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심신의 기능

 

1987. 1. 19. 새벽(월)

 

본문:갈라디아서 2장 17절∼21절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이 사활로 일곱 가지 대속하신 것은 나를 위한 대속이기 때문에 그 일곱 가지 대속의 구원이 내것이 됐읍니다. 일곱 가지 대속이 내것이 되어 일곱 가지 대속을 입은 나는 입은 채 주님의 것이 됐습니다. 주님의 것이 됐으니 이제는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내 안에서 사십니다.

그러면 주님이 내 안에서 나를 주관해 사시는데 이것이 의롭게 될려고 하는 것이요 의롭게 되는 것인데, 살려고 하는데 이라다가 내가 죄를 범했습니다. 죄를 범했으면 내 심신을 주님이 붙들고 사시는데 내 심신이 범죄했으니까 주님이 내 심신을 범죄케 한 것인가? “그럴 수 없느니라” 아닙니다.

그러면 내 심신은 주님이 붙들고 사시는데 왜 내 심신이 범죄했는가? 주님이 붙들고 사시니까 내 심신이 범죄할 때에는 주님이 내 심신을 붙들고 범죄했다 그렇게 판단하기가 쉽고 그렇게 논리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 심신을 붙들고 범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때 범죄는 누가 하는고? 범죄는 내가 했습니다. 범죄는 내가 했습니다.

그때 심신을 내 심신이기 때문에 내 심신을 내 맘대로 내 생각대로 해서 하나님의 일곱 가지 대속과 배치되는, 대속과 대립되는 그 행위를 내가 하고 싶어서 내 생각으로 내 마음에 그렇게 하고 싶어서 했습니다. 했으면 그때에 예수님이 범죄케 한 것도 아니요 내가 하고 싶어서 했습니다. 내가 할 생각이 나서 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할 생각이 나서 했으면 일곱 가지 대속에 대립이 된 그 행동을 하고 싶은 나 그것이 누구입니까? 그것이 막바로 나 아닌 나입니다. 나를 죽여 멸망케 한 나입니다. 나 아닌 것이 나로 가장해 가지고 나타난 거짓된 나입니다.

그것은 나인데, 그것은 나로서, 마음도 그것이 자기인 줄 알고 자기 마음으로, 자기 생각으로, 자기 소원대로, 자기 뜻대로 이와같이 한 그 나, 그걸 자기인 줄 아는데 내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입고 대속을 입은 내가 있고 대속을 대립하는 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일곱 가지 대속대로 그대로 살고 싶고 그대로 살아야 될 줄 아는 내가 있고 원치 안하는, 대속에 대립되는, 하나님 법을 어기는, 죄를 짓는 나도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둘이 있는 것을 우리가 그때에 알 것입니다. 한 나는 하나님의 대속을 벗어나지 않고 대속대로 살고자 하는 내가 있고, 한 나는 대속을 떠나서 대속에 대립되는 그 생애를 하고 싶은 나도 있고 내가 둘인 것을 우리가 거게서 발견할 것입니다. 요거 구별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때에 하나님의 대속대로 하나님과 화친으로 살고 싶고 화친을 버리고 하나님과 불목된 생활하기 싫은데, 하나님과 화친된 생활하고 싶은 나도 있고 불목된 생활하고 싶은 나도 있고, 또 하나님의 이 나타난 모든 법대로 살고 싶은 나도 있고 하나님 법을 어겨서 살고 싶은 나도 있습니다.

또 죄를 짓지 않고 어떤 죄가 와서 나한테 와서 부딪혀도 죄에게 복종하지 안하고 의롭게 살고 싶은 나도 있고 또 죄를 짓고 싶은 나도 있고, 그러면 죄를 지어서 안 된다 이라면서 마음으로나 생각으로나 뜻으로나 입술로나 또 성질로나 모든 습관으로나 이런 것으로서 하나님의 그 뜻을 어겨서 죄를 짓고 싶은 거 있고 죄를 안 지을라고 하는 것 있고, 또 ‘요거는 마귀의 유혹이다’ 마귀의 유혹을 받기 싫은 것 있고 마귀의 유혹을 마귀 유혹인 줄 알면서 그렇게 하고 요거는 하면서도 요거는 마귀 유혹인데 요거는 안 해야 되는데 하는데 그 하고 싶은 세력이 그것이 들어서 자꾸 마귀의 유혹을 끌어들입니다.

또 사망에 속한, 성경에 사망이라 하는 그런 행위를 하기 싫은데 사망이란 행위를 또 하고 싶어서 하는 자도 또 있습니다.

또 현실에서 진리대로 살고 싶은데 또 진리를 어기는 그 행동 하고 싶은 것도 있습니다.

영감대로 살고 싶은데 영감을 어기고 과거 생활하던 대로 그대로 지금 하고 싶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 과거에 생활을 여러번 해 봐서 그대로 하고 싶은 그것이 뭐이냐 하면 이제까지 습관이 들어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또 그때에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살아야 될 줄 알면서 이거는 분명히 내 중심이요 내 위주다 이걸 알면서도 자꾸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요렇게 살고 싶은 나도 있고 요렇게 살고 싶은 나도 있는데 마귀란 놈은 ‘이렇게 살고 싶은 네나 이렇게 살고 싶은 네가 그게 하나이다. 하나 네가 요렇게도 살고 싶고 요렇게도 살고 싶다, 요 하나라.’ 요렇게 미혹을 시켜 줍니다.

그럴 때에 ‘나는 이렇게 뜻대로 이렇게 살고 싶은데’ 또 그라다가 또 이렇게 또 이거 하나님의 뜻을 어긴 요것이 또 살고 싶습니다. 그 옛날 살던 그대로, 과거에 살던 그대로, 요 새생활 요것도 하고 싶고 또 과거 옛생활 그것도 하고 싶으고 요 둘이, 요것도 하고 싶으고 요것도 하고 싶은데 요거 하고 싶은 내나 요거 하고 싶은 내나 그 한 자기로 요렇게 알도록 마귀란 놈이 우리를 혼미시켜 가지고 그만, 마치 사람이 술이 취하면 옳은 것을 잘 구별하지 못하고 그 심령이 어두워지는 것처럼 또 사람이 마음이 많이 곤해서 피곤해서 잠이 되게 오면 그것은 그 생각이 혼미해져서 이렇게도 생각 이렇게도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마귀가 우리를 혼미케 만들어 가지고 이 자기나 저 자기가 한 자기인 줄로 요렇게 알게 하는 요 미혹을 우리가 벗어나야 됩니다.

그럴 때에 반드시 일곱 가지 예수님의 대속 요대로 살고 싶은 내가 있고 또 요 일곱 가지 대속을 벗어나서 일반 세상 사람이 사는 대로 살고 싶은 내가 있고 요래 있는데 세상 사람이 살고 싶은 나 요놈은 나 아닌 나입니다.

그거는 뭐이요? 그걸 잡아 가지고 해부를 해 보면 내 고기덩어리와 내 마음, 마음 안에 보면은 마음 안에 영이 들어 있지 안하고 마음 안에 마귀가 들어 있습니다.

마귀가 들어 있고 또, 마귀가 들어 있는데 내 마음을 해부해 보니까 내 마음에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인 그 악이 들어 있습니다. 또 자기 이제까지 습관이 들어서, 습관이 들어 가지고 내나 과거에 하고 싶던, 과거에 했던 그런 구습 그런 습성이 돼 가지고 하는 그 습성을 해부를 해 보니까 그 습성도 역연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습성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자기 아닌 악습이요, 자기 아닌 악성이요, 자기 아닌 악령이라.

요것을 원수인 것을 깨닫고 요놈을 물리칩니다. 요놈을 물리치고 요거는 내 생활이 아니라.

나는 뭐인가? 요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으로 내게 주신 요대로 살고 싶은, 그러면 하나님과 화친으로 살고 싶은 나는 해부를 해 보니까, 화친으로 살고 싶은 나는 해부를 해 보니까 쪼개 보니 그 속에 뭐이 들었느냐? 그 속에 중생된 영이 들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이 심판에 정죄받지 않고 하나님 심판을 통과한 자로 통과할 생활을 할라고 하는 그것을 쪼개 보면 그 속에 내가 내라는 것이 내나 구속받은 중생된 영 자기입니다.

