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는 멸망의 원인인 죄를

 

1988. 1. 1. 금새벽

 

본문:히브리서 12장 1절∼2절 이러므로 우리 앞에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오늘은 88년 1월 1일 새벽예배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육의 성장을  위해서 낮과 밤도 있게 하셨고 또 춘하추동 사시도 있게 하셨고 또 거게 따라서  일 년이라는 그런 계수도 생겨서 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봄도 우리 구원 위해서, 여름도, 또 정월도 이월도, 초하루도 또 이틀도  삼일도 보름도 다 그렇게 그것이 우연히 된 것도 아니고 뜻 없이 된 것도 아니고  다 우리 구원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잘 이용하면 복 있는 사람되고  하나님이 이미 세워 놓으신 모든 존재와 제도와 또 우리 속에 이미 입법해 놓은  마음의 법과 하나님의 또 이 계시의 법이 있는데 잘 준하면 복되고 어기면  손해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치의 나라라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치의 나라라. 또  하나님이 모든 섭리하시는 것도 이치를 벗어나서 하지 아니하시고 또 상벌을  주시는 것도 이치를 벗어나서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반드시 이치에  맞도록 이치를 따라서 사는 데에서 생명과 평강은 있는 것입니다.

이치는 바른 이치와 삐뚤어진 이치, 바른 이치는 살리게 하려는 것이요 삐뚤어진  이치는 죽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른 이치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왔고 삐뚤어진  이치는 에덴 동산에서부터 악령으로 말미암아 나왔습니다.

삐뚤어진 이치가 오히려 바른 이치보다 성공적이요 또 행복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그런 일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이치는 현재와 영원을 범위로 잡아  가지고 현재와 영원의 그 영원한 범위에 맞도록 우리에게 주신 이치요, 마귀가  주는 이치는 영원에 몇만분의 일도 안 되는, 성경에 말하기를 하룻밤 나그네라  하는 요 짤막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또 무지해서 전면을 보지 못하고 치우쳐  일면만 보게 하는 고런 범위를 향해서 정해 놓은 이치기 때문에 심령이 어두운  사람들은 그 이치가 더 좋고 심령이 밝은 사람들은 그 이치는 부합지 않다  이래서 안심을 하고 그 이치대로 걸어갈 수가 없는 것이 심령이 밝은 사람이요  또 그게 좋다고 걸어가는 사람들은 어두운 사람입니다.

배암이 주는 이치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 때도 당장 맞는 것도 있고 늙으면 벌써  그 이치가 맞지 안해서 실패한 사람들도 많이 있게 되지마는 그 사람의 생명이  떠나는 그 시간부터는 다 실패되지 않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다 생명이 살아  있는 이편에서는 맞는 거 같으나 생명이 떠나 죽었다가 다시 부활해 가지고  그때는 영원한 세월인데 거게 맞추면 맞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것을 기억해서 좁은 범위, 이 이치는 물질만 보는 이치라, 또 금생만  보는 이치라, 영원은 보지 못하는 이치라, 이 이치는 물질이나 자기의 신체  건강이나 모든 것 다 내비두고 쾌락만 좋아하는 행락만 좋아하는 행락에만 맞는  이치인데 그 행락에 맞는 이치니까 자기의 수명에나 세상 범위 내의 행복이라도  모두가 다 절단나나마 일방적으로 하나 이치는 맞는 그런 것들도 많이 있고 참  세상은 오묘한 세상으로 돼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치는 금생도 자기에게 유리하고 죽을 때도 유리하고 영원  무궁세계의 부활한 때도 유리하고 영원히 유리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은혜를 줘서 밝은 심령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람이 아직까지  중생되지 아니했어도 이 배암이 주는 인간 이 이치로써는 안심이 되지 않기  때문에 구불텅이를 쳐 가지고서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이것은 도무지 안심할  수가 없고 만족할 수가 없다. ’ 해서 날뛰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은  그런 사람들의 이름을 가리켜서 철인들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철학자들이라,  철인들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하나 예를 들면은 심령이 어두운 사람은 아이가 났으니까 좋다고 모두  기뻐하는데 그 철인은 보니까 그 아이가 죽어서 모든 사람들이 또 울고 통곡할  그것을 그 아이에게 같이 보니까, 그 아이의 출생과 죽음을 같이 보고 또  인간들이 좋아하는 기뻐함과 그 슬퍼함을 조금 있으면 그게 슬픔으로 변해지는  것이니까 그것을 같이 보니 땅 위에 가치할 것이 하나도 없다.

이러니까, ‘보이는 이것들로써는 다 계산대 보니까 다 계산에 맞지 않다. 이것은  다 계산에 틀린다. ’ 이러니까 보이는 것들을 헤치고 보이지 않는 무엇을 찾아  볼라고 애쓰는 사람들이 다 철학자들입니다.

철학자들인데도 하나님이 보여 주지 안하면 인간들은 볼 수 없기 때문에  철학이라는 것은 자기 혼자 자꾸, 보이는 이거 외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없는가  해서 발동을 하니까 자꾸만 자기 생각을 찾아 들어가게 됩니다. 자기 생각을 찾아  들어가고 자기의 자율의 이치를 찾아 들어가게 되니까 점점 자기를 찾아  들어가는 것이 철학자들입니다.

이러니까, 땅 위에 모든 이종교라 하는 것들은 다 자기 속에 있는 본죄와 원죄,  악령을 찾아가는 그것이 다 철학이요 이종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다 헛되고  헛되고 헛된 그 자기의 길을 걷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그 이치는, 심령이 밝은 사람들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모든 이종교의 모든 철학들의 궁구한 것도 들여다봅니다. 어떤  사람은 불교를 만나면 불교를 들여다보고 들여다보니까 깊어서 그 밑잘미를 보지  못하니까 죽는 날까지 불교의 밑잘미를 파고 들어가다가 마지막 종착을 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있고, 심령이 밝은 사람들은 불교 그런 것을 눈이  밝으니까, 일생 동안 찾아도 찾아 들어가지 못하는데 심령이 밝은 사람은 잠깐  들여다보니까 그 끄트머리가 막혀버렸고 나갈 구멍이 없는 것을 보고서 다시  되돌아 나옵니다.

이래서, 모든 이종교 그런 것을 들여다 보고는 ‘여게는 나갈 구멍이 아니라  이거는 함정이다. 저것도 그렇다. ’ 수많은 종교를 거치는 것이 다 그 연고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 사람이 비록 불택자고 예수를 믿지 않는 자라도 찾아  들어가다가 이 길이 좋은지 안 좋은지 자꾸 찾아 들어가기가 겁이 난다. 이 길이  옳은 길인지 삐뚤어진 길인지 모르니 거게서 회의심이 나와서 ‘아, 이것을 찾아  들어가다가는 내가 일생 동안 여게 들어가겠으니까들어가다가그 끝은 없다.

