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영생

 

1981. 11. 16. 월요일 새벽

 

본문 : 누가복음 10장 25절 - 28절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생명은 생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요 우리는 이 생명 얻은 데  대해서는 아무런 작용이 없었습니다. 죽은 자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객관인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살리신 것뿐입니다.

그러나 영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서 이  받은 생명을 가지고 이 생명으로 우리가 살 때에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생명을 받아 가지고 이 생명으로 살 때에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명과 영생과는 아주 판이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하겠습니까" 하는 영생이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살겠느냐?"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생명으로 사는 것을 영생이라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죽어있는 자에게 주신 것이 그렇게 구별하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으리까" 하는 말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주신 이  새생명으로 살겠습니까?" 하는 말입니다.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새생명을 가지고 살려고 하면 어떻게 살면 됩니까?' 할 때에 예수님께서 '네가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 성경에 뭐라고 기록되 있느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람을 제 몸같이 하라고 이렇게  했습니다. '응 네 대답이 옳다 그렇게 하면 네가 영생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잘못하면 요것을 구별을 못해서 자기가 하나님의 법도대로 힘을  다해서 어떤 일을 하면, 하나님의 법도대로 어떤 일을 하면 그것이 신앙 생활을  잘 하는 것으로 이렇게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는 지혜의 힘이나  다른 힘이나 또 요소나 뭐 마음이나 뜻이나 성품이나 자기 목숨이나 하니까 빠진  것 하나도 없이 거기에 다 들었습니다.

다 이것을 다 들어 가지고 뭐해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 사랑하는 것 이웃  사랑하는 것 이것 두 가지 하는데 다 들었으니까 다 들었으니까 남은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남은 것이 없지요. 녜. 하나님 사랑하는 일과 이웃  사랑하는 일에 있는 것 다 들었으니까 있는 것 다 들었으니까 나머지기는 없을  것 아닙니까? 또 우리가 무슨 사업을 하고 자기 직장 일에 충실하고 또 자기 맡은 일 알뜰히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그런 여유의 것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그것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저 이름이 뭐이지? ○○ 조사님 외삼촌 알뜰히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우리에게  있는지 없는지 그 옆에 아기 데리고 있는 사람 한 번 대답해 봐요.

자기 의무나 책임이나 사업이나 가정생활이나 공부하는 학생이 공부하는 것이나  사업하는 사람이 사업하는 것이나 그런 것을 할 마음이 힘 뜻 생각 지능 그것이  자기에게 하나님 사랑하는 것 외에 그것을 할 수 있는 그런 여분이 자기에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또 ○○○집사님 예, 여분이 없어. 그러면 어느 걸 따라가야 해? 여분이  있다하고 없다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있다고 그러면 다해서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고 하라 했는데 또 뭐 그 다 했으니까 사업을 잘 해야 되고  자기 의무와 책임을 잘 감당해야 되고 이라면 '그런 일할 만한 그런 여분이  없다' 그렇게 대답을 하고 있다 대답하고 그것 참 모이 하겠습니다.

○○○선생, 예 응 없습니다. ○○○선생, 여분이 없다. 그 보면 좀 잘 믿는  사람들이 없다 하는 것 보니까 그리 따라 갈까 녜 고것이 귀로 입니다. 고것이  갈래길입니다. 한 자리에서 같이 일하고 응 같이 거처하는데 하나는 생명에  속했어. 생명으로 끌리가고 하나는 사망에 속해서 사망으로 끌려갑니다. 하나는  생명으로 끌려가고 하나는 사망으로 끌려가고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그 고난 당하실 때에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했습니다.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하는 말은 세상을 차지하고 이는 악령이 오겠으나 하는  그말입니다. 지금은 세상 주인이 악령입니다. 세상 주인은 악령이요.

예수님만이 악령이 자유하지 못하고 이제 예수님의 또 나라가 있습니다. 이  악령의 나라를 법적으로는 빼앗겼지마는 아직도 그것이 지금 패잔병으로서  왕노릇합니다. 그러나 실은 왕권을 주님에게 빼앗겼습니다.

과거에는 제가 왕으로 세상을 자유했지마는 지금은 왕권은 예수님에게  빼앗겼지마는 예수님이 그에게 종전 왕권 형세와 같은 그런 비슷한 행사를  하도록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남겨두셔 일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가 택한  자들에게는 왕노릇 못 합니다. 불택자들에게만 지금도 왕노릇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그가 왕노릇을 계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그말은 악령이 오겠으나 하는 말입니다. 악령이  와서 온다 말은 악령이 와 가지고 예수님을 이렇게 신문하고 저렇게 신문하고  이렇게 고행 고행을 하고 이렇게 고행을 하고 이렇게 유혹을 주고 저렇게 유혹을  주고 온갖 수단 방편을 다 써서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려고 예수님을 넘어 트리는  그것이 저희 목적이 되어가지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안하고 예수님에게  다 하는 것을 가르쳐서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하는 것입니다.

