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하나님의 충만

 

1987. 8. 3. 밤집회 <월>

 

본문:에베소서 1장 15절∼23절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기독교는 사람들이 아무리 듣고 배워도 측량할 수 없는 것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둘째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지극히 큰 소망입니다.

셋째는 지극히 큰 이 소망을 실상으로 이룰 수 있는 지극히 큰 능력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사람들이 알래도 알 수 없고 모든 이종교에는 이것이 없습니다.

예수교는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와 모든 지식에 없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없는 것 세 가지를 특별히 말씀한 것이 이 말씀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듣고 안다고 해도 알 대로 다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 또 인간이 알아서 이 소망에 자기 일생을 바친다 할지라도 이 소망의 전부를 알 수 없는 지극히 큰 소망, 또 이 지극히 큰 소망을 힘입어서 세상에서 놀랄 만한 능치 못함이 없는 그런 능력을 받아 가진 사람들도 이 능력을 다 알 수 없는 무한한 능력 그 세 가지를 좀전에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하나님의 허락하신 무한한 소망, 하나님의 허락하신 무한한 능력 이 세 가지를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가 어떻게 우리에게 접선이 돼서 오게 되었는가? 지극이 큰 이 세 가지가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접선이 됐는가? 우리가 이 세 가지를 받게 됐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지극히 큰 세 가지 은혜가 우리에게 오게 된 원인은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으로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으로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있은 지 후에 선택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있기 전 하나님께서 이런 이런 목적을 세우고 이루겠다 하시는 그 목적이 곧 우리가 됐습니다. 그 목적이 우리가 됐습니다. 우리가 있은 지 후에 하나님이 우리를 목적으로 삼으신 게 아니고 하나님의 목적을 정하시고 그 목적이 곧 우리가 되도록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러면 이 은혜가 우리에게 접선되게 된 원인의 일호는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 곧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예택하신 것이라고 해도 됩니다. 우리를 예택하신 것입니다.

둘째 원인은 하나님의 목적으로 예택하신 우리들을 당신이 목적하신 그대로 온전히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예정하신 것이 원인의 둘째의 것입니다. 예정하신 것이 지극히 큰 세 가지 은혜가 우리에게 접선된 원인 중에 둘째입니다.

또 셋째는 당신이 예정하신 그대로 순서를 따라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지극히 큰 은혜가 우리에게 접선되게 된 원인의 일호는 하나님의 목적인 예택이요, 둘째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예정이요, 그러면 하나님의 예정은 몇 시간이나 걸려 예정했는가?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를 가지고 단번에 예정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정하신 그 예정은 언제까지 다 이루어질 것인가? 무한하신 지혜로 예정하신 예정은 영원히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이 예정이 끝나는 때가 있습니까? 끝나는 때가 없습니다.

요런 것도 여러분들이 확정을 가져야 됩니다, 확정. 이런 것이 다 세계 신학자들의 논단 중에 모든 난제되는 문제들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확고히 잡지 못하면 그 사람의 신앙은 바람 앞에 있는 등불같이 꺼지는 때가 있습니다.

둘째는 예정이요, 셋째는 예정하신 그 순서대로 창조하시는 창조입니다. 그러면 창조는 우리가 아는 창조도 있고 모르는 창조도 있고, 보이는 창조도 있고 보이지 않는 창조도 있고, 영에게 속한 창조도 있고 물질에 속한 창조도 있고 그렇게 창조가 있습니다. 이 지극히 큰 세 가지 은혜가 우리에게 오게 된 원인 중에 일호 이호 삼호를 지금 증거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 지극히 큰 세 가지 은혜를 자기가 알려고 하는 데에는 이 은혜가 우리에게 오게 된 그 원인을 자기가 알고 믿어야 합니다. 알고 믿어야 이 지극히 큰 은혜 세 가지를 차차 아는 것으로 자라가지 원인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암만 오래 가도 이 세 가지 큰 은혜를 자기가 알지도 못하고 자라가지도 못합니다.

그러면 예정이라 하는 것은 한 가지 두 가지 나타나는 순서입니다. 모든 순서.

땅에 순서 하늘에 순서, 우리가 아는 순서 모르는 순서, 저 우주의 항성에 이루어 나가는 순서, 위성들에게 이루어 나가는 순서, 지구상에 이루어 나가는 순서, 뭐 서양 동양 세계에 이루어 나가는 순서, 그 모든 이루어져서 하루 닥치면 또 한 가지 또 이루어지고 이틀 닥치면 두 가지 이루어지고 이루어지는 모든 그 순서 그 모든 순서 그것을 가리켜서 예정이라 그래 말합니다. 알겠습니까? 예정.

예정대로 모든 그 순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이든지 본 것이든지 접촉한 것이든지 그 하나씩 둘씩 이 우주와 영계에 순서가 하나 둘 차차 차차 순서가 나타나는데 그 모든 나타나는 그 순서는 뭣하는 순서입니까? 그 나타난 그 모든 순서는 무엇을 하는 순서입니까? 이 세 가지를 이루기 위한 순서입니다. 이제 그러니까 요걸 믿어야 됩니다.

이 모든 순서, 데모가 일어났다. 공산주의가 일어났다, 또 남한이 공산화된다, 또 이북을 남한이 다 점령한다, 뭐 전쟁 일어나는 거, 또 요새는 지금 원자라 하는 그런 과학이 나왔다, 별별 과학이 나왔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씩 둘씩 차차 나타나는 그 순서가 있는데 별별 순서가 다 있습니다.

큰 순서 작은 순서, 또 보이는 순서 안 보이는 순서, 모든 순서가 나타나는데 그 모든 순서는 무엇을 위해서 있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목적 곧 우리의 예택된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그 모든 순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순서든지 자기가 볼 때에 ‘저 순서는 내 구원 위해서 나타나는 순서다’ 그렇게 알고 그것을 자기 구원에 간접이든지 간간접이든지 구원에 이용이 되도록 그렇게 그 모든 효력을 자기가 가지게 되면 되는 것입니다.

또 창조도 이거 위해 있기 때문에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모든 존재, 존재라 말은 있다 말입니다. 하늘에 있는 거, 땅에 있는 거, 뭐 공중에 있는 거, 또 좋은 거, 나쁜 거, 또 잔인한 거, 흉측한 거, 더러운 거, 아름다운 거 그 모든 존재들이 있는데 그 모든 존재, 별별 존재가 있지 않습니까? 여반에 한번 물어볼까요? 그 존재의 수가 얼마나 됩니까? 한번 말해 봐요.

모든 존재를 볼 때에 저것은 하나님의 목적인 곧 하나님의 예택 우리 구원을 위한 존재다 하는 것을 언제든지 기억하고 알아야 됩니다. 요거 아는 신앙가들이 만 명 가운데에 하나가 섞일똥 말똥 그렇습니다.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 기독교의 말할 수 없는 이 진실의 구원을 자기 것을 삼는 사람들이 적기 때문에 항상 천국 가는 기본구원이나 얻지 건설구원을 얻지를 못한다 그거요. 건설구원은 이런 것을 믿어야 돼요.