또 자기가 죄에 대해서나 마귀에 대해서나 사망에 대해서 그것에게 종이 되지 안하고 거게서 자유하는 것, 죄야 오든지 죄가 어떻게 와서 세상 죄가 다 달라들어 가지고 나를 신강한다 할지라도 나는 죄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예수님의 대속에 피동되고, 죄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살라 하는 그것을 해부해 보니까 그것은 대속받은 중생된 영 참 자기입니다.

또 현실에서 진리대로 살고 싶고 영감대로 살고 싶은 그 자기를 이거 해부를 해 놓으니까 그 속에 중생된 영 자기가 들어 있습니다. 주님의 구속 받은 영 자기가 들어 있습니다.

그랬는데 요 왼쪽에 있는, 하나님의 구속을 버리고 안 믿는 사람대로 그대로 살고 싶은 자기는 그걸 해부해 보니까 중생된 영은 들어 있지 안하고 거게 마귀가 들어 있습니다. 거게 악성 원죄성이 요 들어 있습니다. 또 악습 그 본죄성이 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니까 아주 겉으로 보면은 다 자기 같은데 그 속에 보니까 아주 하나는 원수가 들어앉았고 하나는 자기의 주인되는 중생된 영이 들어 있습니다.

이러니까 요것을 우리 마음이 중생된 영인 자기인지 자기 주인인지 요 악령 악성 악습인 자기 주인 아니고 자기 주인을 죽인 원수인 그놈이 그 속에 들어 있는지 요것을 구별을 해야 합니다.

요거 구별하지 못하는 데에서, 들어도 잘 모르는데 요거 구별을 잘 못 하기 때문에 만판 예수 믿는 신앙 생활 하는 줄 알지마는 이름만 믿는 사람의 생활이지 안 믿는 사람의 생활과 꼭 같습니다.

사람이 자기는 몰라도 상대방은 보면은 잘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자기 마음이든지, 생각이든지, 소원이든지, 말하는 것이든지, 또 자기가 비판하는 것이든지, 평가하는 것이든지, 논리하는 것이든지 그런 것을 들어 볼 때에 중생된 대속 받은 자기 아닌 자기는 뭘로 알 수 있습니까? 그거는 뭐 어떻게 행동합니까? 그 행동하는 것을 간단하게 말하면 그 행동하는 것이 어떻게 행동합니까? 어떻게 행동합니까? 반대하는데 ‘반대한다’ 이라면 그것이 그때 어데 반대를 뚜렷이 합니까? 반대를 뚜렷이 안 하지요. 안 하는데 그때에 그것을 말이든지 행동을 들어보면은 이 중생된 새사람이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지 그렇지 안하면 옛사람이 행동하고 있는지, 옛사람이 행동하고 있으면 그 행동대로 따라 하면 자기 죽는 것이고 또 새사람이 행동하는 데 따라 하면 자기는 사는 것인데 그 사람의 언행심사를 내가 들을 때에 새사람의 언행심사인지 옛사람의 언행심사인지 그것을 무엇을 보고서 우리가 구별할 수가 있습니까? 일곱 가지 요 대속으로, 일곱 가지 대속에 맞은, 요 일곱 가지 대속대로 요렇게 그 사람 행동이 비추어 나오면 그것은 새사람입니다. 새사람이고 옛사람은 그라면 뭘로 비추어 나옵니까? 자기 중심 자기 위주입니다. 요거 말이지요. 자기 중심 자기 위주요.

요걸 잘 몰라요. 꾀 많은 사람이 요걸 모릅니다. 요 세상에서 복술 많은 사람은 요걸 모릅니다. 그게 복술 많은 것이 마귀가 많이 들어 가지고 마귀에게 많이 점령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본위로서 말하는 게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하는 것이 이기주의로, 이기주의로 자기 위주 자기 중심으로 하는 이기주의로 하는 것을 볼 때에 그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또 이타주의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이타주의로 하면은 그거는 그라면 새사람이겠습니까? 이타주의로 하는 거, 이타주의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유익되게 하는 것이 이타주의요 자기를 유익되게 하는 것이 이기주의, 자기 기자, 이기주의. 자기라는 기, 자기 기자. 이기주의라, 자기를 유익되게 하는 거.

이타주의와 이기주의가 있는데, 이기주의는 자기를 유익되게 하는 것이 이기주의요 이타주의는 다른 사람을 유익되게 하는 것이 이타주의인데 이타주의와 이기주의.

이타주의는 무슨 사람입니까? 이타주의는 새사람입니까 옛사람입니까? 이타주의라 다른 사람을 유익되게 하는 그 이타주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유익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타주의는 이거는 새사람이라’ 이렇게 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그 불교에서 대자대비를 하는 그것은 이타주입니까 이기주의입니까? 이타주의입니다. 모든 도덕에서 사랑과 화평을 가진다고 세상에서 이렇게 많이 말하고 있는 종교마다 도덕마다 말하고 있는 그것은 다 이타주의를 가치 있다 해 가지고 이타주의를 다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기주의로 자기를 유익되게 하는 이기주의는 다 못쓴다 이렇게 하고 이타주의는 다 좋다 이렇게 해 가지고 이타주의는 선이라, 이타주의는 그것은 다 의로운 것이라, 그것은 좋은 것이라 이래서 이타주의는 다 이것은 새사람이라 이렇게 보기 쉽습니다. 이타주의도 옛사람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어찌 됐든지 자기 유익하도록 이기주의로 그 사람이 말도 하고, 행동도 하고, 생각도 하고, 비판도 하고, 평가도 하고, 이기주의로 평기하면 으례히 그거는 옛사람입니다. 알겠습니까? 옛사람인데 그러면 새사람은 모든 언행심사를 할 때에 어떻게 하는 게 새사람인가? 다른 사람을 유익되게 하는 이타주의도 새사람이 아니고 또 자기 유익만 도모하는 이기주의도 새사람이 아니고 이타주의 이기주의는 다 이것은 옛사람이오. 이것은 안 믿는 불신자에게도 다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그 사람들이 선량하다 하는 것은 도덕이나 종교나 그 모든 철학이나 모든 사상들에게, 사람들에게 ‘이거는 이타주의기 때문에 이건 선하다’ 이 미혹에 빠져 가지고 그것은 자기네들이 ‘이타주의기 때문에 이거는 확실한 선이라’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가지고 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그 목표가 어데 있는고 하니 그것이 공산주의가 사회주의입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북에 있는 공산주의는 아직까지 사회주의에 나가지 못하고 사회주의 시작이라. 이러기 때문에 그 결국은 선한 것이다. 소련은 벌써 사회주의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북에 있는 공산주의와는 아주 다릅니다.

사회주의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중공은 그것이 공산주의가 처음부터 공산주의가 아니고 그것이 사회주의입니다.

이북과는, 이북 저거는 아주 상놈입니다. 이북 저거는 상놈이요 공산주의 치고도 상놈이오. 이러기 때문에 마지막에 저것들이 가족주의가 지금 되고 있다고 말하고 논평 맞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면 사회주의로 이렇게 되어 있는 그것은 사회주의는 뭐이냐? 다른 사람을 유익되도록 하기 위해서 부자의 것을 뺏들어다가 가난한 사람을 줘서 가난한 사람을 유익되도록 하자 하는 그것으로서 다 경제도 통일되고 모두 다 통일되자 하는 그런 주장을 해 가지고 이타주의니까 이것은 사회주의는 선이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것도 내나 이기주의나 꼭 같은 옛사람의 행동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종교와 도덕이나 그런 것은 다 이타주의의 꺼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타주의의 꺼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도는 선한 도라 모든 사람이 다 환영을 해서 받습니다. 그러나 이타주의 그것도 내나 옛사람이요 이기주의도 옛사람이기 때문에 겉어머리만 이타주의이지 속을 파고 들어가면 그것도 이기주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교의 석가모니가 대자대비의 이타주의인데 이타주의를 해부해서 파고 들어가면은 그 뭐이 있느냐? 악령 악성 악습이 주관해 가지고서 속에 자기 중심의 위주가 속에 알맹이가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자의 이 새사람이라 하는 것은 그러면 무슨 주의인가? 이기주의도 아니고 이타주의도 아니고, 그런데 사람들이 옛사람을 구별할 때에 그 이기주의가 돼 가지고 있으면 벌써 두말 할 것 없이 옛사람으로 판단해야 됩니다, 옛사람으로.

