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자랑 세 가지

2013.01.23 20:39

김반석 조회 수: 추천:

제목: 바울의 자랑 세 가지
선지자선교회 본문: 고후11:17, 고후12:5

(고후11: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없이 자랑하노라      

(고후12: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서론)

1. 깨닫고 행해야

요사이 늘 계속해서 이 말씀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겨서 깨닫고 행하면 구원 되고, 깨달아도 행치 못하면 구원에는 이르지 못하고, 또 깨닫지 못하면 으레 행할 수도 구원도 안 되는 것입니다.

2. 말씀의 이치를 깨달아야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저 마음에 시원하게, 속이 시원하게 음악 소리를 듣는 것처럼 그런 소망을 아예 버리십시오. 그 버릇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참 은혜를 받지는 못합니다. 기분이 좋든지 나쁘든지, 까다롭든지 쉽든지, 말씀을 증거 하는 자의 음성이 아주 탁하든지 청명하든지 또 말하는 언재가 있든지 없든지, 그 말하는 것이 유식한 말이든지 무식한 말이든지 아예 그런 것을 초월하십시오. 그것도 좋으면 좋지마는 거기 생명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말씀을 들을 때에 말씀이 가르치고 있는 그 이치를 깨달으려고 거기만 전력을 기울이십시오. 이치를 깨달으려고. 이치를 깨달으려고 애를 쓰면서 먼저 이치를 알고 ‘아, 저 사람은 저 강단에서 저 강사는 어떤 이치를 말하고 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판단해야 될 것이고, ‘강단에서 지금 증거하고 있는 그 이치는 성경대로의 이치다. 성경에 맞는다 안 맞는다. 저 이치는 성경에 맞지 않다, 성경에 맞다.’ 이것을 또 판단하십시오.

성경에 맞은 이치인데 자기가 처음으로 들어 배우는 것이라면 참 천천 금은보다 보배를 얻었습니다. 또 이미 알고 있는 이치는 그 이치대로 내가 살지 못한 거기 대해서 이제는 살 수 있는 그 능력을 받도록 애를 쓰십시오. 또 그리고 난 다음에는 ‘나만 이 이치대로 살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 이치를 전해서 그 사람들도 살려야 되겠다.’ 하는 그런 책임을 지십시오. 그래야 은혜를 받습니다.

3. 텔레비

여기 와서 무슨 시원하고 기분 좋고, 만물보다 거짓된 그 흉측한 마음들이 우리 속에 있는데 그 마음이 좋아하는 그런 말을 들으면 지옥갈 말인데 그 들을 필요가 뭐 있습니까? 그러려면 연극에 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테레비를 보든지 테레비가 재미있는 것이 그것이 전부 음행의 포도주입니다. 그 테레비 보면 그만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그만 마음이 속화가 되어 버립니다. 까랑까랑한 하나님과 의와 내세를 사모하는 것은 그만 희미해집니다. 맛은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맛을 예배드릴 때에 설교에서 들으려고 하니 그것이 멸망할 생각입니다.

여기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에 나와 삐뚤어져 있는 내 행위를 여기서 고치려고 모두 여기 앉아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를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되느냐, 살아갈 그 이치를 배우려고 여기 있는 것입니다. 기분 좋기 위해서 있는 것 아닙니다. 혹 진리를 배울 때에 기분이 좋으면 그 기분을 집어 던져 버리십시오. 던지고 고요히 들은 이 말씀을 골방에서든지 산에서든지 바위 위에서든지 예배당에서든지 곰곰이 이 이치를 생각할 때에 자기 속에 ‘과연 이대로다.’ 하면서 자기 마음에 힘이 나오고 주먹이 거머쥐어지고 자기도 모르게 ‘주여! 옳습니다. 나도 이렇게 살겠습니다.’ 할 수 있는 그 힘이 속에서 쥐어 나오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설교할 때에 자기에게 무슨 시원하고 기분 좋다고 이래 가지고, 예배당에 올 때에는 엿새 동안에 죄만 지어서 하나님의 진노를 잔뜩 싸 가지고 왔다가 주일날 와서 위로를 해 주고 어쩌든지 기쁘게 해 주고 이러니까 마음 아픈 것 한 번도 꼴도 안 보고 기분만 좋아 가지고 갑니다. 상한 심령을 하나님이 버리지 않습니다. 오늘 밤에 간단하게 증거를 하겠으니까, 자꾸 증거 하는 이유는 그래도 들어야 되고 아직까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4. 사도 바울

오늘 밤 봉독한 말씀에 보면 바울이 자기의 문벌, 자기는 이스라엘 중에 이스라엘이요 베냐민 지파요, 학문으로 말하면 가말리엘의 제자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요, 시민으로서는 그때 세계에 제일 강대국인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 이 사람이오. 이렇게 모든 면이 다른 사람 뒤에 가지 아니하고 앞서 갈만한 사람입니다.