끝은 못 찾겠다. ’ 갈수록 호호 양양하고 넓어지고 좋기는 좋은데 그게 참  생명길인지 모르니까 쉽게 찾고 쉽게 만나지는 그런 길을 찾을라고 불택자들은  기독교로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 가지고 다른 종교를 찾아서 헤매다가 세상을  마치는 것입니다.

저도 예수 믿기 전에 여러 종교를 봤습니다. 그랬는데 여러 종교를 봤는데 저는  예수를 안 믿었으면 아마 얼마 동안은 불교인이 됐을지 모르겠고, 왜? 제가 좀  찾아보는 대로는 불교의 석가모니가 택한 그 길이 약간 그렇게 보였으나 그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돌아섰었습니다. 이런 거 저런 거 다 보니까 전부 사람을  꾀우는 것뿐이지 인간이 걸어가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종종 제가 혼자 있으면  우는 일을 많이 했었습니다.

만일 기독교를 못 찾았으면 제가 공산주의자가 됐을 것입니다. 왜? ‘이 모든 거  다 헛일이다. 보이는 거 외에는 없다. ’ 과학자가 됐든지 공산주의가 됐든지,  공산주의 자들은 과학자들입니다. 과학 위주로 사는 사람들이오. 거게서 신비한  인간의 종교성을 다 말살시켜 버리고 현재에 보이는 가견 세계에만 표준해서  사는 것이 그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인간이 찾는 게  아니라 자기 찾는 것보다 앞서 하나님께서 열어 주셔서 열어 준 것을 받고  보니까 그 가르침 받은 것이 정확 무오하고 또 받고 보니까 또 정확 무오하고,  이래서 자기가 주관으로 찾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고 피동으로 자꾸 자기에게  알려 주고 들려 줘서 알아지게 되고 보여지게 되고 걸어가게 되는 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독자의 걸음은 얼마 동안 걸을 때에는 둘이 있어 가지고 자기는  안 걸어갈라고 하고 또 걸어가게 하는 그 역사가 자기 속에 있고 안팎에 역사가  다른, 이 표리가 다른 그런 것을 느끼게 됩니다. 자기는 예수를 안 믿을라고  하는데 속에서 믿게 돼서 어짠지 안 믿을라 하는데 믿게 됐고 어짠지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안 될라고 했는데 그런 사람이 돼지고 이렇게 되는 그런 객관  역사를 알게 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이래서, 언제든지 걸어가야 할 일이지마는서도 오늘은 88년이라고 사람들이 제도  정한 이것은 일월성신 춘하추동을 하나님께서 정했기 때문에 실은 하나님이  정하신 계획에 경륜의 날자입니다.

이래서, 오늘 첫날 우리들이 어떤 깨우침을 받아 가지고 갈까 그래서 생각할 때에  히브리 12장에 있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 아침에 다 같이 나누어  은혜를 받아야 되겠다 하는 그 생각을 가져서 이 말씀을 증거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서, 열어 보여 주셔서 하나님의 이치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지식이요, 이 세상, 신구약 성경 외에 있는 모든  지식은 며칠 전에도 말한 거와같이 다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요, 그것은  이 눈으로 보이는 현상 세계라는 범위 고 내에서 했기 때문에 인생은 영원히  있는데 고 영원의 몇억만분지 일도 안 되는 이 짧은 현상 세계만 요것을 범위로  삼아 계산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다 인생 생활에는 완전히 전멸이 되고야 마는  그런 어둡고 편벽된 지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나 이 하나님의 지식은  그렇지 않고 영원합니다.

이래서 첫째로,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먼저 우리가 생각할 것은 땅 위의 모든 인생들이 어떻게 살고 갔나 하는 그것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속담에 남을 보아서 깨달아라’ 남을 보아 깨달아라 하는 그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얼굴에 있는 흉한 점은 보지 못하지마는서도 건너다 보면 다른  사람의 얼굴에 흉한 점은 잘 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이 원죄라 하는 것이  있어 가지고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라는 원죄가 있는 이것 때문에 가리워져  가지고서 모든 것을 자기 중심 자기 본위로 이렇게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있으면 저것은 용납하지 못하고 이거는 아주 저거는 말살시켜야 되고 전멸시켜야  된다 하는 그런 일이라도 제게 있을 때에는 사정을 하고 동정을 하고 위하고  관용하고 용납하는 것이 인생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보아서 자기를 살필라고 하면은 바로 살피기가 어려우니까 그리  말고 모든 사람을 보아서 네가 너를 살피라 하는 그말입니다. ‘허다한 간증자들이  있으니’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보면 일생 동안 돈 돈 돈 돈 하다가서  그저 밤낮을 모르고 예의나 체면이나 윤리나 도덕이나 인류나 이런 거는 하나도  생각지 안하고 돈만 생각하다 그것으로써 자기 일생을 망치고 마는 그런 사람이  있는 그런 사람을 네가 봐서 그것도 헛되다는 것을 깨달아라.

어떤 사람은 또 죽을 줄 모르고 자기뿐 아니라 자기의 가족들이 모아 놓은 모든  것도 다 톨톨 털어서 또 자기와 안면 있는 사람들도 톨톨 털어서 전부  거짓말하고 사람을 속여 가지고서 다 그것을 주 착취하고 몰수해 가지고 권세를  취할라고 날뛰다가서 그렇게 명대로 살지도 못하고 죽는 그런 사람들도 있으니  그런 사람도 봐라.

아마 이번에 이거 모두 선거할 때도 그 사람들이 돈이 없는 사람들인데 돈을  그렇게 수십억이 아니라 수백억씩 그렇게 모두 쓴 것은 ‘내가 정권되면 뭐 하마’  이런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 말 들으면 사실인지 몰라도 ○○○씨한테 가 가지고서 ‘내가 정권잡으면 너  ○○○대학을 세우도록 이제 부지를 줄 것이고, 또 학교 인가를 줄 것이고, 또  그때 그 대학에 대한 모든 것을 자원을 내가 다 해 주겠다. 내가 정권만 잡으면.

그러니까 네가 뭐 오십억이라든가 오억이라든가 얼마 달라. ’ 그래 저 한테 편지가 왔어요. 어떤 사람이 편지가 왔어. 왔는데 나는 모르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이래 가지고서 지금 이걸 출마를 하고서 이랬으니 이런  부정한 자본을 가지고서 이렇게 했다고서 편지가 와요. 그뭐 나는 그런 거  모르는데. 내가 그거 누군지 무슨 편지인지 몰라도 읽어보기는 읽어 봤어.