가만히 말을 들어 보면 전부 제 중심입니다, 제 중심. 자기만 유리하도록 그렇게 하지, 자기만 유리하도록 그렇게 합니다. 그러면 이거는 두말 할 것 없이 옛사람이요 이거는 도둑놈입니다.

그러면, 그러니까 나를 유리하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유리하게 하면 이게 선인가보다 해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유리하게 하는 것이 모든 이종교들이요, 모든 이 사상들이요, 도덕들입니다.

그러면 이타주의도 기독교 자기는 아니고 이기주의도 기독교 자기는 아니고 그러면 기독교의 참자기는 어떤 주의자입니까? 어떤 주의자입니까? 일곱 가지 대속주의자입니다. 알겠습니까? 일곱 가지 대속주의자입니다, 일곱 가지 대속.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유익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유익되도록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사활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이 사활의 대속으로 일곱 가지 나를 대속을 주셨으니까, 대속을 주셨으니 이 대속 주신 요대로 사는 것이 새사람이요 참사람입니다. 알겠습니까?

이것을 말을 해도 잘 못 알아듣는 것은 그것은 어떠냐 하면은 사람의 심령이 너무 악습에 파묻혀 가지고 있고 악성에 파묻혀 가지고 있고 악령 속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이 말을 들어야 깨달아지지를 못합니다.

이래서, 성경 가운데에 이계명 삼계명, 십계명까지에 있는 이 계명을 지키도록 하는 요것은 뭐이냐? 이 지키도록 하는 이것은 요것이, 이 계명 지키는 것이 이것이 자기의 구원은 아닙니다. 알겠습니까? 이계명으로부터 십계명까지 지키는 것은 자기 구원은 아니고 자기 구원은 어떤 게 자기 구원이냐 하면은 제일계명이 자기 구원입니다.

일계명이 자기 구원인데 일계명을 이해하고 납득하고 또 그것을 긍정하고 일계명을 정평정가해서 일계명으로 자기가 살고 싶은 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요 녹을 벗기는 것입니다, 녹을. 이계명으로부터 십계명까지는 녹을 벗기는 것.

“도적질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마라” 이거 이런 걸 이라면, 이라면 우리 심령이 좀 깨끗해집니다. 심령이 점점 깨끗해져. 심령이 깨끗해지면은 그 다음에는 제일계명, “내 앞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 하는 그 말은 이제 하나님으로써 자기의 중심을 삼고 자기 전부를 삼고 딴것으로 삼지 말라는 말입니다.

일계명은 하나님으로써 자기 주관자를 삼고, 자기 왕을 삼고, 하나님만 상대해서 살고, 딴것을 상대하지 말고 하나님 한 분만을 상대해서 살아라 하는 이것을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는데 모든 이계명으로부터 십계명까지 이 계명을 지키면 차차 그 사람의 심령이 맑아지고 깨끗해지고 밝아집니다. 명철해집니다.

명철해지면은 그 다음에 하나님, 이 자존자, 유일하신 하나님, 주권자, 주재자, 만주의 주, 만왕의 왕, 한 분이신 그분, 그분 한 분만을 상대하지 안하고 다른 어떤 것을 상대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 참이라는 완전에서 다 탈선된 것입니다.

완전에서 탈선된 것. 요거 이해가 됩니까? 하나 비유로 말한다고 하면은 사람이 여게서 그 활을 가지고 지금 저게 쏴서 뉘가 잘 맞히노 하는 활을 쏠라고 할때에 돌뱅이를 이래 그려 놓고, 돌뱅이를 이래 그려 놓고서 돌뱅이 속에 한가운데 점을 하나 꽉 찍어 놓고 이랬는데 그 돌뱅이 속에, 이 돌뱅이 그려놓은 데 화살이 돌뱅이 안에 꽂히면은 그것은 틀렸다 하지 안하고 그것은 맞혔기 때문에 합격이라 이래 합니다. 돌뱅이 안에만 맞히면 합격이라 합니다.

그러나, 합격인데 합격 속에 일등은 되지 못했습니다. 합격 속에 일등은 뭐이냐 하면은 요 돌뱅이 안에 그 점 찍어 놓은 데 그 점에 딱 들어맞아야 그게 아주 중앙을 맞춘 명중한 것이라. 그 한가운데를 맞춘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런 비유와 마찬가지로 이제 이렇게 이 이계명으로부터 십계명까지의 이 모든 것은 이 둘레 속에 들어간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래서, 이 신구약 성경에 모든 이 율법, 모든 율법 말이오. 그 율법이, 율법이라고 “이래라 저래라, 이라면 안 된다, 저라면 안 된다, 이라면 된다.” 하는, 신구약 성경은 율법이라면 율법입니다. 법칙이라면 법칙입니다.

이 법칙인데, 이 법칙은 뭐입니까? 이 법칙은 제가 과거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 법칙은 뭐라고 가르쳤습니까? 울타리. 법칙은 울타리라 말 여러분들이 많이 들었을 터인데 울타리라는 말을 학생들은 들으면 딱 기억하고 주일학생은 딱 기억하는데 이 세상에 잡된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은 이 대가리가 다 상해 있습니다. 대가리에 잡탱이가 꽉 막 박혀 있습니다.

그 속에 비유컨대 이 간을 해부해, 간이 아프다 쌓아서 간을 해부해 보니까 간에 그 암주머니, 암주머니, 암은 요 쪼그막씩한 좁쌀내끼같은 그런 자잔한 그거 주머니입니다. 주머니인데 그 암 새끼가 그 간에 꽉 박여 있습니다. 꽉 박여 있으면은 그 간을 다시 수술해야 소용 없습니다. 그거 전부 다 뭐 그거 긁을라 하면 간 다 없어지기 때문에 안 된다 말이오. 그거 할 수 없이 덮어 둬야 되는 것입니다. 꽉 박여 있습니다.

이거 모양으로 세상의 공부 지식을 많이 알수록 이게 인간의 심령 속에 이 암병 모양으로 꽉 박여 가지고 있습니다. 암병 모양으로 꽉 박여 있기 때문에 이거 하나님의 도리를 말해도 잘 듣지 못합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이 법칙은 울타리와 같은 것이다. 이러기 때문에 울타리 밖에 나가지 말아라. 울타리 밖에 나가지 말아라. 이 법을 어기지 말라 하는 것은 울타리 밖에 나가지 말라 하는 것이지 법을 어기지 안한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이 된 것은 아닙니다. 완전은 그 속에 중앙에 있습니다.

중앙에 있는데 이거 ‘법은 울타리라’ 이렇게 말해도 여게는 세상 걸 많이 생각지 안한 사람은 울타리라고 말해도 또 환하게 아는데 이 세상 것을 많이 아는 자들은 울타리라고 내가, 울타리라고, 이 법은 울타리라 하는 것을 벌써 수십 년 전부터 늘 여기서 가르치고 있는데 이걸 그렇게 ‘법은 울타리로 가르쳤다’ 이 기억이 없을 거라 말이오. 주일학교 학생은 요 도리를 말해 주면 딱 기억해 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일학교 학생 때에 이 옳은 도리를 가르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게 울타리 한가지요.

울타리인데, 그러면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그것이 다 구원이 되느냐? 아니오. 이라는데 구원은 어데 있느냐 하면은 구원은 어데 있습니까? 구원은 어떤 것이 구원입니까? 구원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구원이 몇 가지인지? 예, 이 일곱 가지. 이것만이 구원입니다. 이 법을 지킨다고 다 그게 아니오.

