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목사의 딸 박혜란

2015.04.09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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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선 목사의 딸 박혜란

  선지자선교회

주경학자 박윤선 목사의 딸 박혜란이 아버지에 대한 고소적 글을 썼다. 내용이 신앙적이지 못해 책 제목은 생략한다. 박혜란은 책 말미에 마18:6을 말하면서 자신이 아버지 박 목사님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성경에는 마19:29 말씀도 있다.

 

박혜란은 지금 어린 사춘기가 아니다. 육십 후반으로서 장년을 넘어 노년이다. 또 목사란다. 그렇다면 어린 나이 때의 아버지와 노년에 때 또 목사로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이 다를 것이다. 분명히 달라야 한다. 그런데 박혜란은 아직도 십여 세 사춘기로 아버지를 판단하고 있다. 박혜란의 사춘기 때 관점은 일말 동정이 간다. 그러나 노년 때의 관점은 엄중 비판한다.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19: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다음은 허순길 박사의 글이다. 노년 때의 관점을 비판하는 글을 대신한다.

 

박혜란의 목사의 딸에 대한 유감

 

허순길 박사(전 고신대학권 총장).jpg  

허순길 박사

 

필자는 최근 박혜란이 쓴 목사의 딸이라는 책을 읽고 놀랐다. 딸로서 보여준 그의 오만한 품격과 내용 대부분의 허구성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글이 주님의 교회에 무서운 해악을 끼치고 있으므로 잠잠히 있을 수가 없어 이 글을 쓴다.

 

필자는 1950년대 박윤선 목사가 고려신학교 교장으로 봉사할 당시 그의 가족과 비교적 가까이 지냈다. 대학부 4학년 때 그의 딸 은란의 과외교사로 한 학기 동안 그의 집에서 지냈고, 이어 신학본과에 들어가면서부터 졸업할 때(1959)까지 3년 동안 그의 풀타임 조교로 그의 원고를 정리하고 교장실에서 함께 지냈다. 이때 박혜란은 경남여고를 다녔고, 이어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래서 박윤선 목사의 가정을 조금 아는 편이다.

 

박윤선 목사는 평생을 개혁주의교회 건설에 헌신한 귀한 종이었다. 하지만 혜란은 그의 아버지의 신학을 폄하하고, 한국교회 안에서 존경을 받아온데 대해 불만을 토했다. 혜란의 말 가운데 어떤 것은 사실일 수 있다. 신학자 박윤선이라고 무흠할 수 없다. “이 생애에서 우리의 최상의 선행조차도 매우 불완전하며, 죄로 오염돼 있음을 안다. 따라서 그의 아버지 박윤선을 단순히 변호하려는데 있지 않다. 혜란은 아버지가 전처 자식들에게 무관심하고, 새어머니가 그들을 학대했다는 데 대한 증오감을 갖고 너무도 허황한 화상을 그려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그는 사랑을 말하나 용서 없는 위선자임을 보이고 있다. 어머니를 잃고 계모를 맞는다는 것은 한 가정의 큰 불행이다. 계모가 아무리 전처 자녀들에게 잘해도 칭찬 듣기란 어렵다. 내가 아는 이화주 사모는 체격이 크고 외모가 남성스럽게 보이는 분이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온화함을 느끼게 하는 데는 결핍이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혜란이 말한 대로 늘 그들에게 배은망덕한 전처 자식들이라고 쏘며 박해를 가할 분은 전혀 아니다. 그런 분이라면 전처의 딸 은란이의 과외 교사를 두고, 서울대학에 간 혜란의 등록금을 어떻게 댈 수 있었겠는가? 박윤선은 정말 돈도 살림도 모르는 분이었다.

 

새어머니가 크게 자기들을 홀대하고 마음에 상처를 줬다고 하자. 혜란도 새어머니에게 혹 마음에 상처를 주었을 것은 틀림없다. 아무튼, 오랜 세월 후 미국에 살면서 서로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았다고 했다. 혜란은 LA 새어머니 집을 방문했을 때의 행복을 이렇게 적었다. “처음 한 방에 같이 자면서 지나온 삶을 자유롭게 말씀드릴 수 있었다. 새어머니는 당신의 침대를 내게 주시고 당신은 방바닥에서 주무셨는데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모른다라고 했다(p.161). 모녀가 서로 용서를 하면서 지난날을 다 청산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혜란은 새어머니를 용서하지 않았다. 지난날의 모든 것을 기억해 내어 글로 옮겨놓았다. 그의 새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2014년 초), 바로 그것을 책으로 세상에 펴냈다. 혜란은 새어머니를 용서하지 않았다. 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용서하지 않는 무서운 위선자이다.

