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20 14:24
* 2015년 7월 22일 현재 이 책 내용에서 오류 변개된 부분을 추가로 체크 중에 있습니다.
정리 되는 대로 보충한 자료를 다시 올리겠습니다.
김남식 박사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에 대한 논평
〔1차〕
김반석 목사
예수교 장로회(고려보수)
선지자문서선교회
-차 례-
-목 차-
1. 김남식 박사를 방문
2. 총론적 비평
3. 오류부분 발췌
4. 백영희의 교리신조 왜곡
5. 김남식 전 총신대 교수, 오랜 이단옹호자로 드러나 충격
1. 김남식 박사를 방문
2015년 7월 15일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있는 김남식 박사 사무실을 방문하였다.(주: 책이나 명함에 주로 ‘박사’로 소개) 김 박사를 방문한 동기는 다음과 같다. 선교지에서 김 박사가 ‘백영희 연구’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보지는 안했지만 염려되는 점이 있었다. 왜냐하면 김 박사는 한국 교계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받고 있는 ‘다락방의 류광수’와 ‘평강제일교회 박윤식’을 옹호하는 글을 쓰거나 교계에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백영희를 연구하는 책을 출간한다니 무슨 일인가 싶었다. 진실하고 정확한 책이 될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귀국하는 대로 만나봐야겠다는 뜻을 가졌었다.
며칠 전 귀국하여 산본교회 김윤수 목사를 만났다. 마침 김윤수 목사는 김 박사를 만나기로 연락이 되어 있어서 함께 방문하였다. 그 자리에 청량리교회 이병철 목사도 함께 하였다.
김반석 목사가 김남식 박사를 방문하여 질문과 부탁을 한 것은 다음과 같다.
질문한 것은, 김남식 박사는 ‘다락방의 류광수’와 ‘평강제일교회의 박윤식’을 옹호하여 한국 교계로부터 이단옹호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백영희 연구’ 책을 출간하였는데 교계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김남식 박사는 대답하기를 다락방이 몇 가지 문제는 있지만 이단으로 규정할 수는 없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무엇이 이단이 되는지 물었다. 그래서 이단교리 부분을 말하고 그 까닭을 말했다.
부탁한 것은, ‘백영희 연구’ 책 출간에서 백영희 목사님의 제자들 중에 일부 자료만 취급하지 말고 정통성을 둔 제자들의 자료를 취합하면 보다 정확한 ‘백영희 연구’가 될 것이다.(이렇게 말한 것은 아직 이 책을 읽어보기 전이었고 또 이렇게 말한 것은 김남식 박사를 방문하여 잠시 이야기 중에 이 책과 관련된 자료를 이영인 목사가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남식 박사가 방문 마지막 시간에 이단이 되는 평강제일교회 박윤식의 ‘구속사 시리즈’ 책을 취급 배포하는 것을 알기 전이므로 이 말은 취소한다. 즉 ‘백영희 연구’ 책 문제로 더 이상 상대할 인물이 아닌 것이다.)
김남식 박사는 대답하기를 백영희 신앙노선에서 출간된 책을 자료로 삼았을 뿐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정통성의 자료나 정보에 대해서는 “자신은 알바가 아니라” 하였다. 그래서 “백영희를 연구한다는 분이 그리하면 되느냐”고 말했다.
김남식 박사를 방문한 후 우리 진영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김남식 박사는 현재 한국 교계에서 이단옹호자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 진영 일부 목회자나 교인들은 이에 대하여 정황을 잘 모르고 김 박사가 합동총회 역사편찬위원장이라는 것과 그리고 ‘백영희 연구’ 라는 책을 출간한 것만 안다. 지금 이 책이 교역자회에서 면밀히 검토하는 과정이 생략된 채 일부 교회에서 배포되고 있다. 이 책은 많은 분량에서 이영인 목사가 그동안 출간했던 책의 자료들이 들었다. 대개는 백영희 목사님의 교리신조를 변개한 자료들이다.
김남식 박사를 방문한 후 특히 우려되는 점은 다음과 같다.