세상 임금이 뭐하러 왔는가? 오는 것은 예수님을 넘어트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넘어지기까지 자기 목적은 예수님을 넘겨트리는 아담 하와를 넘겨트려서 자기  것을 삼아 왕된 것처럼 둘째 아담도 넘어트리 가지고 자기 것 삼아 자기가 왕  되려고 이렇게 하는 전심 전력 다 기울이면서 하는 것을 가르쳐서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말했습니다.

세상 임금이 와 가지고 예수님에게 이렇게 저렇게 했으나 그럴 때에 '내가  이렇게 오면 이렇게 받아 넘기고 저렇게 오면 저렇게 받아 넘기고 그렇게  싸우겠다 그로 더불어 싸우겠다 내가 이렇게 대항해서 그로 더불어 한 번 합정을  해 가지고 그가 이렇게 하면 이래 하고 저렇게 하면 저라고 내가 그를 상대해서  내가 싸우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지 안했습니다. 안했고 내가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해서 그를 섬기며 또 그의 명령을 내가 어떻게 지키는가 그것이 나타날 것  뿐이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그때 주님은 다해서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데 다  드렸지 그것만 하지 딴 걸 안했습니다. 그것만 했지 딴 것은 안 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탄이 이렇게 하면 그 사탄을 대해서 이렇게 대항하는  사탄이 오니까 사탄이 오니까 이렇게 대항하는 이걸 했는지, 사탄이 오든지  말든지 아버지 하나님에게 대해서 이거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서 하는 것 이것만  하는데 사탄이 와 가지고 이 일 하는 것을, 아버지 하나님을 상대하는 이 일  하는 것을 방해를 안 하니까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서 하는 것이 약하게 나타나서  못 하구로 방해하니까 강하게 나타나고 못 하구로 죽으니까 죽어도 하는 것이  나타나고, 알아 듣겠습니까? 이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어제 세 가지 절기에 대한 도를 증거할 때에 하나는 유월절 하나는 오순절  하나는 장막절 이 세 가지 하나는 피의 구속 하나는 영감의 인도 하나는  하나님의 안보 하나님의 안보하는 거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제 돈으로 안보할  때가 있고 권세로 안보할 때도 있고 건강으로 안보할 때도 있고 근심 걱정이 못  들어오구로 항상 기쁘고 즐거움으로 쾌락으로 안보할 수도 있고 그런 것이 다  안보입니다.

안보라면 범위가 넓습니다. 안보란 하나님의 모든 은혜가 안보요. 안보는 모든  하나님의 은혜가 안보라. 사람들은 자꾸 좁아져서 안보라면은 자기 고기  덩어리나 보호하는 것이 안보인 줄 알고 생명이나 보호하는 것이 안보인 줄 알고  이라는데 자기에게 기쁨을 보호해 주는 것이 안보라 그말이오.

자기에게 기쁨이 있는데 기쁨이 그만 박살나 버리면 그 기쁨이 박살나면 다른 것  따라서 박살이 나지는 것입니다.

안보 이 세 가지를 기념하는 것이 절기를 지키는 것이다. 왜 그라면 '맥추절을  지키라 수장절을 지키라 유월절은 무교병절을 지키라' 그렇게 했느냐 하면 이  사람이 누룩없는 떡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 보기에는 그 누룩없는 떡을 먹고 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그  사람은 지금 이 피에 구속을 지금 입고 있습니다. 피의 구속을 입고 있는데 사람  보기에는 무교병 떡을 먹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 사람은 구속 입은 자가  그 법도대로 그의 안보를 바라보고 있는데 사람 보기에는 보리 농사 짓고  있습니다. 사람 보기에는 가을 곡식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만 사람들이 자꾸 외식하니까 '이제는 오순절 지키는 것을 이것이  맥추절을 지키라' 이렇게 해 버렸으니까 맥추절 지키라 말은 맥추 보리 농사를  이 속에 이 세 가지로 해라 그말인데 이 세 가지는 지나가 버리고 보리 농사를  짓는데 전심 전력 기울려 가지고 보리 농사 지으니까 감사하면서 이 봄 곡식을  잘, 봄 농사를 잘 지었다 해 가지고 그 하나님 앞에 감사를 봄 농사 지은 것을  드리고 또 그 수장절은, 장막절은 이제 가을 농사를 잘 지어 가지고, 가을 농사  잘 지은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 헌금을 드리면서 이렇게 지키는 것이라.

