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해석학에서 [學]비판
선지자선교회
이름 : 반석 번호 : 179
게시일 : 2006/04/12 (수) PM 07:30:56 (수정 2006/04/12 (수) PM 08:58:34) 조회 : 99
■ 성경 해석학에서 [學]비판
'성경해석'이라는 말은 말이 되어도 '성경해석학'이라는 말은 그 말이 말로 성립되지를 못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 해석은 인간의 지식으로 해석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 해석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인간 지식으로는 성경 해석 근처에도 가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 해석에 대하여 '학(學)'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인간 머리로 인간 지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달라 드는 것이 되는 말이기 때문에 성경을 알고 성경을 해석해 본적이 자는 그 말이 허영에서 헛것을 쫓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근심하게 됩니다.
성경 해석에 대하여 공부는 할 수 있어도 성경 해석에 대해서 학적(學的)으로는 공부 할 것이 없습니다. 성경 해석은 해석학적으로는 공부한다고 공부가 되는 것이 아니며 가르친다고 가르칠 수 있는 학적 방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해석학이라 말을 하면서 성경 해석학이라는 것을 가르치지만 그것은 인간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진리이기 때문에 성경 진리를 깨달아야 성경 해석이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렇게 가르치고 공부하기 때문에 성경 해석학이라 한다'고 말씀하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진리이기 때문에 성경 진리를 깨달아야 성경 해석이 된다고 참으로 아는 자는 '성경 해석학'이라고 성경 해석에 있어서 인간 머리에서 나오는 지식으로 달라 들려고 하는 학(學)자를 붙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히 성경 해석은 성경 진리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성경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성경 해석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 진리를 가르치고 성경 진리를 배우는데 성경 해석학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성경 진리를 알아야 성경을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성경은 성경 진리를 알아야 성경을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라는 말을 좀 수정해서 표현하겠습니다. 성경은 진리이기 때문에 성경 진리를 알아야 성경을 해석 할 수 있는데 성경 진리를 아는 것은 성령께서 성경 진리를 알도록 해주셔야 성경 진리를 알 수 있게 되고 성령께서 알게 하신 성경 진리와 연결 된 지식을 가지고서야 성경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성경 해석이 가능해진다'는 말도 수정이 좀 필요한 말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성경 해석이 가능해진다'는 말을 좀 더 바르게 표현한다면 성령께서 성경 진리를 알도록 해주셔야 하고 성령께서 성경 진리를 알도록 해주신 그 연결에서 또 성경을 해석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와 지식으로 곧 성령께서 성경 진리를 깨닫게 해주실 때에 성경 진리를 깨닫는 것이 성경 해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해석에는 인간 머리에서 나오는 인간 지식으로는 성경을 절대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 해석학이라고 이름을 지어서 인간의 힘으로 달라 들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성경 진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성경 해석에 있어서의 성령관을 아직 모르기 때문에 이런 억지를 가지고 달라 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느냐? 성경 해석학적으로는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길은 절대 없습니다. 성경 해석에 대해서 인간 머리에서 나오는 인간 지식으로 성경을 절대 해석할 수 없음을 단정을 지웁니다.
성경 해석은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만 성경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는 말도 다시 표현하자면 성령께서 성경을 해석하게 해주실 때 성경이 해석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해석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으로만 성경 해석이 되어집니다.
'성경 해석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으로만 성경해석이 되어집니다.' 라는 말을 다시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성령의 감동에 붙들림을 받아야만 성경 해석이 되어지고 성경 해석이 되어진 때는 성령의 감동이 있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 없이는 절대로 성경을 해석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성경 해석을 할 수 없는데 성경 해석을 인간 머리에서 나온 책처럼 인간 머리로 해석하려고 달라 들어서 성경 해석학이라 이름을 붙인 것은 성경 해석학이라고 이름을 붙인 그 자체가 바로 아직 성령과 진리를 깊이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되는 오류라 하겠습니다.
