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고난

 

1980. 4. 5. 토새

 

본문 : 빌립보서 3장 10절 -14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엊저녁에 설교는 아주 은혜 있게 했습니다. 잘 했습니다. 저도 은혜를 많이  받았고 그 도를 바로 깨달아서 잡으면 그만 됩니다.

 성경에 수많은 절수를 말했지마는 하나입니다. 하나를 바로 깨달으면 모든  성경이 이면으로 말해서 깨달은 그것을 더 강하게 만들고 저 면으로 말해서  강하게 만들어 모든 면으로 그 성경에서는 하나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로 한 그 도리로 구원 얻는 그 하나님이 가르치는 그것을  하나 알았다면 뭐 농사짓는 이치를 가지고 말하나 장사하는 이치를 가지고  말하나 또 정치하는 이치를 가지고 말하나 뭐로 가르치든지 가르치는 것은 그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만 깨달으면 그 다음에는 제가 이것을 들어서도 말할 수  있고 저것을 들어서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들어서든지 그것을 말해서 그 사람  그 정도에 따라서 그 사람이 잘 깨달을 수 있도록 그렇게 얼마든지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 진리를 깨달은 후에 그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쓰는 방편은 자기  역량이 있는 대로 열이고 스물이고 백이고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진리는 삐뚤어지면 안됩니다. 그것을 꼭 자기가 바로 알지 못하고 문서만 가지고  옮기는 그런 사람은 방편, 방편 그 하나만 틀려 버리면 그만 틀립니다.

방편은 얼마든지 바꾸어서 이렇게 저렇게 할 수 있어도 진리 그것은 바꿀 수  없는데 진리 그것을 잡지 못한 사람은 진리 그것을 잡지 못한 사람은 진리인지  방편인지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편인지 진리인지 이걸 분별  못하니까 그만 방편이 변동됨 같이 외나 진리 근본체 되는 그것도 변동시켜  버리니까 헛일이라 그것을 아는 사람은 방편이야 어떻게 써도 상관이 없습니다.

고 좀 발표하는 힘이 약해도 상관없고 또 고기 둔해도 상관없고 바로 깨달아  잡기만 잡았으면 그 사람은 뭐 언재가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좀 효력이 나기는  덜 나지마는 바른 것을 잡았으니까 구변이 없으면 더듬어 말해도 시간이 걸리지  기어코 고것을 알리게 되기 때문에 그 목회가 속성은 안 되도 서서히 그  뒷걸음치지 안하고 자꾸 성장되어 갑니다.

그러나 그것을 잡지 못한 사람은 헛일이라. 그것을 잡는다는 것이 고기 뭐냐?  자기를 부인해야 잡아집니다. 자기를 도에 바치면 무식해도 상관없습니다.

자기가 고 도를 도에게 바치지 안하고 그 도를 자기의 재물처럼 자기의 기술처럼  그 도를 이용을 하려고 달려드는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것 같으나 하나도  아는 게 없습니다. 많은 말을 하고 있지마는 저 죽이는 말을 하고 듣는 사람은  살아납니다. 다른 사람은 살려도 저는 살리지 못합니다. 그것이 제일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을 지금 운영하고 계시는 분이 성령님이신데 이분은 우리  사람보다 지혜가 무한합니다. 우리 사람의 지혜의 고 능란함에 속지 않습니다.

매수 당하지도 안하요. 아무리 간교하게 해 봤자 매수 안 당합니다. 설득도 안  당합니다. 이용도 안 당합니다. 속지도 안하요 변하지도 안 합니다. 요분이  계시기 때문에 참 좋습니다. 세상에 이분이 없으면 살맛이 없습니다.

 저 먼저 기쁨에 대해서 말할 때 기쁨은 이 하나님의 그 본질과 본성을 말하고  이분 실력가, 이분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살 소망이 있습니다. 요새도 우리  한국 나라에서 보니까 이제는 박대통령이 죽고 나니까 어쩌든지 제 각각 모두  저거가 왕이라고 모두 나서는데 내가 어제도 어떤 사람의 그 발표를 봤는데  사이비한 민족을 꾀우는 아주 어리석은 자 땀 흘려 가지고서 재물 모아 가지고  부자 될라 하는 그런 것은 '아이구, 힘든다' 하기 싫고 땀 흘리면서 태짐 져  가지고서 재물 모은다는 그건 듣기 싫고 어떤 자가 '뭐 그렇게 애쓸 것 뭐  있는가' 이거는 주토라고 하는 것 주로 같아 가지고서 붓 가지고 종이에 글자 몇  자만 써 가지고서 딱 서쪽에 '요 집에는 서쪽에 붙여야 될세' '저 집은 동쪽에  붙여야 될 것일세 요래만 한 장만 딱 붙여 놓으면 당장 복이 들어와 부자가 되는  것인데 뭐 하려고 지게 짊어지고 그러고 있어' 요것이 오행꾼 오행꾼이라고 하는  갑자을축 띠 뭐 개띠니 소띠니 하는 그기 전부 요 마귀가 내놓은 것입니다.

오행꾼 그 부를 써서 붙이면 당장 부자가 되고 이러니까 허영 허욕자들은 그 말  듣습니다. 또 부만 '부 그것도 효력이 있기야 있겠지마는 그것만 가지고 되는가  부모의 묘를 잘 써야 되지 봐 아무것이 봐 그 묘가 잘 써서 그 묘로 가서 그  사람들은 잘 됐어.'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아, 그 사람이 자손이 아들이 삼  형제가 났는데 참 잘 사는데 그래 그 분의 아버지가 어데 가 죽었는데 도무지 그  산에가 죽기는 죽었는데 어딘지 몰라서 그 산을 찾아 헤매고 그 자손들이 잘  되니까 찾아서 헤매는데 가서 보니까 호랑이 굴 앞에 가서 보니까 저거 아버지가  호식해 갔는데 그 머리가 썩고 그 위에 바가지 요 바가지 말이야 발찌기가  있는데 고게 빗물이 내려와 가지고서 거 송어 새끼가 세 마리가 살고 있는데 그  자리가 보니까 대 명산이라 그 해골이 거게 있는데 그 원체 명산 자리에 고 어째  뼈가지가 가 가지고 거 있으면서 있으니까 거게 고기 새끼가 세 마리가 사는데  그래서 그 삼 형제가 나 가지고 그렇다' 아주 그럴듯하게 그런 말합니다.

