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론) 여러 시대의 교회관

2009.12.06 02:40

김반석 조회 수: 추천:

  제 64 과   여러 시대의 교회관
선지자선교회

1, 교부 시대의 교회관

1)초기 교부들과 변증가들은 일반적으로 교회를 성도의 교통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유로 선택하신 백성으로 표현하였다.

2)이단들의 발생으로 제2세기 후반부터는 참된 보편적 교회의 유형적 특징들을 제시하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3)그리하여 마침내 교회는 하나의 외형적 단체로 생각되었으며 사도들의 후계자인 감독에 의해 지배된다고 생각되었다.

4)교회의 보편성(普遍性)이 강조되면서 지교회들은 하나의 보편적 교회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5)교회의 속화와 부패로 여러 종파 운동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제2세기 중엽에는 몬타너스 주의
제3세기 중엽에는 노바티안 주의
제4세기 초엽에는 도나티시트 주의가 일어났는데 그들은 한결 같이 교회 회원들의 성결을 참된 교회의 표지(標識)로 삼았다.

6)초대 교부들은 이 종파들에 대항하여 교회의 감독제를 점점 더 강화하였다.

키프리아누스는 감독제 교회를 발전시킨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가 감독들을 사도들의 참된 후계자로 보고 감독단은 교회의 통일성을 구성하는 것으로 말하였다. 이 감독에게 복종치 않는 자는 교회에서 끊겨지고 구원까지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7)어거스틴은 교회관에 있어서 일관성을 보이지 못했다. 도나티스트 파와의 논쟁은 그로 하여금 교회의 성질에 대하여 보다 더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그는 교회를 피택자들의 단체 곧 하나님의 영을 모심으로 참된 사랑을 특성으로 가진 성도들의 교제로 생각하는 한편 일반적으로 키프리아누스의 교회관도 지지하였다. 참된 교회는 감독직의 계승에 의하여 사도적 권위가 존속되는 보편적 교회라는 것이다.


2, 중세기의 교회관

1)키프라누스와 어거스틴에 의해 발전된 교회론의 체계는 중세기의 스콜라 학자들에게 인계되었으며 트랜트 회의 이후에 그들 계승자들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그리고 교회론에서는 거의 발전을 보지 못한 교회의 성직제도도 치밀한 조직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교회 조직의 발전에 따른 결과였던 것이다.

2)어거스틴의 성도의 교통으로서의 교회관은 외형적 조직체로서의 교회관에 가리워 졌다. 휴고는 교회와 국가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치하기 위해서 세우신 두 권력이라 하였다.

3)양자는 다 같이 체제에 있어서는 군주적(君主的)이지만 교회가 보다 더 높은 권력을 가짐은 교회는 사람의 구원을 돕고 국가는 현세적 안녕 만을 위한 권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회의 원수(元首)인 교황에 관한 교리는 점점 더 발전하여 교황은 사실상 절대 군주가 되었다.

4)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동일시한 교회관은 가정, 학교, 경제, 과학, 사회, 및 문화의 전 영역을 교회의 지배 아래 두려고 하였다. 이것은 점진적으로 교회의 세속화를 몰고 왔다. 마침내 교회는 죄인의 구원보다 사회,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더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결국 세속 주권자들에 대한 교황의 지배권을 주장하도록 만들었다.


3, 종교 개혁기의 교회관

1)종교 개혁자들은 로마 카톨릭(천주교)의 교회관을 따르지 않았다.

루터는 교회의 본질을 신자들의 영적 교통에서 찾았다. 또한 그는 모든 신자들이 제사장직을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 하나의 교회에 유형성(有形性)과 무형성(無形性)의 두 면이 있는 것을 보았다. 무형교회가 유형하게 되는 것은 성직제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말씀의 선포와 성례의 순수한 시행에 의하여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유형교회는 항상 경건한 회원들과 악한 회원들이 혼합되어 있음을 인정하였다.

2)그러나 교회가 국가에 대하여 우위를 가진다는 로마교회의 관념에 대한 반대의 주장으로 교회는 말씀 전파와 성례전 시행 이외의 모든 일에 있어서 국가에 종속하게 되었다.

3)칼빈과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도 어느 정도 교회가 국가에 굴복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재세례파는 교회와 국가의 완전한 분리를 주장하였다.

4)칼빈과 개혁파 신학자들은 교회의 본질을 루터와 같이 성도의 교통에서 찾았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의 통일성을 성직, 말씀, 성례와 같은 객관적 규례에서 찾지 아니하고 주로 신자들의 주관적 교통에서 찾았다. 그들은 교회의 참 표지(標識)를 말씀과 성례에서뿐만 아니라 권징의 신실한 시행에서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4, 현대의 교회관

1)18세기는 합리주의의 영향으로 신앙에 대한 관심과 교회에 대한 열심히 없어지고 교회를 사회의 한 단체로 여기게 되었다. 현대 자유주의 적인 교회관의 특징은 교회를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께 속한 단체로 보지 않고 인간적인 기관으로 보는 것이다.

2)20세기 중반에 “하나님의 선교” 사상이 등장하면서 교회를 세상을 위해서 하나님의 손에 쥐어진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보게 되었다. 선교의 출발점을 교회에서 하나님께로 돌린 것은 옳으나 교회를 선교를 위한 하나의 도구로만 생각한 것은 성경적 교회관의 일면만 본 것이지 전체를 보지 못한 잘못된 견해이다.

3)교회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었으며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구속의 은혜를 받았고 성령의 인(印) 치심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며 이 은혜를 증거하는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4)천국 생활을 앞 당겨 살면서 조만 간에 천국으로 갈 사람들을 안내하는 천국의 인도자이다. 교회는 세상을 섬기기 위한 하나의 봉사 기구가 아니다. 구속해 주신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을 상대해야 하는 하나님의 단체이다.

5)하나님과 피조물의 구별이 명확해야 하는 것처럼 교회와 세상과의 구별도 명확해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 사상이 본래 의도 한 바는 아니나 그 사상의 실제적 적용과정에서 교회를 평가 절하 하였으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선교 목표가 선명하지 아니한 애매한 것으로 만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