김남식 박사는 방문을 마칠 즈음 방문한 3인 목사에게 이단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가 쓴 ‘구속사 시리즈(총 9권)’책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김남식 박사가 ‘백영희 연구’ 책만이 아니라 더해서 이단 박윤식의 구속사 시리즈 책을 배포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김반석 목사는 김남식 박사에게 “박윤식 목사는 한국교계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받았고 그가 집필한 구속사 시리즈 책은 이단성이 있는데 우리 진영 목회자에게 배포하려는 의도가 무엇인가?” 따지듯 물었다.
김남식 박사는 대답하기를 “구속사 시리즈 책이 무엇이 이단이인가?”하였다. 그래서 이단성에 대한 주된 점을 파악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단 박윤식은 신명기 32:7 말씀을 근거하여 ‘과거 선조들이 위대한 신앙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물어보라’고 했다며 왜곡된 해석을 한다. 이 성구는 ‘네 아비와 네 어른들의 악행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라’는 말씀이다. 박윤식은 이렇게 왜곡한 오류를 근거하여 구속사 시리즈 책을 출간하였다. 성경의 구속사는 시대마다의 인물이 아니라 아담에게는 짐승의 가죽옷을 입히시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예표 하셨고, 구약 이스라엘에게는 짐승으로 속죄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예표 하셨고, 신약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셨다(히9:12).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속사이다. 그런데 박윤식은 구속사를 성경 인물에 중심을 두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역행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또 박윤식은 노아는 아브라함과 58년 동안 동시대에 살았다고 말하는데 이 연대 계산도 오류이다.
그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안다. 이단으로 규정받고 있는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의 ‘구속사 시리즈’ 책을 방문한 우리 3인 목사에게 주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지금 김남식 박사가 박윤식의 구속사 시리즈 책을 우리 진영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배포하려는 의도가 만약에 있다면 결단코 막아야 된다. 김반석은 김남식 박사에게 단호히 말했다. “평강제일교회 박윤식의 ‘구속사 시리즈’ 책을 배포하는 일은 죄 짓는 일입니다!”라고.
김남식 박사가 위와 같기 때문에 그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 책을 면밀히 검토하여 비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화목이 좋은 것이나 부득이 불목이 되고 있는 점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주후 2015. 7. 20
선지자문서선교회 김반석 목사
2. 총론적 비평
이 책은 김남식 박사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이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제 1부 서론적 탐색
Ⅰ. 백영희 시대의 교회사적 배경
Ⅱ. 백영희 연구의 범위와 한계
제 2부 백영희 연구
Ⅰ. 백영희 연구의 삶
Ⅱ. 백영희 의 얼
Ⅲ. 백영희의 터
제 3부 백영희의 신학사상 연구
Ⅰ. 구원론
Ⅱ. 삼분론
Ⅲ. 교회론
부록. 백영희 해적이
김남식 박사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를 보면 그가 백영희에 대하여 오랜 시간 깊이 연구하고 쓴 글이 아니라고 보여 진다. 그런 것은 내용에 많은 부분이 다른 책에서 쓰여 졌던 원고를 통째로 편집한 것으로 보여 지기 때문이다.
‘제 1부 서론적 탐색’은 김남식 박사의 자료로 보인다. 그런 것은 김 박사는 ‘한국장로교회사’ ‘한국기독교수난사’ 책을 출간하였기 때문이다.
‘제 2부 백영희 연구’ ‘제 3부 백영희의 신학사상 연구’ ‘부록 백영희 해적이’는 많은 부분이 이영인 목사와 그 측에서 출간한 책들의 원고로 보여 진다.
이 책에서 김남식 박사의 원고 분량이 1/5 정도 되고 그 나머지는 거의 이영인 목사와 송종섭 목사의 원고로 파악되고 있다. 그 외에 참고 문헌의 인용이 약간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책의 주된 자료는 김남식 박사와 이영인 목사 두 사람의 공동 자료라 할 수 있다. 그보다는 이영인 목사의 주된 글에 김남식 박사의 글이 참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정도의 책에‘연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지나침이 있다고 본다. 한권의 진정한 연구 서적이 출간되려면 그만한 산고가 있게 마련인데 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3. 오류 부분 발췌
※ 이 책 내용 가운데 오류 부분을 발췌하여 그 페이지를 표시하였다. 그리고 오류가 되는지 까닭을 첨부하였다. 그리고 교리 부분 즉 ‘구원론’ ‘삼분론’ ‘교회론’ 은 지적할 분량이 많아서 2차적으로 정리하려고 한다.
