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빛이다

 

1981. 10. 14. 수요일 새벽

 

본문 : 요한복음 1장 1절 - 4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하나님께 함께 계셨다 하는 이 말은 하나님이 따로 계시는데 예수님이 예수님  되시기전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일위로 되었을 때에 말하기를 예수님이라  이랍니다. 신성만으로 있을 때에는 그리스도라 말씀이라 이렇게 말하고 신성과  인성이 일위가 되어 있을 때에 예수님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에 거하실 때에 그때 이름을 예수님이라 했고 사람되어 오시기전  하나님으로 계실때에는 말씀이라 그리스도라 또 성자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말씀은 하나님이시라 하나님과 같이 계셨다 그 말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그 위가 꼭같은 성부라고 좀 더하고 성자라고 조금 덜하고 성령이라고 덜 덜하고  이런게 아니라. 위는 셋이지만은 본체는 하나입니다. 한 하나님이 본체 몸이  하나라 그말이오.

몸 뭐 영체나 물체가 없지만은 그 본체는 한 분이신데 위는 셋입니다. 이는  무한한 분이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무엇을 가지고 비유는 할 수 없지만은 한  사람이 그집에 호주도 되고 아버지도 되고 남편도 되고 이래되는 것은  남편이라고 딴 사람 아버지라고 딴 사람 호주라고 딴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일지만은 이름이 각각 다른 것은 그것은 직명입니다. 직위 직책의 이름이라  그말이오. 직명 직책의 이름 호주라면 호주의 직책이 따로 있고 아버지라면  아버지 직책이 따로 있고 남편이라면 남편의 직책이 따라 있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위가 셋이다 그 직책이 이 직책이 있고  저 직책이 있고 지책이 각각 다르다 그렇게 모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 맞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분은 무한하신 분인데 우리가 이 아주  유한한 이 존재 가지고 이와 비슷하다 이렇게 말을 하니까 그게 비슷할 수 없는  것이지만은 세상에서는 그걸 표현하려고 태양은 하나지만은 태양 그 자체도 있고  빛도 있고 또 온도도 있다 이래 와 같이 말을 합니다.

그러면 온도 그것도 해요, 본체 그것도 해요, 따뜻한 그것도 해요. 이렇게도 하고  또 나무로 가지고도 그렇게 뭐 비유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아마 그 비유보다는  내가 말한 그 비유가 좀 낫을 것입니다. 왜 그것은 근본과 그 다음이 뭐 뿌리  둥치 가지 이러면 그건 좀 하나가 그렇게 된것이 아니고 되지만은 좀 가지와  그런건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말은 삼위일체 중에 삼위 중에 한 분이 삼위일체  중에 한 분이라 그걸 표현해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는데 그분이 창자조하지 안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움직이지지 않는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어제도 어떤 분이 와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데 너무도 많은 마찰이 있고 핍박이  있다 그말이오. 많은 핍박이 있으니 이 일을 어떻게 처리를 하면 좋겠습니까.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답하기를 그 핍박이 있는 그것이 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들어서 그렇게 하는 것인데 마귀가 그렇게  하도록 보낸 이는 누구냐? 보내신 이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마귀를 심부름으로  부리는 마귀입니다.

마귀가 하나님과 주님과 대항되는 것 아니요. 주님이 부리시는 신부름입니다.

마귀입니다. 마귀를 심부름 시켜서 그렇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주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니 주님이 해하려고 하사는 것은 아니고 없어서는 안될 믿음의  유익을 주기 위해서 하시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거는 인정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찾아서 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요구는 하나, 참 주님을 든든히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러면 무엇이  오겠습니까. 평안이 오겠습니다. 평안이 오겠습니다. 주님을 아! 전능하신 분을  자기가 믿고 의지하면 전능하신 분이 자기 편이니까 그까짓거 뭐 티끌같은 것,  그런 것 뭐 두려워할 것이 뭐 있습니까. 전능 분이 날 안고 있는데 전지하신 분이  또 그것 다 알고 그렇게 조종해서 주님이 그렇게 했으니까 사랑하는 자가 그렇게  했는데, 염려할 거야 뭐 있겠소 두려울 기야 뭐 있겠소 그렇지 안해요.

