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 여러 종류의 인물

 

1988. 7. 24. 주일오전.

 

본문: 사도행전 3장 1절∼13절 제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송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사도행전 4장 1절∼4절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언제나 증거한 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구원 도리를 문서로 기록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도 있고 또 역사적인 어떤 그런 형식을 통해서 알려 주는 일도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역사적인 한 사실로 하나님이 구원 얻는 도리를 가르쳐 주신  것을 거듭 문서로 또 기록해 가지고 우리들에게 전해 주신구원 도리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서 이 사실로 우리를 구원하는 도의 이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며  믿어가야 하는가 하는 그 구원 이치를 가르치신 것을 여게서 찾아서 깨달아야  하지 그저 하나의 앉은뱅이,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 병 고친 그 한 기적을 소개한  것으로 그렇게만 보면 이 계시가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 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래서, 이 표적은 하나님의 교회에 수많은 인물들이 있는데 그 인물들의 형편을  가지고 오늘 나는 지금 어떤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가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말씀입니다.

여게 보면 수많은 인물들이 여게 참가를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런 건으로  이렇게 참가했고 또 저런 사람들은 저렇게 참가해서 많은 사람들이 여게 참가한  것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첫째로는 나면서 앉은뱅이 된 구걸하는 사람을 여게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타락한  이후 자연법으로 출생한 모든 사람들은 다 앉은뱅이요 구걸하는 사람들이라 하는  것을 여게 가리킵니다.

사람은 벌써 타락 이후 보통 생육법으로 난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지 그 사람은  날 때부터 앉은뱅이요 구걸하는 사람들이라 하는 것을 여게서 보입니다.

앉은뱅이는 자기 길을 걷지 못하는, 날 때부터 사람은 자기의 정로, 자기가  걸어가야 할 자기 정로, 자기 진리를 걸어가지 못하는 앉은뱅이 곧 정상적인 자기  생애를 감당해 가지 못하는 앉은뱅이와 같은 다 사람들이 된 것이요 이는 평생  그 벙 고치기 전에는 그저 구걸 하는자, 하나님의 사람은 정반대인데, 모든 사람이나 만물이나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도움을 입고 유익을 입으려 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는 병신이라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거듭난 새사람은 영원토록 하나님 한 분에게만 얻고 모든 피조물에게는 영원히  주는 사람되어 있는 것이 참사람이요 새사람이요 온전한 사람인 것입니다.

여 게서, 나는 앉은뱅이의 이 병신 구걸노릇을 지금도 하고 있는'내인지 또 그렇지  안하면 고침을 받은 새사람인지 이것을 우리가 스스로 시험해서 판단할 것입니다.

' 둘째로는, 이 사람은 앉은뱅이는 아닌데도 앉은뱅이 된 사람을 성전에다가 날마다  메어다가 놓는데 하나님의 성전으로 인도하는 그 목적이 어데 있는고 하니 그저  구걸을 해서 구걸한 것을 서로 갈라먹기 위해서 메어다 놓는 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나면서 앉은뱅이로서 항상 자기 정로를, 자기 진리를, 자기가 걸어가야 할  자기 정상적인 인생길을 걷지 못하고 항상 남에게 짐이나지고 남에게 구걸이나  하고 만물에게 도움이나 받을라고 하는 이런 사람으로 되어 있는 이 사람을  병고쳐 줄 생각은 못 가지고 그저 성전 미문에다가 메어다가 놔 가지고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면 갈라먹기로 하는 이런 생활을 하면서 아무리 수십 년이  됐지마는서도 이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에 출입하지 못하는 사람이니 이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한 하나님 앞에 버림당한 사람이라, 그때는 성전에 못 들어가면  구원이 없습니다.

그 사람을 하나님과 접해서 그 사람병 고쳐 줄라고는 생각하지 안하고 그저  도적질을 하든지 사기 협잡을 하든지 뭐 죄를 범하든지 십일조나 많이 내고  연보나 많이 내고 그렇게 하면은 그것을 서로 이익 배당으로 해서 자기에게 족한  줄 알고 이렇게 살고 있는 일군들이 많다 하는 것을 여게 보입니다. 그러면 나는  또 내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닌가도 좀 스스로 시험해 봐야 되겠습니다.

