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3 04:39
■ ‘칭의(稱義)’에 대한 성경적 해설 (구원론)
(서론)
‘칭의(稱義)’를 한글로 말하면 ‘의롭다 칭함을 받다’이다. 그리하여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칭의(稱義)’라 하면 ‘의롭다 칭함을 받다’로 소통하고 있다. 이것은 순전히 문자적으로만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칭의’라는 글 자체에 대한 말이 ‘의롭다 칭함을 받다’이다. 이것은 한자사전의 뜻풀이다. 그러나 성경교리에서 ‘칭의(稱義)’는 ‘의롭다 칭함을 받다’가 아니다.
그러면 성경교리에서 말하는 ‘칭의(稱義)’는 무엇인가?
(본론)
(롬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 곧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인 된 자(로5:8)를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롬5:13)가 되게 하셨다. 이것이 칭의의 구속으로서 ‘칭의(稱義)’이다.
그리하여 ‘칭의(稱義)’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행13:38, 엡1:7)에 속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행13:39, 갈2:16)에 속한 것이 아니다.
(결론)
‘칭의(稱義)’를 한자사전적으로 풀이하면 ‘의롭다 칭함을 받다’이다.
‘칭의(稱義)’를 성경교리적으로 해설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 곧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인 된 자(로5:8)를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롬5:13)가 되게 하셨다.’이다. 그렇기에 ‘칭의(稱義)’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의(義)’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음(갈2:16)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엡1ㅣ7)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음(엡1:13)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의 임하심(요14:16-17, 요14:26, 요15:26-27)과 주의 성령의 임하심(눅4:18)이다. 그렇기에 ‘의(義)’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믿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대속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 ❶새 사람으로 죄짓지 아니하는 자로 사는 것과 ❷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사는 것과 ❸영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화목(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참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갈2:16)’ 것을 한자적 교리용어를 말한 것이 ‘이신득의(以信得義)’이다.
그리고 ‘이신칭의(以信稱義)’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받다’로 말하는 것은 ‘이신’과‘칭의’가 합치되지 아니하고 배치되는 말이다. 여기에는 ‘보혈칭의(寶血稱義)’가 맞는 말이다.
- 2024. 08. 23∥목사 김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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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의와 보혜사’에 대한 번역적 해설과 성경적 해설
(서론)
‘칭의’는 한자로 ‘稱義’이다.
‘보혜사’는 한자로 ‘保惠師’이다.
그리하여 교계의 교리신학에서는 보편적으로 ‘稱義(칭의)’에 대한 해설과 ‘保惠師(보혜사)’에 대한 해설을 번역적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비성경적으로서 성경적 해설을 하여야 한다.
그러면 ‘稱義(칭의)’와 ‘保惠師(보혜사)’에 대한 번역적 해설은 무엇인가?
그리고 ‘稱義(칭의)’와 ‘保惠師(보혜사)’에 대한 성경적 해설은 무엇인가?
(본론)
1장 ‘稱義(칭의)’와 ‘保惠師(보혜사)’에 대한 번역적 해설
1. 稱義(칭의)
- ‘稱(칭)’: 일컫다.
- ‘義(의)’: 의롭다
교계의 교리신학에서는 보편적으로 ‘稱義(칭의)’를 ‘의롭다 칭함을 받다’로 말한다.
2. 保惠師(보혜사)
- ‘保(보)’: 지키다.
- ‘惠(혜)’: 은혜
- ‘師(사)’: 스승
교계의 교리신학에서는 보편적으로 ‘保惠師(보혜사)’를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를 가르치시는 성령’으로 말한다.
2장 ‘稱義(칭의)’와 ‘保惠師(보혜사)’에 대한 성경적 해설
1. ‘稱義(칭의)’
성경의 구원진리에서는 ‘稱義(칭의)’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아(엡1:7) 곧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인 된 자(로5:8)를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롬5:13)가 되게 하셨다.’로 말한다.
2. 保惠師(보혜사)
성경의 구원진리에서는 ‘保惠師(보혜사)’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가 임하셔서 ➊영원토록 함께 계시고(요14:26-27) ➋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➌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시고 또 증거하게 하시는(요15:26-27) 하나님의 성령이시다.’로 말한다.
(결론)
1. ‘칭의(稱義)’에 대하여
교계의 교리신학에서는 보편적으로 ‘稱義(칭의)’를 ‘의롭다 칭함을 받다’로 말한다. 그리하여 ‘이신칭의(以信稱義)’로 말하는데 비성경적이다. 그런 것은 ‘이신칭의(以信稱義)’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받다’가 되기 때문이다.
‘稱義(칭의)’에 대한 바른 교리표현은 ‘보혈칭의(寶血稱義)’이다. 그런 것은 ‘보혈칭의(寶血稱義)’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받다’가 되기 때문이다.
‘이신(以信)’은 ‘믿음으로 말미암아’로서 ‘이신에(以信)’ 맞는 교리표현은 ‘이신득의(以信得義)’이다. 그런 것은 ‘이신득의(以信得義)’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다(갈2:16)’이기 때문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의 임하심(요14:16-17, 요14:26, 요15:26-27)과 주의 성령의 임하심(눅4:18)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칭의(稱義)’에 대하여 성경의 구원진리적으로 해설하지 아니하고 한글 번역적으로 해설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비성경적 오류이다. 그 까닭에 ‘이신칭의(以信得義)’라는 대단히 위험한 비성경적 오류의 교리용어가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2. ‘保惠師(보혜사)’에 대하여
교계의 교리신학에서는 보편적으로 ‘保惠師(보혜사)’를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를 가르치시는 성령’으로 말한다. 그리하여 성경의 구원진리적으로 말하는 것과는 차이가 많다. 그러나 교계의 교리신학에서 ‘칭의(稱義)’에 대하여 말하는 것보다는 비성경적 오류가 적다.
- 2024. 08. 24∥목사 김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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