P46. 백영희는 부산서부교회를 중심으로 목회하면서 일반 교회들과의 교류보다 독자적 길을 걸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폐쇄성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성경연구에 몰입하였고, 자신들이 드러내는 것을 피하였다.
‣ 이 글에서 ‘자신들이 드러내는 것을 피하였다’고 말하는데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백영희 목사님이 고려파에 계실 때에 전국적으로 활동하셨다. 또 백영희 목사님은 어느 교회 목회자든지 서로 간에 강단 교류를 하자고 공표하셨다. 그리고 백영희 목사님께서 담임하시는 부산서부교회 주일학교가 교계 신문과 일반 신문에 보도가 되어 한국 교계에 널리 알려졌었다. 그리하여 부산서부교회 주일학교를 견학하기 위해 방문한 교회가 전국적이었다. 그리고 ‘독자적’ ‘폐쇄성’이라는 말도 오해가 있다. 그런 것은 오직 하나님 중심과 성경 중심의 신앙으로 일관하기 위해 대외 활동을 자제하다보니 그렇게 보인 것이다.
P47.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에 대한 자료들의 제한성이 한계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이 「백영희목회연구소」를 개설하고 백영희의 자료를 정리하고 출간한 것은 매우 귀한 역사이다. 이 자료들이 일부 관심 있는 이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지 말고 연구 자료로 널리 활용되었으면 한다.
‣ 이 글에서 ‘백영희 목사님의 제자들이 「백영희목회연구소」를 개설했다’고 하는데 이는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백영희목회연구소」는 백영희 목사님 생전에 그에 의하여 1988년도에 설립하였다. 그래서 백영희 목사님이 생존해 계실 때부터 「백영희목회연구소」를 통하여 ‘백영희설교록’ 등의 자료를 출간하였다. 또 이 출간한 자료들은 총공회 뿐 아니라 전국 교회 목회자들과 신학교 교수들에게 실비로 배포하였다. 또한 현재도 실비로 배포되고 있고 홈페이지에서도 제공되고 있다.
P52. 백영희의 삶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그것은 외부로 나타내기를 싫어하는 성경적 특성도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 ‘백영희 삶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고 하는데 백영희 목사님이 직접 작성한 ‘성경연구 자료집’이나 또 ‘백영희목회설교록’ ‘주일학교 공과’ 등이 곧 백영희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이 분량은 백영희 그 시대 목회자들과 비교할 때에 가장 많은 분량이 될 것이다. 또 그의 제자들에 의해 ‘백영희의 신앙생애’가 책으로 출간 되었고 ‘백영희의 신앙세계’가 웹 사이트에 게재되어 있다./ 그리고 ‘외부로 나타내기를 싫어하는 성경적 특성’이라 하는데 성경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P54. 백영희는 성경을 배우고 싶어 1938년 1월 18일 진주성경학교에 입학하여 예과와 본과 1학기를 공부하고 건강 때문에 공부를 중단하였다. 짧은 기간의 공부이지만 이곳에서 최상림 목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 백영희 목사님이 최상림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은 유추해서 하는 말이다. 그러면 백영희 목사님은 최상림 목사님을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그의 설교록에서 확인해 보자.
「사람마다 요절이 있는데, 제가 진주성경학원에 갔을 때 최상림목사님이 가르치는 시간이 중간에 있어서 한 달 후에 그분이 왔습니다. 그분이 한 시간도 가르치기 전인데, 학생들이 아주 많은 기대를 하면서 최상림목사님이 실력이 있고 믿음이 좋고 유력하다고 해서 나도 마음이 끌려서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연구실로 찾아갔습니다. 만나보니까 뚱뚱하고 얼굴이 시커먼 분이 아주 힘이 세게 생겼는데, 그분과 잠깐 이야기를 하는 중에 아주 믿음 있는 말을 해주고, 또 내가 '목사님은 요절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참 기쁘게 '저는 모든 성경을 다 그대로 믿지마는 옥토에 뿌린 씨가 되고자 하는 것이 평생소원입니다.' 그렇게 말해요. 그래서 '이분은 옥토에 뿌린 씨라는 이 절수가 요절이로구나.' 그렇게 듣고 나왔습니다. 그분의 신앙 사적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그 당시에 제일 은혜 있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각처에서 학생들이 모였는데 보니까 그분이 있는 지방 학생들이 살아보려고 애쓰는 것이나 열심이 제일 나았습니다. 다른 데서 온 학생들은 뭐 그래요. 그러나 실은 그 학생들이 질이 높은 게 아니라 그 목사님 교훈 때문에 당시에 제일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때 옥중에 들어간 이들도 그분의 교훈 받은 분들이 많았고 열심도 그랬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해방 직후에 최상림목사님에게 배우던 남해읍에 재건교회가 생겼는데 분위기에서 열심은 있었지만 진리를 배우는 진리가 앞서지 않고 열심이 앞섰기 때문에 그분들은 재건교회라는 조금 색다른 길을 가게 됐습니다. 1981. 2. 19. 목 새벽기도 」
P55. 그가 신앙생활을 시작하던 때는 신사참배 강요의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한 시기이다. 그가 나가던 농산교회는 목회자부터 교인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믿은지 얼마 되지 않는 처지에서 무어라고 말할 수 없었다.
