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담대함

2012.08.23 00:47

김반석 조회 수: 추천:

제목 : 두려움과 담대함
선지자선교회
본문:(누가복음 15장 3절∼7절)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서론)

두려움과 담대함

우리의 일생 생활에는 두려움이 고통이요 담대함이 평안함입니다. 그런고로 두려움과 고통이 우리 사람들에게는 심히 중요한 것입니다. 두려워하여야 할 때에 두려워하지 않는 그것도 망하는 행위고, 또 두려워하지 안할 때에 두려워하는 것도 그것도 망하는 길입니다. 또 담대하지 안해야 될 때에 담대 하는 그것도 망하는 길이요, 담대하여야 할 때에 담대하지 못하는 그것도 망하는 길입니다.

사람이 참 두려워하여야 할 것을 두려워하고 또 담대할 것에 대해서 담대하면 그 사람은 언제나 생명과 평강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두려워하는 것과 담대 하는 그것을 바로 판단해서 가지지 못하면 그 사람 전 생활은 다 실패합니다. 두려워할 것과 담대할 것을 바로 선택해서 가진다면 그 사람의 모든 생활은 반석 같아서 아무도 해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본론)

1. 어떤 것을 두려워할 것인가?

그러면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어떤 것을 두려워할 것인가? 우리는 범죄 하는 것 외에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왜? 범죄 하는 것은 우리를 대속하신 전지자요 전능자요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신 대주재이신 영원히 우리의 생명 되어 있는 하나님을 내가 떨어지는 것이요, 하나님과 나와의 벌어져서 내가 하나님을 잃는 것이요,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외에는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범죄 하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이요, 우리의 능력의 보호를 잃는 것이요, 우리의 온갖 행복과 평강의 충만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범죄 하는 것 외에는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뭐 어떤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가 착각하고 오해해서 망령을 부리는 것이지 범죄 하는 것 외에는 우리들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2. 범죄 하지 안했을 때

내가 범죄 하지 안했을 때에 그때는 온 세계가 다 나에게 대립이 되든지, 우리 형편이 어떻게 지금 산 벼락같은 그런 일이 닥쳐오든지 우리는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그러기에 무슨 일이든지 닥칠 때에 우리는 ‘나에게 무엇인가 죄가 있나?’ 하는 그거 찾는 것이 제일 지혜로운 사람이요. 찾다가 죄가 없으면 두려워하는 그런 것을 안 해야 됩니다.

3. 죄가 있으면서 담대 하는 자

또 죄가 있으면서 인간들이 저를 보호한다고, 형편이 좋다고, 모든 배경이나 사정이 좋고 뭣이 형통해진다고 담대 하는 자도 그자도 정신 잃은 자요 미친 자요 비정상의 사람입니다.
그런고로 죄를 범하여 죄와 저와 하나 되어 있으면서 담대함을 가지는 그것도 비정상의 사람이기 때문에 곧 그 시간부터 썩고 죽고 망하는 것입니다.

4. 죄가 없는데 두려워하고 떠는 것

또 죄가 없는데 공연히 두려워하고 떠는 그것도 비정상이기 때문에 망하고 죽는 것입니다. 꼭 이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죄를 가지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망할 행동, 죄가 없는데 두려워하는 것도 망할 행동. 그러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이것을 똑 바로 가져야 합니다.

5. 우리는 주님에게 잃어버린 양

또 우리가 담대함은 어떨 때 담대함을 가져야 되느냐? 오늘 아침에 봉독한 말씀같이 잃어버린 양은 우리가 예수님을 떠날 때를 가리켜서 잃어버린 양이라 그랬습니다. 주님에게는 잃어버린 양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떠나면 잃어버린 양 됩니다.

예수님을 떠나는 것은 어떤 것이 떠나는 것인가?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는 것이 예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말하면 범죄 하는 것은 예수님을 떠나는 것이오. 나는 예수님을 떠나는 것이요 예수님은 나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아흔아홉 마리도 중요하지마는, 두고 한 마리를 찾도록 찾아다닌다는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우리가 범죄 해서 하나님과 떨어졌을 때에는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하려고 이렇게 전력을 기울이고 계신다 하는 그것을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6.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찾은즉 어깨에 메고 집으로 목자가 돌아갔다’ 찾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우리가 범죄 가운데 있다가서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리켜서 집으로 돌아간다 말한 것입니다.