이래 지키고 지키고 하는 것은 그 심령을 밝도록 하고 심령에 때묻은 것을 때를 벗기고, 아무리 거울이 좋아도 이거 때가 묻어 가지고 있으면 이거 이거 안 보인다 말이지. 자꾸 때를 닦는 거라. 이거 “도둑질하지 마라” 도둑질하는 때가 묻었으니까 그걸 닦아버리고, “간음하지 마라” 그 때를 닦아버리고, 또 이거 “거짓말하지 마라. 거짓 증거하지 마라.” 닦아버리고, 또 “사람을 미워하지 마라” 닦아버리고, 또 “주일을 잘 지키라” 또 닦아버리고, 자꾸 요렇게 닦으니까 차차 차차 우리의 심령이 거울이 닦이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심령이 밝아지고 깨끗해집니다.

밝아지고 깨끗해지니까 이제 이 중앙, 바로 활 쏠 때에 한가운데에 명중하는, 한가운데에 점 찍은 거와 같은, 그 점 찍은 거와 같은 점 찍은 게 뭐이냐? 바로 예수님의 사활로 우리에게 일곱 가지 대속 준 그것이 바로 중앙이요 중심이요 그게 점 찍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 중심은 뭐 중심이냐? 자존자 하나님 한 분을 중심하는 것인데 이분 한 분을 중심하는 생활, 일곱 가지 대속은 그것이 전부 하나님 한 분을 중심한 생활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서 영감대로 진리대로 사는 그것도 하나님을 중심한 것이오. 또 삐뚤어진 것을 하지 안하는 것도 하나님을 중심하는 것이오. 또 이 사망, 죽고 망하는 여기에 걸리지 안하는 것도 그게 중심을 향하는 것이오. 마귀 그놈을 배제하는 것도, 마귀를 배제해 버리니까 하나님 한 분밖에는 없어.

이 영은 두 가지 영. 하나님의 참 영인 하나님의 영인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아닌 악령, 악령이 있고, 영은 그라면 영은 몇 종류입니까? 영이 몇 종류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영이 종류입니까? 영이 종류가 몇 종류요? 녜, 두 종류.

하나님의 영 또 악령 이 두 종류입니다.

그러면 악령은 갯수가 몇 개나 됩니까? 몇 개나 됩니까? 악령은 갯수가 몇 개나 됩니까? 억억억억만도 넘습니다. 알겠습니까? 억억억억만도 넘습니다. 그러면 또 하늘에 있는 그 천사의 수는 얼마나 많습니까? 억억억억만도 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영은 몇이나 됩니까? 몇이나 됩니까? 하나입니다.

삼위일체라는 거, 삼위라는 건 위가 서이지마는 하나입니다. 삼위일체.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하늘님이라 하는 것은 그것은 마귀가 하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가르쳐 준 말씀입니까? 마귀야. 하늘, 하늘, 천주교는 하늘이라 하늘님이라 이랍니다, 하늘님. 그거 순전히 천주교 그거 불교와 꼭 같은 겁니다.

불교와 꼭 같습니다.

언제도 하늘님이라 한다고 이걸 막 반대를 했지마는 그 번역 성경, 합동 번역 성경에는 하느님이라고 할라 하고 하나님이라 할라 하고 이래 시비를 이렇게 하다가 아마 그것까지는 너무 엄청나니까 못 하고 하나님이라 했지마는 천주교는 하느님이라 이랍니다. 하느님이라.

○○○씨는 천주교인입니다. 그 사람이 나한테 편지했는데 보니까 ‘하느님’ 이래 놨어. 하느님이라 이래 놨어. 그 사람 내가 천주교인이라 말을 듣기는 들었었는데 하느님이라 하는 그걸 보고서 이 사람은 천주교인이라 하는 것을 알았다 말이오. 그거 이게 다 우리는 하나님이라 하는 것은 한 분뿐이라는 뜻에서 하나님이라 이렇게 말해. 한 분뿐이라는 뜻에서 하나님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니까 이 한 분이신 이분을 중심해서 이분만을 바라보고, 이분만 바라는 건 이분만에게 소망한다 말이오. 그분에게만 소망하고, 그분만 의지하고, 그분만 두려워하고, 또 그분에게만 복종하고, 그분의 것이 돼 가지고 있고, 그분으로 인하여 모두가 다 움직여 살라고 하는 거 요것이 제일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계명부터 십계명은 이 면을 막는 계명, 저 면을 막는 계명, 물질에 대해서 부정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도둑질하지 말아라” 또 남녀 이성에 대해서 부정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간음하지 말아라” 또 이렇게 많은 날이 있는데 하나님이 복 주어 거룩하게 하는 요 날과 구별하도록 하기 위해서, 날과 날을 구별해 가지고 이거 할 날 저거 할 날, 하나님의 이 생명의 도를 받는 날과 도를 받아 가지고 자기가 그 생명의 도대로 사는 날과 요 날을 구별하기 위해서 “안식일을 지키라” 또 하나님이 이 자연 섭리하는 데에 이 비 올 때도 있고 눈 올 때도 있고 더울 때도 추울 때도 있고 하나님이 별별 이 우주의 자연이라 하는 것을 당신이 우리에게 필요하도록 우리 구속에 필요하도록 이렇게 섭리하실 때에 이것을 조부라운 생각으로, 알지 못하고 ‘오늘은 비가 안 왔으면 좋을 터인데 비가 온다, 오늘은 바람이 안 불었으면 좋을 터인데 바람이 분다, 오늘은 바람이 좀 불면 좋겠건마는서도 무더워서 도무지 더워서 못 견디겠네.’ 이게 제 주장대로 하는 거라. 그래서 그런 죄를 짓지 말라 하는 것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나님의 역사를 네가 망령되이 말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 모든 이계명으로 십계명까지는 이 일계명을 믿는 사람이, 일계명을 이해하는 사람이, 일계명을 비판하는 사람이, 평가하는 사람이, ‘일계명 지키는 요것만이, 과연 한 분이신 하나님 요분만을 바라보고, 요분만 의지하고, 요분만 두려워하고, 요분에게만 복종하고, 요분으로 인하여 사는 요것만이 참이지 그 밑에 거는 전부 다 탈선이다.’ 하는 것을 심령이 밝아지면 알지마는 심령 어두운 사람은 그걸 모른다 말이오.

그런 것을, 그러기에 성경에는 우리의 생명의 도를 우리에게 소개해서 생명의 도를 받을 수 있는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준비 공작으로 알맹이 아닌 이 껍데기의 모든 것을 공작시키는 거, 아무 이게 다 자연계시라. 콩도 속에 알맹이 고거 때문에 이 모두 다 잎사귀도 있고 줄기도 있고 콩이 여는 깍대기, 깍대기도 있고 이런데 고거 그 모두 있는 것은, 뿌리도 있어야 되고 줄기도 있어야 되고 잎사귀도 있어야 되고 콩 깍대기도 있어야 되고 그래야 우리가 소용하는 콩 알맹이 그것이 있어진다 말이오. 그러면 그 콩에는 제일 중심이 뭐이냐 하면은 알맹이 콩알 고거 그게 중심이요 그걸 위해서 모두가 다 있는 것이라 그 말이오.

신구약 성경에도 이런 거 저런 거 있는 것은 지금 가르치고 있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일곱 가지 구원이 되는, 일곱 가지 우리 구원이 된 거, 일곱 가지 구원된 거 요게 중심이요 요것을 위해서 모든 성경에 이런 교훈 저런 교훈이 있고 이런 모든 법도 이런 제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법칙이라는 것은 이 하나님의 법칙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법칙입니다. 그 법칙은 우리를 구원, 이거는 자꾸 이 법에 하지 말라는 거 안 하고 하라는 것만 하고 자꾸 이라다 보니까,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 안 하고 자꾸 이라다가 보니까 나중에 가서 종착이 어데입니까? 마지막에 그렇게 자꾸 그 버스를 타고 가니까 마지막에 종착점이 어데입니까? 종착이 어데요? 예수님의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이 종착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시간이 많이 갔는데, 여러분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믿음 안에 사는 것, 믿음 안에서 산다.