읽어보고 휴지통에 넣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모두 다 속이고 거짓말하고 이래 가지고 ‘아무래도 내가 이거 권세는  잡아야 되겠다’ 권세. 또 우리 교인들도 보면은, 그 사람이 하다가 고만 안면 있는  교인들에게 거짓말 참말 해 가지고 ‘요 자본만 좀 얻어 가지고 요것만 하면  성공하고 성공하면은 돈도 잘 갚고 나도 잘살 수 있다’ 이래 가지고서 전부  교인들 안면 있는 대로 친한 것만치 거짓말 참말 해 가지고서 돈을 끌어대서  사업은 실패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어떤 큰 기업체하는 사람이라도 딴데 돈을 빌려다가 하는  그 기업은 다 실패합니다. 왜 그러냐? 경험과 체험에서 실력을 얻어 가지고 해야  되는 것인데 경험과 체험을 얻어 가지고서 조그만한 것이 자꾸 커 나가도록  사업할라 하면은 애가 터지니까 경험 체험없이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  가지고서 모든 사람에게 거짓말 참말 해 가지고서 자본만 끌어 대 가지고 사업을  하니까 그 사람이, 의사노릇할 때에 그 의료 기구, 드는 칼, 섬벅섬벅 드는 그런 칼이나 집게나 그게  문제가 아니고 그걸 가지고 잘 사용해서 사람을 잘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  문제인데 기술을 배우지 안하고 아, 도구만 있으면 된다 하는 사람이니까 그  사람이 틀림없이 사람 달라들면 죽이기나 하지 구원해 낼 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와같이, 자본은 도구와 같소. 자기가 그 경험하고 체험한 데서 사업하는 실력은  그거는 이 사람이 의사 공부하는 거와 같애. 이러니까 돈만 있으면 뭐한다고서  이래 가지고서 달라드는 사람은 다 실패 한번 해. 천이면 천 만이면 만 다  실패합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망하고 나서 차차차차, 어짤 수 없는  가운데에서 조그매씩 자라와 가지고 되는 것이지, 이렇게, 우리는 허다한 간증자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은 어떻게 사나?  ‘저 사람은 되게 분망하다. 저 사람은 의식주도 생각지 안하고 자기의 위생도  생각지 안하고 마구 전심 전력 기울여 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그 사람만 있는 게  아니고 그 전에도 많이 있었다. 그러면 그렇게 산 사람의 그 결말이 어떠하냐?’  다 볼 때에는 인생은 다 속아서 살고 있다 하는 그말이 이제 마지막에는 한말에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다 속아서 살고 있다.

또, ‘인생은 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해 아래서 자기의  수고하는 것이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하는 이것이 인간살이를 다 마치고 난  다음에 돌아보고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아침에 첫째 생각할 거, 남을 보아서 깨달아라. 모든  사람의 생활을 보고, 너도 같은 인생이기 때문에. 네가 보니까 저 사람은 저  구멍에서 망하고 저 사람은 저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망하고 저 사람은 지금  독약을 마시고 망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래 가지고 다 죽고 망하는 것뿐이니 나는  지금 뭐하고 있느냐? 그 모든 사람에게서 네 자신이 어떠한 걸음을 걷고 있는지  한번 찾아서 스스로 반성하고 자각해라 하는 것을 여게 말씀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는 거는 등한히 하고서 뭘 제가 한다고 이렇게 날뛰다가  망하는 그런 걸 많이 봅니다. 그러기에 인생을 눈이 밝은 사람들은 인생을 쭉  보고는 그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이런데 그 지나간 모든 사람들에게  볼 때에 신앙 생활한 사람들은 죽을 때도 헛수고 했다고 후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더 못 해서 후회하지 후회한 사람이 하나도 없고 또 자신도 떠날 때에  기뻐하고 또 십 년이 지나가면 더 존경하고 백 년이 돼 가면 더 존경하고 점점  더 세상에서도 알아주게 됩니다.

병원에 의사들이, 눈이 어두운 사람은 또 몰라요. 눈이 어두운 사람은 모르는데  눈이 밝은 사람들 좀 신앙 있는 사람들은 의사들이 신앙으로 점점 들어갑니다.

왜? 많은 사람 죽는 걸 보거든.

죽는 걸 보면은 번민 고통 가운데 있다가도 마지막에 죽을 때에 그때에 한없는  기쁨을 가지고서 얼굴이 완전히 그만 당장 그 얼굴이 변해 버리고 얼굴이 광채가  나는 게 변해 버리고 기쁨을 가지고서 그 하늘의 소망을믿음 없는 것도하늘의  소망을 가지고서 ‘나는 아버지 집에 이렇츰 좋은 것을 못 봤다’ 그래 가지고서 그  가족들이나 자녀들이, 하,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 나를 부르지 말아라 지금. 내가 지금 이곳에 간다. 참  그곳에는 좋다고 이라면서 아주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안면에 광채가 있는 그런  사람들이고, 안 믿는 사람은 제가 무슨 큰소리를 하고 이종교 가진 그런 사람들도  마지막 죽을 때에는 다 얼굴이 변해지지 안하는 사람 없고 당황하지 안하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죽음을, 인간의 죽음을 보고서 예수 믿은 사람들 많아요. 남을 보아서, 남을  보아서 깨달아라. 너는 지금 너와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네 생활을 네가 너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나와같이 살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그 사람을  네가 자꾸 찾아봐라. 네 동무를 찾아봐라. 너와 같은 그 동류의 생활을 찾아보라.

그걸 찾아 가지고 그 사람의 생활을 냉정히 냉정스럽게 그 사람의 사는 생활이  과연 지혜의 생활인가 무지의 생활인가 그것을 네가 한번 평가해 봐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혜로 가질 것입니다.

둘째로는 이제 실질적으로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생이 양심의 자유나 마음의 자유나 몸의 자유나 모든 성공의  자유나 자기 전진의 자유나 향상의 자유, 사람들이 반드시 자기가 걸어갈 자기  진리의 정로가 있는 건데, 사람마다 자기의 정로가 있습니다. 그 정로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이 자기 정로인데 그 정로를 사람들이 걸어간 사람이 별로이  없습니다.

다 마음에 걸어가고 싶으나 걸어가지 못하고, 다시 말하면 자기 양심에는 ‘요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길을 못 갔고, 또 어떤 사람은 ‘나는 저것이  소원이다. 저 소원을 달성해야 되겠다. ’ 해도 그 달성하는 그 길을 가지 못하고,  인생들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자기의 정로도 가지 못했고 또 하나님께는 정로  아닐지라도 자기가 가고 싶은 길도 가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가고 싶은 길도 가지  못했고 자기 정로도 가지 못했습니다.

