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 탄생


선지자선교회 1983년 12월 29일 목새

 

본문 : 눅 2 :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하늘나라는 성부가 독생자를 세상에 대속주로 보내신 일에 영광을 돌리고, 또  성자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되어 땅 위에 오신  이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성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성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성령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늘나라는  이런 일에 영광을 돌리는 하늘나라입니다.

 땅 위에서는 그런 것을 영광스럽게 이렇게 가치있게 평가하지 아니하고 강자가  되어서 약자를 정복하고, 강자가 약자를 정복하는, 그것을 이용하는 정반대의 이  일을 높이 평가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 세상입니다. 하늘나라와 정반대입니다.

하늘나라는 강자가 자기의 모든 면의 강한 걸 가지고 약한 자를 위해서 희생하여  그 약한 자를 자기 이상은 못 하지마는 자기같이 강자가 되게 하려는, 강자가  약자를 위해서 희생하는 그것을 하늘나라에서는 가치로 쳐 주는 하늘나라요,  세상은 강자가 약자를 정복해서 이용하는 그것을 가치로 쳐 주는 것이, 그것이  세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반대입니다.

 역사에 유명한 사람들, 시대에 유명한 사람들, 모두 다 존대를 받는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고 하니 자기에게 있는 실력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정복시켜서 자기화시키고 자기를 위해서 이용해서 자기의 발판이나 사다리를  삼은 그런 사람들을 존귀히 대우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자들이 서로 높아지기를 위해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주님이 주님의 나라로 임하실 때에 두 아들을 좌의정 우의정으로 세워  달라고 그렇게 할 때에 제자들이 심히 분노해서 시비했습니다. 그 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나한테 구하는 것이 무엇을 구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가  말하고 있다, 네가 내게 대해서, 내 나라에 대해서 높아지기를 원하는 그것을  구하기는 구하는데, 높아지기를 원하는 것을 구하나 그 구하는 것은 세상적으로  구하는 것이지 하늘나라적으로 구하는 것은 아니다. 하늘나라는 세상 나라와  정반대이다. 세상은 강자가 약자를 정복해서 약자가 강자를 섬기도록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이 세상이지마는 하늘나라는 깅자가 약자를 정복하지 안하고,  강자가 앝자를 북돋워서, 강자가 약자를 섬기는 그것이 내 나라이다.

 그러기 때문에, 참 높아지고자 하면은 자기는 종이 되어야 할 것이고, 또 큰  자가 되고자 하면은 자기는 작은 자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큰 자가 된다, 세상  나라는 네가 요구하는 대로 그렇지마는 하늘 나라는 그렇지 않다, 내가 온 것은  - 없는 가운데에서 자촌하신 하나님인데 - 내가 세상을 정복하러 온 것 아니다.

세상을 이용할라고 온 것 아니다. 세상으로 나를 섬기게 할라고 온 것 아니다.

내가 세상을 섬겨 종이 되데 내 소유와 몸과 생명까지 다 섬기는 이 일에 다  바쳐 다 섬기는 것으로 바쳐 끝날려고 그래 내가 세상에 왔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늘나라와 세상 나라가 그 법칙이 다르고, 가치로 알아 주는 것이  다르고, 또 존귀로 대우하는 것이 다른 세상입니다. 세상에 모든 이종교 어떤  종교들이 다 있지마는 어떤 사람은 총칼을 가지고서 총칼의 그 강함을 가지고 그  무력적으로 약한 자를 정복했고, 어떤 자는 지식이 강하 자는 그 지식으로  약자를 정복했고, 어떤 자는 강한 언변으로 약자를 정복했고 해서 모든 이종교는  다 그런 것들입니다. 파고 들어가면 이종교는 다 그런 것입니다.