역사에, 신문에 나오든지, 신문 나온 그까짓 거야 범위가 좁습니다. 신문에 나오는 범위가 좁고, 우리가 아는 것은 범위 좁고, 이 지구에도 전개되는 그 일들의 종류가 많고 이 우주에는 더 많고 또 영계까지 하면 더 많고, 이런데 전개되는, 하나 둘 나타나는 그 전개되는 모든 순서는 나 위해서 있다 하는 것을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우주와 영계를 상속받을 지금 싹수가 있는 사람입니다.

또 모든 존재를 보든지 듣든지 접하든지 할 때에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어떤 것이든지 이 존재는 내 구원 위해서 있다 하는 것을 또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넷째는 뭐인고 하니 하나님이 친히 사람되셔 가지고서 땅위에 오신 예수님이 우리를 대형으로 사죄해 주셨고, 대행으로 칭의해 주셨고, 또 대화친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어 주신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의 대속이 이것이 넷째 원인입니다. 알겠습니까? 대속이 넷째 원인.

또 그 다음에 다섯째 원인은 뭐이 되는고 하니 우리를 예수님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를 힘입어서 영생하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또 그 다음에 원인은 뭐인고 하니 이제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을 삼습니다.

그래서 중생이 먼저냐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된 게 먼저냐? 그 순서는 이리 말하면 이게 먼저 저리 말하면 저게 먼저 되기 때문에 이러나 저러나 다 괜찮습니다. 법적으로 대속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자녀가 됐는데 또 대속하고 난 다음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 된 것을 먼저로 해도 좋고 또 중생을 먼저로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 순서는 아들된 그 화친이 먼저 순서입니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우리에게 영생하는 생명을 줬습니다. 영생하는 생명을 우리에게 또 주셨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우리에게 가지도록 주셨습니다.

이제 그래 가지고 우리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기까지 우리를 거룩하게 깨끗하게 만드시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이것이 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 무한하신 소망, 무한하신 능력 이 지극히 큰 무한과 우리가 접선하게 된 것은 이 모든 원인들 때문에 우리가 접선하게 된 것입니다. 이 원인 때문에.

그래서 오늘 밤에 지금 증거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 지극히 큰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과 능력이 왔는데, 능력이 이루기 위해서 왔습니다. 이래서 22절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그러면 우리 이 교회라고 하면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교회라고 했는데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그리스도의 몸이라.

그러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신성을 그리스도라고 하고 또 대속하시고 난 다음에는 신인양성일위로 된 이 대속하신 예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또 이렇게도 말씀을 했습니다.

22절에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의 머리는 하나님으로 교회 머리되게 했다 그말입니다. 그리스도로 교회 머리되게 했다. 하나님으로 교회의 머리가 되게 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교회는 그의 몸이라. 그러면 이 교회라는 것은 그의 몸이라. 누구의 몸이라 말입니까? 누구의 몸이라 말이요? 그리스도의 몸, 곧 하나님의 몸이라 말입니다, 하나님의 몸.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그러면 교회는 하나님의 몸인데,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의 몸인데 교회는 어데 있는가? 교회는 만물 안에 있다. 교회는 만물 안에 있다. 만물 안에 있다. 만물 안에 있으면 교회가 만물 안에 있으면 만물 안에 어떻게 있는가? 만물에게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는 것으로 있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좀 어려운 말이 될란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라.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라. 이 교회라 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대속과 영감과 진리로 중생된 이 모든 성도들을 가리켜서 교회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교회라 하는 것은 우리 몸도 들어갔고 우리 영도 들어갔고 예수님의 대속도 들어갔는데 이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라. 그러면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라고 이렇게 하신 것은 교회는 우리의 대속받은 영육 또 중생한 생명 이 모든 것이 다 합해 가지고서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대속과 또 대속받은 영생하는 생명과 또 우리의 이 영과 육과 그 모든 것이 다 합해 가지고서 교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가 된 우리들은, 하나님의 교회가 된 우리들은 우리가 죽을 생명과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 이 두 가지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을 생명도 가지고 있고 또 죽지 않을 그런 생명도 가졌습니다. 여러분들이 필기는 하지마는 필기보다도 잘 들어서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깨달으면 뒤에 가서 잊어버리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죽을 생명은 첫째 아담으로부터 우리가 받은 것이고 영생하는 생명은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명, 영생하는 이 생명, 영생하는 이 생명은 몇 가지가 합해 가지고서 영생하는 생명이 됐습니까? 몇 가지가 합해 가지고 영생하는 생명이 됐습니까, 손가락으로? 손가락으로? 녜, 이 세 가지가 합해서 우리의 영생하는 생명이 됐습니다.

요한일서 몇 장이지? 5장 몇 절이지? 5장 8절에 “증거하는 것이 셋이 있으니 성령과 물과 피라 이 셋은 하나라” 이랬는데 성령은 곧 하나님을 말했고 또 물은 진리를 말했고 또 피는 예수님의 대속을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영생하는 생명이 됐습니다.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영생하는 생명이 됐습니다.

생명이 됐는데, 그러면 진리가 안 죽기 때문에 진리로 우리 생명 삼은 우리도 죽지 않습니다. 영감이 안 죽기 때문에 우리의 중생한 생명도 안 죽습니다.

예수님의 대속하신 이 대속은 완전 대속이요 완성이기 때문에 대속도 영원히 멸해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중생한 생명도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중생한 우리의 힘은 무엇이 우리의 힘입니까? 중생한 우리의 그 호흡이나 지혜나 힘이나 우리 중생하는, 영생하는 그 생명이라고 말하면, 생명이라 말을 다른 말로 할라면 힘이라 그렇게 말해도 됩니다. 생명이 있으면 힘이 있고 힘 떨어지면 생명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영생하는 생명이라 말은 영원히 승리하고 아무것에게도 지지 안하고 아무것에게도 패망을 당하지 않는다는 그 뜻으로써 영생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생하는 생명은 곧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영생하는 생명은 이 세 가지가 우리 영생하는 생명인데 이 세 가지 이것이 합하여서 하나가 돼 가지고 우리 영생하는 생명이 됐는데 이 세 가지 합해서 생명된 것은 세 가지가 나누어질 수 있습니까 나누어질 수 없습니까? 혹 둘이 있거나 또 혼자 있거나 셋이 같이 있거나 그렇게 나누어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누어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가, 둘은 없고 하나는 있습니다. 둘은 없고 하나가 있다 하면은 그 말은 바른 말일까요 틀린 말일까요? 틀린 말입니다. 하나 있으면 서이 있든지 둘 있으면 서이 있든지 하나만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생명이 이거 이상합니다. 영이 가진 영생하는 생명은 변동이 없는데 이 육이 가진 영생하는 생명은 이거 이 생명이 있다가 없다가 자꾸 이렇게 변동이 됩니다. 변동이 돼요. 그러면 우리에게 이 심신으로 된 육에게 영생하는 생명이 있을 때에는 영생하는 생명 그 생명은 몇 가지의 힘이 영생하는 생명이 됐습니까, 손가락으로? 녜, 세 가지의 힘이 영생하는 생명이 됐습니다.

