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 10가지

2011.08.28 21:38

김반석 조회 수: 추천:

제목: 하나님과 동행 10가지
선지자선교회
본문 : (창5:1-32)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삼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셋은 일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십이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오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팔백 구십오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야렛은 일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육십이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므두셀라는 일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라멕은 일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서론)

1.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세기 5장 1절로부터 끝 절까지 보면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서 먹고 입고 살다가 결혼하고 결혼해서 살면서 자녀 낳고 살다가 죽어 버렸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전부 다 그래 기록 됐습니다.

그런데 에녹만은 출생해서 먹고 입고 살면서 결혼해서 자녀 낳으면서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자녀를 낳았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데려 가서 다시는 죽음 보지 안하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 하면서 자녀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여기에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향수 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 외에는 우리에게 죽지 아니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아니하는 일은 어떻게 영광스러워도 죽고, 고귀해도 죽고, 능력 있어도 죽고, 재미있어도 죽고, 훌륭해도 죽고, 다 죽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일 외에는 다 멸망 받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2.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에스겔 겔19:1-9에 ‘너는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부르기를 네 어미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 엎드리어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그 새끼 하나를 또 취하여 젊은 사자가 되게 하니 *젊은 사자가 되매 여러 사자 가운데 왕래하며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며 *그의 궁실들을 헐고 성읍들을 훼파하니 그 우는 소리로 인하여 땅과 그 가득한 것이 황무한지라 *이방이 둘려 있는 지방에서 그를 치러 와서 그의 위에 그물을 치고 함정에 잡아 *갈고리고 꿰고 철롱에 넣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 그를 옥에 가두어서 그 소리로 다시 이스라엘 산에 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하셨으니, 아주 청청한 아주 용맹스러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지 안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만 그런 것들을 다 멸했다 했습니다. 자녀를 두기를 사자같이 뒀습니다.

젊은 사자같이 길러서 사자가 차차 자라니까 그 어미가 젊은 사자에게 식물 취하는 그런 방편을 가르쳐서 사자가 사냥을 하는 것을 배웁니다. 사자라고 비유한 것은 전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짐승이 됐다 그 말이오 맹수가 됐다 그 말입니다. 맹수가 됐는데 그 맹수 중에 아주 어떤 자가 공을 들여서 아주 강한 사자를 만들어 놓으니까 강한 사자가 그 사냥하는 것을, 제 식물을 훔치는 이 연습을 해서 훔쳤는데 그러다가 다 같은 사자인 줄 알고 사람을 훔쳤습니다. 사람을 사자가 훔쳤습니다. 그 사람을 훔쳐서 삼키자 그것을 사람들이 함정으로 가둬서 죽이고 두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아주 조심 있게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사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그 다음으로는 사람을 두려워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작아도 그는 하나님이 배후에 같이 하시기 때문에 두렵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일을 하지 안하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3. 마귀는 ‘죽지 않고  하늘나라 갈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미혹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죽지 안했다 하는 이것을 성경에 기록했는데 마귀란 놈은 와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죽지 않는다' 이것을 가르쳐 주신 것인데 '죽지 아니하고 하늘나라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이렇게 미혹해서 사람들이 그리 안 해도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 동안 종 노릇 하는 자들을 안 죽고 천국 가는 길이 있다 하니까 마구 그 길로 쏠려집니다.

그 길로 쏠려져서 지금도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 거의가 다 '안 죽고 하늘나라 갔으면 좋겠다, 죽음을 안 봤으면 좋겠다' 하는 자가 벌써 죽음에 종 되어 있는 자이기 때문에 그의 행위는 이렇게 저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지마는 가만히 마귀가 둬 둡니다. 그까짓 것 암만 둬 둬 봤자 하나님 앞에 합격은 되지 안하고 있으니까 죽음만 딱 가져와서 ‘너 죽인다’ 하면 어떤 일이라도 할 터이기 때문에 최후 방편인 죽음이 있기 때문에 죽음에 굴복할 자는 제야 무슨 일을 하든지 다 그 이하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 아래에 있는 것들이라 그 말입니다. 이러니까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마는 그것이 되는 줄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하나님이 가끔가다가 시험하시기를 죽음을 가지고 시험을 하십니다. ‘네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도를 배반치 안하면 죽인다’ 하는 그런 어려움을 해 주면 전부 하나님과 하나님의도 다 배반합니다. 말하는 대로 다 배반합니다.

