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선지자선교회
본문 : (약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 내 형제들아

‘내 형제들아’ 하는 말씀은, 살아 있는 전 성도들을 다 총칭해서 한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도 해당된 말씀입니다.

2. 여러 가지 시험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하는 말씀에서 ‘여러 가지 시험’은 그 사람의 말을 시험하는 시험도 있고, ‘보자, 이 말을 믿음 말 하느냐?’ 믿음 말은 어떤 것이 믿음 말인고 하니 하나님 따르는 말이 믿음 말이니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는 말이 믿음 말입니다. 주님은 믿음 말만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 발표했지 당신의 독단으로 말 한 마디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내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라 말씀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은 ‘보자, 네가 믿음 말 하나 보자’ 하는 그 믿음 말 시험도 있고, 말 시험도 있고, 또 욕심 시험도 있다, 욕심 시험도 하나님을 따르는 욕심만 네가 가지는지, 네 단독 사욕을 가지는지, 욕심 시험도 있고, 또 행동 시험도 있고, 또 성질 시험도 있고, 성격 시험도 있고, 그 사람의 이성 판단 시험도 있고, 또 그 사람의 정서 시험도 있고, 평가 시험도 있고, ‘보자, 저거 평가하는 것이 내가 평가하는 대로 그대로 하나 보자’ 주님 평가하신 따라서 평가하면 그 평가는 무슨 평가입니까? 단독 평가입니까? 믿음 평가입니까?

‘또 보자, 네가 기뻐하는 네 기쁨을 한 번 시험해 봐야 되겠다’ 그 기쁨을 시험하는데 주님 따라 기뻐하는 기쁨은 믿음 기쁨이고, 마귀 따라서 기뻐하는 기쁨은 반역 기쁨 범죄 기쁨이고, 모든 것을 주님이 다 우리를 시험해서 우리에게 틀렸다는 것을 알리고, 모자라는 것도 알리고, 없는 것도 알리고, 또 조그매라도 옳은 것 있으면 옳은 것도 알리고, 온전한 것도 알리고, 여러 가지 시험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라 하는 그 시험인 줄 알아야 됩니다. 여러 가지 시험, 그 시험은 뭣이 시험인고 하니 시험은 나쁜 것을 정리하고  좋은 것을 조장시켜서 온전케 하려는 그 시험이라.

3. 가정교사의 시험

가정에서 가정교사가 아이 공부를 가르칠 때에 그 시험을 자주 치르면 그 부모가 좋아해요 자주 치르면 학생이 좋아해요? 학생이 어떻게 해요? 학생은 싫어해요. 부모는 좋아해요 왜? 그것 자꾸 시험을 치르면 삐뚤어진 것, 잘못된 것, 모자란 것, 없는 것, 그것 다 알아서 차차 차차 준비해서 실력을 갖추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좋다 그 말입니다.

가정교사가 매일 아이 모르는 것만 자꾸 시험쳐놓으면 아이 그만 그 억압당해서 버려버립니다. 좋은 것을 아는 것을 시험 쳐서 사기도 돋워 주고 또  모르는 것을 시험 쳐서 교만도 꺾어 주고 또 알쏭알쏭한 그런 것 가지고 열심을 내서 알도록 그렇게 시험 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공부를 가르치는데 가정교사가 그저 매일 여러 가지 시험을 치르는데 시험을 잘 가르쳐 놓고 시험 치르고 이라면 다른 학생들 석 달 공부해야 될 것을 한 보름만 공부해도 확 올라 갈 수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 시험은 참 보배입니다.

4. 시험하는 목적

모든 시험이 안에 있는 실상을 드러내는 것이 시험이라. 드러내는 목적이 그 사람 꺾으려고 우사 줄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기르기 위해서 속에 있는 내용이 삐뚤어졌으면 삐뚤어졌다, 또 옳으면 옳다, 모자라면 모자란다, 이렇게 시험해서 하시는 것이니 사랑하시는 주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목적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를 시험하시는 목적이 뭐이라고 했지요?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 되도록 하기 위해서 시험한다 했습니다.