‣ 이 글만 보면 백영희 목사님은 그 당시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사참배를 거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백영희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시종 거부하신 분이다.
P60. 바로 이런 사이에 한 인물이 등장하게 되니 바로 백영희의 제자 중 한 사람인 한종희였다. 박윤선을 통해 전통의 정통 교리를 잘 안다고 생각한 그는 ‘한 번 중생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이 흔들릴 수 없다’는 백영희의 중생교리를 이단시 하고 있었다. 백영희는 성도가 죄를 짓는 것은 마음과 몸이니 평생 회개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도 한종희는 백영희가 성도는 천국에 갈 것이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고 오해를 했고 이런 발언을 주변에…
‣ 백영희 목사님은‘중생된 영은 범죄치 아니한다’하셨다. 그런데 한종희는 ‘중생 된 영혼은 범죄치 아니 한다’로 와전시켰다. 그리고 ‘한 번 중생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이 흔들릴 수 없다’ 말은 ‘중생된 영은 범죄치 아니 한다’는 말과 많은 차이가 있다.
P61. 문제는 전국의 교회 현장에 있는 교인들은 백영희를 문선명과 같은 인물로 생각한 것이다.
‣ ‘전국의 교회 현장에 있는 교인들이 백영희 목사님을 문선명과 같은 인물로 생각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김남식 박사는 ‘한국장로교회사’등을 집필한 인물인데 그 시대 교계 상황을 잘 알면서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의도가 나쁘다.
P63. 백영희는 순교 중에서도 남들이 알아주는 순교, 훗날 알려지는 순교, 개죽음으로 인식되는 순교, 죽음 자체도 알려지지 않는 순교 등으로 그 등급을 나누고 그 중 가장 복된 순교로는 그 사람의 사망 사실도 알려지지 않는 순교를 최고의 단계로 꼽았다. 그러나 초대형교회에서 시무하고 있는 자신의 위치에서는 그리될 수 없는 것이니 그 경우를 제외한다면 백영희에게 가장 값진 순교는 개죽음의 형식의 순교였다.
‣ 백영희의 순교관의 등급에서 ‘개죽음으로 인식되는 순교’를 말하는 것은 큰 왜곡이다. 백영희 목사님은 그렇게 말씀한 적이 없다. 그리고 ‘백영희에게 가장 값진 순교는 개죽음의 형식의 순교였다’말은 말 자체도 안 되고 사실 자체도 얼토당토않다.
P93. 그의 생전이나 사후 그의 신앙 길을 그대로 이어가는 이는 그의 신앙의 자녀들이며 그의 육의 형제 친지 목회자들 중에서는 거의 없다.
‣ ‘백영희의 신앙을 그대로 이어가는 이’를 엄격한 잣대로 잰다면 그의 제자들 중에는 몇 사람이나 될까? 그러나 백영희 목사님의 신앙 길을 그대로 이어가려고 노력한 친자가 있었다. 우리가 알듯이 백명희 선생이다. 그리고 지금 백도영 목사가 이 책으로 인하여 부친 백영희 목사님에 대하여 왜곡되고 있어서 애타하며 그 대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여튼 매도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저의가 나쁘다.
