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반석 번호 : 31
선지자선교회
게시일 : 2006/02/05 (일) PM 04:29:22 조회 : 182
■ 신복음주의 - 김효성 목사님 글
<제목차례>
신복음주의의 개념
복음주의가 무엇인가? 1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4
신복음주의자는 진실하지만 잘못이다 13
신복음주의: 거대한 오염자 41
신복음주의가 치명적인 이유들 48
극단적 중립 56
신복음주의 인물들
빌리 그레이엄
빌리 그레이엄 전도집회--천주교인들의 지원을 받음 5
빌리 그레이엄[그래함]과 제리 팔웰 7
빌리 그레이엄의 방법론 10
빌리 그레이엄과 보편구원론 11
빌리 그레이엄의 캐나다 퀘벡 전도 대회 19
빌리 그레이엄의 문제점들 31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대회들의 빈약한 결과 33
스토웰이 빌리 그레이엄의 이사회에 들어감 34
그레이엄은 천국을 염려하는가? 35
빌리 그레이엄의 암스테르담 2000 40
빌리 그레이엄과 천주교회의 친분 관계 44
빌 브라잇과 CCC
대학생 선교회(CCC)의 빌 브라잇 9
빌 브라잇의 '98년도 금식과 기도' 집회 22
빌 브라잇이 상을 받음 43
빌 브라잇은 은사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 사역함 48
기타 신복음주의자들
교황 칭송자, 반 임페 13
복음주의자들과 로버트 슐러 17
J. I. 패커는 근본주의자들을 비평함 21
C. S. 루이스가 기독교인인가? 21
릭 워런의 장사광(狂) 22
F. F. 브루스, 자유주의적 '복음주의자'(?) 30
로버트 슐러의 자서전에 추천의 글을 쓴 이들 31
로버트 슐러 학교의 연사들 34
슐러의 성공적 교회 지도자 학교 39
빌 하이벨즈가 로버트 슐러의 집회에 선다 42
죤 맥아더는 헤이포드를 칭송함 32
콜슨과 팔라우가 골든-콘웰 이사가 됨 33
팔웰 경내에서의 윙필드 전도대회 42
빌 브라잇에 대한 제리 팔웰의 평가 61
촬스 스탠리 목사의 잘못된 말 47
헌트와 모리스의 '타협'을 경고함 47
단체들/기관들
한기총
'한기총,' '한복협'의 분별력? 2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신인 대표회장의 입장 36
한복협
복음주의협의회의 노선 3
예장협
'대한 예수교 장로회 연합회' 신년 하례회 36
교단 총무회, 교회 연합 지지 37
평화 통일 위한 연합예배 37
한목협
교회갱신은 어디로부터? 9
진정한 개혁은 어디에서부터? 15
'한목협' 형성 움직임 20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 발족 23
기타
신대원 원우회장단, 장로교대회 적극 참여 결의 38
'한국 장로교 신대원생 협의회' 결성 40
2000년 장로교대회 선언문 41
한국장로교 안에 자리잡은 신학적 포용주의 56
장로교 신학회의 잘못된 출발 61
교회 단일 연합체를 향해 67
미국 복음주의 협회(NAE)
미국 복음주의 협의회는 '노인회'인가? 15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새 지도자의 입장 27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잘못된 일치 28
미국 복음주의 협회 회장은 포용주의적임 30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좌경화 38
미국 복음주의 협의회는 자유주의적인 교회협의회와의 싸움을 포기한다 44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회원교단의 문제 39
IVF
미국 IVF의 '어바나 2000' 42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ETS)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ETS), '개방적 신론'에 관해 의견이 나뉨 52
클락 피낙(Clark Pinnock)은 개방적 신론을 옹호함 52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와 교황 비디오 14
신복음주의 잡지의 타협적 태도 22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가 C. S. 루이스를 칭송함 43
학교들
풀러신학교
복음주의적인 풀러 신학교 18
한 풀러신학교 방문자의 보고 32
무디 성경학교
무디 성경학교 교장의 일치 개념 17
무디 성경학교 교장의 신복음주의 34
달라스신학교
달라스 신학교가 하는 것들 12
달라스 신학교 교수의 잘못된 사상 51
리버티신학교
리버티 신학교의 에큐메니칼 연사들 14
리버티 대학교가 남침례교단에 가입함 34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잘못된 교제 59
합동신학교
합동신학교의 입장은? 3
교단들
예장 합동
박형룡 신학의 의의 6
장로교 평신도들의 무지 9
보수적 목사들에게 분별력 필요하다 11
한국의 보수 교회, 정신차려야 13
예장 합동과 통합이 가까와짐 24
예장 합동과 통합의 연합의 서곡 25
예장 합동과 통합의 교류 증진 26
예장 합동측의 분별력과 입장 27
승동교회와 영락교회의 강단교류 28
총신·장신 교직원 체육대회 5
김경원 목사의 교회 일치관(觀) 45
김상복 목사의 신복음주의관(觀) 54
그것이 건전한 화합인가? 59
잘못된 협력선교 개념 60
그것이 '아름다운 연합'인가? 56
정말 '사람의 생각'이었나? 62
고신측
고신 교단에 분별력이 있는가? 8
고신 총회, 2000년 장로교 대회에 참가하기로 37
고신 교단신문의 잘못된 연합정신 52
고신 교단 총무의 사상 63
이성구 교수의 연합주의 65
미국장로교회
미국 장로교단(PCA): 창조론, 전투에서의 여성 문제 19
미국남침례교
남침례교회의 프리메이슨 문제 17
침례교세계연맹(BWA)의 영웅들 35
미국 남침례교인들의 연합 활동 39
기타 문제되는 견해들
진화론의 영향
복음주의와 진화론의 영향 18
이단포용
세계적 하나님의 교회(Worldwide Church of God)의 두 얼굴 12
사회사업관
사회복지사업이 교회의 임무인가 49
천주교회관
빌 매카트니의 천주교회관 48
누가 천주교인들에게 전도할 것인가? 8
테레사 수녀는 기독교인인가? 10
미국을 구하기 위해 천주교인들과 연합? 15
국제 교도소 협의회 회장 마이클 티미스(Michael Timmis) 18
커버넌트 대학과 로마 천주교회 31
테레사 수녀와 복음주의자들 38
종교다원주의의 영향
김영한 교수의 '변혁주의'의 오류 1
노만 빈센트 피일(Norman Vincent Peale) 100주년 기념 축하 16
캠폴로와 예수님의 유일성 30
신복음주의의 개념
복음주의가 무엇인가?
복음주의(福音主義, Evangelicalism)는 역사적으로 16세기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 루터교회와 개혁교회를 중심한 개신교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었다. 개신교회를 복음주의라고 부른 것은, 신약 성경에 밝히 증거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왜곡시키고 복음 대신에 성례(聖禮)나 신자의 공로적 선행을 가르쳐왔던 로마 카톨릭 교회(천주교회)와 구별하기 위해서이었다. 이와 같이, 복음주의는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믿는 입장, 곧 성경적 기독교이었다.
그러나 현대 자유주의 신학들이 역사적 개신교회들 속에 들어와 교회들을 부패시키고 변질시켰던 20세기 중엽 이후, 복음주의는 두 부류와 진영으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자유주의 신학이나 자유주의화 된 교회들에 대해 포용적인 신(新)복음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 신학을 철저히 반대하며 자유주의 교회들과의 교제의 단절을 주장하는 근본주의이다. 그러나 신복음주의자들이 '복음주의'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기 때문에 오늘날 복음주의와 신복음주의는 거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기독교연합신문 1996년 11월 10일자(7쪽)에는 크리스챠니티 투데이(9월 16일자)에 실린 케네스 칸쩌와의 대담 내용이 보도되어 있다. 칸쩌는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학장을 역임한 복음주의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복음주의와 근본주의를 어떻게 구별하는가는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원래 근본주의자들은 정통 개신교 신앙을 고수하는 복음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모더니즘[현대주의=자유주의]과의 투쟁과정에서 모더니스트[현대주의자]들과 결별하기 위해 분리를 택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만약 누군가 나를 '성경을 의지해 전통적인 복음주의 신앙을 고수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근본주의자라고 부른다면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것입니다."
이 진술에서 그는 복음주의와 근본주의는 본래 같은 입장을 가리켰는데, 점차 근본주의는 자유주의자들과 분리하는 입장을 취하였고 복음주의는 그렇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근본주의는 정통 개신교 신앙을 고수하고 자유주의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는 입장이고, 복음주의는 정통 개신교 신앙을 고수하려 하지만 자유주의로부터의 분리를 반대하는 입장임을 증거한 것이다.
복음주의와 근본주의에 대한 그의 개념은 역사적으로 거의 정확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는 자유주의 이단들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정당하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성경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새 계명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또한 '분리하라'는 사도들의 명령도 성령의 감동으로 밝히 증거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적 교제의 단절을 가리킨다.
분리의 대상들은 첫째 불신자들이며(고후 6:14-18), 둘째 이단자들이며, 셋째 회개치 않는 범죄자들이며(고전 5:11-13), 넷째 고의적 불순종자들이다(살후 3:6, 14-15).
분리의 이유는 첫째로 교회가 바른 신앙 사상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교회의 본질 때문에, 둘째로 교회가 교리적으로, 윤리적으로 거룩해야 한다는 교회의 순결성 때문에(엡 5:26, 27), 그리고 셋째로 악의 전염성 때문이다. 적은 누룩은 온 덩이에 퍼진다(고전 5:6).
성경은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고 말씀하고(롬 16:17), 또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없이[무질서하게]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고 분명히 말씀했다(살 3:6).
신복음주의자는 진실하지만 잘못이다
타협적인 신복음주의자는 자신이 바르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교회의 파괴를 음모하는 마귀적 속임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잭 스티븐스는 오하이오 바이블 펠로쉽 비지터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내가 신복음주의자의 마음가짐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복음으로 세상을 접촉하는데 관심을 가지며, 그것은 더 빠를수록 더 좋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하기 위해 그 밖의 거의 모든 것을 희생하려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함에 있어서, 그는 너무 지나치게 많은 것을 포기하며, 그가 진전시키려고 하는 바로 그것을 파괴한다. 그는 외적인 성공을 가지며 참으로 형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매우 진실하다. 그는 그가 바르다고 생각한다. 그는 형제이다. 그러나 그는 매우 잘못이다".
신복음주의: 거대한 오염자
바울은 사도행전 20장에서 신자들에 대한 교회 밖으로부터의 공격에 대해 경고했으나 30절에는 안으로부터의 더 음흉한 위험을 지적하기를, "또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라고 하였다. 죤 애쉬브룩 목사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날 근본주의를 공격하는 거대한 오염 세력은 신복음주의 즉 안으로부터의 공격이다. . . . 신자와 불신자를 연합하는 에큐메니칼 전도가 있다. 은사주의와 비은사주의의 혼합이 있다. 개신교인과 천주교인의 연합에 대한 제안이 있다. 대교회 및 구도자 운동이 있다. 복음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이 있다. 현대 기독교 음악 운동이 있다. 천국과 지옥의 문자적 이해에 대한 공격이 있다. 하나님에 대한 개방적 견해가 있다. 이 모든 슬픈 광경이 근본주의 안에서 '제자들을 끌어 . . .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남으로 생겼다. 우리는 우리가 신복음주의와 친구가 되고 그 책들을 읽고 그 대회들에 참석하고 그 연사들의 말을 들으나 그 어그러짐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치명적 잘못을 범한다."
신복음주의가 치명적인 이유들
촬스 우드부릿지, "신복음주의는 가장 치명적인 신학적, 도덕적 타협이다. 그 입장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활한 공격이다. 개신교 종교개혁 이후,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보다 더 간교한 위협에 직면한 적은 없다. . . . 그 입장은 몇 가지 이유에서 치명적이다. 첫째로, 그것은 신학적 부패의 한 형태로서 복음주의 진영들 밖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고 또 그 진영들 밖으로부터가 아닌 안으로부터의 공격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것은 어떤 경우들에서 수년 동안 성경을 믿는 복음주의자로 알려진 자들에 의해 옹호되기 때문이다. 이들 중 어떤 이들은 참으로 한때 신앙의 변호자들이었다. 그들은 무리들의 신임을 얻었기 때문에 저들은 그들의 견해들이 바뀌었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따라 그들의 타협들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셋째로, 그것은 성경을 믿는 신자들이 명확히 반박할 수 있는 분명하게 정의된 다른 신학 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의 음흉한 성격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넷째로, 그것은 교리를 희생시키면서 사랑을 강조하고 복음의 사회적 측면들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것의 거짓된 가르침을 반대하는 정통 신자들은 사랑이 없거나 반(反)사회적이라고 간주될 위험이 있다. . . . 다섯째로, 그것은 자유주의 진영의 신학적 지식층의 비위를 맞추고 요구를 만족시키며, 자기의 견해들을 가지지 않는 자들은 전(前)근대적이라고 암시하기 때문이다. 정식적인 학구적 훈련을 조금밖에 받지 못한 목사들은 이것이 낙심시키는 일로 생각될 것이다. 여섯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의 잘못된 그러나 그럴듯한 견해들로 세뇌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교리적 윤리적 쇠퇴가 교회 생활의 여러 영역들에서 보여진다. 일곱째로, 신복음주의라는 낙타의 코는 이미 기독교 천막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낙타는 그 전체를 차지하려고 힘써 밀고 들어오고 있다."
극단적 중립
우리는 극단적 오른편과 극단적 왼편에 관해 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극단적으로 거짓되고 극단적으로 불순종적이며 극단적으로 위험하다고 폭로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극단적 중립이다. 예전에 W. B. 라일리 박사는 말하기를, "중도적 사람은 20세기의 신학적 위협이다"고 하였다. 진리와 오류[선과 악]간의 싸움에서 중립성[온건함]은 덕이 아니다"고 했다.
신복음주의 인물들
빌리 그레이엄
빌리 그레이엄 전도집회--천주교인들의 지원을 받음
갈보리 컨덴더 1997년 5월 1일자는 최근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알라모도움에서의 전도집회에 대해 보도한 휴스턴 크로니클 3월 30일자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였다: "그러나 그 지역 천주교 공동체도 중심적 역할을 했는데, 그것은 교황의 1987년 산 안토니오 방문 기간에 보인 그 침례교인[빌리 그레이엄]의 후원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었다. . . . 기독교 지도자로서 빌리 그레이엄은 신학적 차이점들을 초월하는 존경을 얻었기 때문에 침례교인들과 천주교인들과 장로교인들이 그레이엄 전도집회 준비를 위한 수개월 전의 계획 모임들과 훈련 회의들에 함께 모인다."
세계적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이 자유주의 교회들과 심지어 천주교회 지도자들과 협력하는 포용주의적 방법의 대규모 전도집회를 시행해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이다. 물론, 그것은 그가 천주교회를 참 교회가 아니라고 비판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포용주의적 집회는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데는 성공했는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성경에 보이신 바른 방법은 아님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천주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이후 참된 주의 교회들에 의하여 '적그리스도적이고 우상 숭배적인 단체'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천주교회는 1960년대에 소집되었던 제2차 바티칸 회의 이후에도 그 근본적 교리나 체제에 있어서 이전과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천주교인들이나 천주교회 지도자들은, 참으로 회개치 않는 한, 전도의 대상자들이지 전도의 협력자나 후원자가 될 수 없다.
빌리 그레이엄[그래함]과 제리 팔웰
빌리 그레이엄[그래함]은 세계적인 부흥사이며 오늘날 신복음주의적 입장의 대표자이다. 제리 팔웰은 자신을 근본주의자라고 말하는 미국의 유명한 한 지도자로서 리버티 대학교와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근래에 제리 팔웰은 신복음주의자들과 친근히 지내왔고 빌리 그레이엄과도 가까와졌다. 1997년 5월 3일 리버티 대학교 제24회 졸업식에서 빌리 그레이엄은 연설을 하였다. 주의 검(Sword of the Lord) 편집자 쉘톤 스미스 박사는 빌리 그레이엄과 제리 팔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둘은 다 근본주의자들로 시작하였다! 그 둘은 다 큰 성공을 이루었고 국제적 인물로 부상되었다! 그 둘은 다 그들의 사역의 거점을 그들의 근본주의적 기지로부터 보다 넓은 복음주의자들의 서클에로 변경하였다. 표준들과 분리의 원리들은 사라졌다! 타협은 규범이 되었다! (50년대에) 그레이엄에 의해 채택된 에큐메니칼 태도는 이제 리버티 대학교에서 기정화된 방식이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진리와 오류는 자유로이 섞인다. 바른 교리는 교제를 위하여 보류된다. 한때 성경적 권위의 강한 목소리가 있었던 곳에, 이제는 적응과 편의의 정신이 우세하다."
빌리 그레이엄의 방법론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7년 8월 11일자에 의하면, 빌리 그레이엄의 '금세기의 책'인 내 모습 그대로라는 책의 서평에서, 컬럼비아 국제대학교 명예총장 로벗슨 맥퀼킨은 다음과 같이 썼다: "빌리 [그레이엄]의 접근 방식이 모든 사람들, 즉 로마 천주교인, 그리스 정교회 교인, 자유주의자에게 열려 있고 따뜻하다는 것은 . . . 분명하다. 근본주의자들 외의 모든 사람에게[!]. 에큐메니칼 포용주의에 대한 그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중심주제이다. 그래서 그의 신학적 혈육인 근본주의자들은 그를 따르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이 그레이엄과 분리된 것은, 한 부류로서의 근본주의자들이 다른이들보다 더 위선적이고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정직하다. 그들이 방법론에 관하여 그렇게 엄격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그들은 영적 사역에서 불신자들과 협력하는 것은 죄악된 불순종이라고 믿는다. . . . 빌리는 기독교계를 나누는 많은 교리들을 힘써서 무시하고, 연합하는 것을 전공한다. . . . 그의 강조점은 신앙의 순결성보다 그것의 일체성에 있다. . . . 그의 사역은 전도이다. 그는 인종차별은 (우리가 다루어야 할) 도덕적 문제지만, 낙태는 (우리가 피해야 할) 정치적 문제라고 [정의한다]. . . . 빌리는 신학적 차이점들을 의식적으로 피하거나 낮춘다. 그가 신앙의 근본 교리들을 믿는다고 말하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믿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빌리 그레이엄과 보편구원론
파운데이션 1997년 5-6월호에 의하면, 로버트 슐러 박사와의 1997년 5월 31일 텔레비젼 인터뷰에서 빌리 그레이엄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 혹은 그리스도를 아는 모든 사람, 그들이 그것을 의식하든지 못하든지 간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라고 생각한다. . . . 그들은 심지어 그리스도의 이름을 알고 있지 못할지도 모르나 그들은 그들의 마음 속에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빛으로 향하며, 나는 그들이 구원을 받았고 그들이 우리와 함께 천국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 . 그들은 그들의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었고, 그들은 주위의 사회와 전혀 다른 삶을 살려고 노력하였다." 로버트 코팔(Robert Kofahl)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레이엄 박사가 표현한 교리는 . . . 정확히 교황과 로마 천주교회의 에큐메니칼 연구소가 수년 동안 가르쳐 왔던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우상숭배를 행하고 성경이나 은혜의 복음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이름과 구속 사역에 대한 지식이 조금도 없는 어떤 이교도도, 만일 그가 '좋은 사람'이고 그가 믿는 바가 무엇이든지 그 믿는 바에 있어서 신실하다면,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는다'는 관념이다."
빌리 그레이엄의 캐나다 퀘벡 전도 대회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8년 8월 10일자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 . . 인구 약 백만명의 [오타와] 지역을 위한 지난 6월 25-28일 빌리 그레이엄 선교 활동에서, 천주교인들과 개신교인들 간의 간격--그리고 어느 정도 프랑스인들과 영국인들 간의 간격--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전도 대회를 후원한 470개의 지역 교회들 가운데, 60개가 천주교회들이었다. 천주교회의 참여는 모든 그레이엄 전도 대회 가운데 가장 중대하였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는 보도하기를 일부 새 신자들은 천주교회에서 데려갔다고 하였다. 가장 많은 회중이 모인 것은 '진흙 항아리'(Jar of Clay)와 마이클 스미스가 출연한 [락] 연주회의 밤이었다.
세계적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은 현대 교회를 가장 혼란시킨 대표적인 신복음주의자이다. 그는 전도대회를 할 때 보수주의 교회들과 자유주의 교회들의 지원을 구별 없이 받고 심지어 개신교회들과 천주교회들의 지원을 구별 없이 받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개신교회와 천주교회의 선(線)을 앞장서서 지우고 있다. 이런 류의 인본주의적 방법론은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개신교회와 천주교회는 진리와 이단의 문제이므로 '전도 대회'의 명분으로라도 결코 서로 협력하거나 연합될 수 없다. 그 둘 간의 협력과 연합은 비진리와의 타협에 불과하다.