4. 고제면의 신사참배

다른 데는 몰라도 제가 그때 거창 있을 때 ‘고제면’에 있었는데, 고제면에는 그때 주재소의 그 부장과 순경들이 그 사람들이 철저해서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교회 가서 교적부를 다 가지고 왔습니다. 전부 교인들 명단을 다 가지고 왔습니다. 그때는 또 마귀가 시킨 일군들 노회장 총회장 이 사람들이 성령의 감화는 받지 못하고 마귀의 감화를 받았기 때문에 마귀 일만 합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교적부를 해야 된다고 교적부를 어떻게 독촉을 해서 철저하게 했는지 다른 교회 옮길 때는 이명을 해야 되고, 교적부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적부에 한 사람도 호적과 같이 빠지지 안하고 철저하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교적부를 딱 압수해서 가서 하나 하나 불러다 놓고서 너 지금 이렇고 저렇고 이렇고 저렇고 하니까, '앞으로 이 신사 참배 안 하는 사람들은 다 아예 옥에 갇힐 뿐 아니라 마지막으로는 죽을 줄 알아라' 그런 말로서 위협을 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불러서 가서 전부 주재소에서 항복을 받았습니다. 그때 00 교인들은 낱낱이 다 불려가서 다 도장 다 찍었고 이제는 예수를 믿되 일본 나라의 법칙에 따라서 믿겠다고서 그렇게 도장 다 지장을 찍었고. 또 저 00교회도 그랬고 00교회서도 내가 그때는 00교회에 있지 안해서 와서 도장 찍고 그렇게 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한 사람도 빠짐없이 했는지 그거는 모릅니다. 그 00교회 00교회는 내가 그때에 더러 넘나들이 해서 다니기 때문에 다 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 00교회에서는 000 집사님이라고 그 집사님이 제일 잘 믿는 사람인데 내가 들으니까 가서 그 사람까지도 다 도장을 다 찍었다고서 하는 말 들었습니다. 그래 내가 가서 그 소리를 듣고서 오후 늦게인데 그 큰 재를 넘어서 거기에를 찾아가니까 논에 갔다 하기 때문에 가니까 논 구석에 쳐 박혀서 참 살기는 살아 있지마는 죽은 사람이라. 그만 그렇게 도장 찍고 나니까 자기도 탄식이 되고 이러니까 그만 참 기절하다시피 그래 가지고 있어.

내가 만나서 위로를 하고 책망을 하면서 '지금이라도 가서 다시 고쳐라. 고치면 살아날 수 있다' 이러니까 고치겠다고서 그렇게 말을 하고 내 앞에서는 용기를 냈지마는 집에 돌아가니까 또 힘이 없다 그 말이오. 갈라 하니까 또 겁이 나 못 가겠다 그거요. 죽기가 겁이 나서 못 가.

5. 6,25 때 000집사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 동안 종 노릇 하는 자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에서 해방되지 안한 자는 기본구원이나 있지 죽음에 있다 그것입니다. 그 뒤에 그만 그것을 못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후부터는 용기 있는 그런 신앙생활 못 하고 참 불쌍한 그런 신앙생활 하다가 영과 육이 아울러서 다 절단났었습니다.

내가 어제 말 들었는데 그거 사실인지 몰라도, 여기 000 집사라고 여기 있는 저 목발 타고 다니는 집사, 자기 부인이 그래요. 6·25 때 인민군이 와서 모두 다 참 쇰쓸고 있는데 인민군 뒤에 따라다니면서 ‘예수 믿고 구원얻자’고 자꾸 그래 전했다고서. 그러는데 그것 참말이오? 참말이라? 그래 그 소리를 들을 때 000 씨가 괜찮았다 싶으다 그 말이오. 그때 거석하면 놔 죽여 버리는데 대번에 죽이는데 어찌 다니면서 자꾸 그래 밉상스러운 소리를 하겠소? 이러면은 '우리도 예수 믿다가  왔오. 잘 믿소.' 이란다고.

이렇게 참 믿는다고 해도 자기가 하나님을 참 믿지 안하는 그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가끔가다가 하나님이 그런 환난을 통해서 '나는 참 하나님을 참으로 믿지 않는 자다' 하는 것을 본인에게 알려 줍니다. 알려 주는 것은 그러면 하나님이 알려 주고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알려 주나 안 알려 주나 하나님은 알고 계시지마는 본인들이 모르고 다른 사람들이모르기 때문에 가끔가다 알려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본론)

1.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믿어야 하겠는데 그 믿음을 우리가 만들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이 그런 것을 다 해 주십니다. 창5:21-24에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하셨으니,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니까 하니님이 데려 가셨습니다. '에녹이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그때는 동행 안 하고 낳았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제 아이 낳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살고 하나님이 데려갔습니다.