이런데 참 이 세상에서는 잘났든지 못났든지 전부 저 잘난 재미로 삽니다. 잘났든지 못났든지 저 잘난 재미로 삽니다. 가만히 앉아 보면, 잠시 앉으면 처음에는 꼬리를 감추고 뭐 안 그런 척 해도 조금 앉아서 이야기 하면 슬그머니 제 자랑이 나옵니다. 저를 소개합니다. 제 자랑이 나옵니다.

이 바울은 참 자랑할 만한 그 실력 있는 사람입니다. 또 자기가 누구보다도 의로운 행위를 했습니다. 그 밑에 내려다보면 ‘내가 기탄없이 어리석은 자 같이 내가 자랑을 한다’ 하면서 이 복음을 위해서 고난 받은 것, 또 누구보다도 더 일을 많이 한 것 이런 것을 말을 하면서, 이것이야 자랑할 만하지 않습니까?

1) 어리석은 자랑

얼마 전에 왜정말년에 신사참배 할 때에 그 신사참배 않고 고난 받은 그것도 강단에 설 때마다 자랑을 하고, 그것은 참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하고 다 이랬는데, 바울은 그런 것으로 유가 되지 않는 그런 참 순생의 생활한 그것도 말하면서 ‘어리석은 자랑이라’ 이랬습니다. ‘어리석다’ 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어떻게 자기에게 구비한 그 모든 실력을 말하면서 자랑하면서 어리석은 자랑이라 말했고, 참 말할 수 없는 승리의 생활을 한 그것을 말하면서도 어리석은 자랑이라고 이렇게 말했는가? 이것을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2) 참 자랑

그 다음에 12장 5절에는 보면 ‘이런 사람을 위해서는 내가 자랑 하겠다’ 또 자랑할 게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위해서는 내가 자랑하겠다. 이것은 참 자랑할 만한 일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3) 약한 것을 자랑

또 마지막에는 ‘나는 자랑하려면 나에게 약한 것을 자랑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렇게 또 말했습니다.

그러면 자랑을 세 번 말했는데, 어리석은 자랑, 또 자랑할 만한 참 자랑, 또 마지막에는 그 자랑을 하면서 이 자랑은 큰 수입이 있다 이랬습니다. 약할 때에 곧 강하여지는 이 비결이 있다 하면서 지혜 있는 자랑을 말해서 자랑 이 세 가지를 들어서 말씀을 했습니다.

(본론)

1. 미련한 자랑

자기에게 있는 장점 또 자기 행위의 장점 이것을 말하면서 왜 어리석은 자랑이라, 미련한 자랑이라, 정신없는 자랑이라 그랬습니까? 정신없는 자랑이라, 미친 자랑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

땅 위에서 생명과 신령에 속한 가치 있는 옳은 일 그것은 주님이 어떤 기관을 쓰시든지 하신 이는 당신 혼자 하시는데, 당신 혼자 하시는데, 사람이 당신이 혼자 하는 것을 알고 당신이 혼자 하실 것으로 이렇게 바라보고 이해를 해야 될 터인데 ‘내가 학벌이 좋으니 이 학벌 가지고 일할 수 있다, 권세가 있으니 권세 가지고 일할 수 있다, 선천적으로 나는 잘 타고 났다, 후천적으로 많은 수양이 있다, 돈이 있다, 친구가 있다, 지위가 있다, 무엇이 있다.’ 이렇게 하나님 혼자 일하시는데 ‘하나님 외에 무엇이 있어 이것이 있으니 이것이 일 할 수 있다.’ 하는 그것을 100프로 그것이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은 안 믿는 사람들은 다 그러하고,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아무리 자기를 부인하라고 해도 제까짓 것 ‘저 사람은 무식한데 나는 유식하니까 같이 일하면 내가 일을 많이 하지’ ‘저 사람은 둔한 사람이고 나는 명철한 사람이니까 내가 더 많이 하지’ 자기에게 있는 그것이 일 할 수 있는 실력의 100프로는 안되면 50프로나 30프로나 20프로나 10프로나 1프로라도 인간들이 보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다만 몇 프로라도 인적 요소와 그 모든 사물의 요소 그것이 있으면 일하고 없으면 못하고 그것이 들어 일할 수 있다고, 그 의로운 가치 있는 승리나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실력이 그것에게 조그만큼이라도 있다고 생각한 이것을 ‘어리석다, 미친 소리다, 정신없는 소리다.’ 하나님 혼자 하시는데 암만 그게 있어 봤자 하나님이 안 하시면 소용없는데, 하나님 혼자 하시는데 혼자 하실 때에 개를 데리고도 할 수 있고, 못난 무식쟁이 데리고도 할 수 있고, 당신이 뭐이든지 당신이 하시려면 뭐 아무것도 없어도 하실 수가 있습니다. 이런데 그것을 의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가치의 것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바라고 의지하고 그것을 ‘이것만 하면 된다.’ 이렇게 내놓는 그것이 하나님이 안 하시면 하나도 털끝만한 것도 할 수 없는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할 수 있다고 이래 생각하기 때문에 어리석다 그렇게 판단을 했습니다. 그 판단이 맞습니다.

