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30 21:54
7-7 ■ 함석헌의 씨사상
▼ 무교회주의 주장
의 마음과 고구려 정신, 같이 묶기 힘들어 보이는 이 두 전통을 씨사상 안에 담겠다니. 그것도 서양적 토양에서 자라난 기독교 사상의 정수와 함께. 함석헌식으로 진행한 이 작업은 그의 씨 이해를 통해 열매를 맺었습니다.
첫째, 님이 이해한 씨은 “상(常)놈”입니다. 된소리 “쌍”이 아니고 상, 언제나 있는, 항상 있는 보통사람이래요. 중요한 사회적 직분이나 명함을 내놓을 것이 없이 그저 오늘, 여기를 사는 사람들, 그저 평민(「선집」5: 130-131)을 뜻합니다. 내세울 직분은 없어도 이들 없이는 사회가,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맨사람들. 물이 영원히 푸르게 늘 흐를 것일 것처럼 강대국의 흥망성쇠나 지도권의 바뀜에 상관없이 영원히 역사 안에 존재할 사람들, 그들이 씨이라 합니다. (「전집」 4: 84-87)
둘째, 님에게 씨은 하나님의 씨를 마음 안에 지닌 종교적 본성의 사람, 즉 신앙의 사람입니다.(「전집」 4: 66)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우니 하나님이 주신 그대로의 생명을 유지하기 쉬운 사람들, 특권 때문에 치장하고 포장하는 껍질이 필요 없는 알몸의 사람들, 그들의 바탈은 종교적인 거래요. 자의 뜻을 이미 소개했지만 사람인 씨은 특정종교의 사람이 아니고 얼의 부분으로써 자신을 인식하는 사람, 하나님의 씨가 모든 인간 안에 있다고 믿어 모두를 귀히 여기는 사람이라 합니다. 진정한 혁명은 외적 조건을 바꾸는 폭력저항이 아니고 모두가 의 마음을 찾으려는 내적 혁명이라고(「선집」 2: 43-45) 믿으신 님은, 민족이 아님 신앙을 통해 영적으로 거듭나 전 인류를 새롭게 하자고 외치며 사셨습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외침이 아닌지요. 신앙과 조국애를 한 곳에 담으려 한 무교회정신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고, 전 그리 봅니다.
셋째, 님의 씨은 들사람입니다. 야인입니다. 인간이 만든 문명에 타협하지 않는, 자연의 조화를 즐기는 평화의 사람입니다.(「선집」 2: 141-147) 성군으로 소문만 요 임금의 정치함께 하자는 청유에도 “더러운 소식 들었다.”며 시냇가에서 귀 씻었다는 소부, 때문에 시냇물까지 더러워졌다면서 자기가 기르던 송아지에게도 그 물을 먹이지 않았다는 허유가 대표적인 들사람, 야인이래요. 초나라 시절 제사용 돼지 비유를 통해 임금의 사절들을 돌려보낸 장자, 천하의 알렉산더 앞에서 해 드는 데 그림자 지니 비키라고 호통을 친 디오게네스, 광무제 배 위에 다리 턱 올려놓고 잤다는 엄자릉(「선집」 130-132) 동서고금의 이야기들을 통해 님은 들사람, 씨을 아끼고 그리 되고 싶어 하셨습니다.
넷째, 들사람 씨은 자신의 자신됨이 위협을 받을 때는 뿔이 부러지게 싸우는 야성의 사람, 프로테스트의 사람이 됩니다. 모든 사람이 바탈의 삶을 살게 하는 일에 있어서만은 늘 초월적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저항 못 해본 것은 노예지 아들 아니라는 님은, 하나님의 아들, 딸들의 귀한 인간성이 침해당하면 당연 저항해야 한다고 믿으셨어요. 온 인류가 다시 바탈 대로 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 역사의 방향이고 필연이랍니다. 모든 인간사는 하나님과 평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대요. 이에 반(反)하는 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랍니다.(「전집」 4: 66-67) 큰 힘으로 역행하는 현문명의 흐름에서 다시 이 역사의 필연으로 방향을 돌리려 싸우는 들사람, 그 저항의 사람이 씨이라 합니다.