그러면 삼백육십오 세가 뭐일까? 하나님과 동행했지마는 하나님이 그대로 데리고 가도 '아, 내가 땅에 있었으면 좀 구원을 더 이룰 터인데' 하는 그런 것이 없이 구원을 다 이뤘다고 보실 때가 삼백육십오 년을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그 일이 이루어졌다 그 말입니다.

그러데 왜 그 전에는 안 데려갔는가? 처음에 동행에는 안 데려갔는데 삼백육십오 년이나 동행한 후에 데려간 것이 뭐일까? 왜 동행은 동행인데 일찍 안 데려갈까? 그 일찍 동행해도 안 데려간 것은 동행했지마는 동행함으로 자꾸 고쳐 가고, 동행함으로 자꾸 변화돼 가고, 동행함으로써 점점 하늘나라의 것으로 성화돼 나가기 때문에 삼백육십오 년이 되니까 이제 그가 땅 위에서 이룰 구원이 다 이루어졌으니 더 둘 필요가 없다 그 말이오. 더 둘 필요가 없으니까 하나님이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뭣을 발견해야 되느냐?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죽지 안 하는  일이 이루어지는데 동행한다고 죽지 안하는 일이 당장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일부분이 죽지 안하게 이루어지고 또 일부분이 죽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되고 또 일부분이 죽지 안할 것으로 변화되고, 점차적으로 죽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가 돼서 죽지 안할 것으로 다 변화되니까  하나님이 데려 가셨다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기서 자기는 성화될 수 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기에서 죽지 아니하는 일이 이루어지고, 동행하면서 죽지 안하는 일이 이루어져도 당장에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동행함으로써 점차적으로 죽지 안하는 일이 이루어진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잡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을 계속해야 된다 하는 것을 어제 아침에 말씀했습니다.

2. 인본주의 신앙

'안 들어도 나 예수 믿으면 되지'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들어야 깨달아지지 안 들으면 안 깨달아집니다. 이러니까 새벽 기도 안 나오는 사람들은 '내가 예수 잘 믿으면 되지' 잘 믿으면 된다는 그 사람들 보면 그 사람들이 인본주의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고 고귀하다 합니다. 인본주의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고 '야, 그 사람행위가 참 훌륭하다' 인본주의, 인간 비위 다 맞추고 세상 도덕 다 맞춰서 이렇게 하니까 그렇지 참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모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만날 죄 짓고 있는 사람으로 봅니다. 그 사람은 만날 약자로 보여집니다. 그 사람은 무슨 죄 짓고 말하지 못 하는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 보기에 인정되는 그런 것 가지고서 사람들이 안심하면 안 됩니다. 새벽 기도 안 나온 사람이 뭘 압니까? 모르는데. 오늘 아침에도 나와서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이 말을 들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동행했습니까? 동행할 때 있지만 동행 못 할 때도 많이 있었을 것이라 그 말이오. 동행 못 한 그 시간은 다 죽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동행한다고 대번에 다 삽니까? 동행함으로 차차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 말은 하나님을 떨어지지 말라 말이오.

3. 하나님과 동행 어찌합니까?

1) 주님을 생각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 어찌합니까? 그저 처음에는 못하면 '아, 주님 주님 주님' 이래도 좋습니다. 주님 잊어버리지 말고 자꾸 주님을 생각하는 것 좋습니다. '주님! 주님!' 생각하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차차 차차 그러면 이제  주님을 생각하기가 어려우니까, 주님이 눈에 형체가 보이면 하지만 무형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도성인신 하신 주님은 신인양성일위로 우리와 동행합니다. 신인양성일위이신 주님이 아버지 우편에 또 계시지마는 우리와 동행합니다.

내가 새벽에 누가 가르치는데 보니까, 주님은 아버지 우편에 계시고 우리와 동행하지 않고 거기에만 와서 계시는 줄로 그렇게 알고 말하는지 그래 말하는 사람 있던데 그것 안 됩니다. 신인양성일위이신 주님이 아버지 우편에  계신다 말은 최고 최후의 승리를 이루시고 승리의 그 위치에 앉았다 그 말을 가리켜서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다 말하는 것이고 우리와 세상 끝 날까지 동행하고 계십니다.