셋째로는, 많은 출입하는 사람들이 앉은뱅이가 구걸하니까 앉은뱅이에게 구걸을  줍니다. 그저 자기가 힘 있는 대로 불쌍히 여겨서 도와줍니다.

이 앉은뱅이 된 자에게, 밥 없는 사람에게 밥을 주고 옷 없는 사람에게 옷을 주고  또 해방 직후에는 배고픈 사람들이 많으니까 모두 흰죽을 끓여서 또 우유 가루를  끓여서 이렇게 배고픈 사람들을 나눠 주고 지금도 불우의 이웃돕기로 힘써서  자기의 벌어 놓은 그것을 이웃을 돕기 위해서 구제해 주고 또 적선하고 자선하고  이렇게 하는 일은 힘써하지마는, 그 앉은뱅이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니  하나님 만나지 못하니까 그 사람은 구원이 없는 그 구원 없는 불쌍한  사람이라는데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구원해 볼라고 하는 그런 생각은 없고, 그저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고 희생하고 화목하고 구제하고 자선하고 협조하고 하는  이런 것이면 족한 줄 알고 인생의 중대한 생사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이런 모든 하나님의 일군들이 많이 있는 것을 여게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

 네째로, 베드로와 요한이라는 사람이 기도하러 들어가다가 성전 미문에 구걸하는  이 앉은뱅이를 주목해 보고 그 앉은뱅이가 일생 동안 날마다 남의 신세를 지고  남의 도움을 받고 남을 이용해 먹고 이렇게 해도 죽을 새까지 그거 해 봤자 또  날마다,  어떤 날은 '오늘은, 오늘은 구걸한 양이 많다. 오늘은 많이 좀 얻었다.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많이 봤다.' 아무리 이렇게 해 봐도 그것이 자기 구원되는 것도  아니요, 또 인간이 참사람이 병들어서 이 병신노릇, 비정상의 사람의 이 노릇하고  있는 이것을 고침받지 못한데 대해서 마음에 주목하고 안타깝게 여긴 것은,  이제까지에 여러 인물들이 지나갔습니다. 메어다 놓고 구걸을 하면 갈라  먹을라고 하는 사람들, 또 구걸 주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다 지나갔지마는서도  이제는 이 처음 만나는 새사람이 나왔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제까지의 지나간 모든 사람들과 달리 그 사람에게 얼마 얼마  도와 주고 봉사하고 희생하고 이렇게 뭐 옷 주고 밥 주고 협조하고 화목하고  돕고 하는 그런 것으로써는 그 사람의 영원한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인생의  비참을 면제해 줄 수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심히 불쌍히 여겨서 주목해  봤습니다.

 주목해 보니까 그 앉은뱅이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썩썩 지나가면서 그저 손  내밀면 얼마씩 주고 가는데 이 사람들 두 분은 지나가지 안하고 서서 그 주목을  하고 보고 있으니까 아마 이 사랑들은 자기들에게 대한 그 동정을 해서 톡톡히  무엇을 주리라 생각을 하고서 그 앉은뱅이도 이 사람들을 주목을 했습니다.

 그럴 때에 베드로가 하는 말이 내게는 은과 금은 없다. 내게 금전은 없다. 돈은  없다. 내가 돈으로써 너를 도울 돈은 없다. 또 돈은 없을 뿐 아니라 돈은 너에게  암만 줘 본다 해도 네게 참 도움이 되지 못하고 그것이 들어서 도리어 너 일생  동안 병신노릇 하게만 하고 남의 항상, 남을 이용만 할라 하는 그런 사람만 되고  있고 참 평안한 참사람의 걸음을 걷지 못한다 하는 그것을 알고 말하면서, '내가 너에게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준다. 나는 은과 금이 내게 제일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지 안했고 내가 깨달은 대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분이 필요한  것을 내가 깨달았기 때문에 나는 은금을 내가 모아서 가질라고 생각지 안하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을 내가 모시고 그 이름으로 모든 만족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하고 있으니까 내가 너에게 은과 금으로 주지 안하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너에게 주니까 이 이름을 힘입어서 네가 이제 일어서서,  앉은뱅이가 일어서서 걸어가라.' 하는 이 말을 하면서 손을 잡아 일으키니까 그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일어나서 얼마나 좋았던지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그만 나으니까 당장  찾아가기를 하나님의 성전을 향하여 뛰어갑니다.