이러니까 평강이 올만침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라 그것을 말했고 둘째는  이러니까 주님하고 좀 가깝게 붙자는 것이다. 그렇지 안해요. 가깝게 붙자는  것이다. 이러니까 그게 오니까 두 가지만 하면 해결은 된다. 해결은 된다는 것은  그것이 당장에 물러갈런지 없어질런지 좀 계속있을런지 모르나,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믿음에 유익이 되고 구원에 유익이 되지 손해볼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대개 부부싸움에는 보면 자기만 안 바라본다고 하는 싸움들입니다. 또 전적 저의  것이 되지 않는다는 싸움입니다. 되라는 것이요, 싸움은 대개보면 너무 저희 것이  되어서 권태 내 가지고 싸우는 그런 것도 약간 있지만은 그런 것은 그  부부싸움이 아니고, 그거는 뭐 다른 고장이 생긴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과 우리 사이에는 그러합니다.

이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에게 어려움이 오는 것은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뭐  주님만 든든히 당신만 보고 살럽니다. 녜 당신만 바라보고 의지하라 그말이오. 또  하나는 그에게 만족이 되도록 그와 결합된 사람이 되져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해서 보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증거하는 것은 이분이 창조주요, 하나님이신데 우리 주님이  창조주요, 하나님이신데 이분이 짓지 안한거는 하나도 없소. 다 이분이 지었지  김일성이 저것도 이분이 지었고 뭐 등소평이도 이분이 지으셨고 후리네초프라  했나 그 사람이 이분이 지으신 것이고, 다 지었어 지었는데 이분에게만 생명이  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 몇절입니까.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사절이네요.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자 한 번  따라합시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니라"  연결된 것 피조물인 피조물인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과 연결되는 연결방편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연결이 되지 다른 데는 연결이 안 됩니다. 예수님이라면  예수님의 인성을 통해서 예수님의 신성인 그 하나님과 연결이 되지 예수님의  인성을 통하지, 예수님의 인성이 세 가지 공로를 베풀었기 때문에 이 세 가지  공로면으로 예수님을 통해 가지고 하나님과 연결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그 사람은 하나님과 연결된 그 사람은 영생하는 생명이 있고 이  새벽기도 안나와 가지고 못 듣는 거는 천치 바보입니다. 제가 아무리 잘나도 천치  바보입니다. 저는 모릅니다. 땅에 인간의 대가리에서 나온 그거 가지고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까짓거는 다 죽은 지식 하나님의 지식이 이게 살리는 지식인데  새벽기도 나와 이런 보배가 저거들의 생명을 자꾸 받는 것인데, 생명 받으러  나오지 안하고 나는 이렇게 고귀하니까 그것다 디졌소. 고관 대작이라도 디졌고  박사도 디졌고 다 디졌어. 그까짓 속에 뭐이 들었습니까.

속에 속에 참 지식이 들었으면 안 나올 수가 없지. 참 불쌍하고 가련합니다. '나는  부자라 부족한 것 없다.' 하지만은 죽었다 이기요. 암만 여 나와 있어도 못  깨닫으면 소용없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예수님 안에서만 인간의 접촉  될 수 있는 하나님과 결합될 수 있는 이 결합이 있다.' 이말이오. 예수님으로서만  인간이 하나님과 결합할 수 있는 이 결합이 되어있다. 그 안에 생명이 있다  그말이오.

'생명이 있다.' 말은 생명은 하나님과 결합인데 예수님 안에서만 생명이 있다 그  신인 결합이 있다. 이 생명이 무슨 말입니까? 이 생명, 예 이 결합이 이 생명이  결합이, 따라 합시다. '이 생명이 이 결합이라.' 이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 이  생명이 사람들의 빛입니다. '사람들의 빛이라.' 말은 이 생명으로서만 사람들이  영생을 할 수 있다. 옳은 것을 할 수 있다 바른 것을 할 수 있다 깨끗한 것을 할  수 있다. 심판 면할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다.