그러면, 또 요거 다 해석을 했는데 널리 쪼그매 요만치만 풀어 놓으면 여러분들이 복잡해 모른다 그 말이오. 요만치만 풀어 놓으면 몰라. 또 어떤 사람은 요렇게 풀어 놓으면 좀 잘 깨닫는 사람도 있고, 어제 ○○○교회 교인이 요 위에 18절에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헐었던 것 세웠다는, ‘헐었던 것을 세웠다는 것은 율법을 헐었던 것을 세웠다는 말인데 그거 아닙니까?’ 얼마나 자신 있기 때문에 나한테 와서 말을 했다 말이오. 그래 내가 그거 말해 줬는데, 헐었던 것을 세 다는 것은 일반 학자들이 다 율법으로 봅니다. 율법으로 보면 율법을 어찌 헙니까? 율법 못 헙니다. 하나님 율법을 헐 자가 있습니까? 하나님도 못 허요. 어떻게 하나님의 율법을 헙니까? 예수님이 이와같이 하는 거는 율법을 헌 것이 아니고 율법을 완료했습니다.

율법의 요구대로 다 했다 했어. 율법의 요구대로 만족을 일으킨 것이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약해서 율법 요구에 만족을 못 했는데 예수님이 율법의 요구를 만족케 했어.

그러면, 우리가 범죄했는데 범죄한 것을 범죄했으니까 ‘너는 범죄했으니까 죽어야 된다’ 이럴 때에 그러면 그 율법을 무시하는 것은 죽으라 했어도 안 죽으면 되지. 안 죽을 수가 있습니까? 이 율법에 죄를 범하면 죽이는 건 하나님의 법이 당신이 범죄하는 자는 죽는다 이래 법을 냈기 때문에 안 죽을 수 없어.

그러면 범죄했는데 그 범죄한 고거 율법을 해결을 할라고 하면은 어떻게 하면 해결하겠습니까?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벌을 받으면 그게 해결이 됩니다.

그러니 율법을 헌 게 아니오. 율법에 볼 일을 다 봐 버렸어. 알아듣겠습니까? 율법을 헌 게 아니고 율법에 할 일은 다 했다 말이오. 할 일 다 했으니까 제까짓 게 더 할 수 있습니까? 율법이 더 할래야 더 할 것 없어. 율법 할 일 다 했는데.

헐었다는 것, 율법 할 일을 다해 버리고 완료하고 지금 새 것 만들어 놨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새 것 일곱 가지 대속, 일곱 가지 대속은 율법에 대한 일을 다 율법을 완료한 것입니까 일곱 가지 대속은 율법을 무시한 것입니까 율법을 완료한 것입니까? 율법을 완료한 것이오. 율법을 무시한 것 아니오.

이런데 여기 “헐었던 것을” 하는 이거는 율법을 말한다 하는 것으로서 해석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마 보나 안 보나 모든 주석에 다 그렇게 돼 가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라.

이러니까 “믿음 안에서 산다” 요것만 하면 간단하게 요것만 여러분들이 기억하고 기도하십시오.

나는 예수님이 내 대신 행동을 다 했습니다. 내가 죽어야 될 때는 당신이 대신 죽었고, 내가 또 행해야 될 것은 대신 행했고, 내가 화목해야 될 것은 대신 화목을 했고, 내가 또 마귀 이겨야 될 것은 대신 이겼고, 죄와 사망과 마귀도 내가 배격해야 될 것을 당신이 대신 배격했고, 내가 하나님을 향해서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영생해야 될 것을 당신이 대신 했고, 이 일곱 가지 대신 한 것은 이것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알겠습니까? 율법을 어겼습니까 율법을 무시했습니까? 율법대로 완전히 완성을 했습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율법의 권세를 다 쓸 대로 다 썼습니다. 율법의 권세에 다 응했습니다. 응해서 율법을 다 완성했다 말이오.

완성을 이와같이 한 것을 우리에게 줬습니다. 준 것이 일곱 가지 대속입니다, 일곱 가지 대속.

첫째는 하나님과 화친의 생명,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의 공심판을 통과한 하나님의 의, 또, 이 죄를 이긴, 죄를 이긴 건 뭘로 이겼습니까? 죄를 무시했습니까? 죄의 값으로 예수님이 죽음으로 죄를 멸한 것입니다. 그래야 법대로 되는 것이지 그건 법을 무시한 게 아니라. 법을 헌 게 아니라. 법을 가지고 막 세워버렸어. 그러면 예수님이 죄는 형을 받아서 죄를 없애버렸고, 죄는 죄값을 받아서 죄를 없애버렸고, 죄를 없애버리니까 사망이 와서 건드릴 수 있소 없소? 죄의 형을 다 받았는데 죽은 자를 또 죽이요? 예수님이 대신 죽었기 때문에 사망은 다시 죽일 수가 없다 말이오. 하나가 죄 지었으면 하나 죽이면 되지 안하요? 그러면 내가 죄 지은 걸 예수님이 대신 죽었기 때문에 나는 죽일 권리가 없어. 알겠습니까? 이 사망이 다 완료했다 말이오.

그라고 난 뒤에 이 마귀란 놈이 죄 없어 사망 없으니까 마귀 제까짓 놈이 할 일이 없어. 마귀 그놈은 죄가 있어야 이걸 붙들고 하는 것인데 그 마귀는 죄 짓게 하는 것을 제가 하는 것이요 죄 지은 자를 송사해 가지고 하나님의 법에다 붙여 가지고 사망시키는 것이 마귀가 하는 것인데 죄가 없어졌지 사망이 없어지니까 그놈 할 일 없어. 그놈 저절로 죽어야 돼요. 가 버려야 돼. 저는 필요가 없어.

마귀에게서 해결됐지.

또 하나님을 향해서 영감대로 살고 진리대로 사는 거니까 무엇이 티잡을 것이 있습니까? 이 티잡을 것이 있소? 예수님의 일곱 가지 대속을 가진 자를 어떤 면으로써도 이 탈을 잡을 수가 있소 찡탈을 잡을 수가 있소 티를 뜯을 수가 있소? 이 티 뜯을 길이 있습니까? 티 뜯을 면이 있소? 티 뜯을 길이 없어. 아무리 해도 거게 책잡을 그런 티뜯을 것이 하나도 없어. 없는 이 구원을 우리에게 주셔서 나는 아무것도 없어도 이 구원은 내것 됐습니다.

그러면 이 구원은 내것 됐으니 이 구원은 놓지 마십시오. 아무리 죄를 지어도 놓지 마십시오. 이 구원은 내것 됐고, 알맹이. 내것 됐고. 이거 내것 됐고. 이래 이제 할까? 이런데 알맹이 이거 요래야 표시 잘 할까? 알맹이 됐고, 내것 됐고, 알맹이 내것 됐고, 또 나는, 이 대속을 내것으로 삼아 가지고 있는 나는 주님의 것 됐고, 주님의 것 됐고, 또 주님의 것된 나는 내가 사는 게 아니라 이것은 주님이 지금 붙들고 주님이 사시고, 그라면 요 몇 층어리입니까? 세 층어리.

세 층어리인데 그라면 첫째 제일 바깥 껍데기는 뭐입니까? 밖에 껍데기는 뭐이요? 주님이 나를 붙들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당신이 내 심신을 붙들고 사시는 것이 제일 껍데기, 그 안에는 뭐입니까? 주님의 것 된 것, 또 그 안에는 뭐입니까? 대속이 내것 된 것.

