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피난처 되신 주님

2011.07.24 12:44

김반석 조회 수: 추천:

제목: 양의 피난처 되신 주님
선지자선교회
본문: (마10:16-17)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서론)

1. 우리의 신앙생활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하는 말씀을 어제 주일오전과 주일오후 예배시간에 배웠습니다. 여기에 제일 중요한 뜻은 우리는 이리 가운데 보냄을 받은 양이기 때문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면 큰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지 내가 영생하는 자유 생활, 다시 말하면 믿음 생활, 참사람의 생활, 모든 하나님의 뜻대로 또 성령의 감동대로 사는 참사람의 생활, 옳은 생활, 영생이 되는 생활, 하나님의 심판에 걸릴 것 없이 하나님 심판을 넉넉히 통과할 수 있는 이런 신앙생활 이것이 우리 생활입니다.

그러면 이 생활을 하려고 하는 데에 방해되는 일이 있는 그것이 우리 문제입니다. 이 생활을 하려고 할 때에 이 생활이 잘 되도록 도와준다면 그거야 우리에게 아무 마찰될 것이 없습니다. 이 생활을 하려고 할 때에 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마찰들이 있는 것을 가리켜서 이리떼가 우리에게 그와 같이 한다 하는 그것을 여기에 가르쳤습니다.

2. 양 노릇과 이리 노릇

또 내가 이 생활하려고 할 때에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이리떼가 돼서 방해하는 것도 있고 또 내가 이리가 돼 가지고 방해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잘못하면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 이러니까 이제 나는 항상 양이고 모든 주변에만 전부 이리떼라 이렇게 보기 쉽습니다. 내 자신이 양 노릇 할 때도 있고 이리노릇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리 노릇 하는 그것은 결국은 목자의 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절단 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양이니까 양 노릇 해야 되지 이리 노릇해서는 안 되니까 먼저 내가 양인지 이리인지 내가 양 노릇을 하고 있는지 이리노릇 하고 있는지 그것을 구별해서 먼저 양이 되는 것이 그것이 준비입니다. 먼저 양이  되어야 됩니다.

3. 양은 이리를 대적할 실력이 없다

양이 되고 그러면 양이 돼서 내가 양 노릇을 하려 할 때에 양으로 살려고 할 때에 방해되는 것은 전부 이리입니다. 내가 양으로 살려고 할 때에 방해되는 것은 이리니까 방해될 때에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 이 양이 그 이리를 대적하려고 싸우면 양은 이리를 대적할 만한 실력이 없습니다. 싸우면 이리에게 삼켜집니다. 또 피해서 도망을 가도 이리 만큼 빠르지 못하기 때문에 붙들립니다. 또 숨어도 안 됩니다. 숨어도 양보다 이리는 지혜가 더 많기 때문에 아무리 숨어봤자 그까짓 것 당장에 파물어 꺼내서 먹어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양이 그 모든 이리를 대적하는 방편은 다른 것이 없고 목자에게로 가는 것뿐입니다. 목자에게로만 가면 이리 그까짓 놈은 나를 하나도  해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목자에게 상함을 받습니다. 잡히든지 죽든지 그리  아니면 그놈이 도망을 치든지 합니다.

(본론)

1. 먼저 양이 되는 것

어제 주일 예배시간에 교훈한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니 양된 우리는 그러면 먼저 양이 돼야 되지 잘못하면 저는 양인 줄로 자인하고 있는데 실상은 이리일 수가 얼마든지 있다 말입니다. 이러니까 이리는 먼저 양 되는 것이 그 순서지 이리가 되어 있으면서 저는 양으로 자인하고, 저는 악인이 되어 있으면서 저는 의인으로 자인을 하고, 마귀가 되어 있으면서 저는 성도로 자인 하는 이런 착각이 있으면 안 됩니다. 양이 된 그 양에게 말한 것입니다.

2. 이리의 대적은 목자

그러니까 '양된 자는' 그 말은 자기가 믿음 행동을 하려 할 때에, 참 사람의 행동을 하려 할 때에, 의인의 행동을 하려 할 때에, 진리대로 옳은 행동을 하려 할 때에 그때에 대적되는 것을 가리켜서 이리라고 말하는 것이지, 제가 양이 안 되고 제 자체가 이리가 돼 놓으면 이리의 대적은 뭐입니까? 목자가  이리의 대적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양의 꺼풀을 입고 속에 이리가 되어 있으면 주님이 대적이 됩니다. 주님과 대립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대립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외식자들이 다 예수님의 대립자요, 또 거짓 선지자와 모든 속화되어 있는 교회들은 항상 예수님의 대립의 역사를 합니다. 예수님과 하나 되지 않고 대립 역사를 합니다. 이것을 항상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3. 내가 너희를 보냄이