이런데 오늘 아침에 말하고자 하는 것은 뭐입니까? 칼 가지고 이깁니까? 총으로  이깁니까? 총 아니라 칼 아니라 천하 있는 원자탄을 다 던져도 원자탄 그것이  빛을 나타낼 때만 이 어두움을 이기지 원자탄에서 독이 힘이나 세력 가지고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어려움을 이기지 못합니다. 어두움을 이기는 것은 빛 외에는  없습니다.

녜 어두움을 정복하는 것은 빛 외에는 없습니다. 어두움은 세상의 모든 죄악을  사망 이 모든 더러운 것을 다 총칭한 말인데 이것을 이기는 것은 빛만이 이길 수  있는데 이 빛은 하나님과 인생이 연결된 고 행동 그것이 빛이라 그것은 어두움을  정복한다 하는 것을 여기에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하나님과 영이 연결된 자가 그 심신이  하나님과 연결된 그 심신의 움직임은 그만 자기에게 있는 세상은 이겨 버립니다.

세상이 그 정복을 당합니다. 이기는 데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으니 하나는 그  대적하는 그게 세상인데 대적이 없어지지 안하고 그 대적하는 대적이 그것이  있음으로 그 사람이 세상과 합한 줄이 끊어지고 하나님과 나라와 연결이  되어지고 자기가 자기로 왕되어 있는 것이 죽어져 삭아지고 하나님으로 자기  주를 만드는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대적하는 것이 없음으로 아! 대적하는 것이 계속 있음으로  하늘나라를 이루고 자기가 하나님의 것이 되고 하나님은 자기 것이 되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자기 것이 되고 자기가 하나님의 것이 되니까 이것이 자기  성공 아닙니까. 또 하늘나라가 제것이 되고 저는 하늘나라 백성이 됐으니까 또  나라를 얻어서 성공한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자체 성공이요. 소유 성공이요. 다  성공했다 그말이오. 이것은 핍박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대적하는 게 없으면  세상으로 기 나갑니다. 세상이 마구 뚜드리고 박해를 주고 병이들고 뭐 야단을  지기야 이것이 세상으로 향했던 그 향방을 돌이키 가지고 하늘나라를 향합니다.

내가 어제도 어떤 사람 보고서 '네가 매를 좀 맞아야 되겠다.' 말했는데 '네가  매를 좀 맞아야 되지 안되겠다.' 하고 '매 맞을 배짱을 그만써라.' 이래 말했는데  매를 맞으면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닥치면 하나님하고 붙어 들어갑니다. 세상이  박해를 주면 세상에 정이 뚝 떨어져서 징그럽고 하늘나라가 더 소망이 되집니다.

이러니까 어두움은 우리를 박해하는 그 어두움이 있는데 하나님과 연결되면 그  어두움의 해를 받지 않는 것은 어두움을 잡아 먹는 것은 어두움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어두움 그걸 먹고 보신탕 먹듯이 어두움 그것 먹고 네가 하늘나라 백성이  강해집니다. 주님이 성전이 잘 됩니다. 주님과 결합이 잘 됩니다.

그러면 그게 잡아 먹는 것이요. 또 다니엘처럼 그 어려움을 주는 그 어두움이  세상이 이게 그만 하나님과 연결된 그 행위에서 깨져버립니다. 녹아져 버립니다.

다니엘 죽일라 하는 그 세력들이 다 녹아져 버렸소. 없어져 버렸소. 그래 보이게  없어지는 그 어두움도 하나님과 연결됨으로 되는 것인데 보임으로 없어지는 그  없어짐은 그 없어짐으로 자기가 하늘나라만 향하던 것이 세상을 떡 향해서  세상을 자꾸 연결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세상과 연결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본인에게는 유익입니까 손해입니까. 손해입니다. 요걸 알아야 되요.

본인에게는 손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믿음으로 나가니까 파사나라가 고만 그  정권과 모든 것이 다 다니엘 반대하던 것이 바짝 깨져 버리고 다니엘 막  환영하고 이러니까 그것이 다니엘을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 사건으로  인해서 믿음의 구원의 유익입니까 손해입니까? 네 유익입니까 손해입니까?  유익이지 유익이라! 그렇지 않소. 모든 사람이 '아이구 하나님 계시는 갑다.' 이래  가지고 하나님으로 가까이 합니다.

