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선지자선교회
본문: (막9:21-27)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서론)

1. 믿음은 전능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 도와주옵소서' 이렇게 병든 아이의 부모가 말하니까 '할 수 있거든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뇨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믿음은 전능이라는 말입니다. 능치 못할 것이 없다 하는 이 말씀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말인데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말은 어떤 자라 말입니까? 전능자라는 말입니다.

2. 전능자는 하나

그러면 전능자가 몇이나 있겠습니까? 전능자가 둘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확실히 없다는 것이 판정됩니까? 전능자가 둘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둘이 있으면 둘이 싸워 가지고 하나가 깨져서 이제는 전능자는 하나가 되고 하나는 전능자에게 복종을 하는 자가 되지 않으면 존재를 못 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하는 그 말은 유일하신 분이라 한 분뿐이신 분이라 하는 그 말입니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그 말은 믿음은 제일 큰 한 분이신 그분만이 할 수 있는 일인데 믿음은 제일 큰 분이 하는 일이다 하는 그 말입니다. 한 분밖에는 없는 그분이 하는 일이다 그 말입니다. 우리가 믿음은 유일하시고 자존하시고 대주재가 되시고 주권자가 되신 그분과 연합이 돼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능치 못할 것이 없는 전능이다 하는 말입니다.

(본론)

1. 믿음

그러니까 믿음은 무엇이 믿음인고 하니 믿음은 유일하신 자, 주권자, 전지 전능자, 독존자 그 분이 일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 그 말입니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하는 말씀은 믿음은 유일하신 분, 독존하신 분, 대주재이신 그분, 주권자이신 그분, 제일 크시고 한 분뿐인 그분이 일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 그 말입니다.

믿음은 사람 사람들이 이 믿음이라 하는 그것을 정의가 바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저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믿으면 다 된다 이라니까 참 믿음이 보배는 보배인데 이 믿음이 뭐인지? 기독교는 전부 믿음으로 다 되는 것인데 믿으면 영생하고, 믿으면 능치 못할 것이 없고, 믿으면 죽은 것도 살고, 믿으면 모든 목적도 계획도 달성하고 이러니까 믿음이 지극히 보배로운 것과 가치 있는 것은 알기는 아는데 믿음이 무엇이라 하는 것을 바로 알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믿사옵나이다' 해서 믿으면 된다 이래서 믿음의 일부분이 되는 그 인정만 하면 된다 이렇게 지금 다들 생각하고들 있습니다.

믿음은 주권자, 주재자, 유일하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 홀로 머리가 되시고 모든 것에 타협이나 의논이나 협력이 없이 홀로 일하시는, 주권으로 예정하시고 주권의 능력으로 성취하시는 한 분이신 그분이 일하는 것을 가리켜서 믿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분이 일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 그분이 일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니 어떻게 하면 그분이 내게 와서 일해 주실 수 있느냐? 그분이 내게 와서 일해 주신다면 그 일은 능치 못할 것이 없고 전능자가 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면 그분이 나한테 와서 일을 해주도록 하는 데에는 믿음입니다.

2. 전능자와 하나 되게 하는 방편

이러니까 이 믿음은 한 말로 말하면 완전자 유일하신 전지 전능자 그분하고 나와 둘이 하나 되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 그 말입니다. 믿음은 하나 되게 하는 것이 믿음이니까 하나 되게 하는 방법이 뭐인가? 하나 되게 하는 방법은 성경에 말씀하기를 순종이라, 또 어떤 데는 그분이 이러하신 분인 것을 인정해라 또 그분이 우리에게 선포해 놓으신 모든 이 계약과 이 지식을 인정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또 다른 성구에는 말씀하기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행하고 행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온전하게 된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성경이 가르치기를 뭘 가르쳤는고 하니 하나님과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시다 하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또 하나님이 계획을 어떻게 가졌다 하는 그 지식과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실 것이라는 그 지식과 하나님이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며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책임을 지시고 역사하신다 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사람에게 대해서, 피조물에게 대해서, 그런 것을 하나님이 필요한 대로 빠짐없이 우리에게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3. 믿음이 어떤 것인가

그 말씀해주신 이 말씀을 1)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아는 것이 믿음이면 아는 것이 믿음 전부인가? 아닙니다. 2)또 이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고 확실하다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는 것도 믿음이요 인정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3)또 그대로 자기가 소원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다 온전하게 됐습니까? 온전하게 안 됐습니다. 아직까지도 쪼갱이 믿음입니다. 4)그대로 내가 실행을 행할 때에 믿음이 온전하여집니다.