거짓말을 이래 가지고서 이러니까 '어쩌든지 묘만 잘 쓰면 되지 그까짓 거 뭐  소용 있는가.'  이러니까 이제 묘소로 되기 위해서 아버지의 그 묘가 참 좋겠는데 거기 아무도  자손들 모르게 투쟁만 하면 장사만 지내서 묘만 써 놓으면 당장 부자가 되는데  그러다가는 맞아죽을 테니 돼야지 그러나 우리 한번 해 보자 그래 가지고서 묘를  파서 해골을 요래 뭉쳐 가지고 짊어지고 이래 돌아다닙니다. 돌아다니다가  어디든지 제일 좋은데 가 가지고서 밤에 가 가지고서 남의 묘 꼭지에다 파고 그  속에다 묻습니다. 그런 일 얼마나 있는지

그러니까 또 이것을 방비해야 되겠다고 다니면서 혹 그런 거 있으면 이래 파  가지고 만일 그런 거 있으면 세비를 해 가지고서 뭐 그 재산을 다 들여  잡아죽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은 좋은 묘 자리를 자손이 망하면  팔아먹습니다. 팔아먹소. 좋은 묘 자리를 팔아먹는 그 묘 한 구에 아마 요새  돈으로 말하면 그때 비교를 하면은 아주 좋은 것은 한 1억 갈는지 모릅니다.

그래 주고서 사서 씁니다.

그 묘 쓴 사람이 망해 가지고서 자손이 망해 가지고서 그 묘를 팔아도 이 미혹에  빠져 가지고서 그 자리에서 부자 될 줄 알고 1억이라도 주고 그 묘를 사  가지고서 쓴다 이기요. 좀 머리 있는 사람은 묘를 쓰고 난 다음에 부자가 되나  부자가 되고 난 다음에 묘 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면서 좋다는 묘를 쓰나 부자  되고 난 다음에 좋은, 보기 좋은 묘 자리를 썼나 묘 자리를 좋은 묘 자리에 쓰고  난 다음에 부자가 됐나 그것만 통계 맞춰 보면 환하이 다 아는 긴데 그란다  그거요.

그거 맞춰 보면 되는데 그런 미혹을 받아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어쩌든지  거짓말쟁이가 막 나옵니다. 이러면 잘 산다 저러면 잘산다 어짜든지 허영쟁이  우리 국민 족이 허영이라 허영쟁이 허욕쟁이 이 미신쟁이 부 쓰면 된다 그런  민족성 그런 사람들이 인질이 그리 되어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말을 할 땐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앞뒤가 모순되고 도무지 될 수 없는 너 어쩌든지 자유는 자유하고 잘 살기는 잘  살고 호의 호식하고 일 많이 할 것 없고 일 안 해도 좋고 잘 먹어도 좋고  평안하게 살아도 좋고 시비할 것 없고 어쩌든지 화평하게 살아도 좋고 그런 안될  이상론을 말하면 '야, 이분에게 그 정권을 맡겨야 되겠다' 할 터이니까 망하는  것도 제가 망합니다.

꼭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믿는 데에도 허영쟁이들이 많아. 돈 없어도 사서하라  하는 것은 자기 내놓으라는 말인데 어쩌든지 자기는 하나님에게 내바쳐야 되고  하나님 것만 제가 차지할라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은혜는 이것은  자기의 언변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기능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선천  후천의 뭐 재능 아이쿠, 그런 것 가지고 되는 것 아니요 구변 가지고 되는 것  아니요 세상 것은 꾀 많은 자가 차지합니다.

우리나라에 국운이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 제일 꾀 많은 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꾀 많은 자가 국운이 있어서 그것이 꺾어졌소. 이제는 들고나옵니다. 이  어리석은 백성들은 자꾸 꾀우면 꾀우는 말은 잘 듣고 참말은 안 듣는 것처럼  하나님도 그렇게 언변 좋은 사람 또 지혜 좋은 사람 재주 있는 사람 배짱 좋은  사람 수단 좋은 사람 활동 좋은 사람 그 사람에게 매수를 당하는 하나님이라면  그만 살맛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다 모두다 그렇게 매수 다 당해 안 당하는  인간이 없어.

이러니까 인간은 믿고 못 살겠어. '아, 그 사람은 신앙의 사람이라 위인이라'  나중에 보면 헛일이요. 나는 미국의 킹 목사라고 성자라고 세계가 말하는데 난  그 사람 싫습니다. 그 사람 도적질 하나라고 난 그래 봅니다. 왜 흑인인데 그  사람이 백인은 벌써 청교도부터 대대로 오랫동안 애써 가지고 지금 자손이 복  받는데 저거는 흉측한 죄만 짓다가 와 가지고서 같이 복을 받게 한다고 백인종이  말하면 나는 그 사람 성자로 인정하겠는데 흑인종이 말했기 때문에 난 성자가  아니라 도적이라고 난 봐요.

 애쓴 그 값이 자손에게 연 대어 나가는 것 아닙니까? 복을 주어서 자손의  천대까지 가도 잘못한 값은 3, 4대까지 가기로 했으니까 흑인종에서 난  사람이라면 '우리, 나는 흑인종이다 흑인종이 어떻게 백인종과 동등대우를  바라노 안 된다 우리 공적이 없다 우리는 이 대우도 너무 지당하다 이러니까  우리도 대우를 생각할게 아니라 대우를 받을 만한 그 자원을 마련하도록  노력하자' 이래야 성자지

백인종에서는 '야, 우리가 이래된 것도 우리가 똑 같은 사람인데 우리를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 주셔서 긍휼을 많이 받아서 우리가 그런 사람도 된 그런  선조 들이 됐지 우리가 어데 뭐 그 사람 종자가 다르나 뭣이 다르나 뭣이 다르나  하나님의 은혜가 많아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요기서 고 자세 부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그 나라 모퉁이로 옮겨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베푼 것을  생각해서 우리도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되지 않느냐 그러니까 우리가  그들에게 동등 대우하자' 이러면 성자입니다.

불한당, 수고하지 안하고 따먹으려 하는 그 자. 내 요새 말 들었는데 어떤  사람이 가 가지고 집회 인도를 하는데 보니까 그 집회하는데 여기서 요새 그  설교한 그 원고 똑 녹음한 거 모양으로 녹음이 간 모양이야 꼭 그대로 변함 없이  하더라고 그 좋은데 그 사람이 시험에 드는 것은 그 뭐 소개한다고 자기에게 뭐  손해 같게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이렇게 말해서 이렇다 한다 해  가지고서 그 자기 구원하는 것이지 손해 가는 것 아닌데 그것을 자기가 깨달아  알았다고 요렇게까지 하는 고것이 불한당입니다. 그 전하는 것은 좋습니다. 또  그 자기가 깨달았다고 자기 것이라고 그런 소리만 안 해도 됩니다. 그러니까 고  말에 그만 뭐냐 하면은 그 속에 있는 기 나왔는데 복음을 제가 팔아먹는 저  위해서 하는 그런 사람이라. 이러니까 그 결말이 좋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자본으로 내어놓아야 되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거기에 매수를 안 당합니다.

 이러니까 주님 나 위해서 모든 것 했으니까 값으로 사셨고 나는 팔렸으니까  나를 주님께 다 바쳐서 이제는 주님을 내 것 만들었으면 나는 주님 것이 되어야  되지 않겠소. 합리적 예배니라 산 제사를 드리라 이것이 합리적 예배니라 그  이치 합리적 예배인데 예배가 아니고 합법예배 입니다. 합법적 예배요. 법에  맞는 이치라 그 말이요. 이런데 제가 세상 것을 저 위해서 쓰던 그 원죄 자기  중심의 악인데 예수까지 자기가 이용해 먹으려고 진리까지 영감까지 하나님의  역사까지 자기가 이용하니까 이것은 악이 무슨 악입니까? 아주 고등 악입니다.