그 사람이 ‘나는 이렇게 학벌이 좋기 때문에 나는 이 학벌 있으니 할 수 있다’ 그것이 나올 때에는 그 사람에게 그만 ‘네 학벌 가지고 해 봐라. 네 권세 가지고 해 봐라. 네 웅변 가지고 해 봐라.’ 하나님은 딱 손 떼니까 그것이 그 다음은 수치를 당하고 실패를 당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문벌, 학벌, 또 모든 면에 능한 그런 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위대하게 한 사람이 많지 못합니다. 혹 끼어 있지 많지를 못해요. 왜? 그것 들어서 일한다고 인정하니까 하나님이 암만 해 줘야 봤자 그것들이 일했다 하니까 그것 우상만 될 터이니까 멸망할 터이니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안 해 주십니다. 이러니까 자기의 요소나 자기의 소유의 어떤 것이나 그런 것을 가치로 알아서 ‘이것만 하면 된다.’ 인정하는 그 인정은 참 미친 생각이요 정신없는 생각이요 어리석은 생각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왜 어리석으냐? 하나님이 세상이 제일 못 쓸것이라고 더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붙들고 세상에 제일 보배로운 일을 하시려면 하실 수 있습니다. 또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위인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을 가지고 인간을 망치는 가장 악을 행하는 데에 그 사람을 이용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이 잘 이용하시면 좋게 이용해 주시면 이것이 보배로운 일을 하고, 하나님이 버려서 마귀에게 내 맡겨 놓으면 이것이 좋으면 좋을수록 큰 악을 불의를 행하게 되기 때문에 뭐 자기에게 있는 요소나 자기의 어떤 소유나 이것만 하면 됐다 할 수가 없다 그 말이오. 그것을 하나님이 귀중히 사용을 하시느냐 버려서 마귀가 악하게 사용을 하느냐 여기에 그 결말의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두고 자랑할 것이 없다 그말이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자랑했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랑이라.

또 자기가 어떤 의로운 일을 했습니다. 바울 같은 그런 의로운 일을 했는데 의로운 일 한 그것이 제가 한 줄 알고 제가 자랑합니다. 제가 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창세 전에 하나님이 딱 그대로 예정해 놓은, 당신이 혼자 예정해 놓은 그 일을 당신 혼자의 능력으로 성취해서 된 일이니까 저는 생각도 하기 전에 그걸 다 계획했고 그렇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나게 했고, 먹이고 입히고 길렀고 이래 가지고 지금 환경을 만들어 가지고 이 일을 해 놨는데, 순전히 하나님 혼자의 역사인데 뭐 제가 들어서 한 듯이 하니까 그것도 미친 소리요 어리석은 소리요 참 정신없는 소리입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은 중생됐지마는 이 심신이나 심신의 기능이라 하는 것은 아직까지 사망 아래 있고 죄 아래 있고 마귀의 권세 아래 있는 이것인데, 이것을 하나님께서 살리기 위해서 어떨 때는 하나님과 진리가 이렇게 사용해 가지고 살리고 저렇게 사용해 가지고 살리고 또 영광 있게 사용해 가지고 살리고 또 수치스럽게 사용해 가지고 살리고, 당신이 죽은 것을 살리시는 그 방편에 이렇게 이용되고 저렇게 이용된 것이니 감사할 것뿐이지 제가 그 행위를 제가 한 듯이 교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순교를 했다면 죽은 것을 하나님이 순교라는 그 이용으로 하나님이 작용해 가지고 그것이 영광스러운 그 이용을 당해 가지고 영광스러운 구원을 얻게 했으니, 저는 지옥의 물건이 되게 하면 지옥의 물건이 되겠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이용이 되도록 해서 영광스러운 구원을 이루어 줬으니 주님 앞에 감사할 것뿐이고, ‘나를 어떻게 이렇게 영광스럽게 귀하게 사용을 하셨습니까?’ ‘엘리 엘리 나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떻게 모든 피조물 중에 제일 존귀한 것으로 나를 사용을 하셔서 이렇게 대속의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까?’ 놀라면서 감사했지 당신이 들어서 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자기의 의로운 행위를 하나님에게 자랑한다고 하면 이것도 하나님이 죽은 것을 살리신 방편으로 썼고 살리시는 방편으로 쓰되 더 가치 있게 영광스럽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영광스러운 사용법으로 사용해서 했으니까 감사득지해서 머리를 들지 못하게 감사하다 할 것뿐이고 겸손할 것뿐이지 뭐 자랑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그 자랑이 의로운 행위를 자랑한 것도 미친 소리요 어리석은 소리입니다.

