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방편과 재료

 

1988. 3. 25. 금새벽

 

본문 : 누가복음 16장 10절-11절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여기에 지극히 작은 것 큰 것 이렇게 말했는데 그것을 무엇을 가리켜서 작은  것이니 큰 것이니 그렇게 말을 했는가? 곧 그것은 위에 친구를 사귀라 하는 친구  사귀는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고 친구 사귄다는 것은 뭣을 말씀하는 것인가?  그것은 곧 빚진 자의 빚을 탕감해주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이것이  다 통해져야 됩니다.

 친구 사귀는 일, 곧 빚을 탕감해 주는 일, 주님의 이 사활의 복음 은혜로, 이  복음 은혜는 세 가지인데 성령과 물과 피 그랬으나 꺼꾸로 말하면 그런데 바로  말하면 예수님의 피공고와 피공로로 인한 영감과 진리 이 세 가지는 합해서  하나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복음이라 그렇게 말하고 또 이 자체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의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 복음 가지고 사람을 구원하는 일, 구원은 곧  사망에서 생명으로 구원하는 것이요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옮겨 구원하는 것이요  또 죄와 마귀에게서 의와 하나님에게로 옮겨서 구원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버린 이 변질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정상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인간을 구원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사람을 회개시켜서 점점, 멸망하여야 할 그 사람이 영생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받는 것, 성화받는 거, 회개하는 것, 옛사람은 죽이고  새사람으로 성장케 하는 것, 하나님의 형상을 입게하고 닮게 하고 본받게 해서  하나님 모양과 같은 사람, 지식적으로나 성품적으로나 권위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가치적으로나 하나님이 원형이라면은 하나님을 꼭 닮은 모형적인  그 사람 만드는 것 이것이 곧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이요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멸망과 저주 아래에 있는 것을 멸망과 저주를 없애서 거기에서  구출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지극히 작은 것’ 하는 것은 곧 그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그 방편이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그 사람의 주관과 육에 있는 모든 것을 감동을 시켜서  감동으로 그 사랑을 변화시키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감동도 크게 말하면 두  가지인데 땅에 것을 가지고 감동하는 거, 이 세상 걸 가지고. 서 감동하는 것은  해 봤자 멸망입니다. 세상 것을 가지고서 감동하는 것과 또 세상 것이 아닌  영원무궁한 것으로서 감동시키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감동으로 변화시키는 거 그거 하나 있고, 그러면 우리가  말로 가지고 감동시키는 것도 있고 내 행동으로 감동시키는 것도 있고 내  자신으로 감동시키는 것도 있으니 그 감동은 멸망으로 감동을 시키는 것도 있초  영생으로 감동시키는 것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예수 안 믿는 세상에 있는 모든  절제 있는 그 철하가들 또도덕가들, 모든 사회주의자들, 온갖 예술가 실력가들  그런 것들은 다 썩어질 걸로 가지고서 감동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 가지고 하지 안하고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감동시키는데 내 말로 감동시키는 것도 있고 내 행동으로 감동시키는 것도 있고  내라는 사람을 가지고서 감동시키는 것도 있으니 감동이라는 그 방편을 가지고서  사람의 빚을 탕감해 주고 친구를 사귀는 일이 있습니다.

 이 친구는 곧 보이는 사람에게 하는데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대접도 같이 대접하는 것이요 욕하는 것도 같이 욕하는 것이요,  이러기 때문에 언제든지 우리는 사람 하나만 보지말고 그 사람과 하나님이 같이  계십니다. 그 사람의 주인공인 하나님이 같이 계십니다. 또 그 사람을  유혹시켜서 멸망시킬라 하는 마귀도 같이 있습니다. 또 그 사람을 돕는 천사도  같이 있습니다.

 이렇게 있는데 그 사람을 감동시켜 가지고서 그래 그 구출하는 그런 일도 있기  때문에 그 감동도 두 종류라. 지식이 두 종류인 것처럼 감동도 두 종류라.

 어떤 사람은 마귀의 감동은 잘 받습니다. 썩을 감동은 잘 받습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그런 것을 구별해 가지고서 천하 사람이 다 감동받아 가지고  감탄해도 복 있는 사람은 ‘이것이 대마귀의 역사라,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  역사라.’ 하는 것을 깨닫기 때문에 그 감화가 대마귀의 역사라 그렇게 봅니다.