이러니까 어두움이 받드시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에는 어두움은 그것은 다  깨어지는 것인데 깨어지는 방편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그 어두움은 그것은 다  깨어지는 것인데 깨어지는 방편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그 어두움이 생명가진  자에게 좋은 고양진미로 참 보약으로 이용을 당해서 밥이 되고서 삼키워지는  그런 한 길이 있고, 또 하나는 그것이 눈에 육안으로 볼 수 있게 없어지는 게  하나 있다 이기요. 하나 있는 그것은 뭐이냐? 그것은 자기가 증거를 해서 다른  사람의 구원의 유익이 되는 일이고 육안으로 보기에 없어지지 아니하는데 그걸  속으로 잡아 먹어서 이용을 해 가지고 유익을 보는 것은 자기 구원에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어두움이 완전히 이용을 당하고 말기는 마는데 자기에게만  이용당하는 것이 있고 자기에게는 별 이용을 당하지 아니하고 모든 자기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있는 고 두 가지 길이 있으니 내적만  있어도 다른 사람을 살리지 못하겠고 외적만 있어도 제가 자기가 살아나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연결만 되면 어두움은 생기지는 것입니다. 어두움을 정복하는  것은 어두움을 이기는 것은 빛 밖에는 없다 그말이오.

뭐 어두움이 예배당에 여 있는데 어떤 용사가 칼을 가지고 창을 가지고 막  함부로 휘둘러 봤자 그 어두움은 꼼작도 안 합니다. 요 성냥개비에 불태우던 것  꺼진 것 똑 벼룩만한 반디불이라도 그게 있으면 거기에 있는 그 빛이 있는 그  빛에 빛이 정복한 범위 내에는 어두움은 깨져 버렸지 저는 그 못 들어갑니다.

녜. 그러므로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서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더군다나 더 중간반 반사들은 이것을 알아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제 속에 힘이  나올긴데 불이 나올긴데 제 속에 불이 없는데 뭐 가 가지고 버철거리야 뭐  할기라 반사노릇 하면서도 반사노릇 하기가 싫다니 뭐 괴롭다니 억지로 했다니  하는 그런 거는 그까짓 게 그 속에 뭐 아무것도 없는데 뭐 할기냐 하기를 그  속에 불이 없는데 주여 주님과 나와의 연결은 빛입니다. 어떤 어려움이든지 한 번  가보자 그래 골작의 어려움이 가득히 차도 조그만한 반디불,  나 요번에 전지 하나 삿는데 평생 처음으로 삿는데, (박은석) 목사님이 한 칠판년  전에 나한테 그 전지를 하나 줬어 내가 그래 며칠 쓰다가 도로 주면서 나는 살  수 있고 (박) 목사님은 사지 못할긴데 이거는 이 (박) 목사님이 사랑하던 거니까  내가 다시 실컨 쓰고 주니까 도로 줍니다. 도로 돌렸어 돌리고 저 아내는 이  무거워서 못들고 다니겠고 이거 좀 이런 것 하나 사오라 했더니만은 누가 사  가지고 왔어 조그만 해요. 조그만 한데 이게 작으니까 어두움이 크면 어두움  이놈이 지금 뭐 정복했을 때에는 요까짓 작은 빛 가지고 되겠나? 요래 써 가지고  막 뛰가 봤어.

내가 이 뛰가니가 아! 어두움 그놈이 출출출 막 전부 다 깨버리고 없어 아! 빛은  어두움을 정복하는 것이 빛이로구나! 혼자 내가 깜깜한데 마당 한 번 뛰돌아다녀  봤어 이래 해 보니까 뒤져 야! 이거 참 그안데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세상은 어두움인데 세상을 이기는 것은 주님과 나와의 결합이로구나!  결합해서 이기는 것은 그것을 요리를 만들어서 먹음으로 이기는 게 있고 그걸  없앰으로 이기는 것 있으니, 없앰으로 이기는 것은 제 삼자들에게 구원을 주는  것이고 그것을 두고서 먹어서 삼키는 것은 이것은 자기 구원이 되어지는 거구나!  내가 요새 어제도 흙을 져 올리는데 케일이라는 그 생접을 먹으니까 내게 그  도움이 되요. 모두 부우가 빠지고 좀 몸이 가볍고 이래 됩니다. 이래서 아! 이걸  한 잎팔이 그걸 아주 가꿉니다. 내가 가 보고서 버러지가 생겼으면 버러지를 딱  잡아 죽이고 가꿉니다. 없애버리면 안 되니까 이것 모양으로 이 세상 박해가 있는  박해가 계속 되니까 잡아 먹는다 말이오. 알겠소. 계속이 되는데 계속이 되어야  이놈으로 인해서 이놈으로 인해서 힘을 얻지요.