1) 다윗

또 그리고 난 다음에 제가 한 듯이 하면 큰 화를 받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하고 싸울 때에 그 장병들, 서른일곱 대장이 블레셋사람들하고 전쟁을 해서 아주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웠습니다. ‘저 적중에 있는 원수의 적, 원수의 적진, 적진 안에 있는 저 우물의 물을 내가 좀 먹었으면 좋겠는데 누가 떠다 줄 것이냐?’ 이러니까 그 용사들이 그만 뭐 생명을 아끼지 않고 그 진 중에 들어가서 물을 떠 오고 가고 이렇게까지 했습니다.

이러니까 다윗 밑에 그 용사들이 서른일곱 용사가 어떻게 풀풀 뛰는 용사인지 블레셋 사람하고 전쟁할 때에 블레셋 그까짓 것 뭐 당할 수가 없다 말이오. 이래 승리했습니다. 승리를 했는데 다윗이 ‘야, 우리 장병들 잘 한다. 참 우리 장병들은 이 블레셋 아니라 어떤 강대국이라도 칠 수가 있다. 우리 장병들은 실력 있다.’ 이 마음을 다윗이 속으로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다윗의 그 군대들이 블레셋하고 싸울 때에 전쟁이 높아져 가니까 감당을 못해서 후덕거리고 지금 죽겠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 손에 붙여주마. 안심하고 담대히 가 싸워라.’ 세 번이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해서 하나님이 힘을 주시니까 그 비겁한 군대들이 담력을 가졌고, 시들시들한 것이 용기를 가지고, 힘이 펄펄해 가지고, 생명을 가지고, 이렇게 싸우는 그 용기나 또 싸워서 원수가 그 손앞에 복종을 하고 붙여진 것이나 이것이 전부 하나님 혼자의 역사인데, 하나님 혼자 역사인데 역사하신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야, 우리 군대장관, 이 군대는 넉넉하다. 우리나라에 이와 같은 군대가 아마 또 이 외에도 있을 것이다.’ 하는 그 마음을 다윗 왕이 척 한번 먹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분노했다 말이오.

‘이놈, 내가 해 주니까, 제가 이제까지 저를 등용한 것은 제 힘 가지고는 사자 앞에 단번 먹혀지고 말 것인데 날 믿기 때문에 내가 저를 도와서 사자를 찢도록 한 이것을 경험해서 나를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 골리앗 대장도 그까짓 것 물맷돌 하나만 하면 된다 하고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을 믿기 때문에 내가 왕으로 삼았는데 망령되게 이것 한 것이 군대장관들이 했지’ 하나님이 한 것을 잊어버리고 이러니까 ‘아, 이놈 분하다. 이놈한테 좀 괘씸해서 복수를 해야 되겠다.’ 하나님이 슬그머니 나서 가지고 다윗에게 말씀했습니다.

‘다윗아, 네 밑에 있는 군대 그 용사들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계수를 해 봐라’ 다윗이 벌써 그 마음을 먹었으니까 마귀가 타고 들어갔습니다. 다윗이 마음에 원하자마자 ‘그래 한번 헤아려 봅시다.’ 이러니까 거기 요압 대장이 있다가 말하기를, ‘왕이여! 우리 군대가 있으면 뭣하며 없으면 뭣합니까?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면 군대 없어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고 군대가 암만 있어도 하나님이 안 하시면 안 되는데 군대 장관이 얼마나 숫자가 되는지 헤아려 볼 것이 뭐입니까? 왜 이렇게 하십니까?’ 이러니까 한창 그 마음에 아이들 말로 신바람이 나서 ‘야, 암말도 말고 헤아려! 어느 명령에 거역하고 있어? 헤아려.’ 호통을 치니까 석 달 넘어 걸려 수를 다 계산해서 바치면서 ‘왕이여 숫자가 이렇습니다’ 하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의 그 망령된 심령을 확 벗겨서 하나님의 낯을 보게 하니까 팍 꺼꾸러져서 ‘여호와여, 내가 주님 앞에 죄를 범했나이다. 참 군대가 많고 적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이 혼자 했는데 내가 영광을 군대에게 돌렸고 군대 이것 가지고 뭐 하리라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주님을 배반한 죄를 지었사오니 이 죄인의 죄를 사해 주옵소서.’ 앞에 꺼꾸러졌습니다.