'내가 너희를 보냄이' 하는 것은, 양을 보냄이 하는 말이지 양을 보냄이 아니고 이리 되어 있는 그 자는 보낼 것이 아니라 주님과 대립이 돼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것을 잡아서 처치하려고 애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양이니까 양으로 행동해야 됩니다. 양이라 하는 것은 순한 양입니다. 또 목자에게 항상 의뢰하고 있는 양입니다. 하나님의 성도는 순한 것이 본성 아닙니까? 그러므로 양이 이리노릇 하면 안 됩니다. 양이 이리 노릇 하면 안 되니까 내가 양 노릇 하고 있나 이리노릇 하고 있나 하는 것을 생각해서 자기가 양이 돼야 되지 이리가 되면 언제든지 주님의 대적입니다.

4. 우리의 싸움은 혈육의 싸움이 아니요

이래서 성경에 말씀하기를 ‘우리의 싸움은 혈육의 싸움이 아니요 모든 잘못된 정사, 권세, 어둠의 주관자, 공중의 권세 잡은 악한 영으로 더불어 싸운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양이 안 되고 이리가 되면 안 됩니다. 옛사람은 이리요, 새사람은 양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옛사람으로 돌아가서 옛사람이 되면 주님과 적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언제든지 새사람 양이 돼야 되겠고 그것이 첫째 순서이고, 새사람 양이 되어서 내가 참 사람 생활하고 사람노릇 할라 하고, 의롭게 하고 옳게 바르게 참되게 믿음을 지켜서 이 새사람 생활을 하려고 할 때에 여기에 방해가 되는 것은 잘못하면 혈육전을 하기 쉽습니다. 혈육적으로 전투하면 다 실패합니다.

상대방이 참사람이 되지 못하고, 양이 되지 못하고, 성도가 되지 못하고, 이리가 돼서 그럴 때에는 갑론을박 자꾸 주고받다 보면  나중에 결국은 마귀 수입만 하지 사람 수입은 하나도 못 합니다.

그럴 때에는 콩을 팥이라고 들이대고 뭐 사람을 짐승이라고 하고 뭐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나는 대항하면 내가 죽어버립니다. 양이 이리를 대항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양도 뿔이 둘 있으니까 그놈만 제 무기로 삼고 의지하지마는 이리는 그까짓 것 웃고 있습니다. 양이 꿋꿋하게 두 다리로 서서 뚝 떠받는 것인데 그러면 이리 저놈은 가만히 바라고  있다가 내려오면 입을 바짝 물어 깨 먹어버립니다.

이러니까 아예 사람 같지 않은, 성도가 아닌 노릇 할 때에는, 성도 생활을 반대하는 것인데 성도가 아닌 노릇을 할 때에는 그때는 이의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갑론을박 할 필요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만 목자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뿐입니다.

5. 목자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

목자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뭐인가? 자기 현실 속에 목자가 있으니까 현실 속에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 바로 그것이 진리요, 그것이 목자요, 그것이 내게 지금 찾아와 나와 같이 있는 주님이시라. 이러니까 주님의 뜻을 찾아서 그대로만 행하면 이리떼가 많든지 적든지 그까짓 것 상관없습니다. 결국은 그 놈이 쫓겨 달아나든지 그리 아니면 목자에게 잡혀서 죽든지 합니다. 이런데 그때에 이런 방편을 쓰지 않고 다른 방편 쓰는 것은 큰일 납니다.

이러니까 첫째는 내가 양인가? 내가 이리인가? 그것 한번 살펴봐야 되겠고, 또 상대방이 양인가? 이리인가? 이것을 살펴봐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양을 대적하면 내가 이리 되어 있는 것이고, 이리를 대적하면 내가 양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양이 되어 있으면 양이 피난하고 양이 승리하는 방편을 마련하는 것이고 이리에게는 해당 되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믿는 사람들에게는 우리는 양이기 때문에 자기가 이리노릇 하면은 주님과 원수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회개해서 고쳐야 되고 또 자기가 양 노릇 하는 데는 그는 자기의 승리 방법과 피난 방법이 목자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 그 외에는 딴 길이 없습니다.