이놈으로 인해서 무슨 힘을 얻어 이놈으로 인해서 뭐이 커져 이놈을 먹어야 크지  이놈이 계속 있어야 이놈을 먹고 천국이 커집니다. 이놈을 먹고 내게 대한 주님이  커집니다. 이놈을 먹고 내가 주님의 것으로 더 커집니다. 오묘한 도리 아닙니까.

깨닫고 어려움 있는 것은 다 그걸 주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인데 주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인데 주님의 요구가 둘뿐이라 그러니까 어려움이 올때에 아! 이것은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자기가 확신해야 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러면 주님이 뭐 하려고 이렇게 하는가? 나 고생주려고  이렇게 하는가? 아니요 고생하는 것은 아깝지요. 아깝지만 당신의 요구가 있다  말이요. 뭐입니까? 요구가 몇 가지입니까? 요구가 몇 가지입니까? 요구가 몇  가지요. 두 가지 요구가 두 가지 하나는 당신만 바라보라는 것 당신만 좋아  하라는 것 당신에게만 순종하라는 것, 둘째는 주님하고 딱 들어붙자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쉽게 말해서 주님하고 딱 들어붙자 그말이오.

너희들을 세상에 보내니 양을 어데 보내는 거와 같다고요? 이리 가운데에 보내는  거와 같애 이리 가운데에 보내는 거와 같애. 이 목자는 능한 목자라서 이리가 양  건드리들 못하게 합니다. 양의 눈에 위험만 주지 이리떼 속에 이리떼가 보이면  양이 누한테 와서 안깁니까? 목자에게 안기지 않소.

그러기에 이 세상이 자꾸 이렇게 믿는 사람을 괴롭게 하고 어렵게 하고 또  사업이 잘 안되고 병이나고 뭐 어짜고 하는 그건 그까짓거는 문제가 없어. 그게  뭐이냐? 이리 떼인데 그 양을 해치는 것인데 해치는 것은 그것이 해할수 없는데  해치는 것은 주님이 주님하고 딱들어 붙자 그말이오. 주님 품에 와서 안기라  그말이오. 전능자의 품에 와서 안기라 그말이오. 이 둘박에는 없어. 그러니까 이걸  깨닫으면 기쁘지 '주여 장기간의 고문과 고행 가운데에 있을 때에 이 세 가지로  나에게 충만케 하시옵소서 성령으로 이 세가지를 밝히 깨닫게 하옵소서.' 주님이  하신다는 주님에게 요구가 둘이라는 것 하나는 뭐 당신만 좋아하라 그말이오.

전능자의 품에 와서 안기라 그말이오. 이 둘밖에는 없어 그러니까 이걸 깨닫으면  기쁘지 '주여 장기간의 고문과 고행 가운데에서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만족이 되요  주여 잔기간의 고문과 고행 가운데에 있을 때에 이 세 가지로 나에게 충만케  하시옵소서 성령으로 이 세 가지를 밝히 깨닫게 하옵소서.' 주님이 하신다는  주님에게 요구가 둘이라는 것 하나는 뭐 당신만 좋아하라 그말이오. 말하자면 또  하나는 당신에게만 딱 들어 붙어라 그말이오. 왜 그러면 이제 그는 세상의 빛이  되지 세상을 삼키지 세상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구원을 주지.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지금 급해요 급해 이것이 빨리 빨리 서둘어서 이 구원을 이루어야 되지 그까짓거  돈 가치 없습니다. 권세 가치 없고 예 빤들 빤들한 잘난 총각의 낮반데기  그까짓거 그만 송장됩니다. 예 꼭같은 그 총각의 낮반데기도 고만 푸르죽죽하이  시커먼 썩은 냄새가 나는 송장됩니다. 뭐 가치있어 뭐 건강이 좀 있으면 그것도  고만 뼈따귀 돼 어리석소. 눈이 모두 멀리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아! 세상도  중요한데 이일 하면 믿음 잘 지켜서 이 일 하면 굶어 죽어도 해야 될터인데 맞아  죽어도 해야 될긴데 또 믿음 잘 지키면 세상에서도 또 존귀하답니다. 존귀케 하게  한답니다.