꺼꾸러지니까 ‘그러면’ 선지자를 보내서 ‘그러면 내가 이 분노에 대해서 7년 흉년을 너희에게 줄까, 석 달 동안 네가 원수에게 쫓겨 돌아다니면서 죽지는 않지마는 쫓겨 다니는 그런 징계를 줄까, 3일 동안 온역을 줄까 마음대로 택해라.’ 이러니까 다윗이 양심이 그때도 살아나지를 못했습니다. 살아났으면 ‘주여! 나는 죽어 마땅할 죄인입니다. 주님을 배반했습니다. 이러니까 내가 벌을 받아야지, 내가 벌을 받아야 되지 백성들이 온역으로 고생을 하며 7년 흉년으로 배고프면 되겠습니까?’ 이러는데 저는 제게 제일 유익할 점을 택해 가지고 ‘3일 온역을 주시옵소서.’ 해서 3일 온역에 그 양민들이, 어진 백성들이 7만 명이 죽었습니다.

여러분들 하나님 혼자만이 하는 건데 제가 한 것처럼 망령과 패역을 부려 가지고 하나님이 사랑한 다윗왕도 징계를 받고 이렇게 큰 패망을 받았는데 무슨 실력이 있다고 ‘나는 학벌이 좋으니, 언변이 좋으니, 내가 성경 말씀을 깨달아서 꼼짝 꼼짝 해석을 잘 해서 증거를 잘 하니, 교회가 부흥되니’ 내가 했다고 하는 이런 악한 심리를 가진 자에게는 하나님이 반드시 진노해서 징계를 내립니다. 이러니까 교회들이 어지러워지지. 복잡해지지.

2) 히스기야 왕

히스기야 왕도 저희들이 죽겠다고 날뛰어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당신에게 매여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구출해 주시면 구출해 줄 수가 있습니다.’ 의심 없이 외통 목으로 자기네들 전적 부인했고 주님만을 바라볼 때에 군대 하나도 동원하지 않고 그 강한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이 다 시체가 됐습니다.

뭐 인간 없으면 못할 줄 압니까? 돈 없으면 못할 줄 알아요? 어떤 목사님 없으면 못할 줄 알아요? 생명 내 놓은 그런 교역자 없으면 못할 줄 알아요? 어리석어! 이러고 나서 군대장관들이 나서서 ‘그거 이제 두고 보니까 저절로 기진해 뒈지는 것을, 불기만 해도 죽고 고함만 질러도 다 죽을 것인데, 우리나라에 이런 군대가 있고 이 군대들이 나가 대장들이 나가 한번 설쳤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렇게 약한 줄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한 것을 모르고. 이것들이 공연히 일된 사후에 장구 치듯이 이것들이 나서서 저거가 하고 저거 힘으로 하는 척 자랑하니까 히스기야 왕도 어리석게 ‘그 참’ 하나님이 하신 일이니까 크게 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크게 보지 아니하고 그 군대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아, 그러면 그래 기절해 죽는 그런 허무한 것을 공연히 우리가 그렇게 크게 봤나! 자, 그리고 바벨론에서 왔으니 바벨론 저 사람들은 하나님 해도 안 알아준다.

저 사람들은 유물주의기 때문에 돈만 크게 여기고 무기만 무서워 여기고 용사만 두려워 여기니까 그 사람들이 이런 것을 가치로 알고 이런 것을 의지하고 이런 것 있으면 강한 줄 알고 이런 것 없으면 약한 줄 알기 때문에 이제 왔으니까 우리나라에 그걸 보여줘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다른 것을 보여 줬습니다. 우리가 이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상대방이 돈을 위주로 하는 사람들이니까 ‘봐라. 우리도 돈도 있다.’ 또 그 교역자들 학벌을 위주로 해서 무슨 학벌 무슨 학벌, 학벌을 위주로 하니 ‘우리에게도 이 학벌이 있다.’ 또 그 사람들은 전부 웅변 그런 것을 가치로 알아서 그것을 힘으로 알고 ‘아, 웅변 자리 있다.’ ‘거기 이런 인물들이 있다.’ 그 인물이 훌륭한 유명한 인물들이 있는 그것을 위대하게 보고 가치 있게 보고 ‘이러니까 우리 일할 수 있다.’ 가치 있게 보니 우리에게도, 그들이 그래 보는데 그만한 인물 내세워야 될 터인데 조작배기 꾸며 가지고라도 ‘우리 이런 인물 있다.’ 이래 내세우기 쉽다 그말이오.

천하는 ‘우리는 이것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모든 것이 구비하다 훌륭하다. 많이 모인다. 어떻다.’ 이렇게 해도 하거나 말거나, ‘모든 사람은 땅 위에 모든 것을 자랑하지마는 우리는 세상이 몰라주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 이렇게 자랑을 했더라면, ‘아, 보십시오. 우리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빈약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군대도 이것도 빈약합니다. 돈도 빈약합니다. 모든 것이 허무합니다. 당신들 비하면 당신들의 100분의 1도 안됩니다. 허무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렇게만 했더라면 바벨론 나라 다 점령시켜서 이제 식민지로 통치를 시키실는지도 모른다 그말이오.