그랬는데 우리가 이 영생하는 생명을 얻기도, 영생하는 생명을 얻기도 언제 얻느냐 하면 영생하는 생명을 얻는 것도 꼭 현실에서만 얻습니다. 딴데서는 얻지를 못합니다. 영생하는 생명을 현실에서만 얻습니다. 자기가 영생하는 생명 이 세 가지를 안다 할지라도 아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되고 알고 난 다음에 그대로 살 때에 이제 영생하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생하는 생명, 우리의 중생된 영은 영생하는 생명을 몇 차례 얻었습니까? 이 우리의 영은 영생하는 생명을 몇 번이나 얻었는지 한번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몇 번이나 얻었는지. 몇 번이나 얻었는지. 몇 번? 단번입니다, 단번. 한 번밖에는 안 얻었습니다. 한 번 얻어 가지고 영원히 이 영생하는 생명을 내 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영은 영생을 하는 것입니다. 영이 영생하는 생명은 몇 가지 힘으로 가지고서 영생합니까? 세 가지 힘으로 가지고서 영생합니다.

이런데 우리 육은 영생하는 생명을 얻었다가 잃었다가 그랍니다. 이 영생하는 생명을 단번에 얻는 게 아니고 얻었다가 또 잃었다가 얻었다가 잃었다가 중복적으로 이렇게 됩니다.

그러면 영생하는 생명을 우리가 얻기는 어데서 얻으며 언제 얻습니까? 영생하는 생명은 언제 우리가 이 심신이 얻을 수 있습니까? 현실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얻었던 이 심신의 영생하는 생명을 잃기는 언제 잃습니까? 현실에서 잃습니다.

현실에서 얻기도 하고 현실에서 잃기도 합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얻는 것은 어떻게 얻는고 하니 그 현실에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세 가지로 내가 동행하면, 이 현실에 이 세 가지로 살면 나는 영생한다. 이 세 가지로 살면 영생한다. 이것을 깨닫고 이 세 가지로 살면 영생한다는 것을 알면 현실에서 피와 성령과 진리와 나와 하나가 돼 가지고서, 하나가 돼 가지고 살면 영생한다 하는 것을 알기만 하면 영생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됩니다.

또 자기가 알지는 못하고 그저 대충 잡고 이렇게 영생하는 생명을 얻을라고 이렇게 열심히 예수를 믿습니다. 철야 기도도 열심히 하고, 또 연보도 열심히 하고, 전도도 열심히 하고 또 열심히 합니다. 열심히 하는데, 이 사람은 현실마다 열심히 사는데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셋과 내가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현실에 살아야 영생한다는 요 교리를 모릅니다, 요 이치를. 요 이치을 깨닫지 못했어요.

요 교리를 가지지 못했다 그 말은, 교리를 가지지 못했다 그말은 교의 이치를 깨닫지 못했다 그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이 사람은 교리를 모릅니다. 모르고 열심히 행하기는 행했습니다.

행하기는, 열심히 행했는데 그 열심히 행한 그것이 행하기는 열심히 행했지마는 이 세 가지와 동거 동행을 해야 영생한다는 교리를 몰랐습니다. 교리를 몰랐습니다. 교리를 몰랐으면 그 사람의 그 행한 것이 이 세 가지 교리에 맞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맞을 수 없습니다. 못 맞습니다. 알겠습니까? 방해물이 많기 때문에 맞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생하는 것은 이 세 가지와 나와 하나가 돼 가지고 행동을 해야 된다는 이 사실을 깨닫고 알고, 그라면 됩니까? 그라면 영생이 됩니까? 안 됩니다.

깨닫고 현실에 이 세 가지와 자기와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그 현실에 한 시간 살면 한 시간은 영생됐고, 열 시간 살면 열 시간은 영생됐고, 일 년 살았으면 일 년은 영생됐고, 몇십 년 살았으면 몇십 년 산 그건 영생됐고, 예수를 몇십 년 믿었지마는 한 시간도 그 셋과 자기와 하나가 돼 가지고서 현실에서 행동한 일이 하나도 없었으면, 한 시간도 없었으면 그 사람은 심신의 영생을 얻었습니까 못 얻었습니까? 못 얻었습니다. 알겠습니까? 못 얻었어.

이것을 가리켜서 집을 짓는데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짓는 집도 있고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집도 있는데 나중에 그 공력을 시험하는데, 그 공력을 시험하는데,ㅡ저 조는 분이 저분이 ○목사님 아니가? ○○교회 ○목사님 아니가? 어? ○목사님이지. 이거 못 알아들으면 안 되는데. 어려워요. 요거 어렵습니다.

아는 거 같으나 어려워요. 여러분들에게 여러가지 미끄러지는 것을 지금 다 없이 할라고 지금 자꾸 이래 하고 있는 건데.

그 사람이 아무리 오래 동안 예수를 믿어도 이 심신의 기능 구원은 얻지를 못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집을 짓는데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비유입니다 몽e 집도 있고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도 있으니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하고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이 있는데 지은 그 공력을 시험할 터인데 시험은 뭣 가지고 하느냐 하면은 불 가지고 시험합니다.

불 가지고 시험을 하는데 그 공력이 불이 타면 큰 손해를 본다 했습니다. 그 공력이 불타지 안하면 그 사람은 상을 받는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그 공력이 불타면 큰 손해를 보는데 그 공력이 불타면 그 사람은 구원을 얻습니까 못 얻습니까? 예? 구원 얻습니까 못 얻습니까? 자, 그 사람 구원 못 얻는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또 구원 얻는다고 생각하는 분들 또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거 참 곤란하네.

녜, 구원 얻는다 말도 맞습니다. 알겠습니까? 구원 얻는다는 말도 맞습니다. 구원 못 얻는다는 말도 맞습니다. ‘그뭐 길마 말을 해?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지.’ 그러면 구원 얻는다는 말도 맞다. 구원 못 얻는다는 말도 맞다. 그러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목사님? 맞아요? 여기 맞는다 했어 안 맞는다 했어? 녜, 맞습니다. 그거는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맞는 것은 이 심신의 기능 구원은 실패를 했지마는 그 영은 구원 얻는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원 얻는다는 말이 영을 구원 얻는다는 말 했다고 하면은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래도 심신의 기능 구원을 얻는다 하면은 그 말은 틀렸습니다. 알겠습니까? 구원을 못 얻는다는 말은 그 말이 맞는 것은 그렇게 불타 버리면은 심신의 기능 구원은 얻지 못한다 하는 그말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영의 구원은 변동이 없습니다. 한번 얻어 놓은 자는 그 구원을 팔아먹을라 해도 못 팔아먹습니다. 그 구원을 벗어내 버릴라 해도 못 벗어내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택함 받아 가지고 중생된 자는 아무리 지옥 갈라고 해도 지옥 못 갑니다. 또 천국 안 갈라고 해도 안 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중생된 자는, 중생된 자는 지옥을 갑니까 안 갑니까? 안 간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그러면 안 간다는 말이 맞구만. 그러면 중생된 자도 지옥 간다 말은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맞습니다. 인제 귀가 좀 뚫혀서 인제 두 가지 길마 말을 할 줄 아네. 길마 말 대답할 줄 아네요.

