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본능

 

1987. 2. 1. 주일오전

 

본문:히브리서 11장 5절∼6절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영계나 물질계에 많은 피조물들을 창조하시고 피조물들에게 본능적인 그 생의 법칙을 주신 것 중에 하나가 자기를 사랑하고 또 자기와 같은 자를 사랑하고 자기와 다른 것은 배격해서 멸하고 자기와 같은 자를 만들려 하는 것이 모든 피조물의 본능입니다.

예를 들면 모든 만물도 다 그러하고 곤충들도 그러합니다. 곤충도 자체와 다른 것은 다 배격해서 멸할려고 하고 자체와 같은 것은 협조해서 숭상할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양봉하는 데 가서 보면 수많은 벌들이 역사를 하는데 문을 지키고 있는 그 벌들이 역사해 가지고 들어오는 벌마다, 역사를 해 가지고 꿀을 가지고 오는 그것보다도 그 벌이 그 벌통 안에 있는 저희들과 같은 벌인가 딴 벌인가 그것을 살펴서 만일 다른 벌이 들어오면 생명을 아끼지 안하고 싸워서 그를 죽이든지 제가 죽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벌통에 있는 벌이 몇천 만 마리가 되든지 그것은 한 왕봉에게서 다 생산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 보기에는 다 같은 벌 같지마는 저희들 눈으로 볼 때에는 형체도 다르고 거기에 몸에서 나는 향기도 다르고 하기 때문에 오는 것마다 다 심사해 가지고 같은 것이 아니면 없애는 것입니다.

동물도 그러합니다. 동물도 자기 닮은 동물은 좋아하고 자기와 이질적인 동물은 다 대적을 하는 것입니다. 또 냄새를 맡아 가지고 자기와 같은 냄새를 가진 그런 동물은 다 환영하고 좋아하고 자기와 다른 그 향기와 냄새를 가졌으면 그 동물은 대적해서 죽이는 것입니다. 그저 힘이 없어 하나가 없어지기까지 그렇게 대항하는 것입니다. 이게 다 하나님이 주신 본능입니다.

사람도 어떤 것보다도 자기와 같은 것을 좋아합니다. 악인도 자기와 같은 악인을 좋아하고 의인도 그러합니다. 자기를 닮은 자를 좋아합니다. 그러기에 자녀를 낳았는데 그 자녀가 아무리 잘났다 해도 저 닮은 것만치 좋아하지 않습니다. 만일 누가 가서 말하기를 ‘그 아기는 꼭 아빠 닮았구먼’ 하면은 만족합니다. 또 엄마도 그러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생의 본능인데 이렇게 하나님이 본능을 주신 것은 전부 새끼는 에미 애비 닮고 에미 애비는 그 조부모 닮고 점점 위를 닮고 닮고 따라가고 따라가서 최종에는 그 위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이 다 하나님과 꼭 같은 자 되게 하려는 목적에서 생의 본능을 이렇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모든 피조물의 대표요 전인류의 대표가 되는 아담이 하나님과 이렇게 뜻을 같이 하려는 계약을 선포해 놨는데 그 계약을 어기고 제 독립적으로 제 주장대로 하는 곧 배암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마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과 이질된 거게서부터 하나님이 주신 이 생의 본능은 파괴가 돼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모든 피조물은 다 그 속에 죄악이 들었고 다 사망이 들어 있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타락하지 아니한 것은 그 본능 그대로 있지마는 타락한 것들은 다 변질이 됐습니다. 식물 이런 것은 다 변질되지 안하고 그대로 있으나 곤충 동물에서부터 코에 생기가 있는 것은 다 변질됐습니다. 이래서 노아 홍수 때에 코에 호흡이 없는 것은 그대로 둬 뒀고 호흡 있는 것은 다 홍수 심판에서 멸하게 된 것입니다.

범죄한 그후부터 인생에게는 자기를 닮게 하고 자기와 같은 자 되기를 원하는, 자기로부터 자기 아래의 것은 그 제도가 변경되지 안했지마는 자기가 자기 위를 닮아가고 본받아 가는 것은 변경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기쁘게 모두 하려는 것 자기를 닮게 하려는 것이 많고 또 모두 다 자기를 기쁘게 하려는 그것이 일반적이 아니고 그것이 다 바로 수직적으로 그렇게 돼 있지 안하고 삐뚤어진 것들이 생겨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모든 위의 것은 자기 이하의 것에 대해서 자기와 같이 되기를 다 원하고 자기 닮기를 다 원하고 있는 것이 타락한 세상인 것입니다.

이래서 집집마다 다 자기 닮기를 원하는 것이 세력을 잡고 있고, 또 사회마다 자기 닮기를 원하는 것들이 세력을 잡고 있고, 또 나라마다 자기 닮기를 원하는 그런 것들이 다 세력을 잡고 있는데 그 이하의 것이 자기 닮기를 원하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본능으로 주신 그 제도가 변경되지 안하고 있으나 자기를 닮게 하는 자기 자체가 변해졌기 때문에 이 인간의 본능은 다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각각 우리를 자기 닮는 자 되게 할려고 애를 쓰고 또 자기 닮는 자 자기 닮은 자 된 것을 좋아하는 이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북에 그 김일성씨는 온 국민을 자기 닮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또 민주주의에 있는 모든 정치가들이나 모든 지도자들은 다 각각 자기 닮기를 다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학위든지 그 학을 자기가 박사라는 그런 학위를 받을려고 하면 그 학을 주장하고 있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그 사람을 닮아가면 다 합격을 시키고 다 좋아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람을 등용할 때에 어떻게 등용하는고 하니 모두 자기와 같은 사람을 다 등용합니다. 또 자기와 같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러기에 세상에는 우리를 저 닮으라 하는 것이 많고 또 저를 좋게 하려 하는 것이 많은 이 복잡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는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면 하나님의 종이 아니니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거게서 우리가 기쁘게 하는 이것을 구별해 가지고 기쁘게 하는 대상을 바로 찾지 못하면 실패한다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가 누구의 부하로 있든지, 또 어떤 자에게 소속해 있든지, 또 자녀가 되어 있든지, 종이 되어 있든지, 친구가 되어 있든지 되어 있는 그 모든 관계에는 다 자기 닮는 것을 원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똑똑히 구별해야 됩니다.