이랬는데 상대방들이 평가하는 그 평가에 따라가 가지고 ‘그들은 이거나 알아주지 딴것을 못 알아주니까 우리도 이거 내세워야 되겠다.’ 이렇게 하는 데에서 하나님이 분노하셨습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이 혼자 일하시는데 ‘이것이 있으면 일하겠다.’ 하니까 어리석은 자랑이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하나님이 집어 던져 버리면 마귀가 쓰면 악용밖에는 안 되는 것이고, 아무리 더러워도 하나님이 그것을 가지고 선용을 하시면 없는 것 가지고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아무리 못나도 그것 가지고, 세상에 약하다 없다 버림을 당한다 못쓴다 하는 그것을 택해서 세상에 있는 것들을 폐하고 강한 것들을 다 꺾고 누르고 부끄럽게 한다. 이 하나님의 심정을 모르고 했기 때문에 어리석습니다.

의로운 일 해 놓은 것도, 의로운 일 해 놓은 것, 의로운 일 뭐 했습니까? 죽은 것이 했습니다. 썩은 것이 했소! 썩은 것들이 했소! 혈육의 것들이 했습니다. 그것이 의로운 일 한 것이 썩은 그것이 살아나는 방편이었소, 살아나는 방편. 이 말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이 죽은 것이 순교했으면 죽은 것이 순교를 통해서 살아났습니다. 구속을 받았습니다. 구속을 받는 데도 가치 없는 구속을 주신 것이 아니고 또 영광스런 구속을 줬습니다. 다른 것을 통해도 할 수 있을 것인데 하필 저를 통했습니다. 이러니까 감사해서 머리를 들 수 없고 겸손히 할 것이요 다른 사람 보면 다른 사람이 ‘아이구 위대합니다.’ ‘아니오. 나는 당신하고 꼭 같은 사람이오. 이런데 하나님이 날 부르셔서 하나님이 했지 내가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영광을 찌웃찌웃 해서 갈라 먹을 것이 아니라 전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일하시는 이는 하나님 한 분뿐이시요, 또 하실 이도 하나님 한 분뿐으로 이렇게 구별하는 것이 성도인데 이렇게 하지 않아서 그런 큰 진노를 받았습니다.

3) 사울 왕

사울왕이 그렇게 이스라엘 가운데에 제일 일등 인물이라고 등용했지만 마지막에 하나님께 버림당한 것, ‘다 죽이고 하나 조그매 사람 하나 남기고 짐승 몇 마리 남겼는데 그 뭘 잘못했다고 당장에 왕에서 버림을 당하게 했겠습니까?’ 그게 지위에 올라 갈수록 더 심한 것입니다. 하나님 가까이 갈 때에는 아론도 못 갔어. 모세만 올라갔지. 하나님과 가까이 갈수록 더 빛이 가깝기 때문에 불의는 용납을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어리석음이라. 사울왕이 왜 버림을 당했느냐? 버림당할 수 있는 그 죄는 하나님께서 저를 붙드시고 일을 했는데 하나님이 일하신 그것을 생각지 않고 제가 일한 줄 알고 승리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제일 미워하시는 진노입니다.

하나님 붙들고 일하니까 조그매 일하니까 제가 조금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제가 한 것처럼 됐지 많이 일하면 많이 일한 그것을 제가 했다고 저는 많은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그를 붙들고 일하니까 점점 제가 우상이 돼 버리고 하나님은 멸시하고 저 커진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버릴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 사람 붙들고 일 못 하겠다 그말이오.

또 그렇게 일을 하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일해야 될 터인데 하나님의 소욕은 하나님의 소원은 냅두고 제 욕심만 챙깁니다. 일하고 난 다음에 일한 공적을 제가 한 것으로써 영광을 제가 차지하지, 또 그 일 하는데 하나님의 소원이 뭐인가 그것 찾지 않고 제 소원만 지금 앞장 세워 가지고 찾고 있지, 그 사람을 어떻게 왕으로 세워 둘 수 있겠습니까? 버릴 수밖에 없다 그말이오.

조금 이래 놓으면 제가 한 양으로 그것만 보고 자랑하고, 하나님이 저 붙들고 일할 때에, 저보다 다른 사람이 일했으면 훨씬 몇 배나 더 낫게 했을 터인데, 자기가 목회한 것보다도 바울 같은 분이 와 가지고 목회했으면 얼마나 목회가 부흥이 많이 됐겠습니까? 이러니까 자기 부족으로 하나님의 하신 일 가리운 것밖에 없는데 이거 제가 한 양으로 했지, 또 제가 우쭐해 커져 버렸지, 제 욕심만 차렸지 이러니까 하나님 앞에 버림을 당했습니다.

