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5 11:57
■ 종교개혁 500주년기념과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2017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일이다. 그런 것은 1517년 10월 31일에 독일교회 마틴 루터가 로마 카록릭의 비교회적 타락을 성경적으로 개혁하기 위하여 비텐베르그 궁성교회 문에 로마카톨릭을 향하여 95개조 반막문을 붙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일과 이 날을 종교개혁의 시작이 되는 날로 삼은 것이다.
한국교회를 포함한 세계교회는 2017년 즉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여러 행사를 준비하여 시행하였다. 예를 들어 <종교개혁과 한국교회> 주제로 예배와 논문 발표, 그리고 심포지움을 하는 등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은 2018년 3월이다. 지난 1년간 한국교회의 교단들과 개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면서 개혁교회를 회복하는데 다소나마 계기가 되어지기를 기대를 하였다. 특히 그러했던 것은 이단배격운동과 신천지배격운동을 하고 있는 곳이 한국교계의 중심지가 되어서 교계의 대락적 소식은 보고 들을 수 있어서다.
한국교회가 지난 2017년에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함에 있어 “종교개혁을 회복하자”하였다. 그렇다면 제일 근원된 기념은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95개조에 합당한 교리 신조가 무엇인지 연구·발표·시행하는 것이 종교개혁을 올바로 기념하는 것일 것이다.
다음은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다. 이 자료는 여러 한글 번역본 가운데 하나이다. 번역본마다 조금씩 표현에 차이가 있다.’
●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회개하라(Repent ye)” 라고 말씀하신 의도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회개(penitence)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2. 여기에서 회개(poenitentia)라는 단어를 고해 성사(sacramental penanace)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즉 사제들의 주도하에 행해지는 죄고백(confession)과 보속(satisfaction)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3. 그러나 그것이 오직 내면의 회개(inward penitence)만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표면적으로 여러가지 육체를 죽이는 행위로 나타나지 않는 내면의 회개는 무익하다.
4. 이처럼 자아에 대한 미움 – 즉 내면의 회개 – 가 지속되는 한 형벌도 지속된다. 즉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까지 형벌은 지속된다.
5. 교황에게는 교황 자신의 권위에 의해서나 교회법에 의해 부과된 형벌 외에 다른 형벌들을 면제해 줄 권세나 의지가 없다.
6. 교황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셨음을 선포하고 보증하는 것일 뿐, 죄를 사해 줄 권세가 없다. 혹 교황이 사해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해도, 그런 경우에도 만일 그의 권세가 무시된다면 죄는 분명히 그대로 남을 것이다.
7.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의 죄악을 면제해 주실 때에는 반드시 그의 대리인인 사제의 권위에 복종케 하신다.
8. 회개의 법(penitential canons)은 산 자들에게만 부과되며, 임종하는 자들에게는 결코 그 법에 다른 짐을 부과해서는 안된다.
9. 이런 까닭에 교황이 그의 교령(decrees)에서 죽음과 궁핍함이라는 예외 조항을 두는 것을 볼 때, 교황의 내면에서 행하시는 성령은 우리를 위해 훌륭하게 일하신다.
10. 사제들이 임종하는 사람에게 교회법에 따라 연옥을 위한 참회(canonical penances for purgatory)를 명하는 것은 무식하고 옳지 않은 행위이다.
11. 사제들이 잠든 동안에 교회법에 따른 형벌을 연옥의 형벌로 변화시키는 일과 관련하여 가라지 씨(tares)가 뿌려진 듯하다.
12. 과거에는 죄를 사해주기 전에 참된 통회(true contrition)를 시험하기 위해 교회법에 따른 형벌(canonical penalties)이 부과되었다.
13. 임종하는 사람은 죽음에 의해 모든 벌과금을 지불하며 이미 교회법에 대해서는 죽은 자가 되며 그것들로부터 구제 된다.