빌리 그레이엄의 문제점들
오 디모데(O Timothy)의 편집자 데이빗 클라우드는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의 문제점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열거하였다: 빌리 그레이엄은 천주교 대학들에서 명예 학위들을 받았고 천주교회의 복음이 자기가 전하는 복음과 동일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천명의 회심자들을 배교적 교회들[천주교회와 자유주의 교회들]에 넘겨주었다. 그는 교황이 전도자요 도덕적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천주교회 주교들을 그의 강단에 초청하고 그의 결신 초청시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축복하게 한다. 그는 유아 세례시 기적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옥이 문자적으로 불붙는 고통의 장소라고 믿지 않는다. 그는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이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허용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현대주의자들[자유주의자들]을 칭송한다. 그는 변질된 성경 번역본들을 장려한다. 그는 동정녀 탄생이 기독교 신앙의 필수적 부분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성경이 무오(無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변호하기를 거절한다. 그는 이단적인 로버트 슐러의 복음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에 동의한다. 그는 신학이 더 이상 자기에게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구원을 강조하지 않는다.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대회들의 빈약한 결과
크리스챤 뉴스 1999년 9월 27일자(1, 18쪽)에 의하면, R. L. 히머스 박사는 크리스토퍼 케이건 박사와 함께 쓴 죽어가는 국가를 위한 설교라는 책에서 "통계는, 그레이엄 박사의 전도 대회들의 결과로서 교회들에 등록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음을 증명한다. 숫자들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히머스와 케이건은 그레이엄의 전도 대회에서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했다고 주장하는 자들 중에 어떤 교회에 교인이 되어 머무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다양한 통계 조사들을 인용한다. 그들은 또한 주장하기를, 그레이엄의 전도 대회들은 그 대회들이 열린 지역들의 도덕적 분위기를 도와주지 못했다고 한다.
히머스는 한 때 그레이엄의 열렬한 후원자이었다. [그러나] 그레이엄은 낙태와 같은 죄에 대해 강한 공적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그는 동성애에 대해 사람이 동성애자로 태어난다고 말함으로써 변명했다. 마침내 히머스는 그레이엄의 촬스 피니 스타일의 '결심' 신학과, 유대인들과 회교도들과 다른 비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적 신앙 없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그레이엄의 견해로 인해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히머스는 위의 책에서 이렇게 쓴다: "나는 빌리 그레이엄의 사역을 믿었다. 나는 그를 위해 매일 기도했다. . . . 나는 빌리 그레이엄의 추종자이었다. . . . 나는 빌리 그레이엄을 신뢰했다. [그러나] 나는 속임을 당했다." "그레이엄 박사가 교황을 위대한 도덕적 지도자요 전도자라고 찬양하고 테레사 수녀와 그 동료들을 기독교의 고상한 모범들로 말했을 때, 나는 이 카톨릭 교도들을 바라보고 그들이 결국 좋은 그리스도인들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빌리 그레이엄은 그들이 그렇다고 말했다. 우리는 결코 그의 판단이나 지도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각별히 빌리 그레이엄을 만났고 그와 대화하였다. 나는 심지어 그와 함께 전문적 사진들을 몇 장 찍기도 하였다. 나는 내가 신복음주의의 결심주의의 오류들을 보기 시작하기 전까지 매우 확실하고 매우 강하게 그레이엄 박사의 영향 아래 있었다."
스토웰이 빌리 그레이엄의 이사회에 들어감
무디 성경학교장 죠셉 스토웰과 침례교회 세계연맹의 데니스 로츠는 1999년 11월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의 이사회에 추가되었다. 스토웰은, 빌리 그레이엄이 설립자요 이사장인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의 자문 편집인이다. 스토웰은 빌리 그레이엄 훈련센터에서 강연하였고, 그레이엄은 무디 성경학교의 100년 기념행사에서 강연하였다. 스토웰은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회원이며 프로미스 키퍼스와 남침례교회에 관련된 행사들에서 강연했다. . . . 우리는 스토웰이 최근 수년 동안 무디 성경학교를 신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 운동 안으로 취하여 들어간 가속화된 단계를 보고 슬퍼한다.
그레이엄은 천국을 염려하는가?
2000년 1월 2일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토니 스노우는 빌리 그레이엄에게 질문했다: "귀하께서 천국에 도착하실 때, 누가 먼저 말씀하실 것입니까, 귀하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십니까?" 그레이엄은 대답했다: "제가 거기 도착할 때, 예수께서 저를 환영한다고 말씀하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가 '잘하였다, 우리의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그가 '너는 잘못된 곳에 있구나'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스노우: "귀하는 귀하가 잘못된 곳에 있다는 말씀을 들을지도 모른다고 정말 염려하십니까?" 그레이엄: "예, 왜냐하면 저는 의로운 사람이지 못했고 지금도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제 개인의 삶에서 속하지 않는 대(臺) 위에 저를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를 실제의 저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저를 생각하는 것 같은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신문들과 잡지들과 텔레비젼은 저를 성자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테레사 수녀가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매우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자가 아니며 심히 부족한 사람이며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을 만하지 못한 종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우리의 행위에 근거하듯이 표현된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우리의 의는 이것뿐, 예수님의 피밖에 없다. 예수님이 우리의 의요 우리의 구원이시다!
빌리 그레이엄의 암스테르담 2000
빌리 그레이엄의 암스테르담 2000 대회가 7월 29일부터 8월 6일까지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렸다. 그 대회에서 천주교회의 한 대주교가 연설했고 이어서 네델란드 교회협의회 회장도 연설했다. 교회협의회 회장은 참석자들에게 [자유주의적] 교회협의회와 복음주의 연맹이 기도하기 위해 연합하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개인적 신앙과 사회적 행동은 같이 가기 때문에 우리는 동일한 사람들이다. 복음주의자들과 에큐메니칼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는 이 대회를 위해 4천만불을 사용했다. 척 콜슨은 그 대회에서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 함께(ECT)라는 운동을 옹호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우리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붙들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우리는 세속적 자연주의에 대항하여 함께 설 수 있다. 벽들을 허물도록 우리를 도왔던 분이 바로 빌리 그레이엄이었다"라고 했다.
빌리 그레이엄과 천주교회의 친분 관계
빌리 그레이엄은 요한 바오로 2세: 바치는 글이라는 책의 서문을 썼고 가끔 교황을 찬양하였다. 데이브 헌트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천주교인이나 개신교인이나 간에 누구든지, 빌리 그레이엄은 교황과 로마 천주교회를 참 신앙이라고 칭찬함으로써 개신교 종교개혁을 암시적으로 부정하였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의 천주교회 용납은 천주교회 주교들이 실제로 그들의 희생자들과 성경적으로 일치하였고 오늘날 복음주의자들이 전파하는 것과 동일한 복음을 전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들은 개신교인들에게 저주를 선언하였고 그들을 불태웠고 로마 교황청은 그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명예를 주었다. . . . 만일 빌리 그레이엄이 로마 천주교회가 영혼들을 구원하는 참된 복음을 전파한다고 생각함에 있어서 옳다면, 모든 종교개혁자들은 잘못이었다. . . . 선택하라, 빌리 그레이엄이 옳은지, 아니면 종교개혁자들이 옳았는지, 그러나 그들 둘 다가 옳은 것은 아니다. 더욱이, 만일 천주교회가 참된 복음이라면, 로마 천주교인들 가운데 지난 5백년 이상 로마의 복음이 거짓되다고 확신하였고 참 복음을 믿었고 로마 천주교회를 떠났던 수천만명의 사람들에 대해 무어라고 말해야 하겠는가? 만일 빌리 그레이엄이 옳다면, 그들은 완전히 바보들이다. 그들은 천주교회에 머물러 있었어야 했다--과연 빌리 그레이엄은 전도대회들에서 믿겠다고 앞으로 나온 모든 천주교인들을 바로 그 교회로 돌려보낸다.
빌 브라잇과 CCC
대학생 선교회(CCC)의 빌 브라잇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1997년 7월 14일자는 대학생 선교회의 창설자요 총재인 빌 브라잇 박사에 대한 10페이지의 글을 실었다. 그 글은 그가 지난 해 템플톤 상을 받았음을 언급했고 또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은 브라잇에 의해 따뜻하게 용납된다"고 말했다. 어떤 복음주의자들은 빌 브라잇을 1994년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라는 상호 인정과 협력의 진술서에 서명한 것 때문에 그를 이단이라고 비난했고 어떤 이들은 ECT에 대한 그의 입장을 취소하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천주교인들 가운데 수천만명의 참된 신자들이 있다'고 말하면서 거절했다. 그러나 참된 신자들은 은사주의를 경계해야 하고 천주교회와도 분리되어야 한다.
빌 브라잇의 '98년도 금식과 기도' 집회
금년의 '금식과 기도' 집회는 미션 아메리카와 대학생 선교회의 공동 후원을 받았다. 참석자들은 에큐메니칼 유명 인사들이다. 빌 매카트니(프로미스 키퍼스), 프랭클린 그레이엄, 돈 아규(미국 NAE), 폴 시더, 케이 아더, 빌과 보넷 브라잇, 애드리안 로저스, 팻 로벗슨, 토마스 트래스크(하나님의 성회) 그리고 데이빗 브라이언트 등이 포함되어 있다. 빌리 그레이엄과 존 퍼킨스와 빌 브라잇은 명예 공동 회장이다. 위에 열거된 다른 이들은 실행 위원회에 속해 있다. 스티브 그린, 로벗슨, 시더 그리고 브라잇은 한 시간을 인도한다. 다른 시간은 로저스와 매카트니에 의해 인도된다. 그것은 지난 11월 12-14일까지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위성 중계로 미국 전역에 생방송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류의 혼합적 집회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집회들과 운동들은 기독교의 갱신보다는 혼란을 더 가중시키고 있다.
빌 브라잇이 상을 받음
국제 대학생 선교회 총재 빌 브라잇은 그의 심각한 질병--폐 및 전립선 암--과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사역을 확장하는 방법을 계획하고 있다. 50년 된 그 사역의 공동창설자인 그는 책들을 편집하고 비디오들을 준비하고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위치한 한 대학교를 통하여 미래의 기독교 지도자들의 훈련을 촉진할 계획들을 세우고 있다. "그의 태도는 매우 논리일관하고 신선하여서 그의 곁에서는 슬픈 태도를 갖기가 어렵다"고 미국 대학생 선교회의 부지도자인 크로포드 로리츠는 말했다. 1996년 종교를 증진시킴에 대한 유명한 템플톤 상의 수상자인 브라이트는 동료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명예를 얻고 있다.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 출판사 협회는 7월에 그에게 '평생 업적 금메달상'을 수여할 계획이다. 미국 복음주의 협의회는 3월 7일 최초로 '평생 목회상'을 그에게 수여하였다. 그러나, 슬프게도, 대학생 선교회는 최근 수십년 동안 점점 더 친(親)은사주의적/카톨릭적이고 에큐메니칼적이게 되었다.
빌 브라잇은 은사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 사역함
카리스마지 2001년 10월호는 빌 브라잇이 신유 전도자 베니 힌을 '사랑하는 친구'로 간주하는 중재자라고 말한다. 그 잡지는, 그러나 은사들에 대한 논쟁이 브라잇의 사역과 가정에 심각했던 때가 있었다고 말한다. "예수 운동이 대학들에 영향을 주었던 1970년대에, 대학생 선교회는 간사들이 방언을 말하거나 그런 행위를 옹호하는 것을 금하는 방침을 도입하였다. 브라잇의 아들 잭이 성령의 세례를 체험하였을 때, 견해의 충돌 때문에 아들은 그 사역과 가정을 떠나게 되었다." 그들은 오래 되지 않아서 화해하였고 대학생 선교회는 '그 강경' 입장을 폐지하였으나 아직도 공적 집회시에 방언하는 것을 금한다. 브라잇은 "나는 은사주의자나 천주교인이나, 헬라 정교인이나 주류파 교인이나 간에 예수를 사랑하는 자는 누구든지 함께 일한다"라고 말한다.
기타 신복음주의자들
교황 칭송자, 반 임페
미국의 부흥사 잭 반 임페는 슬프게도 영적 분별력이 없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칭송하는 자들과 연합하였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8년 3월 2일자는 보도하기를, 그는 최근에 교황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변호하는데 그의 전체 방송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다음번 교황이 요한계시록의 거짓 선지자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 경고했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의 형제 자매들로서 결합되었다"고 말했다. 오늘날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자들이 왜 이렇게 영적 혼돈을 조장시키는가? 그러므로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성경을 더 읽고 연구하며 '옛 길' 곧 건전한 길을 확인하고 확신하자.
복음주의자들과 로버트 슐러
신복음주의를 정의하는 한 측면은 그것이 오류로부터 분리하기를 거절함이다. 많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현대주의자 로버트 슐러와 가지는 관계는 이에 대한 가장 좋은 한 예이다. 슐러는 자신의 자기 존중의 철학에 일치시키기 위해 성경 교리들을 재해석한다. 그의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자기 존중을 제공하는 예수이다. 그의 복음은 부정적 자기 개념들을 긍정적 개념들로 대치하는 것이다. 슐러에게, 죄란 단순히 자기 존중의 결핍이다. 그에게 가장 큰 악은 성경적 방식으로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부르고 그럼으로써 그들의 자기 존중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슐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믿는 보편구원론자다. 그의 목표는 각 사람으로 하여금 이 사실을 이해하고 향유하도록 돕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방면의 유명한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슐러와 함께 나타나며 그를 칭찬한다. 로버트 슐러는 놀만 빈센트 피일의 제자이다.
J. I. 패커는 근본주의자들을 비평함
복음주의 신학자 제이 아이 패커는 "2천년대 문앞에서의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1995년 대회에서 근본주의자들을 다음과 같이 비평하여 말했다: "보수적 개신교인들과 동방 정교회 교인들과 주류 로마 카톨릭 교인들은 내가 말한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연합할 수 있는가? 구원 과정의 세부 사항들과 그 과정에서의 교회의 위치에 관한 우리가 이미 아는 그리고 계속되는 차이점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연합할 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 . . 확실히, 우리의 세 전통들 내에서 근본주의자들은 이 일에 우리와 연합할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마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긍휼이 개념적으로 정확한 사람들 위에 자동적으로 머물며, 개념적 정확성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로부터 자동적으로 보류되는 것처럼, 논쟁적 정통주의 길을 따르는 것이 근본주의자들의 길이기 때문이다."
포커스 언 미션즈(Focus on Missions)의 회장 레이 아담스는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패커의] 욕설어린 비난은 이 유명한 신학자와 성경 강해자를 위해 좋은 징조는 아니다. 슬프게도, 그는 오류와 분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분명한 가르침을 따르기보다 많은 무리와 함께 행하기를 선택한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논쟁적 정통주의의 길'이라고 정의될 수 없다."
C. S. 루이스가 기독교인인가?
1963년 씨 에스 루이스의 죽음 이후, 그의 책들의 판매는 연간 2백만불에 이르렀고, 그는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의 일부 독자들에 의하여 최근에 가장 영향력 있는 저술가라는 등급을 얻었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8년 9월 7일자는 그의 사상의 '약한 점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였다: 속죄에 대한 그의 개념, 그가 죄의 용서에 대해 논의할 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언급을 한 적이 없다는 점, 세례 중생론에 대한 그의 환대, 그리고 성경 영감에 대한 그의 비(非)무오적(無誤的) 견해, 거기에 덧붙여 연옥과 및 불신자로 이 세상을 떠난 일부 사람들의 최종적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그의 긍정. 마틴 로이드-죤스는 루이스가 과연 크리스챤이었는지 의심하였다. 루이스의 가장 친한 친구들은 천주교인들이었다. 그는 또한 몰몬교인들에게 좋은 영접을 받았다. 그는 선하게 됨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중세 시대의 개념을 가르쳤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구원을 받기에 충분할 만큼 선하게 되도록 도우실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입된 은혜에 의한 구원은 전혀 은혜가 아니다. 루이스의 신학은 치명적 결함이 있다.
릭 워런의 장사광(狂)
1998년 8월 미국 오하이오 바이블 펠로우쉽 발행 비지터지의 "영적이지 않고도 성공적인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팀 포터 목사는 릭 워런의 방법들과 그의 책 목적에 이끌린 교회의 가르침들을 검토한다. 워런의 책은 W. A. 크리스웰의 서문과 더불어 로버트 슐러, 빌 브라잇, 풀러 신학교 교수 아치볼드 하트, 그리고 연합 감리교회의 에스라 얼 죤스의 찬동을 얻었다. 포터는 몇 가지 철학적 및 신학적 결점들과 기타 문제점들을 열거한다. 그는 말하기를, "장사술에 이끌린 목회 사역은 불신자의 요구에 응하므로 결국 불신앙에 이르게 될 암(癌)이다"라고 하였다.
F. F. 브루스, 자유주의적 '복음주의자'(?)
1990년에 암으로 사망한 스코틀랜드 신학자 에프 에프 브루스는 복음주의자로 높이 칭찬을 받았으나, 많은 자유주의적 견해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신정통주의의 아버지인 칼 바르트를 루터와 칼빈과 웨슬레와 동등하게 '그리스도의 종'으로 보았다. 그는 바르트의 하나님이 성경의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경의 어떤 파괴적 고등 비평을 받아들였고, 바울이 여성의 지도자 역할들을 제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브루스는 "신복음주의자들이 그것 때문에 비평되는 포용주의―예를 들어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대회들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에서 아무런 잘못도 발견하지 못했다." 무디 먼슬리 1986년 6월호는 에프 에프 브루스를 '복음주의' 지도자로 높여 말했다.
로버트 슐러의 자서전에 추천의 글을 쓴 이들
크리스웰, 조용기, 폴 크라우취, 잭 헤이포드, 죤 윔버 등은 로버트 슐러의 자서전에 인정하는 추천의 글들을 실었다. 그러나 로버트 슐러는 자유주의적이고 혼합주의적 인물이다. 그는 기독교를 조롱하는 뉴에지의 기독교 일치 학교 연례대회에서, 문선명의 통일교회 행사들에서, 그리고 몰몬교 성전에서의 종교간 조찬 기도 모임에서 주강사로 나타났다. 뉴에이지 운동가들, 몰몬교인들, 또 천주교인들은 그의 교회당에서 연설했다. 그는 오래 전에 죄에 대한 바울의 교훈과 이별을 고했고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자신을 힌두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과 단절시키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더 이상 불리우기를 원치 않는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천국 가는 유일한 길이요 기독교가 유일한 구원 신앙이라고 설교하지 않는다.
로버트 슐러 학교의 연사들
로버트 슐러의 '성공적 교회 지도자 학교'는 1999년 1월에 다음과 같은 연사들을 세웠다: 토니 캠폴로, 빌 하이벨즈, 루이스 팔라우, 죤 맥스웰, 윌리엄 베네트(천주교인), 마이클 모인한 신부, 및 한국의 김선도 감독 등이다.
슐러의 성공적 교회 지도자 학교
로버트 슐러의 성공적 교회 지도자 학교가 2001년 1월 29일부터 2월 1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가든 그로브즈의 슐러의 수정 대성전에서 열릴 예정이며, 연사들 가운데 복음주의자 토니 캠폴로와 빌 하이벨즈, 자유주의적인 클락 피나크 등이 포함되어 있다.
빌 하이벨즈가 로버트 슐러의 집회에 선다
대교회 운동의 선생이며 윌로크릭 공동체 교회의 목사인 빌 하이벨즈는 '가능성의 사고'의 선생인 로버트 슐러의 1월 29일부터 2월 1일까지 열리는 '성공적 교회 지도자 학교'에서 자유주의적인 토니 캠폴로와 나란히 또 다시 연사로 명단에 올랐다. 노만 빈센트 피일의 제자인 슐러는 최근에 그의 수정(水晶) 대성전에 '무신론자' 고르바초프를 세웠다. 수정 대성전은 교회가 아니고 관광객의 호기심을 끄는 곳이며 하나의 종교적 기관일 뿐이다. 로버트 슐러는 '이단자'이며 그의 신학은 성경의 신학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빌 하이벨즈 같은 사람이 그런 곳에 설 수 있는가?
죤 맥아더는 헤이포드를 칭송함
잭 헤이포드의 1997년 책인 유망한 목사들에서, 미국의 인기 있는 저술가요 연사인 죤 맥아더는 초(超)은사주의적 목사 헤이포드를 칭송한다. 로버트 슐러, 빌 하이벨즈, 척 콜슨, 빌 브라잇과 그렉 로리도 추천의 글들에서 그를 칭송하였다. 헤이포드는 프로미스 키퍼즈 운동을 장려하고 이사회에 참여하고 그 단체의 주요 행사들에서 연설한다.