이제까지는 암만 성전에 들어가고 싶어도 병신은 성전에 못 들어가도록 돼  가지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 법입니다. 이라다가 병이 나으니까 얼마나 좋았던지  뛰고 걸으면서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이제까지 그는 원망, 불평, 낙망, 비관, 다른 사람에게 항상 죽는 소리, '나는 이래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뭐 지금 남을 도울 수는 없고 이렇게  어려움이,' 저 어려운 거나 사정하고 만날 이런 것만 말하지 그는 참 만족하고  하나님을 찬미할 만한 그런 아무런 깨달음도 그 은혜도 힘도 없었다가 이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니까 이 이름을 받아 가지고서  앉은뱅이가 병이 나아서 일어서고 보니까 이제는 구걸하는 것은 다 끝났습니다.

이제는 구걸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나도 다른 사람을 구제하고 살겠다 하는 그  자신만만한 사람이 됐고 또 하나님 찾는데만 분망한 사람됐고 또 기뻐 즐거워서  하나님 찬미하는 사람으로 완전히 변화돼버렸습니다.

다섯 째로는,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 가지고서 뛰어서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이 사람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서 이 사람으로 변화돼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여섯째로는, 많은 백성들이 이 앉은뱅이가 이와같이 이제 나아서 뛰고  굴리면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뛰어 들어가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걸 보고 모든  사람들이 놀랬습니다. 크게 놀란 모든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일곱째로는, 주목받는 베드로와 요한이라는 사람이 거게 있었습니다. 이 낫게 한  사람들인데 이 모든 사람들이 우 모여서 솔로몬의 행각이라 하는 성전 미문으로  모든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하고 모여듭니다.

이 베드로와 요한이 이 병자를 이렇게 낫게 한 것을 보고 모여 들고 또 병자가,  나았던 병자가 다 집어 던져 버리고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고 딿습니다.

그라니까, 베드로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떻게 나를 주목하고 자꾸 나를 보고서  이상하게 여기느냐? 내 무슨 개인의 경건이나 무슨 능력을 가지고서 이 환자를  낫게 하는 것인 줄로 아느냐? 이는 아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그저  받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그에게 준 것뿐이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그에게 주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그에게 절대 복종자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일을 일으키셨다 그렇게 하면서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렸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보고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교인들 사두개교인들은  이들은 이 사실을 보고 시기해 가지고서 그만 베드로와 요한이를 잡았습니다.

죽일라고 잡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벌써 그 말을 듣고서 놀래서 '아, 인생 구원이  여게 있다.' 이라면서 당장에 오천 몇이나 믿는 사람들이 되니까 그때에 베드로와  요한을 죽이다 가는 오천 명이 돌을 들어 가지고 다 쳐서 그들을 죽일 터이니까  겁이 나서 심문할 것이 있다 하고서 옥에다 가두어 날이 새기를 기다렸습니다.

여게 이렇게 여러 가지 종류의 인물들이 있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도 있었고, 또  구걸하기 위해서 성전 미문에 메어다 놓는 사람들도 있었고, 들어가면서 나가면서  앉은뱅이에게 구제와 구걸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무리 구제와 구걸을 줘 봤자 그것으로써는 그 앉은뱅이의 문제는 해결이 안  된다. 그는 죽으면 지옥을 가야 할 것이고 또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하니까 성전에  가서 사죄도 못 받지 칭의도 못 받지 구원도 못 받지 하는 인간들이 주고 받는  이것으로써 많이 모으고 적게 모으고 뭐 이런 것이 많든지 적든지 그 사람을  구원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주목하고서 본 사람들은 이제까지 출입하는 가운데에  베드로와 요한 두 사람 밖에는 없었습니다.

