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

 

1989. 5. 2. 화새.

 

본문: 골 3:1-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당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4절에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신데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오셨는가,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들어오셨는가, 또 우리 안에 어떻게 계시는가 하는 데 대해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데 들어오실 때에 먼저 대속하신 이  대속이 우리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대속이 우리 안에 들어오셨고, 또 대속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게 됐고, 또 대속으로 말미암아 진리가 우리 안에 들어 오시게 됐고, 또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신 데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에 어떻게 들어오셨는가? 들어오신 것이 먼저 죄를 완전히 없이 하신  사죄로, 또 하나님의 공심판을 완전 통과한 완전 의로, 또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이 화친의 대속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셨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우리에게 들어오시게 됐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인데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어떤  요소로 들어오시게 됐는가? 네 가지 요소로 들어오셨는데, 네 가지는 예수님의  대속을 하나로 삼아서 네 가지입니다.

 네 가지로 우리 안에 들어오시게 됐는데 그러면 우리 안에 들어오신 그리스도는  어떻게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는가? 역사하고 계시는 것은 먼저 사죄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죄 없는 자, 죄와 상관 없는 자로 우리에게 살게 하는 역사를  하시고, 하나님의 공심판에 자유할 수 있는 완전 의 완전 의라 말은 하나님이  입법하신 전지자의 입법을 완전 이행한 것을 가리켜서 의라 그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의도 있지마는 로마서 1장에 보면은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서  여게 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라는 말은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로  입법해 놓은 그 입법 완전 이행을 말합니다.

 완전 이행의 의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또 하나님과 상호 내주, 서로  내주하면서 서로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이렇게 하나되어  상호 내주하는 이 화친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또 성신의 감화로 역사하고, 또  진리로 역사하고, 하나님과 하늘나라를 향한 소망으로 역사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신데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어떻게 계시며 어떻게 역사하는가? 우리가 죄를 없이 할라고 죄를 범하지 안하고  죄 없는 자로 자기가 살려고 하는. 죄 없는 자로 살라고 하는 그것이 곧 첫째  아담에게 속한 내가 하는 게 아니고 죄 없이 살라 하는 그것이 누구입니까?  그것이 곧 그리스도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게 살라고 하는 그 운동이, 그 힘이 그것이 곧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그리스도시요. 곧 하나님이십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과 동거 동행할라고,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셔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라고 애를 쓰는 그것이 곧 뭐이냐 하면은  하나의 운동이요 작용이 아니라 곧 그리스도십니다. 하나님과 서로 상호 내주해  가지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라고 하는 그것이 곧 그리스도인데 그러면 이렇게  살려고 하는 그것이 곧 뭐이냐 하면은 진리로 살라고 하는 것이요, 그것이 곧  영감이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또 뭐이냐? 그것이 하나님과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이 소망으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논리적으로, 논리적이란 말은 우리가 말로 하는 말로 이렇게  표현한다는 말인데, 논리적으로 말하면 네 가지라고도 할 수도 있고 여섯  가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가 더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 이  세 가지 능력을 합해서 예수님의 대속이라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예수님의 피라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세 가지와 또 진리 영감 하늘나라를 향한  하나님을 향한 그 소망 이 세 가지, 이래서 여섯 가지라고 한 수도 있고 또 네  가지로 이렇게 표현할 때도 있는데 그것은 네 가지로 표현할 때에는 여섯 가지로  표현한 것을 간추려서 그렇게 간단하게 하느라고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이래서 우리 안에서 이 네 가지 작용, 네 가지 역사 또는 여섯 가지 작용, 여섯  가지 역사, 이 한가지 말인데. 이렇게 역사하는 그 역사는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사람의 작용은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의 작용은 아니고 껍데기는  사람이지마는. 하기는 꼭 첫째 아담에게 속한 영육이 하는 것으로 그렇게  여겨집니다. 영육이 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마는 실은 영육이 하는 것이 아니고  영육 안에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난 자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담으로  난 그것은 곧 누구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또 그것은 하나님의 지체요,  하나님의 몸이요, 그 우리의 생명이요 그리스도십니다. 그가 작용해서 이와 같이  하고 있는데 하는 것이 나타날 때에는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마치 우리가 첫째 아담의 자손된 우리들도 그런 신비한 역사가 꼭 같이 있습니다.