그러면 우리 할 일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이 신구약 성경에 당신이 가르쳐 놓으신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든 것에 대하여 계약한 이 계약의 말씀이요 우리에게 이렇게 된다고 교훈한 말씀이요 지도한 말씀이요 또 선포한 말씀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1)이 사실을 알고, 그 다음에는 2)인정하고, 그 다음에는 3)소원을 하고, 그 다음에는 4)실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래야 이것이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4. 인정하는 믿음

그러기에 '믿사옵나이다' ‘믿사옵나이다’ 하는 그 믿음은 무슨 믿음입니까?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인정하는 믿음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인정하면 무엇을 인정한다는 말입니까? 그 인정보다도 먼저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1)알고 2)인정하고 3)그대로 소원하고 4)행할 때에 그것이 온전한 믿음이며 그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5. 알고 인정하고 원하는 것과 행하는 것

그러면 하나님을 알고 인정하고 원하고 행하고 하는 것을 하나님은 그 무한하신 분이신데 신구약 육십육 권 성경에도 말씀을 해 놨습니다. 그러면 그 신구약 육십육 권을 우리가 다 믿고 다 인정하고 다 소원하고 다 행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한꺼번에 다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알고 인정하고 소원하는 것, 이 세 가지는 한꺼번에 다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구약 성경을 공부를 해서 성경을 다 읽으면 다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또 다 인정도 할 수 있습니다. 또 다 소원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 행하는 것은 한꺼번에 다 행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 행하지 못합니다. 행하는 것을 다 행할 수 없으면 우리가 하나씩 둘씩 자꾸 이래 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씩 둘씩 해 나갈려고 하면 어느 것부터 먼저 해야 되겠습니까? 한꺼번에 다 할 수 있습니까? 또 그러면 시간은 언제 해야 되겠습니까? 시간은 그 시간 다 할 수 있습니까? 시간도 많은 시간을 자기가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행할 수 있는 시간은 현재라는 시간뿐입니다. 또 행할 수 있는 장소도 현장이라는 것뿐이고. 행할 수 있는 그 사건도 현재 당면된 사건뿐입니다.

6. 선택 권리는 하나님께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을 다 알고 인정하고 소원하고 행한다고 하면 어디부터 먼저 시작해서 행해야 되겠습니까? 그 행하는 것은 그러면 우리 마음대로, 우리가 소원하는 대로, 이것 소원되니까 이것 행하고 저것 소원되니까 저것 행하고 그렇게 소원되는 대로 선택해서 행하면 되겠습니까? 전지 전능자, 주권자, 완전자, 그분밖에는 선택 권리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알고 인정하고 소원하고 행하되 우리 현실에서 당신이 원하시는 그 조건, 당신이 원하는 그것,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아는 것이 내가 믿음에 필요한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고 또 그것을 소원하고 그 현실에서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현실에만 능력 있습니다.

7. 사드락, 메삭, 아뱃느고

사드락, 메삭, 아뱃느고가 불 가운데서도 타지 안한 것도 그 안 탄 것은 믿음의 능력입니다. 믿음의 능력이라 말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아는 능력이요 인정하는 능력이요 소원하는 능력이요 행하는 능력인데 그것은 그 불 가운데 들어갔을 때 그때에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할 것을 인정했고 또 그것을 소원했고 또 그대로 자기는 불 가운데서 행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전폭적으로 역사해서 도왔기 때문에 불이 태울 수 없고 상하지 안했던 것입니다.

8. 믿음은 하나님과 연결

그러면 믿으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 하는 이 말씀은 무엇과 연결이 되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까? 하나님과 연결되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연결된다면 그 연결은 언제 됩니까? 시간으로 말하면 언제입니까? 장소로 말하면 언제입니까? 사건으로 말하면 무슨 사건입니까? 그때 당면한 사건 거기에 내가 연결이 돼야 합니다.

9. 하나님의 뜻과 나와 연결

그러면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그 뜻과 나와의 연결이 되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전능이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원하시고 명령하시는 그 뜻, 하나님이 시키시는 그 뜻 거기에 내가 명중만 하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이 말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명하는 당신의 그 뜻에 내가 맞춰서 그 뜻을 내가 순종할 때에는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이 말씀입니다.