콜슨과 팔라우가 골든-콘웰 이사가 됨
척 콜슨과 루이스 팔라우는 5월 1일부터 유효한 미국의 골든-콘웰 신학교의 이사들로 선출되었다. 친(親)천주교적 교회연합운동가들로서, 그들은 골든-콘웰의 신복음주의적 입장에 잘 맞을 것이다. 빌리 그레이엄은 골든-콘웰의 이사장으로 일해왔고 골든-콘웰은 지난 5년에 걸쳐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로부터 4백만불의 장학금을 받았다. 골든-콘웰의 힐탑지는 죤 암스트롱, 앨리스테어 벡, 그리고 케이 아서 등의 교회연합운동가들을 가을학기 연사들로 열거한다. 지난 여러 해들에 골든-콘웰은 자유주의 연사들을 단에 세웠었다(예를 들어, 미국 유니온 신학교의 극단적 자유주의자인 제임스 포브즈).
팔웰 경내에서의 윙필드 전도대회
제리 팔웰은 최근에 그의 토마스 로드 침례교회에서 스티브 윙필드의 전도대회 천막이 오는 가을 리버티 대학교 건너편 토마스 로드 침례교회의 새 부지에 처질 것이라고 광고하였다. 윙필드는 이전의 리버티 대학교 학생으로서 "메노나이트 교회에 출석하는 웨슬리파 감리교회 목사"이다. 1991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렌즈데일에서의 전도대회에 관하여, 윙필드는 에큐메니칼 사고방식으로 말하기를, "나는 우리를 분리시키는 것들을 제쳐놓기로 작정하였다"고 하였다. 여러 교단들로부터의 약 75개 교회들이 그 전도대회에 참여하였고 그 대회에 랩 그룹과 록 그룹이 특별 출현하였다. 배교와 혼돈의 시대에 보수적 지도자들의 분별력 있는 말과 행동이 절실히 요구된다.
빌 브라잇에 대한 제리 팔웰의 평가
세계적 전도에 있어서 빌 브라잇과 대학생 선교회의 진실한 노력에 관하여 많은 좋은 말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이 사역은 불순종의 사역이었다. 왜냐하면 언제부터인가 빌 브라잇은 천주교인들과 은사주의자들을 따뜻하게 포용하였고 자신을 과다한 에큐메니컬 활동들과 연계시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02년 5월 11일 제리 팔웰의 리버티 대학교는 "그들의 괄목할 만한 기독교적 봉사" 때문에 빌 브라잇과 그 아내 보넷 브라잇에게 명예 학위들을 수여하였다. 졸업생들에게 학위를 수여하는 의식들 직전에, 팔웰은, "내 견해로는, 빌 브라잇은 사도 바울 이후 가장 위대한 기독교 선교사이십니다"라고 말했다.
제리 팔웰의 이러한 발언과 행위는 자신이 신복음주의적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실한 종들은 그런 타협적 활동의 인물을 칭찬하지 않고 오히려 책망할 것이다. 현대는 타협과 혼란의 시대이다.
촬스 스탠리 목사의 잘못된 말
인기 있는 남침례교 목사요 저작자인 촬스 스탠리 목사는, 최근의 라디오 방송에서, 만일 사람들이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옥에 보내지 않으실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그에 관하여 들어본 적이 없고 알 특권을 가진 적이 없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지옥에 보내실 것인가? 나의 대답은 '아니다, 그 분이 그렇게 하시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큰 잘못이다. 에베소서 2장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의 상태를 묘사하였다. 그들은 허물과 죄로 죽어 있고(1절),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며(3절),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다(12절). 이것은 복음을 들었든지 못들었든지 간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상태이다. 그는 이미 정죄를 받았고, 그것이 왜 그리스도의 마지막 부탁이 순종되고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것이 그렇게 필수적인가 하는 바로 그 이유이다.
헌트와 모리스의 '타협'을 경고함
파운데이션지 7-8월호는 다음과 같이 쓴다: "창조 연구소의 설립자인 헨리 모리스와 베레아의 외침(Berean Call)지의 편집자인 데이브 헌트가 최근에 '만세(萬世)의 지혜' 사경회에 갈보리 채플 설립자 척 스미스와 연합하였다는 것을 보도하는 것은 실망을 주는 일이다." 여러 해 동안 모리스와 헌트의 유익한 경고의 사역들을 언급하면서, 그 글은 "이 슬픈 타협은 갈보리 채플 운동의 은사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노력들에 신임을 빌려준다"고 말했다. 파운데이션지는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방언과 다른 계시적 은사들을 포용하고 은사주의와 신복음주의 진영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척 스미스와 함께 사역적 노력에 연합했을 때 타협이 일어났다고 했다. 헌트와 모리스는 성경적 분리 외의 다른 거의 모든 영역들에서는 탁월한 분별력을 보인다.
단체들/기관들
한기총
'한기총,' '한복협'의 분별력?
교회연합신문 1994년 2월 19일자(10쪽) 보도에 의하면,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한기총)는 그 단체의 3.1절 기념예배 설교를 한국의 자유주의 목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 강원용 목사에게 부탁하였다. 기독교보 1994년 3월 12일자(7쪽) 보도에 의하면, 한기총은 3월 8일 임원 취임 예배 설교를 유명한 기장측 목사인 조향록 목사에게 부탁하였다. 한국기독공보 1994년 4월 2일자(4쪽) 보도에 의하면, 4월 9일 한기총 남북교회 협력을 위한 세미나의 강사에 강원용 박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크리스챤신문 1995년 8월 5일자(2쪽) 보도에 의하면, 한국 복음주의 협의회(한복협)의 광복 5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움의 강사 중에도 조향록 목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위의 사실들은 한국교회내에 보수적 교단들의 연합체로 인식되는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한기총)나 한국 복음주의 협의회(한복협)가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을 배제하려는 의지를 전혀 갖고 있지 않음을 보인다. 이것은 한국의 보수교단들의 지도자들이 과연 영적 분별력을 갖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일으킨다.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교회 연합체나 협의체가 어떻게 자유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 교단의 지도자들을 강사로 세울 수 있는가?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고 교회에 유익한 일인가?
오늘날 기독교회에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배교(背敎)의 문제이다. 현대 교회의 배교는 서너 갈래 방향에서 일어나고 있다. 첫째는 물론 역사상 뿌리 깊은 천주교회의 배교요, 둘째는 19세기 말 이후에 일어난 여러 이단종파들이요, 셋째는 20세기에 개신교회들을 교파를 막론하고 크게 변질, 부패시키고 있는 자유주의 신학이요, 넷째는 성경적 신앙으로 만족하지 않고 은사 체험을 의지하고 강조하는 은사주의이다.
그러나 참된 주의 종들과 성도들은 이러한 배교적 운동들을 잘 분별하고 배격해야 한다. 특히,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의 침입과 확산에 대해 잘 대처해야 한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들을 이단적이라고 인식하여 배격하지 않는 입장과 단체들은 참된 보수주의가 아니며 또 건전한 보수적 단체들이 아니다.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신인 대표회장의 입장
기독교 연합신문, 2000년 2월 13일자(3쪽)에 의하면,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한기총] 제7대 신임 대표 회장에 선임된 이만신 목사(중앙성결교회)는 그동안 껄그럽게 여겨왔던 교회협[NCC]과의 관계를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겠다고 밝히고 두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 교회협의 모습은 보수권에서 보기에도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한국교회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한기총과 교회협의 통합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한기총과 교회협이 기구적으로 하나 되는 것을 모색하되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사업 동조를 통해 동반자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보수교회의 지도자들의 분별력 없는, 전형적 인 사상이다. 즉, 교회협과 한기총의 통합을 가능하다고 보고 적어도 동반자적인 관계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주의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 무지(無知) 그 자체요 혼돈 그 자체이다. 오늘날 가장 필요한 일이 있다면, 교회의 순결성이며, 그것은 특히 사상적, 교리적, 신학적인 데서부터 요청된다. 현대 교회의 타락은 신학적 변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신학적 변질은 윤리적 해이를 동반한다. 바른 신학과 바른 윤리는 참된 교회의 모습의 필수 요건이다. 자유주의의 이단성을 알지 못하고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연합과 통| 을 가능하다고 보는 것보다 더 큰 무지와 혼란은 없다.
한복협
복음주의협의회의 노선
기독교보 1996년 7월 13일자(5쪽)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KEF]의 'NCC 개혁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 발표회 내용의 개요를 보도하였다. 그 보도에 의하면, 그 협의회의 지도적 인물인 홍순우 목사는 진보적 교회와 보수적 교회가 모두 자기 반성을 해야 하고 한국교회 전체 정서에 맞는 연합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앞으로 NCC나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의 연합 기관이 합력하여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또한 그 발표회에서 전호진 박사도 "보수적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연합 운동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고 말했다.
교회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분들이 자유, 보수를 분별치 못하고 비성경적인 연합을 제안하고 승인함은 심히 통탄스러운 일이다. 신실한 종들과 성도들은 이런 일에 참여치 말아야 한다.
예장협
'대한 예수교 장로회 연합회' 신년 하례회
교회연합신문, 2000년 1월 30일자(10쪽)에 의하면, 대한예수교장로회 연합회(대표 회장: 김경희 목사)는 1월 24일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신년 하례회를 가졌다. 75개 교단 지도자 170여명이 모인 이 날 예배시 설교는 김의환 목사가 하였다. 이날 대표 회장에 취임한 김경희 목사는 인사말을 통해 예장연이 지향해야 할 목표로, 연합회를 중심으로 △ 정체성을 상실한 신학과 신앙을 바로 세우고 △ 갈갈이 찢어져 흩어져 있는 교단을 하나로 만들며 △ 세미나 등을 통해 계속 교육을 실시, 목회자의 자질을 향상시키자고 제안했다.
대표 회장의 제안은 오늘날 보수적 장로교회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점들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가 강조한 '바른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 속에 자유주의와 은사주의와 신복음주의를 배격하는 성경적 입장이 있다. 그런데 이 날 설교자이었던 김의환 목사는 '신복음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인물이다. 우리는 예장연이 바로 진행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바로 진행되려면 신복음주의적 입장을 분별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교단 총무회, 교회 연합지지
기독교연합신문 2000년 3월 19일자(1쪽)에 의하면, 한국 기독교 교단 총무회(회장: 김상학 목사)는 3월 7일 한국교회 백주년 기념관에서 회의를 열고 교회 연합 운동에 최선을 다하기로 하고, 교회협과 한기총의 연합 움직임에 적극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교단 총무회는 회장에 김상학 목사(예장 통합), 부회장에 서성수 목사(예장 합동), 총무 심군식 목사(예장 고신), 서기 한창영 목사(예장 합동보수), 회계 박봉규 목사(예장 개혁합신), 감사에 양회협 목사(침례교), 이요한 목사(감리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수 교단 목사들의 입장이 이전보다 더욱 흐려진 것 같다. 오늘날 자유주의는 없어졌는가? 어찌하여 보수 교단 목사들이 자유주의에 대한 문제 의식이 없이 교회 연합 운동을 지지하고 교회협과 한기총의 연합을 찬성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런 류의 연합 운동을 미워하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가?
평화 통일 위한 연합예배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KNCC; 회장: 이성덕 구세군사령관)와 한국기독교 총연합회(회장: 이만신 목사)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평화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 특별 연합예배'가 2000년 6월 4일 열린다고 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동완 총무는 "이번 연합예배를 시초로 앞으로도 교회협과 한기총이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 같이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고, 이만신 목사는 "[이] 연합예배가 한국교회가 하나되고 통일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보수주의적 정신에서 시작된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자유주의적 교회협의회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한목협
교회갱신은 어디로부터?
기독교연합신문 1997년 7월 6일자(3쪽) 보도에 의하면, 장로교단들의 소장 목회자들이 각각 중심이 된 소위 '갱신 그룹들'은 지난 26일 사랑의 교회에서 회동, 각교단 개혁현안 문제를 놓고 의견을 교환하였다고 한다. 거기 참여한 단체들은 예장 통합측, 기장측, 예장 합동측이었고, 비행기 연착으로 불참하였으나 예장 고신측도 참가 의사를 밝혔었다고 한다.
젊은 목사들이 교회정치윤리의 갱신을 말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교회의 갱신은 보다 근원적인 데서부터 즉 배교적 사상과 신학의 갱신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은 예장 통합측과 기장측의 자체 갱신과 예장 합동측과 고신측의 자유주의적 교단들과의 무분별한 교제의 반성을 내포한다.
진정한 개혁은 어디에서부터?
기독신문 1998년 6월 24일자(23쪽)에 의하면,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측),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측) 등 장로교 4개 교단의 개혁성향의 목회자 그룹들로 구성된 한국장로교 목회자협의회(장목협, 회장: 옥한흠 목사)는 6월 16일 경기도 광주군 소망수양관에서 수련회를 가진 후 '교회개혁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하고, 교회 도덕적 타락 현상과 대 사회 영향력 약화 현상을 뿌리뽑기 위해 목회자 개혁과 한국교회 일치가 시급하다고 천명하였다. 특히, 교회의 대 사회적 영향력의 약화 현상에 대해 '한국교회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협의회(교회협)로 나눠진 것에서 연유한다'고 말하고 '한국교회 일치와 연합은 늦출 수 없는 긴박한 과제'라고 진단하였다.
그러나 이런 선언이 바른 말인가? 첫째로, 목회자 개혁에 대해, 목회자가 도덕적으로 부패해 있다면 회개하거나 권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오늘날 목회자의 문제는 단순히 윤리적 문제가 아니고 일차적으로 교리적 문제이다. 기장측과 통합측의 많은 목사들이 바른 신학에서 이탈하여 자유주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목회자의 개혁은 바로 이 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자유주의 사상은 이단이며 불신앙이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는 악이다. 그러므로 교리적, 사상적 순수성의 회복이 오늘날 요청되는 첫번째 목회자 개혁의 과제이다.
둘째로, 무분별한 한국교회 일치와 연합의 강조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된다. 교회 연합은 좋은 일이지만, 반드시 바른 진리 안에서 강조되고 실현되어야 한다. 그것은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만일 그러한 포용적 교회연합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현대판 바벨탑이 될 것이다. 이단과의 그러한 연합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가증한 일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합동측과 고신측 같은 한국의 보수교회들의 목사들이 정신없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인가? 참된 개혁은 그런 식으로 오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 한국교회의 문제는 자유와 보수의 선이 점점 더 흐려지고 있다는 데 있다. 진정한 교회개혁을 원한다면, 바른 교제의 원리부터 지켜야 한다.
'한목협' 형성 움직임
기독신문 1998년 9월 16일자(23쪽) 기사에 의하면, 한국 교회의 주요 교단에서 교회 갱신을 목표로 활동하는 목회자 협의회들이 모여 가칭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한목협)을 발족한다고 한다. 예장 합동측의 교회 갱신을 위한 목회자 협의회(회장: 옥한흠 목사)를 비롯해 예장 통합, 고신, 대신, 기장, 성공회, 기감, 기하성, 예성, 기성, 기침, 구세군, 나사렛 등 13개 교단 목회자 협의회에서 32명의 대표들은 9월 14일 사랑의 교회(옥한흠 목사)에서 대표자 모임을 갖고 한목협을 발족키 위한 준비위원 9명을 선정했다. 이들은 비신학적, 비정치적 한도 내에서 한국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도모하며 특히 성직자와 교회의 윤리성 회복을 통해 대사회적 영향력을 강화해 나가는데 서로 협력하고 연대키로 했다고 한다. 준비위원들은 김경원 목사(합동), 김원배 목사(기장), 김광수 목사(기감), 조성기 목사(통합) 등을 포함한다.
그러나 '비신학적' 교회 일치가 무엇인가? 교회가 신학을 초월하여 연합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런 류의 혼란한 연합 운동의 청산이 바로 교회 갱신의 첫번째 과제이다.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 발족
기독신문 1998년 11월 11일자(23쪽)와 기독교 연합 신문 1998년 11월 15일자(1쪽)에 의하면, 한국 교회의 주요 교단들에서 교회 갱신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는 목회자 협의회들은 11월 26일 사랑의 교회(옥한흠 목사)에서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한목협) 창립 총회를 연다. 창립 총회에 참여하는 협의회들은 다음과 같은 14개의 교단들에 소속해 있다: 예장(합동), 예장(통합), 예장(고신), 기장, 예장(대신), 예장(합신), 기감, 예성, 기성, 기침, 나사렛, 기하성, 구세군, 성공회. '한목협'의 설립 취지는, 비신학적, 비정치적 한도 내에서 한국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도모하며 특히 성직자와 교회의 윤리성 회복을 통해 대사회적인 영향력을 강화해 나가는 데까지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총회 직전 창립 기념 강좌 때는 이원규 교수(감신대)와 이성구 목사(고신 정신 잇기 목회자 협의회 총무)의 강의가 있고, 창립 총회는 김진호 목사(감리교)의 사회로 대표 회장과 공동 회장 등 임원을 선출할 예정이다. 총회 직후에는, 창립 헌신 예배와 성찬식을 갖는데, 창립 헌신 예배는 전병금 목사(기장측)의 사회, 옥한흠 목사(예장 합동)의 설교, 이동원 목사(침례교)의 기도와 현해춘 목사(나사렛 성결회)의 축도로 이어질 계획이다.
또 박경조 신부(성공회)의 창립 선언문 낭독, 유의웅 목사(예장 통합측 총회장)와 장 상 총장(이화여대)의 축사, 정철범 주교(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 대표회장, 성공회)와 지 덕 목사(한국 기독교 총 연합회 대표회장)의 격려사 등의 순서가 포함될 예정이다. 창립 선언문 초안 작성에는 김원배 목사(기장측)를 중심으로 김영만 목사(기하성), 임승안 목사(나사렛), 이성구 목사(고신) 등이 참여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목협'의 출범이 한국 교회의 진정한 개혁과 갱신을 위해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교회들의 근본적 문제는 신앙의 변질 곧 신학의 변질에서 비롯되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 교회의 진정한 개혁과 갱신은 교단 신학교들 안에 들어와 있는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교단들 내에 있는 자유주의 목사들을 찾아내어 권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 2천년 역사상 교회가 경험한 가장 무서운 이단 사상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신명기 13장에서 이단을 제거할 것을 분명히 교훈하셨다. 또한 신약 성경도 이단에 대해 단호히 대처해야 할 것을 밝히 가르쳤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들 안에 있는 사상적 변질을 문제삼지 않고 단순히 '비신학적' 윤리 갱신만을 부르짖는 것은 지극히 부족하고 미흡하다. 이런 류의 연합 운동은 현대 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위하기는커녕 오히려 혼란과 혼동을 추가시킬 것이다.
기타
신대원 원우회장단, 장로교대회 적극 참여 결의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대표회장: 예장 합동 김도빈 목사) 2000년 한국장로교대회 준비위원회는 5월 1일 장신대 대회의실에서 가입교단 신학대학원 원우회장 제2차 회의를 갖고 한국장로교회는 한 형제, 자매임을 확인하는 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그 회의에서 신학대학원 원우회장들은 한국장로교회의 화해와 협력, 연합과 일치를 위한 계기를 마련코자 실시되는 2000년 한국장로교대회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의했다. 이 날 참석한 원우회장들은 예장 통합측, 예장 합동측, 예장 고신측, 기장측, 예장 개혁측 등 11개 교단 신학대학원 원우회장들이라고 한다. 보수적인 예장 합동측, 고신측, 개혁측 등의 순진한 신학생 원우회장들이 이런 류의 에큐메니칼 운동에 분별력 없는 선배 목사들을 뒤따라 합세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한국 장로교 신대원생 협의회' 결성
한국 장로교단들에 속한 총회신학대학원, 장로회신학대학원, 한국신학대학원, 고려신학대학원, 합동신학대학원, 기독신학대학원, 국제신학대학원, 대한신학대학원, 중앙신학대학원, 합동중앙신학대학원, 개혁신학대학원 등 11개 신학대학원 학생들은 9월 20일 기독신학대학원에 모여 '한국 장로교 신대원생 협의회'를 결성하였다. 그들은 다양한 신학적 색채를 반영하기 위해 1인 대표체제를 지양하고 총회신학대학원 이재윤, 장로회신학대학원 고창준, 기독신학대학원 김상민 등 3명을 공동대표로 하는 복수지도체제를 출범시켰다. 이 단체는 한국 장로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한 공동사업에 힘쓸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 교회들에서 보수적 입장과 자유적 입장을 구별하는 선이 점점 없어지는 것은 심히 슬픈 일이다. 이것은 바른 진리의 증거를 점점 더 혼란시키는 일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다. 참된 교회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해야 하기 때문에 보수적 교회들은 결코 자유주의적 혹은 포용주의적 교회들과 분별력 없이 연합적 활동에 참여해서는 안된다.