뭐이냐? 우리가 보는 것은 눈이 하는 줄 알고, 또 말하는 것은 혀가 하는 줄로  알고, 또 듣는 것은 귀가 하는 줄로 알지마는 그것이 한다면 생명이 떠나고 난  다음에라도 그것이 다소라도 작용할 수가 있지마는 생명만 딱 떠나면 귀도 듣는  일 못하고, 눈도 보는 일 못하고, 혀도 발표하는 그런 일을 못하고, 또 이 수족도  수족이 하는 일을 못 합니다. 못하고 이거는 완전히 송장되어 있는데 그라다가 혹  그 생명이 다시 돌아오는 수 있습니다. 이래서 이런 것을 혹 기절하면 그 사람이  뭐 몸에 있는 맥박도 다 뛰지 안하고 신경도 없어지고 완전히 송장이 됐는데  송장이 됐다가 그 생명이 돌아오게 되면은 그게 처음에는 활동을 잘 못 하지마는  조금씩 이제 맥박이 뛰고 또 호흡을 하고 이래 가지고 나중에 가서는 뭐 듣기도,  보기도, 말하기도, 또 이런 행동 저런 행동을 하기도 또 모든 것을 다 이렇게  상대해서 상대를 사람인지 짐승인지 물건인지 그런 것을 바로 지식하기도 하고  이렇게 합니다. 하는 것은 그것은 얼핏 보면은 보는 것은 눈이 하는 줄로 이렇게,  듣는 것은 귀가 하는 줄로, 또 말하는 것은 혀가 하는 줄로 이렇게 사람들이  알지마는 실은 그 안에 있는 생명이 들어서 그것을 다 그렇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여섯 가지 생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여섯 가지 행동하는 것, 죄 없는 행동 하는 것, 또 의롭게 행동하는 것, 하나님과  서로 상호 내주하며 동행하는 행동하는 것, 성령을 감화로 행동하는 것. 진리로  행동하는 것, 하나님과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는 것,  우리가 과거에 예수 믿지 않을 때는 순전히 피조물에게 소망을 가졌습니다.

피조물에게 소망을 가졌지, 자존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소망을 가지지  안했지마는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가집니다. 뭣이든지 하나님이 해  줘야 될 줄을 알고, 어떤 사람은 믿는 사람 가운데서도 자기의 노력으로 이와  같이 하면 된다 하나님이 해 주는 것으로 이렇게 믿지 않는 사람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이 하신다 이렇게 해도 우리가 논리상  그런 것이지 실은 우리가 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이러니까 전적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렇게 복종하는 일을 하지 안하고 하나님과 인간이 둘이  합작해 가지고 이렇게 하는 줄로 이렇게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해서 반만  믿지 다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과 사람이 합작해  가지고 구원을 이루어간다 하는 그렇게 주장하는 주의가 있고, 또 칼빈파는  '아니다. 보기에는 사람하고 하나님하고 합해 가지고 하는 것 같지마는 순전히  하나님이 혼자 하시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하는 요렇게 믿는 것이  칼빈주의입니다. 그러면 '전적 하나님의 은혜라' 이렇게 하는데, 그러면 우리가  모든 구원 이룬 그 행위, 산 생명의 행위를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이다 하는 그것을 믿는 것이 칼빈주의입니다. 칼빈주의는  요만큼만 말했지마는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어떻게 작용하시느냐 하는  데 대해서 구체적인 분석 말은 하지 안했으나 이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와  가지고 작용하는 것이 곧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과 성령과 진리와 하나님을 향한  소망 이 여섯 가지로 작용하는데 그 작용하는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작용하는  그것이 우리 안에 와서 그 작용을 해서, 과거에는 그와 정반대로 우리는 죄만  지었고, 하나님을 거스렸고, 불의를 했고, 하나님을 대적했고, 피조물을 주인으로  삼아 가지고 살았고, 땅의 소망만 가지고 살았고, 영감 없이 악령의 감화로  살았고, 진리 없이 인간의 자율과 모든 주관과 이런 욕심으로 가지고만 살았던  것인데 지금 이렇게 살게 되니까 이 살게 되는 이게 뭐이냐? 그것이 곧  그리스도요, 그것이 곧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그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것은 신적 요소로 된 하나님의 아들이지 피조물  요소로 된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신적 요소, 하나님의 요소로 된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곧 이 여섯 가지인데 여섯 가지가  하나가 됐습니다. 여섯 가지가 하나입니다.