잃은 양이 목자 만나서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하는 것은 우리가 범죄 해서 하나님을 떠나서 멀리 떠났다가 이제는 하나님에게로 회개로 돌아가는 것을 가리켜서 비유한 것입니다.

제가 범죄할 때에는 저 혼자 탈선행위로 하나님 떠나는 행위를 제가 했지마는, 회개라 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스스로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회개하는 그것은 벌써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 오셔서 나를 붙들고 회개하도록 하시기 때문에 그 은혜로 우리가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잘못된 것이 깨달아지고 ‘잘못된 행위를 이것을 고쳐야 되겠다’ 하면서 고치게 되는 그것은 벌써 주님이 나를 찾아다니시다가 나를 만나서 나를 당신 품에 안으시고 당신 어깨에 메시고 지금 생명의 나라로 주님 계시는 곳으로 자꾸 이렇게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비유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회개하는 걸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범죄 하는 것은 나 혼자 하나님을 떠나서 방종하는 행위고, 회개하는 것은 내가 회개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붙들고 회개 시켜서 내가 회개하는 것이니, 회개를 하는 그것은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품안에 안기고 어깨에 메여서 가는 걸음이라는 이것을 우리에게 똑똑히 가르쳤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하는 것은, 회개가 되는 것은 나 혼자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되는 그것은 하나님의 큰 은총을 입어서 우리가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을 고치게 되는 것은. 내 힘으로 고치는 게 아니라 목자 되신 주님이 나를 찾아 헤매다가 나를 만나서 나를 붙들고 당신의 나라로 옮겨져 가는, 탈선됐던 데에서 본집으로 돌아가는 그것을, 정상으로 돌아가는 그것을 가리켜서 여기에 ‘어깨에 메고 다시 양의 우리로 돌아간다’ 그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하는 것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목자 되신 주님의 이 은혜로 주님이 아듬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하는 걸음은 지극히 크신 전지전능의 주님의 품안에 안겨서 이 생명의 나라 하늘나라 주님의 세계로, 점점 이 생명 세계, 진리 세계로 옮겨져 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굳게 잡고 우리가 잘못된 데에서 회개할 때에는 주님이 나를 붙드시고 나를 아듬고 어깨에 메시고 지금 나를 회개시켜 가고 있다 하는 요것을 굳게 잡아야 됩니다.

7. 회개하는 걸음은 담대해야

그러기 때문에 회개하는 걸음은 담대해야 됩니다. 이 양이 목자를 떠나서 그렇게 탈선했을 때에는 가다가는 뭐 개울도 만났을 것이고 덤불도 만났을 것이고 이리도 만났을 것입니다. 이리 만났으면 죽을 지경 지내서 참 안 잡아먹힌 것이 다행이지 제가 죽을 어려움을 당했을 것이고 들강(野犬)을 만났으면 제가 뭐 그 어린양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양의 털은 부풀부풀한 것이 꼭 솜 뭉텅이 같습니다. 솜 뭉텅이 같은 것이 양의 새끼인데 그것이 들강 속에 들어가 놓으면 감겨 놓으면 못 나갑니다. 감겨 놓으면 가죽 다 벗겨져요. 그런 것이 양입니다. 이런데 들강 만났을 때에 제가 얼마나 곤고를 당했으며 개울을 만났을 때에 얼마나 곤고를 당했겠는가? 이러니까 그만 딱 배어 가지고 있습니다.

양을 목자가 아듬고 양의 우리로 돌아갈 때에 이 들강을 보고서는 양이 막 발동을 합니다, 과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이구, 이 들강에 이거 내가 지금 또 찢겨서 죽을 지경이었는데 또 이 들강으로 지금 간다.’ 이러나 제가 목자를 떠나서 갈 때의 만난 들강은 자기가 찢기고 이렇게 어려웠지마는 목자에게 안기고 어깨에 메여서 가니까 들강이고 뭐 그런 것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만 놀랬지 실상 닥치고 보니까 상관이 없습니다.

개울도 그렇게 저만 놀랬지마는 실은 목자의 어깨에 안겨서 개울을 건너는데 개울을 보기는 보고 저만 놀랬지 개울을 어째 건너가는지 그런 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이리가 와서 보이니까 막 발동을 치는데 발동치는 것을 목자가 볼 때에 ‘이 양이 이리 만나서 욕을 봤구나’ 하는 것을 안다 그거요. 목자가 아듬고 가니까 이리 그까짓 것이 무슨 상관이 있어? 근방에 오지도 않애. 보이기만 보이지 근방에 오지도 못한다 말이오.