14. 임종하는 사람의 불완전한 자선이나 견고함에는 필연적으로 두려움이 수반된다. 그것이 작으면 작을수록 두려움은 커진다.
15. 이 두려움과 공포만으로도 충분히 연옥의 고통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의 절망적인 공포이기 때문이다.
16. 지옥(hell)과 연옥(purgatory)과 천국(heaven)의 차이를 비유하자면, 절망, 거의 절망적인 상태, 그리고 마음의 평화 등에 비유할 수 있다.
17.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경우에는 고통이 감소할수록 사랑은 증가하는 듯하다.
18. 또 그들의 공로의 상태나 사랑의 증가 상태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은 어떤 추론이나 성서에 의해서도 입증되지 않는다.
19. 비록 확신할 수는 없으나 그들이 자신의 축복을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도 증명할 수 없는 듯하다.
20. 그러므로 교황이 모든 형벌의 사항을 말한다고 해도, 그것은 교황이 부과한 형벌의 면제일 뿐 모든 형벌의 면제는 아니다.
21. 그러므로 면죄부 판매인들이 교황의 대사권(the indulgences by the Pope)에 의해 사람이 모든 형벌에서 해방되고 구원 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22. 사실상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이 세상에 있을 때에 교회법에 따라 받아야 했던 형벌을 교황은 사해줄 수 없다.
23. 만일 어떤 사람이 받아야할 모든 형벌을 면제해줄 수 있다 해도, 그것은 오로지 지극히 완전한 사람, 즉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질 것이다.
24. 이런 까닭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무분별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형벌 면제의 약속들에 미혹되지 않을 수 없다.
25. 교황이 연옥에 대해서 발휘하는 권세를 모든 주교들은 자기의 주교구에 대해 행사하며, 모든 성직자들은 자기의 교구에 대해 행사한다.
26. 교황이 열쇠의 권세(the power of the keys)에 의해서가 아니라도 대도(代禱, suffrage)에 의해 영혼의 형벌을 면제해주는 것은 옳은 행위이다.
27. 그들은 돈이 상자에 짤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순간 영혼이 연옥에서 벗어난다고 말한다.
28. 돈이 상자에 짤랑하며 떨어질 때에는 탐욕과 소득이 증가하지만, 교회의 대도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지한다.
29. 세베리누스(Severinus)와 파스칼에 관한 이야기에 따르면,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들이 모두 그곳에서의 구원을 원하는지 아닌지 과연 누가 아는가?
30. 어떤 사람도 자신의 통회의 실체를 확신할 수 없으며, 형벌의 면제에 대해서는 더욱 확신할 수 없다.
31. 참된 회개(true penitent)는 극히 드물며, 진실로 죄사함을 돈으로 사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32. 면죄부를 통해서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게 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가르친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33. 특별히 교황이 행사하는 죄사함은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사로서 그것에 의해 인간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34. 면죄부에 의해 전해지는 은혜는 오직 보속이라는 성사의 형벌에만 관계된다.
35. 돈을 주고 영혼을 연옥에서 구해내거나 참회의 자격증을 산 사람에게는 통회가 필요치 않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결코 기독교 교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36. 진정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은 면죄부가 없어도 죄의식과 고통을 완전히 면하게 된다.
37. 산 자와 죽은 자를 불문하고 모든 신자들은 면죄부가 없어도 하나님께서 주신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든 유익들을 소유한다.
38. 그러나 교황이 주는 면죄(remission)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면죄를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9. 아무리 유식한 신학자라도 사람들 앞에서 면죄부의 효과와 진정한 통회의 필요성을 동시에 찬양하기는 어렵다.
40. 진정으로 통회하는 사람은 형벌을 구하며 사랑한다. 그러나 면죄부는 그것을 해이하게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미워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최소한 미워하게 만들 원인을 제공한다.
41. 사도적 면죄(Apostolical pardons)는 신중하게 선포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이라는 다른 선행 앞에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하게 된다.