이래서 뭐 미국이니 저런 선진국에서는 감사 주일이 굉장합니다. 맥추 감사  주일도 굉장히 성대하고 또 추수 감사 주일도 매우 성대하고 이라는데 그때는  모든 오곡을 다 가지고 옵니다. 가지고 와 가지고 '이렇게 하나님이 이런 많은  것을 주셔서 참 감사하다' 하면서 이러니까 농사 짓는 그 농사 지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그 헌물하는 절기라 이렇게 생각을 해서 다 고만, 그 처음에 '맥추절은  무엇 때문에 지키며 오순절은 뭐하라 하는 것인가?' 하는 그거는 다 알맹이는  잊어버리고 껍데기만 가지고 지금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래서 제가 처음에 예수 믿을 때에도 그때는 선교사들이 와 가지고  카나다에서도 와서 선교를 했고 또 호주에서도 와 가지고 선교를 했고 미국서도  와서 선교를 해서 했는데 거기에 하는 식대로 이제 추수 감사절을 맥추 감사절을  지킵니다.

그러면 추수 감사절 지킬 때에는 호박도 호박딴 사람은 호박 갖다 놓고 고추도  갖다 놓고 마늘도 갖다 놓고 오곡이 잡곡이 모든 오만 채소가 아주 예배당에  많이 옵니다. 앞에 수북하이 재고 또 기쁨을 누리고 그때는 이렇게 하는데 자꾸  이렇게 하니까 하나님의 도에 그 다 기록하려면 온 세상에도 둘 곳이 없을만치  그렇게 많은 것을 축소해서 우리의 구원에 가장 요긴한 것만 기록해 주신  것인데, 이러니까 그걸 낱낱이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간추려서 영감 받아  진실한 마음으로 신앙 생활 하면은 알 수 있을만치 그렇게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영감없이 성경을 본다면 그거는 다 외식이 되고 맙니다.

껍데기 되고 맙니다. 또 자기가 자기대로 실행을 하면서 볼때에 자기만치  깨달아지고 실행하는 것만치 깨달아지지 실행하지 않는 것이 깨달아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어제 오후에 말씀하신 이 말씀을 증거하기를 유월절을 지키고 오순절 장막절을  우리가 한 번 이때는 강조해서 이 기회를 통해 가지고 한 번 거기에 대한 교훈을  하고 거기에 대해서 한 번 더 새로와지는 이 일을 하지마는 실은 계속해서  언제나 계속해서 이 생활하는 것이 기념이다. 언제든지 피로 구속을 기념해서 또  오순절을 기념해서 장막절을 기념해서, 기념이라 말은 그 행사를 지금 하고 있다 그말이오. 그 행사를 지금 계속하고  있는 것이 기념이라. 그러면 우리에게 주시는 어떤 현실이든지 자기가 공부하는  현실이든지 회사를 경영하는 현실이든지 정치하는 현실이든지 또 자기는 가정을  지금 꾸리 나가는 현실이든지 무슨 현실이든지 그 현실은 심지어 신혼부부끼리  사랑하는 그 사랑이 얼마나 밀접하지 않습니까? 그 사랑하는 그 사랑으이  현실이든지 이런 것을 가르쳐서 무엇이라 말했습니까? 녜. 그것이 자기가 살  처소라 말했습니다. 요것을 잘 새김질해서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잘해도 666이 되기 쉽습니다. 666 그거는 인본이요. 그것이  자기가 살 처소라. 그 안에서 자기는 자기 생활합니다. 그 안에서 자기가 사요.

자기가 부부로 부부끼리 사랑하는 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옛사람입니까? 새사람입니까? 옛사람입니다. 옛사람이요. 자기 현실에서 아주  자기 의무와 책임을 참 알뜰히 감당합니다.

내가 의무와 책임을 알뜰히 감당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의무와 책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충성되게 감당해야 되나? 이렇게 감당을  하면 그 사람은 새사람입니까? 옛사람입니까? 예? 새사람입니까? 옛사람입니까?  옛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보십시요? 또 새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들어 봐? 아까도 안 들고 이번에도 안 들면 어짤긴고? 아까 안 들면  이번에 들어야지. 먼저 안 들었으니 이번에는 들어야 되고 이번에 안 들면 먼저  들어야 되지. 그러면 새로 안 들면 안돼. 모르니까 가만 있는가? 녜? 그것을  이렇게 새사람으로 알기 쉽습니다. 새사람으로 말을 합니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 옛사람이요 새사람이 아닙니다. 다했으니까 하나님을 하나님  이웃 사랑하는데 다 드렸으니 '자기 의무와 책임을 잘 해야 되겠다. 사업을 잘  해야 되겠다. 가정을 잘 꾸미나가야 되겠다' 하는 그런 여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장영목) 선생 없어. 없는데 그라면 뭘  충성드리 하고 알뜰히 하고 이렇게 의무와 책임과 이 사명을 이 사업을 차려야  되겠다. 잘 해야 되겠다.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처음에는 사람말로  이렇게 하지마는 실은 고것이 구별이 되어야 됩니다.