이러나 형상이 보이지 안하기 때문에, 자꾸 과학자들이 불행하다 하는 그 말은 과학자가 행복 되기도 하고 불행합니다. 과학자는 눈에 육 안으로 보는  것만이 인정한다 그 말이오. 보는 것만이 인정하는 그 과학자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다 무시하다 보니까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이니까 보이지 안하니 그만 하나님을 무시하기 쉽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과학자가 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유형의 존재, 유형의 존재를 만드신 그 하나님을 자기가 알 때에는 유형의 존재를 이런 사람들보다 과학자들은 더 많이 깊이 널리 많이 안다 말이오. 깊이 안 다 말이요. 아마 의학자도 인체 만든 것을 연구하면은, 우리는 인체에 대해서 그렇게 오묘한 것을 모르지마는 인체에 대한 것을 연구한 사람들은 기이하게, 인체에 대해서 '참 이것을 부모가 만든 것이 아니고 이 인체는 과연 전능자가 만들지 안하고는 이렇게 못 만든다' 하는 것을 거기에서 알아서 과학자가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면 더 깊이 인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분과 동행할라 하면은 어떻게 동행하느냐? 처음에는 그래라도 동행하십시오. '주님 주님' 자꾸 이렇게 불러서라도 그저 주님을 잊 버리지 말고 사모해요. 주님을 잊어버리지 말고  사모하는 것으로 동행해도 좋습니다. 그저 주님을 잊어버리지 말고 주님을  밤낮으로. 밥 먹고 있으면서도 나를 대속하신 주님을 생각만 하고 주님을 잊어버리지만 안해도 그것이 큰 사망을 방어하는 것이 됩니다. 사망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큰 사망을 방어하는 것이 돼요.

2) 진리를 생각

거기에서 한 걸음 나가서 이제 자라가면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내가 곧 진리라'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말씀을 자기가 잊어버리지 말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라, 또, 열 처녀 비유라' 자기 생각하는 대로. 열 처녀 비유라면 열 처녀 비유에 대해서 자기가 이렇고 저렇고 자기 아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자꾸 이래 깨달아지고 자꾸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아, 기름 준비라, 나도 기름 준비해야 되겠다' 이렇게 어느 성구든지 그 성구를 자기가 깨달은 대로 그 성구를 생각하는 그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구를 생각할 때에는 하나님이 못 달아나요. 하나님이 나를 떠나지 못하도록 붙드는 이유는 내가 주님을 사모해도 주님은 날 버리고 가지 못하십니다.

주님만 사모해도 버리지 못 하시고 내게 붙들려 가지고서 내게 내 구원 역사를 하지 안할 수가 없다 말이오. 또 내가 성경 말씀을 하나 사모하면서 그 말씀을 자꾸 이래 새김질 하면서 '이 말씀을 내가 복종해야 되겠다 이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다' 이래도 주님이 붙들리고 가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 없어 제가 돈만 사모한다든지, 무슨 고관대작을 사모하든지 ,사장을 사모하든지, 어떤 좋은 것을 사모 하든지, 내가 다른 사람을 구제를 해야 되겠다, 뭘 해야 되겠다, 어째야 되겠다, 해도 어떤 선한 일을 생각한다 할지라도 주님은 거기에는 동행하지를 않습니다. 주님 자체가 아니라. 주님 시키는 일은 일이라도 자체는 아니라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요. '내가  진리라' 하지 안했습니까?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지 안했소?

3) 성령의 감화와 동행

또 거기에다가 자기에게 성령의 감화가 있다 말이오. 성령의 감화는 무슨 형체 있는 것이 아니오. 성령의 감화는 내가 그 진리를 자꾸 이래 생각할 때에 더 생각하게 하시는 그것이 성신의 감화요. 진리를 또 이래 생각하는데 자꾸 더 깨닫게 되고 더 믿어지게 되고 거기에 대해서 더 욕망을 가지게 되고, 진리의 말씀과 나와의 관계를 더 강하게 또  진실 되게 더 새롭게 하는 그분이 성령님이오 그것이 성신의 감화입니다. 성령의 감화와 동행을 합니다.