5. 시험에 기뻐해야

이 시험하는 목적이 어데 있느냐?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사랑하시는 주님이 시험하시는 것이니까 이 시험을 우리가 기뻐해야 됩니다. 이런 시험도 기뻐하고, 저런 시험도 기뻐하고, 낙제가 돼도 기뻐하고, 합격이 돼도 기뻐하고, 기뻐해야 됩니다.

왜? 시험 치르는 그분이 기어코 라도 나를 온전한 자 만들려고 이렇게 애쓰시는 역사이기 때문에 그분의 그 사랑의 대상이 돼서 지금 준비하는 것이니까 뭐 이래도 저래도 좋다 그것입니다.

6. 두 가지 시험

우리를 시험하는 그 시험을 여러 가지 시험합니다. 어떤 사람은 환난은 잘 이깁니다. 환난 시험은 닥치면 막 이를 갈아 붙이고 죽어도 딱딱해서 이기는데 그만 좋은 것, 평안한 것, 기쁜 것, 영광스러운 것, 호강스러운 것, 그만 그놈 줘 놓으면 그만 더부랭이 떠 가지고 그만 헛일되고 맙니다.

또 이 사람은 환난만 닥치면 꼼짝 못하지마는 평안하고 좋고 기쁘면 또 그럴 때 믿음 잘 지키는 사람 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다 아십니다. 주님이 아시는데 우리를 시험할 때에 몇 가지로 시험하느냐 하면 두 가지로 시험한다 했습니다. 하나는 우리에게 장점을 시험해서 ‘잘했다 합격이다’ 이래서 우리에게 그 사기를 돋워 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형편 좋고 기쁘고 쉬운 그런 형편도 해 주시고, 또 우리에게 나쁜 단점을 고쳐 주시기 위해서 어려운 시험도 주십니다. 주님이 아셔서 그것을 선택해서 시험하시는 것이니까 우리는 참 기뻐해야 됩니다.

7.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말씀은 자기 자체에 전부가 기뻐해야 된다 그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입으로는 기쁘다고 하는데 속으로는 근심입니다. 또 입도 마음도 행동도 기뻐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 속에 양심도 기뻐할까요? 기뻐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을까요? 양심은 기뻐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네 지식도 기뻐해야 되고 성질도 기뻐해야 되고 마음도  기뻐해야 되고 또 입술도 기뻐해야 되고 모든 얼굴도 기뻐해야 되고 양심도  기뻐해야 되고 성령도 기뻐해야 되고 이래야 그 기쁨이 온전한 기쁨이야.

‘온전히’ 하는 이 온전은 자체 온전이 있고, 시험 온전이 있습니다. 이 시험이든지 저 시험이든지 무슨 시험이든지 그저 낙제가 되든지 합격이 되든지 나를 사랑하셔서 온전케 하기 위해서 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어떤 시험이든지 다 기뻐해라. 네 기분에 맞은 시험은 기뻐하고 낙제되는 시험은 싫어하고 그러면 온전히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다 기뻐해야 됩니다. 그러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하는 것은 두 종류가 들어 있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8. 믿음 시험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 이 시험은 무슨  시험인고 하니 믿음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믿음 시험. 수학 시험도 아니고, 어학 시험도 아니고 이것은 믿음 시험입니다.

믿음 시험은 뭣을 가리켜 믿음 시험이라 하는가? 믿음 시험은 주님을 따라서 그 명령에 순종하나? 안 하나? 그 시험, 또 네가 주님을 지금 닮아가고 있나? 안 있나? 하는 주님을 본받나 안 받나 하는 그 시험, 시험 중에 제일 알맹이 시험은 무슨 시험이라 했습니까? 하나님의 형상 닮는 그 시험이 제일 알맹이 시험입니다.

9. 믿음 중에 알맹이 믿음

이래서 명령 순종도 또 그분의 인격을 닮아갈라고 하는 것도 그것 다 믿음입니다. 그분의 뜻 따라서, 그분의 비판 따라서, 그분의 지식 따라서, 모든 것 따라갈려 하는 것이 믿음인데 제일 믿음 중에 알맹이 믿음은 뭐이냐 하면 그분의 온전하신 그 신격과 같은 온전한 인격으로 그 분을 닮아가는 것, 그분과 같이 온전해져 가는 그것이 시험 중에 제일 알맹이 믿음입니다.