이러니까, 그 구걸하는 사람도 보통 사람보다 달리 좀 마음을 가지고 주목하고  보니까 '아, 오늘은 좀 큰 걸 아마 많은 걸 줄란갑다.' 이래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기다리고 있는 소망하는 것이 너무 불쌍하고 가련해서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다. 너는 은과 금을 지금 기다리고 있지마는 은과 금은 내게 없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준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니 이 이름을 네가 영접해서  이 병에서 나음을 받으라.' 이라니까, 그 앉은뱅이가 곧 나아서, 낫고 보니까 어떻게 좋았던지 뛰면서  굴리면서 그만 이제까지 못 들어가 본 성전에를 달려가면서 하나님을 찬미하면서  그렇게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서 앉은뱅이가 아주 병 나아서 이제는 건전한  사람으로 하나님 찬미하고 하나님 성전에 들어가는 걸 보고 놀래서 그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저런 분은 어떠한 사람일까 하면서  주목을 하고서 그리 다 마음들의 시선들은 다 집중했습니다.

이라니까, 베드로가 '우리 개인의 무엇으로 너거가 된 줄로 알고 그렇게 생각하나  너거 조상 아브라함, 너거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절대 죽기까지 복종한 예수를, 하나님에게 복종한 예수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예수의 이름으로 그를 낫게 해서 나았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라니까, 모든 사람들이 보고 기이히 여기고 좋아하고 기뻐하면서 이렇게 나도  이제는 예수의 이름 가질란다, 예수의 이름 모실란다 하면서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벌써 수천이 되어지는데, 거게 이미 믿고 있는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 교인들 사두개 교인들 예수 잘  믿는다 하는 자들은 저거가 제일 왕노릇하고 어른 노릇하고 이랬는데 아주  이름도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낫게 한 것을  보고서 시기하고서 분히 여겨서 잡아 죽일라고 지금 잡아서 옥에 가뒀습니다.

이것이 그때에 일어날 때에 거게 참가한 모든 인물들입니다. 이 인물들은 교회  밖에 있는 인물들이 아니고 교회 안에 있는 인물들을 이렇게 분류해서 주님이  형식으로 이렇게 계시해 가지고 우리에게 구원도리를 보이신 것입니다.

여게서 우리가 깨달을 것은 인생은, 정상의 사람은 하나님 한 분에게만 얻고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영원히 주는 것이 정상의 위치입니다. 이래서, 에베소 1장 끝절에  보면은 모든 피조물 만물들에게 하나님의 것을 받아 가지고 영원히 충만케 해서  주는 그 직책이 그것이 참사람의 직책입니다.

이래서, 하늘에 천군 천사들도 있고 땅에 있는 모든 만물들도 있지마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하나님에게만 은혜로 도움을 받고  피조물들에게는 영원히 주는 것이 이것이 정상의 사람의 위치요 직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생이 완전히 변질돼서 그저 뭐, 상관도 부하를 사랑하는 것은  부하에게 얻기 위해 부하의 것을 끌기 위해서, 또 그 부하가 상관을 사랑하는  것도, 부모자 자녀를 사랑해서 기르는 것도 그렇지 안한 것도 있지마는서도 그  깊이 깊이 따져 보면은 다 그것이 구걸 행위를 벗어나지를 못한다는 걸 여게서  단정을 지웁니다.