이거 고등 악이요 안됩니다. 저만 속습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소. 속지 않는 그분이 있으니까 살맛이 있고 모든 것을 바로  아니까 그분 앞에서 안심하는 죄나 회개하고 바로 할 일이지 뭐 뭐 뭐 선대를  하니 하후하박 하니 누구는 후대하고 누구는 박대하니 그런 염려가 다  없어지니까 평안하다 그거요. 그만 그러면 쉬운데 이것을 배워 가지고서 이제  곰이 겨울을 지내려면 이놈이 꿀밤 좀 따먹고 살이 좀 찌면 겨울에 가서 삼동에  아무것도 안 먹고 살 수 있나 없나 그것을 한번 시험해 보기 위해서 높은데 툭  떨어져서 툭 퉁겨도 아프지 안 하면 '이젠 됐다' 하고서 그만 입 닦고 저 굴로  들어갑니다.

그것 모양으로 '보자, 내가 이렇게 이것을 팔아먹으니까 좀 인기가 있나 없나  팔아먹어 보자' 팔아 먹어보니까 어북 알아주고 괜찮다 말이지 슬금슬금 자꾸  자기를 소개해서 그때사 어떻게 내가 어떻고 자꾸 자기를 소개해 가지고서  이렇게 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집중이 되어지고 이제 자기를 인정을 하고 이래서  지금은 이제 들고 나가면 되겠다 하면 그만 이제는 자기가 자기 왕국을  차립니다. 어리석음입니다. 어데서 자기가 나타나지 못할 것 뭐 있겠소.

 일본에 세이쪼 노이에라는 것이 있는데 그 도는 제일 첫 계명이 길바닥에  나서는 거라. 있는 재산 다 털어 버리고 그 도에 나서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빈손 들고 길바닥에 나서 가지고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하는 거라 할 수 있는  일. 그것 하니까 처음에는 뭐 누가 돈주고는 안 할라 하고 남의 집에 공으로  변소 소제라도 해 주려고 해도 이놈 도둑놈인가 싶어 안 하려고 한다 이기야.

그러면서 무인지경에 가서 길 쓸어. 자기 할 수 있는 일 그 일 하는데 그래도  거기서 할 수 있으니까 사회가 인정하고 자기가 깨끗해지고 이러니까 자꾸  이래가지고 거서 뭐 오만 거 다 될 수 있고 어데 까지 갈 수 있어.

 자기가 예를 들어서 서울을 갈려고 하면 어데서 출발해서 서울 다 갈 수  있습니다. 거기서 갈 수가 있어. 거기라고 서울 못 갑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어디서 서울 못 가겠소. 미국서 우리 서울을 못 오겠소 소련서 우리 서울을 못  오겠소 전라도서 못 가겠소 충청도서 못 가겠소 경상도서 못 가겠소 강원도서 못  가겠소 강원도서 못 가겠소 어데 서든지 다 갈 수 있어. 어디서서도 그를 향하여  가는 길만 가면 되는 기라.

 자기가 어떤 노선에 있든지 어떤 진영에 있든지 어데 있든지 그거 바꿀 필요가  없어. 거기서 자기가 믿음만 지키고 하나님의 시키시는 대로하면은 세계에 일등  되는 유명한 사람도 하나님이 시키려면 시킬 것이고 세계 부흥사도 시키려면  시킬 수 있을 것이고 뭐 자기가 욕망 하는 대로 어떤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고  위인이 되고 싶고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끄는 사람이 되고 싶은 그대로 세계에  제일 되는 그 인물도 될 수가 있다 그거요. 어디서든 안되겠습니까?  자, 예를 들어서 이단입니다. 문선명이의 패 속에 든 이단이라 합시다.

그보다도 더 이단 불교 이단이라 합시다. 불교에 들어갔습니다. 불교에  들어갔는데 그 사람이 불교에 들어가 가지고서 자기가 불교인으로 지금 중인데  기독교 성경을 들고 성경 말씀대로 하나 둘 차곡차곡 행하면 불교에 거기서도  싫어해 가지고서 이 사람이 자꾸 그러니까 불교에서 쫓겨날 것이요. 또 쫓겨나면  쫓겨난 거기서 또 밀고 또 신앙 생활합니다.

 거기서 또 하나님의 뜻대로 뜻을 찾아서 순종하요. 그러면 쫓아내서 쫓아내는  것은 쫓아내서 밀어내는 그기 지금 영광의 자리에 가게 하는 것이고, 요셉이를  저거 형제들이 밉다고 저 헷 족속에게 팔아 버렸는데 그 판 그게 뭐냐하면 그게  축복이라.

 이러기에 미워하는 것도 축복 배척 당하는 것도 축복 환영 당하는 것도 축복  믿음 하나 가지면 어디든지 가고 오고 해 가지고 다 되는데 하필 교파를 옮길게  어디 있으며 뭐 진영 옮길게 어디 있으며 거기 진리가 없으면 탈이지  어리석습니다. 그저 자기를 내 놔야 됩니다.

 엊저녁 때 내가 ○○ 목사님한테다 설교 부탁을 하니까 늦게사 전화가 오기를  '아이구, 모두 오는 교인들이 많은 분들이 오는데 하나님의 종들이 오는데 이  부활 주일이 뭐 다음 주일이 부활 주일이라던가 부활 주일인데 부활에 대한  설교를 지금 기다릴 긴데 이거 안되겠습니다.' 뭐 부활 주일이 뭐 부활 주일  사람들이 그리 말하는데 '하나님 주시는 대로하라' 그라고 시켰습니다.

 시켰는데 엊저녁 설교 그런 설교가 다 부활이라. 요새 이 말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날 이 말씀했습니까? 빌립보 3장 녜, 요새 늘 계속하고  있는데 1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하여" 여기 알려하여 하는 요것은 지식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알려하여"  하는 요것은 자기가 얻기 위하여 자기도 가지기 위하여 자기도 요것을 자기 것  되게 하기 위하여 하는 말입니다.

 "알려하여" 그러면 자기도 그자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한 자기도 그것 되기 위하여 그 말입니다. 알기 위하여 하는 걸 고것  되기 위하여 하는 말이지요. 알기 위하여 알려하여 요런 단어를 잘못 해석해  놓으면 전체가 다 헛일되고 만다 이기요. 알려하여 얻기 위하여 책임지기 위하여  고 사람되기 위하여 고것 되기 위하여 자기도 거기 참여하기 위하여 알려하여 그  고난에 참여함을 참여함이라 고난에 참여했다. 참여했다 이 말은 많은 것 중에  요것을 선택했다 그 말입니다.