10. 일호가 제일 중요

그러면 우리가 이 믿음은 몇 가지가 믿음입니까? 네 가지가 믿음입니다. 네 가지 믿음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입니까? 몇 호입니까? 제일 중요한 것이 사호입니까? 삼호입니까? 이호입니까? 일호입니까? 제일 중요한 것이 뭐입니까? 이것 아는 것이 돈보다 낫고 명예보다 낫고 지식보다 낫습니다. 권세보다 육신의 생명보다 낫습니다.

일호가 제일 중요합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그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원하고 그것을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이것인데 다른 것인 줄 잘못 알고 인정하고 원하고 행하면 그것은 하나님에게 순종입니까? 거역입니까?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까? 대립되는 것입니까? 대립되는 것이라. 망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믿음 외에는 다 망합니다.

얼마나 망합니까? 현실에서 믿음 아니면 망하기는 얼마나 망합니까? 매를 맞습니까? 아주 죽습니까? 조금 꾸중을 듣습니까? 꾸중 듣는 것이 아니고 대립만 되는 것 아니라 완전 영원 멸망입니다 알겠습니까! 현실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에 삐뚤어지게 알아서 그것을 주장하고 인정하고 원하고 행하면, 하나님은 이래 하라 하는데 저는 저래 하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어 하나님이 노여워만 하고 만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영멸이 됩니다. 그 현실에 해당된 요소는 다 영멸입니다.

11. 하나님은 독재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서 영생과 영멸이 결정된다고 하는 것을 늘 배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 뜻 그것을 바로 찾아 가지고 행하는 것이 기독교인데 또 그것이 기독자의 지도자 목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목사에게 대해서 어떻게 합니까? 서로 협의해서 의논을 합니까? 당신의 혼자의 뜻을 그대로 주장을 합니까? 어떻습니까? 타협합니까? 의논해서 합니까?

하나님이 목사로 더불어 서로 협의를 합니까? 요사이는 협의 회의로 꽉 찼는데 하나님이 그 목사로 더불어 협의를 합니까? 독재를 합니까? 협의 없습니다. “이래라” 이렇게 독재로 주권으로 하시지 의논하지 않습니다. 그 독재에 따라서 피동 돼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영원히 멸망 받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독재의 그 명령을 받았으면 그 목사는 그 명령을 교인들에게 말할 때에 협의를 합니까? 독재를 해야 됩니까? 민주주의가 멸망의 주의입니까? 생명의 주의입니까? 멸망의 주의라! 이래도 모릅니다.

총공회에서 누가 기독교는 민주주의라고 내놓으니까 목사들이 하나도 모릅니다. 아는 목사가 하나도 없습니다. 얼마나 어렵기 때문에. 그뿐 아니라 세계에 목사들이 아는 목사가 눈에 보이지 안합니다. 미국도 다 민주주의라. 칼빈이 민주주의라. 이렇게 중대한 문제지만 뜨끔거리지도 안하고 도무지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12. 의논

기독교는 타협을 하면 멸망합니다. 서로 의논해서 이와 같이 하면 멸망합니다. 의논은 하면 멸망하는데 의논은 하면 살고 멸망 받습니다. 의논은 무슨 의논합니까? 이래 할까 저래 할까 하나님의 뜻을 혼자 찾는 것보다 둘이 찾는 것이 낫고, 둘이 찾는 것보다 셋이 찾는 것이 낫기 때문에 여럿이 찾는 것을 그것은 민주주의로 찾을 수는 있습니다.

13. 민주주의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을 여럿이 찾는 것이지 결정은 여럿의 뜻을 결정 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찾지 못했지만 여러 사람의 그 뜻을 합해서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열은 이렇게 하고 열 하나는 이렇게 말하면 열하나 말한 대로 따라가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찾을 때는 민주주의에서 머물고 있거라 그러나 찾아 가지고 이것이라 하고 주의(主義)로 세울 때에는 하나님의 독재주의를 찾기 전에는 아무도 움직이지 말아라. 하나님의 독재주의를 찾아 가지고 제가 죽어도 독재할 수 있는 것이면 주장하고 그렇지 않으면 주장하지 말아라 그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나는 서부교회에서 와서 한 것은 대개는 독재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으면 그대로 하고 다른 사람이 말하면 ‘한번 좀 생각해 보십시오’ 이러고 하지, 의논해서 그 사람이 안 따라오면 나 혼자 속으로 해서 이년 삼년 후이면 달성하도록 그렇게 했지, 인간들하고 나는 평생에 표어 중에 하나가 ‘타협은 사망이다!’

