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 명도소송 불가의 원리

2023.12.02 17:46

김반석 조회 수:


선지자선교회

예배당 명도소송 불가의 원리

 

일제 신사참배 문제로 고려파가 총회측에서 분리 하였을 때에 총회측은 고려파의 예배당 명도 요구를 하였다. 이 때에 고려파에서는 명도소송 반대측과 찬성측이 있었다.

 

1901년에 장로회는 평양신학교를 세웠다.

 

1907년에 독노회가 조직되었다.

 

1912년에 총회가 조직되었다.

 

1938년에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였고 평양신학교가 폐교되었다.

 

1940년에 신사참배를 용납하고 일제 총독부에 협력하는 조선신학교가 설립되었다.

 

1945년 일제에서 해방된 후 신사참배 문제로 총회측과 고려파가 분리되었다.

 

1946년에 출옥성도 주남선 목사와 한상동 목사가 주축이 되어 고려신학교가 설립되었다.

 

1951년 총회측은 고려파의 한상동목사가 시무하는 초량교회 예배당에 대하여 명도(明渡)를 요구하였다. 당시에 총회측으로부터 예배당 명도를 요구받은 곳은 1차 큰 교회가 되는 초량교회, 영도교회, 마산 문창교회, 거창읍교회 등이었다

 

한상동 목사는 초량교회를 명도 신청 전에 총회측에 내어주고 삼일교회를 개척하였다. 그러나 문창교회 송상석 목사는 예배당 명도에 대한 소송정당론을 주장했다.

 

위의 내용은 장로회의 총회측과 고려파가 분리되는 역사를 간략히 대략 적은 것이다.

 

총회측이 고려파 교회 예배당에 대하여 명도를 요구하였을 때에 예배당 명도소송의 불가(不可)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고 본다.

 

일제 신사참배는 제 이계명을 범하는 진리적 문제이기에 고려파는 총회측과 분리한 것이다. 그러나 예배당 명도 요구는 재산을 차지하는 물질적 문제이기에 총회측과 소송하는 분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고려파의 반소파(한상동, 박윤선, 석원태, 백영희 등)였다.

 

재산은 양보한다.

진리는 보수한다.

 

이것이 부족한 종이 견해 하는 예배당 명도소송 불가의 원리였다고 본다.

 

- 2023. 12. 02김반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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