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줄 그래한 복고풍 방언, 신유, 예언
선지자선교회
<서문>
이곳 중국에 있다보면 이것이 아닌데 하는 것이 눈에 보이고 또 귀에 들립니다.
韓國商品城이라 하여 지나다 들러보면 그곳에 걸려 있는 옷들은 정품도 아니고 더욱이 신품은 더욱 아니라, 어떻게 저런 후줄 거리는 옷을 어떻게 용케 구해서 한류를 등에 업고 그것도 옷이라고 팔려고 하는지 한국사람으로서 볼 때 어안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도 눈이 있는지라 한국상품 간판을 걸어 놓아서 잠깐 기웃거리지만 이내 발길을 돌립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그 곳을 지나치다보면 그 가게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곳 교회를 방문해 보면 한국 목사님이 가져다 준 목회자료라 하여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것이 정통적이나 신앙적이 아니라, 어떻게 저런 후줄 거리는 자료를 어떻게 용케 구해서 선교적 한류를 등에 업고 그것도 목회자료라고 전하고 있는지 한국 목회자로서 볼 때 어안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목회자들도 눈이 있는지라 그 목회자료에 잠깐 열심을 가지고 기웃거리다가 이내 눈길을 돌립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그 교회를 방문해보면 그 한국 목회자와는 교류가 끊어지고 없습니다.
<본문>
그리고 후줄 거리는 것을 복고풍이라고 여기고 멋 부리는 사람들이 또 있는데 보기에 가관입니다. 그들 중에는 한국 선교사도 있고 중국 목회자도 있는데 그 원인 제공은 모두 다 한국 쪽입니다.
그 후줄 거리는 복고풍이 무엇이냐 하면 방언과 신유와 예언입니다. 한국교회 역사에 있어서 방언은사라 해서 난리를 치다가 바람처럼 사라졌고, 또 신유은사라 해서 난리를 치다가 그것 또한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또 예언은사라 해서 난리를 치다가 그 또한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난리를 치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 현상을 보면 마치 건강식품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 언제는 그 무엇이 좋다고 난리를 치다가 바람처럼 사라지고, 또 그 바람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싶으면 어느새 그 자리를 또 다른 건강식품이 난리를 칩니다. 또 그러다가 사라지고 또 난리를 치다가 또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이와 같이 방언 바람이 또 신유 바람이 또 예언 바람이 불어서 난리를 치다가 때가 되니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또 어떤 때는 금식 바람이 한참 난리를 치다가 또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고전13:8에는「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하셨습니다.
● 방언
고전14:18-19에 방언 은사라 하면서 일만 마디 하는 것 보다,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하는 것이 더 났다고 하셨습니다.
또 고전14:22에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라 하셨습니다.
◎(고전14:18-19)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 (고전14: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 예언
예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 예언인데, 그 진정한 성경적 예언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예언을 말합니다. 에언이 무엇인지 바로 알려면 성경의 선지서를 보면 그 선지서가 바로 선지자들의 예언입니다. 그러기에 성경 선지서에 있는 그대로 나타내면 그것이 예언이지 그것이 아니면 미3:11에 말씀대로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하는 말씀과 같이 그것은 예언이 아니라 점치는 것일 뿐입니다.
또 벧후1:19-21에 보면 성경이 예언이라 했으니 성경말씀을 잘 전하는 것이 곧바로 예언의 은사를 받은 것이 되겠습니다.
시대마다 예언의 은사를 받아 진정한 예언을 한 선지자들은 그 시대에 교회의 핍박을 받거나 죽임을 받았습니다. 현재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여러분은 옳은 말 바른 말 한다고 교회의 핍박이 있습니까? 또 죽임을 받았습니까? 예언이 무엇인지 그 근처도 가보지 못하고 예언을 말하면 안됩니다. 그것이 막 바로 자기를 위하여 점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미3:11)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벧후1:19-21)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 신유
신유은사를 말하지만 병 낫게 해놓으면 그 건강으로 배나 악독을 휘두르는 자를 만들어 놓게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 전기를 읽어보니까 그 목사님이 목회를 나서기 전에는 의사였는데 하루는 환자가 와서 그 환자를 잘 낫게 하여 퇴원 시켜놓았더니 그 이튿날 살인지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만 의사를 내던지고 목사의 길로 나섰다고 하였습니다.
눅17:11-19에 보면 열 문둥병자에게 병을 낫게 해주니 하나는 예수께로 나와 믿음의 길로 걸었고, 아홉은 제 악한 길로 가버렸습니다.
◎(눅17:11-19)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결문>
진정한 방언은 교회에서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며, 진정한 방언 그것이 또한 진정한 예언이며, 그리고 그 방언과 그 예언으로 사람들이 예수님의 발아래 엎디어 참 사람으로 치료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신유입니다.
과거 한국교회사에서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그 많은 희생의 댓가를 치르고 증명된 그 방언 바람, 그 예언 바람, 그 신유 바람을 또 슬며시 부채질하는 그 위인들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징벌하시겠나 이 말입니다. 그 징벌 또한 방언 은사 받았다는 자의 결말과 예언 은사 받았다는 자의 결말과 신유 은사 받았다는 자의 결말을 보면 그 결말이 비참했다는 그 징벌을 잘 알 수 있음에도 말입니다.
방언과 예언과 신유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방언과 진정한 예언과 진정한 신유를 하자는 말입니다. 성경에 있는 참 방언, 참 예언, 참 신유로 말입니다.
이곳 중국에 있다보면 이것이 아닌데 하는 것이 눈에 종별로 보이고 또 귀에 종별로 들립니다.
그 뭐 후줄 그래한 복고풍 뒤집어 써 봐야 별스런 히피족 취급 밖에 더 받겠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