 그러면 진리와 사죄와 칭의와 화친과 하늘나라의 소망과 영라과 요 여섯 가지로  말하지마는 여섯 가지는 하나입니다. 진리 하나 안에는 요 여섯 가지가 다 들어  있고, 또 영감 하나 안에는 요 여섯 가지가 다 들어있고, 사죄 안에도 요 여섯  가지가 다 들어있고, 칭의 안에도 요 여섯 가지가 들어 있고, 하나님과 화친  안에도 요 여섯 가지가 다 들어 있고,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이 소망 안에도 요  여섯 가지가 다 들어 있습니다. 여섯 가지는 하나입니다. 여섯 가지는 그것이  하나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단일성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단일성이라.

 그러면 하나가 이렇게 확대해 가지고 여섯 가지로 나타냈는데 여섯 가지로  나타낸 더 그것이 퍼져나갈 때에는 이 만물 안에 았는 만물 속에까지 어느 한  만물에게도 안 계시는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만물 안에 계신다  요렇게 말씀했습니다. 만물 안에 계신다 말은 말하자면 요 화초 속에도 계신다는  말이오. 화초 속에도 계신다는 말이오. 또 곤충 속에도 계신다는 말이오. 그러면  만물 안에 계신다 만물 안에 계시는데 그들에게는 뭘로 계시는가? 그들에게도  모든 생명 작용을 하고 또, 생명 작용이라면 개미가 볼 줄 아는 그것도 생명  작용이요, 먹을 걸 찾는 그것도 생명 작용이요, 저를 해하면은 꽉 무는 그것도  생명 작용이요, 그게 다 생명 작용이라 말이오. 모든 것이 다 생명 작용이라.

그러면 생명 작용 그것은 하나님의 그 능력이 떨어져 나와 가지고 거게서  역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 직접 역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만물 안에 계신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보다도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은 이제 더 고차원에서 우리 안에 이렇게 계셔서 역사합니다.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된 것은 뭐이냐?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 된  것이요, 그리스도의 몸 된 것이요, 그러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고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했는데, 그리스도의 분자 된 것이라. 이런 말은 쓸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리스도의 분자란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부스러기라,  그리스도의 쪼갱이가 떨어져 왔으니까 그리스도의 분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분자라고는 못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언제든지 성경에 발표하기를 '연합됐다' 또 '몸이다 '지체다' 또  '생명이다' 이렇게 발표를 했습니다.

 이래서 우리 육이 이런 저런 작용을 하는 그 작용은 껍데기 보면은 그 모든  지체들이 하는 것같이 해서 속에 폐는 폐 할 일이 있고, 간은 간 할 일을 하고  있고, 또 신장은 신장 할 일을 하고 있고, 심장은 심장 할 일을 하고 있는데 그게  하는 것같이 보이지마는 실은 속에 생명이 그 안에서 모두 다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일하는 것은 생명이시다. 생명이 일하고 있는데 생명 떠나면 그것은  아무것도 못한다. 생명이 떠나면 그거는 썩고 아무것도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첫째 아담의 자손된 이것이 이런 것 저런  것 모든 걸 하니까 첫째 아담의 자손 제 이목구비 수족, 제 영육이 하는 것으로  이렇게 보지마는 영육이 하는 발표로 나타나기는 나타나지마는 그 영육을 하게  하는 속에 능력은 뭐이냐? 능력은 하나님의 아들이 하고 있습니다. 능력은  하나님의 아들이 하고 있다 말은 곧 그리스도인이 하고 있다 말이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생명이 되셔 가지고 역사해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것은 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하는 것인데, 그리스도가  하는 것은 생명이 하는 것인데 생명이 하는 그것은 뭐이냐? 완전이 하는 것이요,  불신이 하는 것이요, 영원 요소가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는 영생이 다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고 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신데 그리스도가 떠나면 어찌 되느냐?  그리스도가 떠나면 다른 거 없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고 젊은 사람이라도  생명이 딱 떠난 지 일 분이 되면은 벌써 썩습니다. 껍데기 안 썩는 것은 안  썩지마는 제일 잘 썩는 것은 일 분만 생명과 끊어지면 생명 작용이 없으면 그만  썩습니다. 그 다음에는 썩은 것이고 뭐 없어지는 그 작용뿐이지 딴거는 하지를  못합니다. 다만 그것이 살아 움직이는 것도 속에 생명 때문에 움직여서 역사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둘째 아담으로 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 이렇게 작용을 하면은 그것은 다 산 생활이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  작용하지 않는 것은 다 죽은 생활이 됩니다.