2000년 장로교대회 선언문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는 9월 18일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2000년 장로교대회 선언문"을 발표하고 "한국 장로교회는 만국 교회 앞에 하나"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그 선언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위에 특정 시대의 인간의 교리나 세속 이념을 두어 온 죄와 교권을 가지고 그것을 구실로 분열해 온 죄를 뉘우치자"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 '특정 시대의 인간의 교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애매모호한 점이 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신약성경이 원시 시대의 신화적 사상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보며 사도신경이나 니케야 신조가 당시의 언어와 사상과 표현 형식을 가지고 있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17세기의 교리적 진술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위의 선언문의 '특정 시대의 인간의 교리'라는 말이 이런 자유주의적 생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표현된 것이라면, 그것은 극히 불건전하고 악한 말이다. 사실, 포용주의적 진술은 진리에 대한 무관심에서는 허용될 지 몰라도 진리를 사랑하는 입장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특정 시대의 인간의 교리'라는 표현이 역사적 신조들이나 보수주의적 신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분명하게 표현되기 전까지는 이런 류의 선언문에 대해 동의를 표현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장로교 안에 자리잡은 신학적 포용주의
초대 한국 장로교 선교사들이 철저한 보수주의자들로서 순수 복음을 전하고 교회생활에서 성경공부를 강조한 것은 아주 귀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청교도적 경건생활을 강조하고 보여준 것도 한국교회에 복된 것이었다. 초대 선교사 대부분은 성경을 파괴적으로 비판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용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찍이 미 북장로교 선교본부 총무인 브라운은 다른 지역에서는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공존할 수 있었는데, 조선에서는 고등비평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은 위험한 이단으로 간주되었다고 말했다. 이는 조선의 초대선교사들이 지나치게 완고한 보수주의자들이었다는 불평으로 들려지는 말도 되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잠시였고, 자유주의신학을 가진 선교사들이 들어왔고, 전과 같은 분위기도 바뀌었다. 차츰 자유주의 신학을 배척하지 않고 포용해 가게 된 것이다. 한국교회 개척시에도 자유주의자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1909년에 한국에서 봉사하고 있던 북장로교 선교사 40명 가운데는 미국 자유주의 신학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뉴욕 유니온 신학 출신 3명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 진보적 사상을 가진 분들이 틀림없이 있었겠지만, 강한 보수성을 가진 선배들의 대세 때문에 자기들의 정체를 드러내지 못하고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910년대에 이르러 자유주의 신학을 가진 선교사들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때 두 사람의 선교사가 자유주의 신학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한국교회에 의해서 고소당했다. 그 중 한 사람이 미북장로교 선교사로 1908년에 한국에 와서 황해도 재령지역에서 일해온 고위량이었다. 그의 영향을 받은 김장호 목사는 성경에 나타난 이적을 부인했다. 홍해의 이적을 간조(干潮) 현상으로, 오병이어의 이적을 모든 사람들의 도시락으로 해석했다. 이 때문에 그는 면직당했다. 그 후 그는 '조선기독교회'를 세우고 철저한 친일파가 되어 일제로부터 훈장을 받기까지 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서 사역하는 북장로교 선교회에 속한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개인적으로는 철저한 보수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자유주의자들에 대하여 유연한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저들이 취한 포용적인 정책이 곧 한국교회 생활에도 영향을 그대로 미쳤다. 이는 미 북장로교 선교부가 고위량의 문제를 취급한 데서부터 나타났다. 선교부 전도위원회는 그의 신학이 문제가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령성경학교에서 가르치도록 하자고 인사위원회에 제의를 했다.
인사위원회는 이 제의[미 북장로교 선교부 전도위원회가 자유주의 선교사 공위량을 재령성경학교에서 가르치도록 하자는 제의]를 수용하지 않고 서울로 이동하게 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선교사를 사면하고 일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공위량은 곧 한국에 있는 일본인을 위한 선교사로 파송받아 돌아와서 한국에서 일했다. 이것은 미 북장로교 선교부가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변모되고 있던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국 미 북장로교 선교부는 이런 정책을 그대로 따랐다. 공위량은 1923년에 미국에서 발표된 이름난 자유주의 신학 선언인 '오번 선언'에 서명한 장로교 1200명 자유주의 목사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이제 한국에는 더 이상 보수주의 신학이 지배하는 세계는 아니었다.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분위기가 차츰 형성되어 갔다. 1926년에 카나다 연합교회 선교사인 서고도가 함흥의 성경학교에서 성경에는 역사적, 과학적 오류가 있다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1920년대에 일본, 미국 등에 유학하여 자유주의자가 되어 돌아온 김재준 송창근 채필근 등이 용기를 얻어 기회를 보아가며 그들의 자유주의 사상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34년에는 김춘배 김영주 등이 공개적으로 진보적 신학 입장을 발표했다. 이미 언급한 대로 1935년 총회가 이들의 사상을 정죄하여 취소하게 했지만, 그들 마음 속에 자리잡은 사상을 취소하게 할 수는 없었다. 서고도는 그의 자유주의 신학을 유포하고 가르치는 일에 별 제재를 받지 않았다. 결국 1938년 제27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평양신학교가 문을 닫아 보수 신학자들이 흩어지자 완전히 자유주의자들의 세계가 되어 버렸다. 위 역사는 오늘의 교회에 심각한 경고와 교훈을 던져준다. 자유주의 신학의 포용정책은 결국 교회의 붕괴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20세기에 들어서자 미 북장로교회는 급속하게 신학적 포용주의로 흐르게 된다. 선교사들의 강한 영향 아래 살아온 한국장로교회도 이를 뒤따랐다.
한국장로교회의 포용주의는 카나다 연합교회를 품에 안게 됨으로 더욱 가속화 되었다. 카나다 장로교가 감리교회, 회중교회와 하나가 되어 카나다 연합교회를 조직했을 때(1925년), 한국장로교회는이 교회로부터 오는 선교사들을 개인적으로 심사하여 수용하기를 결의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해인 1926년 그 선교회에 속한 서고도 선교사가 성경에 역사적 과학적 오류가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그를 제재하지 못하고 포용했다. 그는 후에 조선신학교의 후원자로, 교수로 거의 평생 한국에 자유주의의 신학을 뿌리는데 어떤 어려움도 겪지 않았다. 그는 자유주의 '한국기독교장로회'측을 위해서는 은인이요 공로자가 되었다. 한국 장로교 역사는 일찍이 자리잡은 신학적, 교리적 포용주의가 한국교회의 배교, 분열, 붕괴의 한 큰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일제시대의 배교와 순정 일본적 기독교 건설에 주도적 역할을 한 분들의 대부분이 자유주의 신학의 추종자들이었음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1951년 제36총회에서 고신을 축출하는데 앞장 섬으로 한국장로교회 첫 분열을 야기한 주체세력도 이들이었음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교회 역사는 신학과 교리 면에서 협상이나 양보나 포용은 교회를 건설하기보다 결국 무너뜨린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종교적 다원주의(多元主義), 교회적 상대주의, 신학적 포용주의가 지배할 21세기에 50주년을 맞는 고신 교회는 우리 세대뿐 아니라, 오고 오는 다음 세대들이 복을 누릴 수 있는 미래의 참된 교회건설을 위해 신학과 교리(신조)면에 있어서 순수성을 지키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장로교 신학회의 잘못된 출발
예장통합, 예장합동, 기장 등 21개 교단 신학자들로 구성된 장로교 신학회가 6월 20일 창립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초대회장에 선출된 이종윤 목사는 취임소감에서 "장로교가 수많은 교파로 분열된 것은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현실적인 자화상이다"며 "이번 장로교 신학회의 창립을 통해 장로교가 분열을 극복하고 선교초기처럼 하나가 되어 새시대에 복음전파에 주역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초대회장 이종윤 목사가 예장합동측의 대표적 교회인 충현교회의 담임목사로 있다가 지금은 예장통합측 서울교회의 담임목사로 있는 것부터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30여명의 신학자들이 참석한 창립대회에서 선출된 임원진 중에 황창기 고신대학교 총장, 오영석 한신대학교 총장, 오덕교 합동신학대학원 교수 김인환 총신대학교 교수 등이 섞여 있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예장통합과 합동, 기장 등이 모여 무슨 공통적 장로교 신학을 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자유주의 신학을 알 만한 보수교단의 신학자들이 자유주의자들과 함께 연합하여 무슨 토론을 하자는 것인가?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므로 이단자들과 더불어 무엇을 토론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은 일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교회 일치 운동을 위해 연합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보수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들과 공통적 신학을 추구한다는 것은 시작부터 잘못된 일이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 6:14-16).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딛 3:10).
교회 단일 연합체를 향해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교단장 협의회가 각 교단에게 제안했던 '한국교회의 통일된 연합체 구성 추진' 헌의안이 23개 회원교단 중 15개 교단의 총회에서 통과되었다. 통과 시킨 총회는 예장 합동, 예장 통합, 기장, 예장 고신, 예장 개혁(광주), 예장 개혁(국제), 예장 대신, 예장 합신, 예장 합동정통, 기성, 예성, 기침, 기하성, 그리스도의 교회 한국교역자회, 하나님의 교회 등이다. 나머지 8개 교단 중, 구세군, 예수교 복음교회,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협의회, 나세렛 성결교회는 임원회 등에서 결의되어 총회 인준만 남겨두고 있고, 기감, 기독교 대한복음교회, 기독교 한국루터회, 예장 순장은 불명확하나 무난히 통과될 전망이라고 한다.
드디어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얼굴을 드는 것 같다. 한국기독교회협의회(KN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으로 나뉘어 있던 교회연합체가 이제 한 연합체가 되는 힘을 얻은 것 같다. 이 일은 예장 합동과 예장 통합의 총회장들이 앞장서서 행하고 있다. 이 일에 예장 고신, 개혁, 대신, 합신 등의 소위 한국의 보수적 교단들이 다 긍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진전된 모습이다.
그러나 이 진전은 칭찬할 만한 진전이 아니다. 이것은 결코 성경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류의 연합 정신은 성경이 가르치는 연합의 원리를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참된 교회가 이단을 포용치 말라고 분명히 가르쳤고, 또 한걸음 더 나아가 성경의 명백한 교훈을 무시하고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도 포용치 말라고 엄히 경계하였다.
예를 들어, 성경이 참된 교회가 이단을 포용치 말라고 가르친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 로마서 16: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고린도후서 6:14-17,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 . .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요한이서 9- 11,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유다서 3, 4,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또 성경이 참된 교회가 성경의 명백한 교훈을 무시하고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을 포용치 말라고 엄히 경계한 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다. 데살로니가후서 3: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데살로니가후서 3: 1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오늘날 가장 파괴적인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본적 사실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이다. 이런 신학이 바로 기장, 기감, 예장 통합 등에서 가르쳐지고 포용되는 신학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을 배제하지 않는 연합 운동은 명백히 하나님의 뜻에 반대된다.
미국 복음주의 협회(NAE)
미국 복음주의 협의회는 '노인회'인가?
미국 복음주의 협의회의 회원들과 후원자들의 연령은 문제를 일으킨다. 그 협의회의 직접 우편 후원자들의 평균 연령은 지금 70세 이상이다. 그러나 이 문제 외에, 그 협의회는 또한 그것의 생활과 활동에 어떻게 더 많은 소수 의견자들과 여성들을 포함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그 협의회의 최초의 오순절 지도자인 돈 아규는 사임하였다. 그는 자유주의적 교회협의회와 연계되어 있었고 또 말하기를, 복음주의 협의회가 "너무 노인 중심, 너무 백인 중심, 너무 남성 중심"이라고 말했다. 연로한 회원들이 세상을 떠나면, 복음주의 협의회는 훨씬 더 자유주의적이고 사회문제 지향적이게 된다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새 지도자의 입장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연례 집회는 단지 350명이 참석했다. 그것의 새 지도자 자유 감리교회 감독 케빈 매노이아는 경계선을 넓혀서 전통적 복음주의 영역 밖에 있는 양립할 수 있는 견해들을 가진 자들을 포함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세계 하나님의 교회(The Worldwide Church of God)는 1997년에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회원이 되었다. 매노이아는 말하기를, 복음주의자 협회는 빈야드[죤 윔버의 단체] 같은 은사 운동들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는 언급하기를, 많은 복음주의적 연합 감리교인들[모순적 표현?]이 복음주의자 협회에서 편안함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판별 시험법들을 찾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벽돌담들을 말뚝 울타리들로 대치해야 한다"고 한다. 1995년 정규 침례교회 총회(GARBC) 지도자 리차드 크리스텐은, "우리의 정규 침례교회 총회 주위에 60센티 두께의 벽돌담 대신에, 건전한 말뚝 울타리를 우리 주위에 세우자"고 말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립했듯이, 분리의 벽이--빈약한 말뚝 울타리 말고--우리 시대에 매우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 복음주의 협회 이사장 레이머 베스트는, 복음주의자 협회가 기독교를 적절하게 만들 새로운 도전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잘못된 일치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새 지도자인 자유 감리교회의 한 은사주의자는 자신이 '보다 넓은 복음주의 운동 안에서' 은사주의자들과 비은사주의자들 간에 일치의 다리를 놓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오순절파 교인들은 1993년에 미국 복음주의 협회 회원들의 80퍼센트까지 구성하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콜슨/ 뉴하우스의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ECT)라는 문서는 신복음주의자들과 로마 천주교인들 간의 다리 놓기의 한 예이다.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이전 회장인 존 화이트는 '복음주의자들과 로마 천주교인들과 함께'라는 문서에 서명했고 천주교인들을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라고 불렀다. 복음주의 협회는 오래 전부터 자유주의적인 대교단들의 지교회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여왔다. 그리고, 1942년에 그것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최고 지도자인 돈 아규는 모슬렘 지도자와 함께 자유주의적인 미국 교회협의회 총회에서 연설했다. 복음주의 협회의 에큐메니칼 다리 놓기는 결국 배교와의 일치로 미끄러져 내릴 것이다.
미국 복음주의 협회 회장은 포용주의적임
케빈 매노이아는 1999년 7월 미국 복음주의 협회장이 되었다. 그는 말하기를, 복음주의자들은 "영적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했고, 복음주의자 협회가 "우리의 문화를 변혁시키는데 기여하도록 요청하기"를 원한다. 그는 말하기를, 복음주의자 협회가 "가장자리가 자라서" 같은 마음을 가진 다른 크리스챤들을 포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복음주의자'라는 말은 보통 인정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한편에서는 미합중국 장로교회 등의 자유주의적 대교단들이 있다. 그 다음에 은사주의적인 천주교인들과 감독교인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다 편안하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프로미스 키퍼스와 웃는 부흥을 낳은 빈야드 같은 기타 단체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복음주의자라고 믿지만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느낀다. . . . 우리는 포용적이기를 원한다. 물론 절대적 진리들이 있다. 우리는 성경의 권위를 타협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더 많은 교회들과 지도자들을 포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고 있다."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좌경화
미국 복음주의 협회는 최근 회원 교단들이 자유주의적 기독교회 협의회에 이중 회원권을 갖지 못하게 금하는 규정을 취소하였다. 이제 기독교회 협의회에 소속한 미국 개혁 교회는 복음주의자 협회에 회원권을 신청하였다. 복음주의자 협회의 가장 최근의 회원교단은 은사주의적인 빈야드 교회 협회이다. 복음주의자 협회 회장인 케빈 매노이아는 복음주의자 협회의 존재 이유가 자유주의를 대체하는 단체를 제공하는 것으로부터 공동체들을 변혁시키도록 교회를 일깨우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크리스챤 뉴스 편집자 헤르만 오턴은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복음주의자 협회 안에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복음주의자 협회가 기독교회 협의회 교회들을 용납하는 것을 힘있게 항의해야 한다. 만일 그 단체가 그 방침을 변경하기를 거절한다면, 그들은 그 단체를 떠나야 한다." 무디 성경학교 교장 죠셉 스토웰은 몇 년 전 복음주의자 협회에 가입했었다.
미국 복음주의 협의회는 자유주의적인 교회협의회와의 싸움을 포기한다
대략적으로 말해, 이전에 미국의 자유주의적인 교회협의회(NCC)에 반응하여 조직되었던 미국 복음주의 협의회는 실상 그 시작 때에 중립주의적 단체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그 단체는 명백히 정책을 변경했고 한 교단이 복음주의 협의회와 교회협의회 둘다의 회원이 되는 것을 허용한다. 복음주의 협의회의 회장인 케빈 매노이아는 새 시대가 이제 왔다고 말하며 복음주의 협의회를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있는가라는 말로 정의하기를 요청한다. 그는 말하기를, "계속 우리 자신을 자유주의적 단체들과 반대되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은 자유주의자들의 중요성을 합법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없어져가는 한 이유에 묶는 것이다"라고 한다. 또 "지금은 쇠해가는 대적(예를 들어, NCC)과의 부차적 싸움들을 싸울 때가 아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만일 자유주의자들과 싸우는 것이 단지 '부차적' 싸움이라면, 우리의 일차적 싸움은 무엇인가? 혹은 오늘날 교회들 가운데서 자유주의자들과 싸울 "더 이상의 이유가 없는가?"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회원교단의 문제
미국 연합 감리교회는 미국 교회 협의회의 가장 큰 후원자이며 미합중국 장로교회는 두번째이다. 미국 남침례교회와 루터교 미주리대회는 교회 협의회의 회원은 아니지만 오래 전부터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 협의회의 헌법에는 교회 협의회의 부서들과 연관을 가진 부서들이나 위원회들을 가지고 있는 모든 교단들은 교회 협의회의 모든 회원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주장해야 한다고 진술되어 있다. 미국 교회 협의회는 여전히 좌경적 운동들을 조장한다. 미국 복음주의 협회가 이제 회원들이 또한 동성애 찬성과 낙태 찬성의 입장을 가진 교회 협의회의 회원이 되는 것을 승인하는 것은 비극적이다.
IVF
미국 IVF의 '어바나 2000'
미국과 카나다의 IVF[기독학생회]가 후원하는 3년마다 모이는 2000년 12월 27일-31일의 집회를 위해 거의 2만명의 대학생들과 젊은 성인들이 어바나-샴페인의 일리노이 대학교에 모였다. 거기 참여한 거의 90개 교단들은 자유주의, 에큐메니칼, 신복음주의 및 은사주의 등 뒤섞인 단체들의 일부이었다. 학생들은 풀러, 베델, 애즈베리, 고든-콘웰, 덴버, 비올라, 그레이스, 그랜드 래피즈, 무디, 위튼, 웨스트민스터, 아메리칸 뱁티스트, 그리고 어셈블리즈 어브 갓 등 타협적 단체들의 많은 학교들을 대표하였다. 기관들은 감독교회, 복음주의 루터교회, 미합중국 장로교회, 미국장로교회, 침례교회 등을 대표하였다. 대학생선교회, 어린이 전도협회, 새 종족들(New Tribes), 티임(TEAM) 등의 종교 단체들은 청년들을 자기들의 기관들로 모집하려고 애썼다. . . . 어떤 부분들에서는 복음이 성경적으로 정의되었지만, 다른 부분들에서는 그 핵심으로 사회적 행동 계획들과 인종 화해를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토니 에반스는 한 비디오에서 말하기를, "백성들이 먹을 것을 공급받지 못하는 곳에서 부정(不正)의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라고 했다. 새개정표준역(NRSV) 성경이 모든 참석자에게 주어졌다. 예배 팀 밴드는 큰 소리의 CCM/록음악을 제공하였다.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ETS)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ETS), '개방적 신론'에 관해 의견이 나뉨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는 2001년 11월 16일 약 70퍼센트의 찬성으로 '개방적 신론'에 반대하는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유적 도덕적 행위자들의 미래의 모든 결정들과 행위들을 포함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건들에 대한 완전하고 정확하고 무오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친다고 우리는 믿는다." 개방적 신론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기타 그의 속성들의 일부를 파괴시킨다. 대표적 주창자들은 죤 샌더스(헌팅톤 대학), 그레고리 보이드(베델 대학), 클락 피낙(맥매스터 신학대학).
클락 피낙(Clark Pinnock)은 개방적 신론을 옹호함
1960년대의 클락 피낙은 남침례교의 복음주의자이었고 성경 무오성의 옹호자이었으나, 최근에 그는 매우 자유주의적이게 되었다. 그는 지금 '개방적 신론'을 옹호하고, 하나님께서 새 지식을 얻을 때 때때로 생각을 바꾸신다고 주장한다. 그는 심지어 예수께서 한가지 점에서 잘못이었고,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제한적 지식 때문에 그는 때때로 잘못된 예언을 하신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취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일련의 예언들을 인용한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와 교황 비디오
신복음주의자들의 중심적인 잡지인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8년 4월 6일자에는 '여섯 개의 영감 있는 비디오 세트'에 대한 전면광고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라는 제목이었다. 이것에 관하여, 그 광고문은 이러하였다: "이 영감을 주는 비디오 선집은 가장 사랑받는 종교적 지도자들 중의 한 사람과 연합하도록 여러분을 초청한다".
복음주의적 잡지에 이런 광고가 실려도 되는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현시대에 참된 기독교에 가장 혼돈을 주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류의 광고를 허용하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 없다고 생각된다. 진정한 복음주의는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과 믿음에 성실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복음주의는 악을 포용하는 넓은 길이 되었다.