믿음 잘 지키면 존귀케 한데요. 나하고 동갑 동무가 서이라 우리 마음에 동갑  동무가 서이인데, 그 나이도 한 동갑이지 생일은 다른데도 그 가정 형편도 같지  공부도 같이 했지 이래 놓으니까 동무인데 참 좋아했습니다. 그때는 꼭 동등이라  뭐 재주도 없고 이랬는데 하나는 안 믿고 둘은 믿는데 하나는 안 믿는 사람 또  둘은 믿는데 나는 그사람 보다 좀 낫게 믿고 그 사람은 나하고 안 믿는 사람하고  고 사이라 나 그사람 요사람 이 세사람 내가 항상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비참하게 됐는데 이거 죽었는지 모르겠어, 거창에 도출이라 하는 영감이 죽었는가  모르겠어. 아무 죽었을 기야 아마 이렇게 비참했는데,  저 먼저 그때 가보니까 날 친구라고 집회갈때 거창가니까 찾아왔는데 영 아주  그만 나는 참 키는 꼴치 갔는데 그거는 곧 진다 이기요. 어떻게 차이가 났는지  가치도 차이가 나지 그기야 누가 압니까? 거 어데 골짜기 있어야 말이지 아! 나는  그래도 전국에서 알지 미국에서도 알지 이것 참 어찌 됐는지 그래 내 저긴데  이게 됐다 저긴데 이게 됐다. 이게 예수로 말미암았다.

또 중간것 이거는 예수를 믿되 더럽게 믿는다 그말이오. 더럽게 믿는데 서울 지금  어데 있는데 그래도 신체는 건강하답니다. 그래도 믿는데 언제 내 테레비를  보니까 테레비에 노래가락 노래를 부르는데 그 사람이 나와 부른다 그말이요  부르는 거 괜찮지만은 참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음은 영도 잘되고 육도  잘되고 모든 것 잘 되는데 만고에 손해갈 것 하나도 없는데 왜 안 하는가?  고것은 자기 속에 욕심이라는 고놈이 자기를 꾀워서 어리석에 욕심 고놈에게  욕심 고놈에게 꼬이 가지고 자기를 망치는 일 하는 것입니다.

믿는 일이 믿는 일이 차차 식어지고 믿는 일이 식어지는, 믿음은 그까짓거 뭐  생명도 필요없고 사람도 필요없고 권세도 아무도 필요없습니다. 자기 믿음에  손해보이는 그것이 자기 원수인데 그게 좋을게 뭐 있습니까 있기를 믿음  손해보는 것이 그 어리석지 말고 어쩌든지 빨리 신앙준비 해 가지고 주의 재림  맞이해야 됩니다. 어리석지 말아요.

내가 그랬어. 아! 처녀들 결혼을 시킬라니까 뭐라고 싸도 돈에 있어 돈에 있고 뭐  안해도 변명을 많이 해 싸도 나도 제 변명 가지고 설복을 시키지 못해 하나님을  설복을 시킨다 말이오. 네 변명은 해 쌓은데 돈이 있어, 권세 있고, 용모에 있고,  구원 잘 이루는 거는 생각지 아니하고 평안함에 있고 평안함 어쩌든지 평안할  도리 평안하든지 고통스럽든지 구원 잘 이룰 고길을 취해야지, 구원 잘 이룰  평안하고 구원 잘 이루면 더 좋고 고통스럽고 구원 잘 이루면 그걸 취해야  되겠고 죽고 구원 잘 이루어도 그길 취해야지 이러니, 보니까 모두 유물주의라  무신론주의 세상주의라 육신주의 안일주의 전부가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너무 참  허무해 정신 차려서 예수 믿고 가야 됩니다.