10. 믿음의 시련

그런데 ‘믿음의 시련이’ 지금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좇아가나? 안가나? 그것을 시험하는 시험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하시는 대로 따라서 하나? 안 하나? 이래 보고서, 사람들은 자기가 주님을 따라서 행동할 수 있는 그런 시험이 어려운 시험입니까? 자기가 따라서 할 수 없는 그런 시험이 어려운 시험입니까? 따라서 할 수 없는 그런 시험이 어려운 시험입니다. 쉬운 시험은 주님 시키는 대로 척척 다할 수 있는 그런 시험은 쉬운 시험입니다. 그 쉬운 시험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또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없는 그런 현실을 딱 만나면 그런 것은 고통스럽게 여기고 어렵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다 아시기 때문에 너무 어려운 것을 해서 그만 시험에 뚝 떨어져서 낙망할 상 같으면 그래 안 하고, 하면 겨우 한 이점이나 삼 점 할 수 있도록 해서 자꾸 백점까지 올리도록 하는 것 있고, 그 사람이 아주 교만하면 아예 빵점 맞는 시험을 딱 내 버립니다. 빵점 맞는 시험을 내어 빵점 맞는 현실을 주면 완전히 예수 믿는 것 다 벗어 버리고 그만 안 믿는 사람 행동 해 버린다 말입니다. 그러고 나면 ‘나는 오늘은 예수 믿는 행동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안했다’ 교만한 자에게는 빵점 맞는 시험하고 또 약한 자에게는 자꾸 조금씩 그  미달되는 시험을 해서 온전한데 도달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하십니다.

11. 시험하는 데에 남아 있는 것은 정금

그러면 시험하는 데에 남아 있는 것은 어떤 것이 남아있어요? 시험하는데 남아 있는 것은 그 시험에 딱 들어맞아서 믿음 시험인데, 주님께 순종 시험인데 그러면 남아 있는 것은 순종한 것이 남아 있습니까? 순종 못 한 것이 남아 있습니까? 순종한 게 남아 있습니까? 순종한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 사람이 그 현실을 주실 때 그때 현실을 지키면, 현실에서 믿음을 지켰으면 그것은 남아 있고, 현실에 믿음을 지키지 못했으면 그만 그 믿음이 깨져 버렸습니다. 그 현실 만나기 전까지는 제가 믿는 줄 알았지마는 그 현실을 만나고 나니까 그 현실에서 그만 믿음을 지키지 못하니까 그 믿음이 바싹 깨져 버렸다 그 말입니다.

연단이라 하는 것은 이 철물(鐵物)에 대해서 하는 것인데 그 연단에서 남아 있는 것은 그 불에 탄 것이 남아 있습니까? 안 탄 것이 남아 있습니까? 안 탄 것이 남아 있습니다. 연단이라 시련이라 말인데 시련 ‘시(試)’자는 시험하는 것이고 ‘련’자는 연단한다는 ‘련(鍊)’인데 그러면 이 믿음의 시련에 마치 시험 쳐서 맞은 것은 합격이라 남아 있고, 안 맞은 것은 작대기 그어서 없애지 않습니까? 옳은 것 남아 있고.

또 금을 연단할 때에는 주먹덩이 같은 이 금덩이를 자꾸 불로 ‘연단해도 안  타고 남아 있는 것 뭐뭐 남아요? 쇠는 다 타 버렸지마는 구리쇠도 남고, 신주도 남고, 은도 남고, 다 남아요. 더 바짝 뜨겁게 하면 구리쇠도 타고 신주도 타고 다 타 버리고, 주석도 타고 다  탄다 말입니다. 주석도 타고 다타는데 그러고 난 다음에 마지막에 남아있는데 그것은 암만  불에 구워도 안탑니다.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뭐입니까? 금이라.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 명령 따라가는 것도 있고, 그분의 인품 따라가는 것도 있고, 또 그분의 속성 따라가는 것도 있고, 그분의 형상 따라가는 것도 있고, 모두 따라가는 것이 있는 것이라.