녜, 중생된 사람도, 중생된 자도 지옥 간다 하는 그말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중생된 영은 지옥을 안 갑니다. 그러면 중생된 자의 심신의 기능은 지옥을 갑니까 안 갑니까? 안 갑니까 갑니까?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습니다.

잘 살면 안 가고 잘못 살면 갑니다, 별수 없이.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이렇게 돼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내가 뭘 말했었지? 중생된 영육, 영의 구원과 육의 구원 두 가지를 말을 했지요. 그 두 가지를 말을 했는데, 예.

그런데 “교회는 그의 몸이니” “교회는 그의 몸이니” 그러면 ‘교회는 그의 몸이니’ 하는, “교회는 그의 몸이니” 하는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의 몸이니 하는 말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하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의 몸이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한 사람이 있으면 교회가 됩니까 안 됩니까? 한 사람이 있으면 교회가 됩니까 안 됩니까 여러 사람이 뭉쳐야 교회가 됩니까? 여러 사람이 뭉쳐야 교회가 됩니까 혼자라도 교회가 됩니까? 예? 혼자라도 됩니까? 녜, 혼자라도 됩니다.

이래서, 개체 교회라 하면은, 개인 교회라면은 그 개인이 하나 교회 되는 것이고, 또 가정 교회라 하면은 가족들이 단합해 가지고서 교회가 된 것이고 또 이 사회 교회라 하면은 이 모두 뭐 ○○교회 뭐 ○○○교회 ○○○교회 하는 그런 것이 다 이 사회의 교회입니다. 또 이 시대 교회라 하면 지금 현재에 세계 퍼쳐 있는 이런 교회는 다 이 시대 교회가 되겠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그의 몸이니” 했으니까 몸이면 넓게 말하면 우리가 알기가 좀 어렵기 때문에 좁작하게 한번 좀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내 개인이 하나님의 몸이라. 내 개인이 하나님의 몸이라. 그러면 우리의 이 개인 교회도 교회 아닙니까? “교회는 그의 몸이니” 했으니까 나 개인도 하나님의 교회니 곧 하나님의 몸이라.

그러면 내가 하나님의 몸이라면, 몸이라면 내 영이 하나님의 몸이라 말입니까 육이 하나님의 몸이라 말입니까 영육이 다 하나님의 몸이라는 말입니까? 어떻게 생각이 됩니까? 영육이 하나님의 몸이라. 그라면 우리의 이 고기덩어리도 하나님의 몸이라 말이지요? 하나님의 몸이라 말이지요? 고기덩어리도 하나님의 몸이라. 그러면 내 있는 팔도 하나님의 몸이라. 몸이라. 그러면 하나님의 몸이라.

하나님의 몸이면 그러면 우리의 이 심신의 이 육이, 심신을 가리켜 육이라 하는데 이 육이 하나님의 몸이라면 그 심신으로 된 육, 육이라면 심신인데 이 심신이 하나님의 몸이라고 하면은 심신이 어떻게 돼 가지고 하나님의 몸이 됩니까? 심신이 어떻게 돼 가지고서 하나님의 몸이 됩니까? 예? 그라면 세 가지로 살 때에 몸이 되면 세 가지로 살면 영이 삽니까 마음이 삽니까 몸이 삽니까? 하나도 안 빠지고? 머리털도 같이 그러면 살아? 허, 그거 참. 그라면 뭐 심신의 하나도 빠질 것 없이 뿌스러기까지 전부 다 하나님의 몸이 되는구먼요. 녜, 하나님의 몸이 됩니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요. 하나님의 몸이 됩니다. 하나님의 몸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몸이 됐는데, 자, 하나님의 몸은 하나님의 몸은 멸해집니까 안 멸해집니까? 하나님의 몸은 멸해집니까 안 멸해집니까? 몇 해나 안 멸해집니까? 영원히 멸해지지 않습니다. 영원히 안 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몸된 우리의 이 육도 영원히 멸해지지 안합니까 멸해질 수가 있습니까? 안 멸해진다. 영원히 멸해지지 않는다. 영원히 멸해지지 않습니까? 영원히 멸해지지 않습니까? 멸해질 수는 없구먼, 인제. 절대 멸해지지 않는구만. 멸해질 수는 없구만.

만일 말이오. 우리의 이 심신의 이 기능이 하나님의 몸이 됐는데 그러면 이거 되기를 뭘로 가지고 됐어요? 하나님의 몸되기를 뭘로 됐어요? 세 가지 가지고 됐어요. 세 가지 가지고 됐는데, 세 가지 가지고 됐는데 이 세 가지 가지고 됐으니까 몇 해나 있으면 완전히 이 세 가지하고 하나될까? 만일 백 년쯤 됐으면 이 세 가지하고 하나가 됐기 때문에 이제 이 세 가지를 떼 놔도, 떼 놔도 영생할 수가 안 있겠소? 백 년이나 한 천 년이나 한테 구불었으니까. 백 년이고 천 년이고, 떨어지면 죽습니다. 알겠습니까? 떨어지면. 그게 달라.

하나님의 몸인데 하나님의 본체는 이는 영영히 변하지 안하고 죽지 안하고 이러는데 하나님의 몸된 우리의 이 심신의 기능은 살아났다가도 죽을 수가 있습니다. 버리면 죽어요. 버리면 죽어요.

그러면 버리면 죽는데 이제 한 번 살아난 것은, 살아난 거는, 버리면 죽는데 그거는 가정이지 버릴 수가 없습니다. 버릴 수가 없는 것은 왜 버릴 수가 없느냐 하면은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이 세 가지를 붙들고 있습니까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심신의 기능을 저희 것을 만들어 가지고 붙들고 있습니까? 세 가지가 만들어 가지고 붙들고 있는데 그 세 가지가 우리보다 강합니까 약합니까? 강합니다. 놓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한번 영생된 거는 영생이 됩니다.

그라면 여러분들이 모순된 그런 좀 의문이 들 게 또 하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온 몸이 다 이거 천국 갈 준비가 다 돼 가지고 있어도 지체 하나가 범죄하면은 그거 때문에 모든 지체가 다 지옥 간다 했으니까 이 문제가 어찌 되냐 하는 그 문제가 또 난제가 나올 겁니다. 이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이 난제가 나오고 저 난제가 나오고 전부 난제가 다 해결이 다 돼야 돼요. 다 돼야 되는데, 그 면은 뒤에 하고.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몸이 된 것이 우리의 이 영은 하나님의 몸이 됐고, 영은 됐지요? 영은 됐는데 영이 하나님의 몸된 것은 변동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우리의 심신의 이 기능이 하나님의 몸된 것, 몸된 것은 이것은 변동이 있습니다. 그 현실에 하나님의 기능과 하나된 것도 있지만 또 하나 안 된 것도 있거든. 안 된 거는 그거는 하나가 안 됐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간에는 내 심신의 기능이 하나님의 몸이 됐다가 다음 시간에는 마귀의 몸이 되는 수 있습니다, 마귀의 몸이.