'이거야 그거는 말도 아니다. 나는 부모의 입장으로 자식 위해서 전부를 다 희생해  줄 그런 각오지 자식에게 무슨 도움을 받을라고 하는 것이 어데 있겠느냐?'  이러나 몰라 그렇지 깊이 분석을 하면은, 전부 그게 다 구걸하는 행위라 하는  요것을 우리가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간병 고침을  받지 못한 사람 그 자연인으로서는 모든 피조물에게 다 찌끼 같고 때 같고 누를  끼치고 다 그것들에게서 도움을 입을라 하는 그 구걸 행위이지 구걸을 벗어나는,  구걸 정신을 벗어난 자는 하나도 없다 그렇게 성경은 말합니다.

이래서, 지금 산아 제한을 빛좋게 모두 뭐 '아이를 그렇게 다 만족히 기르지는  못하니까 제한을 한다' 하는 그 거짓말쟁이, 그 거짓말쟁이, 산아 제한에 회장이  우리 교회 지금 집사님 돼 가지고 있습니다. 부산에 산아 제한의 회장이 깨닫고  서부교회 와서 지금 우리 교회 집사님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참 빛좋은 개살구의 말을 하고 있지마는서도 뻔히 봐 봤자 자식 하나  기를라 하면 자본은 얼마 드는데 길러 봤자 그거 아무 소용없다는 것이 세계의  공통 통계이기 때문에 다 수입이 없어 그렇지 그 기른 것이 자기에게 돈보다  뭐보다도 전부 효력이 있으면은 막 자식 기르는데 밤낮으로 자식만 만들고  자식만 기르는데에 전심 전력 기울일 것입니다. 이게 다 구걸이라 하는 것을  이해를 못 해도 인정해야됩니다.

자연인은 전부 구걸하는 인간들이요, 또 자기 걸음을 걷지 못하는 모든  앉은뱅이들이라 하는 것을 성경이 단정지운 것을 자기가 믿어야합니다.

여게 보니 메어다 놓는 사람들도 이렇게 구걸하는 일을 할라고 메어다놓는  수고야 얼마나 했겠소? 매일 메어다 놨습니다. 매일 메어다 놨지마는서도 그  동기가 구걸 위해서 메어다 놨고 또 암만 수고해 봤자그 사람을 이 지옥갈  사람을 천국 보내지 못하고 하나님 못 만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했고  사람병을 고쳐 주지 못했기 못하고 마지막에는 싹 이별해 버렸습니다.

이 앉은뱅이 병이 낫고 난 다음에는 그만 뭐 인사도 하지 안하고 그만. 막 베드로  따라서 거머쥐고 따라서 그만 따라 붙입니다.

이라니까, '어데 가노? 어데 가노?' 이라니까 '어데 가노' 들은척 만척도 안합니다.

그랬을 거라, 필연 들은 체 만체 하고 뭐 듣지도 안하고 그만 달아나 버려. 내가  벌써 수십 년 메어다 놓고 업어다 놓고 만날 지금 이렇게 했는대 어데 간다고서  인사도 한 마디 안 하고 그만 자꾸 달아나느냐?' '필요 없어! 너는 나를 이용해  먹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 해석을 하면은 아무 필요 없어!' 싹 이별하고서 지금  달아납니다. 이래서, 아무리 자기가 사랑하는 자녀든지 후배든지 아무리 길러도  그거 구걸하는 자 만들어서 '너 야, 일류 대학에 해야 일류 도둑놈이 된다. 제일  높은 학을 만들어야 남에게 착취를 많이 하고 잘먹고 살수가 있다.' 아무 그거''  그래 해 봤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니고는, 그 역사가 아니고는 사람병 못  고칩니다.

사람병은 고쳐 주지 못하고 처세하는 모든 경제법, 생활 온갖 박력의 그런 일을  아무리 길러 줘도 언젠간가 버리고 떠납니다. 언젠가 버리고 떠납니다.

마지막에 제가 죽을 매라도 '이거 참, 그 비오는 날 죽으니까 초상치기 곤란하네.'  이거 또 '자꾸 저라니까 얼른 그만 세상 떴으면 좋겠네'죽으면 시원하게 생각하고  메어다 내버리지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의 이 구걸 행위 하도록 그 수고를 암만해도 그  수고의 댓가는 하나도 없이 완전히 그 사람은 잊어버린다 하는 것을 요것을  여게서 우리가 깨달아야합니다.

