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율법과의 관계

 

1989. 2. 18. 새벽

 

본문: 마태복음 5장 17절∼20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우리 구원에 대해서 좀 복잡한 일들이 있읍니다.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이렇게 말을 하고, 또 '행함으로 구원 얻는다' 행함을?  또 이렇게 말하고 이래서 이것이 통일되지 안하고 확정 지워지지를 안해서  사람들이 구원 얻는 데에 지장이 많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행함을 자꾸  강조함으로 믿음이 약하여진다, 우리 구원은 믿음으로, 우리가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행함으로 되는 그것도 있지마는 행함으로 되는 것만 아니고 믿음으로  되는 게 많다' 그렇게 말합니다. 또 행함을 그렇게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 총공회는 너무 행함을 강조하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게 까다롭기만  까다롭고 힘들기만 힘들고 어렵기만 어렴지 구원이 잘 이루어지지를 않는다.

이루어지지 안하는 그 예를 든다면, 그분들이 예를 들기를 '주일학교는 서부교회가  그렇게 많지마는 그게 장년반되는 것은 별로이 없다. 그 학생들이 다 올라와  장년반이 된다면은 굉장한 숫자가 될 터인데 그렇지 않는 그게 정치가  잘못됐든지 교훈이 잘못됐든지 된 것 아니겠는가?' 또 그렇게들 말합니다.

 또 하나 말하는 것은 '행함을 그렇게 강조해서 잘 믿으면 뭣인가 잘 믿는  표시판이 있어야 될 터인데 표시판이 없다' '그 뭣이 표시판이 없느냐?' 없는  이유는 '총공회에 속한 교역자들은 교역자 될 만하면 죽고, 은혜 있다 하면 죽고  다 일찍 죽어 버린다. 홍순철 목사도 일찍 죽었고, 전성수 목사도 일찍 죽었고, 또  신준범 조사도 일찍 죽었고, 또 서 목사도 일찍 죽었고, 주 집사도 일찍 죽었고,  또 이동화 목사도 겨우 살 만하니까 또 죽어 버렸고 일찍 죽는다.'  '그렇게 행함을 너무 자꾸 강조하고 이러니까, 너무 지나치게 자꾸 이렇게 그만  조아대서 사람들을 조아대 놓으니까 너무 힘을 써서 사람들이 다 비정상이 돼  가지고 단명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유유하게 믿음으로 하지 안하고 자꾸 행함으로만 이래 하기  때문에 그래 된다' 또 이렇게들 말을 합니다. 그라는 사람들은 우리 교역자  회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회중에서도 말합니다. 말하고 저한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반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나한테 충고를 모두 하기를 '아무래도 이 총공회는 너무 목사님이 모든  것을 강조를 하고 이렇게 너무 좀 지나치게 자꾸 행함을 말하고 조아대니까 좀  아마도 그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말하는 사람을 내가 여럿을 접해  봤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럴 때마다 얼떨떨해집니다.

 또 아마 이거 교역자들도 이거 자꾸 행함을 자꾸 이래서 '너무 그것을 암만  목사님은 그리 말해도 조절해서 이래야 되지 목사님 말만 듣고 자꾸 그와 같이  하는 사람들은 보라 다 이렇게 모두 하는 사람들이 모두 단명으로 가지  안했느냐? 이러니까 좀 유유하게 이렇게 목회를 해야 되지, 또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행함 가지고 우리 구원이 되는 게 아니다' 여게까지 이렇게  나오니까 뭐 교역자들도 전부 허리끈 다 풀어 놨고 지금 제사 주장하는 거는  이거 뭐 박살이 나는 셈입니다.

 저는 또 거기 대해서 이거 좀 얼떨떨하기 때문에, 그거 성경은 보면 그례지  않은데 이게 이럴 수가 있겠나! 하나하나를 내가 따져봤습니다.

 홍순철 목사가 암병으로써 죽었는데 그 사람이 마지막 설교할 때는 절어서는 못  왔고 메어 가지고 와서 강단에 와 가지고 설교를 했고, 강단에 설교 마치고 나서  메고 가 가지고 자기는 일어나지도 들지도 못하고 간신히 일어서서 강대상을  쥐고 설교하고 옆에서 이렇게 메고 자기 사택에 들어가니까 한 몇 분 있다 그만  세상을 떴습니다.