어떤 분은 나한테 내가 딱딱하게 말하면 '아이 좀 부드럽게 말해주이소.' 고거  인본주의라 나는 정 더 딱딱하게 막 강하게 말하는데 이게 좀 더 장성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삐뚤어진 것 가지고 강하게 말하면 뭐이지요? 삐뚤어짐 가지고  강하게 말하면 뭐 되지요? 뭣 옵니까? (배종일) 조사 한 번 말해봐. 삐뚤어진 것  가지고 강하게 말하면 멸망오지. 뭐 몸둥이 오고 공격오고 삐뚤어지고 강하게  몸둥이 당하고 망하고 죽고 그렇지 뭐 삐뚤어진 것 가지고 '야 큰 소리 할 수  있는가?' 옳은것 가지고 큰 소리 할 수가 있지.

어디든지 막 큰 소리 하고 어데든지 큰 소리 해서 내가 큰 소리 해논 것은  세계가 달라들어도 '하나님께서 이 말이 네 옳은데 니 이런데 와카노' 하고  하나님 내편 돼 가지고 할 수 있도록 서로 옳은 것만 이렇게 해서 강하게 지금  못해서 강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기에 나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드럽고 순한  사람 되기를 원하는 게 아니고 그래야 그 안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 하는 것이  소멸하는 불입니다. 그 속에 겸해서 그래서 그렇지 이 세상 사람들이 유한만  가지고서 되는 거는 아닙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빨리 준비해요. 어쩌든지 빠리 준비해 가지고 주님 재림 맞이해야 되지 실은 자꾸  이래싸도 결혼할 시간도 없소. 이렇지만은 그래도 자꾸 이 결혼 안 하니까 폐단을  일으키고 죄를 짓고 돌아다니고 자꾸 이래 복잡하고 어지러우니까 그것 때문에  결혼해야지 어짤기라.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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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723 생각에서 나오는 축복/ 요한복음 15장 1절-11절/ 861030목새 선지자 2015.11.04
722 생각에서-집회준비-덕/ 에베소서 5장 15절-16절/ 890428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04
721 생각으로 연결/ 요한복음 6장 54절-55절/ 860409수새 선지자 2015.11.04
720 생각하고 살 것 4가지/ 베드로전서 1장 16절-19절/ 871102월새 선지자 2015.11.04
719 생명/ 누가복음 17장 5절-6절/ 880702토새 선지자 2015.11.04
718 생명/ 요한복음 5장 19절-29절/ 850225월새 선지자 2015.11.04
717 생명과 영생/ 누가복음 10장 25절-28장/ 870510주후 선지자 2015.11.04
716 생명과영생/ 누가복음 10장 25절-28절/ 811116월새 선지자 2015.11.04
715 생명길과 멸망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80120수새 선지자 2015.11.04
714 생명은 빛이다/ 요한복음 1장 1절-18절/ 811014수야 선지자 2015.11.04
» 생명은 빛이다/ 요한복음 1장 1절-4절/ 811014수새 선지자 2015.11.04
712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빌립보서 2장 5절-11절/ 861225목새 선지자 2015.11.04
711 생명의 떡/ 요한복음 6장 45절-51절/ 850329금새 선지자 2015.11.04
710 생명의 모양/ 에스겔 1장 4절-13절/ 800319수야 선지자 2015.11.04
709 생명의 법과 사망의 법/ 빌립보서 2장 5절-11절/ 861224수야 선지자 2015.11.04
708 생명의 역사/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820623수새 선지자 2015.11.04
707 생명의 의미와 영생을 이루는 방편/ 누가복음 10장 25절-28절/ 880122금새 선지자 2015.11.04
706 생명이신 그리스도/ 골로새서 3장 1절-4절/ 841020토새 선지자 2015.11.04
705 생명이신 그리스도/ 골로새서 3장 1절-4절/ 860104토새 선지자 2015.11.04
704 생명있는 믿음/ 누가복음 17장 5절/ 880708금새 선지자 2015.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