 

둘째로 혜란은 박윤선의 자녀 된 특권을 전혀 감사할 줄 모른다. 혜란의 언니 춘자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1953년에 도미 유학, 다음 해 요한은 양자의 길을 통해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1950년대에 우리 같은 평범한 가정의 자녀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저들은 박윤선의 자녀들이기에 가능했다. 당시 미국에 가면 누구나 장학금을 받아도 고학을 하며 생활해야 했다. 한국에는 외화가 없었고, 보내줄 길도 없었다. 그러나 혜란은 미국에 간 춘자, 요한을 돕지 않았다고 그의 아버지를 원망했다. 또 오빠 춘호를 돕지 않은 것도 원망한다. 그는 1953년에 결혼해 가정을 이뤘다. 하지만 그는 가정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고 늘 술을 마시고 방탕했다. 그런데 큰 문제는 종종 밤에 만취돼 아버지 집을 찾아와 돈을 요구하고 문을 부수는 등 행패를 부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 증인이다. 혜란은 그가 방탕했다고는 말했지만, 그가 부모에게 와서 저지른 행패에는 침묵하고 다만 아버지를 만나러 왔는데박대한 것으로만 말하고 있다. 그는 어떻든 그의 아버지가 새어머니가 낳은 자녀들에게만 관심을 갖고 자기들에게는 무관심하고 잔인했다는 것만을 부각하고 있다. 고약하고 정직하지 못하다.

 

셋째로 아버지의 딸, 한 남편의 아내로서 혜란의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행태를 본다. 혜란은 4반세기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가능한 한 표현을 동원해 매장하려고 한다. 의처증을 가진 분, 그의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고 손찌검한 적이 많다고 한다. 마침내 강도를 높여 상습적으로 구타했다라고 한다. 아무리 잉꼬부부라도 서로의 개성이 다르므로 다툴 수 있다. 박윤선의 부부라고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혜란은 그의 아버지를 상습적인 구타자로 모는 것은 흠집을 깊게 내려는 악의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혜란이 그의 남편에 대한 회상은 참으로 가관이다. 아버지의 강압으로 원하지 않은 사람과 결혼하게 됐다면서, 아버지가 자기의 명예를 위해 딸을 판 것이라고 탓한다. 일찍부터 자만하게까지 보인 그의 자존심이 누구의 강압 때문에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과 결혼했을 리는 없다. 아무튼 그는 결혼해 4남매를 두고 여러 손자와 손녀까지 뒀다고 한다. 그런데 칠순을 넘은 할머니가 된 그가 불행했던 결혼생활을 세상에 드러내고, 남편이 가진 결점을 다 나열하고, 이혼을 생각했다고도 한다. 현재 살아 있는 남편의 흠을 이렇게 낱낱이 파헤쳐 온 세상에 알리는 그가 이미 고인이 된 분들에게 대해서는 얼마나 자유롭게 허구한 소설을 써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가족윤리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분이 목사가 돼 무엇을 가르치고 설교하는지 궁금하다.

 

넷째로, 아버지의 빠른 재혼이 자기들을 위한 일이었는데도 이를 이해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혜란은 아버지가 상처한 지 6개월 후에 의논 없이 재혼한 것에 크게 불만스러워한다. 어떤 면으로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자기들을 위한 주변 어른들의 배려였다. 1954년 초 김알렌 사모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요한은 곧 도미하고 겨우 열세 살인 혜란과 그 아래 은란, 단열 셋만 남게 됐다. 그의 아버지가 화란 유학생활에서 급거 귀국했으나 그는 돈도 모르고 살림도 전혀 모르는 분으로 아이들을 돌볼 수 없었다. 그래서 신학교 이사들과 교계 지도자들은 그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빨리 그의 재혼을 주선해 주는 길밖에 없었다. 그래서 본인이 원하지 않은 일임에도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봉사를 하던 이화주 전도사와의 재혼을 10월에 성사시켰다. 이는 어린 그들을 위한 어른들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어릴 때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할지라도, 장성해서는 이를 이해하고 오히려 감사해야 했다.

 

끝으로, 혜란의 편향된 신학이 그를 더욱 불효녀로 만들었다 본다. 혜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신학자들에게서 사랑이 지배하는 가장 좋은 신학을 했다고 행복해 하지만 그 신학이 이런 책을 쓰게 했다면, 그 신학은 분명 좋은 신학이 아니다. 신학이 하나님의 사랑에 편중될 때 죄와 회개를 경시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가 죄인이라고 회개하며 기도하는 것을 다른 복음이라고 하며 정죄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면서도 아직 사망의 몸을 벗어나지 못한 죄인이다.(7:24) 그러기에 우리는 거듭 죄를 범하고 회개한다.

 

그는 아버지를 유교적 칼빈주의자, 이원론자라고 하며, 자기 아버지의 주석이 참고할 만한 것이 없고 빈곤하다라고 폄하한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를 큰 죄인으로 그려 놓고, “한국교회가 이렇게 큰 결함이 있는 분을 칼빈주의 대학자로 숭상하는 것이 안타깝다라고 한숨을 내쉰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남기고 간 모든 것을 묻어버리기를 원하고, 그 이름이 지워지기를 원한다. 자만과 악의에 찬 심술이다. 빗나간 딸 혜란이 원한다고 해서 그렇게 될 수도 없고, 되지도 않을 것이다.

 

박혜란은 이 책을 성령의 인도로 쓴 것이 아니고, ‘다른 영의 지배를 받아 쓴 것이 분명하다. 주의 교회에 백해무익한 이 책을 목회자들, 신학생들, 교회지도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이라고 책머리에 추천한 분들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 코람데오닷컴 2015.03.18 허순길 목사/전 고려신학대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