 그러면 그게 뭐일까! 그게 너무 지나치게 믿고 자꾸 그 교훈이 너무 지나쳐서  그리 됐을까? 그게 뭐일까? 저는 '막바로 그게 순교다.' 순교라 하는 것은 주님과  주님의 도와 형제에게 전하는 복음을 위해서 죽음이 있어도 죽음보다 주님의  사명이 강해서 사명에 대한 감당하는 그것이 더 강해 가지고 죽음을 잊어버릴  만치, 죽음을 물리칠 만치 그렇게 강하게 했으니까 그게 순교다 그렇게 그걸 제가  깨달아졌고,  또 전성수 목사님도 그분이 내나 암으로 떠났는데 자기가 암병이 걸려 가지고  떠나는 그 시간까지도 내가 사람들 접촉해 보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했고, 또  사람들에게 끝까지 악수를 하고 이렇게 아픈 증세는 나타내지 안하고 그저  그렇게 기운이 없으며 그라다가 세상을 떴고,  또 서 목사는 자기가 죽도록 충성하고 참 모든 사람이 너무 지나치다고 할 만치  그렇게 충성해서 아주 피골이 마르다시피 그렇게 해 가지고 아무래도 좀 이래도  기도해야 되겠다 하고 기도하러 갔다가 토요일날 자기가 목욕 좀 하고 주일  준비한다고 몸 씻다가 몸을 깨끗하게 해 가지고 이제 산에 기도하러 가야  되겠다고 죽었고,  이복순씨도 그분이 자꾸 산에 기도하러 돌아다니고 자꾸 이라다가 마지막에  죽을 때까지 기쁘고 즐거워서 옆에 사람들이 다 그거 보고서 '참 천국이 있기는  있는가보다' 하고서 기뻐 즐거워하고, 즐거워하면서 죽었고,  또 며칠 전에 이동화 목사님도 교인들 가정에 장례하러 교인들 데리고 가다가  죽었으니까 이 죽음도 이거 저주 죽음이 아니라. 그것도 아마 가면서 거기 가서  내가 무슨 설교를 할까 해서 설교 생각했을 것이고, 또 복음 운동을 위한  걸음이요 복음 운동에 가는 걸음이요 형제를 위한 걸음이요 하나님의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가는 걸음이요 기도하면서 가는 걸음이요 설교  준비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딱 떠나 버렸으니까,  떠날 때에 옆에 있는 사람들이 들으니까 뭐 차가 공중으로 떠서 어찌 되는지도  몰랐는데 그래, 주여! 라고 주님을 두 번 고함을 질러 주님을 부르더니마는  그다음부터 소리가 없어서 같이 간 사람들이 아마도 목사님은 세상을 떴는가보다  그렇게 생각을 가졌다고. 이라니까 이것이 다 무슨 생활이냐?  또, 김현칠집사님도 심방 가면서, 심방 다니다 보니까 남은 집이 일어서 어서 또  그 집 가야 되겠다 해 가지고 마음이 얼마나 조급했던지 버스가 정지를 하는데  정지를 다 하기 전에 내리다가 떨어져 가지고 죽었습니다.

 이게 뭐인가? 이게 다 모두 저주인지 저주가 아니면 축복일 것이고 이제 뭐인가!  어쨌든지 그들이 열심히 심방해야 된다고 이래 가지고 열심히 하다가 그만  거게만 마음이 빠져 가지고 정신 못 차리다 보니까 죽었는데 나는 보기에 이것이  바로 순교다.

 앞으로 가 보면은 뭐 주의 이름으로 죽었다고 환난 때 보면은 세상 운동하고  피해 돌아다니다가 붙들려 가지고 나중에 다 주님을 내놓고 죽은 그런 것도 다  순교라 하지마는 참으로 주를 위해서 자기 생명도 뭣도 아끼지 안하고 이와같이  전력을 기울여서 충성하다가 죽었으니 이게 순교 아니겠는가?  이래서 이거 견해가 모두 다른데 앞으로 가 보면 이거 문제가 지금 있겠읍니다  이래서, 그래 나는 생각하기를 생명은 요 마태복음 6장에 '사람이 염려함으로 키를  한 자나 더 하겠느냐 하는 요거는 성경이 틀렸읍니다 요거 사본에서 잘 못  베꼈습니다. 그래서 그다음에는 생명이라고 기록해 가지고 있어. 왜 키야 사람이  힘씀으로 안 돼요? 요새 잘 먹으면 키 큽니다. 키는 잘 먹으면 커요. 잘 먹으면  크고 운동하면 크고 그 키는 더 키울 수도 있고 덜 키울 수도 있고 사람이  자유로 한다고 할 만치 됩니다.