이러기 때문에 내가 이 껍데기 이것이, 주님이, 내 심신은 주님이 붙들고 살아야 되는데 요게 죄를 지었다 말이오. 죄를 지었을 때에는, 죄를 지을 때는 ‘내가 죄를 지었으니까 이 대속도 다 헛일이다’ 이렇게 생각지 마. 죄를 지었을 때는 “이는 의롭게 될라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은 그리스도께서 범죄케 한 것이냐?” 요것이 그리스도가 주장해 가지고 사는 건데, 내 심신은. 그리스도가 주장해 가지고 살 터인데 요 심신이 범죄했습니다. 범죄했으면 그리스도가 요 범죄하구로 한 것입니까 뭐입니까? “그럴 수 없느니라” “없느니라” 그러면 요게 범죄했으면 누가 범죄했습니까? 요거 범죄한 거, 심신이 범죄했으면 심신을 범죄케 한 것이 누구입니까? 자기 아닌 자기인데 요걸 가리켜서 로마서 7장에는 “죄가 들어” “죄가 죄 지었다” 그러면 죄, 악령도 그놈은 죄뭉텅이요, 악성도 죄뭉텅이요, 악습도 죄뭉텅이요 그거 다 죄뭉텅이입니다, 죄뭉텅이. 이런데 요것이 범죄했을 때에는 말하기를 이거 주님에게 바쳐서 주님이 점령했어. 당신의 것이라. 당신이 뭣 주고 샀소? 일곱 가지 구속을 주고 당신이 산 것이요, 우리 심신은. 이거 주님의 것 됐다 말이오.

주님의 것이니까, 이거 주님의 것 됐지.

주님의 것 됐으니까 주님의 것된 거는 주님이 주관으로 살아야 될 터인데 주님이 주장으로 살지 안하고 이 죄를 범했다 말이오. 죄를 범했으면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주님이 주장할 터인데 내 심신 이놈을 이 마귀란 놈이, 도적놈이 들어와 가지고 이 심신을 지금 도적질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이것을 우리가 할 때에 요것이 범죄했을 때에 우리 하는 태도가 뭐 있느냐 하면은 어떤 사람은 ‘주님이 나는 사죄 칭의 화친의 이거 모든 대속 일곱 가지 대속을 입었는데 대속이 헛일이다. 대속이 헛일이다. 대속이 헛일이고 대속 받았다 하는 내가 범죄했다. 내가 범죄했다.

내가 범죄를 했습니까 죄 그놈 악령 악성 그놈이 들어서 내 몸뚱이를 이용해 가지고, 이 몸뚱이 이거, 마음하고 몸하고는 어리석기 때문에 내라 하고 제 마음으로, 제 생각으로, 제 소원으로, 제 마음이라 제 생각이라 제 소원이라 하는 것이니까 제 마음 제 생각 제 소원인데 그것이 일곱 가지 대속을 원하지 안한 그 내라는 나는 요거 참자기입니까 거짓된 내입니까? 거짓된 내라 말이오. 나 아닌 나라 말이오.

그놈이 들어서 요 심신에게 나와 가지고 내라고 이라니까 요 심신 요거는 어리석어서 참자기 주인인 영인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되어져 있는 원수인지 알지 못하고 이 심신은 저인 줄 알고 ‘내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내 마음대로 하지.’ 내라고, 그렇기 때문에 나와 나를 구별해야 됩니다. 나와 나를 구별 잘해야 되지 거짓된 나도 있고 참 나도 있기 때문에 요 나와 나를 구별하지 못하는 데서 사람이 다 망하고 맙니다.

그러면 참 나는 뭘로 봐서 압니까? 일곱 가지 대속으로만 살라고 하는 그것이 참 자기입니다. 또 일곱 가지 대속을 떠나서 안 믿는 사람과 같이 이거 자기 중심으로 악령 악성 악습 이것으로 살라 하는 것은 안 믿는 사람들은 다 그걸로 사는 건데 안 믿는 사람같이 살라 하는 요것은 그것이 자기 아닌 자기입니까 자기입니까? 자기 아닌 자기라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 아닌 자기 그놈이 들어와서 요게서 지금 요것을 지금, 주님이 붙들고 내 심신은 붙들고 살아야 될 터인데 주님이 붙들고 살지 안하고 어만 놈이 붙들고 살았다 말이오. 요 셋째가 딴놈이 돼 버렸어.

그러니까 우리가 거게서 할 일은 뭐이냐? 그렇다고 그라면 주님이 사활로 내게 영원 전부터 예정하시고 작정하셔 가지고 이와같이 사활로 이루어 놓은 이 일곱 가지 대속을 이거 내것 아니라고 내던질 것입니까? 뺏길 것입니까? 아니오. 요걸 요동치 마십시오. 이거는 내것이라. 요동치 마십시오.

그라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 그라면 알맹이, 맨 알맹이는 요동하지 말고 그 다음에 나는 주님의 것된 것을 요동할랍니까? 요동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그 다음에 주님의 것이니까 주님이 살으셔야 되는데 이 마지막에 주님이 살지 안하고 마귀가 와 살았습니다. 내 심신을 마귀란 놈이 주관해 가지고 살았습니다. 주관해 가지고 살았으니까 마귀가 주관해 가지고 살았으니까 마귀가 주관해서 내 심신으로 범죄했습니다. 범죄해 살았습니다.

범죄해 살았으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받은 영 내가 그렇게 했습니까, 대속을 받은 영 내가 그렇게 했습니까, 이 대속을 받은 심신 이것이 자기가 본능적으로 그래 했습니까, 이것이 마귀와 악령 악성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그와 같이 했습니까? 지금 이 범죄한 거는 누가 했습니까? 마귀의 유혹받아 그래. 유혹받아 가지고 했습니다, 유혹받아 가지고.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까 이거는 건드리지 말라 말이요, 내가 말하는 게.

이거는 건드리지 마. 죄를 하루 천 번 지어도 이거는 건드리지 마. 이거는 요동하지 마. 이거는 내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흔들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내 주지마.

마귀 요놈이 자꾸 ‘네가 뭐 범죄했는데 뭐 대속이 있다 말이가?’ 자꾸 요래 가지고 지금 하니까, 요 대속은 변하지 못합니다. 변하지 못해요. 이것이 실상은 변해지지 안하는데 이 마음이 변한 줄 알 때에 이 마귀의 이용물이 자꾸 된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주님의 것 된 이것도 주님의 것 됐으니까 주님의 것 내것 됐고 나는 주님의 것 됐으니까 여게는 둘 이거 이거하고는 흔들지 말아요.

고장은 어데 있느냐? 고장은 지금 이것을, 이것을 주님이 당신 뜻대로 이용해야 될 터인데, 이놈을 주님이 뜻대로 해야 되는데, 주님이 뜻대로 이용하는 요게 돼야 될 터인데 주님이 요것을 뜻대로 사용하지 않고 마귀란 놈이 뜻대로 사용하는 어만 놈이 거기 나왔다 말이오. 마귀의 뜻대로 요걸 사용했다 말이오. 마귀 뜻대로 사용했으니까 요건 딴거 아닙니까? 요러니까 고장이 맨 알맹이에서 고장이 생겼습니까 속껍데기서 고장이 생겼습니까 제일 겉껍데기에서 고장이 생겼습니까? 제일 겉껍데기에 고장이 생겼는데 제일 겉껍데기에 고장이 생겼으면, 제일 겉껍데기 고장이 생겼으면 제일 겉껍데기에는 나를 하나님이 붙들고 살아야 되는 그것이 제일 겉껍데기 아닙니까? 알아듣겠어요? 그게 제일 겉껍데기 아닙니까? 나를 붙들고 하나님이 사는 게 제일 겉껍데기 아니요? 겉껍데기 범죄를 했으니까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17절에,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요 말입니다. 이제 말한 그 해석이오.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요거 이해가 됩니까? 이제 해석한 것이 요거 이해가 됩니까? 요 해석한 것이 이해가 돼요? 그러면, 요래 가지고 있는데 제일 겉껍데기 말이요. 겉껍데기 이거는 주님이 살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제는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했으니까 이거는 주님이 살아야, 주님이 살아야 되는데, 그러면 주님이 사시고, 내게서 나를 붙들고 주님이 사시고 그 안에 알맹이는 나는 주님의 것 됐고, 주님의 대속은 내것 됐고, 이래야 되는데 고장이 여게서 고장난 것도 아니고, 여게서 고장난 것도 아니고, 여게서 고장났습니다.