모든 것을 처소로 삼아라. 그것이 네가 살 처소지 네가 할 일이 아니다. 네가 살  처소지 그거는 네가 할 일이 아니다. 고게서 요 구별을 잘 가지는 것 말입니다.

자기는 어떤 사업을 자기가 자기에게 맡겨도 자기가 사업을 찾는 것은 그것은  외익입니다. 실은 사업을 찾는다고 해 가지고 사업이 찾아지는 것 아닙니다.

자기는 이 사업을 생각했는데 저 사업이 자기에게 부딪혀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는 공부할 때에 어떤 사람은 내가 말할 때에 '사람이 자기의 전공을 떠나면  안 된다. 자기의 전공을 떠나면 안 된다. 천해지게 된다.' 이래서 자기가 전공한  그것을 다시 되찾을 라고 애를 쓰는 그 사람을 내가 거기에서 '그것이 아니다'  말하면 이렇게 스파크가 되고 충돌이 되고 효력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 말도  안하고 듣고 있기는 있어도 와 가직고 자기의 전공을 그거 하려고 전공을 그  벌써 고등학교까지는 아니지마는 대학에 가가지고는 그것을 전공으로 삼아  가지고 공부를 했는데 왜 실상은 자기 전공한데 있지 아니하고 어만데 가  있는가? 그것이 왜 그런가? 어만데 가 있으면 자기가 정치를 하려고 정외과를  전공을 했는데 자기가 은행에 와 앉았습니다. 은행에 와서 앉았소. 그것이  뭐이냐? 자기의 현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경영하는 대로가 아 니고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이 이루시기 때문에 자기는 그 법정과 하려고  정법을 공부했는데 정법에 종사하지 안하고 은행에 와서 종사하게 됩니다. 은행  직원이 돼버렸소.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현실입니다.

실은 인간이 자기 원하는 대로 가지는 것 아니고 원하는 대로 된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시는 현실대로 그대로 합니다. 또 모든 사람은 자기가 아주  평안하고 좋고 존귀한 자리를 존귀한 자리를 원해서 일생을 노력하는데 존귀한  자리 커니 엉뚱스럽게 천하는 자리, 가장 불행스러운 자리 가서 앉아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몰라도 소문은 들었는데 그 사람이 아주 자기가 공부해 가지고  참 존영한 사람이 되어서 영광 누리는 사람 되려고 했는데 원하는 것 정 반대로  그 사람이 공부 때문에 납치 돼가지고 이 이북에 가가지고 죽을 고생 다하고  지금 천대 받고 목사 아들이니까 목사 아들이니까 암만 해봤자 '이거는 세뇌는  안 된다' 그러니까 항상 요 시찰인으로 살피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돼가지고 그  불쌍하게 일생을 넘긴다 하는 그런 말 들어서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된 것  아닙니다.

경영은 사람에게 있으나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원은 사람이 사람에게  있지마는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기라. 그러기 때문에 이걸 깨달은  사람은 아예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안하고 자기가 자기 현실을 만들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요것이 신앙의 사람이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순종한다. 순종뿐이라. 어디로 가야 될련지 몰라.

아브라함은 그것이 신앙의 사람이요. 내가 요리 간다 조리 간다 요리 갈라고  요리 가기를 목표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자기는 어디로 갈지 몰라 그저  그날 그날 그 시간 그 시간 하나님에게 이 구원받은 그 구원받은 자로 하나님의  법도대로 하나님의 그 보호, 하나님의 은혜만 바라면서 걸어가는데 이래  걸어가면 마지막에 어디로 갈기냐? 내가 주님 만날 처소가 어데 있는지 몰라. 세상을 떠날 곳이 어디 있는지 몰라.

내가 이래 나가지마는 앞으로 그러기에 내가 어떤 그 질병의 환자가 될련지  모릅니다. 또 어떤 지금 권위 있는 자가 될련지 모릅니다. 어떤 권위 없는 가장  천하고 못 나고 불쌍하고 가련한 자가 될련지 모릅니다. 내가 주님 만날 처소가  어디인지 모릅니다. 내 앞길이 어디인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우리가 듣고 보고 아는 그 형편은 어떤 형편이라도 '저  형편에야 내가 안 이르지' 하면 믿음이 아닙니다. 교만한 사람이요. '저  형편에는 이르지 아니하지' 하면 교만한 사람이요. 그것이 가져지면 하나님이 그  형편을 그에게 닥치게 해줘야 자기를 부인하지 자기를 부인하지 안하기 때문에  그 형편이 닥치게 됩니다.