못하는 그 이유는 다 붙들려 매여 가지고 못 갔습니다. 붙들려 매여 가지고. 이  밧줄에 붙들려 매여서, 이 사람은 동으로 가고 싶은데 서에서 붙들어 매 놓으니까  암만 동으로 가고 싶어도 가지를 못합니다.

이래서, 인생아! 너를 붙들고 있는 밧줄들을 네가 끊어라. 밧줄들을 끊는 그런  용사가 되어져라. 너를 붙들고 있는 밧줄들을 끊어라. 이 밧줄을 끊어라  그말입니다.

「얽매이기 쉬운」 얽매인다 말은 밧줄에 붙들려 매였다 말이오. 밧줄에 붙들려  매인 이런 것을 끊어라. 또 네가 지금 자유로 훌훌 가고 싶은데 가지 못하고 네  등어리에 지금 큰 무거운 들돌이 하나 지였으니까 너는 지금 그것만 벗어 놓으면,  그것만 벗어 놓으면 훌훌 뛰어 달아날 터인데 그놈 네게 아무 필요 없는데 돌  그놈을 짊어지고서 비척거리고 네가 하루 종일 걸어봐야 몇 발자욱밖에는 못  걸어가는 그런 무거운 짐을 지고 네가 있기 때문에 짐 그놈에게 눌려서, 무거운  것, 무거운 것을 네가 짊어지고 있고 지금 밧줄에 매여 있으니까 밧줄 그놈을  한번 끊어봐라. 무거운 짐 그걸 한번 벗어봐라. 그러면은 네가 아주 날상바르게  그렇게 몸이 가볍고 활동하기가 좋고 그렇게 자유롭게 된다.

그런데, 그게 뭐이냐? 그것이 죄다. 너를 붙들어 놓은 밧줄로 되어 있는 그 죄를  벗어 버리고 네 등어리에 무거운, 아주 돌짐이 네 등어리에 지여 가지고 있으니  그게 곧 뭐이냐 하면 죄다. 그 죄라는 것은 여러 가지 죄가 있는데 죄가 있는  것은 자기 양심의 법에 거리끼는 죄, 양심의 법에 거리끼는 죄.

그러면, 요새 수사관들이 능한 수사법들이 있고 또 전자 수사법들이 있어서  이렇게 수사관들이 하지마는서도 수사관들이 찾아내지 못하는 것을 세월이  지나가면 찾아냅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찾아내는 게 아니라 저절로 발표가  됩니다. 그것을 보고서 모두 통계로 말하는 것이 이 모든 수사법을 공부해  가지고서 수사하는 것보다 더 능한 수사가 있다. 또 전자 수사법 있는 그거보다도  더 나은 것이 있다. 그거는 뭐이냐? 자연 수사법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자연  수사법이라.

죄지은 사람은 제 죄를 제가 알려 가지고서 나중에 가서는 그 사람이 붙들리게  된다. 그것은 뭐이냐 하면은 양심의 법에 어겨져 그렇습니다. 자기 양심이 자꾸  그걸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휘떡 벗어버리고 뭐 눈 지끈 감고 이런다 해도  어느 수준 이하의 죄는 자기가 범해 놓고 그까짓 거 그만 눈 지끈 감고 ‘에, 다  무시해 버려라. 잊어 버려라. ’ 하면 되지마는서도 자기 수준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죄를 범하고 나서는 그 사람이 평상 안심을 하지 못합니다.

누워 자면서도 항상 헛꿈이 그런 꿈이 꿔지고 깜짝깜짝 놀라고 자꾸 그래 됩니다.

그러면, 결국은 그 사람이 자기 발로 걸어서 그 죄에 붙들릴 수 있는 그런 자리  가 가지고 붙들립니다, 그 자리 가 가지고. 제 발로, 저게서 죄수를 잡을라고 하는  그물을 쳐놓고 있는데 그물로 기어 들어가 가지고서 잡힙니다. 다 제가 찾아 가서  잡혔지 찾아와서 잡은 그런 사람들이 없다 하는 그것은 세상 사람들은 눈이  어두워 모르기 때문에 그게 참 별 이치라 이래 가지고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 정  붙은 데로 따라가서 정을 따라간다 이렇게들 말하는 사람 있으나 고것이 양심의  법을 어겨 그렇습니다.

양심의 법을 어기니까 자꾸 양심에게 충격을 받으니까, 고통을 받으니까 견디지  못해서 결국은 양심의 법에 형을 받는 그것이 곧 붙들린 자리에 가게 된 그  필연한 형입니다.

또, 그 외에 이제 단체마다 법이 있습니다. 단체. 깡패들은 깡패법이 있어  가지고서 깡패법을 어겨 놓으면은 제가 피해서 도망을 가든지 숨어 돌아다니든지  이제 그리 안 하면 항상 겁을 먹고 있습니다. 이라면 가다가도 깜짝, 뭐이 오면  깜짝 놀라면서 ‘아, 이 아무것이 아니가? 여게도 또 여기도 우리 동무가 날 지금  잡을라고 하지 않나?’ 이래 가지고서 그 사람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지, 자유롭게  활발스런 활동을 하지 못하게 돼요.

또, 그보다 더 큰 이 나라의 법이 있는데 나라의 법에 또 이 법이 있으니 그 법에  걸리면 그 사람은 평상 힘을 못 써요, 법에 걸리니. 이 사람은 국법을 이거  범했다 저거 범했다 이래 쌓으면 뭐 하거나 말거나 그까짓 뭐라 하든지 눈 지끈  감고 한다고 해도 그 속에 그게 눌려 가지고서 자유하지 못합니다. 자유하지  못해요.

이번에도 보니까 뭣이 어떻고 뭣이 어떻고 뭐 어떤 사람이 그 사람, 공격이라  이라는데. 남의 인신 공격을 해 가면서 그렇게 하는 건 틀린다 모두 이래 쌓고  이라니까 무슨 소리 말해봤자 눈 지끈 감고 ‘하거나 말거나’ 이래 할 수 있지마는  그래도 그 사람에게 그 죄가 있으면 그만치 벌써 그 영향의 해독을 입습니다.

입어 가지고 그만치 자유가 없어. 용감이 없어. 어짠지 등어리 이거 무거운 놈이  하나 들려 가지고서 활동을 자유롭게 못 합니다. 또 이래 저래 붙들려서 못  합니다. 그런 거 느껴집니까? 그뭐 그까짓 거 하거나 말거나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아? 범이 까치  지저귄다고, 째작째작 지저귄다고 까짓 게 무슨 상관이 있어?’ 이래도,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죄가 있는 것만치 반드시 붙들리고 또 눌려지는 것입니다.