 지금 이래 말하는 것을 잘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여러분들이 자꾸 듣고 눈감고 오래 동안 명상하며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해도 눈먼 아지 원앙소리  듣고 따라가듯이 그렇게 가기는 가지마는 어째 가는 줄 그 진리를 독똑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귀가 와 가지고서 혼란스럽게 만들며 그 혼란을  입어야 되고, 거기에 피동되어서 시험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합니다. 우리도 하루 종일 쾌감을 받는 것이 어떤 것으로 쾌감을  받느냐? 내 강함이 약함을 정복해서 내 강함이 더 강해지고 커지고 높아 지면  쾌감을 받습니다. 그러나 내가 비워서 다른 사람에게 채워 주고, 내가 종질하고  섬겨 내가 녹아지는 소금같이 녹아지는 그것으로서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국제 시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소. 그사람이 오늘은 뛰  하고 있으면은 자기의 그 세력으로 정복하지 못하 불쾌감입니다. 또 그 사람이  기쁨을 가졌다면은 자기의 강함을 가지고서 약자를 정복한 것, 자기 위주 중심의  그 욕망이 달성된 그것으로서 기뻐합니다. 시장뿐만 아니라 모든 관공서에도 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업부에도 다 그렇습니다. 온 세상은 그것으로 가득 찬 것이  세상이요, 우리 자신들이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대하면, 마치 위에 있는 것이 붙들리지 안 하면  땅에 떨어지는 것은 저절로 떨어집니다. 떨어지는 건 저절로 떨어지고 땅에서  들려 올라가는 것은 그것을 들 만한 힘이 있어야 올라가지 그리 안하면 물리지  않습니다. 그거 모양으로 우리는, 자기 위주 자기 중심이라는 이 행동은 할라고  애를 쓰지 안해도 저절로 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결심하고 기도하고, 나는 지금 오늘 사람을 대할 때에 나부터  생각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나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겠다, 다른 사람을 유익되게 하는 사람으로 살겠다, 다른 사람을 참  구원하는 사람으로 살겠다, 다른 사람을 섬기고 높이고 위하는 사람으로 살겠다,  왜? 사람위하는 것이 뭐인데? 하나님이 그것을 제일 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살겠다 그렇게 기도하고, 눈물흘려 결심하고 해도  사람을 접촉하다 보면은 그 기도한 것이 자기 머리에 계속해서 나는 이렇게  살겠다, 나는 과거에는 이렇게 살지 못하고 정반대로 세상 법칙대로 나는  살았다, 내 힘있는 대로 해서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내가 커지고 내가 높아지고  내가 부강해지고 유리해지고 하는, 유명해지고 하는 이것으로서 나는 살았기  때문에 이것은 세상 법칙이요, 다 사망의 법칙이기 때문에 생명의 법칙으로 한번  살겠다 하고서 결심하고 그렇게 나섰는데 자기도 모르게 사람을 접촉하든지 일을  접촉하든지 물건을 접촉하든지 접촉해서 한 시간 살고 보면은 지금 내가 뭘하고  살고 있고, 뭘로 살고 있고, 무슨 법칙으로 살고 있고 있느냐 하는 것을 따지면  자기도 모르게 벌써 세상 법칙으로 살아져 버렸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어떻게  한다고 해도 모든 것을 자기 위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는 알지도 못하고 하는 가운데 보면은, 내것, 나를 중심한  내게 속한 것. 내 사람. 내일. 내 물건. 내 명예. 내 지위, 내 가족. 내 친구.