제가 어제도 어떤 사람에게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이런 형편을 닥친다  저련 형편을 닥친다 하는 그런 형편 닥친 것을 내가 그 한 번 말을 했습니다. 또  흉내를 냈습니다. 이러니까 보는 사람은 '저 무슨 장난인가' 이렇게 봅니다. 그  사람을 상대할 때에 나는 거기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형편을 줄련지 모르는  것을 말합니다.

안드레가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와 봐라 와 봐라'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은 어떤 곳으로 인도 할련지 모릅니다. 앉아서 그 노름하요. 이  처지도 한번 닥쳐 보고 저 처지도 한번 닥쳐 보고 세상에 내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인식하는, '아마 이런 처지도 있을 것이다.' 인식하는 것은 '그 중에  하나도 나는 이것은 당하지 안할 것이다.' 생각하면 그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제가 주관자입니다. 고면에는 주권자 됐습니다. 어느 처지 악칠련지  나는 모른다. 주님이 어떤 처소를 줄련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역사에 지나간 역사에 있었던 것은 그 모든 것은 어떤 것이라도  자기에게도 그런 일이 닥쳐지리라 생각하고 살아야 됩니다. 그런 처소를  하나님이 내게도 주실련지 모릅니다. 그런 처소도 나에게 주실련지 모릅니다.

내가 조심하고 주의하고 있으면 그런 처지를 안 만날 것이냐? 아니요. 아무리  조심하고 힘 쓰고 있어도 그런 처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모든 내게 실패될 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내가 이렇게 가다가 아무래도 낙심이야 안하지' 그런 교만한 사람입니다.

'낙심하지 안하지' 할 수 없습니다. 왜? 당신이 주시던 은혜 척 거두어 버리면  당장도 사탄되고 마귀되고 낙심해 버립니다. 그럴 수 있는 자기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기요.

이러기 때문에 당신을 두려워 하지 안할 수 없고 당신을 당신 앞에 떨지 안할 수  없고 내가 무엇이라고 해서 거기에서는 내가 어떻다고 교만할 수 없고, 저 (백명희) 선생, 이 아주 어려운 긴데 아주 최고로 어려운 긴데 이걸 말할  때에 잠이 오는 것 보니까 그 도에 도달 못 하는 것 같은데, 어떤 일에 부딪힐련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면 자기가 예수를 잘 믿어서 아주  호화롭고 존영한 그런 현실이 닥쳐왔습니다. 그건 뭐입니까? 녜 자기 처소요.

자기 처소요. 믿는다고 열심히 믿었는데 믿었는데 그만 마음이 풀어져서 낙심이  돼버립니다. 주일도 안 지키고 낙심한 사람이 돼버렸습니다. 그러면 그거는  뭐입니까? 그건 뭐입니까? 그거는 뭐이지요? 예 그거는 자기 처소 아닌가요?  그것도 자기 처소요.

또 자기가 모든 사람에게 존영을 받아서 이렇게 권위 있는 자리를 권위 있는  현실을 만났습니다. 형편을 만났습니다. 그것도 자기 처소요. 발에 밝혀 처여  들어가는 그것도 자기 처소요.

이러기 때문에 그것은 나의 처소요. 내가 살 처소요. 나는, 우리는 뭐입니까?  자신은 뭐입니까? 주의 피로 구속받은 자기입니다. 구속받은 자기 이렇게 억만  죄 가운데 빠져도 나는 구속받은 나입니다. 죄 없는 나입니다. 죄 짓는 그놈은  딴 놈이지 마음에 원하는 거는 행치 아니하고 원치 안하는 것은 행하는 것이  원치 않는 것을, 행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가 하는  것이니라.

바울이 요렇게 바울은 구별해 가지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피고 구속받은 죄 없는  자요 의로운 자요 하나님과 화친된 하나님의 자녀요. 언제든지 이걸 잊지 안해야  됩니다. 내가 어데 빠져도 이거 잃지 안해야 됩니다. 나는 이 사람입니다.

