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1973-12-09(49공과)

본문 : 16:20-24

제목 :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의 기쁨

요절 : 16:22

  선지자선교회

1. 모든 이종교(異宗敎)와 철학과 사상과 기타의 인류들은 누구나 쾌락을 그 소망의 절정으로 종점으로 삼고 있다. 쾌락이 없는 곳은 사망이요 쾌락은 생명과 평강으로 평가하고 있다.

 

고로 모든 인간들이 찾는 것도 쾌락이요 끌리는 것도 쾌락이요 노력하고 있는 것도 다 쾌락을 위한 것들이다. 이만큼 쾌락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성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이 쾌락은 한 두 가지의 종류가 아니고 수많은 종류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 수많은 행동도 세상에는 많이 있다.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생애 전부를 주장하고 있다고 할 만한 이 쾌락 선택에 사람들은 관심을 가질 줄 모르고 무조건 어떤 쾌락이나 취하고자 누릴려고만 하기 쉽다.

 

잘못 선택하면 잘못된 사람과 잘 못된 행위가 맺어진다. 그 어떤 사람이 어떠한 현실에 있다 할지라도 그는 자기가 욕망하고 있는 그 쾌락이 있는 그리로 마지막은 가게 된다. 수많은 기독자들이 신앙에 머물고 있으나 알곡과 쭉정이를 가지는 환난에서나 또 자기의 실제인 그 신앙 생활에 있어서는 자기가 아는 쾌락 자기가 소망하고 있는 쾌락 그것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니 조만 간에 거기에 귀속하게 되는 것이다.

 

고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쾌락과 세상에 속한 쾌락을 냉정스럽게 얼마든지 비판하고 논리하고 평가하여 세상 쾌락에 심히 탁월한 그리스도인의 쾌락인 것이 확신 되게 하여야 한다. 이것이 확신되어 그리스도인이 가진 쾌락을 흔드는 세상 어떠한 쾌락에 없는 단계에 나아간 자는 그 신앙은 세상을 이기게 된다.

      

2. 그리스도안에 있는 쾌락은 없어졌다가 있어짐으로의 쾌락, 낮아졌다가 높아짐으로의 쾌락, 종 됨으로 으뜸 되는 쾌락, 죽음으로 삶의 쾌락들이니, 곧 그리스도인의 고통은 새 세상 새 세계를 창조하는 해산적 고통이요 이 해산 고통을 통과하여 아이가 나오고 사람이 생겨 나오는 이러한 쾌락이다.

 

그렇기 때문에 열매를 보지 못한 그 준비의 단계에서는 다 이 그리스도인의 쾌락이 열리는 그 나무를 모두다 미련하다 어리석다 불행이라 하여 물리친다.

 

그러나 그대로 심어본 자는 반드시 그 열매를 거둘 때에야 기쁨을 가지게 된다.

 

고로 그리스도인의 쾌락은 새 사람이 나오며 자라는 쾌락이요 새로운 세계로 점령하는 쾌락이요 모든 존재와 화평을 화목을 이루는 쾌락이요 영원히 종 되어 봉사하는 쾌락이니 사랑이 그 본성이요 진리가 그 본질인 쾌락이다.

 

우리는 많은 그 명상과 체험과 경험을 활용하는 성경 기준적 연구에서 자기와 자기에 관한 모든 것을 연구하여 그리스도안에 있는 것이 그 세상 무엇에도 탁월한 것인 것을 확실히 깨닫고 잡아야 만 한다.

 

구별이 흐려 평가에 도달하지 못하면 쾌락과 쾌락을 혼돈하여 자연인들이 가진 쾌락에 머물다가 그리스도안에 있는 것을 잡지 못하기 쉽다. 고로 세상 어떠한 종류의 쾌락이 와도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그리스도안에 있는 쾌락을 발견하고 잡은 자가 되어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50공과 결론 첨부)

 

하나님의 심판에 정죄가 되고 만물 자유 시대에 부끄러움이 될 물질적 기쁨, 혈육적 기쁨 여러 사욕적인 기쁨, 인본적인 기쁨 이러한 저주와 죄와 사망 아래에 있는 기쁨 중에 차차 저급에서 고급으로 옮기고, 고급에서 이것들을 탁월한 사망선 이상 생명에 속하고 신령에 속하고 하나님에게 속하고, 전 존재의 자유에 속한 기쁨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세상 생활이 끝나기 전에 바꾸고 옮겨야 하고 사람도 변화하여야 한다. 사람이 변화됨으로 이 일이 이루어지고 이것들이 이루어짐으로 사람이 변화가 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