 예를 들어서 불교 같은 것을 거기 가면은 감동받는 사람 없고 그걸 보고서  ‘이것은 참 마귀 중에는 대마귀로구나. 사람을 멸망시키는 것 중에는 제일 크게  멸망시키는 것이로구나.’ 그렇게 구별하는 거,   감동도 구별해야 되고, 그러기 때문에 감동을 내가 구별할 줄 알아야 그 사람을  영원으로 구출하는 그 감동으로 구출할 수가 있지 만일 감동을 잘 구별하지  못하면은 그 사람을 영원한 구원으로 구출하지 안하고 영원한 감동으로 구출하지  안하고 그 사람을 영원한 삼동을 멸망시키고 멸망하는 그 감동을 가지고 그  사람을 감동시키기 쉽다 이 말 무슨 말인지 알려 들려집니까? 이 말을  알아들어야 돼. 못 알아 들으면 헛일이야. 감동도 이 세상적인 것이며 마귀적의  것이며 혈육적인 것 있고 또 성령적이며 또 영적이며 하늘나라의 구원적인 이런  감동이 있습니다.

 그래 그걸 표시해서 위에 속한 감동도 있고 땅에 속한 감동도 씻고, 위로부터  오는 감동도 있고 땅에서부터 오는 감동도 있으니까 이 감동도 구별해야 되지  이걸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시키는 거 땅의 것으로 감동할 때에 그 감동은  잘 받지마는 하늘의 감동은 받지 않습니다.

 그것이 뭐이냐? 속에 악을 뽑기 전에는 제가 언제든지 뭐, 해 봤자 하나님 말씀  아는 거 그거 가지고서 이용만 해 먹고 땅의 것 가지고서 저 위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복음 가지고 위하고 또 복음의 운동 가지고 위하고 진리 가지고 자기  위하고, 악을 위해서 하는 자는 그 사람은 많은 일을 했지마는 나중에 가서  주님이 나는 네가 어데서 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도무지 모르겠다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감동시켜서 친구를 사귀는, 감동으로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변화시키는 이런 일이 있기 때문에 감동에 우리는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감동에. 내가 이래 하는 것이 감화가 되겠나 안되겠나? 감화가 되는  데는 감동만 되면 다 좋습니까? 어째요? 감동으로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있습니다. 죽이는 일.

 그러면, 그 감동이 하늘에 속한 감동인지 하늘에 속한 감동인가 그것을 좀  구별해야 되겠습니다.

또, 그 사람을 회개시키는 데에는 욕심을 일으켜 가지고서 회개시키는 수가  있습니다. 욕심도 또 둘입니다. 땅에 속한 욕심이 있고 하늘에 속한 욕심이  있으니 그것을 가리켜서 성경에는 육체의 욕심이라 성령의 욕심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자꾸 말로든지 내 행동으로든지 내 자체로든지 그 사람에게  이 육체의 욕심, 땅에 속한 욕심 그 욕심을 죽이는 일을 내가하고 그 사람에게  성령의 욕심을 살리는 일을 그렇게 하면은 그 사람이 구원 얻습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하고 조금, 그 사람과 한 번 만나니까, 한 번 만나니까 땅의  욕심은 스르르 시들어져 버리고 하늘의 욕심이 조금 소생되고 한 달 있으니까  하늘의 욕심만 생겨지고 땅의 욕심은, 없어지고, 욕심이 바꾸어집니다.

 욕심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인데 내가 말로 가지고서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그 사람에게 복된 욕심을 소생시키는 것도 있고 또 내가 하는 걸 보고  ‘저 사람이 말만 저라지 그 사람 참으로 이 욕심을 가지느냐? 공연히 땅에 있는  욕심은 당장 효력이 있지마는 하늘의 욕심은 효력이 없는데 저 사람이 지금 나만  꼬와서 뭐 하늘의 욕심으로 살아라 이렇게. 말을 하고 저는 그래 안 사는가?’  보니까 그 사람이 정말로 하늘의 욕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늘의 욕심으로 살고 있으니까 ‘저 사람이 나한테만 할 게 아니라 제가 저는  참으로 하늘의 욕심으로 살고 있구나’ 인제 그것을 보여 줄 수 있다 말이오.

그래서, 성령의 소욕.

 욕심을 가지고 사람을 멸망을 시키기도 하고 구원을 시키기도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내가 상대할 때에 땅의 욕심을 그 사람에게 줄까 하늘의 욕심을 줄까 뭘  내가 주고 있는지? 내게 없는 거는 못 줍니다.