전부 가정에도 자기 닮기를 원하는 것이 반드시 거기 있습니다. 큰 자와 작은 자가 있을 때에 작은 자는 세력 부족으로 큰 자가 자기 닮도록 할라 해도 세력이 모자라니까 못하지 세력이 있는 한은 다 자기를 닮게 할려 하는 것이 그것이 모든 존재들의 본능입니다.

이 본능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 주신 본능인데 이 본능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본능이니 이대로 하는 것이 행복되어야 할 터인데 행복되지 안하고 위험성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닮게 하려는 그것이 타락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고 다 타락해서 변질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 위의 것을 닮지 안하고, 또 그 위의 것은 그 위의 것을 닮고 닮아서 창조주 유일하신 하나님을 닮는 데까지 연결이 되어지면 그것이 생명이요 영생이 되어지는 것인데 이것이 타락으로서 변질이 되어져서 모두 사욕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 이하의 것은 자기를 닮는 것을 원하고 있지마는 저는 그 이상의 것을 닮을려고 하지 않는 요것이 다 악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유일하신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각각 자기 개체의 그 사욕적인 중심이 됐기 때문에 여게서부터 사고가 생겨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닮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걸 따라서 닮아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못된 것을 따라서 닮아가면 망합니다. 옳은 것을 따라서 닮아가면 그는 흥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닮아가는 것이 본받아 가는 것이 이게 중요하다. 닮아가고 본받아 가고 배워가는 것이 이것이 중요하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닮아가고 본받아 가고 배워가는 것은, 어떻게 하면 본받아 가고 닮아가고 배워가게 되느냐 하는 것은 자기가 어떤 것이든지 그를 기쁘게 하는 그것을 자기는 닮아가고 배워가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세상에 천천 만만도 더 되는 것이 전부 다 자기 닮기를 원하고 자기 본받기를 원하고 자기 같이 되기를 원하는 것들이 가득 찬 세상인데 그게 다 생명에 속했느냐? 생명에 속한 것은 하나뿐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배워가고 닮아가는 데에 조심하지 안하면 자기는 망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학자들마다 전부 자기 학을 닮아가라고 합니다. 정치가들마다 다 자기의 정치를 닮으라고 말합니다. 사상가들마다 자기 사상을 닮으라고 말합니다. 모든 종교마다 수많은 종교가 있는데 그 종교는 다 자기 종교를 닮으라고 그렇게 하고 있는, 자기 닮아오라고 하는 것이 가득 찬 세상인데 나는 어떤 것을 닮아가야 하겠느냐 하는, 내가 닮고 본받고 배워가고 그와같은 자 되어지는 이 존재가 너무도 많기 때문에 그 중에 나는 어느 것을 닮아가야 되며 어느 것을 본받아 가야 되며 어느 것을 배워가야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복잡 속에 다 제각각 자기를 닮아오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닮아가서 유익되고 닮아가서 성공하고 닮아가서 흥하고 망하지 아니할 그 닮을 대상이 어데 있느냐? 이거 선택이 자기 흥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남녀 노소 유무식을 막론하고 나는 누구를 닮아가며 누구를 따라가며 누구를 배워가야 되느냐 하는 이것 결정이 자기의 영원한 생사 화복에, 흥망 성쇠에 결정이라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마귀란 놈이 혼미하게 해서 여게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게 대해서 주의를 하고, 둘째로 주의할 것은, 그러면 내가 닮아가는 것은 내가 원해도 닮아가게 되고 원치 안해도 닮아가게 되는 유일로 닮아가는 법칙이 있습니다. 자기는 그거 닮아가기가 싫어도 닮아가고 닮아가고 싶은 것도 닮아가지 못하는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닮아가는 그 방편은 무엇인가? 닮아가는 방편은 내가 기쁘게 하는 그것입니다. 내가 기쁘게 하는 그것은 그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부부가 처음에 결혼해 가지고 그 부부가 마음에 맞지를 안합니다.

부부가 자기 마음에 맞지를 안해. 그러나 그 남편이든지 아내든지 좀 세어서 세력이 있습니다. 세력이 있으니까 그를 아내가 남편 닮아가기가 싫고 남편이 아내 닮아가기가 싫습니다. 싫어도 아내를 닮아가느냐 남편을 닮아가느냐 결국은 누구를 닮아가느냐 하는 것은 그 생활 방편에 있어서 닮아가기 싫어도 닮아가고 닮아가고 싶어도 닮아가지 못하는 수 있습니다.

그 닮아가는 유일한 방법이 뭐입니까? 닮아가는 유일한 그 방법이 뭐입니까? 그 방법을 누가 좀 말 한번 해 보십시오. 사람이 그를 닮아가는 그 방법을 아는 사람 있으면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저게 한번. 기쁘게 하는 거? 여게는? 뭐요? 손 들었지? 뭐라? 그 확신이 없다 그말이오.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이라는데 또? 순종하는 거. 저게서 기쁘게 하는 것이라 할 때에 ‘기쁘게 하는 것?’ 내가 이라니까 들을 때 이 보니까 ‘무슨 의문이 있다’ 이라니까 손 들었다가 대답을 못 했지? 그 확신이 없는 거라. 누가 뭐라 하든지 변동 없는 확신을 가져야 돼.

녜, 닮아가는 것은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요거 오묘한 이치입니다.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부부간에 그 아내가 어짜든지 남편을 기쁘게 할라고, 말도 남편을 기쁘게 할라고, 행동도 남편을 기쁘게 할라고, 일도 남편을 기쁘게 할라고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꼬?’ 이렇게 기쁘게 할 것만 자꾸 연구해서 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남편을 꼭 닮고 맙니다.