성경 해석은 조금 전까지 성경 해석이 되어졌다가 그 바로 직후에 성경 해석이 안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감동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인간지식에서 나온 인간학은 인간지식의 기능이 쌓이면 언제나 인간 제 머리에서 꺼내어 사용하면 되겠지만 하나님의 뜻인 진리는 성령께 연결되어서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게 해주셔야 하지 성령의 감동이 떠나면 그 즉시 성경 해석에 있어서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백지장이 됩니다.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백지장만 되어도 괜찮겠지만 성령의 감동 없이 성경을 해석하려고 달라 들다 보면 결국 성령과 상관없는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지식으로 달라 들려고 하는 망령을 부리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 없이 성경을 해석하려는 성경 해석학에는 하나님중심이 이미 떠나 인간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악입니다. 그래서 성경 해석에 대해서도 악이 있고 선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간음하고 도둑질하는 것만 죄악이 아니라 이렇게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을 배제하고 인간의 머리로 해석하려고 달라 드는 것은 그 악이 큰 악입니다. 간음 도둑질은 악이라는 것을 자타가 다 환히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들 경계를 하는 것이므로 자타에게 해가 덜 미치겠습니다. 그러나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과 상관없이 인간의 힘으로 성경을 해석하려는 것은 대부분 신학자 목회자이기 때문에 그로 인한 패해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경 해석에 있어서 해석학(解釋學)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맙시다. 성경 해석이 학으로 가르치고 학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 해석은 성령께서 감동시켜 주셔야 그 시간에 성경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진리이기 때문에 성경을 진리적으로 해석해야 됩니다. 그런데 성경 해석학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성경을 문자적 해석으로 밖에 미치지를 못합니다. 성경을 문자적 해석에 미치면서 성경 해석이라고 말한다면 수박껍질만 먹여놓고 '이것이 수박 맛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몰라서 그렇지 엄연히 따지고 보면 자타를 속이는 것입니다. 물론 본인은 속이려고 한 것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아닌데 그것이라고 했으니 속인 것이 되고 맙니다. 미달로 오는 오류입니다.
성경 해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성경 해석이 된 줄 알다보니 성경 해석학이라는 신학과목이 있겠습니다. 여기에 선생님도 있고 배우는 학생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성경 해석에 있어서 문자적 해석에 그치면 성경 해석이 아닙니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진리적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 해석이 진리적 해석이 되려면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성경 해석을 하려면 성령의 감동을 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성경해석 공부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성령 받아라!' '성령 받아라!' 라고 가르치는 것이 성경해석을 위한 강의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아라!' 라고 가르치는 자가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선생님이요 그 가르침을 받아서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면 성경해석 강좌시간에 바로 배운 학생이겠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에 충만한 선생님이 성령의 감동을 충만히 전해서 학생들에게 성령의 감동을 충만히 전했으면 성경해석 강좌에 좋은 강의가 되겠습니다.
성경해석 강좌에 선생님은 '성령을 받아라 그러면 성경해석이 되어진다' 하고 가르쳐야 하는데 또한 학생들은 성령을 어떻게 주셔야 받을 터인데 '성령을 주십시오 그러면 받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죄짓지 않는 자가 될 때 성령이 오십니다. 성령이 우리에게서 떠나신 것은 우리가 죄를 지어서 성령께서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죄짓지 말아라'고 가르치는 것이 '성령을 받아라' 라고 가르치는 가르침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해석에 대해서 공부를 가르치려면 '죄짓지 말아라'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성경해석에 대해서 가르치는 공부가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죄짓지 말아라'는 것이 곧 '성령의 충만을 받아라'는 것이요 '성령의 충만을 받아라'는 것이 곧 성경 해석에 대해서 공부하는 가르침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라(엡5:18)' 하는 것은 어린 자를 위해서 쉽게 알도록 말한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라' 말씀하지만 성령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어떻게 물건 받듯이 받고 가질 수 있겠습니까? '성령을 받아라'하는 것은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성령의 것이 되고 성령께 속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성령의 것이 되고 성령께 속한 자기 되려면 죄를 짓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은 그것이 곧바로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는 자입니다.
그러기에 성경 해석은 죄짓지 않고 살 때 곧 성령께 속해서 살 때에 성경 해석을 성령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 해석은 성령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이지 자기가 성경을 해석하겠다고 자기 머리로 달라 들어서는 해석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성경 해석은 죄짓지 않는 자로 살 때에 성경을 해석하려고 성경을 정면으로 상고하고 연구하지 않더라도 성령께서 열어 보여 주시는 은혜가 있게 됩니다. 성경 해석은 성령께서 은혜의 선물로 주시는 것이지 성경을 상고하고 연구하는 그 노력의 대가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죄를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살 때에 죄를 짓지 않는 거기에 선물로 주시는 것이 성경을 깨닫는 성경 해석입니다.