신복음주의 잡지의 타협적 태도
크스챠니티 투데이 1998년 9월 7일자는 고(故) 레이몬드 브라운 '신부'의 신약 개론을 높이 추천했고 "그는 오늘날 신약학의 탁월한 종합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브라운은 예수께서 전지하신 하나님이 아니셨고 오류를 범하셨다고 말한 영향력 있는 천주교 자유주의 신학자이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을 거부했고, 세계교회협의회에서 활동적이었다. 그는 1971년에 뉴욕의 자유주의적 유니온 신학교에 갔고 그 학교의 첫번째 종신직 천주교 교수가 되었다. 하지만 신복음주의적 풀러 신학교의 1984-85년 요람은 브라운을 최근의 풀러 신학교 강사로 열거하였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의 설립자요 이사회 의장은 빌리 그레이엄이다. (무디 성경학교의) 죠 스토웰, 워런 위어스비, 그리고 (미국 근본주의 독립 교회[IFCA] 교단의) 에드 답슨은 카톨릭 교인들과 더불어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의 '자문 편집 위원들'로 명단에 올라 있다.
신복음주의자들이나 신복음주의적 잡지들, 기관들, 학교들의 근본적 문제점은 이단적인 자유주의자들을 책망하지 않고 용납하고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과 거리낌 없이 교제하는 데 있다. 그러나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 기독교 역사상 유래 없는 파괴적, 이단 사상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자들이라면, 어떻게 그들이 자유주의자를 책망하지 않고 용납하고 인정하고 교제할 수 있는가? 신구약 66권의 성경 말씀들을 그대로 믿고 그 진리들을 사랑하는 자들은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전 13:5, 6). 이단을 용납하고 이단과 교제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이 아니다.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신복음주의자들은, 비록 그들이 우리의 형제들일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혼란케 하는 자들이요 큰 책망을 받아야 마땅한 자들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계 안에 그런 자들이 너무 많으니 어떻게 해야 좋겠는가? 이런 자들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들은 점점 더 부패하여지고 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고 있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들과 성도들만이라도 시대를 분별하고 하나님 앞에 신실해야 한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가 C. S. 루이스를 칭송함
신복음주의의 주된 잡지인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4월 23일자는 "신화 문제들"이라는 제목의 논설에서 C. S. 루이스를 칭송하였다. 그 글은 그가 현대 및 후(後)현대 세계와 복음을 함께 나눌 방법과 언어를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었다고 말했다. 그 글은 루이스를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기독교 변증가"라고 불렀고 그의 신화적 저작들을 칭송하였다. 그의 '나니아의 연대기'는 기독교와 이방 전통들에서 온 이야기들을 결합하며 비유들과 상징들을 섞는다(예를 들어, 애슬란은 '그리스도의 상징'이지만 또한 진짜 사자이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는 "애슬란에서 그리스도는 만질 수 있고 알 수 있고 실제적이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 잡지는, "루이스는 이방종교의 뿌리들을 파고 들고 그 뿌리들이 기독교의 것들과 양립할 수 있는 곳을 적당히 할당하는데 능숙하였다"라고 말했다. 이런 것이 신복음주의와 그 대표적 한 인물의 혼란스러운 묵상들의 일부이다! 루이스는 성경의 무오성을 부정하였고 진화론과 연옥설을 받아들였고 자기를 "매우 카톨릭적이다"라고 표현하였다.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은 천주교인들이었고 그는 몰몬교인들에게도 즐거이 환영을 받았다. 마틴 로이드-죤스는 C. S. 루이스가 심지어 기독교인인지도 의심하였다.
학교들
풀러신학교
복음주의적인 풀러 신학교
복음주의적인 풀러 신학교는 한 때 하나님의 말씀의 무오성(無誤性)을 옹호했었다. 이 학교는 이 교리를 거부한 후 은사 운동을 조장하기 시작했다. 풀러 신학교는 이제 여자 목사들과 여성 안수를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 풀러 신학교의 변질은 신복음주의의 결과이며 처음부터 예견된 바이었다. 오류의 포용과 타협은 오래가지 아니하여 변질을 가져온다. 성경의 신적 권위는 그 무오성을 증거한다. 은사 운동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운동이다. 여자 목사들과 여성 안수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적 복음주의 노선은 결국 이런 오류들을 용납했고 그것들을 지지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오늘날 진실히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복음주의'의 이름을 가진, 실상은 신복음주의적인 타협적 운동을 경계해야 한다.
한 풀러신학교 방문자의 보고
아더 후크 박사는 7월 27일 미국의 신복음주의적 풀러신학교를 방문하고 이렇게 보고하였다. 그는 신학부의 인기 있는 죤 골딘게이(John Goldingay) 교수의 교실에 참석했는데, 골딩에이는 그 시간 이렇게 말했다: "여리고성이 있었고 그 성벽들이 무너져내렸다는 고고학적인 증거는 없다. . . . 아마 이것은 비유일 것이다." 히브리서 11:30은 다르게 말씀한다! 분명히, 성경에 대한 불신앙과 부정이 여전히 풀러신학교에 우세하다. 또한, 펀더멘탈 다이제스트 1999년 7-8월호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풀러신학교에서 설교를 가르치는 '목사요 교사요 여자 성직자요 학자요 저술가'인 마가렛 서스터(Margaret Suster)는 1999년 4월 20일 안식교가 후원한 위성 생중계 '대화식 세미나'를 위한 초청 설교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무디 성경학교
무디 성경학교 교장의 일치 개념
최근 수년 동안 우리는, 부흥을 위해 또한 열매 있는 전도를 위해 복음주의자들이 어느 누구와도 (심지어 카톨릭 교인들과 몰몬교인들과도) 연합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교리적 차이점들은 허용되지만 연합운동의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무디 성경학교 교장이며 프로미스 키퍼스 집회의 연사이기도 했던 조 스토웰은 1996년 5월 1일 미국 워싱턴 D.C. 부근에서 모인 전국 전도 협의회에 참석하였다. 보도에 의하면, 그는 "참석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몸이 연합될 때만 역사적으로 움직이셨음을 상기시켰다." 당시의 회장이었던 조 앨드리히는 연합은 모든 영적 질병들을 위한 보편적 치료약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연합을 진리보다 높이지 않는다. "오류 안에서 연합하는 것보다 진리에 의해 나뉘는 것이 더 낫다."
무디 성경학교 교장의 신복음주의
무디 얼람나이(Moody Alumni)지에 의하면, 무디 성경학교 교장 죠셉 스토웰의 1999년 9월부터 2000년 2월간의 설교 순회 일정은 다음의 내용을 포함한다: 프로미스 키퍼스, 빌 하이벨즈의 윌로우크릭 공동체 교회, 빌리 그레이엄의 더 코우브, 미국 종교 방송협회, 달라스 신학교, 생명의 말씀사, 시다빌 대학(정규침례교회 총협의회 인준), 및 루이지애나 침례교대회. 그의 걸음은 에큐메니칼적이다.
달라스신학교
달라스 신학교가 하는 것들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와 관계하여 31년간 봉사했고 세계 복음화 로잔위원회 명예 평생회장인 레이턴 포드는 1997년 5월 달라스 신학교 졸업식 연사이었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협력 편집자 앨리스터 맥그레이스는 1997년 경건회에서 그리피스 토마스 기념강연을 하였다. 달라스 신학교 교장 척 스윈돌은 1997년 10월의 한 서신에서 테레사 수녀를 '주목할 만한 여인'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을 잘못된 종교 체제로 인도하는 자가 '주목할 만한 자'라고 칭송되어야 하는가? 달라스 신학교 교수들은 1997년에 프로미스 키퍼스 집회에서 그리고 휫튼 대학, 무디 성경학교 및 브라이언 대학에서 강연했다. 달라스 신학교가 신복음주의적 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오늘날 의심할 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달라스 신학교 교수의 잘못된 사상
지난 달,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의 회장인 달라스 신학교 교수 대럴 보크는 "복음주의 운동을 위해 날카로운 경계선들이 그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 대신, 보크는 "복음주의는 경계선들에 의해서보다 중심에 의해서 더 정의되는 '푸른 마을'에 비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열린 유신론'(open theism)의 교리를 거부해야 할지에 대한 토론 동안에 행한 한 연설에서 복음주의 신학회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열린 유신론'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들을 다 아시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이단 사상이다. 비록 복음주의 신학회가 열린 유신론을 정죄하는 구속력 없는 결의문을 채택했지만, 보크는 그것을 반대하여 주장했다. . . . 어떤 근본주의 신학교들은 선생들이 달라스 신학교로부터 대학원 과정의 학위들을 취득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 . . 그들은 달라스 신학교의 타협에 관해 경고하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리버티신학교
리버티 신학교의 에큐메니칼 연사들
제리 팔웰의 1998년 4월호 네쇼널 리버티 저널은 다음과 같이 썼다: "리버티 침례교 신학교는, 게리 콜린스, ['성경으로 돌아가자' 프로의] 우드로 크롤, 죤 맥스웰, 스티븐 올포드, 제리 바인즈 및 죤 월보어드와 더불어, [하워드] 핸드릭스 박사가 우리의 훌륭한 방문교수 명단에 들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팔웰은 케이 아더와 다른 이들과 함께 '예수 2000 성지순례단'을 위한 연사로서 사진 보도되었다. 그의 1998년 대집회 연사들은 달라스 신학교 교장 척 스윈돌과 죤 맥스웰(로버트 슐러 연사)을 포함한다. 이 사람들은 다 에큐메니칼적으로 강단을 교류하는 목사들이다. 리버티 대학교와 신학교 및 제리 팔웰 박사는 한국에서도 건전한 입장을 가진 것처럼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은 성경적으로 건전해보이지 않는다. 오늘 시대는 참으로 어둡고 혼란하다. 바른 분별력과 입장을 가지고 바르게 행하는 지도자들을 찾기가 심히 어려운 것 같다. 하나님, 우리에게 바른 정신과 분별력을 주시옵고, 오늘 이 땅에 신실한 지도자들을 주시옵소서!
리버티 대학교가 남침례교단에 가입함
제리 팔웰의 리버티 대학교는 1999년 11월 15일 버지니아 남침례교 보수주의자 모임에 공식적으로 가입함으로써 남침례교단과 공식적으로 관계를 맺었다. 이 새로운 관계는 남침례교회 학생들로 하여금 리버티 대학교에 다니도록 격려하고 47,000개의 남침례교회들로 하여금 그 학교에 대한 재정 후원을 가능하게 만든다. 남침례교회 총회장 페이지 패터슨은 리버티 대학교의 남침례교회 가입이 우리 모두에게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말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잘못된 교제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행정 부총장인 스탠포드 카슨은 2002년 6월 크리스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는 43개국에서 온, 100여개 교단을 배경으로 한, 700여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으며 여학생도 100여명에 이르고 한국인 2세들을 포함한 한국 학생은 130여명이라고 소개하면서, 특히 프린스톤 신학교와의 관계에 대해 "내년 학기에 우리 교수 한 사람이 프린스톤에서 가르치기로 했다"며 "상호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그 학교의 행정 부총장이 프린스톤 신학교와의 활발한 상호 교류를 긍정적이고 고무적이게 소개한 것은 매우 슬픈 일이며 그것은 오늘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교수단과 행정 당국의 방향이 어떠함을 명백히 나타내고 있다. 프린스톤 신학교와 미국 북장로교단(오늘날 미합중국 장로교단) 총회는 1920년대 후반 분명히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방침을 택했었고 그러한 방침에 대항했던 자들이 1929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설립했었다. 1920년대 후반의 두 신학교의 입장과 방향은 자유주의 혹은 포용주의와 보수주의라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고 그 이후 오늘날까지 그러하여왔다. 그런데 오늘날 두 신학교의 활발한 상호 교류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프린스톤 신학교가 성경적인 입장으로 돌아왔다는 뜻인가? 그런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초창기 교수들의 입장을 버린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이것은 그 동안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취하여 온 미온적인 신복음주의적 태도가 가져온 결과이다. 신복음주의는 자유주의와 교제하는 포용적 정책을 취하다가 마침내 자유화 되고 말 것이다. 그것은 미지근한 타협주의자들의 말로이다. 우리 나라에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출신들이 대단히 많다. 그들은 이 타협적 사실에 대해 통탄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들 자신이 바로 이런 타협주의를 좋아하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분별력이며 성경적 분리의 교훈에 대한 바른 깨달음과 순종이다.
합동신학교
합동신학교의 입장은?
기독신보 1995년 11월 18일자(17쪽) 보도에 의하면, 합동신학교 학우회는 개교 15주년 기념 찬양 축제에 총신대, 장신대 신대원 학우를 초청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동신학교의 김명혁교수는 "그 동안 분리에 분리를 거듭했던 총신과 장신, 그리고 합신의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마음을 모으고 목소리를 합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니 감격스러울 뿐 . . . 역사는 종종 젊은이들의 순수한 헌신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한국교회 안에 이미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 말하였다.
기독신보 1995년 12월 2일자(17쪽)의 "신학대학원 학생 대표자협 출범: 비생산적 신학 대립 지양"이라는 기사에 의하면, 감신, 성공회, 연대신, 이화, 장신, 한신, 협성신 등 8개 신학대학원 학생들의 연합 단체가 1995년 11월 23일 결성되어 각 교단 청년 신학도간의 교류와 한국교회의 일치 등을 다짐했다. 이 단체의 출범 선언문에는 "비본질적이고 비생산적인 경쟁과 신학적 대립을 지양하고 다양한 신학적 입장을 존중하면서 . . . 궁극적으로 한국 신학과 교회를 갱신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진술되어 있다.
예장 합동측의 1979년 주류, 비주류 논쟁의 한 결과로 한국장로교의 존경받는 보수적 지도자 박윤선 박사와 예장 합동측 신학교의 여러 교수들에 의해 세워졌고 오늘날 한국내에 보수적 신학교로 꼽히는 합동신학교의 교수들과 신학생들의 입장이 무엇인가? 그들에게 이 배교적이고 혼란한 시대를 분별하는 영적 분별력이 있는 것인가? 그들이 어찌하여 자유주의적 신학교들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들이 어찌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교제의 바른 원리를 따르지 않는가? 성도들의 교제는 아름답고 귀한 것이지만, 자유주의적 단체들과의 무분별한 교제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금하시는 것이 아닌가? 어찌하여 오늘날 주의 종들이 배교적 자유주의 사상에 대항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기를 중단하는가?
교단들
예장 합동
박형룡 신학의 의의
기독신문 1997년 6월 4일자(7, 21쪽) 보도에 의하면, 지난 5월 30일 예장 합동측 총신 양지 캠퍼스에서 고(故) 박형룡 박사의 신학을 평가하는 '제1회 죽산 세미나'가 열렸다. 박형룡 박사가 소천한지 19년 만에 있은 일이었다. 그 보도에 의하면,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총장 한철하 박사는 박형룡 박사의 신학을 기독교의 정통적 교리 사상을 전승한 '사도적 신학,' '바른 신학'이라고 평가하였다. 또 총신대학교 총장인 김의환 박사는 "박 박사는 선교사들이 전수한 신학을 보다 체계화하고 한국교회의 현장에서 보수 신학을 수호하고 전수했으며 메이천의 '교회론적 취약점'을 극복, 결과적으로 우리 교단[합동측 교단]을 만들고 지켜왔다"고 평가하였다.
늦게나마 박형룡 신학의 의의와 가치를 인식하는 기회가 되었다면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다. 박형룡 박사는 하나님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노력한 주의 충성된 종이었고 자유주의와 에큐메니칼 운동 그리고 신복음주의 바람에 대처하여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힘써 싸웠던 분이셨다. 그러나 "메이천의 '교회론적 취약점'"이라는 김의환 박사의 표현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박형룡 박사는 '한국의 메이천'이라고 불리웠다. 그것은 그가 메이천 박사처럼 자유주의를 철저하게 비평하고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보수하고 변호하였기 때문이었다. 메이천이나 박형룡의 사상을 아는 자라면 그들에게 있어서 교회론은 어느 분야보다 중요하였다. 박형룡 박사는 메이천처럼 자유주의에 대한 비평 뿐만 아니라 또한 복음주의의 타협적 입장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평하였다. 그는 신복음주의자들이 근본주의에 대해 학문성이 없느니 반교파주의니 세대주의니 부정주의니 하고 가혹히 비판함을 지적하면서 "근본주의에 대한 가혹한 비평은 비평자의 정통성을 의문케 한다"고 반박하였다. 특히 그는 신복음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들과 우호적 관계를 가지고 빌리 그레이엄과 같이 그들과 협력적 전도활동을 하며 배교적인 교단들을 떠나지 않고 머물고 있음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그러므로 박형룡 신학에 대한 평가는 그가 매우 중요하게 여긴 이러한 점을 바르게 다루지 않고서는 바르게 할 수 없다. 오늘날 예장 합동측 목사들이 박형룡 박사의 제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정작 그 교단과 신학교에서는 그의 보수주의적 정신, 분별력 있는 바른 입장은 사라져가고 있지 않는가? 왜 그렇게 말하는가? 그것은 박형룡 박사를 논하는 자들과 그 교단, 그 신학교가 그가 그토록 조심하기를 원하며 경고하고 경계했던 바로 그 오류의 방향, 곧 신복음주의적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로교 평신도들의 무지
기독교보 1997년 7월 12일자(1쪽)에 의하면, 예장 고신측, 합동측, 통합측 3개 교단의 전국 남전도회 혹은 남선교회 연합회 임원들은 대구 수성관광호텔에서 제4차 연석회의를 열었다. 그들은 채택한 결의문에서 서로 사랑할 것을 다짐하면서 첫번째 내용으로 교단 간의 화합과 일치운동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우리는 그들 평신도들의 신앙이 비교적 순수하고 성경적이리라고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각 교단들의 지도적 장로들로서 오늘날 기독교계의 배교와 타협의 문제점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하여 큰 슬픔과 탄식을 가지고 있다. 만일 그들이 그런 문제점을 느끼고 있었다면, 그들은 당연히 예장 통합측의 신학적 문제와 갱신의 필요성을 중요하게 언급하였을 것이며 단순히 '교단간의 화합과 일치'를 주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수적 목사들에게 분별력 필요하다
기독신문, 1997년 10월 29일자(22쪽) 보도에 의하면, 예장 합동측 '교회 갱신을 위한 목회자 협의회'(회장: 옥한흠 목사)를 비롯하여 예장 통합측 '바른 목회 실천 협의회'(회장: 손인웅 목사), 예장 고신측 '고신 정신 잇기 목회자 협의회'(회장: 윤희구 목사), 기장측 '21세기 목회자 협의회'(회장: 전병금 목사) 등 장로교단들 중 대표적인 네 교단의 목회자 협의회들이 11월 3, 4일 서울 교육문화회관에서 '미래 한국교회를 위한 장로교 목회자 모임'을 갖는다고 하였다. 동신문은 또한, 그 모임에서 선언문도 발표할 예정인데, "그 선언문에는 장로교라는 같은 뿌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서로 분열된 모습을 보인 것을 참회하는 한편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목회자들이 일치와 연합된 모습을 보이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보도하였다.
'교회 갱신'을 추구하는 목사들 특히 예장 합동이나 고신 같은 보수적 교단의 목사들이 시대를 분별하는 분별력이 없이 혼란한 일에 힘을 쓰고 있으니 심히 탄식스럽다. 첫째로, 교회 갱신은 성경적 복음 진리에 입각해야 한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이 신학교들 속에 많이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자유주의 이단의 추방이 없는 교회 갱신은 무의미하며 위선적이다. 현대 교회의 갱신은 성경적인 바른 신학을 재확인하고 보수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둘째로, 잘못된 분열들의 죄를 인식한다고 해서, 곧 무분별하게 교회 일치를 말하는 것은 교회를 혼란시키는 죄악이다. 성경은 잘못된 분열을 육체의 일로 정죄하지만(갈 5:20), 또한 교리적 오류로부터의 분리를 명백히 명령한다(롬 16:17; 딛 3:10 등). 배교와의 타협은 분열 못지 않은 큰 죄악이다.
한국의 보수 교회, 정신차려야
기독교 신문 1998년 2월 22일자(15쪽) 보도에 의하면,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지 덕 대표 회장은 기자 회견에서 한국 교회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연합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면서, 특히 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NCC)와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한기총]의 차이가 이제는 그다지 크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이것이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의 분별력 정도라면 그 단체는 더 이상 보수적 교회 연합체가 아니다. 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가 주로 자유주의 교단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적 교회들의 연합체로 알려져 왔던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의 대표 회장이 그 두 단체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고 말하니 놀라울 뿐이다.
