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에 대한 사생애와 공생애구분과 표현은 비성경적 오류

  선지자선교회

(서론)

 

사흘 전 즉 지난 주 금요일에 예수님의 사생애와 공생애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공생애는 3년인지 34개월인지를 물었다. 그래서 간단히 대답하기를 성경에는 예수님에 대하여 사생애와 공생애를 구분해서 말씀하신 것이 없으며, 예수님 자체가 복음이신데 어떻게 사생애가 있고 공생애가 있겠는가? 라고 답하였다.

 

부족한 종은 우리 교계가 예수님의 사생애를 30년으로 말하는 근거와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애에 대하여 3년 또는 34개월로 말하는 근거의 계산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다. 그런데도 부족한 종은 여기에 대하여 위와 같이 간략히 답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교계는 예수님에 대하여 사생애공생애로 나누어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사생애는 30년이라고 말하고, 예수님의 공생애는 3년 또는 34개월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에 대하여 사생애와 공생애로 구분하거나 그리고 사생애와 공생애로 표현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것이다. 부족한 종이 성경을 근거해서 깨닫기로는 이 글의 제목과 같이 비성경적 구분과 비성경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 까닭에 대하여 다음의 본론에서 논설한다.

 

(본론)

 

1.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3:14-23)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또 기타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분봉왕 헤롯은 그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그의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인하여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이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하셨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침을 시작하실 때에 딱 삼십 세가 아니고 삼십 세쯤이라 하셨다. 그러면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하신 데에 대한 구원도리의 핵심은 무엇인가?

 

1)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41:46)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하셨다. 그리하여 요셉은 삼십 세에 애굽 온 땅을 치리하였다. 이것은 곧 요12:47 후반절에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하신 말씀과 같은 도리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만주의 주이심을 말씀하는 것이다.

 

2) 다윗이 삼십 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 년을 다스렸으되

 

(삼하5:4-7) 다윗이 삼십 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 년을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왕과 그 종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거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저희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다윗이 삼십 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 년을 다스렸으되하셨다. 그리하여 다윗은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 이것은 곧 마21:9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하신 말씀과 같은 도리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심을 말씀하는 것이다.

 

2.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6:1-3)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좇으니라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하였다. 이것은 유대인의 회당에 있는 유대인들이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하고 예수를 배척하였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회당에 있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라는 말에 근거해서 예수님이 목수로써 사생애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본래와 맞지 않는 비성경적 오류이다.

 

1)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16:13-14)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하였다. 사람들이 인자에 대하여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인자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믿는 우리 또한 예수님에 대하여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면 되겠는가? 결코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도 유대인의 회당에 있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라는 말에 근거하여 예수님이 목수이셨다면서 이것을 사생애로 말한다면 예수님을 배척한 자들과 같은 견해로 말하는 것이 되기에 비성경적 오류라는 것이다.

 

2)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19:19-22)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의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빌라도가 대답하되 나의 쓸 것을 썼다 하니라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하셨다.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하여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하였다. 즉 유대인의 유대 나라의 왕이라 한 것이다. 그렇다면 빌라도가 인자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믿는 우리 또한 예수님에 대하여 유대인의 왕이라 말한다면 되겠는가? 결코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도 유대인의 회당에 있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라는 말에 근거하여 예수님이 목수이셨다면서 이것을 사생애로 말한다면 예수님을 배척한 자들과 같은 견해로 말하는 것이 되기에 비성경적 오류라는 것이다.

 

3.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1)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4:12-17)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심은 세례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나서이다.

 

2)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1:9-15)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심은 세례 요한이 잡힌 후이다.

 

4.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하셨다. 그러므로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시다. 그렇기에 예수님에 대하여 사생애와 공생애로 구분하고 표현하는 것은 비성경적 오류이다.

 

1)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하셨다. 그러므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시라 하셨다. 그런데도 우리 교계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시기 이전에 대하여 사생애로 말하면 이것은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사생애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예수님에 대하여 사생애와 공생애로 구분하고 표현하는 것은 비성경적 오류이다.

 

2)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2:42-52) 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에 대하여 양친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곧 우리 교계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시기 이전에 대하여 사생애로 말하는 것이나 마차가지인 것이다.

 

(결론)

 

1: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는 무엇인가?

 

: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41:46)’하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곧 예수님께서 만주의 주이심을 나타내는 말씀이다. 다윗이 삼십 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 년을 다스렸되(삼하5:4-7)’하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곧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이심을 나타내는 말씀이다.

 

그렇기에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하는 말씀을 근거한다면서 이 때부터 예수님의 공생애로 구분하거나 공생애로 표현하는 것은 비성경적 오류인 것이다.

 

예수님 자체가 복음(1:1)이시며, 예수님은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1:23)이시다. 그런데 어떻게 이 예수님에 대하여 목수로서 사생애가 있고, 가르치심의 공생애가 있다고 구분하거나 그리고 사생애와 공생애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2: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는 무엇인가?

 

: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하였다. 이것은 유대인의 회당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하면서 말한 것이다.

 

그렇기에 유대인의 회당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하면서 말한 즉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를 근거한다면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시기 전을 사생애로 구분하고 또 사생애로 표현하는 것은 비성경적 오류인 것이다.

 

예수님 자체가 복음(1:1)이시며, 예수님은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1:23)이시다. 그런데 어떻게 이 예수님에 대하여 목수로서 사생애가 있고, 가르치심의 공생애가 있다고 구분하거나 그리고 사생애와 공생애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2020. 07. 201차 원고

김반석 목사 e06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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