P101. 하나님 앞에 세워놓은 자신을 볼 때마다 그는 평생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살았다. 모든 사람이 눈이라도 빼줄 수 있었던 속에서 그는 늘 가장 큰 죄인이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면 백영희라는 인물은 너무도 큰 죄인이며 그는 세월이 지나갈수록 더욱 큰 죄인으로 이해되고 있다.
‣ 이 글을 쓴 자에게 묻는다. 백영희 목사님이 무슨 가장 큰 죄인이었든가? 또 평생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살았든가? 그리고 그의 설명은 무엇이며 언제 들었나? 과장되게 소설 쓰듯 하면 안 되는 것이다.
P101. 그러므로 죄가 많았던 교회였고 죄가 많았던 사람들로 그의 주변은 늘 가득 찼다.
‣ 이 말은 과장된 말이다. 서부교회 교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으로 늘 충만하였다. 그 현장에 있었던 우리들이 그 증인이다.
P101. 그는 평생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단 두 가지였다. 바로 자신의 큰 죄를 설교할 때였다.
‣ 이 말 또한 과장된 말이다. 백영희 목사님의 강단설교는 10년 치 5,000여 설교를 한 자도 가감 없이 녹음본과 문자화 되어 책으로나 웹 사이트에 공개되어 있다. 어디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죄를 설교할 때가 있었는지 이 자료에서 그 증거를 제시해 보기 바란다.
P102. 정사(情死)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노트에 적어가며 주님께 받은 이 사랑에 감격하고 그 보답은 오로지 그를 위해 죽어 드릴 수 있다면… 이 소원이었다.
‣ 정사(情死)는 ‘사랑하는 남녀가 사랑을 이루지 못해 함께 자살하는 일’이다. 그런데 백영희 목사님의 순교를 ‘정사(情死)’로 표현하는 것은 왜곡이며 또한 모독이다.
P103. 정상적인 우리가 본다면 그는 분명 제 정신이 아니었다.
‣ 백영희 목사님의 경건을 말하면서 또 이런 투로 말하는 것은 이 글 쓴 사람의 정신을 점검해 보고 싶다.
P103. 백영희의 평생은 “정사”라고 표현한 자신의 글대로 “주님 사랑에 죽는 정사, 마지막 죽음을 주님 사랑함에 바쳐죽는 정사”로 나아갔다.
‣ 앞에 언급한대로 ‘정사(情死)’라는 표현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P106. 이만큼 개혁의 선봉에 있던 이가 있었던가! 그렇다면 너무도 변동이 많고 변화가 많아 전통교회의 정통 시각으로 본다면 자유주위 방탕주의라고 의심이 들지 않겠는가?
‣ 백영희 목사님에 대하여 ‘전통교회의 정통 시각으로 본다면 자유주위 방탕주의라고 의심이 들지 않겠는가?’말하는데 글의 전개에 있어서 저의를 의심할만하다.
4. 백영희의 교리신조 왜곡
‘백영희 연구’ 책은 백영희 목사님과 관련된 글은 맞다. 그러나 백영희 목사님의 교리신조는 아니다. 그런 것은 ‘백영희 연구’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백영희의 교리신조를 전적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제 2부 백영희 연구> Ⅱ. 백영희 얼> ‘1. 성경’>은 백영희의 성경관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런 것은 많은 부분이 이영인 목사나 그 측과 또 그 외에 자료에서 복제한 원고들이기 때문이다. ‘2. 교회’에서도 ‘백영희의 교회관’이라 할 수 없는 것은 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제 3부 백영희의 신학사상 연구>Ⅰ. 구원론 Ⅱ. 삼분론 Ⅲ. 교회론>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왜곡되고 오류 된 부분을 지적하자면 이 책 분량만큼 될 것이다.
백영희의 것은 백영희의 것 그대로 두어야 한다. 백영희의 제자들이 스승의 자료를 그대로 보존하는 이유가 있다. 그런 것은 조금이라도 변개하는 순간 본래로부터 왜곡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알기 때문에 연구하는 제자끼리는 그 방침을 20여 년 전부터 공유한 것으로 안다.
