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01 22:27
■ 선교사역보고 (2014년 4월)
1. 문안 인사
주은 중 교회와 가정에 평안을 문안드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 같이 사랑하는 길 중에 가장 첩경의 길이 선교인 줄 믿습니다. 복에 복을 더하는 길 중에 가장 첩경의 길도 선교인줄 믿습니다.
(롬10:13-15)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2. 토마토
이곳 선교지에는 과일 종류도 다양하고 채소 종류도 다양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서민이라 할지라도 채소나 과일을 한국에 중산층 보다 더 많이 먹는 것 같습니다. 식당에서 쌀죽이나 좁쌀죽을 한 그릇을 먹어도 야채 반찬을 몇 접시 곁들어 먹습니다. 특이한 것 중에 하나는 토마토를 과일 가게에서는 취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한 지역에서만이 아니라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토마토는 꼭 채소가게에서만 판매를 합니다.
토마토하면 생각나는 것은 아주 어린 시절 부산서부교회 바로 옆에 청과조합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토마토는 날씨가 더운 여름철에 출하되는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런 시기에는 동네에 리어카를 하나 빌려서 어머니와 함께 청과조합에 갑니다. 청과조합에 들어서면 큰 대바구니에 토마토가 수북이 담겨져서 여기저기 가득 쌓여있었습니다. 이곳 선교지 채소 도매시장에 가면 얼기설기 엮은 큰 대바구니가 보이는데 그 때를 떠올려져서 정겹습니다.
그 당시 토마토가 출하되는 여름이 오면 토마토를 몇날 며칠을 양껏 먹을 수 있어서 좋았던 생각이 오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어지지가 않습니다. 또 그 때 토마토는 농가에서부터 잘 익은 것을 수확해서 출하했기 때문에 한 입에 물면 과즙이 터져 나와서 본인은 물론이고 옆 사람에게까지 튀겨질 정도였습니다.
토마토를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현재 우리 교회의 상태가 이와 비슷해서 예를 들기 위함입니다. 그 때는 잘 익은 토마토를 먹었는데 지금은 농가에서부터 설익은 푸른 토마토를 출하해서 유통과정에서 익혀 먹기 때문에 본래 제 맛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세대들은 그 때를 모르기 때문에 지금의 토마토 맛이 본래 고유의 맛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지요. 지금의 교회들은 우리 어릴 때의 교회와는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별 문제가 없는 교회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그래도 경건했던 때를 기억하는 증인들이 아직 남아 있지만 이곳 선교지 교회는 그 조차도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선교사들이 뿌린 씨앗이 그대로 싹이 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지금의 선교사들을 통해서 받은 것이 본래의 고유한 교회 정도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초기 선교사를 통해서 들어온 참 신앙과 비교하면 지금은 많이 속화가 되었는데 이것을 부인할 자 없을 것입니다.
3. 주일성수
우리 어릴 때에 주일성수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본이며 초보였습니다. 집에 먹을 양식이 떨어져도 주일에는 매매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일해 먹고사는 시절에는 토요일에 가장이 품을 팔아 와야 주일날 먹을 양식을 살터인데 가장은 어떻게 늦게 귀가하고 쌀가게 문이 닫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린 아이들이 있는 부모의 심정은 어떻겠는지 헤아려질 것입니다. 그랬지만 조끄만 아이들도 그런 가운데서 신앙이 자랐습니다. 그러나 주일성수 신앙을 양보하고 자란 가정의 아이들은 커서도 신앙이 약하고 희미했습니다.
그랬던 한국교회의 주일성수 신앙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사야 선지자 때에 칠천 인을 남기신 것같이 오늘도 주께서 남기신 칠천 인 외에는 주일성수를 모두다 범하고 있습니다. 교단적으로 그렇고 교회적으로도 그렇고 다 그렇습니다.
옛날 같으면 주일성수가 초보신앙 밖에 되지 않는 것인데 지금은 목사도 장로도 집사도 주일성수에는 감각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지 교회에 꽤 신실하다는 목회자들조차도 한국교회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서 주일성수에 대한 개념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잘 익은 토마토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설익은 토마토가 아주 정상적인 것으로 알 듯이 말입니다. 아, 언제 가르쳐서 주일성수 하는 교회가 될까 싶어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4. 찬송가
우리가 유년주일학교 시절에는 오늘날 같이 복음성가는 없었습니다.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예수께서 오실 때에’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나의 사랑하는 책’ ‘날 구원하신 예수를’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등을 찬송했습니다. 기쁘게 열심히 불러서 아마도 하늘에 닿기까지 불렀을 것입니다.