내 부하. 내 편 전부 내가 중심이 돼 가지고 움직였지. 내라는 것이 나 아닌  것을 위해서 종 노릇하고 희생하고 높여 섬기기 위해서 하는 그런 일이 자기에게  아주 하기가 힘이 들고, 할라고 애를 써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제 다시 세상  법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자기가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것을 알지도 못하고, 할라고 생각하지도 아니 하고,  그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 생활은 어떻게 하면 정복하며, 어떻게 하면 모든  것을 이용하며, 모든 것을 밟고 디뎌 올라설까, 이것이 밤낮 연구요 또 그것이  욕망입니다. 그것이 배우는 기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이 기뻐하는 기쁨은 다 모조리 유항불 구렁텅이에 들어갈  기쁨이요, 세상이 누리는 쾌감은 다 지옥에 가야 될 쾌감들입니다. 또 세상이,  마음에 이제 유익됐다 성공했다 하는, 유익이라 성공이라 하는 그 모든 종류는  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유황불 구렁텅이로 모조리 쓸어 들어가야 될 그런  것들입니다. 예수님이 땅 위에 오신 거와 다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하늘나라, 지극히 높으다는 말은  하늘나라를 말하는데 하늘나라에서는 이것을 가치있게 여기고 존귀히 여깁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한복음 17장에,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시고  아버지로 인해서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게하여 주옵소서' 거기에 영광을 가리킨  것을 무엇을 가리키느냐, 하나님은 독생자를 희생의 제물로 내어 주고서  그것으로 성공했다, 독생자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내어 줌을 받아 가지고서  원수를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함으로 성공했다, 하나님의 성공관은  이러합니다. 하나님의 성공관은 이러하고 하나님의 쾌감은, 쾌락관은 이러하고  하나님의 즐거워하는 모든 즐거움은 이런 본질과 본성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속사람과 겉사람, 옛사람과 새사람, 옛사람은 이제 땅에 속해서  사는 그 법칙으로 사는 사람이요. 이러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옛 사람으로  사는 생활은 저절로 됩니다. 옛사람으로 사는 생활을 안 할라고 애를 써도 그  생활이 절로 되고, 새사람으로 사는 생활은 자기가 할라고 시작 해도 하다 보면  그만 옛사람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왜? 우리는 옛사람으로 되어 있는 습성이  있고 또 그 습성, 악습, 악습의 습성이 있고 또 우리에게는 악성이라는 그  본성이 있고, 또 악령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옛사람과 새사람을 바꾼다는 것이 우리가 평생 노력해도 될까  말까 하는 어려운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섬김을 받을려는, 높임을  받을려는, 또 다른 사람이 나를 섬기고 높이기를 내가 원하고 내가 또 그렇게  있는 힘 다 들여 가지고서 그 일을 성공할라고 애를 쓰는 이 사람으로 사는 것이  우리가 과거의 옛사람인데, 이와 정 반대로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으로서, 내가 어떻게 하면은 다른 사람을 유익되게 할까, 유익되게 하되  육으로도 유익되고 영으로도 유익되고 금생과 내세에 유익되게 이,렇게 할까,  남을 유익되게 하려는 사람, 섬기는 사람, 위하는 사람, 그것이 뭐이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상대 생활입니다. 모든 걸 상대해서 사는 생활입니다.