4) 사죄를 범할 수 없다

또 그러고, '아, 주님이 나를 대속하셨지. 주님이 날 대속하셨기 때문에 그냥  내가 죄 짓지 않겠다 하는 것과 다릅니다. 주님이 내 죄를 대신 형벌 받아 죽으시기까지 하셔서 내 죄를 사해 주셨기 때문에 내가 이 죄를 다시 내가 행할 수 없다. 내 죄는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주님이 담당하셨기 때문에, 담당하시고 죽기까지 담당하신 내가 다시 끌어 들여서 동행할 수가 없다. 이래서 나는 주님이 내게 사죄 주셨기 때문에 이 죄를 주님이 죽기까지 담당한, 내가 앞으로 지을 죄도 당신이 알고 계신다 말이오. 이렇기 때문에  죽기까지 담당하셔서 이 죄를 형벌 받으신 죄이기 때문에 내가 다시는 죄를 범할 수가 없다. 내가 사죄 입었으니 사죄를 범할 수 없다. 벗을 수 없다.

5) 칭의를 벗을 수 없다

나에게 칭의를 주셨으니 칭의를 벗을 수 없다. 해석할라 하면 시간 없기 때문에 이제 대충 말한다 말이오. 칭의를 나에게 주셨으니 칭의를 벗을 수 없다.

6) 하나님과 동행을 끊을 수 없다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게 되도록 원수를 멸하고 화목을 당신이 죽으심으로써 화목 제물로 드려서 화목했으니 내가 화목을, 하나님과 동행을, 내가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과 연결된 신인 교제가 된 이 연결을 내가 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자꾸 이렇게 생각하는 이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동행하면 거기에서 또 동행이 나옵니다.

7) 감사로 동행

동행하면 거기에서 감사가 나옵니다. '이렇게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자꾸 감사로 동행합니다.

8) 자복으로 동행

또 이러다 보니까 내가 또 그것 생각하다 보니까 잘못이 있습니다. 또 잘못을 자복으로 또 동행합니다. '내가 이것 잘못했습니다 사해 주옵소서' 자복으로 동행합니다.

9) 도고로 동행

또 내가 거기에 대해서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 모르니까 '주님이여 이 일은 뭐입니까? 이 일은 어찌 해야 됩니까?' 또 당신으로 더불어 이렇게 서로 의논을 해야 되겠다 말이오. 당신으로 더불어 의논하니까 물어야 되겠고 또 배워야 되겠고 또 '어떻게 하랍니까' 지도도 받아야 되겠고 이러니까 또 '내 사정이 이렇고 저렇습니다.' 또 이래 구해야 되겠으니까 그게 또 하나님과 동행이라 그 말이오.

10) 간구로 동행

이러다 보니까 '내가 이거 안 됐다. 이거 이거 이거는 내가 못 하겠다. 하나님께 간구해야 되겠다' 간구해서 간구로 동행해야 됩니다.

그러면 내가 감사함으로 동행하고, 자복함으로 동행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문의함으로 동행하고. 하나님에게 간구함으로 동행하고, 진리 말씀을 사모함으로 동행하고, 또 영감을 '아, 이것이 영감이다, 이것이 성령님이다, 이것이 주님이시다' 성령이 주님이시오. 성령은 따로가 아니라 성령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영이라 이랬습니다. 성령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했어요.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했고, 또 십자가에 못 박히기를 누가 못 박혔느냐? 십자가에 그리스도께서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영감을 소멸하지 안하고 영감을 자기가 사모하고 영감과 동행하는 그것이 주님과 동행입니다. 또 그러다 보니까 이제 주님의 대속이 있습니다. 대속의 사죄를 사모하는 것이 주님과 동행이요, 칭의를 사모하는 것이 주님과 동행이요, 화친을 사모하면 '나는 주님, 하나님 아버지와 화친된 내다. 아버지와 나는 함께 있다. 아버지는 나와 같이 있다' 주님이 죽으심으로 화친됐기 때문에 이 화친은 영원히 끊어질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암만 배반해도 자기 쪽에서 배반했지 하나님 쪽에서는 배반이 안 된다. 나만 하나님과 결합하면 단번 결합이라 말이오. 하나님과 동행하고, 이러다 보니까 내가 감사하는 또 감사의 기도로 동행하고, 또 잘못됐으니까 자복한 기도로 동행하고, 또 내가 이 모든 사정을 고하는 도고로 동행하고 간구로 동행하고 자꾸 이렇게 동행함으로 자꾸 죽지 안할 것으로 생겨져. 죽지 안할 것이 되어진다 말입니다..