목회자들도 보면 좀 해 놓으면 제가 한 것같이 그 모든 한 공적은 제 공로로 제 실력으로 된 것같이 여겨서 우쭐해져 가지고 저를 자랑하고 저를 나타내려고, 이래서 설교를 다른 사람이 목사가 참 잘했다고 안하면 섭섭하고, 이 무슨 돈벌이 한 이 회사에 돈벌이해서 이 회사를 키운 이것을 ‘참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참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이러면 비쭉하면서 ‘하나님 은혜? 하나님이 뭐 가만있는데도 해 주나!’ 속으로 ‘하나님 아니라도 내 할 수 있어’ ‘아이구, 당신이 했습니다.’ 이러면 ‘아, 뭐 하나님 은혜지요.’ 해도 ‘하이구, 하나님 은혜라도 당신 아니면 됩니까? 당신의 솜씨 아니면 됩니까?’ 슬슬 저 올려주면 좋아서 벙긋하면서 제가 하는 척으로 이러는 이것이 망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것을 안 알아주면 삐꿔 돌아가 가지고 ‘하나님 하나님 해 보지 잘 되는가? 뭐 연보할 게 뭐 있느냐? 하나님 하면 다 될 것인데’ 그것이 망령을 부려서 연보도 하지도 않고 패역을 부려서 절 높이 주고 안 알아준다고, 저를 목회하는데 쳐 주고 높여 주지 않는다고. 그자는 사울 왕과 같이 회개하지 않으면 버림당합니다.

2. 참 자랑

그 다음은 할 시간이 없는데, 좋은 자랑은 참 자랑은 왜 그 참 자랑이 되는가? 14년 전에 삼층 천에 올라간 그 사람 자랑하는 것인데, 성령과 진리와 주님의 공로로 구속함을 받아 새것 된 것, 새것 된 것, 새것 된 그 사람은 완전자이기 때문에 자랑할 만합니다.

둘째로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오. 다 받아 가지고 있는 사람이오. 성화가 작게 됐든지 못 됐든지 된 것은 다 그렇습니다. 또 그 사람은 하나님과 피조물들에게 필요 있게 이용돼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이요 피조물에게는 영원히 사랑으로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는 참 자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바울이 ‘나는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다.’ 우리가 자기에게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성화된 것 그것만을 가치로 알고, 그것만을 좋아하고, 그것만을 내세우고, 그것만을 쓸모 있는 것이라고 이렇게 알고 다른 것은 전부 고쳐야 될 병 되배기입니다. 병 투성이오. 죽은 것이오. 다 더러운 것들이오.

이렇게 구별해야 될 터인데 이 새사람 자랑할 사람은 파묻어놔 버리고 부끄러워하고, 자랑할 사람은 부끄러워하고 이 썩은 것 ‘나는 간판이 이래, 학문이 이래, 지혜가 이래, 언변이 이래, 용모가 잘 났어! 이런 족속이라!’ 썩은 것만 내 놓으면 썩은 것 썩은 줄 모르고 이걸 자랑하니까 희망이 없어!

3. 약한 것 자랑

그런데 약한 것 자랑하는 것은 왜 지혜로운 자인가? 첫째 지혜로운 자인 것은 약한 것을 자랑하면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에게 환영을 받습니다. 바리새교인이 하나님이 좋아할 것이라고 ‘주여! 나는 이런 자와 같지 않고 일주일에 금식 두 번씩 하고 십일조도 드리고 이런 자와 같이 모든 도덕면에 범하는 죄가 없습니다.’ 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러면 그것은 하늘나라 가서 보자. 이 세상에서는 내가 그런 사람은 면접해 줄 여가가 없다.’ 버림당해서 갔다고 성경에 있지 않습니까?

세리는 ‘나는 이런 죄인입니다. 이런 죄를 범했습니다. 이런 단점이 있습니다. 이런 못쓸 점이 있습니다.’ 이런 못쓸 점, 전부 병주머니만, 다 병만 들고 와서 ‘나는 이런 자입니다.’ 하면서 머리 들지 못하고 이러니까 주님이 ‘그거 다 깨끗해! 내가 네 모든 것을 깨끗하게 했기 때문에 안심하고 가라!’ 보십시오. 자기의 모든 단점, 병점, 그 모든 부족점, 약점 이것을 주님 앞에 내놓은 것이 이것이 지혜로운 것은 첫째로 주님 앞에 환영을 받고 면접을 합니다. 이 세상은 주님이 고치기 위해서 의원으로 찾아왔지 의인 찾아온 것 아닙니다. 의인은 이 다음에 이제 쓰입니다, 하늘나라 가서.