또, 자기가 아무리 뭐 구제를 많이 하고 구걸해 줘도 아무 소용없소.

다만 여게서 제일 복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제일 복있는 사람은 여게  보니까 제일 복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제사장이 복이 있느냐, 서기관이 복이  있었느냐, 바리새교인이 복이 있었느냐, 모든 부자들이 복이 있었느냐, 구제해 준  사람들이 복이 있었느냐, 그 성전에 들어간다고 도복입고 점잖하게 돌아다니는  그자들이 복이 있었느냐? 거게서 제일 복있고 기쁘고 즐거운 사람은 나면서  앉은뱅이로서 병나은 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최고로 행복을 가졌고 기뻤고  즐거웠고, 또 기쁘고 즐거움만 가졌읍니까? 전 인류에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전  인류에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때 뭐 다른 사람 안 보이오. '아, 저거  앉은뱅이인데 일어났다. 좀 봐라. 봐라.' 전부 전 인류의 그 시선은 그리  끌렸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땅위에 나그네 세상에서 살면서 제일 행복된 사람이 누구냐? 자기  인간병을 고쳐서 참사람, 새사람, 온전한 사람, 하나님 한 분에게만 받고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영원히 주고 주는 이 참사람의 위치를 다시 회복받은 이 인간병  고침을 받은 이 사람이 제일 행복된 사람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뭐 자기가 무슨 사업으로써 하나 성공했다고 기쁘나? 그 사업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도 아까운 것을 두고 떠날라 하니까 마지막에 죽을 때에  슬퍼도 슬프고 그게 가도 슬프고 다 그런 거는 정함이 없는 다 요동되는  것들이요 거짓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이 지위를 차지할라고 애를 쓰지마는서도, 우리지금 O  대통령이 아마 대통령 지위 차지할라고 애를 썼지마는 지금은 지금 벌써  '아이구야, 이거는 행복된 자리가 아니다. 이거는 참 심히 힘드는 자리이고  고통스러운 자리요 나보다 제일 고통 많은 사람은 없는 이 자리다.' 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아무라도 다 그렇습니다. 이러기에, 행복은 어데 있느냐? 자기라는  사람병을 고치는 여게만 행복이 있습니다. 여게만. 조그만한 것이라도 '나는 이  교만 때문에 모든 사람이 싫어한다, 이 교만이라는 인간병을 내가 하나 고쳐봐야  되겠다.' 교만병을 하나 고쳐 볼라고 애를 쓰면 그 속에서는 한없는 진진한 행복과  기쁨과 만족과 그 광영이 나옵니다.

자기는 '나는 지금 왜 불안한가?' 이 시기병 이놈 가지고서, 시기병. 또 공연히  그만해도 먹고 살 건데 필요 없는 허욕, 헛된 욕심병, 교만병, 또 모든 탐욕병,  정욕병, 명예욕병, 사람이 죽고 싶다고 죽지도 못하고 살고 싶다고 살지 못하는데  생의 애착욕 그거 다 인간병입니다. 사람을 아무리 죽일래도 못 죽입니다! 죽이지  못합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지마는 아버지께서 허락지 안하시면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안합니다. 너희들은 참새보다 얼마나 귀하냐? 너희들의  머리털 하나까지 다 세신다 했는데 공연히 생의 애착욕에서 죽을까 싶어서 겁이  나 가지고서 항상 떨고 있는 이것도 살고 싶은 욕심도 그것도 인간병입니다. .

하나님이 살게 하시면 살고 죽게 하시면 죽고, 하나님이 살게 하시면 천하 사람이  다 죽일라 해도 못 죽일 거, 천하 사람이 다 달라들어도 천하 의사들이 다  달라들어 가지고 살릴라고 해도 하나님이 죽어라 하면 죽어야 하는 것, 자기에게  아무 권리가 없고 피조물에게 권리가 없는데 공연히 이 생의 애착욕의 병이 들어  가지고서 사람들은 고통합니다.