 땅에 욕심을 가지고 있는 그 인간은 암만 줘봐야 땅에 있는 욕심이나 주지  하늘의 욕심은 제가 줄 수도 없고 또 하늘의 욕심을 가진 사람, 하늘의 욕심이  뭐인데? 성령의 소욕, 성령의 소욕이라 말은 하나님의 욕심이라 말이오.

 하나님의 욕심을 내 욕심을 삼은 것이 있고 마귀 욕심을 내 욕심 삼은 거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욕심을 내 욕심을 삼은 사람은 그 사람은 사람을 만나면 마귀.

옥심, 땅의 욕심, 세상 욕심, 혈육의 욕심, 없어질 욕심 그런 것을 소. 생시키고  또 성령의 소욕 가진 사람은 점점 하늘의 욕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니까, 그 눈이 자꾸 밝아지니까 그렇게 하늘의 욕심 가지라 하는거 말을  가질 게 아니라 말로도 내가 행동으로도 내 자체로도 그 사람에게 욕심을  변화시키면 사람이 변화가 됩니다.

 이런데, 사람을 딱 만나. 가지고서 보면 그 사람이 하늘나라 욕심을 말을  하면서도 실상은 땅의 욕심을 가진 속에 알맹이가 있다 말이오. 사람을 껍데기만  보면 안 돼. 껍데기 보고 알맹이 보고 알맹이 보고 깊이 깊이 자꾸 봐야 돼  이래서, 하늘에 속한 욕심과 땅에 속한 욕심이 그 사람하고 만나니까 차차 차차  더 생겨지는 거, 하나님을 세우는 게 아니라 자기를 자꾸 세우는 악인,  자기중심인 그것이 차차 차차 내게 보니까 사귀는 가운데에서 그게 나중에 자꾸  짙어지고 그게 견고해진다, 이라면 이 사람은 마귀 사람이기 때문에 사귀면 내가  죽겠구나.

 아무리 부부간이고 형제간이라도 딱 대고 ‘요거 보자. 요러니까 기본 지식을  딱 가지고서 그라면 이 사람은 지금 내가 판단해 볼 때에는 욕심을 자꾸 육체의  소욕으로 자꾸 변화시킨다. 이 사람은 하늘의 소욕으로 변화시킨다.’ 자꾸  이것을 만나 가지고서 육체의 소욕으로 변화시키나 하늘의 소욕으로 변화시키나  만나보면 안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아무리 땅의 것이 많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쏟아져 나오고 재미가  있고 한다 해도 그 사람이 땅의 욕심으로만 자꾸 소생시키고 성령의 소욕을 자꾸  약화시킨다고 하면은 그 사람은 악한 동무라. ‘악한 동무는 선한 행실을 손해케  하느니라’  이러니까. 내가 지금 빚을 탕감해 주는 것, 친구를 사귀는 것은 이 사귀는  방편이 감동으로 될 수 있고 욕심으로 될 수 있는데 내가 이 사람을 만날 때  내가 무슨 욕심을 가지고서 무슨 욕심을 소생을 시키며 무슨 욕심을 지금 소멸을  시키고 있나 하는 것을 그거 봐야 될 거라 말이지.

 이 말하면 하나님보다도 어리석은 땅의 걸 좋아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뭐이냐 하면은 내가 감동으로 그 사람을 그렇게 할 수가 있어, 욕심으로 그  사람을 할 수가 있고 감동으로 또 할 수가 있어,   그러면, 감동으로 하는 그런 것도 내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도 하고 또  영감으로도 하고 또 내 몸으로도 이와 같이 하고 이렇게 해나가는 것인데 그  사람을 내가 감동으로 하든지 두려움으로. 하든지 욕심을 소생시켜 하든지. 이런  것이 다 사람을 구원하는 방편이요 멸망시키는 방편입니다.

 멸망도 대개 이런 종류의 이 세 가지로 사람을 멸망을 시키고 구원하는 것, 도  이런 종류의 이 세 가지를 가지고서 사람을 구원시킵니다. 그 사람을 감동 주는  거, 또 그 사람에게 그 욕심을 일으키는 거, 또 그 사람을 두려움을 일으키는 거  이런 것이 사람 구원하는 것인데 그게 다 두 종류라.