12.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따라 가는데 따라가는 것이 없어지는 것도 있고, 있어지는 것도 있고, 그러면 따라가는 데에 없어지지 않는 그것이 있습니다. 따라가는 데도 없어지지 않는 것 있고, 철물로 말하면 타지 안하고 남아 있는 것도 있고, 또 시험에는 다 합격이 돼서 남아 있는 것도 있는데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그러면 여기 인내를 만들어 낸다 하니까 뭘 만들어 낸다 말이지요. 그 시련이 뭣 만들어 낸다 말입니까? 그 시련이 뭘 만들어 낸다 말이지요?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했으니까 인내를 만들어 낸다 하는 것은, 인내를 만들어 낸다는 그 인내는 뭐인고?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자꾸 시험을 하니까 처음에는 합격이 하나였었는데, 한 여남은 번 시험 치고 나니까 맞은 것이 한 몇 개 됩니다. 또 여남은 번 시험 치니까 맞은 것이 그만 열 개가 다 맞습니다. 그렇게 됩니다. 자꾸 준비를 하니까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금도 연단을 하니까 지금 쌓여 있는데 이거 보니까 또 다 타 버리고 금이 조금밖에 안 됩니다. 또 연단하고 연단하고, 또 자꾸 새것 연단하면은 남는 금이 많아집니까? 적어집니까? 한번 연단하는데 정금이 솔방울만치 나왔다고 하면은 백번 연단 하면은 정금이 솔방울만합니까 짚동만 하겠습니까? 짚동만 합니다.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자꾸 믿음을 시험하고 연단하고 이러고 하니까 불에도 타지 안하고, 이런 유혹 저런 미혹에도 빠지지 안하고, 이런 어려움 저런 어려움을 당해도 없어지지 안하고, 이런 환난 저런 환난 있어도 없어지지 안하고, 막 죽인다 해도 없어지지 안하고, 배를 곯려도 없어지지 안하고, 오만 것 다 해도 없어지지 않는 그런 믿음이 차차 차차 생겨진다 그것입니다.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이 인내라는 이것을 해석 잘 못 하면 안 됩니다. 인내라 말은 참을 인(忍)자, 견딜 내(乃)자이니까 참고 견디는 일이거든. 참고 견디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불에 타지 안하고 남는 것이라 말입니다. 또 시험에 떨어지지 안하고 합격돼 남아 있는 것입니다.

13.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시험에 합격된 것을 온전히 이루라. 불로 태워도 타지 안하고 남는 정금을 온전히 이루라 그 말입니까? 그 말과 다릅니까?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합격을 온전히 이루라. 합격을 온전히, 불로 태워도 타지 안하는 그 정금을 온전히 이루라 하는 그런 말입니다. 맞습니까? 이러면 해석이 맞습니까?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러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너희들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면 불 시험, 돈 시험, 칼 시험, 또 세상 영광 시험, 명예 시험, 지위 시험, 행락 시험, 정욕 시험, 유흥 시험, 또 자존심 시험, 오만 것 다 오고 억울한 애매한 소리도 많이 듣지, 그런 시험 다 오는데 그래도 처음에는 그만 없어졌지마는 ‘이번에는 당하고 난 다음에는 내가 이제는 안 진다’ 하도 여러 번 시험해 놓으니까 어떤 시험이 와도 그 시험에 떨어지지 안하고 요동치 않습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도 요동치 안하지, 닮아가는 것도 요동치 안하지, 본받아가는 것도 요동치 안하지, 하나님같이 되어지는 그 작업도 요동치 안하지, 죽음이 와도 공산주의가 와도 요동치 않는 그런 것만 남아 놓으면 그것이 사람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그런 것만 남아놓으면, 그것만 남아놓으면 그것이 사람 될까? 안 될까? 온전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이는 죽인다 해도 진리대로, 돈을 줘도 진리대로, 돈을 뺏들어도 진리대로, 어떤 미남 미인이 와서 꾀어도 진리대로. 어떤 것이 와도 진리 생활, 순종 생활, 하나님의 형상 생활, 속성 생활, 의로운 생활, 깨끗하고 곧은 생활, 온전한 생활, 이것이 도무지 없어지지 안하고 그것만  따글따글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남아있는 그것을 남은 그것이 이제는 하나 둘 모으니까 나중에 그것이 모여서 온전한 뭉텅이가 돼졌으면 온전한 뭉텅이 그것이 뭣 됩니까? 온전한 뭉텅이 그것이 뭐입니까? 그 남아 있는 그것이 인내이지. 남아 있는 것이 인내라. 남아 있는 그것이 인내입니다. 남아 있는 것 이런 것 저런 것 해 도 없어지지 안하고 불타지 안하고 변해지지 안하고 그대로 남아 있는 그것이 인내입니다.