그렇기에 이 책 ‘백영희 연구’와 같이 많은 부분에서 변개된 것을 백영희의 것이라거나 백영희 신앙노선 측의 것이라 하는 것은 백영희와 그 신앙노선의 본질을 왜곡하는 요인이 된다. 우리 백영희 제자들은 스승의 깊이와 높이에 대하여 다는 모른다. 그렇지만 본래의 것과 변개된 것을 구분은 정확히 할 수 한다. 그러므로 변개되어 왜곡한 것을 지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백영희 목사님의 자료를 참고 문헌으로만 하면 누가 뭐라 하겠나. 그런데 왜곡한 것을 백영희의 것이라 하는 데는 분명히 ‘아니요’ 라고 지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부분도 아니고 대부분에서 본래와 다르게 변개 왜곡하는 데에 비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의 변개, 찬송가의 변개 그 왜곡성의 문제를 잘 인식하는 우리들이다.
물론 이 책 가운데는 백영희의 것을 그대로 나타낸 부분도 약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 왜곡이다. 백영희의 목사님의 본래 자료는 문체만 보더라도 영감적 권위가 보인다. 그러나 변개한 부분은 제 주관으로 재해석한 것이 분명히 분별된다. 비유하면 이것이 호랑이라 해놓고 고양이를 그려놓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김남식 박사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는 백영희 목사님이 정립한 총공회 신앙노선에 대한 전반을 왜곡한 것임을 알고 단호히 배척해야 한다.
5. 김남식 전 총신대 교수, 오랜 이단옹호자로 드러나 충격
다음의 글은 교계 인터넷신문 「교회와신앙」 2013년 5월 2일자에 보도된 기사이다.
교회와신앙 전정희 기자
이단연구가들에게 가장 큰 십자가는 ‘이단옹호자들’이다. 이단과의 싸움은 이미 충분히 각오된 만큼이어서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으나, 이단연구가들을 공격하는 이단옹호자들로부터는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정통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단을 옹호·변호·지지하는 친 이단적 인사들의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한 것을 보면, 현재 한국교회가 어느 정도 혼탁한지 가늠할 수도 있겠다.
이런 가운데, 김남식 전 총신대 교수가 오랫동안 류광수 다락방 이단옹호자였음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교회와신앙>(www.amennews.com)이 최근 입수한 ‘한기총 다락방 이단해제 기념예배’ 설교에서다.
2013년 1월 20일 다락방 개혁측 안양 동부교회(담임 김동권)에서 ‘여호와께서 하시면’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김남식 교수는 “내가 6년 전 다락방으로 가려고 했으나 못 가게 된 건, 한기총이 다락방 이단해제를 추진하도록 ‘밖에서 도우라’는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주장했다.
“제가요, 한 6년 됐나, 다락방으로 오려고, 옥탑방에서 이사 갈라고, 그래서 우리 김 목사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잖아요, 상임위원회에서 결정권이 다해 가 덕평신학교에 날 교수로 청빙하기로 결의를 했어요. …이상하게 유야무야 하다가 안 되어 버렸어요. …어제 밤에 오늘 여기 올 거 생각하면서 ‘아하! 하나님의 섭리가 참 놀랍다!’ 내가 그 때 이사 갔으면 이번 이 문제에 제가 개입을 할 수 없게 되는데, 하나님이 딱 제껴 놓은 거에요.”(영상뉴스 참고)
김 교수는 또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다락방에서) 저를 제껴 놓은 것”이라며 지금은 합동 교단의 ‘역사편찬위원장’을 맡고 있어서 영향력이 더욱 커졌으며,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주장했다.
“제가 만약에 다락방에 와서 덕평신학교 교수가 됐으면, 내가 말해봤자 한국교회가 안 믿어요. 다락방 즈그동네 떠든다고 할 거 아니에요. 즈그동네 떠든다고 할 건데, 제가 합동 측에 역사위원장이거든요, 합동 측 역사편찬위원장을 제가 맡고 있어요. 교단 전체 역사 제가 만들고 있어요. 그러니까 말이 먹혀요. 말이 먹히더라니까요.”(영상뉴스 참고)
김남식 교수는 “한국기독교 130년 역사에 이단 되었다가 풀린 것 제가 처음 봤다”며 “(다락방이 이단이)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잘못했다 하면 끝 날건데, 그 말하면 신성모독죄가 되는 것 같아서 목사님들이 안 한다”고도 했다. “그러다 보니까 문제가 자꾸 커져서 오늘까지 오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 지난 3월 28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한국교회 이단연구의 문제점과 이단검증에 대한 평가와 제언’ 포럼에서 “한기총이 다락방(류광수)을 이단 해제하자 관계자들을 제명시키라고 난리가 났다.