 많은 것이 있지마는 이것도 저것도 자기는 선택하지 안하고 모든 것은 중에  인생이 걸어가는 모든 존재들이 살아가는 자기 마음대로 요게 좋다 저게 좋다  욕심을 내서 취하는 것이 많이 있는데 천 가지 만 가지 취할 것이 많아서  사람들은 다 이것 취하는 사람은 이것 취하고 저것 취하는 사람은 저것 취하고  만물도 다 그리 취하고 있는데 그 요 분들은 요 분들은 요것을 취했다 말이요.

 "알려하여" 이 고난에 참여함을 고난 이것을 취했다 그 말입니다. 왜 하필  평안도 있고 기쁨도 있고 즐거움도 있고 영광도 있고 존귀도 있고 권세도 있고  행락도 있고 오만 것 다 있는데 하필 고난 요것을 선택함을 알려하여 나도  그것을 선택하고 나도 고것을 취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요것을 선택한  그대로 나도 요것을 선택하여 알려하여 나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 위하여  그 말입니다. 고난에 참여함을 고난을 선택함을 알려하여 선택한 고것을 자기도  같이 선택하고 선택해 가지고서 요것을 완성한 것처럼 자기도 완성하기를 지금  목적하고 있다.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러면 그  죽으심을 흉내내서  "죽으심을 본 받아" 본 받는다는 말은 본 받는다 말은 요것은 주님의 이 고난  취하시고 성공하신 이것이 원형이요, 원형이요 자기는 그와 같이 거기 속한  모형이라 이거는 그 종자요 이것은 종자요 자기는 그 종자에게 속해서 자라 가는  줄기라 그는 원형이요 나는 모형이라 그는 첫 열매요 나는 그 다음 열매라  고것은 가리켜 요 본받는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자기는 관련 없이 그 모방하면 나도 그 한번 본받아 보자 나도 그 같이  한번 해 보자 그 말이 아닙니다. 요것 본 받는다 요것은 요런 것도 이런 말로  가지고는 안 된다 그거요. 본 받는다는 것은 그분이 원형이요 나는 모형이라  그분은 본체요 실체요 그분은 실체요 나는 그의 그림자라 그로 인하여 내가 있는  자이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있는 자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나 도리 것을 내가 다  되려 한다 그분은 원형이요 나는 모형이 돼 있기 때문에 원형 그와 같이 꼭 같은  모형 되려고 애를 쓴다. 그는 종자요 나는 그 종자가 지금 움터 가지고서 뻗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내 근원이 그라 그는 내 근원이라 그로 인하여서 나는  자라가고 커져 갈 자라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습니까? 본 받아 이 말을 못  알아들으면 헛일입니다. 말을 못 알아들으면 헛일이라.

이렇게 사람들이 듣기 쉽게 이렇게 수수하게 그만 말하면 우선은 들을 때는 좋고  다 깨달아지고 좋은 것 같지마는 실지로 살려고 하면은 그것이 아닙니다. 실지로  살려고 하면 그것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 속에 얼마나 복잡한 것이 있습니다.

복잡한 그것을 알아야 돼. 말만 듣고 된다 하니까 아, 좋아 기분이 좋았지만  막상 하려고 해 보니까 이제는 모를 일이 많다 이거요. 밥도 밥은 솥에 쌀 씻고  물 붓고 밑에 불 때면 밥된다 아, 쉽다 밥하는 도리는 그러면 됩니다. 되는데  밥을 하려고 밥을 실지로 하려고 보니까 모를 기 많다 그 말이요. 물을 얼마나  부어야 되는지 불을 얼마나 때야 되는지 어느 정도 때느냐 말이야 될는지  어찌해야 될는지 거기 지금 거기서 말하지 않는 그 내용이 많이 있어 그게  문제라 말이요 그걸 모른다 이기요.

 이러니까 해 본 사람은 '아이구, 이 면을 몰라 답답한데' 했는데 그 면을  말하면 잘 듣습니다. 요 "알려하여" 또 "본 받아" 요것을 요 단어를 잘 알아야  됩니다. 언제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죽고 부활하는 요 두 가지 죽어 부활하고 죽어  부활하고 죽고 부활하는 요 죽음을 자기도 차지해서 요 죽는 자 되고 또 부활  요것도 차지해서 부활하는 자 되어 예수님이 원형적 죽음이요 자기는 거게 따라  모형적 죽음이요 예수님은 원형적 부활이요 자기는 모형적 부활이라 예수님의  죽으심은 종자적 죽으심요 자기는 종자가 움터 나와 가지고서 종자에서 움이  나오는 움의 죽음이라. 예수님의 부활은 종자의 부활인데 자기는 부활에 움터  나온 그 종자에서 나온 우의 부활이라 요것을 하기 위해서 한다.

 그러면 그가 원형의 본 받으라 했는데 뭘 본받아? 죽고 부활하는 그것을  본받으려고 한다 그러면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  그러면 그리스도의 그 부활 그리스도의 그 부활 부활은 죽음이 있어야 부활이  되지 그리스도 그리스도와 그 부활에 그리스도와 그 부활에 부활은 죽음이  전제되어 있고 죽어야 부활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 권능 그 처음 죽는 권능 부활하는 권능  죽는 권능 부활하는 권능 죽는 권능 이것이 한 말로 말하면 고난인데 죽는  권능은 부활하는 권능 이 것이 한 말로 말하면 고난인데 어려움 당하는 것인데  참여함을 알려하여 이것을 선택했다.

 신인양성일위이신 그 예수님은 이 죽음을 선택했고 부활을 선택했는데 죽음은  선택하고 부활을 선택했는데 그 죽음과 부활 그것이 최고의 권능이라 죽음과  부활 그것이 최고의 권능이라. 그 권능 그 죽은 그 권능 부활한 그 권능 그  말입니다. 이것을 선택한 이것을 이것은 선택한 이것은 알려하여 나도 이것을  취해서 요것 가져서 요 자 되기 위하여 어쩌든지 세상에 있은 동안에 죽는 요  성공하고 부활하는 요 성공하기 위해서 전부를 기울여 노력한다.

 그런데 이것을 얻었다 함도 아니요 이루었다 함도 아니다 지금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이 완성하신 그 완성 같은 완성을 하려고 달려가고 있다 완성을  하는데 예수님같이 꼭 완성한다는 그 잘못하면 또 사욕으로 말하기 때문에  사욕적으로 예수님 같이되어야겠다 나도 예수님같이 돼야 되겠다 그게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부르셔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작정을 해서 어데  까지의 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하나님이 원하시는 고대로의 자의 분량이  고대로의 자의 분량이 되기 위해서 지금 달음질을 한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그 죽고 산 그 권능 그리스도가 죽고 산 그 권능을  그리스도가 죽다니 그리스도는 영원 전 하나님의 성호 하나님이신 데 하나님이  뭣을 죽어 하나님이 죽을 수 있습니까? 참여했다 그러면 신성이 인성이 고난에  동참했고 인성이 신성의 고난에 동참해 신성도 인성도 이 고난 이것을 선택했다  모든 것 중에 고난을 고난 이것을 선택해 가지고서 이것을 차지하고 이것을  달성하려고 애를 썼다 무슨 고난인데? 죽는 고난 사는 고난이라 죽는 고난 사는  고난이 무슨 고난인데 그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이라. 그리스도의 고난이라니  제사장 노릇 선지자 노릇 왕 노릇 한 그 능력이라 제사장 능력 선지자 능력 왕  능력이라 제사장 능력 선지자 능력 왕 능력이라니 그 무슨 능력인데 그것이  인간말로 말하면 고난 능력이라 고난에 참여함을 이 고난은 인간 말의  고난입니다. 인간이 보기에 고난입니다. 인간이 보기에 고난이지 당신이  보기에는 이것이 고난이 아닙니다.