그러기에 성령께서는 성경을 해석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먼저 은혜로 죄를 짓지 않는 자로 만드시고 또 성령의 충만을 받게 하셔서 성경 진리를 해석할 수 있는 자로 세우십니다. 그렇기에 성경 해석은 처음부터 끝까지가 성령의 역사로만 됩니다. 성령의 은혜로만 됩니다.
그렇기에 성경 해석을 하려면 성경해석학적으로 달라 들면 안되고 먼저 성경 해석을 하려면 선지자가 앞서서 성경을 진리적으로 해석한 것을 그대로 공부하는 것이 초보적 성경해석 공부가 되겠습니다. 그러고 난 뒤 그 초보를 벗어나면 다시 말하면 선지자가 앞서서 성경을 진리적으로 해석한 것을 공부하고 나면 또 다시 말하면 성경 진리적으로 살아서 죄를 짓지 않는 자로 장성케 되면 또 다시 말하면 성령께서 쓰실 수 있는 자가 되면 그 때에 성령께서 성경 진리를 열어 보여주시는 자가 됩니다. 이것이 성경 해석에 대한 방편의 공부라면 공부가 되겠습니다. 성경해석에 대한 공부라고 한다면 '죄짓지 않는 자가 되라' 이 한 말이 성경해석의 공부에 있어서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안되겠습니다.
성경해석에 있어서 우리 인간이 파고 들 구멍은 없습니다. 다만 '죄짓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라' 하는 말 그것뿐입니다.
성경 해석을 하려는 것은 성경 진리를 알아서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기 위해서 성경 해석을 하려는 것이지 성경의 문자적 해석으로 지식만 삼으려고 성경 해석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성경이 바로 해석되어졌다면 반드시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진리의 능력을 함께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 해석이라는 것은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를 이긴 것이 성경 해석입니다.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지 못했다면 성경 해석이 인간들이 보기에 아무리 화려하고 조직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성경 해석이 진리적 해석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성경 해석을 특별하게 여기지 맙시다. 자기가 성경을 보아서 은혜 받고 죄짓지 않는 자로 살게 되었다면 그것이 최상의 성경 해석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그 성경 속에 진리가 잘 보이지 않으면 선지자가 앞서서 성경 해석한 것을 안내 받아 성경을 해석하여 성경 말씀 속에 진리대로 살면 됩니다. 진리대로 산 것이 바로 성경해석이요 그러면 성경해석이 이미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해석에 대해서 공부하는 안내자로는 백영희목회설교록이 우리 공회인에게는 우리 손에 늘 들려있습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을 보면 성경이 진리적으로 잘 해석되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성경 속의 진리를 잘 해석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해석하려는 우리들에게 백영희목회설교록은 좋은 안내자가 되고 선생님이 됩니다.
이렇게 성경 해석에 대한 글에 백영희목회설교록을 말하니 백영희목회설교록 재독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는 말로 받기 쉽겠으나 성경 해석에 대한 공부에 있어서 하나의 예를 들기 위해 백영희목회설교록을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백영희목회설교록을 말하는 것은 성경해석에 대해서 공부하려면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인간의 자기 지식으로 불가능하기에 먼저 선지자가 앞서서 성경을 해석한 것을 공부하는 것이 성경해석에 초보적 바른 걸음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본론으로 다시 강조하여 말하면 그것이 바로 결론적인 말이 되겠는데 성경 해석은 성경해석학으로 성경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 해석학으로 성경 해석이 되어졌다면 그것은 성경 문자적 해석입니다.