14. 온전한 사람은 믿음의 시련에서 만듬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그래서 없어지지 안하고 온전한 것이 완전이 다 남아서 구비하게 남아서 있으면 그것이 뭣 됩니까? 그것이 사람이라 사람. 이해가 돼요? 그까짓 것 제가 암만 잘났다 해도 공산주의가 와서 ‘너 이놈 죽이겠다 예수 내놔라’ 하면 ‘아이구 그거 뭐 내가 그라면 안 믿지요’ 그까짓 것은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 ‘너 신사참배 안 하면, 국기배례 안 하면, 단군 신사 절 안 하면 너는 직장도 떨어뜨리고, 감옥도 가고, 면직도 하고, 네 신세 간다, 학교서 퇴학을 한다’ 이라니까 ‘아이구 그러면 이 계명에 우상 숭배 말라 했지마는 어쩔 수 없지요. 그러면 단군 신사에 절하지요. 국기 보고 절하지요’  

자, 그 사람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시험이 왔는데 그 시험에 합격했습니까? 낙제 했습니까? 낙제 됐지. 낙제한 것만 뚤뚤 뭉쳐서 한 무더기 뭉쳐 놓으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창기 같은 아무짝도 쓰지 못할 그 잡 신앙을 가진 아주 창기 신앙이라. 아주 잡 신앙 여자로 말하면 뭐 잡 여자. 남자로 말하면 잡 남자. 아무짝도 못 쓰는 남자라.

이것이 와도 저것이 와도 변하지 안합니다. 뭐 무력이 와서 협박을 해도, 좋은 것이 와서 막 들어 올리면서 달콤하게 해 줘도, 또 지루하고 까끌까끌하고 고단하고 피곤하고 아주 견디지 못하는 지루하고 피곤해도 권태 나는 일이 와도 믿음만큼은 요동치 안하고 그대로 그것만 남아 있으면 불에도, 공산주의에도, 민주주의에도,

또 하나님이 바짝 가난케 해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입니다. 배가 고파도 아브라함 모양으로 저 밑으로 기어 내려가는 그 짓 안하고, 배가 고파도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계명을 어길 수가 있겠느냐’ 이것은 배를 곯려도 요동치 안하고, 그러다가 돈을 뭉떵 줘도 요동치 안하고, 권세를 줘도 이 신앙이 요동치 안하고, 그렇게 여러 가지 믿음의 시련 받는 데에서 따글따글 하게 합격 합격으로 남아 있는 것만 똘똘 뭉쳐 있으면 그 사람이 무슨 사람입니까? 그 사람이 어떤 사람 되겠습니까? 온전한 사람이라. 온전한 사람. 온전한 사람은 여기에서 온전한 사람 만듭니다. 온전한 인격은 어데서 만듭니까? 시련에서 만듭니다. 믿음의 시련에서 만드는 것입니다.

15.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자

이것이 천지를 모르고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천지도 모르고 제가 제일 독실자고, 잘 믿는 사람이고, 또 제가 진리고 정통이고 떠들어 쌓습니다. 수많은 연단과 수십 년의 경험을 겪어서 흠과 점이 없이 모든 것을 다  연단해서 남아 있는 그 인내 뭉텅이 돼서 있는 이 인내 뭉텅이도 뭐인지도  모르고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떠들어 쌓는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이러니까 그런 시험이 오든지 안 오든지 하나님은 알고 있습니다. 이런데 하나님이 사랑하시면 남한에 있는 이 모두 출출 장군이라고 전부 다 자기가 성자요, 자기가 성녀요, 자기가 독실한 신자요, 자기가 정통이요 진리요, 하는데 뭣이 하나님께서 한번 시험을 턱 치러서 자, 너희 주일날 여기에 안 모이면 이 사람은 다 빨갱이인 줄 알고 우리가 빨갱이 취급하겠다. 그것만 하나 나와도 아마 주일 다 빼고 다 갈 것이오.