(결론)

1. 하나님과 동행 10가지

동행을 그러면 몇 가지로 말했지요? 제일 처음에 하나님을 자꾸 사모함으로, 하나님을 자꾸 사모함으로, 생각함으로, 사모함으로 동행하고, 또 그 다음에 뭘로 동행하라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동행하고, 그다음에 뭘로  동행하라 했습니까? 또 영감으로 동행하고, 또 그 다음에 뭘로 동행하라 했소? 그다음에 사죄로 동행하고. 또 그다음에는 칭위로 동행하고, 그다음에는 화친으로 동행하고. 또 그다음에는 그러면 몇 가지요. 몇 가지? 여섯 가지. 그다음에는 또 뭘로 동행하요? 감사로 동행하고, 또 자복으로 동행하고, 또 도고로 동행하고, 또 간구로 동행하고, 그러면 몇 개입니까?

2. 형체, 자연의 힘, 지극히 큰 능력

이렇게 동행하기를 주님이 원하시고 이런 가운데 사는 것이 있는데 이거는 다 잊어버리고, 어쩌든지 주님과 동행은 잊어버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돈, 아침부터 저녁까지 죄 짓는 일. 꾀우는 일, 속이는 일, 세상에서 잘 살 것 그런 것만 생각하니까 하나님께서 형체는 있어도 힘을 잡아 빼 버립니다. 그 힘을 잡아 빼요. 사울 왕이 왕 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그 형체를 하나님이 뺏들었소? 힘을 뺏들었소? 뭣 뺏들었지요? 힘 뺏들었어요.

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줄 때는 뭣부터 먼저 줘요? 순서가 제일 처음 뭣 줍니까? 일호로 형체. 두 번 째로 주는 것은 자연의 힘. 세째로 뭣 줍니까? 지극히 큰 능력. 빼앗을 때는 어떻게 뺏습니까? 일호가 뭐이요? 지극히 큰 능력을 뺏듭니다. 다음에는 힘을 뺏들어. 그다음에는 형체도 없어져 버려요.

여러분들이 사업하는데 형체까지 없어지는 것은 그만치 죽고 또 죽고 또 죽는 것이오. 알아야지. 왜 믿는 사람들이 뭣 때문에 하는 일이 실패가 된다  말입니까? 실패 없어! 베드로가 고기와 배 버린 것처럼 다 버려 버리고 더 좋은 것 찾아가는 것이지, 당신에게 순종하는데 뭣 때문에 망하겠소?

저주 중에 저주를 받고서도 자꾸 저주 받을 애를 쓰고 있으니까 안 받을 수 있어야지? 마지막에는 몸뚱이도 그만 병신이 되고 만다 그 말이오. 뭐 젊은 거는 안 죽습니까? 다 죽여 버리고 만다 그 말이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니라' 그것도 봐야 됩니다.

3. 사울 왕

자 하나님이 주실 때는 뭣 부터 줘요? 형체 주시는데 형체 행동 봐서 그다음에 자연의 힘을 줘요. 자연의 힘. 그래서 봐서 지극히 큰 능력 줬어요. 사울 왕은 하나님께서 지극히 큰 능력을 먼저 뽑아 버렸습니다. 그러면 회개를 할 일이지 회개 안 하고 그대로 강퍅하게 나가고 있으니까 자연의 힘을 빼  버렸소. 왕의 그 능력을 빼 버렸소. 이러니까 끝까지 또 형체는 둬 뒀소? 죽었습니다.

4. 다니엘

다니엘은 공부할 때에 하나님께서 자연의 힘을 주니까, 지식의 자연의 힘을  주니까 아마 시험 칠 때도 아마 일등 했을 것이라. 시험 칠 때에 일등 한 것은 그것은 자연의 힘이오. 자연의 힘 가지고 주를 위해서 하니까 지극히 큰 능력 줬는데 지극히 큰 능력 준 것은 뭐입니까?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꿈 해석 그거라. 그거는 지극히 크신 분이 아니면 자기 배운  그 지식 가지고는 십 배 아니라 백 배가 돼도 그거는 몰라. 백 배라도 어찌 알겠소? 자기가 꿈 꾼 것을 알 수가 있어요? 그것은 지극히 큰 능력이라.

그런고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을 어쩌든지 힘씁시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썩지 안합니다. 하나님과 동행을 잊어버리면 마귀란 놈이 이죄 저죄 자꾸 죄를 범하게 만듭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 놓지 맙시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자꾸 깨끗해집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 힘씁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 설교: 백영희목사(1984. 11. 23. 금 새벽)/ 정리: 김반석(2011.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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