 그러면, 그 생활을 왜 하느냐? 하나님이 그걸 원하시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그런 나라이기 때문에 하늘나라 갈 사람인고로 그 생활, 그 본질, 본성으로 내가  변화를 시키야 되겠고, 또 하늘나라에 가치있는 그 가치 생활을 해야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되고,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시고 원하시기 때문에 그분을  내가 사랑하고 그분을 기쁘게 할라고 하니까 그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기쁘게 하려는 것, 영화롭게 하려는 것,  좋게 하려는 것, 위하려는 것, 그것을 하나님에게 대해서 할라고 우리가 마음을  가지고 모든 성의를 가지고 힘을 쓴다고 해도, 하나님은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섬기는 것이 가지를 못합니다. 또 그분은 내가 암만 마음으로  섬길라 해도, 섬기는 행동을 그분에게 할라 해도 그분은 보이지 안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그분에 대해서 하는 그것을, 마음먹고 원하는  그것을 할 때에는 엇다 대고 하느냐 하면은 사람에게 대해서 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실지로 행동할 때에는 사람에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하는 것은 사람에게  대해서 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에게 기쁘시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하나님에게 직접 기쁘시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사람을 섬기는 사람 높이는 사람 유익되게 하는 사람  사람을 북돋우는 사람 사람을 애끼는 사람, 모든 사람이 나를 애끼도록 하고  나를 위하도록 하는 것이 세상인데 내가 다른 사람을 애끼는 사람으로 변질되고  변성되고 다른 사람을 북돋우는 사람으로 유익되게 하는 사람으로 이렇게  바꾸어진다는 것, 이것이 옛사람이 새사람으로 바꾸어진다는 것인데 이  바꾸어지는 이것이 그렇게 일조 일석에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음 아프게 참 자기의 뼈가 아플 만침 이렇게 마음에 느끼고 느끼고  소원하고도 시작하면 가다가는 그만 바꿔져 버리고, 또 어떨 때는 악령이 들어와  놓으면은 어떻게 되느냐? 자기가 입으로는 내가 지금 이 하는 것은 옛사람  생활이다. 분명히 옛사람 생활이다. 그러면 옛사람 생활을 벗고 새사람 생활로  바꿔야 된다, 알면서도 요것만큼은 내가 벗을 수가 없다 해서 악을, 그 악성  그대로 악습 그대로 악한 욕심 그대로 자기 악한 판단 그대로, 악한 판단이라  악이라 하는 것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다 악인데 그대로의, 알고도 옆의  사람이 권면해도 안 된다 이것만큼은 할 수 없다, 이 만큼 우리에게는 악성이  강하고 악습이 강해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 가치로 여기는, 대우하는 그 사람으로 우리가  바꾸어 가지고 가야 될 터인데 그 바꾸어지는 것이 그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일생 동안 이거 바꿔야 되는 일, 악성을 선성으로  바꾸어야 되고 악습을 선한 습관으로 바꾸어야 되고 악령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내가 바꾸어 모셔야 되는 것인데 이 일이 얼마나 하기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랬는데, 사람은 일생 동안 예수를 열심히 믿어서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한다고 하는데 그 사람의 한 것이 모래 위에 지은 집입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이 아니고 모래 위에 지은 집입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뭐이냐 하면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 선으로 됐다 그 말이요. 악성과 악습으로 됐다 말은 내나  일생 동안 주여 주여하고서 하늘나라 준비 한다고 했는데 옛사람으로 사는 그  생활로서 했더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 그 말은 자기  온갖 요소의 자기 위주 자기 중심으로, 이 사람 중심. 저사람 중심 뭐 어떨 때는  뭐 남편 중심 아내 중심. 아들 중심, 딸 중심, 친구 중심, 물질 중심, 또 친구  중심, 자기의 형편 중심, 사정 중심 전부가 다 자기 중심했기 때문에 그  모래와같이 수많은 중심으로서 다 하고 말았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다 이런,  이런 형편으로 바꾸어지면 그것이 흘러 떠내려 가고 저런 형편으로 바꿔지면  떠내려가고 세상을 시날 때에는 다 없어지고 만다 그것입니다. 그래서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이라.

 그러니까, 이 옛사람으로 자기가 살면서, 옛사람으로 살아서 옛 사람대로  성공하면 성공이라, 옛사람대로 소원 성취 되면은 이제 성공이라 기쁘다 즐겁다  이러니까, 소원도 옛사람의 소원이니까 안 믿는 사람의 소원과 꼭 같고 평가도  그러하고 쾌감도 그러하고 꼭 같습니다. 이러니까, 내나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것이라, 하나님의 진리로 가지고 시험할 때에는 다 불타고 없어질  것들이라, 다 그 공적이 불타고 없어질 것들이라 이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이 본질과 본성을 여기에 나타내어서 하늘나라는  어떤 것을 영광스럽게 어떤 것을 가치있게 어떤 것을 높이 평가하고 어떤 것을  알아 주느냐, 어떤 것을 다 대우하고 어떤 것을 환영하고 어떤 것을 높여 주고  어떤 것을 영광이라 하느냐 하는 것은 도성인신했을 때에, 하나님이 사람되어  내려오셨을 때에 지극히 높으신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 하는 이것을 이십  오일날 오전에도 말했고, 오후에도 말했습니다.