다섯째, 님이 이해한 씨은 사유하는 사람, 이성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헤아리고자 위, 아래로, 즉 기도하는 초월신앙의 훈련과 평민의 소리 들음에 열심이고, 그 들은 음성을 헤아리려 열심인 이성의 사람이랍니다. “시대와 양심 안에서 철저히 고민하는 자아의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씨입니다.(「전집」 4: 65) 그렇다고 자기 생각이 모두 하나님의 소리라는 낙관적 인간관으로 바뀌신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한계성을 모두 인정하는 님은 “하는 생각”과 “나는 생각”을 구분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말씀이 나타나시는 일이다. 말씀이야 영원히 변함없는 한 가지 참인 말씀이지만, 역사는 변하는 것이요, 그 역사를 살리기 위하여는 자꾸자꾸 새로운 표시로 고쳐 받아지는 그 시대시대의 말씀이 있다. ‧ ‧ ‧ 맘이 곧 말씀은 아니다. 이성이 곧 하나님의 영일 수는 물론 없다. 그러나 이성의 높은 봉에 오르지 않고 하늘에서 내리는 영을 받을 수 없다. ‧ ‧ ‧ 감정 같은 것은 그 봉우리의 중턱에 피는 꽃밭에 지나지 않는다. 하늘 영은 소위 성신이요 환상이요 영롱이요 하는 것 같은 감정적으로 고조된 이상심리의 그릇에 받기는 너무도 큰 것이다. ‧ ‧ ‧ 오시는 말씀은 무한히 넓게 열린 맘이 아니고서는 받을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의 맘에 무한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성뿐이다.(「전집」 9: 369-370)
익숙하게 들리면서 생각나시는 구절이 없는지요? 김교신님이 추구한 “냉수를 치며 믿는” 신앙.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시대 안에서 고민하며 이성으로하나님의 영을 받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자꾸 생각하는 “하는 생각” 나의 사고의 주파수를 하나님께 맞추려고 노력하는 “기도”의 행위인 이 “하는 생각”의 과정 중에 하나님은 계시로서의 “나는 생각”을 주신다는 거지요. 이 “나는 생각”을 받아야 비로서 인간은 자아와 하나님과 역사를 하나로 놓을 수 있게 된다구요. (「전집」 3: 169, 8: 174, 241)
여섯째, 씨은 통사람입니다. 의 사람입니다. 낱낱의 개개인이 아닙니다. 하나이면서 동시에 여럿인, 우리가 모두 한 씨이기에 “타자”가 없는, 그런 통사람입니다. 혼자인 나도 없고 혼자인 너도 없다는 유기적 인간이해를 하는 님은, 인격적인 생명은 서로의 알아봄, 서로의 교류를 통해 자라고 에스컬레이션을 일으켜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전집」 12: 10)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들숨, 날숨의 원리처럼 우주에 가득 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이마시고 찌꺼기, 낡은 것, 거짓을 내쉬면서 건강한 인격으로 자라나는 거랍니다.(「전집」 12: 15) 예수는 이 통사람 씨의 본보기래요. 그래서 님은 예수를 “거룩한 두루뭉수리”라고 불렀어요. “하나되라.”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에 분파적 사고나 분파적 삶을 거절한 “통사람.”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전체를 위해 싸운 의 사람. 역시 하나님의 자녀인 “그들”에게 폭력은 쓸 수 없어서 평화주의였던 사람(「선집」 2: 523-527).
일곱째, 씨은 구체적인 공동체 안에서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구조적으로, 조직적으로 악하다면 선으로서의 씨알을 조직화해서라도 그 악에 대항해야하는 실천력을 지녀야함은 간디에게서 배운 것이라 합니다. 씨농장과 <씨의 소리>를 통해 님이 추구한 공동체는 믿음대로 살아가며 생업을 잇는 평민들의 공동체입니다. 간디의 아쉬람보다 더 오래된 유산이 있다고, 전 그리 보는데 강의초반 설명한 향도적 삶이 그것입니다. 무교회시절부터 교육을 통해 씨알에게 깨달음을 주려 노력했던 님은 종교적 믿음과 농사(일)와 교육이 함께 있는 공동체로서의 씨농장을 꿈꾸며 실험했고, 그런 공동체들을 이루는 삶으로 평민들을 초대하며 <씨의 소리>를 내었습니다. (7강: 씨공동체, 우주와 역사를 품는 에클레시아)
● 성경적 반증
무교회주의는 “의 마음과 고구려 정신, 같이 묶기 힘들어 보이는 이 두 전통을 씨사상 안에 담겠다니. 그것도 서양적 토양에서 자라난 기독교 사상의 정수와 함께. 함석헌식으로 진행한 이 작업은 그의 씨 이해를 통해 열매를 맺었습니다.”라고 함석헌의 씨사상에 대하여 일곱 가지를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한 파악이 쉽도록 공식(公式)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 의 마음과 고구려 정신 + 서양적 기독교 사상 + 함석헌의 씨사상 = 무교회주의의 무교회
무교회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독교를 하나의 ‘서양적 기독교 사상’으로 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의 마음과 고구려 정신 + 서양적 기독교 사상 = 함석헌의 씨사상을 만들었다. 이것이 함석헌의 무교회주의의 무교회이다.
그래서 함석헌의 씨사상의 배경은 의 마음과 고구려 정신 + 서양적 기독교 사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무교회주의의 무교회의 배경은 함석헌의 씨사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무교회주의의 실체는 교회가 ‘없음’의 무(無)교회, 교회에서 ‘나옴’의 출(出)교회, 교회에서 ‘벗어남’의 탈(脫)교회, 교회가 ‘아님’의 비(非)교회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렘14: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겔22:28)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였으며
(딤전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 2017. 9. 30 선지자문서선교회 김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