이런데, 그보다도 이제 큰 범위의, 알지 못하심이 없지 능치 못하심이 없지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분이 있지 그분의 법에 걸려 놓으면은 제가 알든지 못  알든지 그분이 그 법을 가지고 버튼을 누릅니다. 딱딱 요래 누르니까 모든 사람이  행복을 원하지마는서도 그 행복의 소망이 이루어지지 안하고 뜻밖에 일이 자꾸  나갑니다. 뜻밖에 원치 안한 일이 나.

원치 안하는 일들이 생겨지는 것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연단시키기 위해서 모든 장애물로 그런 것을 두는 거 있고 자기가 범죄한 죄로  인해서 두는 거 있고, 그러면 시련하기 위해, 연단하기 위해서 두는 장애는 그  장애를 통해서 아주 실력 있는 사람이 되어지고 이 자기 범죄로 인해서 있는  장애는 그 장애는 그 장애로 인해서 자기가 상하고 손해 보고 그것이 회복되지  안하고 닥친 것만치 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용감스러운 사람이라도 자기가 한 번 서리 맞고 두 번  서리 맞고 한 서너 번 서리 맞아 놓으면 잘난 사람이라도 고만 마치 독수리가  날개 부러진 거 모양으로 힘을 못 쓰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이래서, 둘째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이 죄는 국법의 죄도 있고 자기 양심에  거리끼는 죄도 있고 또 이 하나님의 법에 거리끼는 죄도 있고 자기 단체에  거리끼는 죄도 있고 하니 어짜든지 죄를 무조건 벗어 버리라.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

네가 국법에 범죄되는 것도 벗어 버려 버리라. 또 네 양심에 범죄되는 것도 벗어  버려 버리라. 네 어떤 단체에 범죄되는 것도 벗어 버려 버리라. 하나님의 법에  범죄되는 것도 벗어 버려 버리라. 이 벗는 법은 이 죄를 벗으면 이제 이걸, 죄는  이거 삐뚤어진 건데 죄를 벗으면 큰 낭파되겠다 하는데 죄를 벗어버리는 데에는  담력입니다. 알겠습니까? 죄를 벗어버리는 데는 담력이오.

아이들이 깡패법에 달린 것도 옆에서 아는 사람이 ‘야 이놈아 인명이 재천이다.

사람이 그래 죽는 줄 아나? 그까짓 놈이 참 널 죽이는 줄 아나? 겁내지 말고  아주 그만 완전히 깡패를 탁 배반해 버려라. 그만 배반하고 아예 그까짓 놈 다시  그놈하고 만나지도 안하고 그만 딱 배반해라. ’ 배반해 버리면 고만 괜찮은데  배반을 못 합니다. 배반을 못 해. 죄를 벗어버리는 데는 담력이 있어야 돼요.

또, 공산주의의 지하 운동하는 거, 와 가지고 찾아 와 가지고 돈 얼마 내라  하니까 돈 얼마 줬는데 주고 나면은 그 뒤에 가서 ‘너 돈 얼마 줬는데옆에 가  가지고너 얼마 돈 줬지?’ 다른 사람이 말하고 자꾸 소문을 낸다 말이오. 은밀히  돈을 거석해 놓고서 뒤에 가서 소문을 내. 소문을 내니까 이래 놓으니 자꾸  소문을 내 이래 가지고서 ‘너 지금 그걸 이 지금 남한에서 알고 있다. 알고  있으니까 네가 단단히 거석해라. ’ 남한에서 알고 있다고 자꾸 그 사람을  조심시켜서 남한 정부와는 자꾸 멀어지게 만들고 자꾸 공산주의와 자꾸 더  일치되도록 그래 만듭니다. 묘한 그 착취법이 있소.

그래서, 이 모든 세상 운동들 이런 운동 저런 운동 모든 운동하는 데에 자본  착취법이 공산주의의 착취법을 가지고서 하는 그게 있습니다. 그건 한번 주니 안  줄 수 없고 또 두 번 주니까 더 안 줄 수 없고, 이 착취법. 그 법이 다 있는 거라.

이래 가지고서 언제 그때 소문에 대학생 한 놈이 여학생 쉰 두 명을 범했다는  그거 신문에 나지 안했습니까? 났는데, 그게 내나 공산주의 착취법이라. 이래  놓으니까 어짤 수 없어서 또 거게서 놓여 나올라면은 대신 하나 넣어 주고  나오고 놔 주고 자꾸 이래 가지고서 그래 인제 나중에 조사하니까 그 법으로  했다 그거 내나 공산주의의 착취법입니다.

이러니까, 공산주의 운동에 한번 지하 운동에 돈 한번 대 줘 놓으면 저는 평상 안  대 주고는 못 견뎌. 안 대 주면 왜? 안 대 주면 죽을까 싶어 못 견뎌 대 줘요.

그것도 담대하면 돼. 죽일라면 죽이고 할라면 해라 하고서 그만 딱 끊어 버리면  그만이라.

이러고, 국법에 범한 그런 것도 자기가 그만 벗어 버려야 돼. 이제, 국법에 범한  그런 것은 벌써 그걸 부정한 것이 아니고 인간들이 다 공통성으로 협동해  가지고서 입법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 범위 내에서는 할 수 없어. 그러니까  그런 거는 아예 내가 형을 받아 버려요, 그만. 받으면 벗어져 버려. 그거 가지고  일생 동안 장 피해 돌아다닐 게 아니라 그만 형 받으면 그만이라. 형을 받아  버리고 고만 벗어 버려요.

그러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것은 주님에게 고할 뿐 아니라 그 죄를 회개하면은  ‘내가 이 죄 회개할라면은 당장 쫓겨날 것이고 이 죄 회개하는 날이면 가정이  절단날 거고 뭐 거석하겠다 해도 담대히 자기 마음에, 성경법에 거리끼면 딱  회개해 버리고, 회개해 딱 끊어 버리면 돼, 그만. 그만 죽을 요량하고 회개하고  어쨌든 담대해야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이 죄는 벗어버릴 수가 있지 담력이  없으면 벗어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회개 못 합니다.

회개라 하는 것은 담대해야 회개하지 담대하지 못하면 회개 못 해. ‘너 그렇게  하면은 내가 이렇고 이렇고 내가 너 소문을 내 가지고서 이럴 터이니까 이러니까  이 처녀가 꼼짝 못 하고 그놈 싫지마는 어짤 수 없어 이거 위신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거 못 해.