땅에 속한 거 있고’ 하늘에 속한 거 있고, 다시 말하면 인간의 것 있고  하나님의 것 있고 있으니까 그것을 내가 잘 짐작하면 그만 이모로 저모로  진찰하면 환하게 알아.

 의사가 능하면 환자가 오면은 이런 것으로 저런 것으로 다 과학적으로 기계로  가지고 진찰하는 것도 있지마는 그까짓 진찰은 둔해. 과학 가지고, 진찰하는  거는 둔해. 중국에 있는 편작이라 하는 그 의사는 박식이 돼서 이거 뭐 기계  이까짓 거 가지고 하지를 안해,  그 사람은, 저 옛날은 남녀 구별이 많기 때문에 여자가 병이 들었으면 여자 병든  그 진찰을 할 때에 남녀가 같이 말하지 않는 것이 옛날 양반이기 때문에 그  여인이 문고리에다 실을 짜매 가지고서 실을 이래 끌고 와 가지고 실을 거머쥐고  진맥을 해 가지고 알아. 그게 능한 사람이라. 그게 능한 사람.

 그거 뭐? 그게 능한 사람인데 그거 무슨 실에 뭐이 와요? 실에 뭐이 안 오지만  온다 그거요. 뭐이 와? 그리 안 오면 벌써 구 분위기 모든 사람들과 그 전체를  보면은 이거는 암병 들었겠다, 또 이거는 무슨 치질병 들었겠다, 이거는 위장병  들었겠다 알 수 있다 그말이오. 전체를 아니까. 전체가 다 발표하고 있으니까.

 여기에는 뭣이 나와? 여기에는 물이 많으니까 고기가 있겠다, 여기에는 뭣이  숲이 많으니까 그 짐승이 있겠다, 짐승이 있는데 이거 지역이 넓으니까 맹수가  있겠다, 그거 다, 모든 걸 다 알면, 전체를 다 알면은, 거기에 속한 전체를 다  알면은 하나 그거는 안 보여도 알 수가 있어. 이러기 때문에, 이 모든 박식  가지고 아는데 지금은 기계로 가지고 하니까 기계로 가지고 하는 그거는 암만  알아봤자, 알아봤자 그거는 기계지 인간과 같이 추론이나 추상이나 연구나 그런  것은 없는 것이오.

 사람이 그 사람의 두려움을 변화시켜 가지고서 사람을 거룩한 사람으로  성화시키는 일도 있고, 또 그 사람을 욕심을 이 성화시켜 가지고서 그 사람을  구원하는 일도 있고, 또 그 사람에게 어떤 그 감동을 가지고서 그와같이 감동을  변화시켜 가지고서 하는 것도 있으니 이것이 우리가 사람 사귀는 것이요 예수님  사귀는 것이요 예수님 대접하는 것인데 이 일은 작은 걸 가지고서 큰 것까지 돼  나갑니다.

 지극히 작은 것을 요 일을 주님이, 주님 사귀는 일, 인간을 구원하는 요 일은  지극히 작은 일을 착수했는데 고 일을 잘하면 지극히 큰 무한한 일까지 할 수  있는 실력이 돼 진다.

 왜? 고것을 하는 것이 방편도 완전한 방편인 진리요 고 속에 작으나 크나  일하는 것도 완전한 능력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뭐, 하나님의 능력이  먼지를 날리는 힐도 있지마는 이 우주를 날려 보내는 그런 힘도 있다 말이오.

작은 것도 할 수 있고 큰 것도 할 수 있어. 그힘 가지고 하면은 끝이 없어  어데까지든지 나갈 수가 있어.

 그러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이치에 맞아야 된다  말이오. 하나님의 이치에 맞아야. 이치에 탕아야 된다는 그것이 진리라. 진리로  해. 진리로 하나님 이치에 맞아야 되고.

 하나님 이치에 맞아 들어가면 그 다음에 또 맞는 게 있어. 맞는 게 뭐입니까?  맞는 게 뭐이요? 하나님의 이치로 맞아 들. 어가면 뭐이요? 그 다음에 들어가면  또 영감에 맞아요, 영감. 진리 이치에 암만 맞아도 영감이 동의 안 하면  소용없어.

 영감은 성령인데 성령이 감동한다, 영감이라 말은 성령이 찬성하고 같이 한다는  말인데, 그 사람이 감언이설로 가지고 뭐 아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얼마든지  이렇게 아주 설득력도 있고 이래 가지고서 하고 있습니다.