이 남편은 ‘내가 이거 내 주장대로 돼 가지고, 여자가 왕이 돼 가지고 이라면 이 집구석은 망하는 건데 이거 뭐, 암탉이 울면은 집구석이 망한다 하는데 이거 여자 닮아가서는 안 되는데 닮아? 여자 조거는 닮아가지 안하고 내가 얼마 살다가 이혼하지.’ 이렇게 생각 가지고 여자 닮아가기가 싫습니다.

이래도 여자가 원청 억새 놓으니까 밤낮으로 ‘이라다가 또 아내가 또 이거 박지기 고 야단지긴다.’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또 행동을 합니다. 일도,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일도 하고, 말도 하고, 계획도 하고 ‘내가 이렇게 이걸 판단하면은 아내가 또 트집 뜯고 또 아내가 징얼거릴 것이다. 이러니까 이것도 내가 이렇게 비판해야 아내가 좋아하겠지.’ 자기의 언행심사 모든 것을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한다고 하면 얼마 안 가서 그 아내는 그 남편을 좋아하고 그 남편은 아내와 꼭 같은 하나가 돼서 아내의 재판되는 남편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거는 필연한 일입니다. 이거 안 그럴 수가 없어.

아내도 그러합니다. 아내가 결혼해 가지고 남편하고 잘 지낼라면은 남편을 기쁘게 할라 하는 거, 뭣이든지 일도 남편 기쁘게 말도 계획도 비판도 또 음식도 전부 남편 기쁘게 하고 이래 할라 하면는 나중에 가서 저는 영 싫어했던 음식은 좋아하게 되고 좋아했던 음식은 또 싫어하게 되고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거 이상합니다.

요걸 여러분들이 이렇게 간단한 시간에 말해 가지고 잘 모를지라도 모든 존재는 자기 닮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이거는 하나님이 주신 생의 본능이다.

이랬는데, 자기 닮아가기를 원하는데 자기 닮아가기를 원하는 그것이 밑에 것이 위에 것 닮고 저도 위에 것 닮고 위에 것 닮고, 닮고 닮고 닮고 자꾸 올라가고 올라가고 올라가면은 마지막에 자존자이신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을 닮아 그와 같은 온전함이 되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전히 성화되면은 이게 영생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이 생의 본능으로 줬는데 타락한 후에 이 본능이 변질돼 버렸어.

이래서, 모든 것이 자기 위의 것은 닮지 안하고 아래 것만 저를 닮으라고 하는 것이 세상이다. 이것이 악이다. 이것이 사망의 원인이다. 죽는 거는 죽는 줄 알지마는 잘못된 것이 저 닮으라 하는 것은 사망인 줄을 모릅니다.

이렇게 자기 닮아가기를 원하는 존재가 여러 수천 수만 종류도 넘은데 이것이 세상에 가득 찼다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불완전한 것들이, 불완전한 것들이 다 삐뚤어진 것들이 수천 수만 종이 세상에 있다 하는 그말입니다.

알아듣겠습니까? 그러면 그말은 무슨 말이냐? 멸망하는 그 멸망케 하는 종자가 수천 수만의 것들이 세상에는 가득 차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닮아갈 그 대상을 바로 찾지 못하면 자기 수고와 노력과 열심과 절제와 인내와 충성은 다 헛되고 만다 그말입니다. 요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려집니까? 그러면 내가 닮아갈 그 대상을 바로 찾아야겠다 하는 이것이 이제 이 첫째 문제로 우리에게 이제 중대한 문제가 생겨졌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은 다 저 닮으라고 저 따라오라고 저와 같은 자 되기를 원하는 이 종류들이 수천 수만도 가득 차 있는 넘은 이 세상이니까 내가 무엇을 닮아가야 되느냐? 잘못 닮아가면 나는 망한다. 자기가 닮아갈 그 대상을 바로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의 생사 화복을 바로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이것을 잘못 선택한 것은 다 사망에 속한 것을 자기가 속하게 되고 이것을 바로 선택한 것은 생명과 성공에 속하게 된다. 이러기 때문에 이게 중요합니다. 내가 뭘 닮아갈까?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면 이제 사층에 이 학생들이, 사층과 삼층에 중간반 일이부의 학생들이 있는데 학생들이 귀가 열려서 이 진리를 듣게 되면 살 것이고 이걸 못 알아들으면 아직도 죽음 속에서 나오지 못한 자인 것입니다.

가만히 이것도 생각해 봐야 됩니다. ‘과연 그 말이 맞나?’ 모두 다 저 닮으라고, 이 학자는 이 학자 닮으라고, 저 학자는 저 학자 닮으라고, 과학자는 과학자 닮으라고, 정치가는 정치가 닮으라고, 도덕가는 도덕가 닮으라고, 사상가는 사상가 닮으라고 전부 저 닮으라 하는 것이 가득 찼으니 연약한 내가 아무 것이나따나 닮아갈까, 그저 내 눈 앞에 있으니까 나는 그걸 닮아갈까, 내 손에 잡혔으니까 닮아갈까, 그것이 저 닮으라고 강제로 위협을 하고 협박을 하고 누르고 꺾으니까 나는 그걸 닮아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나는 영원히 죽고 망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나는 거게서, 자, 학교서는 학교 닮아라 하고, 공산주의는 공산주의 닮아라 하고,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닮아라 하고, 집구석에 들어오니까 아내는 아내 닮아라 하고, 남편은 남편 닮아라 하고, 또 자녀는 자녀 닮아라 하고, 부모는 부모 닮아라 하고, 친구는 친구 닮아라 하니까 이래 놓으니까 이거 닮아라는 것이 많은데 이거 잘못 닮으면 망하니까 어떤 걸 닮아야 되겠느냐? 여게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인간의 철학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게 철학이 있는 사람이오. 이게 철학이 있는 사람. 이게 없는 사람은 짐승입니다. 철학 있는 사람이오.