6. 부부 가정

신혼부부들 처음에 싸움이 일어납니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 이제까지 다른 가정에서 자랐지, 다른 가정 풍속이 있지, 다른 인생관을 가졌지, 사상을 가졌지, 또 각각 제 자주장하는 것 있지, 이런데 결혼을 하면 남자도 자유를 그만 뺏긴 겁니다. 성경에 보면 결혼하면 여자 자기의 모든 것은 남자가 주관하게 되고 남자의 모든 것은 여자가 주관하게 되기 때문에 결혼이 좋은 것이 아니라 실상은 하나님이 제도를 주셨지만 전혀 자기를 빼앗기는 것입니다. 자기를 양보해서 자기는 완전히 독립적인 자기는 죽어 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니까 남자가 여자에게 대해서 성경에 허락한 그런 것은 아무리 요구를 해도 여자가 반대할 권리가 없습니다. 또 남자도 마찬가지로 반대할 권리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서로 상의해서 할지라도 완전히 주관권은 뺏깁니다. 그래 놓으니까 나중에 둘이 동일한 인생관이 되고, 동일한 소망관이 되고, 동일한 본질 본성을 갖추어 가질 때에 비로소 둘이 한 사람같이 되어져야 비로소 가정이나 하나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까지 가는 데는 여러 가지 과정이 많이 있습니다. 과정이 많이 있을 때 그때 과정에서 우리가 승리하는 방법은 목자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때에 혈육으로 날뛰면 다 실패합니다. 그때에 이 사람도 자기 나오고 저 사람도 자기 나오고 둘 다 자기 나와서 날뛰게 되면 그 다음에는 마귀 수입만 하고 파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그저 목자의 품속으로 들어가요. 그럴 때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서 그 뜻대로만 그만 행하면 됩니다. 그 뜻대로만 행하면 제까짓 것이야 나한테 웅크려 달라 들든지, 이리가 어떻게 달라 들든지 할 것 없이 나는 거기 대항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항하면  죄의 종이 되니까 대항하지 못하니 대항하지 말고 그저 그때에 목자의 품안으로만 들어가면 그것이 그만 절단나고 맙니다. 상대방은 주님이 다 싸워 주십니다.

이러니까 결혼할 처녀들도 이것 단단히 기억하고, 결혼할 남자들도 단단히 기억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파괴돼 버리고 맙니다. 또 결혼하고 나서 지금  성인들이 돼서 이 사회인이 되어 사는 사람들도, 교회도 이것 사회요. 또  세상도 사회요. 이제 성장해서 사회생활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그냥 그만 '아무 말도 말고 지자' 하는 그것도 못 쓰는 겁니다. 지면 안 됩니다. 지면 종이 됩니다, 성경에는 지면 종 된다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지면 안 되니까 이 요령을 잘 배워서 이대로만 하면 승리하고, 또 승리하는 것은 죄를 이겼기 때문에 죄짓지 안하고 의롭게 살고 또 생명 생활하고 전부 영생이 됩니다. 이러니까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하는 이 말씀을 단단히 기억하고 언제든지 기억해야 됩니다.

7. 목자의 품속으로 들어가라

이러니까 제일 중요점이 뭐이냐 하면은 우리에게는 어려움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이든지 좋아서 어렵든지 나빠서 어렵든지, 다니엘에게는 왕이 하루 종일 사정하니까 좋아서 어려움이라. 좋은 어려움이나 어려운 어려움이나 어떤 어려움이든지, 직장 어려움이나, 경제 어려움이나, 가족 어려움이나, 명예 어려움이나, 경영 어려움이나, 사업 어려움이나, 신체의 어려움이나, 어떤 어려움이든지 말할 것 없이 어려움이 있거든 목자의 품속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해결된다.

8. 자기 현실 속에 하나님의 뜻

그러면 자기 현실에 무슨 사건과 이치뿐인 줄 알지마는 자기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그것은 그 속에 바로 그것이 주님이시요, 그 속에 누가 들어 있습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이 내주해 계시고, 또 전지전능이 그 속에는 내주해서 역사하고 있고, 하나님의 충만이 그 속에 역사하고 있고, 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그 속에 있습니다.

이러니까 대속의 공로는 걸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그만 걸레가 가면 싹 훔쳐서 깨끗해지는 것처럼 예수님의 대속이면 내게 이런 것 저런 것 싹 닦아서 그만 깨끗해져 버립니다. 이래서 현실 속에는 이 네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그것이 나와 같이 하는 주님이십니다.

내 현실에서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는 그것이 바로 주님 배반이요, 그것이 대속 배반이요, 하나님 배반이요, 전지전능 배반입니다. 배반은 대립이라 말입니다. 하나님의 충만을 내가 내어놓는 것이라.

9. 어려운 문제가 생겼느냐?

이러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어려운 문제가 생겼느냐? 목자에게로 어서 달려 들어가라 하는 이것이 어제 오전과 오후 예배시간에 가르친 말씀 가운데 제일입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무슨 어려움이 닥쳤거들랑 너는 양이다. 그러니까 어려움이 닥치거든 그만 목자의 품속으로 들어가 버려라. 그러면 이리 그까짓 놈은 쫓겨 달아나든지, 안 달아나면 죽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승리의 방편입니다.