 하고 있는데 그것이, 사람들은 ‘하, 그 사람 설교 잘하고 그 사람 참 성경 잘  가르친다.’ 이렇게 감동을 받지마는 성령은 찬성 안 해. ‘네 이놈 도둑놈!  이놈 네가 하나님 말씀까지 이놈이 지금 악용을 하고 있구나. 제 중심으로 하공  있구나.’ 그러기 때문에 성령이 찬성하지 안해. 이제 진리로 가르쳐 가지고  성령이 찬성하는 그 일이 돼져야 돼.

 성령이 찬성하고 난 다음에는 이제 그리스도의 구속을 완전히 제것을 삼아야  돼. 거기까지 나가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돼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뭣 때문에 팔아서 죽였느냐?  진리 때문에 팔아 죽였어. 진리로 팔아 죽였어. 진리 지킨다고 예수님을 팔아  죽였다 그말이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어. 그 사람 진리대로 하는데 진리대로  한 것이 자기 구주를 십자가 못박아 죽였어.

 뭐이냐? 그 사람들은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이 법칙으로만 지키고 하나의  팔아먹는 그 지식으로만 삼았지 그 지식을 써먹을 때에 그 지식이 영감에  중매쟁이인데 영감 중매쟁이, 영감을 만나도록 하지 안했기 때문에 그거 다  사기요 다 협잡이요 다 그것이 마귀의 이용하는 것이라. 마귀도 마태복음 4장  1절 이하에 보면은 마귀도 예수님에게 성경 말씀 가지고서 그와같이 지금 꼬우고  시험하지 안했어요?   그 사람들은 도무지 이 진리를 말만 하면 되지 영감이 어떻게 역사하나 하는  거기에 대해서 눈을 뜨지 안했다 그말이오.

 사도 시대에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는 받기는 받았지마는 ‘너희들이 성령을  받았느냐?’ ‘성령이라 말은 성령 세례라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내나 구약 교회가 아직 신약교회가 못 된 거라.

 이래서, 우리들은 이 언행심사에 하는 그 행동이 제일 껍데기가 진리적이야 돼.

제일 껍데기가 성경적이어야 돼. 제일 껍데기가 성경적이어야 돼.

 성경적이면 다 이냐? 아니야. 그거 가지고 어림도 없어. 성경적인데 거기에서  영감이 오면 제 진리를 알게 돼. 제 진리를 알게 돼. 성경 가운데서 제가 지켜야  될 제 진리를 알게 돼.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돼. 그걸 알면은  그것이 자기 진리라.

 자기 진리를 지켜서 할 때에 성령이 찬성을 해 줘. ‘오, 됐다. 나도 같이  하마.’ 찬성해.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안하고 권능에 있다.

내가 증거하는 것은 지혜 있는 말에 있지 안하고 성령의 감동에 있고 능력에  있기를, 너희들이 배워 가지고 너거 믿음이 지식에 있지 안하고 말에 있지  안하고 권능에 있기를 내가 원한다 말한 것이 그것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이렇게 사람을 대접하는 거 구원하는 거 성화시키는 거 이일이  지극히 작은 것, 지극히 큰 것, 것, 것, 것 그게 뭐이냐 하면은 친구사귀는  그것이라. 그것이 빚 탕감해 주는 그것이라.

 그것을 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것에 시작해 가지고서 그대로 하면은 지극히 큰  것까지 다 할 수가 있다. 거기에는 왜? 재료가 그래. 방편이 그래. 재료와  방편이 그러니까 이거 자동차 다 이야는 조금만 한 거 그까짓 거 동글동글한  것이지마는 이놈이 되기를 바로 됐으니까 이게 자꾸 구불러 굴러 가지만 천 리도  가고 만 리도 갈 수가 있다 그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라.

 이제 지극히 작은 것 하는 것, 진리, 영감, 피 요 셋으로 바로 돼가지고 하면은  작은 것도 한 것이 큰 것도 하고 무한한 것도 하고 얼마든지 할 수가 있어. 요게  삐뚤어지기 때문에 안 되는 거라.

 그래 하는 것은 그 방편은 감동으로도 할 수 있고, 그 사람을 감동시켜서도 할  수 있고 그 사람을 두렵게 해 가지고도 할 수도 있고 그 사람에게 욕심을  변화시켜 가지고도 할 수가 있는데 이것도 그걸로 하면 되느냐? 아니라. 두  종류가 있다 하는 것을 기억해야 돼.