그래서, 언제 내가 이 밑에서, 나는 그때 주례 안 하고 누가 주례할라 했는지  우리 서부교회 와서 결혼식 하는데 뭐 이래 가지고서 걸판스럽게 부자  결혼식이라고 차렸습니다. 차렸는데 그래 그날 그말도 연락도 못 했는데  ‘신랑입장’ 하고 암만, 나중에 ‘신부입장’ 해도 신부가 와야지. 거게 `신부입장'  그만 해도 나중에 안 와서 연락을 하니까 신부가 어데 가고 없다 한 거라.

그날밤에 그만 납치를 당해버린 거라.

싫지마는서도 그놈이 자꾸 꾀우며 ‘내가 그만 용서해 줄께 결혼해라 그만’ 자꾸  이라다가서 나중에 그래 가지고 붙들려 가고 난 다음에도, 나중에 그라고 나니까  이제 부끄러워서 오지도 못하는 거라. 아예 그까짓 거 그리 되면은 확 펴 놔  버려요. ‘나는 이놈하고 이래서 내가 이 죄 지었다’ 자기가 죄 지었다 하고서 탁  펴 놔 버리고 그 다음에 새로 결혼하고 싶으면 하고 자유가 있을 건데 그만, 그래  가지고 그만 그거 얽매여 가지고 평생 꼼짝을 못 한 그런 거 많이 있어.

우리 여반사들 가운데 그런 것도 많이 있을란지 몰라. 그런 데 얽매일 필요가  없어.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 어짜든지 금년에는 어짜든지 내게  내가 자유하고 싶은데 자유하지 못하게 자유에 방해되는 거, 내가 뭣이든지  용감스럽게 할라 하는데 내 용감에 방해하는 이런 죄는 무슨 죄든지 내가 다  벗어 버리겠다.

주님에게 기도해서 벗어버릴 거는 기도해서 벗어버리고, 자기가 담대히 거절해서  벗어버릴 거는 거절해서 벗어버리고, 또 자기가 살림을 툴툴 털어 가지고서 이제  갚아서 벗을 거는 툴툴 벗어 갚아 버려 버리고, 그러면 새 날이 또 있어.

얼마든지 있는데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

이래서, 금년에는 어짜든지 이 첫날에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이 죄를 벗어 버리는 이 일을 둘째로서 힘을 써 가지고 우리라 한번 해  봅시다.

그라고 얼마든지, 사람은 지혜로 성공하지 지혜 없으면 성공 못 해요. 지혜로  성공해요. 지혜로 성공하는데 인간에게는, 불신자에게는 지혜가 하나 있고 믿는  신자에게는 지혜가 둘 있습니다.

불신자에게는 지혜가 하나 있는데 그 지혜가 뭐인지 아십니까? 말 한번 해 봐요.

불신자에게 지혜가 있는데 그 지혜가 뭐인지 한번 말을 해 봐요. 불신자의 지혜가  뭐입니까? ○○○ 집사님, 안 믿는 사람 지혜야 다 죽는 지혜지 뭐. 그런데  불신자들의 지혜가 뭣입니까? 불신자들에게도 지혜가 있어요. 그런데 신자들은  지혜가 둘이고 불신자들은 지혜가 하나라. 그 지혜가 뭐인지? 우리 ○ 집사님, 또  ○○○ 조사님, 반거짓말 지혜? ○○○집사, 배암의 지혜? 이거 참, ○○○  집사님, 마귀 지혜라? 양심의 지혜입니다, 양심의 지혜.

불신자가 하나만 가지고 있는 건 양심의 지혜요. 양심대로 하는 사람 고것이 안  맞는 거 같지마는 고것이 맞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불신자로서 양심으로 꼭  양심대로 하는 그 사람은 일생에 사는 생활이 인간으로서는, 하나님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씨 같은 그런 이들, 세상을 떴지마는서도. 그런 분들 일생 동안 사업하는  데에 그 지혜는 무슨 지혜냐? 그 사람의 양심의 지혜입니다. 그 사람이 양심대로  했어. 어찌됐던 간에 ‘보자, 요 사건은 이해가 어찌 되느냐? 요 사건은 내게 어찌  되며 남은 어찌 되나?’ 자기와 남도 생각지 안하고 이해도 생각지 안하고 요 일에  대해서는 양심상 요것을 판정하면 어떻게 되느냐? 양심의 지혜로 살았기 때문에  그분이 성공했습니다.

그뿐 아니고 이 세상에서 어떤 사업이라도 다른 사람한테 원수와 욕이 되지  안하고 성공한 사람들은 다 양심의 지혜를 가지고서 한 사람들이오. 그러면 그  사람들의 지혜는경주 최부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 양심의 지혜로  부자됐기 때문에 부가 떨어지지 안해요. 자꾸 계속해요. 양심 없는 사람의 성공은  속성 속망입니다. 속히 성공했다가 속히 망해 버리고 맙니다.

기독자는 지혜가 뭐입니까? 두 가지. 양심의 지혜는 자연의 지혜인데 인간  지혜요. 하나님의 이 영감의 지혜는 이거는 하나님의 지혜인데 영원한  지혜입니다. 이래서 신구약 성경 말씀을 지혜문이라. 지혜문이라 이렇게 잠언에  말해 놨습니다.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죄 벗으라는 요것을 둘째로  우리가 작정합시다. 이제 뭐이든지 내가 가책되는 거는 막 벗어 버리겠다. 내가  가책되는 것은 뭣이 어찌 되든지, 만일 가책되는 것을 자기가 어떤 손해 봐서 그  죄를 벗어 버릴 수 있으면 손해를 보고 벗어 버리고, 또 자기가 지금 부득이  그것은 자기 손해뿐 아니라 남의 손해도 되고 이러니까 그것은 벗어 버린다고  해서 그래 안 되고 하나님 앞에 자기가 스스로 회개를 해야 되는 건 또 스스로  회개해서 벗어 버리고, 어짜든지 금년에는 이래 버리고 저래 버리고 벗어야 될  그런 방편을 하나님이 다 가르쳐 줬기 때문에 방편대로 다 죄를 벗어 버려서  이제 금년에는 깨끗하게 벗어 버려 버리고 우리가 자유로운 걸음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남을 자꾸 속이는 사람들은 고만 속이는 그것만 없애  버리면 죄를 벗어 버리는 거라. 속이지 안하면 죽을 줄 알지만 안 속여야  자기에게 행복이 와요.