그러면 요 제사장 능력 선지자 능력 왕 능력인데 그 능력이 무슨 능력인데  제사장 선지자 왕의 이 능력은 죽는 능력이요 사는 능력이다 죽음으로 이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감당할 수가 있고 부활하므로 감당할 수가 있다.

 그러면 죽음은 뭐인데 죽음은 이 제사장 선지자 왕직에 다 바친 것이 죽음이다.

다 바친 것이 죽음이다 이렇게 기록만 해 가지고 가서 여러분들이 많이 생각하고  기도 많이 하면 이제 알아질 것입니다. 다 해석할 시간 없고,  이 죽으심은 제사장직 선지자직 왕직 이 세가지 직책에 다 투자한 것이  죽음이다. 이 투자하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이루어질 있다. 제사장직은 이것  투자로만 하지 그래 안 하면 못한다. 그러면 부활은 뭔가? 부활은 제사장 선지자  왕직에 자기 전부를 다 투자한 그 투자한 투자를 일시 투자가 아니고 이 투자를  계속하는 것이 부활이다. 계속하는 것이 부활이다.

 그러면 죽으심은 인간 말로 말하면 그게 고난인데 죽으심은 일시 고난이요  부활은 영원고난이라 죽으심은 고난의 시작이요 부활은 고난의 계속이라.

죽으심은 일시 고난이요 부활은 영원 고난이라 죽으심은 단번 고난이요 부활은  전제로 하는 말인데 죽은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인데,  그러면 예수님의 죽으심이라고 하지 뭐 때문에 위에 그리스도를 말해 놓고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 그 부활이라 하는 그것은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요게  좀 알기 어려워요. 그리스도는 신성인데,  어제 아침에 저 아래 아침에 어떤 ○○○ 선생이지? 그 그리스도에 대해서 좀  의문점이 나서 지금 물으려고 내가 합니다. 하는 그 면을 아마 물으려고 한 것인  줄로 내가 짐작했는데 고것인지 모릅니다. 그것을 물었으면 좋은 것을  물었습니다. 자기가 배워 놓아 있는 교리와 신조에 모순되며 요것은 모순되다  이걸 알아야지 이래도 된다 저래도 된다 그거는 신조와 교리가 서 있지 않는  사람이라 그 말이요.

 이런 도를 가르쳐서 도리를 가르치면 그만 따라 오다가 답답하니까 그만  복잡하니까 따라 오기 싫어서 그만 잠이 오고 하품이 나고 그만 짜증이 납니다.

그 사람은 도인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도리를 깨달아 실행하는 사람이 아닌  사람은 빛좋은 개살구로 말해야 잘 듣습니다. 그러기에 설교 듣는 것도 실행하는  사람과 실행하지 아니하고 말만 구경하는 사람과는 그거는 다릅니다. 다 저 된  대로 되는 것입니다.

여기는 그 부활의 권능이란 말은 그 죽고 부활한 권능이라 말입니다. 부활의  권능이라 말은 부활의 권능 말이 아니고 죽음을 전제로 두고서 하는 말입니다.

안 죽으면 부활이 됩니까? 부활이란 말은 죽음을 먼저 말하고 있다 그 말이요.

그 죽음과 그 부활의 권능은 그 죽은 권능 그 부활 권능 그 말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과 부활은 예수님의 인성이 죽고 살았지 이렇게 신성은 사람들이  인정하기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는 분인데 죽으셨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죽으실 수 없는 분이니까 죽으실 수 없는 분이 죽으셨으니까 죽으실 수  없는 분이니 죽지는 안 했는데 꼭 죽음에 그것은 다 당하시고 다 하셨다 그  말입니다. 죽으셨는데 죽음을 자취해서 했는데 죽지 못하실 분 죽지 아니하는  분이기 때문에 죽지는 안 하지만 서도 죽음의 고난은 다 짊어졌다 이기요.

그러니까 여기는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이라 말은 그리스도의 그 죽으심과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이라 하는 요것을 더 강조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서 한 것은 우리가  모르지마는 예수님의 죽으심은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신인양성일위가 되시고 난  다음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라고 하면은 사람들은 신성의 죽음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신성의 죽음을 느끼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그 죽으심과 부활의 권능이라 그  그리스도를 위에 말하고 예수님이라고 말하지 안하고 그리스도라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죽고 부활한 이 죽음이 뭐 때문에 죽었으며 부활이 뭐 때문에  부활했느냐 죽음이 그리스도 때문에 죽었고 그리스도 때문에 부활했다 그리스도  때문에 죽고 그리스도 때문에 부활하다니 그러면 그리스도는 뭔데 그리스도는  제사장직이요 선지직이요 왕직이라 제사장직을 하려고 하니까 죽을 수밖에 없고  제사장직을 하려고 하니까 이제 부활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필연적인 사실이다  선지직을 하려고 하다 보니까 이제 죽을 수밖에 없고 부활할 수밖에 없다 왕직을  하려고 하다 보니까 죽을 수밖에 없고 부활할 수밖에 없다.

 제사장은 뭐인데 제사장은 택한 자요 그 다음에 있는 모든 피조물 전부인데  제사장의 하는 일이 뭔고 제사장의 하는 일이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상대하는 데에 하나님과 결합이 되는 데에 하나님의 그 모든 것을  피조물이 입어야 되는데 하나님의 모든 것을 피조물이 가져오는 데에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것을 받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 되게 하는 직책이요 하나님의 그 충만을 피조물이 받을 수 있는  자 되게 하는 요것이 제사장직입니다. 요기 제사장직이요.

이래서 요한 계시 1장 5절에 보면 엊저녁에 설교는 껍데기 설교입니다. 알맹이는  또 다르다 이거요. 그것만 들으니까 안 돼. 그거는 다 들을 수 있는데 쉽지마는  실지로 시공 설계가 아니라. 그거는 허가 설계라 시공 설계가 아니라 그거야.

허가 설계가 있고 시공하려면 시공 설계가 또 있어야 돼 그것으로 다 하면 안  돼. 거기서 시공 설계가 나와야 돼. 지금은 시공 설계를 하고 있는 기야 내가  잘했다하는 것은 허가 설계를 흠 없이 했다 그 말이요.