 이래서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니라 하는 그 말은  영의 생각이라 하는 그 영은 우리 영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령인데 성령이  생각하는 것이라 말은 성령이 생각하고, 성령이 원하고, 성령이 행동하고, 성령이  작용하는 그 작용은 다 생명과 평강이 된다. 성령이 작용하면 성령이 작용하는 그  작용이 나타날 때에는 뭘로 나타납니까? 성령이 작용하는 그 작용하는 것이 밖에  나타나기는 뭘로 나타납니까? 뭘로 나타나지요? 첫째 아담의 자손도,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첫째 아담의 자손도 그 소에 생명이 없으면은 송장되고  썩어버리는데 살아서 움직이는 그것은 생명 작용인데 생명 작용이 나타날 때는  뭘로 나타납니까? 눈으로 나타나고 뭐 코로 나타나고 지체로 나타납니다. 지체로  나타나는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은 생명이 역사할 때에  생명이 역사하는 그 역사가 나타날 때에는 뭘로 나타납니까? 뭘로 나타나지요?  육체의 그것은 모든 지체, 코 눈 그런 걸로 나타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아들된 이 아들이 생명이 역사할 때에, 그 생명이 역사하는 것이 나타날 때는  뭘로 나타납니까?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나타납니다.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나타나고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나타나도록 작용하는 것은 누가 작용합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작용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작용하는 것은 뭐이 작용하는  것이냐? 그리스도가 작용하는 것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작용하는 것은 무슨  작용인가? 그것은 여섯 가지로 작용하는 그 작용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그리스도가 자기에게 떠나면, 그리스도가 떠나는 것은 몇  가지가 떠나는 것입니까? 여섯 가지가 떠나는 것입니다. 여섯 가지 그게  뭐입니까?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영생하는 생명이요, 그것이. 그것이 완전이요,  그게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아들이오. 하나님의 아들인데 이 여섯  가지가 떠나면, 여섯 가지가 떠나면 곧 썩고 죽고 망하는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는 육신의 생각이라 하는 그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겁니까? 첫째 아담의 자손을 말합니다.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살면 망하는  것 죽는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고린도후서 5장 17절 이하에 보면은 '이제부터는 우리가 육체대로 사람도  안 알고 육체대로 그리스도도 안 알고 또 육체대로 만물도 알지 안한다' 그 말은  뭐이냐 하면은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서 모든 기거 동작을 하지 않는다. 이제는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기거 동작을 한다.

 '너희들이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땅엣 것을 찾지  말고 위엣 것을 찾으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찾으라 말은 이것은 멸망선 이하의 것을 찾지 말고 생명선 이상의 것을 찾아라.

생명 세계의 것을 찾아라. 완전을 찾아라, 영원을 찾아라, 불변을 찾아라, 영생을  찾아라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러니까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그 말은 위엣 것을 네가  계산 대고 땅엣 것 그까짓 거는 계산으로 치지 말아라. 그거는 있는 것으로 삼지  말아라. '위엣 것을 생각하라' 말은 이제 생명이 산, 하나님의 아들이 살기를  얼마나 사느냐? 하나님의 아들이 하루 사는 데에 십 분을 살았느냐, 이십사  시간을 살았느냐? 하나님의 아들로 산 그것만 계산 대지, 그것만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만 산 것이지 그 외의 것은 다 헛일이라 그 말이오.

 하나님의 아들로 살지 안하고서, 하나님의 아들로 살지 안한 것은 뭘로 산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로 살지 안한 것은 뮐로 산 것이지요?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산 것이라 그 말이오.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산 것은 생각지 말라 말은  계산하지 말라. 그래 뭘 가치로 삼고 뭐 게산하지 말라. 그러니까 생명으로 산 것,  하나님의 아들로 산 것 이것만이 가치있기 때문에 그것만 이래 계산 대지 딴것은  계산을 하지 말라 그 말이오. 온 천하를 얻어도 그까짓 거는 하나도 없는 것  사망뿐이라 말이오. 사망 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다 존재가 아닌 것으로 다  멸망이기 때문에 멸망 계산 그것은 네가 멸망하는 그거나 아는 것이지 멸망  그것은 네 수입 계산은 아니라 그 말이오. '위엣 것을 생각하라' 하는 것은, '위엣  것을 생각하라' 말은 네가 하루 종일 사는 데는 위엣 것의 수입도 있고 땅엣 것의  수입도 있고 하기 때문에 위엣 것의 수입이 네 수입이지 땅엣 것의 수입은 네  수입이 아니다. 이러기 때문에 육체로 말미암아 사는 자는 '육체로 말미암아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사는 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거두느니라'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하루 사는 데에는 위엣 것에 지금 수지 계산을 따져서 위엣  것만이 가치요, 네것인 것을 알고 위엣 것만을 계산 대는 자로 네가 살 수도 있고  땅엣 것을 계산 대는 자로 살 수도 있으니 땅엣 것을 계산 대는 자는 천하를  차지혜도, 천하를 다 차지해도 그것은 위엣 걸로 산 자의 위엣 것의 수입에  먼지만한 것도 당하지를 못한다. 먼지만한 것도 그거는 영생이 완전이지마는 온  천하를 얻고도 그것은 소용이 없다.