오늘에 있어서 그때 불렀던 찬송가는 케케묵은 것인가요? 오늘 교회의 신앙이 케케묵은 것일까요? 말도 안 되는 것이 오늘의 교회에서는 얼마든지 먹혀들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바로 다스려야 하는데 오히려 그런 저들에게 굴복을 당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기름을 부음 받은 자로서 제사장 직책, 선지자 직책, 왕 직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직책을 팽개치고 있습니다. 마치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선장과 행해사 등이 자신의 직무를 버린 것 같이 말입니다. ‘안심하고 그대로 있어라’했지만 그 속에 있는 목숨들은 억울하게 희생을 당했습니다. 선장과 항해사 등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지은 것이라 합니다. 미약해서 감당하지 못한 것이야 긍휼이 여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이룰 구원을 거스린 것은 고라의 당과 같습니다.
한국 교회가 지금 거의 이런 상태이기 때문에 한국 교회가 선교하는 지역은 대체로 복음성가를 앞세웁니다. 마치 우리 어릴 때 동네마다 동동 북을 치고 다니면서 얼굴과 손에 바르는 크림을 파는 동동 구리모 장사와 같이 말입니다. 선교지 교회가 이렇게 설익은 토마토 같은 것만 보았기 때문에 찬송가는 거의 없고 복음성가를 부르고 드럼과 기타를 치는 것이 정상적인 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언제 바로 가르쳐 바로 세워지는 교회가 될까 생각하면 속이 탑니다.
5. 방언파
우리 어릴 때에도 방언파, 신유파, 지시파 등이 있었습니다. 그나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의 정통교회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기를 거의 이단으로 상대했습니다. 아, 그런데 어떻게 된 셈인지 방언파 등이 교묘하게 정통교회 안에 깊숙이 뿌리를 내려서 방언을 하면 성령이 충만한 것처럼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어두워져서 미혹 받아 마귀에게 통째로 삼켜져버렸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는 방언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여져 있는데 서론이며 결론격인 고전14:1에는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고전13:1-3에는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선교지 교회에 한국의 방언파가 들어와서 경건하게 예수 믿는 교회들을 불건전하게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마치 잘 익은 토마토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설익은 토마토가 정상적인 토마토인양 방언에 대한 문제 또한 그렇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 언제 가르쳐서 바른 인식을 가지게 할까 생각하면 속이 탑니다.
6.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
선교지에는 할 일이 분명히 있고 또 많습니다. 선교지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전할 일입니다. 목회자가 진리의 말씀이 곧 구원의 복음이 되게 전해야 속한 교인들이 따라서 바로 구원을 이루게 됩니다.
진리의 말씀은 예수를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 그 진리의 말씀이며, 구원의 복음은 믿는 우리에게 인치시는 약속의 성령 곧 믿는 우리에게 베푸시는 지극히 큰 능력으로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고(엡1:19-20) 우리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시는(롬8:11) 구원의 복음입니다.
그리하여 현재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곧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약하지만 힘 있는 대로는 개혁주의 신앙이 되는 ‘오직 성경으로’를 향할 수밖에 없고 또 외칠 수밖에 없고 또 보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7. 선교지 사역형편
이곳 선교지는 외국인이 자국민을 상대로 교회를 세울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사가 현지에 교회를 세워서 목회사역을 할 형편이 안 됩니다. 다만 현지 목회자에게 성경적 교리신조를 가르치는 사역을 합니다.
그래서 이곳 선교지에서 선교사역을 한다고 하면 주로 목회자와 관련된 사역입니다. 그 외에는 간접적 사역입니다. 그렇기에 선교사가 사역을 계속할 수 있는 형편이 된다는 것은 현지 목회자와 동역하는 사역이기 때문에 이들 목회자에게 동역할 수 있는 실력으로 자라져 가야 됩니다. 또 감당하게 하시기 위해 자라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마치 소라 껍데기마냥 현지 목회자분들이 자라가므로 선교사는 덩달아 자라간다고 보면 맞습니다.
8. 조직적 성경교리
미약한 종이 이곳 목회자들과 동역하는 사역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은 ‘조직적 성경교리’입니다. 이곳 목회자 분들과 성경공부를 하게 되면 교리에 대한 질문이 끊이지 않습니다. 교리뿐만 아니라 신조도 바르게 전해야 합니다. ‘조직적 성경교리’는 이에 대한 강의 자료이며 답변 자료입니다.