(결론)

1. 유일한 피난처요 승리의 방법

여러 가지로 말한 제일 중요한 요점이 뭐이냐 하면은 너는 양이니까 네게 대해서 이런 나쁜 종류나 저런 나쁜 종류나 너를 해하려 하는 것은, 네 신체를 해할라 하는 병이든지, 너를 해하려 하는 가족이든지, 친구이든지, 사회이든지, 직장이든지, 돈이든지, 명예든지, 권세든지 어떤 것이라도 너를 해하려 하거들랑 그것을 직면적으로 대항하지 말고 너는 그럴 때에 목자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피난처요 승리의 방법이다 하는 이것을 말한 것이니까 이것을 굳게 잡고 놓치지 말아요. 이것 쓰면 당장 효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양인지 이리인지 그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제가 이리가 되어 있으면서 양인 줄 알면 모든 것이 오산되고 다 결말이 거꾸로 나오고 맙니다.

2.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이 해석이 참 어려운데 증거는 많이 했지마는 참을 잡지 못했는데 이제 참을 잡았습니다. 올바른 깨달음을 잡았습니다.

'지혜는 뱀같이 하고 하는 이 뱀은 마귀를 말합니다. 마귀를 말하고 세상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신앙이 아닌 모든 행동은 뱀 행동이요, 뱀에게 지도받은 행동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은 두 가지 지식밖에 없으니 하나는 하나님의 지식이요 하나는 뱀의 지식 이 둘뿐입니다. 하나님의 지식 아닌 것은 전부 뱀의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이든지 뱀의 지식이든지 둘뿐이지 '하나님의 지식도 아니고 뱀 지식도 아니고 그 중간이 있다' 하는 그것은 전부 귀신이 하는 것이지 그것은 진리가 말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식과 뱀의 지식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뱀의 지혜 둘밖에 없습니다.

이래서 '지혜는 뱀같이 하고' 하는 말은, 뱀의 지혜를 네가 다 가지고 있어야 된다 그 말이오. ‘지혜는 뱀같이 하고’ 지혜는 뱀의 지혜를 다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뱀의 지혜를 가지고 있어야 되는데 뱀의 지혜를 다 가지고 있으면서 네 행동은 비둘기 같이 해야 된다. 네 자체는 비둘기같이 해야 된다. 네 자체의 본질이나 본성이나 생활이나 행동이나 그것은 비둘기 같아야 되는데 비둘기 같은 네가 뱀에게 대한 것을 다 가지고 있고 알아야 된다 그 말입니다. 이러니까 이 세상을 다 알고 있으면서 살기는 비둘기같이 살아야 된다 하는 말씀이라.  

'지혜는 뱀같이' 그러면 뱀같이 하라 말은 뱀의 지혜를 다 가지고 있어라 말이오. 뱀의 지혜를 다 가지고 다 알고 있어야 됩니다. 뱀의 지혜를 다 알고 있는데 뱀의 지혜를 알고 뱀의 지혜대로 행동하는 것이 탈이지 행동하면 그만 절단 났지만은 뱀의 지혜를 다 가지고 있고 행동은 그대로 하지 안하고  비둘기같이 행동합니다.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성령과 같이 너는 성결하라. 그러면 이 모든 죄악을 다 알고 나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더러워지지 안하고 성결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지혜는 뱀같이 하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이 둘이 붙은 것입니다. 다음에 시간이 있으면 계속하겠습니다.

3. 좋은 방편

좋은 방편을 배웠는데 그 방편을 쓰면 승리해서 참 써봤으면 ‘과연 이것이 생명의 道로구나’ 할 것인데 안 써보니까 모릅니다. 써봤으면 그것은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뱀같이 지혜롭고' 뱀의 지혜를 다 알아요. '나는 네가 뱀 되면 나는 큰 뱀 되겠다' 이래 하지 말고 거기에 피동 되지 말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면 해결이 다 돼 버립니다.

(첨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 앞에 메추라기도 달라 하니까 주시고 했지마는 그것이 죄가 됐습니다. '굶어 죽어도 애굽에서 종노릇 하는 것보다 굶어 죽어도 자유의 굶어 죽는 것이 낫다' 이랬으면 하나님이 참 감동받아서 좋아할 것인데 이것 배고프다고 야단을 지치고 이러니까 안 주면 도로 죄지을 것이니까 주기는 줬지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추라기 고기 먹은 그것이 그들에게 강퍅입니다. 이래서 그 뒤에 정죄를 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 설교: 백영희목사(1989. 5. 22. 월 새벽)/ 정리: 김반석목사(2011.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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