 이래서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하는 것은 '잃든지' 하는 말은 천하 것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아들은 파묻어버리고, 이제 또  '잃든지 자기를 빼앗기든지 하면 무슨 소용 있느냐?' 자기 빼앗긴다는 것은  하늘나라의 수입된 그것이 영원히 자기의 것이지 하늘나라 수입이 아닌 거는  자기 것이 아니라 말이오 하늘나라의 실력기르는 그것이 자기 실력이오, 하늘의  부강을 가지는 것이 자기 부강이지 하늘나라가 아닌 땅의 것은 그것은 아무  자기에게는 상관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생각지 말아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 선생님들은 이 공과 해봤자 일 년 해도 공과 몇개 안 됩니다. 몇 개 안  되는데 이 공과를 꼭 외우고 요대로 실천해서, 매주일 한다 해도 일년이 몇  주일이요? 오십두 주일인데 우리는 한 공과 가지고 네 번 다섯 번 하니까 일  년에 이 공과가 몇 번 됩니까? 열 번이나 열두 번이나 그래밖에 안된다 그  말이오. 요걸 자기가 외우고 요대로 실천하면 요 안에 구원이 다 들었습니다. 이  공과를 사람들은 예사로 하지마는 제가 공과를 하나 연구하면, 이번에도 여섯  가지 복을 말했는데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복, 또 영생을 이미 가진 거, 영생을  우리가, 영생 가지고 지금 살고 있는 복, 또 우리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복, 또  복 세 가지는 뭐입니까? 천직. 이는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 뭐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자꾸 이래 생각하면서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위엣 것을  계산을 대고 땅엣 계산을 대지 말아라. 나는 오늘 지금 수입할 때 내가 뭣 뭣,  직장에서 지금 영전이 됐다, 뭐이 됐다, 뭐 얼마 물질을 수입했다, 그런 걸 네가  생각지 말아라. 그거는 생각지 마라. 그것은 다 죽은 것이기 때문에 암만 해 봤자  안 되는 것이니까 그것은 네가 산 것을 주고 죽은 것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가치로 삼지 말고 위엣 것을 생각하라 하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 공과를 꼭 외우고 실천할 것. 하루 삼십 분 기도 요거 잃지 안하고 계속하는  요것이 그것이 뭐이냐? 벌써 그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이 앞으로 환난을  이길 증거요. 하루 삼십 분 기도 이걸 그만 흐트러 지내버리고 하는 그게 뭐이냐?  앞으로 환난을 이기지 못할 그 증거입니다. 그것이 벌써 싹수요. 이래서 어떤  사람들 말 들으니까 하루 삼십 분 기도하다가 '아, 이거 오 분이 모자랐다.' 오  분은 그 다음 시간에 채우고 어쨌든지 그날 동안에 오 분을 채우고 그날 오 분을  못 채우면은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하, 내가 어제는 오 분이 모자랐는데 다시 오  분을 채우겠다.' 하루 기도하는 것이야 뭐 얼마든지 많이 기도하지마는 자기  미래를 위해서 자기와 관련된 미래의 어려움을 위해서 기도하는 그것이 하루  삼십 분 기도라 그 말이오. 우리가 기도하는 거 뭐 삼십 분만 합니까, 뭐 세  시간만 합니까? 거의 다 우리가 기도로 지내지요. 이렇지마는 미래를, 자기  장래의 환란을 위해서 기도하는 그것만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요것을, 안 되면  .그 다음에 채워서라도 요걸 꼭 계속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그게  벌써 앞으로 승리할 그런, 그런 벌써 싹수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권사님들은 아홉 분이 다 나와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홉 분이 다  나와서 기도한 이것이, 이 건강을 보고 나는 좋아합니다. 이 모두 다, 다 모두  팔십각들인데 그래도 지금 짱짱하게 그래 가지고 이래 하고 있지, 또 목사님은 두  분이 나오셔서 기도하셨고, 또 장로님들은 여덟 분 나왔습니다.