16. 예배당에서 투표

어제는 전화가 왔는데 이 국회의원 지금 투표하는 이것을 교회가 좋다고 교회서 투표장을 만들어 놓고 지금 투표한다고 이래 결정이 됐는데 여기 가서 투표를 해야 됩니까? 안해야 됩니까? 우리 목사님 어떤 목사님이 전화가 왔어. 내가 있다가서 ‘그거 투표 안 할라 하면 그것 큰일이네요.’ ‘어째야 될까요?’ ‘그러면 그만 슬그머니 기권을 하지’ 내가 이래 놔. 기권을 하지요 이라니까 ‘아, 목사님 이것이 옳은 일입니까 그른 일입니까? 이거 예배당을 빌려서 투표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옳습니까? 그릅니까? 이거나 좀 말해 주이소,’ ‘그거야 뭐 하나님 앞에 예배 보는 장소를 그런 일 하면 안 되지.’ ‘그러면 됐습니다.’ ‘그러면 어쩔랍니까? 그라면? 살며시 기권하고 빠져 버리지 그만 어데 출타를 하든지 그러든가’ 이라니까 ‘아닙니다. 내가 갈랍니다. 가 서 이것은 예배당을 이와 같이 하면 지금 안 되니까 이것 죄가 되는 것이니까 ’당장 그런 일 취소해 버리라고 하는 것 말라고서.’이래 하는 길도 있어. 그래 하는 길도 있고,  

그럴 때 나 같으면 ‘이것 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보다도 여기에 그 삐라를 붙이는데 그래 우리 교인들이 싸웠다 해. 잡아 뜯고 이러니까 왜 뜯느냐고서 보자고, 막 이래 쌓는다 하는데 그래 내가 있다가 ‘그럴 것이 뭐 있나? 그 진리를 증거 하지. 이 하나님의 성전에 선거지 발라 놓으면 하나님이 노해서 그 사람 낙제해 떨어진다. 당선 못 한다. 하나님이 축복해야 되지 축복 안하면 되나? 그러니까 그 당신들이 위한다 하는 것이 그 사람 낙제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 말해라. 그러면 그거 그러니까 다른데  아무데도 교회일랑 그것 붙이지 마십시오 그래 말해라’ 한 마디에 다 교회 다 안 붙일 거야. ‘아이구,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그 감사하다 하면 가요. 망할 것 못 망하게 한다 하니까.

그래 이런 것도 그런 시험만 와도 그만 뚝 뚝 떨어져. ‘예배당 그것 좀 투표 장소로 좀 빌려 주십시오’ ‘안 된다’ 하니까 그러면 그 어째 그때 우리 전국이 이래하고 있는 것인데 협동을 안 하고 도무지 그 어째 협력심이 없습니다. 공연히 벌어서 아이구 그러면 뒤에 무슨 압력이나 뭐 있을까 싶어서 아 예예예 뭐 그만 주일날 아니니까 그만 다 하지요 그만 이래 버린다 말이오.

17. 6·25 때 예배당 안 빌려 준 교회

6·25 때에 점령지에서는 예배당 안 빌려 준 교회가 몇 교회 없었습니다. 위협과 협박이 오거든. 그게 뭐이냐? 불을 좀 뜨겁게 하니까 바싹 탄 내나 짚뿍더기고 그게 흙덩어리지 금덩이는 아니라 말이오. 금덩이는 암만 그래도 안 빌려 줘.

저도 위천교회 있었는데 그들이 와서 그렇게 빌려 달라 해도 안 빌려줬어요. 안 빌려 주고, 보니까 와서 풍금을 타. 풍금 타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구인데 풍금 타면 안 됩니다. 어라. 안 됐다. 이것 뿌숴라.’ 바싹 뿌숴 버렸어. 바싹 뿌수고 풍금 없애 버렸습니다. 그것 안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근에서 거창 말고 다른 데서는 거의 다 빌려주었어요.

또 이것 환자들이 이러니까 이것은 착한 일 아닙니까? 상이군인들이 모두 생겼으니까 이것 치료할 데가 없으니까 또 예배당에 와서 치료를 해야 된다고 예배당에 눕힐라 하는 것을 ‘여기에는 하나님 앞에 경배 드리는 곳이지 육신의 전쟁하다가 상이군인들 치료하는 데가 아닙니다.’ 하나도 안 빌려 줬어.

