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적으로 본 공회 신앙노선
선지자선교회
이름 : 반석 번호 : 181
게시일 : 2006/04/13 (목) AM 10:57:44 (수정 2006/04/13 (목) PM 06:18:47) 조회 : 70
■ 교회사적으로 본 공회 신앙노선
아벨은 양치는 것이 본직이 아니라 양으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이 본직이었습니다. 양치는 것은 양으로 제사를 드리는 본직을 하기 위해서 부업으로 양을 쳤습니다.
솔로몬은 왕이었지만 전도자였습니다. 전도자가 본직이요 왕직은 부업이었습니다. 잠언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라 했습니다. 전도서에서도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전12:13)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의 본직은 그리스도직입니다. 그리스도직을 하기 위해서 부업으로 이런 저런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시대의 유행 따라 변해 가는 것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무엇인지는 고전1:2에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고전1:2)이라고 하셨습니다.
중세 천주교는 타락되었습니다. 그래서 개혁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타락된 그 시대의 교역자인 교황과 신부들을 판단합니다. 그리고 또 오늘의 속화된 교역자를 판단합니다. 그러나 교인들도 판단을 면할 길이 없음을 봅니다. 그래서 중세교회시대에 속화 타락에서도 그 시대의 교인들도 판단을 면할 길이 없다고 봅니다.
우리 진영 공회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속화된 교회에 대해서 교역자에게만 판단 할 수 없음을 봅니다. 교인들에게도 판단 받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역자도 이 시대 유행 따라 길을 걸어가고 있고 교인들도 이 시대의 유행 따라 걸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안타까워하며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분들도 계십니다.
공회 신앙노선은 시대가 변해가도 교회의 본직은 유행에 따라 변해갈 수 없기에 초대교회를 향해서 거슬러올라갔습니다. 모두다 시대를 따라 유행을 따라 떠내려 갈 때에 오히려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교회사 공부를 하면 초대교회가 참 교회요 중세교회는 타락된 교회요 개혁교회는 초대교회로 회복된 교회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교회들이 어느 시대의 교회로 설 것인가를 잠깐만이라도 눈을 감고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이 교회의 신앙노선입니다.
교역자들이 교회사 공부는 기본으로 다했고 또 그 중에는 교회사 공부를 더 깊이 하여 석사 박사 학위를 가진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시대별 교회에 대하여 그 신앙노선을 잘 파악하고 있겠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를 말하고 또 개혁주의를 말합니다. 그러한데도 들여다보면 이 시대의 자유주의 통합주의 안일주의 방탕주의의 유행에 따라 물들어가고 있거나 끌려가고 있거나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사 공부는 왜 했느냐? 묻고 싶습니다. 시대별 교회의 신앙노선을 구경만 하기 위해서 인가? 아니면 시대별 교회가 가진 그 신앙노선대로 한번씩 걸어보기 위해서 인가? 아니면 신학과목에 있으니 그냥 공부한 것인가? 참으로 우리들이 통탄할 일입니다.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우리 진영의 공회 신앙노선은 초대교회 예루살렘 공회를 향해서 신앙노선도 쫓아가려고 하고 행정노선도 쫓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진영의 공회 신앙노선이 교회사적으로 보면 어디쯤 속한 교회의 신앙노선입니까? 이 시대 교회처럼 속화되어 유행을 따라가는 신앙노선입니까? 아니면 중세교회시대의 천주교처럼 타락을 따라가는 신앙노선입니까?
교회가 그 시대의 유행을 따라 가면 그것이 속화이며 그것이 타락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 교회들이 이 시대의 유행을 따라 가면 그것이 속화요 타락입니다. 속화와 타락이 별것이 아니라 유행 따라 가는 것입니다.
개혁시대교회 전의 속화타락 된 교회가 다른 것이 아니라 교역자는 교인들 좋게 하고 교인은 교역자 좋게 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려서 속화 타락이 아니라 하나님을 좋게 하는 것보다 교인과 교역자 좋게 하는 것이 속화 타락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찬양대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양이 되어져야 하는데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양을 한다고 하면서 그 찬양을 저들을 위해서 합니다. 찬양을 안 해서 속화타락이 아니라 찬양이 바로 되지 못하면 그것이 속화타락입니다.
우리 공회의 교리신조도 어느 시대의 교회가 가진 교리신조인가? 교리사 공부를 기본으로 했으니 따져보면 알 것입니다. 하나님중심 성경중심의 교리신조입니다. 교리는 시대에 따라서 시대를 감당하는 교리로 자라왔고 신조는 하나님중심 성경중심으로 초대교회시대의 교리신조를 그대로 쫓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공회 신앙노선의 교리신조를 갑갑하게 무겁게 짐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이 무거운 교리신조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갑갑하고 무겁고 무거운 짐 벗어버리면 가벼워서 좋겠으나 그 즉시 마귀는 좋다하고 달라 들어서 우리를 종으로 부리고 저의 자식으로 삼아버립니다.
