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갑절을 구한 엘리사

2010.12.05 17:29

김반석 조회 수: 추천:

제목: 영감의 갑절을 구한 엘리사
선지자선교회
본문: (왕하2:9-10)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서론)

1.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우리에게는 전적 부패한 심령이 있고 또 악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합니다. 그러기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옳고 바른 참된 것이 부패해져서 거기에 생기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 것을 가리켜서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성경이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 모든 마음의 각종 요소가 완전히 부패되어 있고 또 악령이 쉬지 않고 에덴동산에서 부터 계속 타락한 인간의 심령에 왕 노릇을 하고 있으니 인간의 마음은 완전히 악령화 완전히 부패한 마음들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지만 이를 누가 알리요 라고 렘17:9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했습니다.

2. 공중에 악한 영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사람들이 되어있지만 누가 그것을 알겠느냐 예레미야 17장 9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언행심사를 하나도 빠짐없이 심판해서 금생에 보응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영원무궁토록 보응을 하시는데 인간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하고 또한 악령은 사로잡고 놓지 아니하고 제 주장에 복종시키려고 하는 첩첩히 쌓여 있는 깊은 함정 속에 있는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솟아나며 어떻게 돌아설 수가 있겠습니까, 안됩니다. 불순종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공중에 악한 영이 그를 주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비록 중생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에 순종하지 아니할 때에는 악령이 그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님이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영은 구출 해놨지마는 심신으로 된 육은 구출하지를 않으셨습니다. 구출된 영을 통해서 영감과 진리를 줄 때에 이를 달게 받아 힘을 씀으로 비로소 영접이 되고 구출이 되는 것입니다.

3. 아버지의 성령

이러기에 성령이 아니면 우리는 이 불의한 것을 돌이키지 못합니다. 자기 욕심하나 잘못된 것 가짐으로서 제 일생이 영원히 망쳐지지만 그 욕심이 틀렸다는 것을 죽는 날까지 모르고 죽을 때에서 비로소 아! 헛일했다. 또 안다 할지라도 그것을 버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는 자녀로서 학습도 세례도 받았지만 세상과 세상에 있는 어떤 학문 그것을 해야 된다고 학문의 욕심이 있어 불철주야로 죽는 날까지 해서 세상에서 유력한 권위 있는 학자가 됐다 할지라도 그는 일생생활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과 천국은 다 저버리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일생동안 하다가 끝마쳐 영원히 그 요소는 멸망 받고, 구원은 얻지만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것과 같은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사상의 욕심에 삐뚤어진 것을 누가 인간에게 가르쳐서 참으로 이 욕심은 잘못됐다 하는 것을 실지로 느끼게 할 자가 있습니까? 어떤 웅변가 어떤 열변가가 아무리 말한다 할지라도 그의 입을 막고 설득을 시킨다 할지라도 그 마음에 실감을 느껴 돌이킬 수 있게는 못하는 것입니다.

다만 아버지의 성령으로서만 인간의 이 마음의 악령을 뽑아낼 수 있고 조물주가 뚜렷이 있는데 자기 중심대로 사는 그 악성을 뽑아낼 수 있고, 대대로 인간 중심으로 살아온 더러운 풍속, 습성, 유전, 모든 세상 더러운 그런 것을 뽑아낼 수가 있지 인간의 각오나 결심이나 회개하는 어떤 마음으로 안 됩니다, 인간의 것으로서는 안 된다고 하나님이 단언을 해놨습니다. 천하에 있는 불신자는 다 놔두고 믿는 사람들이 그 마음과 몸을 악령이 주장하기 때문에 이름만 예수 믿는 사람이지 입술로만 예수 믿지 실제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이루는 사람은  참 흰쌀에 뉘 같이 귀합니다.

모두가 다 악령이 주관하여 있고 원죄가 주관하고 있고 본죄인 악습 이 주관하고 있으니 그 강한 세력은 천하 인간을 다 삼키고 있는 강한 세력인데  우리가 무슨 힘으로 그 세력을 꿰뚫고 벗어날 수가 있습니까? 절대 안 됩니다.

4. 성령의 도우심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오전 설교에도 엘리사는 이방인 또 교회에 그 권세를 줄 수 있는 그런 권위가 엘리야에게 있어 뭐를 줄까 할 때에 모든 기적과 능한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신유의 권위를 줄 수 있는 엘리야지만 엘리사는 모든 것 싫고 당신 안에서 역사하는 그 영감을 나에게 달라고 그것을 구했습니다. 그것을 오전 예배 시간에도 증거 했는데 이 말씀은 모두 다 귀 너머 들을 말이지만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5. 신앙의 모형적 길