42. 면죄부를 사는 것이 어떻게 해서든 자비의 행위와 비교될 수 있다는 것이 교황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43. 가난한 자를 구제하거나 궁핍한 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선한 행위라고 가르쳐야 한다.
44. 사랑의 행위에 의해 사랑이 증가하며 그 사람이 더 선해진다고 해서, 면죄부에 의해 사람이 더욱 선해지는 것은 아니며 다만 형별로부터보다 자유롭게 되는 것에 불과하다.
45. 궁핍한 사람을 보고서 그냥 지나친 사람이 면죄부를 사는 것은 자신을 위해 교황의 면죄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46. 기독교인들은 지나치게 많은 재산을 보유해서는 안되지만 자신의 가족들이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재산을 보유해야 하며 절대로 면죄부를 사는 데 재산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47. 기독교인들에게는 면죄부를 살 자유가 있지만 면죄부를 사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고 가르쳐야 한다.
48. 교황이 면죄부를 판매할 때에 교황에게 필요한 것은 돈을 선선히 지불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를 위해 신실히 기도 하는 것을 기독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9. 교황의 면죄부를 교인들이 신뢰하지 않으면 그것이 유익하지만, 만일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잃는다면 그것은 해로운 것이라고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0. 만일 교황이 면죄부 판매인들의 강탈 행위에 대해 잘 알게 된다면, 그는 자기 양들의 살과 뼈와 가죽으로 성 베드로 성당을 짓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태워 잿더미로 만드는 편을 택하려 할 것이다.
51. 교황은 면죄부 판매인들로부터 돈을 착취당한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의 돈이라도 내어주며 필요한 경우에는 성 베드로 성당을 팔기를 원할 것이라고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2. 비록 교황이 아니라 그 대리인이 면죄부의 효과를 보증하기 위해 자기 영혼을 담보로 세운다 해도 면죄부를 통한 구원을 바라는 것은 헛된 것이다.
53. 면죄부를 판매하기 위해서 다른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교황의 원수들이다.
54. 설교를 하면서 복음의 말씀보다는 면죄부에 대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당하게 대하는 것이다.
55. 지극히 작은 일에 불과한 면죄부 판매를 위해 종을 울리고 행진을 하고 의식을 행하여 축하할진대 그보다 훨씬 위대한 일인 복음을 위해서는 몇백 배나 더 많은 의식으로 축하해야 한다는 것이 교황의 생각이다.
56. 교황이 하사하는 면죄의 원천인 교회의 보물들은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는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57. 그것들은 최소한 세상의 보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함부로 낭비되지 않으며, 오히려 많은 설교자들에 의해 축적되기 때문이다.
58. 또 그것은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공로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교황과는 상관없이 항상 속사람에게는 은혜를, 겉사람에게는 십자가와 죽음과 지옥을 역사하기 때문이다.
59. 성 로렌스(St. Lawrence)는 교회의 보물은 교회 안의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그 시대의 단어와 어법에 따라 말한 것이다.
60.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주어진 교회의 열쇠들이 그 보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 아니다.
61. 교황의 권세는 형벌을 면제해주는 것을 비롯하여 제한된 경우에만 효력이 있다.
62. 교회의 진정한 보물은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의 거룩한 복음이다.
63. 그러나 이 보물은 지극히 밉살스러운(hateful)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처음된 자를 나중된 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64. 그러나 면죄라는 보물은 지극히 받아들일 만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중된 자를 처음된 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65. 이런 까닭에 복음의 보물은 옛날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들을 낚던 그물이다.
66. 면죄라는 보물은 오늘날 사람들이 사람들의 재산을 낚는데 사용하는 그물이다.
67. 판매인들이 큰 소리로 최상의 은혜라고 전파하는 면죄부는 실제로는 단지 소들의 증진만 중시한다.
68.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및 십자가의 신앙과 비교해볼 때에, 그것들은 지극히 작은 은혜에 불과하다.
69. 주교들과 사제들은 지극히 경건하게 면죄부 판매인들을 영접해야 한다.