 그러나 생명은 그게 안 돼. 생명은 잘 먹고 잘 입고 뭐 위생 주의하고 아끼고  이란다고 해 가지고 되는 거 아니라. 생명은, 나는 믿기를 생명은 일각이라도  가감을 못 한다, 또 계시록에 보면은 증거를 다 마친 후에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으로 말미암아 죽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아무리 주를 위해 죽고 싶어도 일각 일초도 일찍 죽을  수도 없다. 이미 죽는 죽음인데 죽을 때에 주를 위한 사람은 주를 위함으로써의  마지막 숨이 끊어지도록 그렇게 만든다 나는 요렇게 성경을 내가 깨달았기  때문에 내가 깨달은 것과 아주 다릅니다.

 이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성경을 절수를 가져가 가지고 대략, 마태 복음 5장  17절로 20절, 여세는 내가 온 것을 율법을 폐하러 한 게 아니라 일 획도 폐하지  못한다. 완전케 하러 오셨다 그말은 로마서 8장 1절 이하에 보면은 '율법이 육신을  인하여 연약함으로 이루지 못했다 이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은 법을 세워  놓으신 입법자요 또 그분은 입법해 놓은 법을 하나도 어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입법 하셨지마는 그 입법한 그 법을 어기면 하나님도 정죄를 받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뭐 내가 온 것은 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케 하러 왔다" 그말은 육신임으로, '육신으로 인해서 율법이 연약하여 이루지  못했다 율법이 뭐 연약하겠읍니까? 율법은 그거는 완전이요 영원 불변인데. 그  말은 육신 때문에 율법 가지고 인간 구 원할라 하는 것은 약해서 실패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니 당신의 아들을 죄 있는 자 형상으로 해 가지고  정죄해가 지고 그래 가지고 율법을 이루었다.

 거게는 보면은 이래 가지고 육을 좇지 않고 영을 좋아 사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사 이루어지게 하려 합이라 했읍니다 거게 초두에는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못한 그 죄는 당신이 죽음으로써 형으로써  대신해서 우리를 해방시켰고, 또 당신이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은 율법을  실행함으로 완전 이행해서 율법을 완전 실행함으로 우리에게 기본구원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율법을 어긴 그 율법을 정죄받은 그 정죄를 주님께서 그  정죄받은 그 형을 율법대로 그 형을 다 받았기 때문에 그 형이 없어졌고, 또  당신이 우리를 이제, 대형으로 사죄가 됐으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 뭐  없습니다. 형은 없지마는 생명도 없고 사는 것도 없고 구원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랬는데 당신이 율법을 대신 행함으로써 이제 우리에게 구원을  줬습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율법을 어긴 것을 예수님이 형을 받아서 우리를  거게서 해방시켜 주셨고, 또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당신이 율법에 획 하나도  가감이 없이 다 율법을 완전히 이행, 우리 대신 이행하셔 가지고 우리의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우리가 율법을 어긴 값으로써 당신이 죽음으로  사죄를 주셨고, 또 우리 대신 율법을 완전히 다 행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다시  칭의를 주셔서 우리에게 구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래서 이 마태복음 5장 17절로 20절에는 건설구원에 대해서 말씀해 놨고,  야고보서 2장 21절로 26절까지도 건설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에베소 1장  6절에는 '거저 주시는 바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거저 주시는'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거저 줬다. 공짜배기로 줬다 말이오. 공짜배기로 준 그  구원의 은혜를 찬미하도록 하신 것이다. 이것은 기본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기본구원을 보면은 기본구원을 은혜로 했기 때문에 행함이 상관 없고,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은혜로 된 구원이라, 그러면 우리가 나기도  전에 된 구원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디모데후서 1장 7절로 14절까지에는 보면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고 로마저 8장 1절로 4절까지에는 기본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래서, 시간이 없어 다 해석하지 못하나 여러분들, 오늘 아침에 제가 증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은 획 하나도 없앨 수가 없습니다. 기본 구원도, 기본구원도  율법을 행함으로써 구원 됐습니다. 기본구원도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이 됐습니다.