성경은 성경 말씀 속에 진리가 있습니다. 이 진리가 해석이 되어져야 성경적 해석입니다. 성경적 해석이 바로 되어진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면 바른 성경적 해석입니다. 그러나 성경 해석이 되어졌다고는 하는데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능력을 받지 못했다면 바른 성경 해석이 되지 못했고 문자적 해석에 머문 것입니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문자적 해석에 머문 것은 그것만으로는 '잘못 되었다' 라고 할 수 없으나 문자적 해석에 그치면 반드시 진리적 해석을 배척하게 되고 진리적 해석을 훼방하게 되는 일을 필연적으로 하게 됩니다. 그래서 문자적 해석에 머무는 미약이 문제되는 것은 아니나 그로 인하여 진리적 해석을 배척하고 훼방하는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중심은 하나님중심을 배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경 해석에 갈급 한 학생들에게 성경 해석을 인간 머리에서 나오는 지식으로 해결하도록 학적(學的)으로 가르치지 맙시다. 성경 해석에 갈급 한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든지 '죄를 짓지 말아라'고 가르칩시다. 성경 해석은 성령의 감동으로만 성경이 진리적으로 해석이 되어지고 또 진리적으로 해석이 되어졌다면 반드시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는 것'이라고 가르칩시다.
그러기에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를 이겼다면 이미 성경해석이 진리적으로 바로 되었다는 것은 확실하게 인식시켜서 성경 해석에 대해서 허황된 허욕의 길을 걸어가지 않도록 지도합시다.
성경 해석은 성령의 감동으로 해석이 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 해석이 직접 안 되면 선지자를 통해서 성경해석 한 것을 공부합시다 그것이 곧바로 성경 해석에 대해서 배우는 공부입니다. 선지자의 앞서서 해석한 성경해석을 배워서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를 이긴 자가 되면 성령께 속한 사람이 되어지고 성령께 속한 사람이 되어지면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이 진리적으로 해석되게 되어 집니다. 문자적 해석이 아니라 진리적 해석으로 말입니다.
성경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신령한 것입니다. 요5:7에 '성령은 진리니라' 말씀했습니다.
성경을 인간 머리에서 나오는 지식으로 해석하려는 성경 하대(下待)는 망령이요 미련입니다. 성경을 하대(下待)하여 성경을 다룰려고 하지말고 성경을 상대(上待)하여 성경에 속한 사람이 됩시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은 진리이기 때문에 '성령은 진리니라'하신 말씀대로 성령께서 감동으로 주셔서 성령의 사람으로 하여금 성경이 기록되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성경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의 근원이 이러하기에 성경 해석에 있어서도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 해석이라면 성경 진리를 아는 것인데 성경 진리를 아는 것은 곧 성령을 아는 것이요 성령을 아는 것은 성령께 속한 자가 되는 길뿐이니 성령께 속한 자가 되는 길은 죄짓지 않는 자로 사는 길뿐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대속 공로를 베푸셨습니다. 이 구원의 대속의 공로를 입혀주신 예수님의 영이 곧 성령이십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사람이 됩시다. 성령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사활대속의 공로를 입고 사는 자가 됩시다, 그러면 성령의 사람이 되고 성령의 사람이 되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자가 되도록 성령께서 성령의 감동을 주십니다. 이것이 유일한 성경 해석의 길입니다.
성경 해석은 인간의 힘으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인간의 힘을 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배운 고급 인간지식을 '배설물로 삼았다(빌3:8)' 했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지식을 버리라'고 가르치는 것이 성경 해석에 대해서 그 길을 바로 가르치는 가르침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인간 지식의 힘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그 기술을 가르치려 하고 있으니 참으로 비이치적 비진리적입니다.
다시 언급하면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선지자가 앞서서 성경을 진리적으로 해석한 것을 먼저 공부합시다. 그것이 바로 성경 해석에 대한 공부의 공부입니다. 죄를 짓지 말고 성령께 속한 사람이 됩시다. 그러면 성령께서 감동시켜주십니다. 이 말 또한 성경 해석에 대한 공부의 공부가 되겠습니다.
성령의 감동은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전능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감동이 곧 바로 진리로서 그 진리는 전능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감동 곧 진리 곧 전능의 능력을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지식으로 자기 것 삼을 수 없습니다. 성경 진리를 해석하는 데에 인간의 힘이 들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만 받을 수 있음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성경 해석에 대한 선생님의 참 된 가르침이요 배우는 학생의 참 된 공부입니다.
성경 해석학(解釋學)이라는 관념을 머리에서 뽑아버립시다. 인간의 머리로 성경해석을 하려는 관념을 머리에서 뽑아버립시다. 성경해석에 대해서 공부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해석에 대한 방편의 길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학(學)으로 가르칠 공부가 없습니다. 다만 가르칠 공부가 있다면 '죄짓지 않는 자로 살아라' 뿐입니다.