또, 이 사람은 아무것이 그 사람하고 서로 손을 잡아야 되는데 그게 죄가  된다면은 아야 그 친구 그만 딱 단절해 버리라 그말이오. 이 사람은 또 ‘내가  주일에 지키기 때문에 이 지금 사업을 유지하고 이 자본 얻을 수 있고 이 직장  가지고 있지 주일 꼭 지킬라면 쫓겨날 것인데’ 그 사람은 고만 쫓겨나도 사업에  손해가고 자본이 없어도 고만 주일을 단행하도록 주일을 꼭 지키도록 작정을 해  버려요. 그러면 그 죄 벗어 버리는 거라.

이제, 죄는 우리를 얽어매고 우리를 무겁게 해서 인간에게 있는 모든 활동성,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거 활동성 아니요? 인간에게 활동성을 마비시키고  인간에게 오만 모든 용감, 용감스러운 용감을 마비시키는, 인간에게 용감을  마비시키는 것이 뭐이냐 하면은 그것이 죄입니다. 인간의, 인생의 그 용감을  마비시켜서 용감을 딱 그만 숨쉬지 못하게 용감을 절단내는 것이 죄요, 또  이리저리 동서남북으로 자유로 활동하는 그 활동성을 다 절단내는 것이 그것이  죄라. 죄는 활동성과 용감성을 다 이것을 억제해 버리는 것이 죄기 때문에 이런  것을 완전히 벗어 버리라. 무겁고 얽매이는 그런 죄를 벗어 버리라 요것을  단정짓고 자유하는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그러면 둘째, 하나는 남보고 깨닫는 거, 둘째로는 죄를 벗어 버려서 내게 있는  활동성과 용감을 살려서 이 활동성과 용감 가지고 이제 모든 일에 성공적인 이런  걸음을 걸어가자.

세째로는,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자’ 우리 앞에 지금, 경주라면  서로 앞에 가겠다고 다투는 그것이, 경쟁, 경쟁, 경주. ‘인내로 경주하자’ 이  경주는 걸어갈라 하면, 달음질 할라고 하면은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험한  길도 있고 좁은 길도 있고 또 어떤 데는 장애물이 있어서 사다리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도 있고 또 그물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도 있고, 학교 운동회할 때  그런 거 있지 않소? 그런 데는 오기대로 하면 안 되니까 ‘인내로 경주하자’ 그거는 참고 견디는 거로.

속을 썩혀서 경주하자. 참고 견디는 것으로 경주하자 그말이오. 인제 세째로는  경주하는데, 경주를 하는데, 달음질을 치는데, 달음질을 치면서 성급하게 하지  말고 달음질을 치는 데는 여러 가지 애로가 있어도 그것을 다 이해하고 참고  견디면서 이제 달음질하자 하는 그말이오. 참고 견디면서 달음질하자.

달음질은 어떻게 달음질하라 말인가? 고다음에 해 놨습니다.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러면 예수를 향해서  달음질하자 그말이오. 예수를 향해서 달음질하는 이것을 하자. 그러면 세째로  달음질하는 것인데 달음질은 예수를 향해서 달음질하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향해서 달음질하자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 학생들이 나는 지금  공부하는 것은, 요번에 고등학교 입시에는 몇 과목 시험쳤어? 또 대학 입시는 몇  과목 시험쳤는고? 아홉 과목. 그러면 아홉 과목이니까 아홉 과목을 힘을 써야  되는구만. 아홉 과목을 힘을 써야 대학에 점수를 고루 받을 수 있지. 인제 그것도  뭐이냐 하면 그것도 경주라. 너 뭐하고 있노? 막 머리를 싸짜매고 달리고 있어.

그거는 뭐이냐 하면은 학으로 진학의 달음질하고 있는 거라.

있는 건데, 우리는 예수님을 향하여서 지금 달음질하는데 우리 달음질은 어떤  달음질이냐? 우리 달음질은 이 아홉 과목이 아니라 세 과목 달음질이라. 세 과목  달음질. 세 과목 달음질인데 세 과목 달음질이라니?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배피  공로의 이 대속을 벗지 안하고 어데서든지 대속을 입어서 합격할 수 있는, 그저  이 시험에도 합격 저 시험에도 합격, 예수님의 대속을 이 현실에서도 합격 저  현실에서도 합격하도록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안하고 입고 있는 이 공부를 해  가지고서 어데서든지 합격되도록 이 경주를 경주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현실에도 성신의 감화대로, 이 현실에서도 영감을 소멸하지 안하고  이 현실에도 영감대로 또 이 현실에서도 문서 계시인 진리대로. 그러면 이  진리대로 영감대로 예수님의 구속의 열 여섯 가지대로 이제 이라면은 그라면  우리가 지금 달음질할 이 우리가 달음질할 것은 몇 과목으로 달음질해야 됩니까,  손가락으로? 뻐뜩 한번 들어 봐요. 녜, 세 가지로 달음질해야 돼요.

이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에 말 들었는데 버마에 갈 때 그때 예수 믿는  사람이 많이 갔읍디다. 나는 그 ○ 장관만 간 줄 알았더니마는서도 그런데 그만  간 게 아니고 예수 믿는 사람 많이 갔어요. 많이 갔는데 다 빠져버렸어. 빠진  거는 안 죽었어. 버마에 말이지. 누구도 가고 누구도 가고 그 여럿이 가서, 나는  그 사람 하나만 간 줄 알았더니만 여럿이 갔는데 그거는 그만 이래 빠지고,  나중에 보니 이래 빠지고 저래 빠지고 어째 빠지고 이래 가지고 다 빠져 버렸어.

빠져 버려서 그때 안 당했다, 안 빠졌으면 그 사람도 거게 죽었다 이렇게 말해요.

이래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벗지 안하고 저래도 벗지 안하고 아무리 이거 지금  이렇게 해도 우상 섬기는 그런 죄를 범하지 안하고 이렇게 해도 주일을 범하지  안하고 이것이 우리의 경주입니다. 우리가 오늘 아침에 배웠는데 세째로  뭐입니까? 세째로는 경주.

어데를 향해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는 이이신 예수를 향해서, 바라보자 말은  예수를 향해서 달음질 치자 말이오. 그 달음질은 세 가지로 쳐야 돼요. 예수님의  그 보혈의 공로, 또 영감, 진리. 어데서든지 영감에 낙제 안 하고 진리에 낙제 안  하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 낙제하지 안하도록 이제 이 경주하는 이 일을  우리가 해야 되겠습니다.

