는 자기보다 먼저된 선조요, 아버지도 선조요, 할아버지도 선조요, 근원이 선조요, 또 자기의 선배도 선조요, 자기 스승도 선조요 이런 것이니 이 질서가 잡혀지지 안하면은 그것은 파괴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는 위선하지 안하고 제게서 난 것은 위선을 시킬라고 이와같이 하지마는 뿌럭지가 없는데 그것이 공중에 있는 집과 같기 때문에 서 있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위에 뿌럭지가 서 있어야 그 다음 뿌럭지가 서 있지 그게 없으면 서 있지를 못합니다.

선배는 제가 어떻게 하든지 해 버리고 제가 선배돼 가지고서 왕노릇할라 하지마는 선배를 멸하는 그것은 밑뿌럭지가 없기 때문에 저도 또 멸해지고야 말지 그것이 서지지는 않는 것이 이것이 변할 수 없는 진리라는 것을 우리가 가지고 근본부터 우리가 사람이 본질과 본성으로 이렇게 바로 돼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오후에 계속하겠습니다.

이래서 오늘은, 한번 더 읽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온 인류는 이 세 사람을 통해서 나왔다 하는 것을 여게서 밝힙니다.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농업을 시작했는데 우리가 업을 택할 때마다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절대로 업의 종이 되면 안 됩니다. 업에게 피동되면 안 됩니다. 이것이 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라 했는데 하와가 동산을 다스리지 안하고 동산에게 다스림을 받았습니다. 동산에 있는 배암에게 다스림을 받아서 그것이 바로 멸망의 원인입니다.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이거 농업도 좋고 포도 심는 것도 좋습니다. “포도주를 마시고” 포도주 마시는 것도 좋습니다. “취하여” 취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벌거벗은 여게서부터 위험합니다. 그러니까 “둘째아들 가나안의 아비 그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하체를 보고” 여게서부터 그 아들은 저주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여게 고한다 하는 그 말은 안타까움이 아니라 훼방하는 말입니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어깨에 메고” 여게서 그 부모를 경외하고 존경하는 그것을 보입니다. 뭐 “어깨에 메고” 우리가 여기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한 것이오. 뚤뚤 뭉쳐 가지고 가지 안하고, 뚤뚤 뭉쳐 가지 안하고 그 옷을 어깨에 메고 갔다. 이러기에 실은 구약 알면 신약을 없어도 다 알 수 있습니다.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뒷걸음쳐 들어가서” 뒷걸음쳐 들어가는 것이 그 아버지의 그 실수와 수치를 보기 싫고 어찌 되었거나 그것을 보기 싫고, 그게 좋다는 게 아니라, 좋다는 게 아니라 볼 수 없어 보기 싫은, 그러니까 그 수치를 면한 거.

후배는 선배의 실수를 없기를 원하고 보기 싫어 실수가 있으면 그 실수를 어짜든지 삭제해 없앨라고 없애 버릴라고 하는 그것이라야 그게 복을 받습니다.

그 선조의 잘못이 있으면 그 선조의 잘못을 자기는 구경꾼으로 조롱하지 안하고 잘못 그것이 마음에 아파서 안타까와서 그 잘못 그 흠점을 덮어 가루어 없애버릴라고 하는 그것이 복받는 일입니다. 여게 새기면 얼마든지 여기서 복받는 길이 나옵니다.

둘째아들 함은 거기서 저주받을 것이 얼마든지 그 속에서 분석되고 분석되고 해석해서 나옵니다.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지 않고” 볼라고서 얼굴을 돌이키지 않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보지 아니하였더라” 여게서 그 인간성이 나옵니다. 인간성이 나오고 위선성이 나옵니다. 또 그의 장래관 미래관이 나옵니다. 그의 사상이 다 나옵니다. 그가 자기 위에 있는 걸 어떻게 하며 자기 밑에 것을 어떻게 생각하며 자기와 함께 있는 걸 어떻게 생각하는 그 모든 그이의 흥망 성쇠를 환하게 그려 내놓고 있습니다.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그는 뭐 큰아들이 작은아들을 고해서 알면 고자질 이거 복을 못 받습니다. 맏아들과 막내아들이 ‘아버지가 그럴 때 그래 말해서 우리 그랬습니다’ 그라면 셈과 야벳은 같은 저주받지 복을 못 받습니다. 그 말을 하지 안했는데 그 노아는 성령의 사람이기 때문에 압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시켜서 이 함을 저주해서 이렇게 한 것이 곧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계시해 놓은 계약 교훈입니다. 이게 우리에게 대한 계약이오.

