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법칙 4가지

 

1983. 11. 15. 화새.

 

본문 : 엡 2:1-7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지난 주일날, 예수님께서 가난을 취하시고, 낮아짐을 취하시고, 종됨을  취하시고, 죽음을 취하셔서 우리에게 대속하시는 공로를 베풀어 주신 것을  말씀을 했고, 또 이렇게 인간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 네 가지,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 네 가지, 이 네 가지를 예수님이 자원해 행하셔서 우리를 대속해  주신 이 구속을 우리가 이 구속을 입어서 우리 구원을 이루려고 하면 우리도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것,  제일 좋아하는 것을 버리고 제일 싫어하는 것을 취하는 것, 제일 좋아하는 것은  뭐인가? 항상 부요하고자, 항상 높아지고자, 항상 머리가 되고자, 항상 살고자  하는 제일 좋아하는 이 네 가지를 버리는 제일 좋아하는 것의 반대인 네 가지를  해야 우리 구원이 이루어진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예수 믿기가 힘이  들고 어렵다 이래 합니다. 그러면 제일 싫어하는 네 가지를 행해야 구원이 된다.

또 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을 줄 때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이 네  가지를 행하면서 이 네 가지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 구원을 주지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주지를 못한다.

 그래서 제일 싫어하는 것 네 가지를 주님이 이것을 자원해서 취하심으로  우리에게 대속이 됐고, 또 우리도 주님이 대속해주신 이 구원을 받으려고 하면은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것 네 가지를 행하는 이 행함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이  되고, 또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려고 할 때도 우리가 이 네 가지를  행함으로 이 네 가지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을 줄 수 있다 하는 것을  간추려서 말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이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네 가지로 예수님이 우리를 구 원하셨고,  또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네 가지로 우리 구원을 이루고, 또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이 네 가지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구원한다. 그러면 네 가지 네  가지, 주님이 네 가지 내 구원에 대해서 네 가지, 또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전하는 데에 네 가지, 그러면 네 가지 네 가지 세 번이겠습니다.

 그러면 혹 생각하기를 '그러면 기독교는 점점 자멸하는 것이 기독교며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기독교라'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겠습니다. '자멸하는 것이  기독교요 희생하는 것이 기독교라. 기독교는 점점 그러면 망해지면 되고  낮아지면 되고 아주 죽어지면 그만 그 구원은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러니까  기독교는 점점 죽고 망하는 것이 기독교라.'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기독교는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이 기독교요 죽는 일을 하지 안하고 사는 일을 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우리가 죽은 것이 네 가지 제일 인간이 싫어하는  이 네 가지 이것이 뭐인가? 이것이 제일 이 네 가지를 하고자 하는, 하고자 하는  그놈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제일 하고자 하는 것 원하는 것 그것을 못하게  하는 것이오.

 왜 못하게 하는가? 인간이 제일 원하는 부요를 원하고, 높아지기를 원하고,  상전되기를 머리되기를 원하고, 또 안 죽기를 원하고 살기를 원하는 이것이 어떤  자가 그렇게 하고 있는가? 어떤 자가 그렇게 하고 있는가? 그것은 악령 악성  악습, 악령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 중심의 영이 악령이요, 악성은 하나님을  중심하는 그 인간성을 버리고 자기 중심의 그 인간성이요, 또 악습은 악령과  악성으로 인하여 자기 중심으로 생활한 한 행동 한 행동 해서 연습해서 모아  놓은 것이 그것이 악습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 살고자 하는 것 상전이 으뜸이 되고자 하는 것, 또 부자가 되고자  하는 것, 높아지고자 하는 것 이것이, 이것을 원하는 이자가 어떤 자인가?  이자가 어떤 자인가? 이자가 죄와 허물로 죽은 자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자가  그 원하는 네 가지는 전부 그것이 악령 악성 악습이기 때문에 그 네 가지  소원하는 그것은 전부 자존, 조물주, 주재 그분에게 배치되는 그분과 적이 되는  행동입니다.

 그분 중심이어야 할 터인데 아무것도 아닌 것이 제 중심하려 하기 때문에  중심과 중심이 싸웁니다. 하나님 중심과 하나님 중심에 대립되는 다른 중심과  싸우니까 결국은 그것은 패망하고 사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은 자가 살아나야 되는 길이기 때문에  부요하기를 원하는 그자가 이제는 가난하기를 원해야 살아납니다. 또 높아지기를  원하는 그자가 낮아지기를 원해야 살아납니다. 또 으뜸이 되기를 원하는 그자가  종이 되기를 원해야 살아납니다. 또 살기를 원하는 그자가 죽기를 원해야  살아납니다. 그러면 이것이 악령의 반대요, 악성의 반대요, 악습의 반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이 생명의 도, 영생의 도를 우리가 지키려고 할  때에는 그 말씀을 지키려고 할 때에는 무슨 그 파동이 일어나는가?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고 할 때에는 거기에 무슨 파동이 일어나는가 하면 말씀을  지키려고 할 때에는 내가 가난해지는 그 길입니다. 내가 가난해져야 그 말씀을  지키지 내가 부요하려고 해 가지 고는 그 말씀을 지키지 못합니다. 내가  낮아지려고 해야 그 말씀을 지키지 내가 낮아지지 안하면 그 말씀을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대해서 명령하시고 인도하시는 말씀이 나를  가난하게 하고, 낮아지게 하고, 또 종되게 하고, 자꾸 죽으라고 죽게 하고 하는  것이니까 그것 안 하려 하면 못 따라갑니다.