이것이 주의 피를 떠나지 않는 것이라. 이것이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그만 낙심하고 잊어버렸습니다. 잊어버렸으면 피로 구속받은 이  사람이 그리 됐습니까? 잊어버린 그 사람은 구속받은 사람입니까? 옛사람입니까?  옛사람입니다. 옛사람이요. 옛사람이 와서 구속받은 사람을 까뭉테 버리고  마음과 이 몸을 그것이 주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속받은 자기로 하나님의 주신 법도를 자기 법도를 삼아 이 법도대로 사는  그것이 자기 생활이요. 또 하나님의 것만 바라보는 것, 안보 하나님의 안보만  바라보는 것, 하나님의 것만 바라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그것이 장막절  지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는 어떤 사업을 해도 그 사업에 그 사업이 잘 되는 것이 자기의  목적입니까? 그 사업이 잘 돼 나가는 것이 자기 할 일입니까? 녜? 그 사업이  망치지는 것이 자기 할 일입니까? 자기 할 일이 뭐이요? 그 사업을 망치는 것이  자기 할 일이요? 그 사업을 잘하는 것이 자기 할 일이요? (주) 선생, 요 사람  그말이요. 요 망치는 것이 자기 할 일이야? 잘 되게 하는 것이 자기 할 일이요? (박영동) 회사를 그러면 지어놓은 그 사업을 잘 하는 것도 자기 할 일아니라  부흥시키는 것도 자기 할 일 아니라 망치는 것도 자기 할 일 아니라, 그러면  자기 할 일이 뭐인데? 응? 그깁니다. 그거 자기 할 일이요. 자기 할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도 지키는 것이 자기 할 일이요. 하나님의 안보를, 은혜를  바라보는 것이 자기 할 일이요.

아 그 사람이 아침에 일찍 나가고 사원들을 동원을 한다. 동원을 하는데 그  동원하는 그것이 사업을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사원들을 동원하는 사람있고,  사원들을 동원을 하는데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법칙을 그 법칙 지켜  행하느라고 하는 사람 있고, 꼭같이 하는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림  당합니다.

하나는 아침에 일찍히 일어나서 회사 사원들을 동원하면서 이라면 '너의 회사가  잘 되겠느냐?' '잘 될지 못 될지 나는 모릅니다. 잘 되고 못 되는 거는 내게는  상관이 없습니다.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주님이 하실 일이지 나 할 일은 주님이  나에게 주신 법도 지킬 것뿐입니다.' '너 그라면 회사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와같이 하는 것은 그 회사 잘 되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이대로 해도  회사가 망할 수도 있고 잘 될 수도 있습니다.' '너는 뭐 한다고 그라면 그리  하노? 네 목적이 뭐일까?' '주님의 안보를 받기 위한 주의 법도를 지키는  것뿐입니다.' 요것이 자기의 신앙 생활입니다. 요게서 요것을 혼돈해 가지고  구별하지 못하면 가장 복있는 자리에 가가지고 자기는 꺼꾸러집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삼 대 절기가 지금도 삼 대 절기입니다. 주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기입니다. 자기가 주인이 바꾸어지면 뭣 된다 했지요? 자기가 소유주가  바뀌지면 누가 뭐이라고 했지요? 자기는 누구의 것이라고요? 자기의 것이면 벌써  주님의 구속은 떠났습니다. 구속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자기의 것이라면 이거는  내 몸뚱이라. 내 몸이라 했으면은 그것이 무죄의 것입니까? 유죄의 것이요. 유죄  것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의로운 것입니까? 불의의 것 됐소? 그것이 하나님과 화친돼  있습니까? 원수돼 있습니까? 녜? 이 지금 절정의 말씀을 지금 아주 그 우리에게  앞으로 닥아올 이 절정의 이것을 지금 말씀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서  귀가 열리지 안하고 눈을 뜨지 못하고 알아 듣지 못합니다.

내가 기쁨을 누린 것은 며칠 전에 그 지난 금요일날 토요일날 아침에 어떤  사람들이 나를 만나러 왔습니다. 나를 만나러 와 가지고 이 설교록이 발간  되는데따라서 염려를 하는 것을 하면서 무슨 염려를 하느냐? 이 자꾸 이 설교  설교해 주시는 것 보면은 내가 우리 교회든지 내 형편을 보면은 꼭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을 주시고 주시고 난 다음에는 고게 해당된 현실이 오고 이래서  하나님 우리에게 현실을 주시는데따라서 미리 말씀을 주시고 고 다음에 현실을  주어서 고 현실에 고 말씀으로 또 통과하고 통과하고 했는데 이렇게 자꾸 보면은  길을 가는 것같이 자꾸 이렇게 그때 그때에 때를 따라서 돕는 은혜, 그때 그때  말씀을 주시고 또 그 고 말씀이라야 이길 수 있는 고 현실을 주시고 또 현실의  고 말씀을 자꾸 이렇게 걸어 나가고 있는데 옛날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을  가지고 오늘의 말하는 것이 어찌 되느냐? 이것의 염려라. 고 사람이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교회가 자꾸 부흥이 되나가요. 하고 있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그저 설교 말씀이니까 어느 말씀이든지 '자꾸 이래 하자' 하는 그것이  아니고 지금은 주님이 무슨 말씀하든지 주의 말씀이라도 주의 말씀이라도 그때  주님이 하시는 그 말씀이 뽑고 심으고 깨트리고 일으키고 하지 성경 말씀이라고  해 가지고 그 하나님이 그때 하는 말씀이 아니라 그말이오.