“알고 이게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여게서 몇 가지를 우리에게 계시해 줍니다. 성공하고 난 다음에 무섭다. 성공하고 난 다음에 두렵다. 우리가 업을 택하여 업에게 종되지 않는 이게 돼야 될 터인데 업에 종될까 두렵다. 업에 종되다니? 그가 벗고 있는 그것은 누구한테 끌려 그렇습니까? 포도주에게 끌려서 포도주 시키는 대로 해 가지고서 포도주에게 끌린 거 아닙니까? 그 자기 직업에 종돼, 직업에 피동돼 가지고서 벗은 몸 있지 안했습니까? 그래 가지고서 이제 그 아들에게 저주하지 안했습니까? 이래서 우리는 업에 대해서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우리가 깨어야 하겠고, 또 자기 선조와 선배에 대해서 셈, 함, 야벳 이 세 사람이 가진 그 정신과 인질과 인품, 인격성 그것이 막바로 망하고 흥하는 것의 원인이 된다 하는 것을 우리가 여게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입술로 입에 발린 말로 가지고 이리저리 하고 뭐 눈에 사람들 눈을 속이는 행동 이거저거 하는 거게 달린 게 아니고 우리는 깊은 속, 자기의 인간의 본질과 본성, 그의 모든 사상 욕망 거기에 흥망성쇠가 달려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여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기도> 주님의 선포해 놓으신 계약은 진리이기 때문에 영원 불변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수많은 계약을 어긴 것을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주님이 다 대신 담당하셔서 형벌 받으셨고 대신 행해서 공심판에 통과하는 이 대속을 주셔서, 대속받은 자마다 이 대속을 벗지 안하고 입고 살면 무죄자요 의인이요 하나님의 자녀인데 벗으면 다시 마귀 자식되고 죄인되고 불의자가 되는 것이요, 벗었다가서 깨닫고 즉시 입으면 즉시 하나님의 자녀요 무죄 의인이 되는 것이오니, 이것을 깨닫고 연약해서 넘어졌으면 넘어지고 난 다음에 일 초라도 악령 악성 악습의 것이 되지 말고 빨리 일어서서 주님의 구속받은 주의 것으로서 완전히 죄 없는, 죄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하는, 주의 대속을 입고 거룩한 자로 사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제는 저희들이 대속을 입었으니 대속 입은 후에 인류 시조 때부터 우리에게 선포해 놓은 이 계약은 하나도 남김 없이 우리에게 중생 우리들에게 영생하는 생애 법칙 인 것을 알고 이 법칙을 우리가 이행하는 것이 주의 대속을 입고 사는 것이요 이 법칙을 벗으면 대속도 벗어지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건설구원에 대해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건설구원을 이루게 하시고 건설구원을 낙관시하여서 넘어지거나 마귀의 유혹에 들지 않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님이여. 이거는 주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셔야 됩니다.

건설구원에 낙관케 하는 이 마귀의 유혹을 다 벗어날 수 있도록 성령의 감동이 우리에게 감동시켜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들을 구원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자녀가 됐습니다.

이제는 크고 작고 어렵고 쉽고 좋고 슬픈 모든 것을 사랑하는 주님 앞에 낱낱이 소근거려 다 고해서 주님에게 기쁨이 되고 주님에게 또 위로도 받고, 주님에게 가르침도 받고, 주님에게 용서도 받고, 주님에게 도와주심도 받고, 주님에게 생명의 길을 인도하심도 받아서 앞으로 남은 때는 염려없고 평강 가운데서 영육이 성공하여 주님 앞에 성공을 바쳐 드릴 수 있는 복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다시는 요동치 아니하고 마귀의 유혹에 들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이들을 구원할려고 많은 수고와 많은 기도와 많은 눈물의 호소를 한 사랑하는 종들에게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점점 뜨거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권능을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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