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그 달콤한 미혹

2008.06.24 10:45

선지자 조회 수: 추천:

■ 자존심, 그 달콤한 미혹
선지자선교회
성경 말씀에는 자존심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한 까닭은 자존심은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자존심 하나만은 죽어도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존심을 놓치면 마치 자기 자신을 놓치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자존심을 건드리면 죽을 똥 살 똥 덤벼듭니다.

그러나 진정한 자존심은 자신이 자신을 바로 지키는 것이 자존심입니다. 이래서 자존심을 지키려면 자신을 바로 지켜야 하는 것이니 그 자신을 바로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은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순종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러므로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존심을 지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아라! 의롭게 살아라!  믿음으로 살아라! 순종해라! 이렇게 권면하는 사람이 그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에게 이렇게 살아라고 권면하면 싫어합니다. 그것을 조금 넘어서 충고를 하면 뒤로 넘어갑니다. 그것을 좀더 넘어서 질책을 하면 그만 원수를 삼습니다. 그러함은 자기를 건드렸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로 그것이 그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을까요?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로서 그 사람의 자존심을 살려주려는 것이며 살려준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개가 오해를 합니다. 대중 앞에서 그런 일을 당하면 망신당했다면서 얼굴을 붉히며 분을 삼킵니다.

백영희 목사님께서는 그 사람이 좀 장성했다 싶으면 권찰회에서나 또는 예배시간이나 또는 온 교회가 다 모이는 집회에서도 권면, 충고, 질책을 합니다. 집회 기간에는 교역자들이 주로 질책을 많이 받았는데 그러면 교역자들은 온 전국 교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꾸중 질책을 받았다며, 온 교인들 앞에서 교역자를 야단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여겼습니다. 그 반대로 그 꾸중과 질책 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백영희 목사님만큼 교역자와 교인들의 자존심을 지켜주신 분이 없었습니다. 자존심을 세워주신 분이 없었습니다. 꾸중을 하고 또 야단을 치고, 질책을 하고 하는 것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 되어 라고 하신 것이니, 진정코 우리들의 자존심을 세워주신 분이십니다.  

지금 현재 우리들에게 특히 교역자들에게 야단이나 꾸중이나 질책이 없습니다. 그렇게 할 분이 없습니다. 그렇게 야단이나 꾸중이나 질책할 때 그 때가 그리워집니다. 그 백영희목사님이 그리워집니다.

호랑이는 호랑이 새끼를 낳았는데 그 새끼는 그만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그 고양이는 쥐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이 본인이 그렇습니다.

한국교회사에서 보더라도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하던 출옥성도들이 중심이 되어 교회재건운동을 할 때에, 그것이 듣기 싫어서 자존심이 상한다고 고신파를 제거 한 것이 총회파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총회파가 교회를 내어놓으라고 예배당 소송을 할 때, 한상동 목사님은 예배당 소송으로 세상법정에 나갈 수 없다고, 두말없이 초량교회를 내어놓고 삼일교회를 새로 시작하였습니다.

그 옥중성도들이 수뇌부가 된 고신파도 백영희 당시 조사님이 성경적 교리신조 대로를 외친다고 미워하다가 끝내 제명을 시켰습니다. 이것도 그 옳은 말이 듣기 싫어서 즉 자존심 상하게 하였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그 지나간 역사를 돌아보면 과연 고신파는 총회파에 대해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입니까? 또 백영희는 고신파의 수뇌부에 대해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입니까? 고신대학원의 홈페이지에 언젠가 이런 글이 올려져있었습니다. '고신의 교권주의가 백영희목사님 등을 제명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고신이 이렇게 초라하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더 멀리 역사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보면 마찬가지입니다. 진언을 드리면 배척합니다. 또 권유하면 싫어합니다. 꾸중이라도 하면 난리가 납니다. 그냥 불목으로 원수를 삼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대개는 부드럽게 아주 부드럽게 대합니다. 충격은 절대로 주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상놈이 하는 짓이고, 교양이 없는 무식한 사람이 하는 짓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교양이 있는 사람은 교양이 있는 사람끼리 모여서 교양 서럽게 놉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모임에는 절대로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자존심을 안 건드립니다. 그들은 교양이 넘치는 사람들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믿음의 세계는 자복하고 회개하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나서 감사하는 세계입니다. 그러면 자복하라! 회개하라! 하는 말이 없는 곳은 믿음의 세계 곧 교회가 아니겠습니다. 이런데 말씀대로 예수를 바로 믿자! 하는 데에는 다 찬동을 합니다. 그런데 실상 이렇게 사는 그 시작에 들어가서 '고치라!' '바로 해라!' "성경대로 해라!' 이렇게 말해주면 그만 상처를 준다고 천리만리 달아나 버립니다. 그 정도는 약과이고 대항을 합니다. 잡아먹으려 달려듭니다.

"나는 그런 적 없는데" 하고 그렇게 말씀하실 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보다는 내 주변에 나에게 '고치라'! '바로 해라!' 하고 지적해주는 분이 계시냐? 안 계시냐? 하는 그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고치라! 바로 해라! 이렇게 꾸중 해주는 분이 진정으로 자기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분입니다. 이렇게 야단치고 질책해 주는 분이라면 그분은 참으로 자기를 사랑해 주고 있는 분입니다.

뭐 우리가 어린아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야단치고 칠책하는 것이 미워서 그렇게 합니까? 부모가 자식을 나물아 놓으면 시쿠둥 합니다. 그럴 때에 그 부모는 자식에게 한마디합니다. "자식이니까" "사랑하니까" 우리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남에게 꾸중하고 질책하는 그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안 하면 안되기 때문에 반 목숨은 걸고 합니다. 고립되는 줄 알면서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선조들이 다 그랬습니다. 성경의 선지자들은 모두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말을 안 듣고 고집 부린 사람들이 그 자존심을 잘 가졌습니까? 못 가졌습니까? 자존심은커녕 그 사람 자체가 홀딱 죽고 망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꾸중과 질책이 그리워집니다. 백영희목사님께 받던 그 꾸중 그 질책이 그리워집니다. 우리를 깊이 사랑 하셔서 우리의 자존심을 살려주시려고 하셨는데 철이 안 나서 뻗댔으니 후회 막급입니다. 지금 막상 또 그런 현실을 만나면 감사히 잘 받을 수 있을는지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이제는 조금 철이 들었으니 자기의 자존심을 지키도록 하는 그 꾸중과 그 질책 그저 감사히 받을 것입니다.

바로 해라! 고치라! 그 꾸중 그 질책은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사랑의 쓴 소리입니다.

성경에는 자존심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 말은 반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위하는 말 같은데 자기중심 자기위주의 악성으로 사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사용하는 그 용어 '자존심'은 사망성이 담겨 있습니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바로 해라' '고치라' 하는 그 말은 생명성이 담겨있습니다. 바로 하고 고쳐서 자기가 바로 되면 그것이 자기를 지킨 것입니다. 세상말로는 자존심을 지킨 것이 되겠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는 자존심이라는 말이 소통되면 안되겠습니다. 그것은 자기중심 자기위주에서 나온, 자기를 위하는 것 같으나 자기를 죽이는 사망성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아예 '자존심'이라는 말은 백해무익한 말이니 말도 생각도 하지 맙시다. 자존심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바로 해라!' '고치라!' 하는 말이니, 온통 교회 안은 '바로 해라!' '고치라!'하는 말뿐이므로 그 자존심이 있는 곳은 교회가 아니겠습니다.

사단 뱀이 갖다준 달콤한 미혹 곧 자기를 위한다는 그 자존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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