닮을 것이 많은데 그중에 어느 것을 닮아야 되느냐? 닮을 것과 닮을 것의 비교 비판 평가해 가지고 가장 옳은 것 바른 것 그거 내가 닮아서 금생 내세 영원 무궁토록 모든 면에 후회 없는 내가 닮아야 될 참 온전한 그 대상을 찾은 자가 이자가 참된 종교를 찾은 자입니다. 참된 종교를 찾은 자입니다.

이런 것이 있으니까 이런 것 중에 이것을 비교 비판해서 내가 닮고 따라가고 본받고 거게 소속해서, 다 소속하라고 하는데 이 삐뚤어진 것들이 이 수천 수만도 있으니까 여게서 어느 것을 내가 선택해 가지고 닮아가고 찾아가고 본받아 가야 되느냐 이런 것이 있으니 이 복잡한 가운데서 ‘어느 것을 찾아 갈꼬?’ 하는 머리가 열린 사람이 철학자입니다. 머리가 열린 사람이 철학자입니다. 그것을 찾아 가지고 ‘이거다’ 하고서, 자기대로의 이거다 하고서 옳은 것이라고 하나 찾아서 붙든 사람이 모든 종교가입니다.

거게서, 찾았지마는 잘못 찾은 것도 한없이 있는데 모든 것 중에 영원히 영원히 가도 후회함이 없을 참된 것은 하나뿐이지 둘이 없습니다. 하나뿐입니다.

하나뿐인 요것을 찾아서 잡은 자가 바로 기독자입니다. 기독교 외에는 그런 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닮아가기를 원하고 본받기를 원하고 따라오기를 원하고 저와같은 자 되기를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가득 찬 세상이요 복잡한 세상이니까 ‘나는 누구에게 속하고 누구를 배워가고 누구를 닮아가고 누구를 본받아 갈꼬? 누구와 같은 자가 되어질꼬?’ 하는 이것을 선택하는 것이 중대한 문제라 하는 요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잡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둘째로 중요한 것은 내가 닮아가기를 원하는 대상이 있다 할지라도, 닮아가기를 원하는 대상이 있다 할지라도 그걸 닮아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또 닮아가기가 싫어도 그것을 똑 그와같이 닮아가는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닮아가게 하는 그 방편이 무엇인가? 물을 때에 저게서 대답을 했는데 기쁘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기쁘게 하는 것이라. 오늘 그 공과를 잘 공부했으면 여게서 정답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공과가 그렇게 쉽게 되는 것 아닙니다. 껍데기는 보면 그 뭐 말을 보면은 말도 문장적으로는 아래 위 말이 뒤바뀌어진 것도 있고 또 술어도 단어도 무식한 단어도 있을 수가 있고 있으나 나는 거게 상관 두지 않습니다. 다만 거게 대해서 이 구원의 도리를 지금 증거할라고 하는 그것이기 때문에 거게서 도리가 있는 것을 찾는 사람이면 그 공과가 끝나고 딴 공과가 올 때까지 그 공과를 거머쥐고 자기는 살아도 족히 살 수 있고 얼마든지 능력 있는 사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닮아가는 방법은 뭐이냐? 원치 안해도 닮아가게 되고 원해도 닮아가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내가 닮아갈라고 하면은 어떻게 하면 닮아가느냐? 그 상대방을 기쁘게 하면 내가 그거 닮아갑니다. 상대방을 기쁘게 하면 그거 닮아갑니다.

아내가 남편을 기쁘게 해서, 자꾸 아내가 남편만 기쁘게 해서 어짜든지 남편 기쁘게 하기 위해서 언행심사를 하고 하면은 나중에 가서 남편 닮게 됩니다.

남편이 아내를 기쁘게 애처가든지 내주장해서, 아내를 기쁘게 할라 하면 ‘이 내주장 이놈의 집구석 망하는데 이거 안 되지’ 싶어도 아내를 기쁘게 할라고만 하다 보면 나중에 그 남편은 아내와 꼭 같은 사람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약자는 강자를 닮기 마련인 것입니다. 하관은 상관을 기쁘게 할라고 하면 그만 상관과 같은 사람 돼 버리고 맙니다. 친구는 친구를 기쁘게 할라고 하면은 그만 친구 같은 사람 되고 맙니다.

자기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사업적으로나 어떤 것이라도, 만일 그 회사의 사원이 회사에 있으면서 어짜든지 나는 이 회사의 사장을 기쁘게 해야 되겠다 하는 그것을 단정을 지우고 사장 기쁘게 하기 위해서 모든 언행심사를 합니다.

행동도 그래 하고 계획도 그래 하고 비판도 그래 하고 다 그래 하면은 얼마 안 가서 그 사장과 꼭 같은 사람 됩니다. 그 사장하고는 떨어지지를 못합니다.

나뉘어지지를 못합니다.

왜? 그를 기쁘게 할라 하니까 자연히 그의 좋아하는 일 내가 좋아해야 되고, 또 그가 옳다 하는 것 나도 옳다 해야 되고, 그가 틀렸다는 건 내가 틀렸다 해야 되겠고, 그가 기뻐하는 것 내가 기뻐해야 되겠고, 그가 열심히 하면 내가 열심히 해야 되겠고, 그가 싫어하면 내가 싫어해야 되겠고 이러니까 필연적으로 그 대상을 닮아가기 마련인 것입니다. 요것이 이해가 됩니까? 이게 다 서론입니다.

이것이 이해가 돼야 됩니다.