여게서 고장이 났는데 그러면 요것을 그리스도가 나를 주장해서 의롭게 살라고 요래 하다가 죄를 지었으면 그리스도가 죄를 짓게 한 것 아니냐? 그리스도가 죄 짓게 한 거 아니라 그 말이오. 그리스도가 죄 짓게 한 게 아니면은 요 죄 짓게 한 것은 어떤 놈입니까?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요 그리스도가 살게 하는, 요걸 꼭 언제 내가 물건을 하나 만들면, 붉은 거 푸른 거 요거 좀 만들어 가지고 왔으면 좀 알 건데 여러분들이 이거 심령이 어두워서.

그러면, 이거 예수님이 이거 죄를 짓게 한 것이냐? 예수님이 죄 짓게 한 것이 아니라 말이오. 죄 짓게 한 거는 딴놈이라 하는 그걸 지금 말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가 범죄케 한 것이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놈이 어떤 놈이냐? 이놈을 찾아라. 이 범죄케 했으면 이 어떤 놈이 했느냐? 이거 악령 악성 악습 그놈 옛사람 그놈이 들어와 가지고 사이비하게 이게 썩 들어와 가지고 ‘마음아, 이래 하자.’ 이라니까 마음은 눈이 어두워요. 마음은 눈이 어두우니까 영인지 이 악령 악성 악습 옛사람 그놈인지, 옛사람 자기인지 새사람 자기인지 이거를 구별하지 못한다 말이오. 어떻게 해서? 눈이 어두워서.

그리 눈이 어두우니까 구별하지 못하니 자꾸 이런, 이계명으로부터 십계명까지의 이 모든 성경 말씀을 살라 하는 것은 심령이 밝아지면은, 이제 ‘요것은 요 셋째 것 맨 껍데기, 맨 끝에 이 껍데기 요게 범죄한 것은 요것은 주님이 살아야 되는데 주님이 살지 안했으니까 주님이 범죄한 것이냐? 주님이 범죄케 한 게 아니고 요 도둑놈이 들어왔다.’ 네 심신이 주님을 주님으로 주님을 네 주인으로 모시고, 중생된 영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을 네 주인으로 모시지 안하고 요 너 아닌 너 그놈이 들어오니까 참 너인 줄 알고 그놈하고 이 마음하고 고기덩어리하고 합작을 했기 때문에 요게 탈색해 놓은 요 탈색에 다시 마귀란 놈이 붉은 색깔을 물들였다 말이오.

물들였으니까, 물들였으니까 이 대속의 일곱 가지도 건드리지 말고, 나는 주님의 것 된 여게도 건드리지 말고 여게 지금 요것이 예수님으로 살아야 되는 요것이 마귀로 살았으니까 요게 예수님으로 사는 것을 푸른색 초록색이라고 한다고 한다고 하면은 이 마귀로 사는 건 붉은색이라 한다면 요거 붉은색이 돼 버려.

붉은색이 됐으면은 이제 할 일은 뭐입니까? 붉은색이 됐는데 일곱 가지 대속을 의심을 해야 되고 버려야 되겠소, 자기가 주님의 것된 거 그것을 이제 다 무너뜨려야 되겠소, 요 셋째 것 요것이 이것이 초록색이 들어야 새파란 생명인데 생명색으로 물들어야 될 게 빨간 색깔 들어, 주홍 같은 붉은 죄의 색깔로 빨간색이 들었으니까 할 일은 뭐입니까? 뭘 해야 됩니까, 지금 하기를? 뭘 탈색해야 됩니까? 요것을 붉은색을 탈색을 시켜 버리고 여게다가 푸른색을 자꾸 물을 들여서 새파랗게 해 놓는다 말이오. 새파랗게 해 놔야 돼.

요거 할 일이지, 요거 지금 당면해 할 일이지 이거나 이것은 할 일은 아닌데 이걸 건드리지 말라 말이오. 이거 안 건드리면 어째? 이거 만일 이 끄트머리 이게 됐다 할지라도 이 둘이 조그마치라도 상관이 없이 돼 가지고 있으면은 내가 주님의 것이 돼 가지고 있는 이것이 변동 안 하고 그 안에 주님의 대속이 내것 돼 있는 게 변동이 안 되면은 이제 일곱 가지는 내가 완전히 가졌습니까 안 가졌습니까? 완전히 가졌습니다. 일곱 가지 나는, 완전히 영생을 가진 자요, 자유를 가진 자요,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요, 하나님과 화친을 완전히 가진 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담대히 지성소에 들어가라” 이 가진 자라.

이런데 이거 마귀란 놈이 이걸 내놓도록 해 가지고, 내가 범죄할 때 ‘나는 예수님의 대속이 헛일이다’ 대속에는 근방에, 대속은 멀리 들어 있습니다.

이러니까 내가 범죄했을 때에는 지금 내가 이 공사해야 될, 이 공사를 해서 고쳐야 될 것이 어데 있습니까? 고쳐야 될 것이 어데 있습니까? 주님의 이 대속을 입은 이 대속에서 손을 봐야 됩니까, 내가 주님의 것 된 여게 손을 봐야 됩니까, 주님이 살으셔야 될 터인데 주님이 살지 안하고 어만 것이 와 살았으니까 여게 손을 봐야 됩니까? 손 볼 것이 어데입니까? 제일 껍데기에 손을 봐야 된다 말이요, 껍데기에.

이러기 때문에, “원치 안하는 것을 행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죄가 행했다.

이러니까 내 육체 속에는 의를 행할 만한 그 실력이 하나도 없다.” 위에서 받아야 되지 없다 말이오. 이거는 죄가 이용하면 죄의 도구되고, 이 종 이게 공산주의가 이 종을 쓰면은 공산주의가 치면 공산주의 종이 되고 내가 쓰면은 목사의 종이 될 거라 말이오. 그렇지 않소? 이것 모양으로 우리 심신이라 하는 거는 독자적인 권위라 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도 지금, ‘이 심신이라는 거는 독자적인 권위라는 거는 없다’ 하는 이것도 지금 나가면은 이거 교계에서 막 야단이 날 건데 이게 절대로 맞습니다, 절대 맞아요. 독자적인 권위는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심신은 마귀의 것이 되든지 하나님의 것이 되든지 일 초도 독립은 못 합니다.

저 소전에 가면은 소가 수백 마리나, 큰 소전에 가면은 그 소가 김가 소가 이가 소가 되고 이가 소가 박가 소 되고 이거 자꾸 주인이 바꿔지는데 그러면 그 소가 주인 없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습니까? 한 시간 있을 수 있습니까 혹은 일 분 동안 있을 수 있습니까 주인 없는, 주인 없는 소로는 일 초도 있을 수가 없습니까 어떻습니까? 그래요? 어찌 그래? 사고 팔면 조금 그 사이가 있는데? 일 초도 제가 주인 없이는 못 있습니다. 왜? 벌써 말뚝에 매어 놨지마는, 돈을 받으면 돈 준 사람의 소 되고 돈을 안 받았으면 이미 가지고 있는 주인의 소 되고. 그 소는 주인 없이, 제가 주인 없이 제가 독립할 수는 일 초도 없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요와 같은 것이요, 우리 심신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언제든지 믿음에, 주님의 대속은 내것, 나는 주님의 것, 이제 사는 것은 주님이 내게 사는 것. 주님이 사는 것인데 그 제일 겉껍데기 거게 고장이라 말이오. 이제 주님이 사니까 주님이 내게 와 가지고 사셔서 내 안에서 주님이 살고 주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고 이래 살아야 되는데 엉뚱한 생활했다 말이오.

엉뚱한 생활했으면 어데 가서 손을 봐야 됩니까? 이제 저 속에 알맹이 일호에 가서 손을 봐야 됩니까 이호에 가서 손을 봐야 됩니까 삼호에 손을 봐야 됩니까? 삼호에 고장났다 말이오. 삼호에 손 보고 이호를 손대지 말라 그 말이오. 일호를 손대지 말라 말이오.

일호 이호를 손대지 말아야 이제 나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이래 가지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건데 이 마귀란 놈은 자꾸 ‘일곱 가지 헛일이다.

네가 범죄하지 안했느냐? 일곱 가지 다 헛일이다. 네가 그래 놓고 또 믿는 척하고 있느냐?’ 이렇게 미혹을 주는데 거게는 삼호가 고장났기 때문에 삼호에서 고장났다 말이오.