그 사람이 그 사람이 하는 말이라도 그때 하는 말이라야 그때 효력있지 저 다른  때 한 말을 그때 가가지고 하면은 파괴되지 무슨 효력이 있겠습니까? 예  아직까지 여러분들이, 시간 많이 갔는데 다 모르는데 우리는 어떤 현실에서라도  이 현실을 닥쳤으니까 이 현실에 맞추어서 '나는 어떻게 해야 되겠다' 그거  아닙니다. 그거 아니요.

하나님이 나를 구속해 주셨고 나에게 법도를 주었으니 그 법도의 외형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가지고 대충 윤곽을 잡습니다. 아 성경  말씀에 이러니 윤곽을 잡고 그리고 난 다음에 윤곽 속에서는 성신의 감화가  이래라는 그 윤곽잡은 그 윤곽대로 내가 하는 것이고 아침에 일찍 나서서  사원들을 동원 시키는 것도 그 윤곽의 법도를 지키기 위해서 그 법도대로 네가  이 맡았으면 법도에 이리 이리 해? 이리 이리 해야 된다. 성경에 법도대로 이  충성하라고 했으니까 성경에 법도를 지키기 위해서 하다 보니까 그래 해야  그것이 충성이고 하는 것이지 그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오. 위에  하나님과의 연결된 구속, 구속받은 자기는 하나님과 연결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과 연결된 자기가 하나님의 법도대로 움직이느라고 그하는  것이지 그 회사 잘 되라고 하는 것 아니고 못 되라고 하는 것 아니라 그말이요.

요게서 요 구별해야 된다 말이오.

요거 구별. 그러기 때문에 다 했으니까 거기에는 할 게 없다. 여기에 여기에 다  했는데 그것이 나타나기를 사원 동원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또 알뜰히 열심히  양심으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러니까 가다가 하나님이 환경을 변화시키  가지고 그 회사를 유지되도록 하려면 하나님과 진리를 구속을 버리고 구속받은  사람은 할 수 없고 하나님의 법도를 그 지킬려면 할 수 없을 때에는 하나도  아픔없이 의례히 안할 것으로 그 똑 떼놓고 하나님 법도를 지켜서 턱 내놓고  이리간다 그말이오. 고것이 그때에 구별이 납니다. 거기에 속한 자와 하나님에게  속한 자가 구별된다 말이오. 알아 들어집니까? 알아 들려져요? 고것이 구별이라.

그래서 주에게 구속받은 자기로 사는 법칙인 하나님의 법칙, 진리와 영감 이  법칙 이대로 자기가 사는 것이 사는 것이 남편에게 잘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부모에게 잘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이웃에게 잘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사업에 잘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그러니까 그분으로 인하여서 그분 위에 사는 것이  인간이 사랑하는 것이 되더라 그말이오.

다해서 다해서 인간 사랑을 하라 했습니까? 다해서 인간 사랑해라 했소? 어째요?  인간 사랑할 것 있어요? 없어요? 인간 사랑할 여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

하나님 다 사랑했는데 그것이 인간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요. 녜. 그것이  사업에 진실로 나타나는 것이요.

사업에 진실로 나타나는 것은 사업이 잘 되도록 하기를 목표해 가지고  나타납니까? 그 진실로 나타납니까? 아니요. 그로 인하여 진실로 나타났는데  그대로 나타나도 그 사업은 잘 되고 못 되고 거기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자기는  구속받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법도대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그것이 장막절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사는  것뿐이요.

이러니까 모든 것은 처소라 이라는데 어제 보니까 사람들이 못 알아 듣는 사람  많고 어떤 사람은 약간 아는데 틀렸다 싶어서 자욱거리는 사람 있고  짜욱거리다가 나중에 조금 더 나아가니까 이제는 머리가 툭 수그러지며 아멘  하고서 듣는 사람 있고 그 위에서 보면 다 압니다. 거의는 하나님만치는 몰라도  거의 알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에 안타깝다 이기야.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이해가 못 되도 처소라. 모든 것은 처소라. 아 부부끼리  서로 사랑하는 그것이야 더 밀접하지 않소? 밀접하게 사는 고것이 장소요.