70. 그러나 이 사람들이 교황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꿈을 전파하지 않도록 지극히 조심해야 한다. 71. 사도적 면죄의 진리를 비방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72. 반면에 면죄부 판매인의 방종함에 대항하여 활동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지어다.
73. 면죄부 판매에 해가 되는 계획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교황이 위협을 가하는 것이 정당하다.
74. 면죄라는 구실하에 거룩한 사랑과 진리에 해가 되는 방법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교황이 위협을 가하는 것은 더욱 정당하다.
75. 교황의 면죄부는 하나님의 모친에게 범죄한 사람의 죄라도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76. 그와는 반대로 죄악에 관한 한 교황의 면죄부는 지극히 작은 죄도 제거할 수 없다.
77. 비록 성 베드로가 지금 교황이라고 해도 결코 보다 큰 은혜들을 우리에게 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성 베드로와 교황에 대한 모독이다.
78. 그를 비롯하여 모든 교황은 보다 큰 은혜, 즉 복음과 능력과 병 고치는 은사 등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고전 12:9)
79. 교황의 문장에 새겨진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동등한 능력을 갖는다고 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80. 백성들에게 설교를 하는 주교들, 사제들, 그리고 신학자들은 자신의 설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81. 아무리 박식한 사람일지라도 면죄부 판매인들이 평신도들의 예리한 질문이나 비방에 맞서 교황이 받아야 하는 존경을 보호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82. 예를 들어, 만일 교황이 지극히 치명적인 것, 즉 지극히 하찮은 일인 성당 건축에 쓸 돈을 위해 무수히 많은 영혼들을 구속한다면, 모든 일 중에서 가장 공의로운 일인 거룩한 사랑과 영혼들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위해 연옥을 비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83. 또, 장례 미사(funeral masses)와 죽은 자를 위한 연례 미사(anniversary masses)를 드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미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인데, 어찌하여 교황은 이 목적을 위해 유증(遺贈)된 기금을 반환하지 않는가?
84. 돈을 위해서 경건치 못하고 하나님의 원수인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경건한 영혼을 구하는 것을 허락하지만, 값없이 주시는 사랑에서 우러나 그 경건하고 사랑 받는 영혼은 구속하지 않는 이 새로운 종류의 하나님과 교황은 도대체 어떤 분인가?
85. 이미 오래 전에 폐기되어 사라진 회개에 대한 교회법들이 아직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듯이 면죄를 수여함을 통해서 돈으로 대속하고 있음은 어찌된 일인가?
86. 오늘날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교황이 자신의 돈으로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지 않고 가난한 신자들의 돈으로 건축하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87. 철저한 통회를 함으로써 완전한 죄사함과 참예의 권리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교황이 다시 면죄해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88. 만일 교황이 신실한 자에게 하루에 수백 차례의 면죄와 참예를 수여한다면 교회는 얼마나 더 큰 유익을 받을 것인가?
89. 교황이 면죄부를 통해서 구하는 것이 돈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일진대, 어찌하여 그는 오래 전에 수여한 면죄와 면죄부를 무효화하느가? 그것도 역시 동등한 효력을 갖는 것이 아닌가?
90. 이와 같은 평신도들의 양심의 거리낌과 논증에 대해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그저 힘으로 억누르려 하면 교회와 교황은 원수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며 기독교인들은 불행하게 될 것이다.
91. 만일 교황의 정신과 뜻에 따라 면죄를 선포한다면, 이런 모든 문제들은 쉽게 해결될 것이다. 아니 아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92.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 “평안하다 평안하다”라고 말하는 선지자들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 실제로는 평안이 없다.
93.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 “십자가, 십자가” 를 전하는 선지자들은 복된 사람들이다.
94. 기독교인들은 고통과 죽음과 지옥일지라도 그들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한다.
95. 그리하여 안전하고 평안한 가운데서보다는 많은 환란(tribulations)을 통해서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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