 그러면 그렇게 낮아지게, 종되게, 죽게, 가난해지게 하는 것이 누구를 가난하게  누구를 죽게, 누구를 종되게, 누구를 그렇게 이 네 가지로 치고 해합니까? 이 네  가지 이렇게 절단을 내는 이 하나님 말씀이니까 이 네 가지 절단을 내는 것이  누구를 절단내는 것입니까? 죄와 허물로 죽은 자를 절단내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자의 사상을 절단내고, 죄와 허물로 죽은 자의 욕심을 절단내고,  죄와 허물로 죽은 자가 높아져가는 그걸 절단내고, 죄와 허물로 죽은 자가  살고자 하는 그자를 절단내서 죄와 허물로 죽은 자를 절단낸 것은 의와 진리로  살아나는 길입니다. 의와 진리로 살아 나는 살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지킴으로 가난해져야 되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가난해져야 되지 하나님 말씀을 어김으로 가난해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낮아지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그것이 낮아져야 되지  하나님 말씀 어기는 것으로 낮아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킴으로  우리를 높아지게 하면 우리는 높아져야 됩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를 높아지라  하면 높아져야 되고 낮아지라 하면 낮아져야 되고 하나님 말씀이 '여기에서는  죽지 말고 살아라 하면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 말씀이 상전돼라 하면 상전돼야  됩니다. 하나님 말씀이 종돼라 할 때에 종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난해지고 낮아지고 종되고 죽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려고 하니까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려고 하니까 그렇게 됩니다.

가난해지고 종되고 낮아지고 죽어집니다.

 그러면 가난해지고 낮아지고 종되고 죽어지는 그자가 누구입니까? 그자가  누구입니까? 누구지요? 그자가 누구요? 그자가 누구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낮아지고 죽어지고 종되고 하는 그자가, 말씀을 지킴으로  가난해집니다. 그자가 누구입니까? 뭐인지 몰라요? 죄와 허물로 죽은 자라.