 은사 위치에 있는 분들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겨준 것은 참 아들이요 그게 참  자손이요, 이러기 때문에 그것은 기르기를 자기 마음 속에 품어놓고 길러야  됩니다.

 그러기에 이 육신의 자녀도, 뭐 다른 은혜가 많지마는 그래도 낳은 값이 제일  크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 부모가 은혜 중에는 제일 큰 은혜가 돼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씨가 그 속에 들어 있지 또 거기서 속에서 자랐는데 얼마나 자랐소?  뱃속에서는 열 달 자랐고 바깥에 나와 가지고는 뭐 이래 뭐 또 인제 이런  간호해서 이래 하는데 바깥에 나왔을 때부터는 벌써 값을 한다 이랬어. 아무리  자식을 길러서 공부를 해도 세 살까지의 자식이 부모를 기쁘게 한 그것만 해도  댓가가 다 된다 이렇게 말했어  그러니까 열 달만 길렀지마는 우리 참 믿음의 아들이라 하는 것은 이건 열 달만  기르는 게 아니라 내내 길러야 돼, 내내 길러. 그게 안 기를 수가 없어요. 내내  길러.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그 사람을 위해서 계속 기도하게 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자기 자녀라는 증거요, 또 그것이 뒤에 나타나기 때문에 아버지와 자녀이기  때문에 그거는 변동할 수가 없어.

 그런고로 사무엘은 요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 뭘 어짜라고? 기도하지 않는 무엇을 안 하겠다고? '기도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요 교리를 꼭 잡고 자기에게 속한  이것을 자기가 기도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생각하고 그게, 껍데기가 백지 이리  저리 한 것이지 속에는 알맹이가 하나라. 부모고 자손이고 새끼인데,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희들은 태에 난 것을 잊을지라도 나는 잊지 안하고  손바닥에 기록하고 있다' 하는 것이 더 신령한 자녀가 더 중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두 마음 속에 기르지 안했기 때문에 효력이 없어. 마음 속에 기른  것은 효력이 있어요.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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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381 구원과 멸망/ 베드로후서 1장 1절 / 840401주새 선지자 2015.10.25
380 구원과 멸망은 항상 언제 어디서나/ 누가복음 21장 34절-38절/ 830928수새 선지자 2015.10.25
379 구원과 승리 방편/ 마태복음 4장 5절-11절/ 860807목후집회 선지자 2015.10.25
378 구원과 율법과의 관계/ 마태복음 5장 17절-20절/ 890218토새 선지자 2015.10.25
377 구원과 하나님의 사랑/ 요한복음 20장 19절-23절/ 880403주전 선지자 2015.10.25
376 구원론/ 마태복음 13장 14절-16절/ 870609오후교역자회 선지자 2015.10.25
375 구원론/ 로마서 1장 16절-17절/ 860702수새 선지자 2015.10.25
374 구원론/ 로마서 1장 17절/ 860427주새 선지자 2015.10.25
» 구원론/ 골로새서 3장 1절-4절/ 890502화새 선지자 2015.10.25
372 구원론, 일곱 가지 축복/ 창세기 12장 1절-9절/ 881023주후 선지자 2015.10.25
371 구원론-심신의 기능/ 갈라디아서 2장 17절-21절/ 870119월새 선지자 2015.10.25
370 구원론-건설구원/ 누가복음 16장 10절/ 840920목새 선지자 2015.10.25
369 구원론-설교록의 보존/ 갈라디아서 2장 15절-21절/ 870601월새 선지자 2015.10.25
368 구원론-중생-옛사람/ 로마서 6장 4절-7절/ 871205토새 선지자 2015.10.25
367 구원만 생각하는데서 나오는 능력/ 에베소서 1장 3절-14절/ 870912토새 선지자 2015.10.25
366 구원방편과 재료/ 누가복음 16장 10절-11절/ 880325금새 선지자 2015.10.25
365 구원성으로 들어가는 법/ 이사야 26장 1절-7절/ 800106주후 선지자 2015.10.25
364 구원으로 된 성/ 에베소서 1장 5절-23절/ 890803목새 선지자 2015.10.25
363 구원의 15단계/ 요한복음 9장 35절-41절/ 800119토새 선지자 2015.10.25
362 구원의 가치/ 디모데후서 3장 15절-17절/ 870111주전 선지자 201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