율법을 행했는데 어떻게 행해? 그거는 하늘나라 들어갈 수 있도록 이 율법을  행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행하신 것은 완전 행함입니다.

 율법을 완전히 행했기 때문에 완전히 율법을 행하신 이거 가지고 우리 구원이  됐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하늘나라 가지, 대속의 은혜가  아닌 자기 행함 가지고는 가지 못한다'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이  아무리 행한다 할지라도, 어떤 성자 성녀라 할지라도 그 사람은 자기 행함  가지고는, 그것은, 하늘나라 갈라고 하면은 하나님의 율법에 그 전지자의 입법한  입법으로써, 하나님의 공심판으로써 지옥 가는 것인데 공심판에 가면 백분지 일도  못 지키고 천분지 일도 못 지켰다, 아무리 성자라도. 천분의 일도 못 지켰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행함 가지고 구원할라 하면 그거는 다 헛일이고 멸망이다'  '순전히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하늘나라 갈 수 있다' 하늘나라 가는 것은  예수님이 대신 율법을 지켜 주신 그 율법 이행 가지고 가는 것이지 자기의, 행함  가지고 가는 게 아니다. 이러니까 예수님도 순전히 율법 가지고 우리를  구원했습니다. 율법 때문에 당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정죄받아 죽었고, 또 당신이  율법을 우리 대신 완전히 행했기 때문에 그것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율법을 어김으로써 율법대로 당신이 정죄받아셔 죽으셨고, 또  당신이 우리 대신해서 율법대로 율법을 완전히 이행해서 우리를 대행해 가지고  의를 주셨고, 또. 이렇게 이 대속의 기본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오늘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얻어야 되느냐? 오늘 우리들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우리는 해방도 받았고 칭의도 받았고 또 하나님과 화친도 받았고 영생도  받았고 다 이와같이 받았지마는 이 구원 기본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기본구원은  꼭 같은데, 기본구원은 꼭 같은데 하늘나라에서 이 구원의 차이가 있는 이  건설구원은 어떻게 해? 건설구원은 꼭 율법대로 그대로 건설구원 받는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공심판에서는 우리가 율법을 지켰다 할지라도 그 지킨  것이 공심판에서는 정죄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마는 우리 율법 지킨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에서는, 그리스도의 심판은 당신이 대속하신 자를, 당신이  대속으로써 구원해 놓은 자를 이제 심판하는 심판이니까 기본구원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받은 자요 대속으로 기본 구원을 받은 자들이 율법을 얼마를 지켰느냐?  그 율법 가지고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심판이 된다.

 그래서 제가 오늘 아침에 증거하는 것은 지금 너무 과하게 행했다 또 너무  독촉을 한다. 또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은 기본구원을  믿음으로 얻는 것이고, 믿음으로 얻는 것은 그 믿음은 우리 행위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은 행할 수 있는,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는 그것을 가리켜서 믿음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행할 수 있는 그 능력을 받는 것을 가리켜서 믿음이라.

 그러기 때문에 야고보서 2장 21절 이하에 보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홀로 있어  죽은 것이니라 또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온전해지느니라 말씀했어. 이러니까 기본구원을 믿는  이 믿음과 자기가 행함으로써 이루어 놓은 믿음과, 기본구원에 대한 믿음과  건설구원에 대한 믿음이, 믿음이 둘이라. 그러면 건설구원에 대한 믿음은 어떤 게  건설구원에 대한 믿음인가? 믿음은, 건설구원에 대한 믿음은 알고 인정하고  실행하는 그것이 건설구원에 대한 믿음이요 기본구원에 대한 믿음은 자기가 알고  인정하면 됩니다. 알고 인정함으로써 되는 그 구원은 기본구원이라.

 그러면 알고 인정하고, 알고 인정하고 고대로 살아야 된다는 이것을 깨닫고  살라고 애를 쓸 때에 알고 인정함으로 말미암아 거게서 우리에게 진리 영감  예수님의 대속 영생 이 속에 신적 요소인 완전 능력이 있는데 우리가 부정하기  때문에 안 되니까 인정하면은 그 능력이 와 가지고 우리에게 실행할 수 있는 그  능력을 줘서 구원이 되게 하는 것이지 그것이 구원되는 것은 아니라.