 그 허가 설계 속에 또 알아야 될 것이 또 있다 말이요. 세밀하게 이러니까 그런  소리는 들으면 시원하고 좋지마는 그것을 사람들이 실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거기서 또 답답한 기 나온다 말이요. 아, 그런데 어데 서든지 순종하면 되는데  순종하려고 하면은 거기서 어떤 애로가 있으며 어떤 지장이 있느냐 이제 그것을  말하면 그만 듣기 싫다 그거야 그만 머리가 아파. 그러기에 껍데기 신자 있고  알맹이 신자 있습니다.

 그리스도직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직이기 때문에 안 죽을 수 없고 그리스도직이기  때문에 안 살아 날 수 없다는 요것을 알아야 됩니다. 안 죽을 수 없어.

그리스도직이 뭐인데 제사장직 선지자직 왕직인데 그 모든 피조물과 하나님  사이에 제사장직을 행하려하고 선지직을 행하려하고 왕직을 행하려고 하니까  요것이 안 죽을 수 없어 요 직책은 죽는 것으로 감당하고 부활하는 것으로만  감당할 수 있지 딴것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안 죽을 수 없고  부활 안 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죽으심은 고난의 시발이요 부활은 그 고난의 계속이라 그 고난이라  말은 우리말로서 고난이지 그 고난은 이 제사장직이 사는 그 살이라 이  제사장직이 권위 있게 제사장으로 사는 것이 죽는 것이요 부활이라 그  제사장직이기 때문에 그 죽는 그것이 제사장이 사는 것이라 제사장직이 사는  것이요 제사장직의 권능이라.

 이래서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사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뭐라  했습니까?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나라는 제사장 나라입니다. 나라는 제사장 나라요 그 나라는 제사장 나라입니다.

○○○ 조사님이 설교한 것을 내가 잘했다고 이랬는데 그 천국을 5가지를  말했는데 그 나라에는 참 사람들이 사는 나라인데 이제 그러니까 참 듣기 좋고  좋지마는 그것만 가지고는 안 돼. 참 사람이 어떤 게 참 사람이냐 하는 것이  문제란 말이요 참 사람이라면 그 나라 백성인데 그 나라 백성이면 뭐냐 그  말이요. 그 나라 백성이라면 다 제사장이라 그거야 제사장이 뭐냐 그 또 알아야  된다 그거야.

이러니까 고만 허가 설계 보니까 머리가 안 아프고 이랬는데 시공 설계를 말하면  그만 머리가 아픕니다. 그래 내가 며칠 전에도 말하기는 그 말했어. 집회하는 데  뭐 발악을 하고 미워서 그만 뭐 발동하고 이랬는데 불끈 잡고 놓지 마라 3,  4시간 지나고 나니까 박 인순 선생님 그 어머니가 서너 시간 지나고 나니까 그만  그때는 그만 엥 고만 터져 나오는데 아이고 이러면서 터져 나와 가지고 그  다음부터는 그만 은혜를 받고 나니까 이제 마귀가 점령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이  한 껍데기 점령하고 점령하면 뺏긴 것은 할 수 없이 그 다음에는 마귀란 놈이  세게 단속을 합니다. 심심하게 단속을 하요 안 뺏기려고 단속을 하요.

 이라는데 고것이 뺏기질 수 있는 하나님의 도가 들어가야 고기 뺏겨지지 그래  안 하면 안 들어가는데 도가 들어가면 그 다음에 고걸 주관하고 있던 그 사람을  움직여 가지고서 거 한층 더 점령해 들어오니까 마구 발악을 합니다. 발악을 해  안 뺏기려고 이놈이 안 나가려고 그 사람을 오그려 트리기도 하고 그 사람의  심신을 막 움직여 가지고서 마구 발동을 하니까 대적을 합니다.

 그러기에 자기에게 와서 있는 도가 이미 하나님이 점령해 가지고서 있는데 중생  된 영이 점령해 가지고 있는 자기 심신 고 범위 고것은 점령을 당해 가지고  있는데 이 마귀란 놈이 가끔 다가서 침략하려고 쑥 들어갔다가 쫓겨 나갔다가 쑥  들어왔다가 쫓겨 나갔다가 이렇게 하는데 이제 자기가 중생 된 영과 하나님이  점령한 그 지역을 집회가 가지고서 점령된 그 지역을 마귀가 와 가지고 침범하는  이것을 새로 청결을 하고 단속을 하고 이래 가지고서 점령 못하도록 단속을 하고  이걸 하면은 그때는 기쁩니다. 집회 가서 은혜 받는다는 것이고 이미 자기 영이  점령하고 성령이 점령한 그 부분이 청소가 되어지고 요것이 새로워지고 깨끗해질  때에는 좋습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 돼.

 그러나 거기서 이제까지 점령하지 못한 한 지역을 하나 점령하려고 할 때는  그때는 듣기가 싫습니다. 그만 듣기가 싫고 머리가 아프고 그만 까다롭다 불만  불평이 나지고 잔소리 같이 보여지고 가사가 보기 싫고 그만 이래 돼집니다.

그래 가지고 그만 그 사람이 그만 가고 싶소 참여하고 싶지 않고 고만 그러고 난  다음에는 좁니다 그만 조요 자든지 발악을 하든지 발동을 하든지 이렇게 번민이  되어지는 거기에 자기가 이제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한 도를 진리를 깨닫습니다.

 고걸 점령할 만한 고 진리를 하나 깨닫게 되어지면 깨닫지 못하도록 마구 역사  하지만 깨닫게 되어지면 자기에게 차차차차 좀 눈이 열려서 깨닫게 되어지면  고기서 새로운 각오가 나오고 새로운 결심이 나오고 새로운 인생관이 나오고  새로운 천국관이 나오고 새로운 그리스도관이 나오고 이제까지 몰랐던 새 것이  나옵니다. 새것이 나옵니다. 새 것이 나오게 되면은 그때는 이제 그 사람이  고만치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변화가 되어지고 마귀는 쫓겨났습니다. 다  쫓겨났습니까? 그 다음에는 여게 까지는 내가 뺏겼지만 요 다음에는 내가 안  뺏길란다 이래 가지고서 마귀가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신앙이라는 것은 깨달음이 점점 자라가면 그 사람의 신앙이  자라 가는 것이요 또 그 사람의 취미가 점점 자라가면 취미가 자꾸 고급이 돼  갑니다. 자라지면 벌써 마귀의 점령지가 자꾸 하나님이 점령하고 중생 된 영이  점령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의 신앙이 자라느냐 못 자라느냐 하는 것은 깨달음이 자란  고것으로 저도 잘 알 수가 있고 깨달음이 자란 고것을 제일 알 수 있고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의 그 모든 것을 깨달으니까 모든 만물관 희로애락 관이나 모든  만물관이 달라져요. 만물관이 달라지고 고라고 난 다음에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인간이 볼 수 있는 그 행동이라 하는 것은 극히 소부분입니다. 인간의 이 눈으로  볼 수 있는 행동이라 하는 것은 극히 소부분이요 그 속에 많은 부분은 감추어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것이 달라진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고 인도 보면 고 사람의 깨달음이 자라나 안 자라가나 언제든지  고 사람은 그 깨달음 범위 이상은 없습니다. 고것만 가지고 항상 신앙  생활합니다. 고것만 가지고 신앙 생활하니까 외모를 보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는 신앙 생활 잘한다고 하는 데 그 사람은 아무 성장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에게 필요한 설교 나오면 좁니다. 필요한 설교가 나오면 졸아  새로 점령을 당하게 되면 졸아. 이러니까 그 사람은 항상 인생관도 고것만  세상관도 고것만 신앙관도 고것만 죄관도 그것만 의관도 고것만 그 범위 내에서  항상 고것만 하고 있습니다. 하기 쉽지 그러니까 그 범위에서 하니까 보편적인  신앙 생활에선 아무런 흠점을 찾지 못하지 그러나 그 사람이 보면 신앙 생활  그것만하는 기 아니라 그 말이요. 자기는 자꾸 신앙 생활하니까 그 세상 생활 할  수록이 자라서 이제까지 하던 신앙생활은 껍데기 고 그 다음에 또 점령해야 되고  점령하고 자꾸 점령해 들어가야 된다 그거요. 이런데 어떤 사람은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내가 그 전에 여 ○○○ 그 조사님 왔습니까? 아 왔지요. ○○○ 조사님 설교가  지금 그 교회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고 있는데 좀 더 들어가야 됩니다. 아, 그저  그 외부에 일반적으로 이라니까 교인들이 좋아하지마는 신앙이 자라지는 안  합니다. 그 속에 자꾸 좀 들어가야 됩니다. 좀 파고 들어가는 것이 있어야 돼요.