그런데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하나님의 몸이 됐는데 몸이 될 때에 몇 가지가 들어서 우리의 심신의 기능을 하나님의 몸을 만들었습니까? 몇 가지가 들어서 만들었습니까, 손가락으로? 저 뒤에도, 손가락으로? 저 뒤에도? 녜, 손가락으로 세 가지. 이래 자꾸 배워 놔요. 녜, 세 가지 맞습니다. 세 가지 맞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이 세 가지가 와서 우리 몸을 세 가지화시키니까 이 세 가지가 그만 세 가지화 됐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심신의 기능을 하나님의 몸이라고 했는데 우리의 심신의 기능을 만들기 전에는 무엇이 하나님의 몸입니까? 뭣이 하나님의 몸이요? 영이 하나님의 몸이겠습니다.

또 이제 하나님이, 하나님이 말이요 하나님이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의 본체가 계십니다. 본체가 계시는데 하나님의 본체가, 본체가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나올 때 나타날 때에 하나님의 본체를 우리가 보면 죽습니다. 너무 거룩하고 완전하고 너무 완전하기 때문에 우리가 너무 더러우니까 그만 가까이 가면 죽어버리요.

이러니까 하나님의 본체가 우리에게 나타날 때에 우리가 하나님을 접할 수 있도록 그렇게 나타나는 그 나타남을 가리켜서 뭐이라고 말합니까? 영감이라 합니다. 영감으로 나타납니다, 영감으로.

또 영감이 우리에게 더 하나님을, 나타나신 하나님과 우리가 접선하기 쉽도록 나타나는 그 하나님을 가리켜서 뭐라고 합니까? 진리. 녜, 진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진리시라 이랬습니다. 진리는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진리시라.

하나님이 그렇게 자꾸 그 나타나신다 그 말이오.

이런데,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볼 수 있도록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몸은 뭣이 하나님의 몸인고 하니 하나님의 영감이 하나님의 몸이요 하나님의 진리가 하나님의 몸이요 또 영감과 진리가 내나 하나님의 몸인데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라서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의 몸이라는 것은 우리 말로 알기 쉽도록 하는 말인데.

하나님의 그 능력의 역사가, 역사가 나타날 때에 하나님은,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역사로만 나타나지 형체를 가지고 나타나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역사로만 나타날 때에 하나님이 제일 피조물들에게 환하게 나타나는, 환하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형체를 뭐라고 말합니까? 영감이라 합니다, 영감.

또 그 다음에는 우리가 만나도 될 수 있을 만치 나타날 때에는 그거 나타난 하나님의 형체를 뭐라고 합니까? 진리라고 합니다.

또 그 다음에 이제 우리가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형체가 나타납니다. 서로 손을 잡을 수도 있고, 또 같이 뭐 교제할 수도 있고, 동행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와,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있을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몸으로 나타날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뭐라 합니까? 그것을 가리켜서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이 영감이라는 그 형체로 나타나고 또 영감이 또 진리로 나타나고, 하나님 몸이. 또 진리가, 진리가, 어? 뭐? 속성? 진리가 하나님의 교회로 나타나고, 맞아요 안 맞아요?

그러면 자, 하나님의 그 몸이 나타나는데, 몸이 나타나는데 무형의 존재가, 무형의 존재가 제일 처음에 나타날 때에 뭘로 나타나요? 영감으로 나타나요. 영감은, 영감은 형체는 없지마는 우리 인간이 접할 수 있는 그런 형체로 나타났습니다.

알겠습니까? 또 영감이 무슨 형체로 나타났습니까? 진리의 몸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진리의 몸이 또 무슨 몸으로 나타났습니까? 예? 교회의 몸으로 나타났습니다.

알겠습니까? 교회의 몸으로. “교회는 그의 몸이니” 하지 안했어요? 교회가 하나님의 몸이라요 몸 아니라요? 교회가 하나님의 몸입니까 몸 아닙니까? 교회가 하나님의 몸이라. 몸으로 나타났어요.

나타났는데, 또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교회로 나타나셨는데, 하나님이 영감으로 나타나셨고 하나님이 진리로 나타나셨고 하나님이 교회로 나타났는데 그거 하나님의 몸이라. 교회로 나타났는데, 교회로 나타났다가 또 그 다음에 또 뭘로 나타납니까? 그 다음에는 뭘로 나타나요, ○○○목사? 만물로 나타나, 만물로.

알겠습니까? 이제,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케 하시는 자라 그말은 충만케 하시는 자가 누가 충만케 합니까? 충만케 하시는 자가 누굽니까? 하나님이 충만케 하셔.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그러면 충만케 하면은 뭘로 충만케 합니까, 하나님께서 다 자? 뭘로 충만케 합니까? 몇 가지로 충만케 합니까? 세 가지로 충만케 합니다. 여러분들, 세 가지로 충만케 하는 거 이런 거 다 알기 어렵고 나가면 시비가 많지마는 마지막에는 맞습니다. 반대를 해도 머리를 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본체가 영감의 몸으로 나타나고, 영감의 몸이 진리의 몸으로 나타나고, 진리의 몸이 교회의 몸으로 나타나고, 교회의 몸이 만물의 몸으로 나타나고,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신 자시니라” 하는 그 말씀이 성경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데 있어? 골로새서 3장? 한번 찾아 봐. 읽어 봐.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여러분들 요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라. 만유시요 그 말은 뭐냐 하면 그리스도는 뭐라? 그리스도는 만유라. 만유라 말은 모든 존재를 말합니다. 요 만유라 말은 곧 사람 그 이하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총칭해서 만유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만물 안에서 충만케 하는” 만물이라 하는 그와 같은 그 수준에서 말합니다.

“만유시라” “그리스도는 만유시라” 만유 그것이 그리스도라.

또 그래 놓고 그 다음에 한 번 더 해석하기를 “만유 안에 계시느니라” 만유 안에 뭘로 계셔요? 만유 안에 그리스도가 뭘로 계셔요? 알지는 못하지. 확신이 없어도 한번 짐작이나 한번 말해 보지요. 만유 안에 뭘로 계셔요? 이래서 요것을 바로 해석할라 하면은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하는 거는 만유에 있다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그리스도는 만유라. 만유라 말은 그리스도는 만물이라 그말 한가지요. 알겠습니까? 그리스도는 만물이라.