 이래서, 요새 좀 많은 시비가 앞으로 있을 것 같은데 저는 구원은 율법에서  구원이 난다. 율법 없이는 구원을 못 얻는다. 율법을 어기면 독생자라도 형을  받았다. 율법을 어기면 형이다. 구원 얻는 것은 율법으로 구원 얻는다.

 그러면 기본구원도 율법으로 구원을 얻고 건설구원도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다.

기본구원은 예수님이 대신 율법을 행해 가지고 구원 얻었고, 예수님이 율법을  행해 가지고 구원 얻었고 우리의 건설구원,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가는 우리  건설구원은 기본구원 얻은 우리들이 이 기본구원을 얻은 것을 자기가 인정하고  이 구원이 자기가 되어진 것인 것을 믿고 하는 그자에게는 건설구원을 하고 싶은  소욕과 소망이 생겨지고, 또 할라고 할 때에 능히 이를 수 있는 그 능력이  기본구원 거게서 나온다. 나와 가지고 기어코라도 율법을 제가 하나 행했든지 둘  행했든지 행한 것만치 건설구원이 돼지지 율법을 지키지 안한 것 외에 것이  건설구원 되는 건 없다.

 이래서 기본구원도 율법에서 나온 구원이다. 건설구원도 율법에서 나온  구원이다. 율법 행한 것 외에는 구원이라 하는 것이 없다! 하는 요것을 저는 지금  단언을 짓는데 요것이 아마 신학계에 나가면 큰 문제가 일어날 것인니다.

 이래서, 오늘 아침에 지금 말하는 것은 교역자들이 많이 왔기 때문에 말합니다.

기본구원도 율법 행함으로 기본구원이 돼졌다. 또 건설구원 또 율법 행함으로  건설구원이 이루어진다. 기본구원은 완전한 구원이기 때문에 이것은 주님이  율법을 완전히 대신 지키셨기 때문에 기본구원이 돼졌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 가는 것은 율법을 완성한 그거라야 되기 때문에 한  율법이라도 범하면 하늘나라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전적 예수님이 대속한 이  구원을 제 구원으로 믿어야 되지 거게서 자기 행함이 어떤 성자라도 자기 행함을  붙이면 이거는 하늘나라는 가지 못하고 정죄받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다.

 사심판 통과 그리스도의 심판은, 이것은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심판하는 것인데 자기가 율법을 얼마 지켰느냐? 하나 지켰으면 하나, 둘 지켰으면  둘 지킨 그대로 된다. 그것을 가리켜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그러면 이 율법이 약한 것을, 율법 가지고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 당신이 계획을  처음에 그렇게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웠기 때문에 율법 가지고 구원할 수  있다. 율법이 인간이 육체가 있기 때문에 율법 가지고 율법이 약해서 못 했다. 못  한 걸 하나님은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율법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 하는  일을 당신이 책임지시고 율법으로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이 오셨으니 그 방편은  뭐인가? 우리를 대형 대행하는 그 대속의 길로만 이루었습니다.

 이래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면 율법의 절대성을  말합니다 율법은 이제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율법이 없어지지 안하면, 율법은  없어지지 안하고 감하지도 안하고 율법 어겼으면 어긴 그대로 형을 받지 율법을  어겼는데 형을 받지 않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요  버렸다는 것과 행하지 못하고 어겼다는 말과 다릅니다. 버렸다는 것은 제가 뭐  '이렇게 안 행해도 된다' 한 그것이 버린 자요. '이 율법 가운데서 몇 가지만  행하지 몇가지 이거는 안 행해도 된다' 하는 자가 버린 자요,  또 이것은 예수님의 대형대행으로 대속으로써 율법을 완전히 우리가 이행한  자로서 하늘나라에, 예수님이 율법을 완전히 행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늘나라  들어갈 때에,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휘장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 그것이  예수님의 대형, 대형으로 우리 율법은 거기 다 해결됐고 대행으로 우리가 율법을  완전히 이행했고 이럼으로써 우리가 구원 얻는다.