이래서, 인간의 제일 행복은 자기 인간병 고치는 이것이 제일 행복이다. 현재에도  행복이요 고칠라고 노력할 때도 행복이요 고치고 난 다음에도 행복이요 죽을  때도 행복이요 영원 무궁에도 제일 행복스러운 것은 인간병 고치는 이것이 제일  행복이다 하는 것을 여게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둘째로 행복된 사람은 누가 둘째로 행복된 사람입니까? 뭐 업어다 놓고 져다  놓고 아무리 대대학을 시키고 뭐 일류 대학을 시키고 어떻게 했다고 해도 그  사람은 다 껍데기요 마지막에는 다 잃어버립니다. 제사람은 하나도 안 돼.

소용없어. 둘째로 행복된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이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다른 사람에게 준 그 사람들이 행복 돼.

이러니까, 둘째로는 이들을 보고 다 주목하고 따라왔고, 몇십 년 메어다  놨지마는서도 그 메어다 놓은 수고한 사람들은 똥갈이 버려 버리고 지금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라붙어서, 아마 베드로와 요한이가 똥이라도 먹으라 하면  먹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발이라도 핥으라 하면 핥았을 것이오.

이렇게 인간병을 고쳐 주는 그것이 자기 인간병 고치는 것 다음에는 행복입니다.

이걸 알기 때문에 이 외에 딴거 할 것이 없어!, 이라기 때문에, 인간병 고치는 것을 자기의 직업으로 깨달은 사람들은 해서 이거  위해서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치기 위해서 피곤한 줄 모르고 죽는 그  시간까지 하면서 마지막에 생명까지도 순교로 생명도 인간병 고치는데 바치고  가겠다고 하는 것이 깨달은 하나님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셋째로 행복된 사람이 누구입니까? 인간병 고친 그것 보고서, 기이히 여기면서  부러워하는 그 사람들이 셋째로 복있는 사람입니다.

'저거 예수 믿고 난 다음에 별 사람 됐네. 사람이 훨씬 달라졌네.'인간이 달라진  것을 보고!! 사람이 달라진 걸 보고!! 가치로 여겨서 좋아할 줄, 아는 인간이  돼야합니다!! 이것도 없으면 도야지라!! 무슨 가치 있어!! 돈 많이 버니까, 권세가 높으니까, 일류 대학에 올라갔으니까, 뭐 높은 권세,  지위를 받았으니까, 기술을 능하니까, 다 썩은 것이야. 썩은 것으로 썩은 것  만들고 끝나.

그러기 때문에, 제일 행복된 사람이 자기 병 고친 사람, 자기 인간병 고친  사람이요, 둘째 행복된 사람은 남의 인간병을 고쳐 주는 사람이요, 셋째 행복된  사람은 인간병 고친 것을 부러워하고 기이해 하고 놀라 여기는 그것이 셋째로  행복된 사람이오.

 제일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인간병 고친 것 보고 시기하고  질투해서 훼방하는 그자, 제가 고쳤으면 좋을 건데 제사장 서기관들 저거는 하지  못하고 딴 사람이 하니까 시기하는 것, 인간병 고치는 것 보고 기뻐 즐거워  찬양할 줄 모르고 거게서 질투하고 시기하는 고라와 같은 그런 행동하는 자가  제일 불쌍한 자입니다!  이래서, 오늘 이 말씀에서 간단한 시간에 다 말하지 못하나 여러분들이 가서  읽어 보면서 이 사람 저 사람 그것이 다 교회 안에 있는 인물들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인물들이오.