자기는 그 회사에 몇십 년 있어도 그 회사의 사장을 기쁘게 하려는 그 마음이 없고 항상 사장과 서로 이렇게 대립적으로 돼 있으면은 갈수록이 사장과 멀어집니다. 정치가도 그렇습니다. 학도 그 밑에 학을 배우면서 그 가르치는 교수를 내가 기쁘게 할라고 애를 쓰면은 교수를 닮아갑니다. 그러나 교수를 기쁘게 할라고 하지 안하고 자기는 그냥 학만 배우면 교수와 같은 사람은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자기가 닮아가고 본받아 가고 배워가고 그와같이 되어져야 하는 그런 대상이 땅위에 많은데 그 중에는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은 하나뿐이지 둘은 없습니다. 참은 하나뿐이지 둘은 없습니다. 보다 더 좋고 보다 더 좋고 보다 더 좋고 제일 좋은 거는 뭐이냐? 제일 좋은 거는 하나뿐입니다.

제일 좋은 거 제일 옳은 거는 하나뿐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세력이 둘이 있을 때는 싸우는데 이 세력과 이 세력이 싸워서 이게 지고, 또 그걸 이기고 이기고 이기고 최후에 최고에 남아 있는 것은 몇입니까? 최후에 남아 있는 것이 몇이 됩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십시오. 하나뿐입니다. 최후에 남아 있는 건 하나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조만간에 이 하나를 찾아가고야 맙니다. 지금은 실력 대결하는 그 시간 문제지, 대결 대결 대결 대결 이래 가지고 투쟁 투쟁 경쟁 경쟁 해 가지고 마지막에는 최후는 하나만 남는다는 것은 이것은 필연한 진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것보다는 조게 좋고 조거보다는 요게 좋지마는 좋은 것 좋은 것이 경쟁해서 마지막에는 하나만 남으니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내가 소속하고 닮고 본받을 것은 어떤 걸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이 그것이 이제 첫째로 문제가 되고, 내가 닮아가는 그 방법은, 닮아가는 방편은 기쁘게 하는 것이 닮아가는 방편이니 아무리 나는 ‘저거는 싫으니까 저거 닮기 싫다. 꿈에도 저거 보기 싫다. 저 상관 저 인간 같은 사람 나는 되기 싫다.’ 아무리 되기 싫어도, 아무리 그 상대방과 같은 그런 사람이 되기 싫어도, 아무리 부부간에 그와 같은 사람 되기 싫어도 자기가 그를 기쁘게 하는 거게서 그걸 닮아간다, 그와 같이 되어져 간다.

요것은 닮아가고 본받아 가고 배워가는 것은 기쁘게 하는 요것이 유일한 방편이기 때문에 아무리 싫은 것이라도 그거 따라가다 보면 그걸 기쁘게 할라고 하다 보면은 결국은 그와 같은 거 되고 만다 하는 것을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는 닮아가지 안해야 될 것도 많고 닮아가라고 하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러면 내가 닮아갈 대상을 바로 택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둘째로서는 내가 닮아가는 것은 상대방을 기쁘게 하면은 그것을 닮아가게 되니 내가 기쁘게 하는 그것을 이제는 선택하는 것이 둘째로 문제입니다.

내가 뭘 기쁘게 할까? 나는 남편 기쁘게 하면은 남편 닮아간다. 상관 기쁘게 하면 상관 닮아간다. 공산주의 기쁘게 하면 공산주의 닮아간다. 아내 기쁘게 하면 아내 닮아간다. 자녀 기쁘게 하면 자녀 닮아간다.

그 집에는 아주 삼대 외동 아들로 하나 딱 둬 놓으니까 온 식구가 그 아이라면은 뭐 좋아서 어떻게 하든지 그 아이 좋아하도록만 합니다. 그 아이 좋아하도록만 하면 결국은 그 가정이라 하는 것은 철없는 그 아이를 닮아서 아이와 같은 가정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요것은 심령이 어두운 사람은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그것은 필연적으로 닮아가는 필연성이다 하는 요것을 이해를 못 할지라도 자기가 여러가지로써 남을 보아 깨닫기로 이런 것을 봐서 보고 또 이치를 연구하고 하면은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그것을 닮아서 간다 하는 것을 확정을 지워서 이거는 필연성이다 하는, 이는 확실한 진리다 하는 것을 자기가 잡아야 사는 방편을, 가치있는 방편을 아는 것이지 그거 모르면은 그 사람은 암만 살았다 해도 그거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다 뭐 별별 게 다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고린도후서 5장 9절로 10절에 성령의 사람 바울이 말한 것은, 바울이 말한 것은 바울의 말이 아니오.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했기 때문에 이는 성령의 사람이 말한 것이요 참사람이 말한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걸 우리가 믿지 않습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된 말씀으로 믿지 않습니까? 성경이 말한 것은 성신의 감동으로 됐기 때문에 틀림이 없는 정확 무오한 이 말씀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떤 사람이 돼야 되느냐? 바울은 성령의 감동의 사람으로서 그가 말하기를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그러면 기쁘게 하는 것도 수없이 종류가 많은데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사람이 무엇을 기쁘게 할까? “거하든지” 세상에 살든지 “세상에 떠나든지 언제든지 어데서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그라고 난 다음에 말하기를 왜? “이는”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이유가 뭐이냐? “이는 우리가 다 각각 선악간에 행한 대로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서 가지고 갚음을 받으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서 가지고 하나는 멸망받고 하나는 구원의 영광 받고 둘뿐인데, 하나는 죽음받고 하나는 생명 받고, 하나는 영광 받고 하나는 수치 받고, 하나는 성공 받고 하나는 실패 받고, 하나는 행복 받고 하나는 화 받고 둘밖에 더 있습니까? 이런데, 거하든지 떠나든지 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느냐? 이것은 기쁘시게 하는 이것으로써ㅡ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자도 있고 모든 피조물 기쁘게 하는 자도 있고 둘이 있는데 피조물 기쁘게 하는 자는 다 그것이 피조물 중심이요 악이기 때문에 피조물 기쁘게 하는 자는 피조물 닮게 된다. 피조물과 꼭 같이 된다. 요거 좀 어려운 말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하나님 닮게 되어 하나님과 꼭 같이 된다.