또 “만유 안에 계신다” 이러니까 ‘그리스도가 만물이라’ 이라면 이 범신론자 모양으로 이렇게 이거는 범신론이다, 이 소리 나가 놓으면 이제 ‘백 목사는 범신론 이단이다. 이제 하나 잡았다.’ 하고서 아주 뭐 춤을 추고 뭐 꿀떡 침을 삼킬 것이로구먼요. 그래도 성경인데 어짤 거라? 그러면 거기에 “만유시라” “만유시라” 그러면 우리가 교회가 하나님의 몸인데, 여기에 좀 뭐 잘 믿는 목사님들 좀 굵닥굵닥한 목사님들이 좀 왔으면 좀 알아들어야 되겠는데 어데로 가 살며시 숨었어. 내가 물을 상바르니까 아예 물으면 안 될 터이니 저 어데로 숨어 버리자 해 가지고 숨은 모양이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그러면 그리스도의 몸이면, 몸이면 이 몸은 죽어도 그리스도의 몸이요 살아도 그리스도의 몸입니까? 이 몸은, 그러기에 몸 됐다가 안 됐다가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러면 그리스도의 몸인데 무슨 뭣을 싹 잡아 빼 버리면 그만 그리스도의 몸이 안 됩니까? 세 가지를 싹 잡아 빼 버리면 그리스도의 몸이 안 돼요. 알겠어요? 세 가지를 싹 잡아 빼 버리면 그리스도의 몸이 안 돼. 또 세 가지를 막 콱 물을 들여버려 버리니까 그만 또 그리스도의 몸이 돼.

세 가지로 물들이다니? 똑 말하자면 베쪼가리 물들이듯이 푸른 물 들여 푸른 물 가지고 확 들여 놓으니까 하얀 베는 없고 전부 새파란 것뿐입니다, 새파란 것.

물들여 껍데기도, 껍데기만 새파란 게 아니라 속에 알맹이도 새파래. 속에 알맹이 새파래요 새파랗지 안해요? 속속들이 새파래. 이분 어데서 왔지? 어? LA에서? 우리가 그때 전도사로 인허한 분이요? 그래 그 잘아는 거 같애. 찬송하는 거 보니까 뭐 좀 예수 믿을 거 같애.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그의 몸이니” 똑똑히 밝혀 놓지 안했습니까? 몸인데 그리스도의 몸된 우리가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몸된 게 아니라 이거는 순전히 마귀가 있는 마귀의 지체요 마귀의 종이요 마귀의 성전인데 이제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마귀를 쫓아내고 그리스도의 몸을 만들었다 말이오.

그리스도의 몸을 만든 것은 뭐이냐? 진리로 완전히 진리화시켜 버렸고, 영감화시켜 버렸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화시켜 버리니까 이 세 가지, 피와 성령과 진리로 물을 들여 버리니까 그만 이게 그만 이게 전부 그의 몸이 됐어.

그리스도의 몸이 됐다 말은 뭣 됐다 말이요? 자, 그리스도의 몸이 됐다 말은 뭣 됐다 말입니까, 저 양성원 학생? 그리스도의 몸이 됐다 말은 뭣 됐다 말이요, 저 ○○○조사님? 교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했으니까 그리스도의 몸은 뭘로 돼 있으냐 그말이지.

그런데 여러분들 필기하는 것 주의해야 됩니다. 필기하는 것이 필기를 할라거든 설교하는 대로 그대로 딱딱 받아 해야 되지 그 설교 속에서 대이단자도 될 수가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이 설교를 하는데 거기에서 자기 주체가 이단이 돼 가지고 있으면은, 주체 사상이 이단이 돼 가지고 있으면은 주체 이단 사상을 가지고 설교 들을 때에 제 주체 이단 사상에 맞은 것만 자꾸 씁니다, 맞은 것만. 맞은 것만 쓰고 주체 이단 사상의 견해대로 쓰고 주장대로 쓰고 자기 맞은 대로 쓰기 때문에 나중에 그라면 그 필기해 놓은 거는 뭣 됩니까? 이단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필기라 하는 것은 할라면 다 못 써서 몇 마디를 써도 꼭 말한 대로 그대로 써 가지고 해야 되지 그 설교하는 데에서 자기 주장대로 자꾸 쓰면 그 사람 결국은 자기 주장되기 때문에 설교하고는 아주 딴거 됩니다. 딴것 돼도 ‘아무것이가 설교할 때 이래 설교했다’ 이리 돼 버립니다. 그러면 그거는 전혀 딴겁니다.

이러기 때문에 필기라는 이거 할라면 하나도 빠지지 말고 다 하든지 한 마디라도 그만 그대로 하든지 이래야 되지 그 설교하는 데 자기 생각나는 대로, 자기 깨달음대로, 자기 비판하고 평가하는 대로, 자기 느껴지는 대로 그대로 자꾸 쓰면은 그거 자기화됩니까 자기 기록한 것입니까 상대방을 기록한 것입니까? 자기 기록한 것입니다. 요거 아주 중요해. 하기 때문에 그거는 나중에 큰 그만 이단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주 정통자의 설교 밑에서 이단자가 납니다. 알아듣겠습니까? 또 이단자의 설교 밑에서 정통자가 나옵니다. 알겠습니까? 자기 자체가 정통이 되면 이단자 설교하는 데서 들은 데 자기 생각하는 대로 자꾸 쓰니까 절대 정통이 나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잘 들어야 돼요. 이러니까 그걸 잘 못 들으면 헛일이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했으니까 교회는 그의 몸인데 교회가 뭘로써 그렇게 그의 몸이 됐습니까? 교회가 뭘로써 그의 몸이 됐습니까? ‘교회가 뭘로써 그의 몸이 됐습니까?’ 하니까, 그래 묻는데 교회로 그의 몸 됐다는 그말은 천부당 만부당의 얼토당토 안한 대답이라. 아주 그거는 아무것도 아니라. 그 대답을 하겠다 싶어서 내가 물었다 그거야. 알겠어? ○조사님? 그거 나중에 그라면 지금까지 저 돌아다니면서 배운 거 다 헛일이라 다 집어던져야 돼요. 안 돼요. 그게 맞은가, 그 자꾸 볼라 하면 그라면 안 돼.

어떤 사람은, 이게 쌀가마니다 하면 ‘쌀가마니라? 쌀가마니라?’ 반동적으로.

`여기는 뭐 쌀 아닌 거는 없나?’ 뒤적뒤적하다가서 짚뿍데기 하나 와서 들고 ‘쌀가마니라 하는데 짚뿍데기 하나 있다.’ 또 이거는 쓰레기 가마니다. ‘쓰레기 가마니라?’ 자꾸 뒤비며 `봐라 쌀내끼가 있다.’ 쌀내끼가 있지마는 그 전체로 말하면 찌꺼기가 많기 때문에 쓰레기라 하는 것이다. 이거는 쌀이 많고 딴게 섞여 있지마는 쌀이 많기 때문에 이거는 쌀가마니라 하는 것이다. 다수를 따라가서 그와같이 말하는 것이다. 이것 모양으로 그렇기 쉬워요. 그러니까 거기에서, 그러기 때문에 꼭 같은 독서를 하지마는 자기 주관에 따라서 독서의 결과는 딴 사람이 아주 되고 맙니다.