이달 4월에 ‘심판론’ ‘지옥론’ 정리를 마쳤고 이제는 제일 말째에 ‘천국론’만 남았습니다. 참고로 ‘조직적 성경교리’의 총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구원론/ 성령론/ 죄론/ 예수 그리스도론/ 하나님론/ 사람론/ 성경론/ 천사론/ 마귀론/ 교회론/ 말세론/ 강림론/ 부활론/ 심판론/ 지옥론/ 천국론
위의 목차는 원고를 집필한 순서이며, 아래는 성경에서 나타내는 교리 순서입니다.
하나님론/ 예수 그리스도론/ 성령론/ 성경론/ 천사론/ 마귀론/ 사람론/ 죄론/ 구원론/ 교회론/ 말세론/ 강림론/ 부활론/ 심판론/ 지옥론/ 천국론
9. 착하고 충성된 종
열심히 한다고만 해서 충성이 되는 것 아닐 것입니다. 목회, 신앙, 기도, 전도, 연보, 선교에서 힘써 참여하지만 주께서 인정하는 충성이 되어져야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충성인지를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25:14-23)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주께서 자기 소유를 맡긴 그 종들이 바로 가서 장사를 하여 또 다섯 달란트와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므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칭찬했습니다. 그러면 주께서 우리 종들에게 맡기신 달란트는 무엇인가요?
(마10:1-8)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주께서 맡기신 달란트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입니다. 주의 종 된 우리가 장사하여 또 남길 달란트는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하셨습니다. 이 충성이 있는지 확인을 하면서 주의 일을 할 것입니다.
10. 순회 사역
언급한대로 이 달에 조직적 성경교리의‘천국론’이 마무리 될 예정이고 그러면 원고는 1차 마칩니다. 현재 강의를 하면서 2차보완 중입니다. 이제 인도하심에 따라 여러 지역을 순회하면서 예수 믿는 구원 도리를 전하고자 합니다.
예수 믿는 구원 도리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장 아담의 죄(원죄)
제2장 우리의 죄(본죄)
제3장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제4장 우리의 믿음
제5장 약속의 성령
제6장 영생의 구원
또한 신천지(이만희), 하나님의교회(안산홍,장길자) 구원파(유병언, 이요한, 박옥수), 지방교회(위트니스 리) 등의 이단 사이비 반증도 겸할 것입니다.
11. 선교비 동역
순회사역에는 제반 경비가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선교동역 협조공문으로 작성합니다.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 주의 일에 동역하실 교회에 보낼 공문입니다. 그리고 사역 내용에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시거나 또한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 내용에 확인이 필요하시면 직접 방문하여 설명 및 시범적 강의를 하겠습니다.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한 목숨이 천하보다 귀합니다. 천하는 복음을 위해서 있고 복음은 우리를 위해서 있습니다.
선교비 후원계좌는 다음과 같습니다.
▪ 국민은행 655201-01-492074 예금주: 선지자문서선교회
先知者文書宣敎會
비영리법인 고유번호 104-82-62022 http://www.seonjija.net/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3가 295-4 양지빌딩 202호 우편번호 100-846
TEL. 한국 02-743-1002, 070-8285-7122/ 해외 86+(0)24-********. 070-8285-7133
제호 : 2014-5-1
제목 : 선교동역 협조공문
수신 : 담임목사, 선교동역자
협조 : 주은 중 교회에 가정에 평안을 문안드립니다. 본회는 그동안 귀 교회의 동역으로 미약하지만 주 안에서 선교사역을 감사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선교지에서 진행 중에 있는 사역과 그리고 각 지역 교회를 순회하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그에 따른 선교비 동역이 필요하여 다음과 같이 선교동역 협조공문을 보냅니다.
1. 선교지역 : 중국 교회
2. 선교사역 : 선교지 교회 목회자들께 성경교리 강의와 이단사이비 반증
1) 성경교리 강의 : 제1장 아담의 죄(원죄), 제2장 우리의 죄(본죄), 제3장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제4장 우리의 믿음, 제 5장 약속의 성령, 제6장 영생의 구원
2) 이단 사이비 반증: 신천지(이만희), 하나님의교회(안산홍,장길자), 구원파(유병언,이요한,박옥수) 지방교회(위트니스 리), 신사도운동 등
3. 후원계좌 : 국민은행 655201-01-492074 예금주 : 선지자문서선교회
4. 별도첨부 : 본회소개 리플렛 양면 1부, 끝.
2014.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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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 선교사역보고 (2014년 5월) | 선지자 | 2014.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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