 그러나 또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요게 어떻게 될 터인가? '버리고 가르치는 자는' 버린다  말은 그렇게까지 행할 것이 없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 네 행위에 온전한 것을 내가 보지 못했다.

 그러면 이것은 이게 하나님의 율법이 아닌가? 이것을 하나님의 복음의,  복음이라는 것은, 복음이라는 것은 율법에서 나온 것입니다. 요게 지금 아주 의문  중에 있는데 복음은 율법에 나왔습니다. 복음은 율법의 토대 위에 선 것이지 율법  없이는 복음이 안 됩니다. 복음은 뭐이 복음이냐? 이 전지자가 세워 놓은 이  율법은 이는 다 영생하는 생명법인데 이것은 인간이 약해서 안 되는 것을  예수님이 대신 행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생명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대신 율법을 완전히 행했기 때문에 우리의 대속이 힘있지 대신 행하지  안한 그거 같으면은, 율법에 몇 가지 정죄됐다면은, 다 행하지는 못했지마는  그래도 얼마 행했다. 그라면 천하에 있는 지옥 간 사람들이 다 하나님과 예수님께  고소를 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당신이 세워 놓은 법을 그래 다 안 지켜도  되고 우리는 다 지켜야 되느냐? 당신도 다 안 지키고 몇 만 지켰으면 우리도  몇만 지키고 몇 어기지 안했느냐?' 누가 누구를 정죄할 것입니까? 못 합니다.

 이래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하나라도 버리고' '이거는 이렇케 다  지킬 것이 아니라, 이만한 정도로 예수 믿으면 되지 그렇게 다 할 것이 아니라.'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시리라' 이거는 하나님의 법이요  그리스도의 법입니다. 하나님의 공심판의 법외에는 그리스도의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심판법 그거는 불변의 법입니다.

 이러니까 당신이 대속함으로써 거게서 해방되는 것뿐이지 대속받은 우리들이  하늘나라 가 가지고 영광의 차이 있는 것도 그것도 율법대로 행한 것이라 율법에  근거가 돼야지 율법 근거 없이는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건설구원도  율법에서 나왔다. 기본구원도 율법에서 나왔다. 그것을 지금 제가 간단하게  말하지마는 주장할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이러니까 이 율법을 다 행해야 될 걸로 하지 안하고 '이런 것은 다 행하지 안해도  된다. 그저 몇 가지만 행해야 되지 그거 전 신구약 성경 이 법은 이것은-이것뿐  아니라 그 외에 많은 법이 있겠는데-이 법은 중생된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상관이 없다.' 이렇게 말하나 이걸, 이 법은 예수님이  행해도 행해야 되지 이 법은 누구든지 안 행하고는 이거 정죄를 못 면합니다. 이  법이 있는 지 후에는 법을 안 행하면 정죄를, 형을 면할 수 없고 또 이 법을 행한  것은 누가 정죄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이랬으니까 이  율법을 거게서 제감한 것, 이 율법 중에 몇 조문은 이것은 제해도 된다. 율법을  제감해도 하늘나라 갔다는 것을 여게 표해 놨습니다. 율법을 제감해도 하늘나라  갔다.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그러면 이  율법을 제감한 사람이 하늘나라 갑니까 안 갑니까? 하늘나라 갔습니다. 이것은,  간 것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간 이 기본구원을 가리켜 말합니다.

 또 그다음에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래서, 하늘나라 크고 작은 것은 뭘로  되느냐 율법 행하고 안 한 것으로써 하늘나라에 크고 작게 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은 이것은 진리기 때문에 진리를 떠나서는 생명이 있을  수가 없고 진리를 떠나서는 가치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내가 불러 준, 잠깐 내가 이거 좀 이걸 성경을 보면서 이래  생각나는 대로 뺏기 때문에 이거 간단하게 뺐으나 여러분들이 찾으면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이래서 마태복음 5장 17절로 20절, 또 야고보서 2장 21절로 26절,  에베소서 1장 6절, 또 디모데후서 1장 7절로 14절, 또 로마서 8장 1절로 4절,  이것은 기본구원과 건설 구원에 대해서 구분하는 것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셨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성경의 도리를 깨달을 때 이거는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이냐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냐 이것을 구분하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이래서 제가 지금 말하는 것은 우린 구원은 율법에서 나온 구원이다. 율법을  어기고는 절대 구원이 안 된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으로써 완전 율법을  이행함으로써 우리가 받은 기본구원을 가진 사람들이 또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구원 얻는 것도 그것도 그리스도가, 당신이 담당을 해 주시되 이 사람을 하늘나라  가 가지고 기본구원 얻은 사람으로, 얻은 사람 얻은 사람의 그 구원의 차이는  무엇 가지고 차이를 두겠느냐? 예수님께서 하후하박으로 둘 수 없습니다. 누구는  너는 이행 안 해도 이렇게 준다. 이렇게 할 수 없어.