18. 불탈 신앙

이렇게 이런 시련 저런 시련, 이런 연단 저런 연단, 모든 믿음의 연단, ‘보자. 네가 하나님을 참으로 무엇보다도 제일 두려워하나? 하나님을 사랑하나? 하늘나라를 바라보나? 네가 죄를 정말로 예수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죄를 사죄해 주셨으니까 죄를 참말로 네가 안 지으려고 하느냐? 예수님이 칭의해주신 의를 네가 안 내주고 팔지 안하고 그대로 보존하느냐? 하나님하고 예수님이 죽기까지 화평해 놓았는데 하나님 배반하지 안하고 하나님하고 화목이 돼서 살겠느냐?’ 조그매만 시험하면 다 내놓고 다 떨어져 다 타 버리고 만다 말이오. 불탈 신앙.

따라합시다. 불탈 신앙! 불탈 신앙! 낙제되는 신앙! 낙제되는 신앙! 이런 것 다 버리고! 정금 같은 신앙! 합격된 신앙! 이것만 오늘에 준비해서 가져야 됩니다. 알지도 못하고 큰소리 뻥뻥하는 사람들 다 낙제하는 사람들이라.

19. 인내를 저축하자!

우리는 매일 생활에서 뭣을 저축하렵니까? 매일 생활에서 뭣을 저축하렵니까? 정금을 저축해야 합니다. 정금이 어데 있는데? 인내를 저축해야 됩니다, 인내를. ‘인내’ 이것 꼭 잡아요. 매일 생활에서 인내를 저축하자!

이래서 인내를 저축해서 인내를 하나님께서 너는 ’열 가지 인내를, 백 가지 인내를, 이 말한 대로 그 인내를 온전히 그릇에 가뜩 채워 놓으면 이 사람 온전한 사람이라. 우리 현실은 인내를 만들 수 있고, 현실에서는 신앙이 불탈 수 있고, 신앙이 인내를 만들 수도 있으니 이 현실에서 아니면 딴 데서는 못 만들어요.

이러니까, 매일 생활 현실에서 여기서는 이 시험이 오고 저 시험이 오고, 오는 시험에서 거기서 모든 시험 다 합격하고, 모든 시련에서 불타지 안하고  인내해서 인내를 만들어 내는 이 인내 만드는 일에 이 진리를 깨닫고 이것만 깨닫고 ‘인내만 만들어 내면 되겠다’ 그 현실에서 어떤 현실이 와도 없어지지 않는 믿음. 어떤 현실이 와도 변동 않는 순종, 어떤 현실이 와도 하나님의 형상을 버리지 안하고 보존할 것, 어떤 현실이 와도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과 연결을 끊지 말 것. 어떤 현실이 와도 죄짓지 말 것, 어떤 현실이 와도 의를 팔지 말 것.

이래서 그 현실에서 모든 것 이기고 남는 인내, 보존되는 것, 연단에서 불로 연단하는 데서 보존되는 것은 금만 보존되고, 시험 쳐서 보존되는 것은 뭐이 보존됩니까? 맞는 것만 보존됩니다.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을 본받아 우리가 따라가는 것이 믿음인데 하나님과 꼭 맞는 그것만 남아 있으면 그것이 인내입니다. 그것이 모이면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0. 세 가지 믿음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현실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현실이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서 우리 믿음은 여러 가지 믿음이 있어요. 말씀 순종하는 믿음, 크게 말하면 현실에 믿음이라 하는 것은 죄짓지 않는 믿음, 의롭게 사는 믿음, 하나님과 하나가 돼서 사는 믿음. 그만 세 가지 말하면 다  들어갔습니다.

이러니까 그 현실은 시험하는 현실이기 때문에 어떤 현실에서든지 이 세 가지를 잘 보존해서 세 가지 합격, 죄 안 지으니까 합격, 의를 보존하니까 합격, 하나님과 화친을 계속하니까 합격, 그러면 이것이 거기에서 불타지 안하고 없어지지 안하고 남아 있는 것이라. 이것을 가리켜서 뭐이라고요?  한몫 다 말해 봐요, 뭐이라고요? 인내. 그것이 인내라. 남은 것이라 말이오. 인내는 없어지지 안하고 남아 있는 것이라, 남아 있는 것. 인내 이 현실에서 인내 만들었으면 이 현실에는 성공했습니다.

