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15 12:55
박옥수 구원파의 미혹성을 밝힌다
1993년 12월 01일 (수)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한국에는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는 이단들이 많다. 그 가운데는 심각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단 또한 적지 않다.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위험한 이단들 중에 하나가 바로 구원파 이단이며 그 중에도 특히 박옥수 구원파이다. 구원파 박옥수에 대한 이단성과 그 정체를 신학적인 분석을 통해 알아 보자.
왜 박옥수 구원파에게 많은 성도들이 미혹되는가?
이단이란 표면적으로는 성경을 강조하지만 궁극적으로 성경을 부정하는 자들이요, 예수님을 강조하지만 사실은 교주가 강조되고 정통교회의 교리보다 교주의 가르침이나 자신의 교리를 더 강조하는 자들이다. 이들의 이같은 거짓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성경이며 이단논쟁은 곧 성경논쟁이다. 그런점에서 성경과 연결시켜 이단을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성경 외에 분명한 자기 계시 즉 다른 성경을 가지고 있는 이단이요, 둘째는 성경만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로 인정하는 이단이다. 그런데 첫째 부류보다 둘째 부류가 훨씬 더 무서운 이단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 외에 자기 계시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다른 진리, 다른 구원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 다른 성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으로 인해 표면적으로 드러나 버린다. 그러나 성경 계시 외에 다른 계시를 가지지 않는 이단들은 그 접촉점이 성경이요 오히려 정통교회보다 더 성경을 높이고 강조함으로 그 이단성이 안으로 깊이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드러난 질병보다 숨은 질병이 더 무서운 것과 같다. 이단은 그 본성이 미혹하는 자요, 속이는 자요, 노략하는 자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단성을 가능한 한 효과적으로 숨기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성경계시만 인정하게 되면 자연히 성도들에게 미혹성이 더 큰 것이다.
통일교 같은 경우 '원리강론'은 성경 위의 새로운 자기 계시이면서도 단지 주석서에 불과하다고 위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 같은 이단이 무서운 것이다. 구원파의 성도에 대한 미혹성이 큰 첫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둘째로 구원파가 많은 성도들을 혼란케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이유는 구원과 죄에 대해 평신도들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병은 몸이 약한 부분에서 생기는 법이요, 쥐는 얇은 벽을 뚫는 법이요, 도둑은 낮은 담장을 넘는 법인 것처럼 이단 또한 정통교회의 약점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다. 바로 정통교회의 구원관과 죄에 대한 약점을 뚫고 나타난 이단이 박옥수 구원파이다.
정통신학 자체가 구원과 죄에 대해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평신도들에게 정립되어 있지 못한 것이다.
"구원은 확신되어야만 받은 것인가?" "구원의 자기 확신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 "구원받으려면 모든 죄가 다 사해져야 하는가?" "구원받은 자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가 다 사해진 것인가? "구원받고도 회개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증거인가? 등등의 질문에 대해 평신도들은 자신있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혼선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파가 생긴 이유이면서 또한 성도에게 가장 큰 미혹성이 있는 이유이다.
구원 문제는 기독교의 최초의 문제이면서 또한 최후의 문제가 아닌가? 그럼 점에서 구원파 이단은 이단 중의 이단이요 다른 어떤 교리에서 생긴 이단보다도 기독교 신학의 심장부에서 생겼다는 점에서 주의를 요한다.
박옥수 구원파의 이단성은 무엇인가?
첫째, 박씨에 의하면 구원받은 후에는 죄를 안 짓든지 아니면 죄를 지어도 죄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박옥수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죄에 대한 회개는 한 번 하는 것인데, 기성 교인들은 죄를 회개하거나 고백하지 못하고 계속 범죄만 회개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죄인이냐 의인이냐를 물었을 때 의인이라고 고백하지 못하고 죄인이라고 하면 역시 구원받지 못한 사탄의 자식으로 정죄해 버리는 것이다. 이점을 직접 그의 그들 속에서 살펴보자.