 하늘나라의 그 나라의 평가가 나타났다, 그 나라의 대우가 나타났다, 그나라의  가치가 나타났다, 그 나라의 영광이 나타났다, 그 나라의 기쁨이 나타 났다, 그  나라의 환영은 어떤 걸 환영하는가 나타났다, 세상에서는 이렇게 시비하다가서  만일 선거를 하면 모든 사람을 정복하고, 자기가 모든 출마자를 다 정복하고  자기가 이제 승리를 해서 당선됐으면은 성공했다고 그때는 크게 잔치를 하고  시가에 행렬하고 아주 감사장을 돌리고 이렇게 합니다. 세상 일은 다 그런  것입니다. 세상 법과 하늘나라의 법이 다르다는 요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아무리 말해도 그걸 모르는 사람은 무슨 사람인지,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  많습니다.

 지난밤의 공과가 아주 어려운 공과입니다. 내가 그 공과를 짜내느라고 꼭  이틀을, 내가 말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이래 하지마는 이틀을, 내가 꼭 마음  가운데에 고민 고민해서 짜낸 것이 어제 공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공과를  여러분들이, 이래 내가 하기는 나로서는 내 마음에 만족이 되도록까지 내  딴에서는 연구해 가지고 내지 안하면 안 되겠다 해서 내는 것이지, 그  반사들이나 부장들이나 그 알고 가르치는 그것은 자기네들이 기억만 있으면  나중에 알 때가 있으리라 하는 것을 생각하고 하는 것뿐인 것입니다. 부장들이  이거 통반 공부를 할 때에 한 번 공과하다가 두 번 공과하면 조금 낫지마는  무엇인지 그 뜻을 모르는 말 하고 있습니다. 자기네들이 해도. 이러니까, 거기에  중심되는 그 교훈의 뜻은 자기가 말하지 못하고 항상 겉으러기로 하고, 그걸  조금 깨달으면 그 속에는 불이 나고 카팡카랑한 능력이 나옵니다.