현실에서 그만 함부로 덤비다가서 그만 남는 것 없고 그만 다 타버렸으면 없어져버렸으면 이러면 나는 그만 현실에 다 불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현실에 믿음 팔고 말았습니다.

이 수지 계산을 맞춰서 우리가 살아서 ‘인내에 온전함을 이루라’ 이런 시험에도 저런 시험에도, 단군신사 시험에도, 또 국기배례 시험에도, 주일 범하라 하는 시험에도, 예배당 달라 하는 시험에도, 또 주일날 나오라 하는 시험에도, 우리가 불 시험을 만나도, 또 우리가 어떤 꿀보다 달콤한 시험을 만나도, 사람이 쭉쭉 끌려갈 만한 그렇게 아름답고 보기 좋은 아주 화려하고 찬란한 시험을 만나도, 이 믿음을 팔지 않고 남아 있는 이것을 가리켜서 인내라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어떤 모든 시험과 연단 속에서도 그대로 따글따글 하게 보존해서 있는 이 신앙의 인내를 자꾸 저축해서 이것이 온전해지면 그러면 그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라.

21. 왜정 말년 때

이것이 아니고 예수 믿어 좋을 때는 예수 믿는 척 해, 다 혼자 열심 다 하고 예수 믿어 나쁘면 예수 믿는 것 없어지고, 왜정 말년에는 제가 거창읍에 가서 장로들도 만나고 조사들도 목사들도 만나는데 먼데서 오면 “안녕하십니까?” 나는 반가워서 이리 손을 가지고 “안녕하시오” 하면 그만 ‘저, 아! 나는 바빠서 갑니다’ 그만 저리 가 버려. 왜? 악수하면 그때 형사들이 막 깔려 가지고 있어서 악수하는 것 보니까 저거 예수 믿는 사람이라 하고서 잡을 터이니까 안 되겠다 말이오. 그러니 도망쳐 버려. 저 백집사 저거하고 악수하면 지금 그만 잡혀가고 이라니까 그만 슬슬 피해 가 버립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고 그 뒤에 만나니까 ‘아이구 어떻습니까? 하며 손을 거머쥐고 팔이 떨어질라 해. 막 어떻게 흔들어 재끼는지.

22. 우리 현실은 믿음을 시련하는 시련이다

여러분들 우리가 믿음의 시련에서 남아 있는 그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믿음의 시련에서 남아 있는 그것이 모여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하늘나라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련 안 받은 그것은 흙인지 돌인지 몰라. 나무인지 몰라. 시련 받아서 남은 그것이라야, 은도 타고, 구리쇠도 타고, 쇠도 타고, 돌도 타고, 다 탔는데 남아 있는 그것이라야 정금이지. 아직까지 불로 굽기 전에는 뭐이 금인지 몰라요.

그런고로 어쩌든지 오늘 말씀에서는 우리는 현실은 전부 뭐이라고요? 우리 현실은 뭐입니까? 시험. 우리 현실은 시험이오. 그 시험인데 그 시험은 무엇을 시험하는 시련입니까? 믿음을 시련하는 시험입니다. 그러면 그 시험에서 인내를 이루라. 그 시련에서 없어지지 안하고 남아 있는 그것은 뭐입니까? 그것이 온전한 사람입니다.

이래서 온전한 사람을 만드는 것을 알고 평가해야 되지, 입술로만 말하면 전부 그것이 온전한 사람인 줄 알아. 입술로만 그러면 거짓말인지 참인지 자꾸 말만 하면 인정하는 그 사람은 등신이라. 말을 인정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력을 보고,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의 사람을 보고, 이렇지 말만 듣고 따라가는 사람은 마귀에게 다 끌려가고 말아요. 다 속고 말아요.

이러니까 어쩌든지 우리 현실은 믿음을 시련하는 시련이다. 우리 모든 현실은 믿음을 시련하는 시련이다. 이 시련에 남아 있는 것은 온전한 것이다. 이것이 합해서 온전하고 구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설교: 백영희목사(1988. 4. 24. 주일오후)/ 정리: 김반석목사(2011.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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