그 사람 말하는 것 반하고 내 말한 것 반하고 또 그 사람의 말하는 것 셋하고 나 말하는 것 일곱하고 이렇게 서로서로 흥정을 해서 서로 타협을 해서 이래 하자는  그것은 사망입니다. 그것을 일생 동안 더불어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14. 기독자 두 걸음

기독자는 타협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분의 독재의 뜻을 찾아서 그대로 타협하지 안하고 독재하는 그것이 기독자입니다. 그것이 뭐이냐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 한 분의 뜻을 바로 찾아서 그 뜻대로 죽어도 그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 뜻이 이런데 또 조금씩 반반으로 서로 나눠서 너도 삐지지 말고 나도 삐지지 말고 서로 합해서 네 주장도 좀 세우고 내 주장도 좀 세우고 이래 하자는 그 자가 뭐이냐 하면 그 자가 사람을 죽이는 자요 자살 행위입니다.

15. 순종할 능동은 하나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는 이 믿음은 순종인데 순종할 그 대상은 순종할 그 주권자, 순종할 그 능동자에게 내가 피동 되는 것이 순종인데 내가 순종할 능동은 몇 개나 됩니까? 하나입니다. 하나인 그것 찾기 전에는 헛일입니다.

16. 겨자씨 믿음 곧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

겨자씨 믿음이라는 것은 뭣을 찾는 것이 겨자씨 믿음입니까? 뭐하고 연결된 것이 겨자씨 믿음입니까? 겨자씨 믿음은 생명 있는 믿음인데 생명 있는 믿음은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다각의 하나님이시라. 무한의 하나님이시라. 그러면 어느 면에 붙어야 연결이 됩니까? 하나님 어디 붙어야 연결이 됩니까?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꾸 망하고 만다 그 말입니다.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붙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하나님이지만 아무데나 붙는다고 붙는 줄 압니까? 안 붙습니다. 못 붙습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라. 당신의 뜻은 이래 있는데 당신의 뜻과 반대되는 것이 와서 붙으면 그것을 붙여 둡니까? 살립니까? 물리치십니다. 당신이 피합니다. 안 피하면 그 자가 죽기 때문에 피해버리십니다.

다만 하나님이 나하고 연결되기를 원하는 그 면을 나타낼 때 그 면에 가서 딱 들어붙으면 합작이 됩니다. 알겠습니까? 이것이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 그 뜻에 가서 인정하고 소원하고 그대로 행동해야 되는 것이지 자기에게 대한 뜻은 지금 저것인데 엉뚱한 데에 붙어서 하나님께 떨어지지 않으면 멸망을 받을 것이고 그리 안 하면 하나님은 떠나 버려서 하나님은 그만 만나지 못합니다.

제 마음대로 하나님을 접해? 제 마음대로 하나님하고 하나로 들어붙어? 저하고 하나님하고 하나 들어붙어?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 그것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 그것을 찾아서 붙으면 전능이며 만능이라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으로만 내가 행할 때에 들어붙는데 내가 들어붙을 수 있는 뜻은 몇 개나 됩니까? 하나뿐입니다. 언제 있습니까? 현재에 있습니다. 장소는? 현장에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분의 뜻을 찾아 가지고 하나인 거기에 내가 접선이 돼야 하나가 됩니다.

17.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는 하나님과 자기와 단독

이러니까 기독교는 민주주의니까 너와 나와 서로 의논해 가지고 이래 해야 되지 혼자 해서는 안 된다, 의논해서 이래 해야 된다 그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뜻 하나인 그것을 찾으려고 애를 써야 그것이 기독교가 바른 기독교가 되겠습니까? 여기에서 죽고 삽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독교는 민주주의라 깨달은 사람들은 사람의 뜻을 찾습니다. 이 사람한테 가서 이 사람 뜻 묻고, 저 사람에게 가서 저 사람 뜻 묻고, 이렇게 타협을 해서 하지만 기독교는 독재주의라 하는 이것을 믿는 사람들은 사탄에게 가서 의논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의논하려면 '여기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그렇게 묻지 말입니다. 참된 기독자는 그것도 묻지 안합니다. 왜?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자기에게 가르쳐 주신다고 했기 때문에 자기가 주님하고 단독이 합니다.