 너희들이 걸어갈 때에 쪽발로 걸어가라. 쪽발로 가지 안하면은 생명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면 쪽발은 둘뿐이라. 이러니까 뭐이든지 둘이라 하는 저 악아야  돼요,   ‘지식’ 지식은 둘이다. 이걸 모르고 지식에 파고 들어가는 자는, 지식이  둘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식에만 파고 들어가는 자는 사망으로 들어가 가지고  뒈진다 그거요.

 인간 지식, 다시 말하면 배암의 지식이 있고 하나님의 지식이 있다. 이래서  지식이 둘이니까 내가 지금 공부하는 것은 뭘 공부하느냐? 인간 지식을  공부한다. 인간 지식 공부하는 이거는 내가 이용해 먹을라고 쓸라고 내  소지품이지 이 지식은 절대로 내 위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밑에다가  발등상을 삼아서 이용물로 소지품으로 가질 일이지 이 지식에는 내가 복종할  것은 아니다.

 이 지식은 뭐이냐? 이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의 지식은 내가 이용해 먹으면  죽는다. 이 지식은 나보다 무한히 크다. 그러기 때문에 이 지식에 나는 복종해야  되겠고 이 지식을 높이 섬겨야 되겠고 이 지식에게 절대 명령에 복종해야 되지  이 지식을 떠나면 안 된다. 이 지식 슬하에 내가 붙어야 되겠다.

 그러면, 우리가 ‘여호와로 피난처 삼는다’ 그말은 뭐이냐 하면은 이 진리  지식을 자기 피난으로 삼아서 진리 지식의 나래 밑에, 진리 지식의 슬하에, 진리  지식의 은택 아래에, 이 진리 지식 밑에 내가 딱 붙어가지고 산다 그말이오.

병아리가 암탉, 어미 닭 밑에 붙어 가지고 사는 것처럼 이 진리 지식 슬하에  붙어 가지고서 사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래서, 이 두 가지 있는 거, 두려움도 두 가지, 또 욕심은 몇 가지입니까?  욕심도 뭐 그걸 마귀가 들어가 놓으면, 그만 욕심을 들어가 놓으면 천도 만도  넘습니다. 욕심, 이 욕심도 있고 저 욕심도 있고 저  욕심도 있고 막 이렇게 말하면 복잡해져 가지고 망한다 그말이오. 들짱, 욕심도  두 가지다. 뭐 두 가지? 성령의 욕심과 육체의 욕심. 인간의 욕심과 하나님의  욕심 두 가지뿐이다.

 두려움도, 두려움이 둘이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두려움 있고 피조물을  두려워하는 두려움 있고 둘이라. 피조물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가 없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피조물을 두려워할 수가 없어.

 하나님이 꼭 둘을 못 섬기게 하거든. 똑 하나님은 굉장히 시기심이 제일 많은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에게 딱 향하다가 눈만 조금 삐뚤뜨려도 고만 뻐꿔  돌아가십니다.

 이러니까, 아가서에 하나님을 모형해서 말하기를 사슴과도 같고 노루와도 같다  했어. 사슴과 노루는 자기 알지 못하는, 알지 못하는 무슨 종이 쪼가리 하나도  보이면 꽉 뛰어 버립니다. 자기가 모르는 소리만하나 들려도 그만, 그만 뭐  어데든지 저 만당까지 그만 뛰어 올라가 버리요.

 이러기 때문에, 자기 주관과 맞지 않는 거 하나만 보면은 당장 천리만리  도망치기 때문에 주님은 이런 주님이라. 당신의 비위에 맞지 안하는 것이  하나라도 내게 있으면 그만 당신은 껑충 뛰어서 천리 만리 가니까 찾지 못한다.

이것을 가리켜서 아가서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사슴과도 같다 이렇게  말했어.

 이러니까, 이거 두려움도 두 가지. 욕심도 두 가지. 감화도 두 가지. 이러니까  이것을 잘해 가지고서 이렇게 구별해서 하면은 하나님 말씀을 자꾸 들어서  깨달으면 유혹을 안 받아. 어데 유혹을 받아? 천하 학자가다 달랐들어도 발 아래  볼끈 밟지 유혹받지 안해. 어떤 과학에 어떤 철하다 와도 그거는. 그걸로 다  했기 때문에 그거 도매금이라, 이걸 알고 있기 때문에.