해야 되는데, 그러면 세 가지만 하면 좋은데 하나만 더 합시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주님이  지신 십자가, 주님이 지신 십자가 이것을 넷째로 생각해야 됩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현재에 좋은 게 아니라 미래에 좋은 거, 현재만 보고 이  단박눈으로 사는 게 아니라, 뭐 공찬다 하더나? 당구가? 통 때리면 요놈이 가  가지고 또 조리 가 가지고서 조거를 탁 때리고, 그거 요놈을 한번 때려 가지고  고것이 저리 가 가지고 또 두번째 때려 가지고 고것이 저리 가 가지고 또 두번째  때려 가지고 두번째 때린 놈이 세번째 때리기를 고게까지를 계산해서 요  모때기를 때리면 조놈이 돌아 조리 때러 가지고서 나중에 한 군데 더 가겠다, 더  가겠다 이걸 하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라. 그거는 좀 사람의 머리를 기르는  거라.

이래서, 우리가 이거 달음질을 예수님을 푯대로 향하여서 달음질을 치는데 이렇게  하는 데에는 십자가를 기억해야 돼. 십자가는 어떤 건가? 십자가는 좋고 뒤가  나쁜 것입니까 나쁘고 뒤가 좋은 것입니까? 나쁘고 뒤가 좋은 것이라. 그만  간단해. 십자가는 나쁘고 뒤가 좋은 것이요.

예수님은 처음에는 죽었는데 그 다음이 좋거든 그러니까 이제 다른 사람에게, 그  악인의 그렇게 하는 거, 다른 사람이 현재에 따져 가지고서 콩팥으로 따지면은  제가 이길 것이라도 억울한 소리 애매한 소리 손해를 봐도 이 손해 봄으로  말미암아, 이 손해로 인하여서 그 뒤에 보응이 좋을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예수를 믿어야 된다 그말이요, 알겠습니까? ‘내가 이래 다른 사람은 지금 노는데 나는 지금 이래 자꾸 이 공부할라 하니까  이거 안 됐다. ’ 그러면 공부할라 하니까 준비가 괴롭고 나중에 결과로 평안하고  이러니까 준비에 고생스러운 사람은, 요번에 고등학교 시험이라, 대학 시험이라 이라는데 어떤 아이를 물어 보니까  자꾸 다니며, ‘왜 요새 안 하노?’ `인제 시험치니까 공부 안 합니다, 시험치니까. ’  ‘야야 시험치면 더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지 않느냐?' `시험치는데 뭐할라고 공부  열심히 합니까?’ ‘시험을 치니까 준비를 해야지' 돌아다니며 놀아. ‘왜?’ 이러니까  `다 이제 안 배우는데요 뭐' `안 배우니까 시험치니까 좀 열심히 해야지?’  ‘그거는 배웠는데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웃고 다니며 놀고 다니요. 시험친다  하니까 그때는 배우는 거 없으니까 놀고 다녀요. 그놈은 만점이라.

이제 그때사 시험치니까 밤잠을 안 자고 야단을 지기는 그거는 그 며칠 동안에도  바짝 늙습니다. 사람이 그래 가지고 평소에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은 그런데 그래  하는 사람은 바짝 늙어서 한 살 먹어 버려요 그만. 먹고도 또 합격은 안 돼요, 또.

죽을 지경이라.

이러니까, 뭣이 준비가, 준비가 고난스러우면 결과는 어때요? 학생들, 결과어때요?  준비가 괴로우면 결과는 좋아요. 준비가 평안하면 결과 어때요? 이 학생들,  준비할 때 평안하면 결과가 어때? 고통스러워. 그걸 알아야 돼.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십자가 질라 하니까 현재는  부끄럽지마는서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모든 피조물 위에 제일 높은 자리 갔어.

 십자가의 고난이 그렇게 모든 면에 거석하지마는서도, 고통스럽고 제일 안  됐지마는서도 그것을 졌기 때문에 그 다음에 결과는 그렇게 모든 피조물 중에  제일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인성이 앉게 됐다 그말이오.

여러분들 오늘 아침에 네 가지 배웠어. 남을 보아서 깨달으라. 또 둘째로는? 죄를  벗어 버리라. 또 세째로는? 주님을 향해서 달음질쳐라. 네째로는? 십자가의 방법  모르면 너는 실패한다. 십자가의 방법 모르면 너는 실패한다. 준비가  고통스러우면 결과가 좋고 또 준비가 호화롭고 좋으면은 그 결과는 고통스럽게  된다.

이러니까, 네가 무엇이든지 장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해서 수고하면은 미래가  현재가 될 때는 행복스럽지마는서도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만 보고 살면은  너는 망한다. 그 사람하고 너하고 사귈 때에 당장 이해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두고 뒤에 이 다음에 이로 말미암아 그 다음에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가  어찌 되느냐? 일단 미래에 그 사람과의 관계점, 장래의 관계점을 생각하면서  현재를 사는 사람은 언제든지 부들부들 하고서 그 사람은 성공해요. 내일도 생각  안 하고 당장 현재만 생각하고서 날뛰는 그자는 실패합니다.

이래서, 오늘 아침에 우리가 몇 가지 작정했소, 손가락으로? 네 가지. 녜, 네 가지.

요거 단단히 잊어버리지 말아요. 초하룻날, 초하룻날 새벽에 이랬으니까 단단히  기억하고 이거는 오늘만 아니라 금년 해가 지나가도록 열심히 하면은 나중에 가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수입이 있을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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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근심하지 말라/ 요한복음 14장 1절-11절/ 850630주전 선지자 2015.10.26
233 금맡은 자의 칭찬과 진노/ 마태복음 25장 14절-30절/ 870816주전 선지자 2015.10.26
232 금년에 기억할 것 5가지/ 히브리서 12장 1절-6절/ 880101금야 선지자 2015.10.26
» 금년에는 멸망의 원인인 죄를/ 히브리서 12장 1절-2절/ 880101금새 선지자 2015.10.26
230 긍휼이 제일/ 야고보서 2장 1절-13절/ 821114주전 선지자 2015.10.26
229 긍휼이 제일/ 빌립보서 3장 4절-14절/ 820731토새 선지자 2015.10.26
228 기능구원/ 베드로전서 3장 21절-22절/ 870703금새 선지자 2015.10.26
227 기능구원/ 고린도전서15장36절-42절/ 880522주후 선지자 2015.10.26
226 기능구원/ 빌립보서 3장 4절-16절/ 791227목새 선지자 2015.10.26
225 기능구원/ 마태복음 13장 24절-30절/ 870617수야 선지자 2015.10.26
224 기다림과 간구 두 방편/ 출애굽기 12장 15절-51절/ 871117화새 선지자 2015.10.26
223 기도/ 누가복음 18장 1절-8절/ 810225수새 선지자 2015.10.26
222 기도/ 창세기 5장 21절/ 790724화새 선지자 201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