18. 고신의 한상동 목사님

그래서 그전에 고신의 초창기에는 한상동 목사님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사람하고 의논하지 말라는 그런 말을 많이 했습니다. 사람하고 의논해서 말라고. 이 사람 저 사람 자꾸 돌아다니면서 일만 내지 말고 은밀히 계시는 당신이 당신의 뜻을 가르쳐 주기를 원하시기를 모든 사람보다 더 원하시고 계시고 또 나에게 중생한 그 영도 찾도록 할려고 애를 쓰니까 다른데 물을 필요가 없고 주님을 직접 단독이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고 애를 쓰면 다 찾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19. 신본주의와 인본주의

그래서 사람하고 의논하지 말고 하나님하고만 단둘이 의논해서 행동해라 하는 그것을 많이 말했습니다. 그때는 또 타협하지 말라는 말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하나인 하나님의 뜻을 찾아라’ 또 ‘타협하지 마라’ 그 말이 가득 찼었습니다. 가득 찼는데 지금은 다 내버려 버렸습니다.

왜? 그것을 그대로 믿는 주인공들은 다 죽어버렸고 남은 사람은 몇 사람 안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주장하던 그런 사람들은 ‘타협하지 말아라’ ‘하나님 한 분의 뜻을 찾아서 그분하고 의논해라’ ‘그분 한 분만 서로 의논의 대상이 되어서 의논해라’ 그렇게 말한 분들은 거의 다 별세했고 남아 있는 사람이 몇 사람 없습니다. 지금 그때 안 죽고 남아 있는 사람 말고 새로운 사람 가운데에서 배워서 아는 사람들은 그대로 하지만 ‘인본주의’라는 말이 없습니다.

‘민주주의’가 인본주의입니까? 신본주의입니까? 그것도 모를 것입니다. 인본주의이니까? 신본주의입니까? 인본주의라! 이 사람은 이것이 어떤고, 저 사람은 저것이 어떤고, 인간들의 의견들을 찾는 것은 인본주의입니다. 신본주의는 하나님 한 분의 뜻만을 찾는 것이 신본주의입니다.

20. 바보

이래도 목사들이 모릅니다. 다른 진영 목사들은 아는지 몰라도 우리 진영 목사들은 모릅니다. 암만 배워야 인정치 안하기 때문에 바보라! 이러면 또 저희들이 쑥떡거려서 자꾸 목사들을 바보라고 뭐 자꾸 위신만 깨뜨린다고 하지만, 바보라는 말에 대해서 제가 바보인 것을 깨닫고 바보인줄 알고 바보 안 될라고 애를 쓰면 바보가 안되겠습니다.

바보라 말이 듣기를 싫으면 자기 인간성 가운데에 바보가 듣기 싫어합니까? 바보 아닌 것이 듣기 싫어합니까? 듣기 싫어하는 그 속의 그 사람이 바보라 그 말입니다. 알아듣겠습니까?

(결론)

1. 기독교는 독재주의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라도 정확히 깨달아야 됩니다. 기독교는 독재주의라 하는 것을 단단히 명심하고 있어야 됩니다. 기독교는 타협주의가 아닙니다. 기독교가 누구 말만 듣습니까? 여러 사람 말을 들어야 됩니까? 한 분 말 들어야 됩니까?

2. 겨자씨 믿음

한 분 뜻을 순종해야 됩니까? 기독자가 여럿하고 의논해야 됩니까? 한 분하고 의논해야 됩니다. 한 분하고 의논을 해서 의논이 딱 들어맞았을 때에 그것을 뭐라 합니까? 한 분이신 하나님하고 자기가 의논해서 그 의논이 딱 들어맞았을 때에 맞은 것을 가리켜서 뭐이라고 합니까? 그것이 겨자씨 믿음입니다.

3. 능치 못할 것이 없는 믿음

하나님 한 분의 뜻을 내가 찾아서 그 뜻하고 딱 들어맞은 것을 가리켜서 겨자씨 믿음이라, 생명 있는 믿음이라,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이라, 하나님과 연결된 행동이라. 그 연결된 행동은 뽕나무를 명하여 바다에 심기우라 할지라도 그대로 되리라 하셨습니다.


○설교: 백영희목사(1988. 6. 30 목 새벽)/ 정리: 김반석목사(2010.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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