이것은 주님이 범죄케 한 것도 아니요 내가 이거 범죄를 원한 것도 아니고 요놈이 내 마음에 들어와 가지고 유혹을 해서 하고 싶어서, 그러면 하고 싶은 것은 내 마음이 하고 싶었습니다. 내 마음이 하고 싶은 것이 그게 대속 받은 마음입니까 대속 받은 마음이 요 악령 악성에게 미혹을 받아 가지고 감염된, 그 악령 악성에게 감염된 마음입니까? 이 죄를 짓고 싶습니다. 도적질을 하고 싶습니다. 도적질을 하고 싶습니다. 또 이제까지 하던 그 음행죄를 또 범하고 싶습니다. 범하고 싶으면 그 대속 받은 내 마음이 그와같이 하는 것입니까 내 마음이 요 악령 악성 악습이라는 음신 그놈의 미혹을 받아서 그 감염이, 물이, 음행물이 들고 도적질 물이 들어 가지고 감염이 돼 가지고 그 마음이 그걸 원해 가지고 했습니까? 원해 가지고 했는데 음행하고 싶은 악령의 음신을 뽑아버려 버리고 도적질하고 싶은 물욕심을 뽑아버리고 요것만 뽑아버려 탈색해 버렸으면 내 마음은 깨끗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까 깨끗한 마음이 안 될 수 있습니까? 깨끗한 마음이 될 수 있어.

이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내가 말하는 거 여러분들이 이거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요. 아무래도 알아야 돼요. 알고 믿어야 되지 그리 안 하면 만판 일생 동안 예수 믿는다 해야 전부 마귀 생활이요 죄악 생활이오. 아무 소용이 없어. 뭐 사람이 껍데기, 이 중앙을 찾아가기 위해서 때 닦는 거, 때 닦는다 해 가지고 알맹이가 됩니까? 알맹이 안 돼.

“도적질하지 말아라, 뭐 사랑해라, 거짓말하지 말아라.” 이것이 구원입니까? 구원 아니오. 알겠습니까? 이것은 구원을 지금 찾아가기 위해서 우리 심령을 밝게 하는 것이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 이런 게 들어 때가 끼었기 때문에.

이런 걸 다 밝으면 목적이 뭐이냐? 목적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확신해서 이 대속은 제것 되고 저는 주님의 것 되고 이제 주님의 것 된 저는 주님이 주관해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이 심신은 내 소원대로 하지 안하고 주님의 소원대로 사는 거 요대로 살도록 하는 것이 요것이 정상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요 셋이 있는데 아무리 범죄해도 고장은 삼호에서 난 고장이지 일호에서 난 고장 아닙니다. 일호를 건드리지 마십시오. 이호를 손대지 마십시오. 삼호에 그런데 삼호에 고장났는데 삼호에 고장난 데 구별하면 삼호 고장난 것은 그리스도가 이와같이 지금 한 것이냐? 그리스도가 한 것이 아니라 말이오.

그러면 뭐이냐? 내 속에 죄 그놈 들어와, 내나 옛사람 그놈이 들어와 가지고 살짝 간교하게, 어떻게, 나와 나를 구별하지 못해. 금방 ‘예수님의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은 내것이라’ 하는 내 속에 요대로 살고 싶었는데 금방 또 죄 짓고 싶습니다. 살고 싶은 나도 있는데 금방 죄 짓고 싶은 내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놈이 살고 싶은 나와 죄 짓고 싶은 나와 둘이 하나인 줄, 다 자기인 줄 아는데 자기가 아니라. 그 속은 아주 이거는 원수와 참 자기 주인과 판이하게 이래 다른 것인데 이 심령이 어두워 놓으니까 ‘내가 주인인데’ 이라니까 `아, 그렇습니까? 들어오십시오.’ 이거 여자 말이오. 여자 등신 여자가, 여자 등신이 눈은 뜨고 있어도 등신이고 봉사고 아따 눈은 뜨고 있어도 등신이라. 아무것도 몰라. 아무것도 모르니까 자기 남편이 와 가지고 이래 떡 들어와 가지고 이래 들어오니까 ‘아이구 들어오십시오’ 이라더니만 또 남편이 살짝 나가고 난 다음에는 간부 이놈이 들어오니까 저거 남편인 줄 알고 ‘들어오십시오’ 하나는 원수 간부 그놈이고 하나는 자기 본남편이라 그 말이요. 알겠습니까? 이와 같이 이렇게 나와 내가 구별할 수가 없어서 나와 나는 너무 사이비해 가지고 구별하지를 못하고 이거는 찰나로 이렇게 바꿔지기 때문에 이거 구별하지 못하는데 나와 나를 볼 줄 아는 요 눈을 가지지 안하면 예수 믿는 게 헛일이라 그 말이오. 기본구원은 있지만 건설구원은 없습니다. 나와 나를 구별할 줄 알아야 됩니다.

나와 나는 그라면 이 참 나와 거짓된 내가 이렇게 바꿔질라 하면 바꿔지는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한 십 분 걸립니까? 한 오 분 걸립니까? 한 일 초 걸립니까? 일 초도 안 걸려. 일 초도 안 걸리는데 그러면 그 바뀔 때 무슨 소리가 나옵니까? 바뀔 때 소리도 나오지 안해. 일 초도 안 걸려.

이런데, 그것이 그러면 껍데기 이거와 저거와 다른 무슨 색깔이 다릅니까 표가 납니까? 안 나요. 뭣 보고 압니까? 뭣 보고 아요? 이 내인지 저 내인지, 이 참 내인지 거짓된 내인지 뭘 보고 압니까? 뭘 보고 아요? 여게 요 말해 봐. 참 내인지 거짓된 내인지 뭘 보고 알아? 일곱 가지 대속을 자기 것으로 삼고 이것이 소원이고 이걸로만 살라 하는 내가 있고 일곱 가지 대속을 벗어나서 안 믿는 사람과 같은 욕심으로 살라 하는 내가 있으니 그걸 보아서 알 수 있다 말이오.

바람이 부는데 이거는 동풍인지 서풍인지 눈에 보입니까? 안 보입니다. 그러나, 그 바람이 들어와 가지고 이 나무들이 서쪽으로 싹 기울어지면은 동풍 불었구나.

동쪽으로 기울어지면 서풍이 불었구나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이거 여게가 남쪽이지. 나무들이 이래 남쪽으로 쭉 기울어집니다. 이리 넘어갑니다. 그라면 어데 바람 불었소? 북풍 불었지? 또 이게 남쪽이고 이게 북쪽이라. 나무가 이 북쪽으로 다 기울어집니다. 어데 바람 불어 왔습니까? 남풍이 불었지.

이거와 마찬가지로 나와 나 그놈은 도무지 바뀌기도 어떻게 민첩하게 착 바뀌어 버리든지 찰나로 바꿔지기 때문에 나와 나를 구별하지 못한다. 구별하는 것은 뭘로 구별하느냐? 나와 나 그놈의 이 결과의 작용을 봐서 구별할 수 있다, 작용을 봐서. 어떻게 작용을 봐서? 이 거짓된 나 그놈은 세상 사람이 원하는 거와 같은 그걸 원하고 있고 이제 새사람 나는 일곱 가지 대속을 원하고 있다. 그 소원과 행동을 봐서 알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을 원하고 행동하는 거는 참 내기 때문에 안심하고 내 심신을 다 맡겨서 할 수 있고 이제 이 세상 사람과 같은 그런 거, 계명을 어기는 말이지. 그런 거는 그것은 옛사람 행동대로 원하는 그것은 내가 아니라 그거 뭐입니까? 내가 아니라 나의 원수인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나 아닌 내, 내 원수인 나, 근본 이 중생되기 전에 인간의 나를 죽였던 원수의 나, 나 아닌 나, 원수인 나, 거짓된 나, 나를 죽인 나, 요 나를 구별할 줄 모르면 구원은 헛일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기에 예수 믿는 구원은 요 심령이 밝은 사람이 요렇게 명상하고 생각해 가지고 이 구원이 되는 것이지 껍데기 그런 구원이 아니오. 과학 중에 과학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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