 하늘나라의 그것을 봤다 또 하늘나라의 기쁨, 하늘나라의 기쁨 하늘나라의  백성들의 기쁨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기쁨이 어떤 기쁨인가? 하나님의  기쁨은, 그 '기뻐하심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쁨이라 말이요. 하나님 기쁨이  뭐이 기쁨입니까? 하나님 기쁨, 기뻐하심이라는 이 하나님의 기쁨은 무슨  기쁨입니까? 하나님이 독생자 보낸 그 기쁨이요. 독생자가 저주받아서. 다른  사람이 지은 죄인데 독생자가 저주 받아서 멸망받는 이제 그 기쁨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기쁨인데 그 기쁨이 가 가지고서  제삼자에게는 어떤 결과를 맺었느냐? 평화를 만들었습니다. 평화를  이루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본질과 본성, 그 나라와 그 운동, 그 평가는  영생이요, 사망이 있을 수가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고로, 지난밤에 읽은 가운데에 고난은, 멸망은 세 가지 종류의 멸망이라  그것을 여러분들이 알고 기도를 자꾸 많이 해서, 많이 해서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갔으면은 많은 성화가 될 것입니다. 멸망은 세 가지 종류의  멸망인데 세 가지 종류의 멸망을 몇 가지가 받느냐? 영적으로 받는 것 있고,  마음적으로 심적으로-심적이라 말은 정신적으로 받는다 말이요 자기의  양심적으로 받는다 말이요 사상적으로 받는다 말이요 그런 건 다 심적의  것입니다. 심적으로 이 세 가지 멸망을 받고, 또 그 다음에는 자기 육체젖으로  이것을 받고, 자기의 활동적인 그 사역적인 것으로 받고, 또 맨껍데기가  물질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받는다말은 물질이 없어 고난당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로 인해서 고난당하는 것을 말 합니다. 물질로 인해서 멸망받는 것,  물질로, 어떤 사람은 돈이 많아서 그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그 고난을 당하고,  돈으로 인해서 절망을 당하고, 돈으로 인해서 그 사람이 아주 궁핍을 당하고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면, 물질적으로 이 세 가지 멸망, 또  자기의 그 사역적으로 이 세 가지 멸망, 자기의 육체적으로 세 가지 멸망,  심적으로 세 가지 멸망, 자기 영적으로 세 가지 멸망, 그러기 때문에 중생되지  안한 사람은 그 영적으로 세 가지 멸망, 그 세 가지 멸망이 하나는 고난이요,  하나는 절망이요, 하나는 가난인데 이것도 여러분들이 알라 하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단지 가난이라 하면 밥먹을 것이 없는 그 가난만 생각하는  것인데 그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가 많다 적다, 하나님의 선물이 많다 적다  그 적은 것이 그것이 가난입니다. 홍포입은 부자는 하나님의 선물 중에 물질  그것이 없었습니다. 물질의 은혜, 물질의 은혜, 또 하나님이 나에게 그 활동적인  은혜, 나에게 신체적인 은혜, 심적인 은혜, 진리적인 은혜, 감동적인 은혜,  자기의 담대적인 은혜, 쾌락적인 은혜, 평강적인 은혜, 또 희생적인 은혜,  봉사적인 은혜 이게 다 은혜인데 그런 은혜가 없어지는 것이 그것이 가난이라 그  말이요, 가난. 그러면, 사람은, 가난이라면은, 이 물질 가난은 아주 껍데기 그  사소한 것이요, 그 이면에 가난이라 하는 것은 수없는 종자가 많이 있는데  그것을 느끼지를 못한다 말이요. 그 느끼지 못하는 것.

 그러면, 이 공과가 여기에서 나가는데, 많이 나가는데 이 공과를 누가 파악을  하고 그 진리를 알면, 그 사람이 알아서 가졌으면 그 사람이 그 세대를 감당할  것입니다. 그 시대를 감당할 것입니다. 감당해서, 그저 알면 언제 퍼져 나와도  그것이 퍼져 나오게 됩니다. 지금 대구 달산 교회에서 ○○목사가 집회를 하고  있는데 그 집회에서 이제 이런 것이, 안 것이 그 교회에서 모르는 것이 퍼져  나오면은 한 사람이 알면은 많은 사람들이 알아서 그것이 점점 들고 아는  자에게는 평화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 가난이라는 것, 또 고난이라, 고난도 자기의 정신적 고난 사상적  고난 사역적 고난 물질적 고난, 또 하나님의 이 온갖 은혜로, 은혜의 고난 또  자기가 이런 것에 절망, 저런 것에 절망 그 모든 이 다섯 가지가 그 다섯  가지적으로, 영적으로 심적으로 육적으로 자기의 사역적으로 물적으로 이렇게  절망되는 것, 그 절망이라는 것은 그것이 바로 죽음의 앞잡이로서 절망은  죽음보다 더 강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절망을 피해서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십분 기도 후에 권찰회 모입니다.

 여기 기도회에 등록 수, 사천 삼백 팔십 칠이고 요게 기록할 거, 그날, 그 날  된 것이, 엊저녁에 어제까지에 계산된 것이 얼마인지 그걸 못 대면 전날 걸  계산해서라도 그 며칠날 이 기도회록에 등록된, 참석했다고 표시된 수가 얼마다  그것을 여기에 기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전에는 칠백 몇명이라 육백  몇명이라 이랬는데 그날 밤에 된 것, 그날 밤에 기도록에 표시된 그 숫자를  기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또 사천 삼백 팔십 삼명이 등록된 수가 된 것도 이것도 기록한 것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짜든지 이 기도회록에 기록한 사람들은 빠짐없이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제가 나와서 좀 이래한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삼십 분이고, 한 삼십 분 있다가  올라가면 훨씬 나은데 아직까지 건강이 거기까지 되지를 못해서 내려와서 서지를  못합니다. 내려와서, 내려오지를 못하는데 그만 내가 안 내려오면 달라져요.