아주 윤곽적으로는 그 괜찮은데 거기서 자꾸 들어가서 고 도에 칭의를 강론하는  그런 것을 해야 되지 그저 일반적인 설교 윤곽적인 설교 그게 있는데 그 속에  언제든지 새로 뚫고 들어가는 알맹이 그게 있어야 되지 그것만 가지고서 하면은  일반 교인들은 좋아하지마는 그 교인들의 신앙 생활이 일반 신앙 생활이 돼지고  그 속에 파고 들어가는 신앙 생활이 되지를 안 합니다.

 요 시간 없는데 고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 제사장직은 모든 피조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지 안하고 합당치 못한 하나님을 상대할 때에 모든  모자라는 것 모자라는 고것을 자기가 책임지고 모자라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 피조물들에게 줄려고 하는데 하나님은 줄 수 없고  피조물은 받을 수 없는 고 문제를 해결해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은 주실  수 있고 피조물은 그것을 받을 수 있고 피조물은 하나님에게 합당해서 하나님은  그것을 받을 수 있고 또 그 피조물은 하나님을 상대할 수 있는 요 문제를 해결  짓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이래서 제사장직을 신정 국가에서 간단하게 나타났는데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 요것을 가지고서 피로 드렸고 그 다음에는 자기 소유물인 전제 소제 요제  그 모든 제사장들 자기 소유로 지냈고 다른 거 요거는 피로 지냈습니다. 그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냈는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친히 제물 됐습니다. 당신이  속죄 제물이 됐고 속건 제물이 됐고 또 번제물이 됐고 화목 제물이 됐습니다.

고것이 제사장직을 행한 것인데 당신이 그 제물 됐다 말이요.

 그게 뭐냐 고것이 신정 국가인 하나님의 백성의 요 모 저 모로써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그것을 합당하게 하기 위해서 자기 희생이라 그 말이요. 자기가  희생하는 것으로만 고것을 할 수 있었어 또 그렇게 제사 드려 가지고서 하나님의  진노가 해결되고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하나님의 모든 은혜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오도록 끌어내는 요걸 하기 위해서 짐승을 드려서 제사  지내는 이제 당신이 신정 국가에는 모형적으로 이렇게 했는데 예표적으로 요래  했는데 예수님이 오셔 가지고서 친히 요 일을 하시기 위해 당신이 화목 제물이  됐고 번제물이 됐고 속죄물이 됐고 속건 제물이 됐고 당신이 친히 제물 되어  가지고서 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우리와에 사이에 모든 것을 해결 지었다  말이요.

 요것을 해결 짓는 데는 요거 죽는 거 밖에는 없고 부활하는 거 밖에는  없습니다. 선지직은 하나님의 모든 무한하신 그 지혜 지식에 속한 그 모든 것을  인간이 받을 수 없는 문제를 해결 짓고 하나님은 줄 수 없는 문제를 해결 짓고  그 사이에 중보 돼 가지고서 이 하나님의 것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만들고  하나님은 주실 수 있는 그 하나님이 되어지도록 요 가운데 조화를 부리는 요  희생 제물을 요것이 이제 요 직책을 감당하기 때문에 자기가 수고함으로만  되어지고 자기가 애를 씀으로만 돼지고 수고함으로만 돼지고 노력함으로만  돼지고 자기가 이렇게 하므로 돼지는데 요 노력하는 이것을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드려야 되기 때문에 결국은 죽음이 됐다 그거야.

 요래 가지고서 요 직책을 죽음으로만 감당하지 다른 것으로는 감당할 수 없고  요 부활로만 감당하지 다른 걸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제 부활은 사람들이  모두 보기에 좋다는 그게 아니라 그 말이요. 신인양성일위가 요것을 담당해서  착수해 가지고서 이미 밀려 있는 고것을 다 단번에 해결 짓는 요것으로서 제물이  되어졌는데 요 일을 계속해서 다시 말하면 여기 어떤 아이를 낳아서 지금 빨가이  지금 죽으려고 빠득빠득 하는 요것을 어떤 그 자기에게는 고것을 먹일 만한 그  우유나 뭐나 그런 것을 식품이나 의복이 자기에게는 없으니까 이것을 있는  이에게 가지고 와 가지고 타 가지고 요것을 먹이기 시작했고 입히기 시작했는데  입히기 시작하고 먹이기 시작한 것이 죽으심입니다. 먹이기 시작하고 입히기  시작한 게 죽으심이요.

 그 다음에 부활하심은 요것을 계속해서 먹여서 무한히 기르는 것이 큰 사람되게  장성해서 제가 독립생활 할 만치 기르는 그것이 끝이지마는 이것은 하나님을  향해서 무한을 향해서 한발씩 걸어가는 것이 부활이요 라는 그 말이요. 거  부활의 고난입니다. 이것만 알면 되어집니다.

 왕은 뭐이냐 면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모든 그 능력을 이 피조물이 그  능력으로만 살 수 있는데 그 능력을 받을 자가 되지 못하고 받을 자격이 없고  하나님은 또 이대로는 그에게 능력을 주면 죽어버릴 거라 말이요. 하나님의  능력이 가면은 그것을 받아서 감당할 기 아니라 죽는다 기야 이러니까 하나님은  주실 수 없지 이거는 받을 수 없지 줄 수 없지 줄 수 없는 받을 수 없는 양쪽에  이 사이를 권능적으로 이 사이를 자기가 해결 짓는데는 자기가 수고를 해야 되고  말도 해야 되고 일도 해야 되고 노력도 해야 되는데 이것을 하는데는 다 드렸다  그 말이야  그것이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 그 고난이라 말은 인간 말로  고난입니다. 그 제사장은 자기 일하는 것이요 농사짓는 사람이 농사짓는 것이  농사를 짓되 심으고 가꾸고 하면은 기쁩니까? 오뉴월에 논에 모 심어 놓은 것이  기쁩디까 싫습디까? 기쁘지요 그 기쁨이란 말이요. 그 기쁨.