두 가지 방편이 있으니까 요게서 하나는 ‘요대로에 뭐인고 보자’ 그대로 받아 가지고서 자기가 뒤에 놓고 연구하는 거 하나 있고 그리 아니면 가르친 요대로 그만 자기가 봐서 맞은 것이면 자꾸 수락을 해서 그만 그 화되는 거 있고 그래 있는 것인데, 그렇지 안하고 말이요 그때 그때 하면서 ‘뭐이 틀린 거 있는가 보자’ 그 틀린 게 있는가 보자 하면은 자기 주관에 틀린 거는 뭐이 틀렸나 하고 틀린 것을 지금 가릴라고 하면은, 틀린 걸 가릴라 하면은 가리는 주체자는 누굽니까? 자기입니다.

그러기에 결국은 자기 되고 마는 거라.

이거, 이걸 내가 안 가르칠라고 지금 하다가 지금 가르치는데 이거 가르쳐 나가 놓으면 뭐 굉장한 일이 있을 거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했으니까 그러면 우리가 교회 아닙니까? 우리 개인이 그의 몸이라. 우리 개인이 그의 몸이니까 우리 개인 내가 그의 몸이니 내가 그의 몸된 것이 뭘로 됐습니까? 예? 세 가지로 됐습니다. 알아들어요, 똑똑히 알아야 돼요. 세 가지로 됐습니다. 세 가지로 됐는데 세 가지는 탈색이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 세 가지는 탈색될 수 없지마는 가정적으로는 탈색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세 가지면 뭣 뭣 세 가지입니까?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세 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 됐습니다. 몸이 됐으면은, 몸이 됐으면은 우리의 이 심신의 기능은, 우리 심신의 기능은 뭐이 됐다 말입니까? 우리의 심신의 기능은 뭐이 됐다 말이요? 몸이 됐는데, 몸이 됐는데 뭐이 됐다 말이요? 몸이 됐다면 뭘로 몸이 됐다 말이요? 우리의 심신이 그리스도의 몸된 것은 심신이 진리로 그리스도의 몸 됐고, 영감으로 그리스도의 몸 됐고, 대속의 공로로 몸 됐지 딴거 가지고 몸 되지 안했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면, 여기에 그리스도의 몸이면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에게, 그리스도 몸인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지요? 그리스도의 몸이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된 우리에게 신적 요소를 빼고 나면 우리에게 인적 요소가 남아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러면 다 신적 요소뿐입니까 인적 요소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신적 요소뿐입니까 인적 요소도 있습니까? 신적 요소뿐입니까 인적 요소도 있습니까? 신적 요소도 있고 인적 요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적 요소는 뭐입니까? 피와 성령과 진리 요 셋은 신적 요소입니다.

그러면 신적 요소인데 그러면 요 그리스도의 몸이 된 교회에게 인적 요소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인적 요소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있습니다.

왜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이렇게 말했는가? 신적 요소와 인적 요소가 화합이 돼서 인적 요소가 신적 요소에게 완전히 삼키워졌기 때문에 신적 요소에게 삼키워졌으니까 신적 요소화됐기 때문에, 신적 요소화됐기 때문에 신적 요소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몸이 된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러면 거기에 신적 요소 아니고 인적 요소만, 인적, 신적 요소가 아닌, 신적 요소 인적 요소 합해 가지고서 그리스도의 몸이 됐는데 신적 요소는 다 제외하고 인적 요소 그것만도, 오 년이고 십 년이고 천 년이고 가면은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까 안 됩니까? 억만 년 가도 안 됩니다. 억만 년 가도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 된 것은 세 가지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몸이 됐습니다. 세 가지화돼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이 됐습니다.

또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그 다음에는 뭐입니까? 뭣이 그리스도의 몸입니까? 만물이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왜?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시요’ 하니까 `만유시요'이라면 사람들이 ‘그리스도는 모든 이 만물이로구나.’ 이래서 그만 `모든 만물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만물이라. 만물은 하나님이라.’ 이래 가지고서 하나님과 물질과 하나로 봐 가지고서 이 모든 만물은 하나님이라 하는 이 범신론 같은 이런 것이 될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다 밝히기를 “만유 안에 계신다” 하는 것을 밝혔습니다. 알겠습니까? 이해가 돼요, 만유 안에 계신다 하는 것이? 그렇게 밝혔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만물을 내가 대할 때에 거기에 하나님의 진리가 있습니다. 내가 만물을 대할 때에 하나님의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감이 있습니다. 만물을 대할 때 그리스도의 대속의 구속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나와 만물과 그 사이에, 내가 만물과 상관할 때에 거기에 피가 있고 영감이 있고 진리가 있고 그 사이에 있습니다. 있으면 그거와, 그것과 우리를 중생시키신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나입니까 딴겁니까? 하나입니까 딴겁니까? 인제 자꾸 모르게 돼 간다.

또 그 사람과 나와 둘이 만날 때, 그 사람하고 나하고 둘이 만나는데, 그 사람하고 나하고 둘이 만나는데, 둘이 만나는데 거기에 그 사람하고 나하고 둘이 이래 관계를 가지는데 거기에 진리가 있습니다. 영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있습니다. 대속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세 가지가 있으면, 세 가지가 있으면 우리를 중생시키신 이 세 가지와 같은 것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같은 것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같은 것이면, 같은 것이면 또 그 사람, 그 사람의 속에 있는 거는 모르지마는 그 사람의 행동에 만일 진리가 있다고 하면은 그 사람 행동에 진리가 있고 영감이 있고 대속이 있고, 그러면 영감과 진리와 대속은 나뉠 수가 있습니까 나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러면 그 사람의 행동에 진리가 있으면 그 진리는 뭡니까? 그 진리는, 그 진리는 하나님입니까 하나님 아닙니까? 그 진리는 하나님입니까 하나님 아닙니까? 그 진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입니까 피 아닙니까? 영감입니까 영감 아닙니까? 하나입니다. 하나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있는 그 진리를, 그 사람에게 있는 그 진리를 그것을 대적을 하면은 누구를 대적하는 게 됩니까? 그 사람에게 있는 영감을 욕하면 누구를 욕하는 것이 됩니까? 그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자기와 하나 만드는, 하나님을 자기와 하나 만드는 데에, 하나님을 자기와 하나 만들고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영접해서 자기와 하나 만드는 데에 제일 만들기 쉽고, 영접하기 쉽고, 대우하기 쉽고, 만나기 쉬운 곳이 어뎁니까? 제일 만나기 쉬운 곳이 어뎁니까? 어? 어데? 녜, 현실은 시기를 말하겠습니다. 현실은 시기를 말해. 시기는 현실이겠습니다.

그런데 제일 만나기 쉽고, 사귀기 쉽고, 배척하기 쉽고, 존대하기 쉽고, 대접하기 쉽고, 욕하기 쉽고, 하나님을 사귀기 쉽고, 섬기기 쉽고, 배척하기 쉽고, 욕하기 쉽고, 대적하기 쉽고 제일 우리로 하여금 쉬운 용이한 곳이 어뎁니까? 만물보다 조금 먼 곳은 어뎁니까? 하기 좀 어려운 곳은 어뎁니까? 개인, 개인. 알겠습니까? 개인. 개인 그 사람 만나는 거.