공회의 교리신조는 마귀와 대적하는 첨단의 전신갑주입니다. 이 전신갑주를 입고 있으려면 갑갑하고 무겁고 짐으로 여겨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신갑주가 우리의 신앙생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마귀에게 생명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는 공회의 교리신조를 입고 있어도 갑갑하거나 무겁거나 짐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와 찬송을 하게 됩니다. 왜냐?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전신갑주이기 때문입니다. 공회의 교리신조는 그리스도인의 본직을 하는데 제일 좋은 밑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 된 우리가 우리 본직인 그리스도인 직을 잊어버리거나 벗어버리면 공회 신앙노선의 교리신조는 갑갑하고 무겁고 짐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벨은 그리스도인의 본직을 지사충성 했습니다. 그럴 때에 가인은 그것이 밉다고 죽였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인의 본직을 지사충성으로 하면 그것이 밉다고 하는 가인의 후손들이 있습니다. 아벨인들 그 당시 가인의 미움을 몰랐을까? 결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리스도인의 본직을 그저 감당하다보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리스도직을 부업으로 여기는 자에게 순교를 당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본직을 감당하려면 그리스도인의 직분을 부업으로 여기는 저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고 결국은 죽임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교회사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리스도인 직분을 본직으로 삼는 자이든지 그리스도인 직분을 부업으로 삼는 자이든지 다 아벨의 순교의 신앙을 사모하고 옳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아벨의 신앙노선을 걷고 있는지 가인의 신앙노선을 걷고 있는지 판별을 못합니다. 아니 정확히 판별은 하고 있어도 본직 보다 부업이 더 좋아서 가인의 신앙노선을 걷고 있고 또 아벨의 신앙노선이 좋은 것은 아나 미움 당하고 소외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아벨의 신앙노선을 슬그머니 놓아버립니다.
이 글의 주제는 '교회사적으로 본 공회 신앙노선'입니다. 공회의 신앙노선이 교회사에 있어서 어느 시대 교회의 신앙노선입니까? 더 이상 이런 말 저런 말로 열거하지 않더라도 잘 판별할 줄 믿습니다.
아벨은 본직을 감당하다가 순교로 죽었습니다. 솔로몬은 왕이었지만 왕직은 부업으로 삼고 전도자의 길을 본직으로 삼았습니다.
[(전1: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우리도 그리스도인의 본직을 잘 감당하다가 주님 앞에 서야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본직을 감당하는데 좋은 밑천이 되는 신앙노선은 이 시대에 어떤 신앙노선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본직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늘 교훈 해 주는 좁은 길의 신앙노선이 좋습니까? 그리스도인의 본직을 부업으로 여기도록 미혹하는 넓은 길의 신앙노선이 좋습니까?
이 후에 이 시대의 교회를 초대교회의 범주에 넣겠습니까? 아니면 중세타락교회의 범주에 넣겠습니까? 아니면 개혁시대교회의 범주에 넣겠습니까? 우리 공회는 우리교회는 내 가정은 나는 어느 시대의 교회와 같은 신앙노선이겠습니까?
우리가 모두들 중세 천주교의 교역자를 판단하고 또 그 시대의 교인들을 한심하게 여깁니다. 이 시대가 지나가고 나면 우리 후세들이 이 시대의 교역자인 나를 판단하고 이 시대의 교인인 나를 판단할 것입니다.
잠시 잠깐입니다. 교역자는 교인들만 보고 교인은 교역자만 보면 안됩니다. 교역자와 교인들만 뜻이 맞아서 짝짝꿍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도 계십니다. 교역자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교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에게는 창조주 전능자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분을 우리가 믿습니다. 이 분을 뜻에 거슬리지 않으려는 것이 우리교역자요 우리 교인들입니다. 이 분을 위하면 이 분이 우리를 지키십니다. 엘리야를 살펴주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건지신 이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책임지십니다.
지금은 죽이는 시대도 아닙니다. 스스로 화냥기가 들었습니다. 교회를 더럽히지 맙시다. 교회는 하나님과 진리와 우리 성도가 하나가 된 것이 교회입니다. 하나님과 진리와 우리 성도 외에 딴 것이 섞인 것은 더러운 것입니다.
공회 신앙노선은 참으로 예수 믿기 좋은 신앙노선입니다. 개혁시대교회를 계대 하고 더 나아가 초대교회를 향해서 나아가는 신앙노선입니다. 이 신앙노선에 세워주신 것 감사히 여기고 이 신앙 노선을 보수 계대 합시다.
배웠으면 배운 대로하는 것이 양심 있는 자입니다. 알면 아는 대로하는 것이 양심 있는 자입니다. 양심대로 하는 것이 신사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도 이러합니다.
우리는 신앙양심이 있습니다. 배운 대로합시다. 아는 대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