이러기 때문에 인생의 영원을 심판하는 그 심판 앞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느냐, 네 자신이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돈이든지 뭣이든지 네가 어떤 걸 기쁘게 했느냐? 돈을 좋게 했나? 돈 좋도록, ‘이라면 돈에게는 좋다. 이라면 아내가 좋아한다. 이라면 남편이 좋아한다. 이라면 상관이 좋아한다. 이라면 친구가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 많은데 네가 무엇을 좋게 했든지 무엇을 기쁘게 했든지 그대로의 네 행동되고 그대로의 사람되고 그대로의 이력된다. 이력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땅위에서 어떤 것을 기쁘게 하든지 완전을 기쁘게 했으면 너는 완전자가 되고, 거짓을 기쁘게 했으면 거짓자가 되고, 죽은 자를 기쁘게 했으면 죽은 자 되고, 인간이 땅위에서 무엇을 기쁘게 했든지 기쁘게 한 그 대상 그대로의 것이 되니 하나님이 인간의 생애를 심판해서 조사할 때에 자기가 어떤 걸 기쁘게 했든지 기쁘게 한 그 대상이 완전이 못 되면 그 모든 기쁘게 한 행동도, 기쁘게 함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변화되고 자기가 화해진 그것도 다 완전치 못하기 때문에 다 망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땅위에는 저 닮고 저를 기쁘게 하고 저 닮으라 하는 그걸 다 좋아하는데 그런 것 많고 이러니까 뭣을 기쁘게 할까 뭘 닮아갈까? 이라는 데에 수많은 닮아갈 것들이 많지마는 완전을 닮지 안한 거, 참을 닮지 안한 거, 곧은 걸 닮지 안한 거, 평가적으로 제일 귀한 걸 닮지 안한 거 이것은 다 멸망받고 만다.

그러기 때문에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각각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선악간에 자기의 행함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보응 받으려 함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히브리서 11장 5절에는 다른 사람은 다 죽었는데 에녹은 죽지 안하고 승천했습니다. 에녹이 뭣 때문에 죽지 안하고 승천했느냐? 죽음을 안 보고 승천한 것은 뭣 때문에냐? 그는 하나님이 옮기우시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하나님이 증거했다. 너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은 영원히 죽지 않고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전에 이제 두 가지 배웠습니다. 오전에 두 가지 요걸 잃지 마십시오.

땅위에는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자기를 기쁘게 자기 닮고 자기와 같은 것 되기를 원하는 그런 것들이 가득히 세상에 찼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 닮기를 윈하는 것이 땅위에 가득히 찼는데 그것은 내게 대해서 뭐하고 있습니까? 예를 들어서 내 위에 상관이 있습니다. 상관이 있으면 그 상관은 나로 하여금 자기 닮기를 원합니다. 자기 닮기를 원합니다. 자기 닮기를 원하는 그것은 어짜라고 자기 닮기를 원합니까? 그를 닮아가는 것은 뭐입니까? 그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기쁘게 하는 거.

이러기 때문에, 땅위에는 내가 본받고 배우고 닮아갈 그 대상들이 많이 있으니 대상과 대상 가운데에서 우리는 그 진가를 찾아서, 거짓과 참을 찾아 가지고 내가 닮아가고 본받고 배워갈 그 대상을 수천만도 넘으니까 거게서 비판하고 평가해 가지고 어느 것이 제일 나으냐, 어느 게 제일 옳으냐? 제일 좋고 제일 완전한 그것을 하나 선택을 해야 되지 그거 선택 잘 못 하면 다 실패입니다 학생들도 이 세상에서 배울 것 많고 닮아갈 것 많고 본받을 것 심히 많습니다.