그러기에 자기의 단점을 찾아서 기도하려 하는 사람은 즉시 주님을 만납니다. 이렇지만 ‘아! 내가 오늘 이런 일을 많이 했다. 나는 누구보다도 낫다.’ 이것만 가지고 제가 저 혼자 위로를 받았지 주님 암만 만날라야 주님 못 만나고 결국은 헛된 기도만 하고 시간만 보내고 맙니다. 또 그거 가지고 설교해 봤자 역사는 안 납니다. 또 그거 해 가지고 목회 해 봤자 결국은 마지막에 그 교회 망치고 맙니다. 우리 진영에도 그런 목사들 많고 그런 교역자들 많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그 교회가 어찌 되는지.

(결론)

1. 약한 것을 자랑

이러니까 첫째는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하는 것이 주님을 만나는 유일한 방편이 되기 때문에 그것 자랑하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또 한 번만 고치는 기회가 있는데 고치는 기회 지나보내 버리면 다시 못 만납니다. 그 기회 놓으면 영원히 죽습니다. 영원히 멸망 받았습니다. 이랬는데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기회를 잊어버리지 않고 그 기회에 고칠 것을 고침 받을 수 있는 그 기회를 잊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또 지혜 있는 사람인 것은 제가 그대로 가면 영원히 죽을 것이고 못 쓸 것인데 주님에게 이것 가지고 가니까 약한 것을 강하게 만들어 주시지, 욕된 것을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시지, 썩은 것을 썩지 않을 것으로 만들어 주시지, 이 혈육의 것을 신령한 것으로 만들어 주시지, 이렇게 만병통치로 전부 다 고쳐서 약한 것은 강하게 해 주시고, ‘나는 이제 이러니까 못 이기겠습니다.’ 패전할 자는 승리케 해 주시고, 이 분에게 이렇게 치료를 받으니까 지혜 있는 것 아닙니까?

지혜 있는 자랑, 참 자랑, 어리석은 자랑. 어디 있는지 우리는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리지 못하고 이런 것 저런 것 해 놓고 난 다음에, 하고 나면 눈에 보이는 그것의 공적은 알고, 그것만 가치로 알고 ‘그것이 했다.’ 이렇게 보이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 혼자 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이것이 신앙인데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리석음으로 다 버림당하고 맙니다.

2. 히스기야 왕

히스기야 왕 같은 분들도 그렇게 절정기에 가 가지고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리지 않고 엉뚱하게 돌릴 때에 하나님이 분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에 전부 다 포로 되게 해 버렸습니다.

3. 다윗

다윗보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좋아하시는 분이 없었지만 이렇게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지 않고 어떤 피조물에게 하나님이 하신 것을 영광을 돌려서 이렇게 그걸 믿고 의지하고 가치로 여겼을 때에, 자기에게 있는 소유, 자기 군대 이것을 가치로 여겼을 때에 하나님이 분해서 7만을 재앙으로 죽여 버렸습니다.

4. 교만

‘하나님이 해 주시면 되고 안 해 주시면 안 된다. 하신 것은 하나님이 혼자 하셨는데, 내가 이렇게 이런 지위까지 올라온 것은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끌어올리게 했는데, 내가 잘난 것이 아니라, 내가 재주가 있고 명철하고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해 주셨으니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리고, 이렇게 해 주시는데 내가 망령과 패역을 부려서, 하나님이 이렇게 높이 들려 하는데 내가 방해를 해 가지고 하나님을 얼마나 방해 했는지 모른다.’ 제가 저 된 것이 제가 저 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저 되게 하신 이것을 알아야 될 터인데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교만을 하고, 돈만 잡아도 교만하고, 권세만 잡아도 교만하고, 똑똑해도 교만하고, 지식 있다고 교만하고, 자기가 무슨 공적 있다고 교만하고 이러니까 이런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요, 미친 생각이요, 정신없는 생각이요 말입니다.

5. 자랑 세 가지에 세 가지

이 3×3=9. 아홉 가지, 자랑 세 가지인데, 어리석은 자랑에 이유가 세 가지, 참 자랑의 이유가 세 가지, 지혜 있는 자랑의 이유가 세 가지. 우리는 정신 안 차리면 하나님이 이것을 통해서 하든지 저것을 통해서 이것저것 무엇을 할 때에 하나님이 그것을 통하여 한 그것은 가치로 알아도 하나님은 가치로 모릅니다.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것은 가치 있고 필요에 따라서 그것으로 있어야 될 줄로 알지만 하나님은 상관없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6. 깨닫고, 긍정하고, 결심하고, 살고

이 자리를 떠나지 말고 이 진리를 깨닫고 옳으면 옳다고 긍정을 하고 그 다음에는 마음에 이대로 결심을 하고 이대로 살겠다고 그 마음에 뜨거운 결심이 생겨질 때에 자기는 이 말씀으로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망치지 맙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설교: 백영희 목사 (1981. 12. 18. 금 저녁)
-편집: 김반석 목사 (2013. 1. 23. 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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