이제 한국의 보수 교회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자유주의는 죽지 않았다. 자유주의 교단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사상적 차이는 바른 교훈과 이단의 차이이다. 하나님의 참된 목사들과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승인치 않으시는 잘못된 연합 활동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
예장 합동과 통합이 가까워짐
기독교보 1998년 12월 26일자(2쪽)의 보도에 의하면, 예장 합동(총회장 길자연 목사)과 예장 통합(총회장 유의웅 목사)이 1999년 9월 제84차 총회시 개회 예배를 함께 드리고 성찬식을 합동으로 거행할 전망이다. 또한 양 교단은 이에 앞서 양 교단 화해와 연합의 상징으로 내년 중 구국기도회를 공동으로 개최한다. 양 교단 임원진은 이외에도 합동, 통합의 신학 교류를 위해 '총신대-장신대 신학포럼'을 열자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소속 교단에서 서로 노력키로 했으며, 1999년 1월에 개최되는 양 교단의 신년 하례회에는 상대방 총회장을 초청하여 축사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예장 통합측은 건전한 신학 입장을 가진 교단이 아니다. 예장 통합측이 신학적으로 현대 자유주의의 한 경향인 신정통주의적 입장에서 진행되어 왔다는 것은 부정되기 어렵다. 예장 통합측은 불신앙적이고 파괴적인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 교단에 속한 다수의 목사들이 그런 신학 입장에 서 있다.
그런데 예장 합동측의 총회장이나 임원들은 예장 통합측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보수적 교단이라고 자처하는 예장 합동측의 지도자라는 목사들이 자유주의적 예장 통합측 교단과 화합과 일치를 부르짖으니 이 어찌된 일인가? 이것은 예장 통합측 목사들이 자유주의를 버리고 보수주의 입장을 택하였기 때문이 아니고, 예장 합동측 목사들이 자유주의에 대한 분별력이 없거나 교리적 무관심주의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판단된다.
예장 합동측 교단이 참으로 성경대로 믿고자 하는 보수적 교단이라면, 총회 임원들은 이런 비성경적 일치 정신을 버리고,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바른 뜻을 깨닫고 성경적 교제와 일치를 추구하고 실천해야 한다. 예장 합동측의 신실한 목사들은 정신을 차리고 교단 지도자들의 무분별한 활동들을 책망하고 바른 노선과 입장을 정립하고 보존해야 한다. 성경은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고 가르쳤고(롬 16:17), 또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 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말씀했다(딛 3:10). 또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했다(고전 5:6).
오늘 시대는 배교와 타협과 혼동의 시대이다. 이런 어둡고 혼란한 시대에 신실한 종들과 교회들은 시대의 풍조나 인본적 생각을 따르지 말고, 오직 성경의 교훈에 충실해야 한다. 교회들아 깨자. 신실한 동역자들아 정신을 차리자. 성경적 교제의 원리를 알자. 그 어떤 활동보다도 성경에 밝히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예장 합동과 통합의 연합의 서곡
기독교연합신문 1999년 1월 10일자(15쪽) 보도에 의하면, 예장 통합측 총회(총회장: 유의웅 목사)는 1999년 1월 4일 오전 한국교회 백주년 기념관 소강당에서 예장 합동측 총회장 길자연 목사(서울 신림동 왕성교회)를 초청한 가운데 신년 하례회를 가졌다.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하례회에서 총회장 유의웅 목사는 설교에서 "우리가 하나되는 것은 믿음과 사랑을 녹여 연합과 일치로 모일 때만 가능하다"면서 "앞으로 합동측과 함께하는 여름 구국기도회와 가을 총회 개회예배를 통해 한국 장로교 일치와 연합에 도움이 되며 세계 선교와 봉사에 헌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축사에 나선 예장 합동측 길자연 총회장은 "하례회 초청에 감사하고 장족의 발전이 있기를 바란다"면서 "통합과 합동이 이심전심으로 장로교 연합과 일치 운동을 벌여 올해는 하나로 되어가는 분기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예장 합동측 총회장의 이런 발언과 행동은 하나님의 교회를 혼란시키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교회 연합과 일치는 바른 진리 위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예장 통합측은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혼합적 교단이다. 그런데 보수적 교단의 총회장이라고 하는 분이 그런 교단을 축복하고 그 교단과의 연합을 기대할 수 있는가? 만일 그가 통합측 교단을 사랑한다면, 그는 먼저 그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책망해야 한다.
예장 합동과 통합의 교류 증진
기독교 연합신문 1999년 1월 24일자(1쪽)에 의하면, 예장 합동측과 통합측 총회장은 지난 해 12월말 간담회에서 올 3월경 총신대학교와 장신대학교 교수들이 참여하는 신학 포럼을 열고, 7월에는 교단 지도부 뿐만 아니라 일선 교회 목회자들까지 포함하는 연합 구국 기도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이것은 두 교단의 분열 이후 40년 만에 처음 마련되는 일이다.
신학자들이 토론회를 가지는 것은 언제든지 좋은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보수 신학과 자유 신학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할 수 있고, 바른 신학의 노선과 입장이 무엇인지를 일반 신도들에게도 확인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토론회는 진리에 대한 진지한 추구의 정신으로 언제든지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연합 구국 기도회의 계획은 옳지 않은 일이다. 성경은,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遺傳)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라고 분명히 명령했다(살후 3:6). 오늘날 이단적 현대 자유주의 신학을 고의적으로 포용하는 교단들은 명백히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이다. 참된 교회들은 그런 교단들을 책망하고 그들에게서 떠나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성경에서 보이신 분명한 원리이다. 그런데 예장 통합측 교단이 바로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포용하고 있다. 아니, 포용 정도가 아니고 이미 그 전체적 경향이 상당히 자유주의적이게 흘러가고 있다.
그러므로 보수적 예장 합동측 교단이 포용적 혹은 자유주의적 예장 통합측 교단과 더불어 구국 기도회를 갖는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며 성경에 명백히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거슬리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한국 교회에 이런 연합 운동이 있기 전에, 먼저 포용적 혹은 자유주의적 교단들은 자체 정화를 하여 자유주의 신학을 명백히 배격하고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하나님의 말씀 진리들을 지키고 고백하고 전수하기에 충실해야 한다. 보수적 교단들은 포용적 교단들이 자체 정화를 하도록 권면하고 또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무분별한 연합 활동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보다 오히려 어지럽힌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조금씩 바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예장 합동측의 분별력과 입장
기독신문 1999년 3월 3일자(1쪽)에 의하면, 예장 총회 제83회기 총대를 대상으로 한 전화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0%이상이 예장 통합과의 강단 교류와 신학 교류, 연합 사업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또 64%가 통합측과의 교단 통합에 대해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적 교단인 예장 합동측의 총회 총대들의 분별력과 입장은 매우 실망스럽다. 왜냐하면 교단의 지도적 인물들인 그들이 오늘날 자유주의적 배교에 대해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다. 예장 통합측 총회는 1959년 예장 합동측과 분리된 이후 계속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배격하지 않고 포용하는 입장을 취해 왔다. 예장 합동측 기관지인 기독신보 주필로 오랫 동안 봉사했던 채기은 목사는 그의 책 한국교회사<1977>에서 "통합측은 반반으로 나뉘어 자유주의 신학사상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본다"고 썼다(231쪽). 이동렬씨는 그의 석사 논문에서 "우리[예장 통합] 입장은 신정통주의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계속 표류 중이다"라고 결론을 맺었다("한국교회와 신정통주의," 장로회 신학대학원, 1984). 그런데 예장 합동측 총대들 대다수는 어찌하여 통합측의 신학적 입장을 검토해보지도 않고 연합 활동을 찬성하고 있으며 또 상당수의 총대들이 심지어 통합측과의 교단 연합을 지지하고 있는가? 이것이 과연 분별력 있는 건전한 태도와 정신인가?
승동교회와 영락교회의 강단교류
기독신문 1999년 6월 30일자(19쪽)에 의하면, 예장 합동측의 역사적 교회인 승동교회(박상훈 목사)와 예장 통합측의 대표적 교회인 영락교회(이철신 목사) 간의 강단교류가 6월 27일 주일 오후예배때 양교단의 분열 40년 만에 승동교회에서 이루어졌다. 영락교회의 이철신 목사와 장로 30여명과 성가대원 100여명이 승동교회의 오후 3시 예배에 참석하여 예배를 인도하였다. 오는 8월 22일에는, 승동교회가 영락교회를 방문하고 예배를 인도한다고 한다.
얼마 전 합동측 총회장 길자연 목사의 왕성교회와 통합측 총회장 유의웅 목사의 도림교회가 이미 이런 식으로 강단교류를 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새로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예장 합동측이 총회적으로 불건전한 교단과 강단교류를 금한다는 결의를 한 바가 있고 지금까지 그것을 지켜왔기 때문에, 지난 번의 총회장의 행위나 이번의 역사적 교회인 승동교회의 행위는 총회의 결의를 무시한 무질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그러한 강단교류가 합당한 일이라면, 먼저 총회적 논의를 통해 총회 결의를 수정해야 했을 것이다. 이미 많은 합동측 목사들이 이런 저런 일들에서 통합측 목사들과 함께 일해왔기 때문에 이런 것이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여하튼 이런 무질서한 일은 '거룩한' 총회를 모독하는 것이다.
사실, 통합측 총회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총회 안에 진실한 많은 성도들과 목사들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통합측 총회의 목사 양성원인 장로회 신학대학이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보수하지 않고 현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포용적이라고 하는 것은 상식에 해당하는 일이 아닌가? 아니면, 이 상식이 사실이 아니고 무식에서 나왔고 장로회 신학대학은 성경적 보수신학을 전수하고 있단 말인가? 만일 후자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기뻐하며 즐거워해야 할 것이고, 강단교류는 그렇게 몇몇 교회가 할 것이 아니고 당장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40년간이나 교제를 단절하고 있었다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1959년 분열 이후, 예장 통합측은 계속 미국 장로교회들과 교류를 해왔는데, 미국 북장로교회는 이미 1930년말에 배교적인 교회가 되었고, 미국 남장로교회도 1970년대에 비교적 보수적인 미국 장로교회(PCA)가 분리되어 나간 이후 더욱 자유주의적이게 되었다. 그 후 1980년에 연합되어 형성된 미합중국 장로교회는 매우 자유주의적인 교회가 되었다. 이런 교회들과 교제해온 예장 통합측의 상황도 비슷하다.
교회에 소수의 자유주의자들이 포함되어 있다고해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평신도의 세계의 문제가 아니고 목사의 세계의 문제가 아닌가? 교회 안에는 한 명의 자유주의 목사라도 포용되어서는 안된다. 교회는 마땅히 권징을 행사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포용적 교회들은 한 명이 아니고 수십명, 수백명의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하고 있고, 그 자유주의자들은 전혀 권징을 받지 않고 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이것은 교회의 배교요 큰 불성실이다.
그러므로 예장 통합측 총회가 목사 양성기관인 신학대학의 신학적 입장과 교단 내의 자유주의적 목사들의 문제를 해결하여 자신을 정화시키지 않는 한, 예장 합동측 총회나 그 산하의 목사들과 교회들은 예장 통합측과 교제나 강단교류를 해서는 안된다. 성경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고 가르쳤고(롬 16:17), 또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아탁토스, 무질서하게]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라고 했다(살후 3:6).
총신·장신 교직원 체육대회
기독신문 1997년 5월 14일자(21쪽) 기사에 의하면, 총신대학교(총장: 김의환 목사)와 장신대학교(총장: 서정운 목사) 교직원 친선 체육대회가 5월 3일 장신대에서 열려 학교간 친선을 도모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날 행사에는 양교에서 150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행사는 성경의 교훈과 역행하는 잘못된 행사라고 본다. 장신대학교는 예장 통합측 대학교로서 성경의 근본적 진리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예를 들어, 전문적 용어로 신정통주의 신학)을 받아들이거나 이미 자유주의 신학 입장에 서 있는 학교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명백히 이단적이므로, 성경을 믿는 신자들은 이런 사상을 가진 자들이나 이런 사상을 포용하는 자들과 교제해서는 안된다. 로마서 16: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너희가 배운 교리]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 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데살로니가후서 3:6, 14,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 . .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총신대학교는 예장 합동측 대학교로서 성경의 근본적 진리들을 믿는 학교인 줄 안다. 만일 그러하다면, 그 학교의 교직원들이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 입장을 취하거나 적어도 그런 사상을 포용하는 학교의 교직원들과 비록 체육대회라 할지라도 교제를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은 성경에 명백히 계시하신 하나님의 교훈을 어기고 있는 행동이라고 본다. 이런 교제는 성경 진리의 바른 증거를 위해서 그리고 건전한 교회와 건전치 못한 교회를 구별하는 선이 그어져야 할 필요성에 비추어 결코 바람직한 일이 되지 못한다.
김경원 목사의 교회 일치관(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서현교회 김경원 목사는 기독교연합신문 2001. 7. 22, (4쪽)에서 "한국 교회의 일치와 연합"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는 그 글에서 첫째로 한국 교회의 일치와 연합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기를, "한국 교회가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야 함은 우선 대 정부적인 대표성을 가진 단체가 없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기에 기독교의 소리를 하나로 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기 때문이며 사회 선교나 특히 앞으로 북한 선교를 앞둔 시점에서 '하나의 한국 교회'를 절대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둘째로, 그는 한국 교회의 분열 원인에 대하여 인간 우상화와 신학을 원인으로 보는 견해에 공감을 표했다. 셋째로, 교회 연합을 위한 바람직한 방향에 대하여 그는 말하기를, "교단장들이나 교계 지도급 인사들이 교제를 나누며 연합을 위해 뜻을 모으고 특히 가까운 교단끼리는 상호 인정하고 교류 협력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나아가서는 궁극적으로 현 KNCC와 한기총이 통폐합하여 모든 한국 교회를 총괄하는 하나의 연합체를 만들어 내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다음의 말로 그의 글을 맺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지적하신 것과 같이 하나가 되라는 이 명제를 한국 교회는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 교회들의 일치와 연합에 대한 그의 열망은 순수하여 보이며 그러한 순수한 소원 자체는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랫 동안 자유와 보수의 대립적인 견해가 있어 왔던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의 일치와 연합에 대해 신중히 생각하고 성경적으로 바른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다.
첫째로, 교회의 일치와 연합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보자. 한국 교회들이 대 정부적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교회 일치를 위해 그렇게 절대 필수적 이유가 되는가? 물론, 모든 교회들이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어 있다면 그런 일치된 목소리가 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현격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교회들이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그런 바램은 사실상 허상에 불과하다.
구약의 역사나 교회사를 볼 때, 진리의 증거는 오히려 다수의 교회들이나 교인들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바른 길은 때때로 소수의 오해받고 따돌림 당하고 핍박받는 자들에 의해 선포되고 증거되었다. 대 정부적 목소리나 북한 선교를 위한다면, 차라리 자유와 보수의 선을 분명히 나누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남한 교회나 북한 교회의 건전한 장래를 위해서 더 필요하고 유익할 것이다.
둘째로, 교회 분열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의 글에 의하면, 그가 인간 우상화를 교회 분열의 원인으로 공감한다는 것은 고신 총회가 한상동 목사의 우상화 때문에 생겼고 합동측 총회가 박형룡 박사의 우상화 때문에 생겼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물론 그는 그의 글에서 단지 '한모 목사, 박모 목사'라고만 표현하였다. 그러나 만일 그의 글이 위의 인물들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의 신앙 사상과 입장에 대해 심한 의혹을 느낀다. 그가 인간 우상화를 교회 분열의 원인으로 공감한다는 것은 결국 진리를 위해 싸우고 간 신앙의 용사들과 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따랐던 수많은 신앙의 선진들을 단지 인간 우상숭배자들로 몰아버린 셈이 아닌가? 세상에 바른 보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이런 입장을 취할 수 없다.
한국의 보수적 교회들이 교회 일치 운동을 경계해 온 것은 자유주의 신학 때문이었다. 현대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초창기부터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포용적 입장에 반대하는 운동들이 일어났었다. 근본주의 운동은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 안에서 교파를 초월한 교제를 추구하여 왔다. 기독교인들의 교제는 진리 안에서의 교제이어야 한다. 보수적, 근본주의적 교회들이 주장해온 것은 바로 이것뿐이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근본적 교리들을 부정하는 무서운 이단 사상이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런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근본 교리들의 고백을 강조함이 없이 교회의 일치만을 부르짖을 수 있겠는가?
셋째로, 교회 연합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는 "궁극적으로 현 KNCC와 한기총이 통폐합하여 모든 한국 교회를 총괄하는 하나의 연합체를 만들어 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 속에는 현대 교회들 안에 널리 들어와 있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심각한 문제 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말은 예전에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이 하던 말과 같다.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회들 안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적은 누룩은 온 덩이에 퍼지는 법이다. 자유주의 신학이 한 교단에서도 물러섬이 없었거든, 하물며 그것이 교단들에 비해 제재 기능이 거의 없는 연합체들에서 물러서겠는가? KNCC[한국기독교회협의회]가 과거 여러 해 동안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활동해왔던 것은 우리 모두가 주지하는 바가 아닌가? 그런 KNCC가 자유주의를 버리고 성경적 입장으로 돌아올 리는 없다.
그러므로 KNCC와 한기총의 통합을 추구하는 것은 진리 안에서의 일치인 성경적 일치가 아니고 진리와 오류, 정통적 보수 신앙과 이단적 자유 신앙을 섞어놓는 일을 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류의 일치 운동은 성경을 진실히 믿는 모든 신자들이 가장 반대해야 할 바로 그런 혼합주의적 입장인 것이다. 이런 교회 일치 사상은 오히려 참된 교회의 일치 운동을 혼란시키고 가로막으며 진실한 종들과 교회들을 교계의 주류적 대세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김상복 목사의 신복음주의관(觀)
기독교보 2002년 1월 19일자(11쪽)에 의하면,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의 월례조찬기도회 및 발표회에서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EFA 회장)는 "복음주의 운동의 활성화"라는 제목의 주제발표에서 "신정통주의가 신학적 자유주의에 대한 최근의 표현이라면, 신복음주의는 정통주의에 대한 최신의 옷이다.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가 기피한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겠다는 의도에 있어서 근본주의와 다르다. 개인적 복음과 사회적 복음 사이에 이원론의 필요가 없다. 진정한 기독교 신앙은 초자연적 개인의 구원 경험과 사회적 철학이다. 교리와 사회 윤리는 둘 다 기독교 학문이다. 근본주의가 리더십과 사회라는 영역에서의 책임을 포기하고 사회를 변혁하거나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무능해졌다.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가 믿는 모든 전통적 교리를 신봉하거나[신봉하나?] 사회적 철학을 포함시켰다"고 주장했다.
만일 그 신문에 보도된 것이 김 목사의 발표 내용이라면, 그는 신복음주의를 정통 기독교 교리의 신봉과 적극적 사회적 철학을 가진 최신의 정통주의로 정의한 셈이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그의 사상이라면, 그는 신복음주의나 근본주의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가지지 못하고 있고 또 사회 문제에 대한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책임과 교회의 단체적 책임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신복음주의는 그렇게 아름답게 묘사될 그런 입장이 아니다. 신복음주의의 보다 본질적 내용은 자유주의를 포용하거나 자유주의화된 교단들로부터의 분리를 거절하고 그 안에 머물고 자유주의자들과 교제하고 그들과 협력하는 입장이다. 그것은 성경에 교훈된 이단과의 분리의 명령을 어기는 타협적 죄악이다.
또한 사회 문제에 대한 책임에 관하여, 전통적 개혁교회나 근본주의가 공통적으로 주장하고 확신했던 바는 교회가 공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개혁교회의 표준적 신조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1:4에는 "[교회의] 대회들과 협의회들은 교회적 문제 외에는 아무 것도 다루거나 결정해서는 안되며; 비상한 경우들에 겸비한 청원의 방식으로나; 국가의 위정자들로부터 요구된 경우에 양심의 만족을 위해 충고의 방식으로 외에는, 국가와 관계되는 세속적 사건들에 간섭할 것이 아니다"라고 진술되어 있다.
개혁교회는 전통적으로 지교회적으로나 교단적으로나 간에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것이 성경적으로 옳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교회가 직접 학교나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운영하지 않았다. 물론 교인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주신 은사를 따라 정치가나 교육가나 자선사업가 등이 있을 수 있고 또 교회가 정신적으로 그들을 측면에서 후원할 수 있을 것이지만, 교회가 직접 그런 일을 경영하거나 관여하는 것은 교회의 본연의 임무와 사명을 저버린 일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교회의 사명은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었고(막 1:38) 또 그가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특별한 임무이었다.
물론 교회는 교회에 속한 교인들 가운데 가난한 자나 병든 자를 돌아보았고 그것은 사랑의 당연한 표현이었다(행 2:45; 갈 2:10). 또 교회 밖의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돌아보는 것은 언제나 선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교회의 제한된 시간과 힘과 물질을 가지고 교회는 힘써야 할 사명을 주께로부터 받았다. 그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의 일이다. 주께서는 그의 전능을 가지시고도 병고치는 일을 주로 하신 것이 아니었고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는 일을 주로 하셨다(마 9:13).
근본주의가 사회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은 바른 말이 아니다. 근본주의가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교회들이 자유주의 이단 신학을 포용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오히려 현재 세계적인 근본주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북아일랜드의 이안 페이슬리는 목사로서 유럽 의회의 국회의원이며 북아일랜드 내에서 카톨릭 세력에 대항하여 싸우는 개신교 지도자로서 그 누구보다도 전도와 사회 문제에 적극적이다. 우리는 그의 활동을 북아일랜드의 특수 상황이라고 이해하려 하지만, 여하튼 그것은 근본주의자가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잘못된 비난에 대한 충분한 반박의 예가 될 것이다. 단지 근본주의나 전통적 개혁교회가 확신하는 바는 하나의 단체로서의 교회가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뿐이다.