하나님 말씀을 지킴으로 낮아지는 그자가 하나님 말씀을 어김으로 높아졌던  그자가 지금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이렇게 됐던. 자가 이제는 본 근본으로  돌아가려면 하나님 말씀을 지킴으로 가난해지므로, 하나님 말씀을 어겨  높아지기를 원하고 높아졌던 하나님 말씀을 어겨 높아 지기를 원하는 자가 죽고  높아졌던 그자가 깨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와 허물로 죽은 자가 박살이  나는 것이오. 죄와 허물로 죽은 자가 박살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으로 인하여 그 여파가 가난해지고 낮아지고  종되고 죽어지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높아져야 될 것, 하나님  말씀이 높아지게 하는 그 말씀을 지키면서 제가 낮아지면 그것은 의입니까  죄입니까? 죄입니다. 이것 무슨 말인지 자꾸 못 알 아듣는 것 같은데.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너는 부해져라' 하면 우리는 부해져야  됩니까 가난해져야 됩니까? 우리는 가난해지면 의입니까 죄입니까? 죄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높아지게 할 때에 내가 상아지면 죄입니까 의입니까?  죄입니다.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으뜸이 되게 하실 때에 내가 밑에가 되면은  죄입니까 의입니까? 죄입니다. 하나님이 살아라 살라 하는 그 살라 하는데 내가  죽으면 죄입니까 의입니까? 죄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그 길을 취했는가? 녜, 예수님은 그 길 취할 필요가  없습니다. 없는데 예수님이 하늘에서 가난해지고 낮아지고 한 그것은 전부가 다  우리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가 가 난해짐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했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가 순종함으로써 우리를 자유케  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2장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예수님이  가난해지시고, 낮아지시고, 종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을 섬김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섬기러 왔다. 내 생명을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 왔다. 이렇게 있는 것 다  바쳐서 섬기기 위해서 왔다. 예수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종된 것이 뭐이냐? 우리의 죄와 허물로 죽은 이것을 전제로 하고  이 값을 지금 대속하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이지 이 대속하지 않고는 그리  되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서 행하려고  하니까 죄와 허물로 죽은 자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여파가 가난해지는  것이요, 낮아지는 것이요, 그것이 악령 악성 악습의 것에서 돌아서서 그대로  하지 안하고 악령 악성 악습대로 살지 안하크 성령대로 또 중생된 영대로, 또  하나님의 인도의 의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니엘이 사자구덩이 들어가 죽은 것은 죽기를 원하는 자살 행위  아닙니다. 자살 행위 아니오. 다니엘이 자살 행위 아닙니다. 하나님이 죽게  하시니까 죽은 것이요. 하나님이, 자기가 다니엘이 살려 하면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인해서 죽어진 것이지 다니엘이  죽기를 원하는 자살 행위로 죽은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그러므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라" 그러므로 네 가지 제일 싫어하는 것 네  가지를 행해야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니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제일 원하는  네 가지를 죽여야 된다 그말이오. 제일 원하는 네 가지를 죽이고 제일 원치  안하는 네 가지를 행하는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너는 살아라' 할 때에 내가 죽으면 죄가  됩니다. 하나님이 높아지라 할 때에 내가 낮아지면 죄가 됩니다. 하나님이  머리돼라 할 때에 꼬리가 되면 죄가 됩니다. 하나님이 부요 하라 할 때에  가난해지면 죄가 됩니다. 요걸 여러분들이 좀 잘 깨달아서 요게 요 고개를  넘어서, 자기를 부인하는 고개를 넘어서,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죄밖에 없고 죽는 일밖에 없어. 죄밖에 없고 죽는 일밖에  없기 때문에, 죄의 법밖에 없고 죽는 법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를 살리는 데에는,  살리는 데에는 죄를 멸하는 죄의 반대의 의가 되어야 되겠고 또 죽은 것을  살리는 데에는 지금 죽은 것의 그 행위에 반대가 안 되면 사는 길이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이 자멸의 도가 기독교가 아니오. 자멸 죄와 허물로  자멸된 자를, 자멸된 자를, 자멸됐고, 자멸을 원하고 자멸만 소원하고, 자멸만이  저의 본질과 본성이 돼 가지고 있는데 제가 마귀 에게 꾀여 가지고 그게 사는  것인 줄 알고 좋은 것인 줄 아는 그것은 마귀의 유혹을 받아 그런 것이지 이런  것을 정말로 죽는 법칙을 가지고 그게 사는 법칙이라고 알고 자꾸 이래 하니까  죽는 법칙의 정반대인 이 법칙을 줘야만 사는 것이 되기 때문에 반대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가 가난해지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서  가난해져야 되지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서 '아, 하나님이 나를 가난해지라  하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서 가난해지면 그거는 죽습니다. 죄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 영감과 진리대로 행하는 이것을 인하여 가난해지고  낮아지고 종이 되어지고 죽어지는 이것이 이제 껍데기는 가난해지고 낮아지고  종되고 죽어지는 것으로 보이나 하나님 말씀 순종으로 그와같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껍데기로 그래 보이는 껍데기 죽음의 껍데기는 이것은 완전히 벗어버리고  이제 참된 생명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썩을 것이 썩지 안할 것으로 화해지고,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모든 더러운 것이 깨끗으로써 이렇게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 말씀이 이해가 되는지? 좀 가서 새김질하면 잘 이해가 될 겁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은 자인데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죽음의  인식, 죽음의 인식의 법칙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니엘을 아무리 옆에 와서 다리오 왕이 '기도하지 말아라' 할 때에  하나님은 기도하라 한다 말이오.

 그러면 기도하라는 그 말씀이, 그 말씀이 사람들 보기에는 꼭 다니엘을 죽이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소? 옆에서 환경에 기도하면 사자구덩이에 넣어 죽이려  하니까 죽이는 말씀인데, 기도하라고 하는 그거는 죽이는 말씀인데 그러면  기도하라고 하는 그것이 죽이는 말씀 그것은 세상적으로 죽이는 말씀입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 시키는 대로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시키는 대로 그대로  하면 그게 사는 법입니까 죽는 법입니까? 사는 법입니까 죽는 법입니까?  다니엘이 기도를 하나님이 하라는데 그때의 환경에 보니까 다니엘을 하나님께서  기도하라 하신 것은 다니엘을 사자구덩이 들어가서 죽으라 하는 그 말씀이 되고  말았다 그말이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은 기도하라 했으니까  세상이 볼 때에, 환경을 볼 때에, 우리의 구습을 볼 때에, 우리의 통계를 볼  때에 그거는 죽으라고 하는 말씀이라. 다니엘을 죽으라고 하는 말씀이라.