 그것은 예수님이 그렇게 줄 권리 있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기본구원뿐입니다.

기본구원만 주지 그 기본구원 이상은 다른 이는 당신은 줄 수가 없다 말입니다.

기본구원만 우리를 대형 대행 대화친했지, 대신했지 기본구원 외의 걸 그리스도  구원에서 아, 너는 대형을 했기 때문에, 내가 대형했기 때문에 행함이 없지만  율법을 안 지켰지만 이렇게 높여 준다 이렇게 줄 수 있으면, 하나 가지고 어데 두  군데 못 써먹습니다. 기본구원에 당신의 대속을 써먹었으면 건설구원에는 못  써먹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본구원 준 자에게 하나님께서 이 중생시킨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 능력을 줘 가지고 그를 율법을 실행하게 해 가지고 율법 이행한 그대로  하늘나라의 건설구원의 심판도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의 근거는 율법이다  하는 요것을 지금 말하는데,  그러면 믿음이라는 것도, 그러기 때문에 '믿음이 행한과 함께 일하고' 하는  그것은 기본구원을 믿음으로 우리의 소욕도 생겨졌고 소원도 생겨졌고 또  기본구원 거게서 우리가 건설구원을 이를 수 있는 소원도 계획도 또 능력도 그  방편도 이루어져서 되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합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온전하여지느니라'  그러면 그 믿음은 무슨 믿음입니까? 온전하여지는 믿음은 무슨 믿음인가? 그  믿음은 우리의 건설구원을 이룬 믿음을 가리켜서 말하고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했다 하는 그것은 기본구원을 믿는 그 믿음을 가리켜서 말했어. 이래서 율법  없이는 구원이 없다 하는 것을 제가 지금 처음으로 선포를 합니다.

 네 이러니까 어짜든지 가서 율법에서 우리 구원이 나왔고 율법으로 하나님의  공심판이 있고 그리스도의 심판도 다 율법으로 근거해 가지고 있지 율법 없이는  되는 거 없어. 그러기 때문에 율법이 언제든지 기초가 돼 가지고 거게서 모든 게  이루어지지 율법 없이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그것은, 그것도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심으로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가서 제목을 해 가지고, 여러분들이 지금 큰 시험을 받게 된 것은 뭐이냐?  펠라기우스주의는 행함으로 구원 얻는다는 이것이 이단이었는데 오늘도 이런  주의 저런 주의들을 대 가지고 어짜든지 은혜로 구원 얻지 행함으로 구원 얻지  않는다 이걸, 말은 그 말이 맞은 말이지마는 위험한 말입니다.

 행함으로 구원 얻습니다. 또 믿음으로 구원 얻습니다. 은혜로 구원 얻습니다.

행함으로 구원 얻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버린 자는' 거게는 행하지 안한 자를  말한 게 아니고 버린 자, 버린 자도 천국은 갔습니다. '버리고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여게  대한 우리에게 정죄와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짜든지 건설구원도 율법을 지킨 것만치 건설구원이 있다 그것을  지금 제가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말세에 큰 미혹이 들어와 있습니다.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는 가속도로 이제  기독교 사회주의, 기독교 도덕주의, 기독교 인본주의, 기독교 유물주의, 기독교  세상주의 이것이 지금 등장하고 좋아합니다. 이라면 벙긋거리고 다 좋아하요.

 기독교는 율법에서 나온 구원입니다. 그런데 율법은 예수님이 대신 행한  것으로써 우리에게 온 것이 은혜로 온 기본구원이요 기본구원 받은 사람들도 또  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율법을 행한 것만치 우리에게 개별의 영광의 차이가 있는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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