그러니까 혼자 갈 때에는 이런 것들이 어려웠지마는 목자의 어깨에 안겨서 목자에게로 가까이 나아갈 때에, 우리로 나아갈 때에는 ‘주님을 떠날 때의 그 모든 어려움과 꼭 같은 사정 형편이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아무 어려움이 없구나’ 하는 것을 이 양이 깨닫는 것과 같이 우리들도 요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 생활할 때에는 온갖 어려움이 있지마는 회개하는 그 걸음에는 꼭 같은 그런 어려움이라도 어려움이 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걸음을 걷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호하니까 피조물들이 뭘 해하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이러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든지 다니엘이라든지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걸음인데 불이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 사자가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 과연 그런 것들이 해하지를 못했습니다.

이래서 회개하는 걸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염려 없고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함께 하기 때문에 다 평안뿐이니 회개하는 걸음은 평안뿐이니 담대히 회개하라 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담대히 회개하라.

우리가 회개할라 하면 ‘이러면 회개할라 하면 가정이 깨지겠다, 사업이 잘단나겠다, 이러면 내 직장에 떨어지겠다.’ 어리석은 자야. 네가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인데 회개하는 걸음에 어떤 어려움이 있으며 어떻게 해할 자가 있겠느냐? 회개하는 자는 해할 자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회개하는 것은 들강도 해하지 못하고 개울도 해하지 못하고 이리도 해하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어짜든지 고쳐서 회개하는 걸음은 아무도 해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담대히 회개해야 됩니다.

그저 잘못된 것 회개할 때는 사업이고 뭐 가정이고 뭐 ‘이라면 회개하면 이혼이다.’ 주님이 이혼 안 시키는데 어떤 남자가 이혼할 것이며 어떤 여자가 이혼할 것입니까? 회개만 하면은 제 계집 제 아내는 제 것 되고 말지 또 제 남편은 제 것 되고 말지 아무도 뺏들어 갈 자가 없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자기에게 화가 될 사업이면 하나님께서 다 치워 주실 것이고 필요한 사업이면은 회개하는 자에게 그 사업을 누가 뺏들어 가겠소? 회개하는 자의 그 직장을 필요한데 누가 그걸 뺏들어 가겠소? 해할 것만은 다 제거돼지고, 회개하는 걸음에는 해할 것만은 제거 돼지고 필요한 것은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합시다.

8.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라고 베드로전서 1장 5절-7절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안할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의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게 살 때에는, 의를 행할 때에, 회개할 때에 담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게 살 때에 담대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게 살 때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닥치면 이것 큰일 나겠다 싶지마는 그 어려움을 인하여서 하나님과 나와 가깝게 만들고, 그 어려움으로 인해서 뒤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만드는 일만 되지 절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게 살려 하는 자에게 해할 자가 없다는 요것을 굳게 잡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에게 아무것도 해할 자 없다. 또 죄 짓다가 죄에서 회개할 때에 아무도 해할 자 없다. 그런고로 회개하는 그 생활에 우리는 담대함을 가져야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생활에 담대함을 가져야 됩니다.

(결론)

범죄 하는 것 외에는 두려워할 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범죄 하는 것 외에는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 범죄 하면 하나님과 나와의 원수가 되어 지고, 능력의 보호를 다 벗는 것이고, 하나님의 품안을 떠나는 것이고, 사망을 자취하는 것이고, 생명을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은 범죄하는 것 외에는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뭐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다 해도, 범죄 안 하면은 하나님이 다 ‘너희에게 있어야 필요할 것인 줄 아시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라 너의 천부께서 너희들에게 있어야 할 것인 줄 아시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죄 없는 자가 절대로 굶어 죽지 않습니다. 또 죄 없는 자가 굶으면 한없는 그 영광에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은 범죄 하는 것 외에는 두려워할 것이 없는 이것 기억하고, 또 회개하는 걸음은 어떤 형편 닥쳐도 문제하지 말아라. 강하고 담대 하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걸음에는 강하고 담대 하라.

그런고로 두려움과 담대를 우리가 바로 깨닫고 이 둘을 바로 가지면 그 이의 걸음은 언제든지 형통뿐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설교: 백영희목사(1987. 5. 19. 화 새벽)
정리: 김반석목사(201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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