 뭐 이런 과학이 있고 저런 과학이 있다 떠들어 쌓아도 ‘그거는 한 말로 말해서  물질에 대한 지식이야. 인간에 대한 지식은 아니라.’ 암만 파고 들어가도 억만  년 가도 그렇지, 그거는 인간을 구원시키는 건 안 돼. 물질은 그거 뗐다 다 이거  조화를 하지마는.

 아무리 종교 철학이 많아도 그것은 하나님의 지식이 아니라. 신구약 성경  외에는 하나님 지식 아니고 다 인간의 지식 이라. 인간의 지식 그 뭐 한이 없지,  뭐. ‘이 종교 어째? 불교는 어째?’ ‘신구약 성경 하나님 말씀 외에는 전부  인간 지식이기 때문에 마귀 지식이기 때문에 그 성경이가?’ 성경이 아니거든.

‘아, 배암 지식이로구먼.’ 한 말로 그만 정죄해 버리고 말아. 속에 그까짓 거  나벼보고 뒤벼볼 게 없어. 거기에 들어가면 파묻혀.

 그만 보고서, 보니까 간판을 보니까 벌써 이거 먹으면 죽는다 했는데 그거 뭐  들어 가 가지고서 맛을 뭐 볼 게 있는가 볼 것 없이 도매금으로 이거 먹으면  죽으니까 아예 나 이거 안 먹는다 하고서 그만 뱉아버리면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안해요?  오늘 아침에는 또 ‘지극히 작은 것 큰 것’ 이거 작은 것 큰 것은 뭐이냐?  친구 사귀는 구원하는 것인데 구원하는 것은 감동으로 욕심으로 그 사람의  두려움으로써 이래 가지고서 할 수 있는 것인데 이 지극히 작은 두려움, 작은  감동, 지극히 작은 욕심, 이 작은 욕심에서부터 이 욕심을 변화시켜. 작은  감동부터 시켜. 작은 두려움을, 땅에 있는 것만 두려워하는데 자꾸 하늘의  두려움을 자꾸 주는 거라.

 하나님이 제일 존재 중에는 하나님이 제일 두렵고 행동 중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고, 거기에서 판단해 가지고서 영원한 보응 주기 때문에. 그러면 그거  생각하니,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니까 땅에 있는 재판소 그까짓 게 아무것도  아니라. 천하 재판소가 다 정죄해도 하나님의 재판에서 옳다 하면 됐어. 옳다  인정하고 죽음받아도 상관이 없어.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 믿으면 자꾸 커집니다. 무한히 커지요,  조부랍아지지 안하고. 자꾸 커진다 말이오. 커지는데 이거 지금 세상은 뭐 요새  말세가 되니까 아주 커진 줄 알지마는 이 세상이 커집니까 좁아집니까? 말할 수  없이 좁아졌어.

 뭘로 좁아집니까? 다 어데로 들어가요? 좁아져 가지고 어데로 가? 좁아져  가지고 어데로 가지? 어데로 가고 있어? 악으로 가고 있어. 자기중심으로.

인간들 전부 자기중심으로 가고 있어.

 자기중심을 초월하지 못한 거 자기중심을 부인하지 못한 그까짓 건 인간으로 볼  것 없어요. 뭐 그거는 정치가라도 뭐라도 다 그것은 저 밑에 발 아래 밟을  것으로, 말은 못해도 그라고 있지. 자기 속에 악을 버리지 못한, 자기중심을  버리지 안한 그자는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전체가 사망이요 저 죽고 남  죽어.

 이러니까, 요 진리를 배우면 자꾸 커지요.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커지는 것은  악을 벼리고 선, 하나님 중심이 되면 자꾸 커집니다. 하나님 중심만 되면 뭐  무한히 커지요. 하나님같이 커지요. 하나님은 원형이고 우리는 모형이라. 커져도  피조물이라. 고것만 구별하고 있으면 돼요. 그러니까, 이 새벽으로 나와야 될  터인데 썩은 것만 보고서 자꾸 나오지 안하고 이래 놓으니까 저거가 뭣 알아? 뭣  안다고?’인생이치를, 세상 이치를, 살이 이치를, 모든 평가 이치를, 비판  이치를, 아주 반디속 모양으로 참 머리카락으로 뭐 훔판다 하더니마는 이거  모양으로 그렇츰 좁은 그걸 가지고 알면서, 저 보기는 그것뿐이니까. 그거  아니라. 무한해.