죄짓지 않으면 성령께 속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필연이고 성령께 속한 사람이 되면 성령은 진리이니 또한 성경은 진리이니 성경을 진리적으로 해석하는 것 또한 필연이 되겠습니다.
성경해석에도 진리의 이치가 있습니다. 그 진리를 떠난 자리에 성경해석이 될 리 만무합니다. 그러기에 먼저 성경 해석학이라는 '학(學)'자를 떼어버립시다. 그래야 성경 해석하는 공부에 있어서 진리 이치적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 됩니다.
인간 머리에서 나오는 지식으로 성경 해석하는 방편을 가르치고 또 배우겠다는 허영과 허욕을 떼어버립시다. 그래야 비로소 성경 해석에 입문이 됩니다. 성경 해석에 대한 입문은 먼저 선지자가 앞서 성경을 해석해 놓은 것을 공부하는 그것이 성경해석 공부라 했습니다. 인간 머리에서 나오는 제 지식 제 힘으로는 성경 해석이 불능한 것을 알게 되는 이것이 성경해석의 시발이 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제 머리 제 지식 제 힘으로 성경을 해석하려고 달라 들지 않게 되어 선지자가 앞서서 성경을 해석해놓은 것을 자기 성경 해석으로 삼기 위해서 집중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것 삼은 그 분량만큼 성경 해석을 할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대부분의 일반적으로는 선지자가 앞서서 성경을 해석해 놓은 것을 배우는 공부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시대 시대마다 세우셔서 성경을 해석하게 해주시고 그 해석으로 그 시대의 성도들이 성경 해석을 자기 것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앞서서 성경 해석해 놓은 것을 자기 것을 공부하는 데는 뒤로 돌리고 인간 머리에서 나오는 제 지식으로 성경 해석을 하는 방편학 기술학 해석학을 배우려는 것은 걷지도 못하는 자가 날으는 길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니 그 얼마나 허황된 미혹이 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특별히 순생 순교의 종을 선지자를 앞서 세워주셔서 성경을 진리적으로 해석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공부합시다. 이것을 다 배웠으면 그것은 성경 진리의 안내자이기 때문에 더 이상 안내자에게 머물지 말고 안내자가 안내하려는 그 뜻에 부합 되게 성경을 직접 붙잡읍시다. 그런 정도면 직접 성경을 진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겠습니다. 물론 성령의 감동으로 시작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늘 충만해야 성경을 진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또 다시 말씀드립니다. 성경을 해석하려면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칩시다. 이것이 성경 해석에 대해서 가르칠 선생님의 가르칠 가르침이요 배우는 학생들의 배움입니다. 이렇게 성경 해석에 진리적 이치를 배웁시다.
성경 해석은 성령의 감동으로만 성경 진리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인간 머리 인간 지식으로는 성경의 문자만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성경 해석에 문자만 해석하려면 성경 해석학이라는 말을 붙여도 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성경을 문자적 해석에 그치려고 성경 해석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문자적 해석을 넘어 진리적 해석을 위해서 성경 해석학이라는 말을 먼저 떼어내 버리고 선지자가 앞서서 밝혀놓은 진리적 성경 해석을 공부하여 자기의 성경 해석으로 배워서 성경 해석에 입문이 되면 그 넘어 성령께서 세우시고 성결케 하사 감동주시는 은혜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경 해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를 구합시다.
성경 해석은 성령께서 선물로 은혜로 주시는 것이 성경 해석입니다. 성경 해석은 시대마다 하나님의 종 선지자를 세우셔서 그 시대를 감당하는 성경 해석을 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경 해석학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힘으로 성경을 해석하려는 교만을 버립시다. 성경은 기록도 해석도 전적 성령의 역사로만 이루어짐을 가르칩시다. 그러기에 가르치는 '죄를 짓지 말아라'고 가르칩시다.
성경 해석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그대로 나타내는데 일에 쓰임을 받는 일을 할 뿐인 우리들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따로 있고 우리인간이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께서 하실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성경 해석에 있어서 우리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성경 해석학으로 성경 해석에 감히 접근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할 일은 주님의 대속 공로를 힘입어 죄짓지 않고 의롭게 주님과 동행하는 일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이 일이 성령의 감동을 받는 일이요 이것이 성경 해석에 있어서 우리의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