그보다 좀 더 사귀기 어려운 것은 교회. 좀 사귀기 더 어려운 것은 교회입니다.

그보다도 사귀기 어려운 것은 진리 영감 대속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제일 하나님을 대접하기 쉽고 또 영접하기 쉽고 사귀기 쉽고 제일 쉬운 위치가 만물 안에서 만물에게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의 충만이니라 하는 요게가 제일 사귀기 쉬운 위치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보다 조금 어려운 것은 곧 인인 관계의 그 인인 관계에 거기에서입니다.

그보다 사귀기 더 어려운 데에는 교회입니다, 교회. 그보다 더 사귀기 어려운 데는 진리 영감 대속입니다. 사람들은 사귀는 줄 알지만 다 헛일하고 있소.

알겠습니까? “보는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뭐라 했습니까? “거짓말 하는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오늘 밤에 여러분들이 하나 단단히 잡고 가십시오.

하나님이, 하나님의 몸이, 하나님의 형체가, 하나님의 형체는 무형의 존재라.

무형의 존재인데 하나님의 그 역사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형체라 그렇게 해.

무형의 존재가 영감의 역사로 나타나고, 영감의 역사가 진리의 이제 이치로 나타나고, 진리의 이치가 문서 계시 신구약 성경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뭘로 나타납니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 나타나고, 또 그것이 곧 만물에게 충만케 하시는 자의 하나님의 충만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요것이 이해가 됩니까? 의문만 됩니까 이해가 됩니까, ○○○? 이해가 되면 눈이 똑 떨어져서 바짝 떨어질 것인데.

그래, 말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자꾸 사귀기 어려운 데서 사귈라고 애를 쓰고 자기 주관대로 자꾸 하나님을 사귈라고 하는 데에서 실패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신앙 생활은 어데서부터 어릴 때에 해야 되느냐? “만물에게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의 충만이니라” 하는 거기에서부터 시발해야 됩니다.

거기에서 그 생활이 바로 돼 가지고 그 생활이 성장돼 가지고 교회가 되고 또 교회에 그 진짜가 곧 진리요 영감이요 하나님으로 이와같이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만 존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하는 이 말씀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게 되기 쉽고 또 그리스도를 배척을 하면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줄로 이래 알기 쉬운데,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만유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또 만유를 사랑하는 것은 만유 안에 계시는 분을 사랑하는 것이요, 만유 안에 계시는 분을 사랑하는 것은 곧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요 영감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데 하나님은 만유 안에 계시고 “하나님은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느니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을 지금 증거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딴에는 ‘하나님은 내가 사랑하지마는, 하나님은 사랑하지마는 만유를 미워한다.’ 창세기 12장에 보면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를” 뭐라 했습니까?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하리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은 특수한 약속으로 그와같이 지금 특수의 약속으로 되는 것입니까 필연성으로 되는 것입니까, 여기에 ○○○목사님?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면 하나님이 저주한다는 것이 그러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사랑하는 특수한 특약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 아니고 그거는 그러면 특수성이 아니고 필연성이라? 그러면 안 그럴래야 안 그럴 수 없다 말이요? 한번 해석해 봐, ○○○목사? 해석해 봐. 어찌 필연성이라? 어렵다, 그래 해석할라 하면. 몇 권 써야 된다. 저 ○조사님? 또 저 ○조사님? 막 낙제뿐이다. 이거 참 허무하네. 자꾸 주 대는데 맞기는 맞았나? 아브라함하고 하나님하고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가 돼서 인제, “그 몸이니” 하는 이 말씀같이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이니까, 하나이니까 아브라함 뚜드리면 하나님 뚜드리는 것이고 또 아브라함 사랑하면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하나이기 때문에 그래,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이기 때문에. 이 필연성이라. 그 말 그래 알고 했지? 그래 오늘 밤에는 시간 많이 갔는데 여러분들 이래 지금 뭐 막 좀 헝클어서 그만 벙벙하이 이래 놨는데 이 첫 시간이니까 이래 알고 그만 가요. 벙벙하이. 아주 여러분들이 가 새김질하면은 얼마든지 나와.

우리가 하나님의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니” 하는 것은 우리 개인은 그리스도의 몸이니 개인이 그리스도의 몸된 그것은 개인의 그 인적 요소가 그리스도가 돼서 그런가? 아니야. 인적 요소가 그리스도가 돼 그런 게 아니고 그리스도의 그 신적 요소 세 가지가 와 가지고서 인적 요소를 물들이듯이 해서 완전히 감화해서 하나가 됐기 때문에 됐어. 이 방식으로 만물도 하나님의 몸이요 만물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다. 만유시라.

그러면 만물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리스도는 만유시라. 만유시라 했으니까, 그리스도가 만유시라 했으니까 그리스도와 만유와 본 요소가 단일 요소입니까 두 가지 요소입니까? 단일 요소? 우리가 그러면 하나님 돼 버렸네. 단일 요소가 아니라 신인 두 가지 요소라. 두 가지 요소인데 둘이 딱 합해지니까 이제 신적 요소로 말미암아 인적 요소가 신적 요소로 완전히 감화됐기 때문에 신적 요소화됐다 그것이지요.

그러면 억만 년 가면은 그 신적 요소화된 것이 그것이 이다음에는 억만 년 후에는 인적 요소화 될라면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신적 요소와 인적 요소와 이 억만 년 지난 뒤에는 그 요소가 둘입니까 하나입니까? 억만 년 지나고 나면 하나일까? 하나 될까? 하나 돼요? 억만 년 지나면 하나 돼? 억억만 년 지나도 하나 안 돼. 항상 피조물이고 항상 창조주지.

이러니까 그것을 알고 “만물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다” “만물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다” 곧 만물 안에 그리스도가 어찌 계시느냐? “그리스도가 만물로 계신다” 요것을 잘 새겨서 아는데 범신론의 이단을 다 피하고 또 하나님과 이 물질과, 창조주와 피조물의 일치론 하는 그런 것을 피하면 됩니다.

다 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조부라운 주관과 조부라운 모든 인간 두뇌의 종합들로써 무한하신 주님의 도리를 들어 배우고 깨달을라고 할 때에 이는 절대 불가능한 것을 저들이 확실히 주의 말씀을 인하여 믿습니다. 어떻게 유한이 무한화되며 무한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이는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 되는 구원인데 순전히 신적 요소인 주님의 것으로 우리들을 삼켜서 우리들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어 다만 성령의 감화 감동과 진리의 능력과 주의 대속으로 완전케 된 이 대속으로 인해서만 저들이 이 생명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고 생명을 받아 영생할 수가 있음을 압니다.

금번 기회에 인간의 것은 능동으로 주권으로는 털끝만한 것도 나타나지 못하게 하시고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만이 역사하셔서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한꺼번에 완전히 진리화되고 영감화되고 주님의 대속화되어 영광의 찬미로 주님의 모형으로 완성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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