 이러기 때문에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충만한 이 기쁨은 세상이 모르는  기쁨입니다. 제사장의 기쁨이요 죽는 기쁨이란 그 말이요. 희생의 기쁨이라  말이요. 죽어집니까? 죽는 기쁨을 가지되 죽어지지 않는 것이 그것이 옛  생명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 능력을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서 이렇게 안 되는  이것을 자기가 힘써 가지고 이 일이 되어지도록 노력해 가지고 이 일이  되어지도록 그러면 노력을 해야 안됩니다. 노력하다가 다 여게 남김없이  부스러기 없이 이 노력에 다 바친 것이 십자가의 죽으심이요 부활은 다 바친  그것 계속이 부활입니다. 바쳤던 것 도로 찾는 거 아니요 이걸 알아야 돼.

부활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 말이요. 다 바치는 것을 이제 다 바쳤다가 이제는  한번 도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다 바친 그것이 계속하는 그것이 부활이란 그  말이요. 이것이 중보자 그리스도 예수 신인양성일위 이 직책이 이 직책을  참여함을 알려하여 이분들은 다른 것을 취하지 안하고 이것을 취했다 이 가치를  깨달았다 말이요. 깨닫고 보니까 세상의 모든 것이 필요 있던 것이 필요 없고  이것이나 필요하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세상 모든 살이 에서 보이는 이런 걸 차지하지 안하고 이 보이는 지위  권세 모든 데에서도 지난 밤 설교에 모든 데 승리 그 승리가 뭐냐 그 말이요. 그  승리가 뭐냐 말이요 그 승리가 모든 세상살이 가운데에서 자기의 제사장 실력  선지자실력 왕 실력 이 실력이 뭐인데 자기가 세상에서 제사장 노릇하고  자기에게 당면한 현실을 닥쳐 질 때 요 현실에서 자기가 제사장직책을 하니까  선지직 왕 직책을 하니까 자기에게 닥친 현실이 다 살아납니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서 연습도 하고 실력도 갖추고 실지로 살리기도 한 이것이 무궁세계의  자기의 나라란 그 말이요. 이러니까 순종하면 고기 된다 그 말이요.

 승리한다는 것은 뭐냐 승리는 무슨 승리입니까? 제사장 성공이라 그 말이요.

선지자 성공이라 그 말이요. 왕 성공이라 그 말이요. 중보 성공이라 말입니다.

승리는 중보 성공이라 그 말이요. 중보 성공 가서 연구하면 알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배울 것이 없어, 자기만 주께 다 바치면 그만 저절로 알아져요. 내가 저  지난번에 ○ 조사님 뭐인가 알아서 고것이 무식해도 바꿔진 것 같애. 엊저녁에  내가 설교하는 것을 보니까 고게 바꿔진 것 같애. 고걸 말하는 거야. 바꿔진 것  같애 바꿔졌으면 성공이야. 암만 말을 해도 말은 잘하는데 바꿔진 것이  바꾸어졌나 안 바꾸어졌나 그게 의문되는 데는 문제입니다. 바꿔지지 못했으면  그것은 언제 탄로가 나도 탄로 납니다. 바꿔지지 안 했으면 헛일이요. 바꾸는  것이 문제요. 그렇지 않소 지금도 하늘에 자기 다 주면 주님 것 다 자기 것인데  주님이 내 것 됐는데 나만 당신에게 드리면 지금 사용권이 있소. 안 드리면  사용권이 없어. 바꿔놨는데 하나님은 내 것 되어 가지고 있는데 내 것 되어 가  가지고 있는 그걸 내가 사용하는 데에는 나를 당신에게 드리는 것 만치 내가  사용할 수가 있어.

 당신만 사용하면 그 분이 전지 전능자인데 뭐 거석할 게 뭐 있는 가요. 그분만  내 것 되면 그 분이 내 안에 역사하면 다 됐는데 바꾸는 게 문제입니다. 주인을  바꿔야 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고  자기가 자기를 주권하고 자주자 왕 그것 바꾸지 안 하면 망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왕이 되고 나는 그에게 이제 점령되어서 소속해야지 내 높은 속에 제일  주인공이 앉는 자기에는 내가 앉을 것이 아니라 이제 비워서 당신이 내 속의  주인공으로 왕으로 앉아야지 이 자는 그의 나라되고 그의 성전 되고 그의 집이  되고 요것이 해결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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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461 그리스도의 심판/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820726월새 선지자 2015.10.25
460 그리스도의 사랑/ 아가서 1장 1절-17절 / 1953. 11. 14. 토새 선지자 2015.10.25
459 그리스도의 대속/ 고린도후서 5장 14절-17절/ 1975. 12. 14 제50과 선지자 2015.10.25
458 그리스도의 나라/ 에베소서 1장 3절-14절/ 831005수야 선지자 2015.10.25
457 그리스도의 구속/ 누가복음 19장 10절/ 811221월새 선지자 2015.10.25
456 그리스도의 구속/ 누가복음 19장 10절/ 811223수야 선지자 2015.10.25
455 그리스도의 구속/ 누가복음 19장 10절/ 811224목새 선지자 2015.10.25
» 그리스도의 고난/ 빌립보서 3장 10절-14절/ 800405토새 선지자 2015.10.25
453 그리스도의 고난/ 베드로전서 5장 1절-11절/ 820605토새 선지자 2015.10.25
452 그리스도의 것/ 고린도전서 3장 21절-23절/ 830902금새 선지자 2015.10.25
451 그리스도은 만유시요/ 골로새서 3장 8절-17절/ 880501주후 선지자 2015.10.25
450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골로새서 3장 1절-11절/ 830911주전 선지자 2015.10.25
449 그리스도에 대하여/ 빌립보서 3장 8절-12절/ 800331월새 선지자 2015.10.25
448 그리스도에 대하여/ 빌립보서 3장 10절-11절/ 800401화새 선지자 2015.10.25
447 그리스도안에 우리 생명/ 골로새서 3장 1절-6절/ 820408목새 선지자 2015.10.25
446 그리스도안에 우리 생명/ 골로새서 3장 1절-4절/ 820411주새 선지자 2015.10.25
445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골로새서 3장 1절-5절/ 841019금새 선지자 2015.10.25
444 그리스도를 모시는 방법/ 에베소서 3장 14절-21절/ 870215주전 선지자 2015.10.25
443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야/ 골로새서 3장 1절-6절/ 870213금야 선지자 2015.10.25
442 그리스도로 사는 것/ 골로새서 2장 20절-3장 11절/ 830911주후 선지자 201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