내가 안 내려오면 그만 스르르 내려가 버립니다. 그만 새벽기도도 안 나오면은  그만 스르르 내려가 버리고.

 그러면 물론 그 사람보고 믿는 것은 아니고 그 자기네들이 받을 소망이, 수입이  적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새벽기도 나오는 사람들은 새벽에 나와 가지고서  설교의 은혜를 받을려고 나온다는 그것도 있지마는 그것을 중심으로 하지  마십시요. 새벽기도 나오는 것은 내가 오늘이 평생 처음으로 만나는 날입니다.

아무리 과거 몇십 년 살았다 할지라도 오늘은 생전 처음 맞는 날이요. 처음  만나는 날, 처음 만나는 날이요. 또 이 날은 지나가 버리면 다시 두번 더 만나지  못하는 날입니다. 이 처음으로 하나님이 새 날을 나에게 주셨으니 이 새 날을  주신 주님 앞에 먼저 가서 내가 경배해야 되겠다, 주님을 섬기는 그 마음을  가지고 나와야 됩니다. 이 새 날을 주셨는데 새 날 이 첫시간 내가 어려워도  주님 앞에 가서 주님을 섬겨야 되겠다 이것을 중심으로 해서 나와야 되고, 그  다음에는 이 주님이 나에게 새 날을 주신 이것은 구원의 날로 주셨는데 이날에  내가 어떻게 해야 될런지 나는 지금 갈 바를 알지 못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주님  앞에 오늘 하루 종일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고 주님 앞에 좀 인도를 받기  위해서 내가 오늘 아침에 주님 앞에 나가서, 여기도 주님이 계시지마는 주님이  많은 성도를 모아 놓고 하시니까 주님 앞에 인도를 받기 위해서 내가 가야  되겠다, 여기에서도 집안에서도 기도할 수 있지마는 내가 오늘 종일 하루의 일을  주님 앞에 의논하고, 부탁하고, 또 내가 모르는 이런 것을 가르침 받고, 내게  없는 것을 간구하고 이래서 하나님을 섬기러 나오고, 또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문의할라고 나오고, 또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인도 받기 위해서 나오고 이것이,  이 세 가지가 합해서 새벽기도 나오는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 다음에는 이제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어떠 것을 교훈하고  명령한 이것이 바로 돈도 되고, 권세도 되고, 형통도 되고, 성공도 되고, 기쁨과  평강도 되어지는 것이니까 오늘은 무슨 새 은혜를 주실런고 내가 받으러 나가자  하는 그것이 둘째 것이 되어지겠고, 그 다음에는 아 내가 이렇게 나감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덕이 되어지는데, 그 만날 나 보고 나오는 사람은 내가 안  나오면 또 그 사람은 아무 것이도 빼더라 하고서 그들이 나를 보고서 넘어지기  쉬우니까 내가 힘있는 데까지는 다른 사람에게 신덕을 끼치기 위해서 나가야  되겠다 하는 이것이 셋째로 중요한 것이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첫째 둘째 셋까지 이것대로 나와야 되는 것이니까, 첫째가 나온  것이니까 자기는 그날 새벽에 설교할 자가 없어도 나올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안 나와도 나올 것입니다. 자기는 만일 예배당 문을 잠궈 놓고서 못 나오게 해도  자기는 그라면 안 되면은 자기의 옥상이든지, 옥상이 없는 사람이면 부엌  귀퉁이에 가서 라도 새로 주신 이 새 날 첫날 그날에 첫째로 주님 만나 가지고서  주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주님에게 의논하고 주님에게 간구 하는 그일을 자기는  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가고 십분 기도 후에 권찰회 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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