 교회 안에 있는 인물들이니까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제일 행복자인가, 제이  행복자인가? 제일 행복 제이 행복을 딱 혼자 다 차지한 사람인가? 셋째로 행복을  부러워하고 행복을 받을라고 기이히 여기면서 부러워하는 그 사람인가? 이것을 오히려 시기하고,'저게 예수밖에 모르네. 저거 변해졌네. 그저 누워자면  아침에 해가 돋도록 거머안고 누워잤는데 저게 새벽에 네시가 되니까 떠들어  일어나 가지고서 자꾸 갈라 하는 걸 암만 가지 말라해도 새벽기도 가네.' '저  남편이 새벽기도 가네' '저 아내가 새벽기도 가네' '저것이 주일을 잘 지킬라고  애를 쓰네' '서로 의논이 맞아'서 거짓말도 해대고 속이기도 하고 협잡도 하고  이래 장사했는데 저게 어짠지 거짓말 안 할라 하지 속이지 안할라 하니까  장사하면서 정직, 정직해 가지고 장사하는 수가 어데 있노?' 이래 가지고 자꾸 싸웁니다. 집집마다 싸움이라. 집집마다 싸우는 것은 사람병이  고쳐지니까 제사장 서기관들 모양으로 지금 이 베드로 요한을 잡아다 가둔 거  모양으로 사람병 고친 그 사람들은 욕을 해 이래 가지고서 협박이 자꾸 옵니다.

백 목사 좀 바꿔 달라고. 그래가지고 바꿔 주면, 바꿔 주면, 왜? 내가 그놈의  새끼를, 그놈의 영감탕구를 몽둥이로 패 죽일란다, 뭐 칼로 어째 죽일갈다, 뭐  어짤란다 이래 쌓는데 그거 왜 그러냐? 그거 사람병이 고쳐졌으니까 그런 거라.

그 사람이 제일 불행스러운 사람인데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서 어짜든지 첫째  복을 못 가지면 둘째 복을 못 가지요.

 첫째 복 가지고 둘째 복 가지고 이제 셋째 복이라도 가지는 사람이 돼져야 되고  화 있는 사람이 되어지면 안 됩니다.

 가정이 제일 행복된 것이 뭐이요? 인간병 고치는 그 가정이 제일 행복된  가정이오. 둘쌔로는 인간병 저만 고칠 게 아니라 다른 병들을 고쳐 줄라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다 행복입니다.

 이러니까, 목사도, 장로도, 또 조사도, 권사도, 권찰도, 집사도, 반사 들도 이런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메어다 놓는, 구걸 갈라 먹을라고 메다놓는 자도  있을 수 있고, 또 구걸 지금 주는 자도 있을 수 있고, 앉은뱅이된 자도 있을 수  있고, 베드로 요한 된 자도 있을 수 잇고, 주목하고 기이하게 여겨서 따라붙는  모든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하는 것이니까,  요게서 교회 안에 각양의 그 인물들의 모르는 것을 하나님이 가르쳐서 자기의  비참한 것과 행복된 것을 그것을 찾아 가지게 하려는 이 말씀을 깊이 깨달읍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자기를 확정하십시오. 자기를 확정하십시오, 우리는 피조물에게 얻을라고 하는  것을 완전히 벗어버립시다. 조물주 한 분에게만 얻어 가지고서 피조물에게는 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큰 것 주기 위해서 적은 것 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물 한 그릇 청한 것은 생수를 주기 위해서  청했습니다. 인간에게 피조물에게 받을 것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에게 받아서  피조물에게는 줄 것밖에는 없습니다.

(기 도) 감사합니다. 어떤 것이 인간병 든 자인 것을 알려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는  하나님 한 분의 은혜로써 모든 피조물에게 봉사할 수 있는 이 본 지위를 회복해  주셨사오니 날마다 자신을 고쳐 인간병을 완전히 고치는 여기에 행복이 있고 이  사업만이 영원히 부끄럽지 않는 사업인 것을 깨닫고 힘쓰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게서 이 영광스러운 이 일에 시기나 질투나 훼방하는 이런 불쌍한 일들이 전혀  없도록 깨끗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사람들을 불러서 구원한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사오니 주님에게 모든 것을 의논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의논할 때에  장중에 잡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사 험한 세상이나마 아무 염려없이 평강  가운데서 잘 영원을 준비하는 저희들 되게 하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남녀 종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그 속에서 점점 형상을 이루고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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