 그래 내, 어떤, 한국에 제일 유명한 중이오. 평양 O부자 맏아들인데 그 O부자는  그때 평양에서 삼십 리까지는 자기 땅을 밟고 다니지 남의 땅을 밟지 안해. 그  큰, 부자라. 그거 다 절에 다 갖다 넣고 젊은 아내다 그만 돈 줘서 보내 버리고  ‘나는’ 그래 그 보내 버리고 거기서 참선으로서 돌아다니기 때문에 한국에서  유명한 사람이라.

 유명한 사람인데 그 사람 나하고 만나 가지고서 얘기를 하면 실컷 애기한다  하는 것이, 도매금으로 ‘그것도 이 안에 들었나 안 들었나?’ ‘이 안에  들었다’ 말하면, 실컷 말한 게 이제 말 한 마디에 폭 싸여가지고서 그만  헛일이거든. 이래 놓으니까 이제 좀 준비해 가지고는 한번 만나면 말하자 해  가지고서 말해도 세 마디 안 돼서 그만 자복을 하고 그래 그만 ‘그만  말합시다’ 그만 이래 피해 버리요.

 그 사람이 마지막 죽을 때는 여기 와서 자기 그 생질 집에 와 가지고서 예수  믿는다고 죽으면서 나 죽거들랑은 절에 기별하지 마라 만일 기별하면 전국  중들이 야단날 터이니까 기별하지 말라고 숨어 와 가지고서 자기 생질 집에 와  가지고서 예수 믿고서 그래 죽어서 우리 김해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의 말씀이라. 택한 자는 말씀만 전하면 그  사람이 어떤 깊은 속에 빠져도 살아나와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들 공과 외우도록 그렇게 노력하고 하루 삼십 분 기도 이거 깔보면 안  됩니다. 큰일 납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요거 꼭 지켜야 앞으로 환난을 이기지  그리 안 하면 못 이깁니다. 앞으로 환난 이기는 것도 뚜드려 맞고 이기는 사람,  뚜드려 맞으며 이기는 사람, 안 뚜드려 맞고 칭찬받아 이긴 사람, 그런데 댓가는  없지 안해. 댓가는 없지 않는데 이 평소에 이 환난을 위해서 자기가 많은 정력을  들였고 정성을 들였고 시간을 들였고 이렇게 들였으면 진합태산이라.

 삼십 분 기도하는 거 그까짓 거 먼지만 하지마는 먼지도 많이 모으면 뭣 돼요?  먼지도 많이 모으면 뭣 돼지요? 먼지를 많이 모으면 뭣 돼? 진합태산이라. 티끌  진(塵)자 합할 합(合)자 태산이라. 진합태산이라 말이오. 티끌을 많이 모으면  그거 태산이 된다 말이 있어,  이러니까, 하루 삼십 분 기도 이거 뭐 그 정력, 하루 삼십 분 기도하려면 좀  수고하고 고생 아니요? 이 고생이 조금밖에 안 되는 것이지마는 이것을 벌써  우리가 오 년은 모아 놨으니까 이 상당히 큽니다. 자기가 생명 내놔도 하루 내놔  가지고는 이만한 정력이 안 돼. 이러니까 자꾸 이래 가지고 주 모아 가지고  보니까 나중에 가서 그 사람은 수월하게 평안하게 썩 이기는데 이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안 돼.

 이러니까, 우리가 이 삼십 분 기도하는 이걸 말했지마는 이 삼십 분 기도를 할  게 아니라 이 삼십 분 기도 기억하고, 이름만 기억하고 삼십 분 기도 기억하고  그 다음에는 계속 항상 기도해야 됩니다. 자면서도 잠들기 전에는 기도하고  가면서도 오면서 얘기하면서도 항상, 앞으로 이거 큰 환난 올 때에 내가  패전하면 안 될 터인데 그때에 내가 주를 모른다 하면 어찌 될까?  요새 보면 인정에 끌려 가지고도 예수를 팔고 조그만한 돈에 끌려 가지고도  예수를 팔고 감정에 끌려 가지고도 예수를 파는데 앞으로 생명을 내놔야 되는  그런 어려움에서 이기리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기게 해  주셔야 되지 안 하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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