그러면 내가 닮아가고 본받아 가고 배워갈라고 하면은 필연적으로 나는 그것을 사랑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과학을 닮아가고 본받아 가고 과학자가 될라고 하면은 그 사람은 필연적으로 그 과학을 어떻게 하는 사람이 됩니까? 과학을 미워하는 사람됩니까? 과학을 기쁘게 하는 사람, 과학을 사랑하고 과학을 기쁘게 하는 사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는 과학자가 됩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자체를 닮아서 본받아 가라고 하는 그런 대상이 많은데 이 복잡한 세상인데, 그러면 복잡한 세상이니까 내가 어떤 것을 표본으로 삼아서 어떤 것을 내가 내 목적으로 삼고 내 소망으로 삼고 대상으로 삼아 가지고 어떤 것을 내가 닮아가고 어떤 것을 본받아야 되느냐? 요거 선택 잘못하는 것은 생사 화복 선택이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의 성패가 다 잘못된 것입니다. 망하고 흥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망하고 흥하는 이것을 내가 돈 안 벌면 망하고 돈 벌면 흥하고 내가 이 세상 공부 잘하면 흥하고 공부 못 하면 망하고 이렇게 압니다. 자기의 흥망성쇠가 이 세상 지저분한 그런 데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자기가 어떤 것을 배워가며 본받아 가며 닮아가며 어떤 것에게 속해져 가느냐, 자기가 누구에게 속하고 누구를 본받아 가고 누구를 닮아가게 되느냐 거기에서 자기 생사 화복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완전자에게 속하게 되면은 완전자 될 것이고 거짓부리를 좋게 하면 거짓부리 될 것이고, 이러니까 무엇을 배워서 어떤 자와 같이 되어지는 것이 내가 할 일이냐 하는 그것을 선택하고 난 다음에는 둘째로 위험한 방편이 있는 것은 내가 아무리 싫어도 그게 마지막에 돼 버리고 말고 자기는 암만 싫어도 일생 동안 살고 보니까 그만 자기는 그게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암만 자기가 원하고 좋아해도 일생 동안 살고 보니까 그것은 하나도 안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자기는 일생 동안 살이에서 어떤 거와 같이 되어지느냐, 어떤 거와 같이 되어지느냐, 어떤 것을 닮게 되느냐, 어떤 것의 형상을 이루어가게 되느냐, 어떤 자와 같이 되어지느냐 하는 그것은 자기가 기쁘게 하는 그것의, 기쁘게 하는 그 대상을 닮아가고 그와 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둘째로 어려운 방편은 뭐이냐? 그러면 내가 만일 나쁜 것을 기쁘게 하고 천한 걸 기쁘게 한다면은 나는 어떤 사람 됩니까? 나쁜 거 되고 천한 거 됩니다. 온전치 못한 것을 기쁘게 하고 좋게 하면은 나는 뭐 됩니까? 온전치 못한 자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둘째로 우리가 조심할 것은 뭐 내야 오늘 이 사람도 기쁘게 하고 저 사람도 기쁘게 하고 팔방미인으로 뭐이든지 기쁘게 하고, 이거 좋게 저거 좋게, 어떨 때는 돈 좋게, 어떨 때는 사람 좋게, 어떨 때는 가족 좋게, 어떨 때는 명예 좋게, 어떨 때는 지위 좋게, 어떨 때는 상관 좋게, 어떨 때는 친구 좋게, 부하 좋게 이렇게 기쁘게 하는 것, 기쁘게 하는 이것을 때를 따라서 형편을 따라서 이것을 일관하지 못하는 사람 된 것은 자기 일생 생애는 일관되지 못해서 마지막에 가서 살고 나서 가 보면은 엉망진창으로 그런 사람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왜? 내가 상대방을 기쁘게 한 것은 한 시간 기쁘게 했으면은 한 시간 상대방을 닮았습니다. 일 년을 기쁘게 했으면 일 년 상대방을 닮았습니다. 일생 상대방을 기쁘게 했으면 일생 동안 상대방을 닮는 사람 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하든지 상관이든지 친구든지 부부간이든지 선배와 후배든지 상대방을 기쁘게 한 그대로의 나는 사람이 되고 만다 하는 요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둘째로 깨달을 것은 내가 어떤 걸 기쁘게 하든지 기쁘게 한 그와 같은 내가 되고 만다. 인격이 없는 것은 기쁘게 할 수가 없는 것같이 알지마는 넓은 범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항상 돈 좋게 합니다. 그 사람은 항상 돈 좋게 하요. 안면도 뭐 윤리도 도덕도 명예도 아무것도 없고 어짜든지 돈 좋게 합니다. 돈을 사랑하요. 돈 좋게 합니다. 일생 동안 돈을 기쁘게 하는 생활 했으면은 그 사람 일생 동안 살고 난 다음에는 어떤 사람 됩니까? 돈 되고 맙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니까, 오전에는 두 가지를 단단히 잡고 이것을 다시 뒤에 배울 때가 있을란지 없을란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것을 엿새 동안 월요일ㅡ지금 부득이, 첫째날 둘째날 할 것인데.ㅡ월요일 화요일 이 토요일까지 자꾸 주일날 배운 그것을 자꾸 새겨서 내가 지식으로 익히고 요거 깨달아서 믿고 믿는 대로 그대로 자꾸 연습하고 연습을 하는 데에 방해가 있어도 연단이 있어도 나는 그대로 계속을 하고 그 다음에 그래 가지고 어떤 일이 있어도 연성을 하도록 그래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 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쁘게 하는 데 대해서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쓴다” 또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를 존귀히 하기를 힘쓴다” 에녹은 일생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됐으니까 오늘 배운 진리대로 말하면 에녹은 어떤 자 됐습니까? 에녹은 일생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하나님이 증거를 했습니다. 기쁘시게 하는 자 됐습니다. 그러면 에녹은 어떤 사람 됐습니까? 하나님 닮아서 하나님과 꼭 같은 자 됐습니다.

왜? 일생 동안 말하는 것도 그분을 기쁘시게, 그분의 성질에 배치되면 기쁘지 안할 터이니까, 안 그렇습니까? 우리 사람도 그렇지 안해요? 주님 기뻐하는 말만, 기뻐하는 성질만, 기뻐하는 처리만, 기뻐하는 소원만, 기뻐하는 계획만, 기뻐하는 비판만, 기뻐하는 평가만, 기뻐하는 지식만, 기뻐하는 그 마음만, 하나님이 기뻐하는 그것만 일생동안 했으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 닮아서 하나님과 꼭 같은 자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떠나든지 거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하는 이 성령의 사람이 말한 거와 같이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안하고 승천했는데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자라 인정함을 증거를 받았다” 인정함을 받았다.

그러니까 에녹은 하나님 닮았기 때문에 하나님 닮아서 하나님과 같이 되니까 하나님께서 하늘나라로 옮겼습니다. 이거는 하나 계시 기관으로 주시는 것인데,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사망이 없다,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건 다 영원한 생명이 된다 하는 것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러기에 오전에는, 잘난 거 그래 쌓아도 몇닢푼치 안 됩니다. 나는 모두 다 자기 닮은 걸 좋아하고 다 자기와 같은 것 되기를 다 원합니다. 자기와 같이 되는 걸 원해요. 자기와 같이 되면 다 좋아하고 기뻐해요. 그러면 이거 좀 새기는 말이라서 좀 듣기가 안 믿어지는 사람들도 더러 있을 거라.

그러면 모든 존재들은 다 자기 닮기를, 자기 본받기를, 자기와 같은 자 되기를 원하고 있는데 그게 얼마나 있느냐? 나는 누구를 지금 닮아가고 있는가? 누구를 닮아가고 있는가? 그것을 이 시간 조금 잠깐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누구를 닮아가고 있는가? 내야 암만 직장에서 어떻게 하고 뭐 어떻게 하고 뭐 어떻게 하고 이렇지마는 나는 사람을 닮아가지 않는다. 나는 친구 닮아가지 않는다. 가족 닮아가지 않는다. 닮아가지 않는다.