"요한 1서 1장 9절의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는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지은 죄를 하나하나 모두 고하면 죄가 씻어진다는 말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아록 보니까 달랐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이라고 되어 있지요? 여러분, 죄가 무엇입니까? 도둑질하고 거짓말하고 살인하고 간음하는 것이 죄입니까? 천만에요.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여러분, 문둥병이 무엇입니까? 손가락이 빠지고 눈썹이 빠지고 코가 일그러지면 문둥병입니까? 아닙니다. 그것들은 문둥병의 증상이고 문둥병의 결과이지, 문둥병 자체는 아닙니다. 여러분, 장티푸스가 무엇입니까? 열이 나고 머리카락이 바지는 것입니까? 그것이 장티푸스가 아닙니다. 그것은 장티푸스 균이 들어 갔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지요. 그것처럼 죄와 범죄도 근복적으로 다릅니다"(박옥수,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기쁜소식사, 1993. p.33).
"성경에는 '죄'와 '범죄'에 대해 명백하게 나뉘어져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이 말씀에서 '내가 도둑질 했습니다'하고 범죄한 것을 자백하라는 것이 아니라 죄를 자백하라는 뜻입니다"(「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1」 p.36).
"시편 51편 5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그렇게 고백하지 않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자신이 무슨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것이 아니고 그는 근본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그 자체를 고백한 것입니다. 나는죄 덩어리로 뭉쳐진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의 결과를 고백하는 것과 죄의 근본을 고백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1」p.37).
박씨는 심지어 성경에 회개하면 죄가 씻어진다는 말이 없다고까지 말한다.
"여러분, 아무리 유명한 부흥 목사의 이야기라 해도 성경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길이 아닙니다. 회개하면 죄가 씻어진다는 말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회개해서 죄를 씻는 것도 성경적인 방법이 아닙니다"(「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2」 기쁜소식사, 1993. p.50).
박 씨에 의하면 죄를 해결해야 범죄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마치 감기를 고쳐야 열이 내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박옥수 씨에게 묻고 싶은 것은, 예수를 영접하고 회개한 후에는 죄가 해결되어서 죄인이 아닌 의인이 되었으니 그 다음부터는 범죄가 없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시면 더 이상 여러분 자신이 죄와 싸울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여러분이 더 이상 술을 끊으려고, 담배를 끊으려고, 도둑질을 하지 않으려고, 방탕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됩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 마음 속에서 그 모든 죄악을 이기게 해 주실 것입니다"(「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1」 p.16).
물론 구원받은 후에 죄를 안 짓느냐고 하면 안 짓는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둘 중에 하나인 것만은 틀림없다. 구원 얻은 자는 죄가 해결되었으니 어떤 죄(범죄)도 안 짓는다고 하든지 아니면 죄를 지어도 죄가 아니라고 해야 될 것이다.
성경적으로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그 증거를 세 군데만 살펴보자.
시편 51편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성경이다. 그는 자기 필요에 의해 여러 번 말했건만 스스로 자기 귀를 막고, 하나님의 말씀을 안 받아들이고 있다. 그의 말대로 하면 14절에서,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라고 했는데, 이 '피 흘린 죄'는 '피 흘린 범죄'에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성경이 구별하지 않는 것을 왜 구별 하는가?
사무엘하 24장 10절 다윗이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인구계수를 하여 하나님께 교만의 죄를 범하였다. 그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범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 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했다. 박씨의 말과는 정반대다. 죄가 있어서 인구 계수의 범죄를 했다고 해야 할 터인데,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다"고 하였고, 그 죄를 "큰 범죄를 하였다"고 하지도 않았다. 더욱이 "종의 범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지도 않았다.
마태복음 6장 12절 주기도문의 일부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했다. 박씨 말대로 하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지었다"는 말이 불가능하다. 또한 박씨의 말을 인정한다면 우리 인간이 인간에게 범죄할 수는 있어도 죄를 지었다는 말이 불가능할 것이다. 더욱이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범죄가 아닌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는가?
둘째, 박씨는 구원을 확증하는 목적과 방법이 잘못되었다.