처소요. 새사람으로 사는 처소로 알고 고 속에 들어 있다는 고 속에 들어있지  이것이 밖에 나오면 헛 일이라 그말이오. 벌써 그것은 옛사람 되고 말았다  그말이오.

그러기에 내가 늘 말하는 것이 그 사람이 얌전한 신앙 생활합니다. 흠 없는 신앙  생활하요. 아주 사람 볼 때에도 덕에 구비하고 모든 것이 원만하고 구비합니다.

잘 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옛날 묵은둥이 그거 노릇하고 있지 칼빈주의가  옛날 칼빈이 말한 그거 노름하고 있지 옛날에 칼빈은 그때 지금으로 부터 사오백  년 전에 사백여 년 전에 그때 시대를 감당한 것이요 지금 시대는 해당치  않습니다. 지금 시대는 하나님이 지금 시대에 해당된 걸 또 말씀해 주십니다.

이런데 옛날 하나님 말씀들은 그것만 지키니까 그것은 늙은이 신아이요, 늙은이  신앙, 자 오늘은 하나님 주시는 말씀은 항상 잠이와 안 들립니다. 들어도 안  들려. 예배볼 때 그때가 제일 중요한데 설교 말씀이 들리지 안해. 잠이와 안  들려. 안 들린다 그말이오. 안들리니까 그 사람은 자꾸 하나님께서는 지금 자꾸  진보적으로 자꾸 전진해 나가는데 자꾸 이래 걸어나가는데 옛날 노름하고  있습니다. 옛날 노름 그거 가지고 하고 있으니까 이 외식하는 인간들이 볼  때에는 원만하고 구비한 신앙 생활이지마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인도에  따라서 동행하는 그 걸음은 아니라 그기요.

그러니까 그에게 새로움이 없어져. 새로움이 없소. 새 것이 없어. 새로 진보가  없고 이러니까 자기에게는 '아이구! 나는 부족하다.' 부족이 없어. 부족이 없고  후회가 없고 실패가 없어. 우리의 가는 걸음은 실패 하고 실패하고 원통히  여기고 또 승리하고 또 실패하고 자꾸 이래 걸어가는 것이 우리 걸음인데  그에게는 아무 감각의 작용이 없어. 원만하게 그것이 그리 되면 도덕 신앙,  사회적인 신앙, 윤리적인 신앙, 영감적인 신앙은 아닙니다.

이러기에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당신이 앞으로 닥칠 것을 하나님이 미리 주시  가지고 그것을 피하고 이길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인데 이렇게 되는 것인데  그것을 받지 못하면 것 헛 일이라 그말이오.

그러므로 일주일 중에 제일 중한 시간 날짜가 어느 날짜입니까? 주일날이 제일  중한 날이요. 주일 스물네 시간 가운데 제일 중한 시간이 어느 시간입니까? 예배  시간입니다. 예배 시간이 제일 중한 시간이요. 앞으로 계속하겠는데 안 들으면  몰라요. 또 자기가 암만 들어도 이 자리서 새기 가지고 고걸 알아야 돼. 그러면  고걸 구별하십시요.

모든 것은 처소라. 내가 할 일 아니라 나 할 일은 뭐이냐? 나 할 일은 주의 법도  지키는 그기라. 주님이 나에게 진리와 영감 줬기 때문에 그 법도 지키는 것, 그  법도를 지키니까 사람들은 말하기를 '선하다. 그 법도를 지키니까 악하다. 그  법도를 지키니까 주인 눈에 잘 보인다.' 아 주인 눈에 잘 보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가르쳐 눈가림해서 주인 눈에 잘 보이는게 아니라 주님 앞에서 잘  살기 위해서 구속받은 자로 살다 보니까 껍데기가 그기 돼집니다.

우리 할 일은 우리 할 일은 뭐이냐? 우리 할 일은 주님이 주시는 법도 고것  지키는 것이 나 할 일이요. 고것만 해. 어데서든지 고것만 해. 아 부부끼리 그거  하니까 그렇게 하니까 부부가 어떨 때는 좋다 하다가 어떨 때는 싫다 하다가  이거는 싫다 하든지 좋다 하든지 고 법도 고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고기  뭐입니까? 고것이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고것이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요. 바라기는 뭣 바랍니까? 하나님의 은혜만 바랍니다.

하나님만 바라는 고것이 저 초대에서 나오기는 장막절이오. 녜 하나님의 안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자리에서 요서 확실히 익혀야 되요. 여기에서 무릇 녹아 익혀 가지고  여기에서 지식으로 확고하게 가지고 고 다음에는 자기가 이제 영감으로 가지면  더 견고하고 그리고 난 다음에는 이제 그대로 한번 실천해 보면 더 확실히 알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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