그러면 닮아가지 않는지 있는지 그것은 뭘로 압니까? 땅위에 있는 사람을 닮아가지 않는지 닮아가고 있는지 뭘로 압니까? 뭘 가지고 그 사람이 사람을 닮아가고 있는지 하나님 닮아가고 있는지 압니까? 그 사람이 무엇을 기쁘게 하는지 기쁘게 하는 그 기쁘게 하는 대상 그대로 닮아갑니다.

저는 땅위에 하루 종일 인간 기쁘게 하는 일을 하고 하나님 기쁘게 하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안하고 이라면서 저는 하나님 닮아가는 줄 아는 것은 그는 완전히 자기를 속이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외에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떠나든지 거하든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쓴다” 그말은,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쓴다. 살아도 죽어도 곤고해도 가난해도 부요해도 고문과 고형을 당해도, 슬퍼도 괴로와도 어떻게 돼도, 자기 현실이 어떻게 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요것만 힘쓰는 사람은 그 사람은 무엇을 원하는 사람입니까? 무엇을 원하는 사람이요?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필연적으로 하나님과 같이 됩니다. 이 외에는 하나님과 같이 되는 일이 없습니다.

내가 이제 말한 것은 이 세상에 모든 걸 자연계시를 들고 와 가지고 좀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재료를 준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 닮았기 때문에 죽음을 보지 안하고 하늘나라로 올라갔습니다.

바울이 거하든지 떠나든지 하나님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는, 평생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것만 원하는 그것이 성령의 사람이요 그게 참사람이오. 그게 뭐 원하는 건데? 하나님과 같이 되는 자 되기를, 하나님과 같은 자, 하나님 형상 받기를 원하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공과에, 고문과 고형을 당하든지, 괴롭든지 즐겁든지, 가난하든지 부요하든지, 병들든지 건강하든지, 억울함을 당하든지 매장을 당하든지 이 세상에서 온갖 파란과 굴곡이 가득 찼는데 어데서든지 자기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여게서는 내가 성을 내야 기뻐하겠느냐 여기서는 웃어야 기뻐하시겠느냐, 여기는 거절해야 기뻐하시겠느나 여기서는 환영을 해야 기뻐하시겠느냐, 여기는 이래야 기뻐하시겠느냐 저래야 기뻐하시겠느냐? 그 어느 현실에서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변동되지 안하고 그대로 계속되는 사람이 위인입니다! 이게 위인이오! 이게 잘난 사람입니다! 박사 학위 있는 사람이 잘난 사람 아니오! 정권 잡은 사람이 잘난 사람 아니오! 세계에서 노벨상으로 인기받은 사람이 잘난 사람 아니오! 어데서든지 자기 현실은 수많은 천태만상으로 변해져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요것만을 변동하지 안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요거 위주로만 모든 비판하고 평가하고 계획하고 행동하는 이 사람이 세상이 모르는 위인이오. 앞으로 하늘나라와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때에 그 통일의 정권을 잡을 자는 그자입니다.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할 자입니다.

이자는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할 수 있겠소 없겠소? 이 자를 하나님께서 하나님 다음으로 정권을 맡기면 실패가 있을까 없을까, OOO집사? 없어. 없어.

여러분들, 헛된 영광을 구하여 공연히 투기하지 말고 격동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런 데에 피동할 필요가 없어. 우리는 완전을 주셨고 완전을 가졌기 때문에 완전을 향하여 가지 뭣 때문에 그런 잡탱이를 그래 가지고 요동을 하고 있겠습니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오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대해서 오후에 증거하겠습니다. 배워서 필요 있는 사람은 다 오후에 나오십시오.

이는 온 천하에 서적 창고에 도서실에 가도 없습니다. 신구약 성경 외에는 다른 책에는 없는 것입니다. 다 인본주의 지식이요 그들은 다 속이고 속는 지식이지 참된 지식은 신구약 성경 외에는 없습니다. 믿는 도리 외에는 없으니까 공연히 헛되게 날뛰지 말고, 사층에 있는 학생들도 어리석지 말고 일생을 속고 마지막에 죽을 때에 후회하지 말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서 후회하지 말고 슬기 있는 사람으로서 땅위에 살아야 합니다.

<기도> 악령이 주님의 도를 가루고 복잡하게 해 놨고 우리의 심령이 그를 따라서 어두워졌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바로 보지 못하고 바로 듣지 못해서 온갖 미혹 가운데 쌓여 있는 저희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넓은 범위에서 절단내고 좁은 범위에서 절단내고, 짧은 데서 절단내고 긴 데서 절단내서 이렇게 사람들을 주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생명길을 걸어갈 수 없도록 이렇게 만들어 놓은 복잡한 세상에서 오늘도 주님께서 두 진리를 가르쳐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은 영원히 후회할 것이 없는 생활을 하는가 하는 것을 깊음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을 드러내서 가르쳐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땅위에 있는 이 모든 찬란한 사탄의 광채 있는 음행의 포도주에 빠지지 말고 영원히 가도 변치 않는 이 진리를 굳게 잡고 진리에 입각하여 자신을 바로 살리고 길러갈 수 있는 각자들이 되도록 성령으로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제 임명한 사랑하는 종들 각각 자기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성령님이 붙들어 동행해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들을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들은 이제 주님의 자녀요 어지럽고 복잡하고 인정 없고 어두운 미혹 많은 세상에 머물고 있는 데에서 주님을 찾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모든 것을 의논하고 모든 것을 부탁하고 모든 것을 간구하여서 이 환난 세상이나마 평강 가운데서 아무 염려 없이 살아가는 이 생명길을 찾았사오니 요동치 말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지고 뿍뿍 걸어 나가는 저희들이 되도록 끝까지 장중에 잡으시고 동행해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 주를 사랑하는 사랑이 더욱 더 뜨거워져서 인간을 구원하는 데에 항상 충성하며 권위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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