한국의 소위 교회지도자들은 신복음주의와 근본주의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가지고 활동해야 할 것이며 그것들이 관심을 두는 문제들을 바르게 직시하고 성경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특히 신복음주의의 타협적 죄악을 어떤 말이나 글로든지 가리우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 이단 사상들이 없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신학들을 포용하거나 자유주의적 혹은 포용적 교단들과 교제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불신실 혹은 배신이다. 적은 누룩은 온 덩이에 퍼진다. 교제의 작은 오류는 마침내 온 기독교계를 부패시키고 말 것이다. 유다왕 여호사밧 자신은 경건하였을지라도 이스라엘왕 아합과의 그의 잘못된 교제는 마침내 유다 왕국을 우상숭배의 나라로 부패시키고 말았다는 성경 역사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건전한 화합인가?
1950년대 말 에큐메니칼운동에 따른 예장 교단의 분열의 여파로 1961년 분열의 아픔을 맛보게 되었던 서문교회와 제이교회는 40년만에 설립 90주년 첫 강단교류를 하였다고 한다. 서문교회의 이성헌 목사와 이상민 목사, 그리고 제이교회의 강홍준 목사는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로 부둥켜안고 함께 찬양을 드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서문교회와 제이교회는 더 이상 남남의 교회가 아니라 형제교회가 되기를 약속했고, 이들 교회는 올해 연합체육대회와 성가대교류 등을 실시하기로 했으며, 현재 교육관을 건축하고 있는 제이교회를 위해 서문교회는 헌금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예장합동측 교회들의 잘못된 강단 교류의 또하나의 예가 되었다. 예장합동측과 통합측의 분열은 이유가 있는 분열이었고 그 이유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분명해졌다. 예장합동측은 적어도 보수신학과 신앙을 지켜오기 위해 애써왔다. 그것은 고 박형룡 박사와 박윤선 박사의 수고의 결실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장통합측은 그 노선이 달랐다. 그들은 자유주의적인 신정통주의 신학을 용납했고 성경 유오설과 모세 오경의 문서설 등을 용납하였다. 그들은 미국의 자유주의적 장로교단인 미합중국 장로교단과의 교류를 계속해왔다. 우리는 예장통합측 교단이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교단은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불건전한 교단이라는 것을 말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 우리의 분열의 이유가 있었고 우리의 교제나 강단 교류가 불가능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그런 이유가 여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교제하고 강단교류를 시행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교단의 지도적 교회, 지도적 인사가 그런 일을 앞서 행하는 것이 바른가? 이런 중대한 일을 잘못 행함으로써 파급되는 교단의 급격한 해이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예장합동측의 깨어 있는 목사들은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이런 문제를 판단하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잘못된 협력선교 개념
기독신문 '교단 활성화 기획--(4) 올바른 미래 선교 대비'라는 글에서, 노충헌 기자는 21세기의 선교 방향을 (1) 미전도종족 선교, (2)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 양육, (3) 협력선교라고 요약한다. 특히 그는 협력선교에 관하여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쉽게도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협력사역에는 인색하다. 한 예로 선교사 자녀수련회가 있다. 최근 예장통합 선교부에서 예장총회측과 선교사 자녀 수련회를 합동으로 열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 없이 거절했다. 선교사 자녀수련회를 교단의 특색에 맞취 따로 할 필요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 자녀수련회를 독자적으로 열 수 있는 단체가 국내에 거의 없다는 실정을 감안할 때 수련회 대상을 좀더 개방할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그러나 우선, 예장합동측 교단신문에서, 그것도 중요한 주제를 다루는 논설의 지면에서, 교단의 책임 있는 직책을 가진 인물이 아닌 일개의 기자가 교단의 방향에 관계되는 중대한 문제에 대해 논하였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협력선교에는 분명한 원리가 있어야 한다. 그 원리는 무엇보다 선교를 포함하여 교회의 모든 활동이 신학적 건전성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장통합측과의 교류 문제는 그 교단이 신학적으로 건전한가라는 문제에 달려 있다. 통합측은 1959년 합동측과 분리된 이후 미국의 자유주의적 장로교단인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와 계속 교류를 가져왔고, 성경유오설, 모세 오경의 문서설,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등의 자유주의 신학사상을 용납해왔다. 그러므로 예장통합측은 신학적으로 건전한 교단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장통합측과의 교제나 연합 활동 전반에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그 교단과의 협력선교는 물론, 선교사 자녀수련회 등도 옳지 않다. 교단신문의 역할과 영향은 참으로 중대하다. 교단신문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바른 방향을 지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죄가 된다.
그것이 '아름다운 연합'인가?
예장합동측 교단신문인 기독신문 2002년 1월 23일자(1쪽)는 미국의 개신교 9개 교단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는 교회'(CUIC)라는 명칭의 단체를 형성한 일을 보도하면서 '아름다운 연합'이라는 큰 글자의 제목을 붙여 보도하였다. 그 9개 교단 속에는 미합중국 장로교회, 미국 연합감리교회, 미국 성공회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40년 전에 조직된 '연합하는 교회 협의회'(COCU)라는 단체가 좀더 발전적 형태를 취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연합이 '아름다운 연합'인가? 물론 이 글을 쓴 김지연 기자는 신학적 분별력이 없는 평신도 기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잘못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교단 신문의 편집국이 그것이 아름다운 연합인지, 배교자들의 연합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신문이라는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매체를 취급하는가? 이것이 개혁신앙의 보수라는 사시(社是)에 맞는 일인가? 기독교 신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차라리 없는 것보다 못한 큰 악을 행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9개 교단의 연합은 아름다운 연합이 아니다. 거기에는 보수적 교단이 하나도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결코 인정하지 않으실 배교자들의 연합에 불과하다. 그것은 오늘날 자유주의적 에큐메니칼 운동의 일환에 불과하다.
정말 '사람의 생각'이었나?
대구 서문교회와 제이교회의 '강단 교류'에 대해 한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제이교회를 방문했던 서문교회 이성헌 원로목사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법'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만약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지금 온다면 종교개혁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어느 신부의 말을 인용하면서 "43년전 우리가 나누어진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요 사람의 생각이었음을 고백하고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교회 일치를 향하여 가자"고 역설했다고 한다.
정말 1959년의 합동과 통합의 분열이 사람의 생각이었는가?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분열을 원치 않으시고 온전한 일치를 원하시는 줄 안다. 그러나 참된 일치는 신앙 사상과 입장에 있어서의 일치이어야 하고 거기에는 용납할 수 있는 것과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합동과 통합의 분열 당시에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그리고 좀더 깊이 들어가면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사상과 입장의 첨예한 차이와 대립이 있었다. 세계 교회는 이미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에 대한 첨예한 차이와 대립을 경험하고 있었던 터이었다. 이 논쟁은 미국에서는 이미 1930년대에 겪어야 했던 논쟁이었고 우리 나라에서는 뒤늦게 그런 싸움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이 두 상이한 신앙 색깔은 화합할 수 없었고 현재도 이후에도 영원히 화합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을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역사적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믿는 자들은 그것들을 부정하는 자들을 용납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용납할 수 없었다. 어느 쪽이 분열의 실제적 원인자이었든지 간에, 합동과 통합의 분열은 불필요했던 인간적 싸움이 아니라 불가피했던 진리의 싸움이었고 갈등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단지 인간의 생각으로 돌려버리는 것은 당시의 자유주의적 입장과 보수주의적 입장의 갈등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뉘앙스가 있다. 만일 오늘날 고 박형룡 박사가 살아계셨더라면 그는 참으로 통분하며 이런 발언을 반박하셨을 것이다. 합동측 교단을 세웠던 보수적 선진들의 그 노력과 수고가 과연 인간적 생각을 위한 일들이었단 말인가? 오늘날 합동측 교단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왜 이런 변질된 신앙 입장을 보이고 있는가? 합동측은 정신을 차리고 깨어야 한다. 예장 통합측은 초창기부터 교단 신학교(장로회 신학교)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용납해왔다. 이미 그 교단의 상당수 목사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이고 있는 줄 안다. 문제는 자유주의 신학이 기독교의 용납할 만한 현대적 표현 양식인가, 아니면 기독교의 지극히 변질되고 악화된 하나의 이단인가에 달려 있다. 자유주의 신학이 이단이라면 자유주의를 용납하는 예장 통합측 교단은 교제와 일치의 대상이 되기에 합당치 않다. 자유주의 신학은 교회 역사상 비교할 수 없는 무서운 이단이다. 그러므로 통합측 교단에 대한 무분별한 용납은 매우 심각한 오류이다.
고신측
고신 교단에 분별력이 있는가?
기독교보 1997년 7월 5일자(3쪽)에 고신총무 심군식 목사는 "연합운동의 자세와 방향"이라는 글에서 사회적 문제와 사이비 이단이 판을 치는 현실에서 한국교회는 보수와 진보의 두 성향을 구별하여 힘을 약화시키지 말고 일치 단합된 연합 운동과 사업으로 현실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고신총무는 2천년 교회역사상 전무한 현대 자유주의 교회들의 사상적 변절과 혼란을 알면서 하는 말인가? 사회문제를 위해서는 배교자들과도 연합할 수 있는가? 더욱이 오늘날 가장 심각한 사이비가 자유주의 신학임을 아는가? 성경은 이단자들과 교제하지 말고 물리치라고 교훈하였다(롬 16:17; 유 3). 고신 교단은 초기에 가졌던 바른 분별력을 회복해야 한다.
고신 총회, 2000년 장로교 대회에 참가하기로
기독교보 2000년 4월 1일자(1쪽)에 의하면, 예장 고신 총회 임원회(총회장 조긍천 목사)는 2000년 9월 서울에서 개최될 한국 장로교 대회에 교단적으로 참가하기로 했고 한국의 장로교가 함께하는 연합 행사에 교단이 적극 참여하여 장로교 연합과 성장에 이바지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신 총회 임원회의 이러한 결정은 비성경적 에큐메니칼 운동의 입장이다. 고신 총회는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는 본래의 순수한 입장을 지켜야 한다.
고신 교단신문의 잘못된 연합정신
예장 고신 총회의 교단신문인 기독교보 2002년 1월 12일자 사설에서 "연합운동에서 고신의 위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이는 작년 12월 28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대표회장 선거에서 고신의 후보가 패배한 것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이번 선거를 통하여 고신이 연합운동에서 해야 할 일과 한계를 분명 자각하고 반성해야 한다. . . . 고신은 신학적으로 다른 보수교회처럼 교회의 연합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대단히 심각한 문제인 것은, 신학적으로 우리의 교회관은 교부들의 신학적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다. 교부들의 신앙고백은 우리는 하나의 거룩한 사도적 공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한다. 이 고백 속에 교회관의 핵심이 담겨있다. 교단은 많으나 영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이다. 우리는 '분열주의자'도 '분열주의적'도 아니라는 것을 말로 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고신 목사 중에 연합에 인색한 자들이 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개선해야 한다. . . . 우리는 연합운동에 내놓을 만한 리더십[지도력]도 돈도 없다는데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3쪽).
나는 위의 글을 읽고 연합에 대한 고신 교단신문의 정신이 잘못되었음을 느끼며 심히 통탄한 마음을 가진다. 우리 나라의 진실한 많은 목사들은 총신이 넓은 길로 갈지라도 고신만은 성경 교훈에 바로 선 좁은 길을 걷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종종 고신의 목사들이 잘못된 연합 운동에 관련된 것을 볼 때에 실망적이었으며 이제 이런 교단신문의 사설을 읽게 되니 더욱 실망이 크다.
고신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연합적 인식 혹은 연합 정신의 부족이 아니고 잘못된 연합 정신을 버리고 바른 연합 정신을 가지는 것이다. 사설을 쓴 이는 오늘날 교회들이 하나 되는 것이 바른 교회관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교회관이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천주교회의 배교적 사상보다 더 배교적이다. 자유주의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믿어왔던 성경의 신적 권위,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대속(代贖), 육체적 부활, 승천, 재림, 마지막 심판과 지옥, 죽은 자들의 부활 등을 믿지 않는 명백한 이단이다. 천주교회로부터의 분리가 단순히 '분열주의'가 아니듯이, 자유주의 신학을 고의적으로 포용하는 배교적 교단들로부터의 분리는 이 시대적 요청이다. 바른 연합은 자유주의 신학을 배제한 연합이다.
예장 통합측은 자유주의 신학을 고의적으로 포용하는 교단이다. 그 교단은 건전한 교단이 아니다. 그런데 고신은 어찌하여 그런 교단과의 교제를 문제 있는 교제로 보지 않고 오히려 간절히 사모하는 것이며 그들에게 인정을 받기를 원하는 것인가? 고신은 어찌하여 '분열주의'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자유주의 교단들과의 교제의 단절을 오히려 악으로 간주하는 것인가? 고신의 초기 선교사들은 소위 메이천파 선교사들이라고 불리웠다. 메이천은 기독교와 자유주의의 분리는 시대적 요청이라고 확신하였었다.
오늘날 고신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잘못된 교제를 청산하고 한국 교계 안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배제한 교단들 간의 교제를 주도하는 것이다. 한기총은 한국의 보수교단들의 연합체가 아니다. 그것이 한국의 보수교단들의 연합체가 되려면 예장 통합측을 배제해야 한다. 그러나 그 지도자들은 그것을 배제할 생각이 전혀 없어보이며 오히려 오래 전부터 기장과 기감 같은 자유주의 교단들까지 받아들이려는 생각을 보여왔다. 이런 한기총이 어찌 보수교단들의 연합체가 되겠는가? 고신은 한기총을 갱신하든지 참신한 보수교단들의 협의체를 만드는 일에 중심이 되어야 한다.
고신 교단 총무의 사상
고신 총무 전호진 목사는 기독교보의 교단 설립 50주년 기획 특집의 "외국 교회와 고신"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의 신앙 사상과 입장을 나타내었다. 첫째로, 그는 현대교회의 연합운동과 오순절 운동의 문제점에 대한 비평적 인식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는 20세기 기독교회의 주요한 특징과 현상을 선교운동과, 연합운동 혹은 에큐메니칼 운동과, 오순절 운동 등 세 가지로 요약하면서, "그런데 복음적 개혁주의 기독교는 선교운동은 나름대로 발전시키지만 신학적 정통성을 강조한 나머지 연합운동에 인색하였고 오순절 운동을 멀리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20세기의 특징으로서의 연합운동 혹은 에큐메니칼 운동은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하는 넓은 운동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그것은 건전한 성경적 연합운동이 아니다. 그러므로 보수적 교회들이 그런 류의 연합운동에 대해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었다. 또한 오순절 운동도 성령의 역사에 대한 건전한 이해에 기초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개혁교회의 바른 입장이다. 그런데 보수적 교회의 바른 입장을 '연합운동에 인색하였고 오순절 운동을 멀리하였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인가?
둘째로, 그는 국제기독교협의회(ICCC)를 신학적으로 편협하다고 평가한다. 그는 "ICCC는 너무 지나친 신학적 편협성으로 인하여 대중적 지지를 얻는데 문제가 많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도대체 국제기독교협의회의 신조나 강령을 알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국제기독교협의회의 신조와 강령은 지극히 성경적이고 정통적이다. 거기에 어떤 '너무 지나친 신학적 편협성'이 있다는 것은 자유주의자나 신복음주의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표현이다. 그것이 그의 말대로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엘리야나 미가야가 그러했듯이 대중의 사상이 넓고 해이해져 있었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그 지도자 칼 매킨타이어 개인의 부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제기독교협의회의 입장을 '너무 지나친 신학적 편협성'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경적 기독교회는 성경적 근본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자들로부터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해야 한다.
셋째로, 그는 진리 운동의 규모에 대해 인간적 위축감을 보인다. 그는 고신 총회가 국제개혁파 교회대회(ICRC)에 가입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보이기보다는 "그런데 ICRC는 너무나 적은 개혁파교회의 대회인지라 세계적 연합기구라 하기에는 너무나 미흡한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세계의 기독교계의 현실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세계 기독교회는 지금 배교와 혼란의 와중에 있다. 많은 교회들이 이미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저버렸다. 자유주의 이단 사상은 역사적 신학교들에 침입해 들어와 있고 그 신학교들을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작은 연합기구라 할지라도 바른 정신, 바른 입장에 서 있는 기구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심히 귀한 것이다. 성경 역사나 교회 역사에 있어서 진리 운동은 수와 규모의 크고 많음에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작은 것을 귀히 여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지 못할 때 악을 포용하고 악과 타협하는 인본주의적 태도가 나오는 것이다.
넷째로, 그는 미국의 자유주의 신학자를 교회 활동의 한 모범으로 제시한다. 그는 말하기를, "50년대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 교장을 30여년간 봉사한 존 매카이 박사는 명예박사를 무려 25개나 받았는데, 그는 세계적 신학자로, 선교학자로 나아가서는 WCC를 조직하는데도 큰 역할을 하였다. 앞으로는 고신 교단도 세계적 안목을 가진 지도자가 절대 필요하다"고 하였다. 50년대의 프린스톤 신학교는 자유주의 신학교이며 존 매카이는 자유주의 신학자이다. 또 WCC는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불건전한 단체이다. 어떻게 한국의 대표적 보수 교단의 총무가 자유주의 신학교의 자유주의 신학자를 모범으로 들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보수적 교회들에 인재가 없으면 없는 대로 가야 한다. 자유주의 교회들에게서 모범을 찾을 필요가 없고 찾아서도 안된다. 하나님 앞에서는 세계적 활동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바르고 신실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고신 교단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교단 지도자들과 특히 교단 총무는 고신의 보수적 신앙 입장을 바르게 이해하고 지킬 만한 자가 되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고신의 순교자적 뿌리는 무의미해지고 말 것이다. 고신은 본래 그런 교단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고신은 실망적인 일이 많다. 아직도 허순길 박사 같은 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주장과 입장이 고신 교단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고신은 본래의 정신과 분별력과 입장을 회복해야 한다.
이성구 교수의 연합주의
고신 기관지인 기독교보의 교단 설립 50주년 기획 특집에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인 이성구 목사는 "한국교회 연합운동과 고신"이라는 글에서 연합운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노출하였다. 그러나 그의 견해는 비성경적이다.
우선, 그는 한국의 초대 선교사들의 교파적 확신을 무시하고 매우 불필요한 것들이 한국에 이식된 것처럼 생각한다. 그는 한국교회가 여러 교파로 나뉘인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면서 "서방의 교회전통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옮겨졌을 따름이다. 얼마든지 하나의 '한국기독교회'가 탄생할 수 있었으나 이미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 . .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등의 달라져 있던 전통의 교회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마치 우리가 교파적 차이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교파적 차이는 역사상 불가피하였다. 교파적 차이점들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계속 필요하지만, 그것들을 무시하고 한 교회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천진난만한 생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교리적 통일성이 없이 하나되는 것은 겉보기의 하나에 불과하고 내면적 갈등은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파가 나뉘거나 새 교파가 형성되는 것은 단순히 인간적 연약 때문이 아니었다. 적어도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순복음 등의 교파는 분명한 교리적 확신의 차이 때문에 생겼다. 신학 교수가 그런 교파적 확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어떻게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는지 매우 의아스럽기만 하다.
또 그는 예장 합동측과 통합측의 분열을 교회 정치 혹은 교권 장악을 위한 싸움의 결과라고 본다. 그는 말하기를, "고신과 기장이 떼밀려 나가고 남은 장로교가 다시 승동측과 연동측으로 분열된 것을 두고 흔히 교회 정치와 관련된 것으로 설명한다. WCC에의 가담여부가 분열의 원인이라는 것이 밖으로 알려진 분열의 이유이다. 그러나 '총신 90년사'를 쓴 김요나는 승동측(합동)과 연동측(통합)의 분열의 이유를 네 가지로 들고 있고, 그 중에 WCC와의 관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적인 계략을 동원하여 교권을 장악하기 위한 싸움의 결과 일어난 분열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주의적 안목을 가졌거나 흐려진 보수주의적 안목을 가진 자의 발언과 같다. 자유주의 자들은 WCC문제가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문제삼은 보수주의적 합동측 인사들의 주장에 결정적 중요성과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또 오늘날 분별력 없는 보수주의자들도 WCC 에큐메니칼 운동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므로 그들에게는 WCC가 분열의 정당한 명분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고신의 입장이었는가? 보수주의의 본질은 교리의 순수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것이다. 고신의 보수적 입장은 어디로 갔는가? 어찌하여 보수주의적 교단의 신학교수가 교회의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선진들의 투쟁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가?
