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영희목회설교록 재독과 정리
선지자선교회
지금 이단에 대한 반증 자료를 집필 중에 있습니다. 교계에 미혹을 많이 주고 있는 이단들과 또 교계에서 이단 판정에 혼선을 두고 있는 이단들에 대해서 집필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백영희목사님의 이단관은 어떤지 살펴보고 이단연구에 참고하고자 백영희목회설교록에서 ‘이단’에 관한 설교를 찾아보았습니다. 여러 편 중에서 백영희목회설교록 1984. 9. 28. 금 새벽 설교를 재독과 정리를 하였습니다.
목회자가 이단에 대해 반증할 때 그로 오는 시비와 박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재독과 정리한 백영희목회설교록에서는 그 본문이 엡6:18-19의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입니다.
이 본분에 대한 설교는 ‘이단에 대해서 깨달은 것을 담대히 전하라’는 교훈이었습니다. 그래서 설교 제목을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로 정하고 재독과 정리를 마쳤습니다.
재독과 정리를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목회자는 최소한 한 주간에 한 설교는 재독 겸 정리를 권면해 봅니다. 아래의 글은 일주일 전에 쓴 글인데 또 백영희목회설교록을 말하는가? 할까 하여 보류해 놓았다가 마침 그 권면 성격에 부합된 글인 것 같아서 정리가 미달된 글이지만 올립니다.
● 백영희목회설교록 재독과 정리
선교지에 온 직후부터 백영희목회설교록을 재독하였다. 외지에 나가지 않을 때의 주일은 오전 예배 시간에는 백영희목회설교록으로 재독을 하고, 오후 예배 시간 전까지 재독한 설교를 제목과 소제목 그리고 서론과 본론과 결론을 정리하여 프린트를 한다. 오후예배 시간에는 프린트한 자료를 각자에게 배부해서 한 문단씩 돌아가면서 읽으면 인도자가 그 문단에 대해서 설교를 덧붙인다. 이러한 예배 형식이 현재까지 근 10년이 되었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백 목사님 생전에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백 목사님을 대면하지 못했다. 그러나 백 목사님의 교훈은 10년을 넘게 대면했다. 아이들은 주변 아이들과 비교해 볼 때 신앙이 보다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함은 백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그 교훈으로 양육되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목회자로서 백영희목회설교록으로 재독을 선택한 것은 참 감사한 일이며 전적 은혜이다.
백영희목회설교록을 재독하게 된 것은 본인이 먼저 은혜 받는 예배 시간이 됨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중국 선교지에 처음 사역의 시발 동기도 백영희목회설교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플로피 디스켓으로, 그다음에는 CD로 설교를 담아서 선교지 전역에 전했다. 그 다음에는 검색 기능의 프로그램으로 제작해서 CD로 전했다.
오늘 주일날 2011년 8월 14일, 백영희목회설교록(1984. 10. 12. 금 새벽)을 재독하고 정리했다. 설교를 들으며 말씀 도리를 깨닫고 또 말씀 교훈과 대조하면서 회개를 했다. 설교를 재독하고 정리하다보면 백 목사님의 교훈은 피와 성령과 진리적이다. 순생 순교적이다. 진실적이며 신앙적이다.
지금 말하는 것은 백 목사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백 목사님의 교훈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도 바울을 말하면 사도 바울의 성경 계시 진리 도리를 말하지 인간 사도 바울을 말하지 않는다. 지금 백 목사님과 설교록을 말하는 것도 이와 같다.
주님 앞에 설 때까지 큰 이변이 없는 한 매주 한 번은 백영희목회설교록을 재독할 것이라 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미약한 종이 말씀으로 은혜를 받아야 깨어서 살 것이기 때문이다. 백 목사님이 믿는 하나님, 주님의 사활대속, 성령의 역사. 그리고 백 목사님의 성경관, 주님과 동행, 그리고 일제 신사 참배와 6,25 환을 이긴 신앙, 등
우리가 목회자로서 설교를 하고 또 설교를 들으면 성경 본문과 동떨어진 교훈을 하는 것을 많이 본다. 제 말과 제 경험과 제 체험을 말하는데 그치고 또 제 지식과 제 신앙만큼만 전한다. 지금 우리 목회자가 일제 신사참배와 6,25 환란 이기는 신앙이 되어 그 신앙적 교훈을 전하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으나. 그런 신앙이 대개는 미달되기 때문에 맡은 양떼들에게 전하는 교훈이 환란을 이기는 신앙의 교훈을 잘 전할 수가 없다.
아기 엄마가 젖이 모자라 젖 한 모금을 겨우 물려서 아기는 잘 자라지 못하고 바짝 말라간다. 옛날에 우유가 귀한 시대에는 젖동냥 소리를 많이 들었다. 순생 순교의 신앙이 되지 못하면 제발 순생 순교의 교훈을 얻어서 먹이자! 동냥하러 다닐 것도 없다. 컴퓨터만 켜면 넓은 초원에 푸른 풀 마냥 가득 넘치게 펼쳐져 있다.
교훈을 할 때 제 말을 할 수 있다. 제 말은 교훈을 전하기 위해서 해야 한다. 설교를 할 때 제 경험을 말 할 수 있다. 제 경험은 교훈을 전하기 위해서 해야 한다. 그런데 교훈과 설교는 어디가고 제 말과 제 경험만 말하지는 않는지 점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