성경은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에 속했다고 말하고 있다(롬 9:16). 그러나 또한 구원은 스스로 확증하라고 요구하고도 있다(고후 13:5). 종합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셨을 때 구원을 확증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주권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인간의 확신은 결코 절대적일 수 없다. 더욱이 자신들의 집단에 속한 자들만이 구원받은 것처럼 생각하여 구원을 확증하거나, 자신들의 구원 확증 방법만이 구원을 좌우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하는 것은 비성경적이요, 사탄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박옥수 구원파들은 구원받은 자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방법으로 구원이 확인되지 않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자로 정죄해 버린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주권 앞에서 겸손하지 못한 것은 마치 구원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기보다 자기들이 준 것처럼 하는 것이요, 구원이 자기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씨의 책에보면 자기 교회에 와서 구원받았다는 말이 많은 것은 정통교회 교인에 대한 미혹자로 활동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또한 구원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그 날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회개하는 신앙 생활을 하면 구원받지 못한 것으로 단정해 버리는 것은 참으로 비성경적인 행위이다.
저들은 "어떻게 육신의 생일을 알면서 참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영적 생일은 모르느냐."고 묻는다. 의미가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 말에 속에도 허점이 있다. 육적 생일과 영적 생일은 유사성 내지는 유비성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른 것이다.
예를 들자면 육적 생일을 알 듯이 영적 생일을 알아야 한다면, 영적 생일도 자기 스스로 알 수 없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적으로 태어난 사람 스스로 자기 생일을 감지하거나 아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박옥수 씨에게 너는 네 생일을 스스로 알았느냐 네 부모가 가르쳐 주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박씨가 자기 생일을 스스로 알았다면 몰라도 그러지 않았다면 그런 질문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구원파에 속한 자가 어떤 집사님에게 구원받은 날짜를 모르는 것을 보니 구원받지 못한 것이 아니냐고 다그치니까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 "나는 언제부터 구원받았는지는 모르나 분명히 구원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 내 속에 성령님이 계시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언제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언제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지 모른다고 나보고 자전거를 못 탄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언제 구원받았는지는 모르나 분명히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얼마나 통쾌한 대답인가?
셋째, 박씨는 회개 개념이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모든 이단들이 정통교회의 약점을 찾아 공격하고, 기성교인들의 체계나 확신을 뒤흔들어 자기들만의 구원을 주장하는 것처럼, 구원파는 이 회개 문제를 그렇게 사용한다. 즉 기성교인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공격하기 우하여 새벽마다 울고불고하는 것이 회개가 아니라는 것이요, 또한 회개란 단어를 구원받은 후에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데는 적용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자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 논리적 근거는 즉, 회개란 '돌이키다'라는 말로서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한 번 돌이켰기 때문에 더 이상 돌이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설명하면 이런 말이다. 회개란 오직 구원을 위해 돌이키는 행위로서 우리의 구원의확신은 하나님께서 현재, 미래, 과거의 모든 죄를 다 사해 준 죄를 또 다시 사해 다라고 울고불고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회개한다는 것은 사죄의 확신이 없는 증거가 된다는 것이요, 결국 울고불고 회개하는 자들은 구원받지 못한 사탄의 자식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고백할 때 죄인임을 고백하고 호개하지 않기 때문에 백날 울고불고 회개해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정죄해 버리는 것이 박옥수 구원파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성경과 교회사 속에는 그런 식의 구원 확증이 없다. 또한 회개에 대하여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회개를 단회적인 것으로만 보는 것은 구원을 위한 회개와 성화를 위한 회개가 구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구원을 위한 회개든(히 6:1~2), 성화를 위한 회개든(시편 51:14, 삼하 24:10, 마 6:12, 요일 1:8~9 등), 용서하고 용서받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단회적인 것이다. 그래서 헬라어에서는 제 1단순과 과거 형태를 사용한 것이다.
비록 구원을 위한 회개는 단회적인 것이지만 혹 믿음이 없어서 반복적으로 한다고 해도 그것이 구원받지 못한 증거는 결코 아닌 것이다. 단지 반복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더욱이 구원받은 후에도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 우리로서는 날마다 성화를 위한 회개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이 분명히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골 2:6~7).
구원파에 의해, 특히 박씨에 의해 가정이 파괴되고 교회가 어지럽혀지는 일들이 적지않은 것을 보고 정통교회는 구원관 죄에 대해 더 확신 있는 교육이 필요하며, 또한 저들과 성경적으로 싸울 준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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