그 다음, 더욱 본격적으로, 이 교수는 자신의 연합의 생각을 피력한다. 그는 최근 고신의 인사들이 연합운동에 적극 참여함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최근 들어 우리 고신은 한기총, 한장연(한국장로연합회) 등에서 상당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 . 최해일 목사가 사상 처음으로 한기총 대표회장에 출마하고, 여러 교회들이 회장에 당선되면 활동을 후원하기로 합의하면서 연합운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하려 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고신이 연합운동의 주류에서 멀리 있는 것을 안타갑게 생각한다. 그는 말하기를, "대한성서공회가 '개역개정판 성경'과 '표준새번역'을 발간할 당시 우리 교회에서 파송한 오병세 박사를 위원장으로 세우기도 했지만, 여전히 KNCC 비가맹 교단인 고신은 소위 한국교회의 주류적 흐름과 상관이 없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한 100주년 기념사업회의 사무총장을 맡았던 김경래 장로, 한국 시민운동의 대부격인 손봉호 교수, '한국기독교회사를 정리하고 민족통일에 대한 건전한 기독교적인 이론을 집성해 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만열 교수 등 연합운동에 기여한 개별적인 고신인들의 활동을 칭찬한다. 또 나아가, 2001년 11월 한목협을 통해 창설된 22개 교단장 연합기구와, 그 기구를 통해 시작된 '한국교회 대표기구 단일화' 운동에 고신의 젊은 목회자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는 것, 또 각 지역에서 고신의 목회자들이 지역교회 연합운동, 연합사업에 활발하게 동참하고 있는 것을 매우 고무적인 일로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이 교수의 사상이 오늘날 고신의 사상이라면, 그것은 성경적으로 비평받아야 마땅하다. 연합 운동에는 원리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의 가장 큰 문제는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이다. 자유주의는 교회 역사상 전무한 가장 파괴적인 이단사상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세계적으로 역사적 대교단들 속에 심각히 침입해 들어와 있다.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비성경적이라고 강력히 비평하였던 것이 성경적인 보수교회들의 입장이었고 고신의 입장도 그러하였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이 죽었는가? 교회들이 자유주의 이단을 제거하고 새로워졌는가? 어떻게 보수교단의 인사들과 신학교수가 정신 없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가?
미국장로교회
미국 장로교단(PCA): 창조론, 전투에서의 여성 문제
가장 급성장하는 미국 장로교회는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장로교단이다. 그 교단은 1973년 자유주의적인 합중국 장로교회(남장로교회)로부터의 분열로 시작되었고, 1986년 신복음주의적인 미국 복음주의 협회(NAE)에 가입하였다. 미국 장로교회는 지난 7월 연례 회의에서 군대에서의 여성들의 역활에 대해서와, 창조 기사가 문자적 24시간의 6일로 구성되었는지를 결정하기 위한 연구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그 교단은 또한 십년 만에 처음으로 새 서기를 선출하였다.
한 통계에 의하면, 미국 장로교회는 1995년에 1,299교회와 21만 세례 교인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이 교단은 미국에서 장로교단으로서는 자유주의적인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 1995년에 11,361교회, 세례 교인 266만) 다음으로 크다. 또 이 교단은 한국 장로교회들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카버넌트 신학교, 리폼드 신학교 등과 연관되어 있다(웨스트민스터 신학교는 이사들이나 후원자들이 개인적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음). 우리는 이 보수적인, 복음주의적인 미국 장로교회가 건전한 입장을 취하고 건전한 방향으로 진행해 주기를 바라지만, 1986년 신복음주의적인 NAE에 가입한 이후 그 방향이 더욱 포용적이게 되고 있다고 느껴왔다. 그 교단의 지도자들은 더 이상 빌리 그레이엄의 포용적 전도 방법을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승인하고 거기에 동참하여 왔다.
미국남침례교
남침례교회의 프리메이슨 문제
수천명의 남침례교회 목사들과 수십만명의 남침례교회 평신도들은 프리메이슨(Freemason)의 회원들이다. 프리메이슨은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행위 구원을 가르친다. 프리메이슨은 몰몬교와 똑같이 반(反)기독교적이다. 남침례교단은 그 목사들에게 프리메이슨을 떠나라고 요구해야 한다. 한편, 남침례교단의 '보수주의자들'은 남침례교 자유주의자들과 '공통 분모'를 위해 대화를 하고 있다.
침례교세계연맹(BWA)의 영웅들
남침례교회는 침례교세계연맹의 주요 회원 교단이다. 데스몬드 투투는 1998년 침례교세계연맹 모임에서 연설했다. 침례교세계연맹의 1999년 10월-12월호 뱁티스트 월드는 빌리 그레이엄을 "금세기의 가장 위대한 전도자"라고 높여 말한 글을 실었고, 본훼퍼와 마틴 루터 킹과 오스카 로메로와 같은 이들을 "20세기의 선지자들"이라고 불렀다.
미국 남침례교인들의 연합 활동
우리는 기쁨이 아니고 슬픔을 가지고 보수주의자들이 인도하는 남침례교단의 문제점들을 모든 측면에서 계속 보도한다. 어떤 남침례교단의 친구들은 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타협을 향한 경향은 늘어나고 있고 줄어들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주목되는 최근의 한 사건은 6월 11일 버밍햄에서 열린 '오순절 2000' 행사이었다. 7월 13일 앨러배머 뱁티스트는 이 에큐메니칼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그것은 한 신앙 가족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모인 많은 교단들의 가수들, 무용수들 및 기타 연주자들을 포함했다. 버밍햄 침례교회 협회와 기타 몇 지역의 침례교회들이 참여했다." 버밍햄의 사우스사이드 침례교회의 그리스도인의 성장 담당 부목사인 페기 샌더포드는 말하기를, "우리의 신앙 체제들이 다르지만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에서 연합되어 있다"고 했다. 참여자들은 침례교인들, 천주교인들, 그리스도의 교회와 자유주의적인 대교단들의 대표자들을 포함했다. 워터 버가트 신부는 말하기를, "교리는 분리시키나 봉사는 연합한다. 우리가 감히 하지 않는 것은 경쟁자들처럼 행동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타 문제되는 견해들
진화론의 영향
복음주의와 진화론의 영향
크리스챤 뉴스 1998년 7월 6일자는 신비주의(occult)에 대한 데이브 헌트의 최근의 책을 여러 곳 인용하면서, 로마 카톨릭 교회, 교황,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빌리 그레이엄, 프로미스 키퍼스 등 기타 많은 교회 단체들이 오늘날 진화론(進化論)과 함께 나아감을 보여준다. 오늘날 6일 창조를 옹호하는 자들은 거의 없다. 제임스 답슨 같은 복음주의자 조차도 유신론적 진화론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 놓은 휴 로스의 책들을 선전하여 왔다. 진화론이 온 세계와 세계 교회들에 끼치는 영향은 참으로 큰 것 같다. 많은 복음주의적 인사들과 단체들이 어느 정도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타협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은 명백히 성경 진리와 배치되는 사상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밝히 증거한다.
이단포용
세계적 하나님의 교회(Worldwide Church of God)의 두 얼굴
세계적 하나님의 교회가 허버트 암스트롱의 어떤 이단적 교리들을 버렸고 이제 삼위일체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칭찬할 일이다. 그 교회는 여러 방면에서 복음주의적으로 보이며 최근에는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회원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 교회는 여전히 영원한 지옥 형벌의 교리를 거절하고, 유대교적 안식일 준수를 고집하고, 죽은 후의 구원의 두번째 기회에 대한 비성경적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지옥에 대한 그들의 결함 있는 교리는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7년 8월 12일자에서 그 교회의 한 목사 교육 이사에게서 나타난다. 오늘날 복음주의는 오류를 포용할 만큼 넓어졌다.
사회사업관
사회복지사업이 교회의 임무인가
예장 합동측의 기독신문에 의하면, 총회의 중점사업의 하나로 총회 산하에 총회사회복지위원회가 창립되었고 그 초대회장에 사랑의 교회의 옥한흠 목사가 추대되었다고 한다. 그 신문에 의하면, 총회 사회복지사업 추진위원회 주관으로 교단산하 목회자 장로 사회복지전문가 등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창립예배에서 참석자들은 "새로운 목회의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대에 사회복지는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고 한다.
사회복지사업이 교회의 '임무,' 그것도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가? 만일 그러하다면, 전통적 교회들은 가장 기본적인 임무를 망각하고 소홀히 한 심히 불성실한 교회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회복지사업은 교회의 임무가 아니며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더더욱 아니다.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 보수 교단의 활동과 지도적 인물들의 생각과 교단 신문의 논조가 사회복지사업을 교회의 가장 기본적 임무로 보고 있다면 보통 큰 일이 아니다. 그러한 생각이 옳다면, 교회들은 이제까지 매우 잘못되었고 지금도 다수의 교회들은 매우 잘못된 상태에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사회복지사업이란, 예를 들면, 유기된 아이들, 독거 노인들, 소년소녀 가장들을 돌아보는 사업, 고아원 사업, 양노원 사업, 어린이집이나 탁아소 사업, 가정폭력 문제, 노숙자 문제, 정신박약아들, 지체장애인들 등을 위한 사업 등 사회의 정신적, 신체적, 물질적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사업을 일컬을 것이다. 이런 사업들은 다 선하고 좋은 일들이며 오늘 사회에서 매우 필요한 일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가 이런 일들에 관여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며, 또 관여해야 한다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관여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교회의 임무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교회관에 있어서 매우 근본적인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성경에 근거하여 3대 임무를 말해왔다. 첫째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임무요, 둘째는 자체를 향한 영적 성장 혹은 양육의 임무요, 셋째는 세상을 향한 전도의 임무이다. 가난한 자들의 구제나 병자들의 방문은 교회 안에서는 사랑을 실천하는 일로서 초대교회로부터 이루어져왔지만, 교회 밖에서는 결코 일차적이거나 독립적인 일로 행해지지 않았다. 교회는 교회 밖에서 즉 세상에서는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의 일에 전심전력하였고 그 과정에서 필요를 따라 구제하고 병자들을 돌아보았을 뿐이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의 면모이기도 하였다. 주께서는 결코 전도와 별개의 사회복지사업을 행하신 일이 없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오신 목적이 사회복지사업이라고 말씀하신 적도 없다. 그는 오직 전도하기 위해 혹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 오셨다고 자신의 임무를 분명히 말씀하셨다(막 1:38; 눅 5:32). 그가 병자를 고치신 것도 대부분 그를 믿는 자들을 고치신 것이었고 그가 떡 기적을 행하신 것도 그의 말씀을 듣기 위해 여러 날 그를 따랐던 무리를 위한 부득이한 행위이었다(마 14:15-21; 15:32-38).
사도행전에 밝히 나타나 있는 대로,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명령과 모범을 따라 오직 영혼 구원의 전도에 전심전력하였다. 그들이 성도를 구제한 것은 믿는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의 실천 행위이었다. 그들은 전도 이외에 혹은 전도와 별개로 사회복지사업을 생각하지 않았다. 개혁교회들을 포함한 전통적 교회들은 이런 성경적 생각을 따라 행해왔다. 그들은 예배와 영적 성장과 전도의 일에 전력하여 왔다.
그러나 자유주의 교회들이나 자유주의 영향을 받은 단체들, 예컨대 YMCA나 YWCA 같은 것들은 달랐다. 그것들은 사회복지사업에 힘썼다. 사실 그들에게 있어서 영혼 구원의 복음 전파는 별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사함과 칭의, 지옥 형벌로부터의 구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이 자유주의의 생각에 영향을 받아 교회의 임무에 대한 바른 생각을 버리고 변질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사회복지사업이 교회가 그 동안 매우 큰 실수로 소홀히 하였던 일인 것처럼 말하고 있고 심지어 사회복지사업을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역사적이지도 않다. 전도의 한 방편으로서의 구제나 봉사가 아닌 구제나 봉사는, 비록 그 자체가 선한 일일지라도, 주께서 교회에 명하신 임무가 아니다. 물론 교회는 그런 일을 기회가 있을 때에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또 신자 개인은 얼마든지 힘 있는 대로 그런 선한 일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의 모임인 단체로서의 교회는 주께로부터 받은 임무와 사명이 있다. 그것은 앞에 말한 대로 예배와 영적 성장과 전도의 임무이다. 특히 주께서는 교회에게 전도의 대 임무를 부여하셨다(마 28:19; 행 1:8). 그러므로 전도는 세상 속에서 그리고 세상을 향해 교회가 가지는 특수한 임무, 곧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mission)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을 바로 알고 교회의 임무와 사명을 바로 깨달아 바른 목회, 바른 교회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사회복지사업은 '이 시대에 요구되는 목회 패러다임'이 아니고, 목회가 무엇인지, 교회 활동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잘못된 목회 패러다임이다. 주의 종들과 교회들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고 바른 일들을 해야 한다.
천주교회관
빌 매카트니의 천주교회관
프로미스 키퍼즈 창설자인 빌 매카트니는 나이트 리더 뉴스 서비스의 리챠드 쉐이닌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신은 천주교회를 합법적인 기독교회라고 간주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물론이죠'라고 답변하였다. 데이빗 클라우드는 논평하기를 "매카트니가 로마 천주교회가 거짓된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고 하였다.
누가 천주교인들에게 전도할 것인가?
오늘날 누가 복음을 가지고 천주교인들[로마 카톨릭 교인들]에게 갈 것인가? 많은 선교 기관들과 교회 밖의 단체들이 이제 타협된, 무력(無力)한 복음을 가지고 세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천주교인들과 연합하여 일한다. 복음 전파(Proclaiming the Gospel)지 1997년 6월호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천주교회는 이제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대회들에 참여하고 있다. 전도 대회를 선전, 촉진시키고 천주교 상담자들을 사용하는 댓가로, 그레이엄은 믿음을 고백하며 앞으로 나오는 모든 천주교인들을 그들의 천주교회들에로 돌려보내겠다고 지역의 주교와 약속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어린아이들은 이와 같이 성경적 복음과 그것을 전파하는 자들을 정죄하는 이리들에게로 의탁된다. 촬스 콜슨, 빌 브라잇, 제이 아이 패커 및 다른 복음주의자들, 곧 전도보다 일치를 위해 더 바쳐진 저들은 1994년 기본적으로 서로의 양무리를 '개종시키지' 않기로 천주교인들과 합의하여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ECT)라는 문서에 서명하였다. 이와 같이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천주교인들에게 전도하기를 중단하고 그들을 동반자로 여겨 그들과 함께 일하기를 선택한다. 그러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잘못된 입장과 태도에 항거하며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을 천주교인들에게도 전할 것이다.
테레사 수녀는 기독교인인가?
천주교의 테레사 수녀가 1996년 9월 별세하였다. 그는 인도의 극빈자들을 섬기는 '많은 놀라운 일들'을 하였다. 그는 노벨 상 수상자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다"고 믿는 보편구원론자이었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신에게든지 당신이 평안하게 느끼는 신에게 기도하시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에이즈 환자들에 대해 말하기를, "그들 각 사람은 고통 당하는 자로 위장된 예수다"고 하였다. 그는 낙태를 강하게 반대하였으나, 그는 "우리가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멸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사상들은 비성경적이다. 무엇보다, 그가 충실한 천주교인이라는 사실은 그가 참된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리 그레이엄이나 촬스 콜슨 같은 복음주의자들은 그를 아낌 없이 칭송하였다. 촬스 콜슨은 그를 '위대한 그리스도인'이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매'라고 불렀다. 이것은 진리를 혼동시키는 잘못된 발언들이다. 정통 천주교인들은 복음 진리를 부정하는 이단자들이요 마리아를 그릇되이 숭배하는 우상숭배자들이다.
미국을 구하기 위해 천주교인들과 연합?
오늘날 여러 교회들과 단체들에서 유행하는 많은 이상한 교훈들과 경험들이 있다. 어떤 곳에서는, 어떤 심각한 주제가 설교되고 있을 때, 사람들은 개들과 같이 짖고, 사자들과 같이 으르렁대고, 웃는 발작증세를 보이며 마루에 넘어진다. 다른 한편에서는,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의 후예이며 참으로 개혁주의적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미국을 구하기 위해 로마 카톨릭 교인들과 함께 협력하는 것을 옹호한다.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 국가를 구하기 위해 로마[천주교회]와 협력하는 것을 옹호할 수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놀랄 일이다. '영혼의 양식'이라는 란에서, "잃은 땅을 다시 얻기"라는 제목 아래--부제목은 "천주교인들과 개신교인들은 사회 문제들에 관해서 연합할 수 있다"인데--월드지 기고자 매트 다니엘즈는 이런 한 '이상한' 혼합을 제시한다. 브레크빌 대학의 학장 로날드 쿡 박사는 위의 사실을 언급하면서 천주교회의 거짓된 교훈들을 반박하고 개혁파 내의 재건주의자들이 얼마나 천주교의 예수회 회원들과 비슷한지 보여준다. 그는 말하기를, 사회를 정화시키기 위해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우상숭배를 우리가 대강 처리하지 말고 공격해야 할 가장 큰 악들 중의 하나임을 보아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과 협력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제 교도소 협의회 회장 마이클 티미스(Michael Timmis)
미국 디트로이트의 사업가 마이클 티미스는 설립자 척 콜슨을 이어서 국제 교도소 협의회의 회장으로 지명되었다. 척 콜슨은 명예 회장으로 이사회에 머물러 있다. 티미스는 로마 천주교인이며 프로미스 키퍼스 이사회에서도 봉사했고, 1997년 10월 4일 미국 워싱턴 D.C.에서의 프로미스 키퍼스 집회에서 연설했다. 주의 신실한 종들은 주의 일을 하되 바른 지식과 분별력을 가지고 해야 한다!
커버넌트 대학과 로마 천주교회
1999년 8월, 미국의 성경장로교회가 통과한 한 결의안은 이렇게 진술했다: "미국장로교회(PCA) 총회가 이사회를 선출하는 커버넌트 대학은 한 합창단을 동부 유럽으로 보냈다. 그 합창단은 거기에서 두 차례 로마 천주교회들의 예배에서 노래하였다. 한번은 미사를 하는 동안 노래하였다." 보수적인 장로교회 대학의 학생들이 이런 분별력 없는 행동들을 한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테레사 수녀와 복음주의자들
교황이 테레사 수녀를 성자로 추앙할 때, 그 여자는 여전히 복음주의자들의 존경을 받을 것인가? 그가 마리아를 그리스도인들의 협력 구속자요 협력 중보자요 보혜사로 높이며 '캘커타의 성 테레사'를 칭송할 때, 잭 반 임페와 척 콜슨과 제임스 답슨 같은 복음주의자들은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그들은 다 테레사 수녀를 참된 신자라고 믿었다고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다원주의의 영향
김영한 교수의 '변혁주의'의 오류
오래 전 숭실대학교의 김영한 교수는 한국 복음주의 협의회 모임에서 "종교다원주의와 그리스도의 유일성"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였다. 그는 그 강연에서 자유주의 신학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와 타종교의 공통점과 연속성을 취하는 연속주의적 태도의 요소를 취하고, 타종교를 우상숭배요 미신이라고 보는 근본주의 신학의 배타주의적 태도를 반대한다고 말하였다. 그는 종교다원주의는 수용하지 않지만, 타종교와의 만남과 대화를 적극 수용하고 "타종교의 경건성과 도덕성을 진지하게 배우며 타종교의 종교적 확신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소위 변혁주의적 개혁신학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비록 우리가 모든 믿지 않는 자들과 같이 타종교인들도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죄인들로 여겨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하지만, 타종교 사상 자체는 하나님의 뜻에서 멀리 떠난 우상숭배적이요 미신적이고 부도덕한 것이라고 말하며 그들에게서 무엇을 배우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가르친다. 시편 96:5, "만방의 모든 신은 헛 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신명기 12:30, "너는 스스로 삼가서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들지 말라. 또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 이르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위하였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예레미야 10:2, 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열방인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 말라." 타종교인들은 기독교인들이 불쌍히 여기며 복음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전도 대상자들이다.
노만 빈센트 피일(Norman Vincent Peale) 100주년 기념 축하
1998년 6월, 미국에서는 약 2천명의 예배자들이 1993년 95세로 사망한 노만 빈센트 피일의 100주년 기념을 축하했다. 피일은 1984년 필 도나웨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말했다: "거듭나는 것은 필요치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로 가는 여러분의 길을 가지고 있고 나는 나의 길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한 신도교 사당에서 영원한 평화를 발견했습니다. . . . 그리스도는 그 [여러] 길들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계십니다". 피일은 1980년 한 몰몬교 총회장 생일축하모임의 주 연사이었고 몰몬교 지도자들을 칭찬하였다. 그는 프리메이슨 회원이며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신성, 및 부활을 부정했지만, 빌리 그레이엄과 기타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칭찬을 받았다.
캠폴로와 예수님의 유일성
제릴 팔웰과 함께 한 CNN의 크로스파이어 시간에, 신복음주의자 토니 캠폴로는 예수께서 천국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기를 거절했다. "나는 예수께서 오직 그리스도인들 속에만 살아계신다고 확신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