죽으라고 하는 말씀인데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을 죽으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을 죽으라고 한 말씀입니까 다니엘을 무서운  죽음의 세력을 다 벗고 살라 하는 말씀입니까? 기도하라 하는 그 말씀은 다니엘  살라는 말씀이요 다니엘을 죽으라는 말씀이요? 자, 살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이 살라는 말씀인데 그때 그러면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그것이 죽으라는 말씀으로 보여 집니까 안 보여집니까? 죽으라는  말씀으로 보여집니다. 죽으라는 말 씀으로 보여지요. 그러나 실상은 살라는  말씀이오. 그 말씀으로 삽니다. 다니엘이 육덩이가 살아 나와서 산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리는 말씀이요 죽이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러니까 그것이 다니엘로 하여금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 동안 종노릇하는  그 무서운 멍에에서 해방의 자유를 얻게 한 것이요 그런 죽음의 세력에게 끌리지  아니하는 강한 생명력을 얻게 한 것입니다. 요게 이해가 됩니까? 요게 이해가 안  되면 모순이기 때분에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러니 기독교를 이거는 자멸의 도라 껍데기로 보고는 그렇게도 말할 것이고,  그러기에 혹 이 말씀을 못 알아듣고 껍데기만 알아들으면 '예수 믿는 것은 전부  다 세상이 망해야 되러구만.' 예, 세상은 망해야 천국이 됩니다. 자기 중심 자기  중심의 모든 생각이나 행위나 사람이나 일이나 그것은 다 죽어야 하나님의  중심으로 그리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심을 바꾸는 것이요, 지금. 중심을 바꾸는 것. 중심을 바꾸는  말씀이기 때문에 자기 중심 악령 중심 이 모든 죄 중심 사망 중심을 그 중심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대로 하니까 하나는 죽고 낮아지고 깨지고  이렇습니다. 무엇이 죽고 낮아지고 깨집니까? ○○○? 뭐이 죽고 낮아지고  깨지요? 이것 모르면 안 돼. 요새 우리 목사들도 이걸 몰라. 항상 말해도 안  들어. 자기가 낮아져야 산다는 이걸 뭐인지 모르고 지금 벙벙하게 '이것 무슨  기독교가 염세 주의? 목사님은 염세주의를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데 염세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이용해서 세상을 완전히 삼키는 정복하는 극세주의를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되면 안 돼요. 그러면 또 뒤에 좀 더  생각하고 앞으로 또 시간 있는 대로 증거하겠습니다.

 요걸 똑똑히 지금 기억해요. 죄와 허물로 죽은 자라.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다니엘을 그와같이 하는 것이 인간 법대로  보면 죽는 것이요, 인간 법대로 보면 죽는 것이오. 죽으면 뭐이 죽습니까? 악령  악성 악습에게 속한 이 악지식, 악지식대로 비판할 때에 죽는 것이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 기도하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그것이 영생에 순종하기 때문에 영생했다  그말이오. 영생을 한다 그 말이오. 그거 사는 것이라, 죽는 것이 아니고.

 그 지금 자꾸 부패성이 착각돼 가지고 항상 부패성을 벗지 못하기 때문에  부패성 네가 너를 부패성을 벗는 데는 자기 중심 그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되어  있는 그것을 벗는 데에는 네가 보기에는 이 방편을 취해야 된다.

 네가 보기에는 죽는 것 같지마는 그게 사는 것이다, 네가 보기에는 가난해지는  것이지마는 그게 부요해지는 것이다, 네가 보기에는 낮아 지는 것 같지마는 그게  높아지는 것이다, 네가 보기에는 종되는 것이 지만 그게 상전되는 것이다, 네가  보기에는 죽는 것 같지마는 네가 그거는 실상은 사는 것이다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기도회에 참석한 사람은 삼천사백오십구 명이 참석했습니다. 주일 학교가  칠백칠십, 중간반이 천백이 명, 장년반이 천오백팔십칠 명 그 래서  삼천사백오십구 명이 등록하고 어제 기도하러 온 분은 칠백일 명이 기도하러  왔고 장로님 중에는 여기에 와서 기도하신 분은 여덟 분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장로님들은 다른 데서도 한 분도 빠지지 안하고 기도하는 줄 압니다. 권사님들은  의례히 거기는 다 기도의 선봉장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줄 압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배워야 되지 모르면 안 됩니다. 모르기 때문에 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너희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이 모든 모순이 있고 핍박이 옵니다. 진리를 알면 핍박이 안 옵니다.

진리를 알면. 뭐 때문에 우리를 이단이라고 정죄하겠습니까? 그들이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몰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도 모르면 또 우리보다 더 앞선  사람에게는 오랑캐가 되고 대적이 됩니다.

 그러기에 바울이 말 하기를 '너거는 나를 죽이고 나는 너거를 살린다 이렇게  말했어."사망은 나에게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들에게 역사한다 둘이 말하기를  이와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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