합동측이 다락방을 이단으로 규정한 것은 단지 ‘이단교회 방문’, ‘교인이동 문제’였다. 사려 깊지 못한 실수라고 본다. 무식하게 ‘예수 믿고 천당 가자’하면 될 텐데, 류광수 목사는 문자 쓰다 이단 된 사람이다”라고 발언하고 있는 김남식 전 총신대 교수
끝으로 김남식 교수는 이단해제 된 다락방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훈수도 했다. “다른 교회와 가까이 지내야 한다”는 것인데, 그 방법은 다름 아닌 ‘사과상자 돌리기’. “전쟁할 때는 아군만 있는 게 아니라 우군도 있어야 된다”며 한 발언이다. 김 교수는 정통교회가 마치 뇌물을 먹지 않아서 다락방을 이단으로 규정한 것처럼 “세 번만 먹으면 입이 붙어버린다”고 조언했다.
“나는 이 양반들 보면 답답해요. 정말 못해요. 몇 년 전에 김 목사님 보고 ‘김 목사님 이거 이러다가 맨날 쥐어 터진다.’ 그랬더니 ‘우짜고?’ 이래요. ‘한국교회를 움직이는 50명 리스트를 내가 뽑아줄게. 명단을 뽑아줄게. 설날 때 되거든 사과 한 상자씩만 보내라. 류 아무개 하면 또 욕할 거니까 김 목사 이름으로 보내라.’ 처음에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사과가 왔잖아요. 먹고, 그다음 추석에 또 날아오거든. 아이고 이양반이 저번에도 보냈는데 이번에 또 보냈네. 세 번만 먹으면 입이 붙어버립니다.”(영상뉴스 참고)
특이한 건, 김남식 교수가 설교 내내 정통교회를 ‘일반교회’로, 다락방교회를 ‘우리교회’라고 표현한다는 점이다. 정통교단의 교회를 다락방 측이 즐겨 사용하는 것처럼 ‘일반교회’라고 부르며 다락방과의 두터운 친분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우리끼리만 앞에 류(광수) 목사 총 들고 나가고, 뒤에 김동권, 정은주 씨 좇아가면서, 가자 돌격 앞으로! 하면 안돼요. 대장이 또 크나, 조만한 게 앞에 서가지고!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아군도 필요하지만 우군도 필요해요. 그게 전쟁입니다. 그렇잖아요? 제발 이웃교회 욕하지 말아요. 일반교회 소리 하지 말아요. 즈그교회는 즈그교회 대로 하고 우리교회는 우리교회대로 하면 될 거 아니요. 왜 건드려서 싸움해요.”
김 전 교수의 이 같은 행보는 소속 교단인 예장 합동측의 이단규정과 상반될 뿐만 아니라 익히 알려진 이단옹호자가 아니라는 측면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한편, 최근 일제히 열린 예장 합동측의 2013년 봄 정기노회에서는 한기총(대표회장 홍재철 목사)의 다락방 이단해제와 관련해 헌의안이 무더기로 상정된 상태여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다락방을 한기총에 영입해 교단 위상을 흐린 동조자들을 엄히 징계자하”(서중노회), “한기총을 탈퇴하고 이단옹호자들에 책임을 묻자”(여수노회), “한기총에서 활동하며 다락방을 옹호한 인사들에 대해 처리해 달라”(남대구노회), “이단해제 관련자 조사처벌하자”(경북노회), “한기총 다락방 이단 지지·동조자를 조사 처리하자”(김제노회), “다락방이 왜 이단인지 재천명 해달라”(대구중노회), “총회가 이단규정한 다락방을 해제한 한기총을 탈퇴하자”(동평양노회), “한기총 탈퇴 건을 논의하자”(중경기노회) 등이다.
2013년 1월 류광수 다락방을 이단 해제한 한기총 이대위에는 예장 합동측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데, 김남식 전 총신대 교수는 현재 한기총 이대위의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다락방의 류광수와 평강제일교회 박윤식을 이단에서 해제함으로서 회원 교단들이 대거 탈퇴를 하여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을 별도로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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