제가 힘이 있어 여러분 앞에 역설을 해서 설복을 할 만한 그런 힘이 없습니다. 다만 그저 움싹만 여러분들에게 말하니까 그 둥치와 뿌리는 여러분들이 캐야 할 것이요, 엘리야와 엘리사와 그 선지 생도들은 오늘 신약교회의 성도들을 모형 해서 신앙의 길을 모형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길갈, 벧엘, 여리고는 모두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에 있는 곳인데 길갈, 벧엘, 여리고, 요단강 이렇게 이 순위로 된 것이 지역이 그렇게 되어서 된 것 보다도 우리에게 벌써 신앙 조상들의 걸어온 유명한 그런 역사가 있는 곳곳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신령한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길갈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너는 길갈 여기 있거라 나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벧엘로 보내신다’ 할 때에 길갈은 어떤 곳인고 하니 그들이 만나 먹다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의 곡식을 처음으로 먹기 시작한 그 장소가 길갈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기 전에 제 힘으로 바둥거리고 살다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예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세상살이 은혜와 축복을 받아서 참 가정에 우환 있던 것도 없어지고 또 여러 가지 얽혔던 것도 풀어지고 육신의 생활도 형통해지고 또 신령한 믿음의 생활도 잘 되고 하는, 예수 믿고 등 따시고 배부르고 아무런 걱정 없이 지나니까 이만하면 족하다 하는 그 자리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엘리야는 말하기를 ‘나는 벧엘로 가겠는데 너는 여기 머물라’ ‘아닙니다 나는 맹세코 따라 가겠습니다’ 말할 때에 그러면 가자 신앙생활이라 하는 것은 옆에서 강권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제가 원하는 마음과 단 마음이 있어야 신앙생활이 되는 것이지 단 마음이 없이는 안 됩니다.

오늘도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예수 믿기 전에 자기 개인교회 가정교회 사회생활 모든 것이 얽혀서 뒤죽박죽으로 이렇게 되어 있다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그런 것이 정리가 되고 평안하고 참 등 따시고 배부른 생활하면 그것으로 족한 줄 알고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자고 권면하고 강제로 끌어도 안 됩니다. 그러나 거기에 성공은 있지 안했습니다. 거기에 있는 무리들이 다 그러다가 일생동안 죽는 생활하고 끝마쳤지 하나님과 접선된 그런 생활은 하지를 못했습니다.

2. 벧엘

거기서 벧엘로 내려갔는데 벧엘은 성경에 믿음의 조상 때부터 하나님이 약속으로 세워놓은 축복의 곳입니다. 벧엘은 제단 쌓은 곳이라고 모두 다 출발할 때에 첫 제단을 쌓은 제단 쌓은 곳이라 다 인식하도록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벧엘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제단 쌓는 생활 그저 주일 잘 지키고 성경보고 연보하고 전도하고 기도하고  이렇게 신앙생활 아무 어려움 없이 평안하게 신앙생활하면 이것으로 다 족하게 생각하고 거기서 만족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너는 여기서 살아라” 거기는 선지 생도들이 많은데 선지자 되려고 하나님의 일꾼 되려고 모두 벌떡 거리는 그런 사람들이 벧엘에 많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 그 생도들도 엘리사에게 말하기를 ‘지금 당신이 따르는 그 주를 하나님이 데려 가시기로 작정된 것을 아느냐 갔다가는 낭패 당할 터인데 뭐 하려고 따라가겠느냐 우리와 같이 있자’ ‘나도 안다 잠잠하라’ 거기서 붙들리지 아니하고 끝까지 엘리야를 따르려고 하므로 그 자리를 초월했습니다. 그저 평안한 가운데서 일반적인 신앙생활하고 있는데 만족하지 아니하고 엘리야가 가는 곳을 끝까지 따라 가겠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 주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주님이 인도하시는 성경 말씀대로 다 가고 영감을 따라서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지 못합니다. 이 벧엘 생활에서 그만 만족하고 이 벧엘에 있는 선지자 생도들이 뭣 때문에 있었겠습니까.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역사적인 그런 형식을 꾸민 것입니다. 영원 전부터 꾸며서 우리에게 보인 것입니다. 다만 거기서 엘리사만이 ‘당신 가는 곳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끝까지 따라 가겠다’라고 한 사람은 많은 선지 생도가 있었지만 엘리사 한 사람뿐인 것입니다.

3. 여리고

여리고에 가니까 특출한 선지 생도 오십 인이 기다리고 있으면서 또 엘리사의 가는 길을 멈춰 같이 있자고 가지 말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불러 가실 터인데 따라가다가 낭패되지 않느냐 그대로 가면은 어떤 역경이나 어려움이 있을 터인데 그만 우리가 같이 있자’ ‘나도 안다 잠잠하라’ 하고서 따라가니까 요단강을 당했습니다.

4. 요단강

요단강은 죽음으로 일반학자들이 상징하는 것을 봅니다. 요단강은 살수(殺水)가 심한 곳인데 아무 것도 없이 둘이 가면 배도 없어 아무 것도 없어 건너갈 수 없는 곳이라, 그러나 엘리야를 따라서 요단강을 건너갔을 때에 비로소 ‘네 소원이 뭐냐’ 하는 것을 물었고 그 소원을 말할 때에 나를 하나님이 올리어 가셔서 너와 이별되는 그때까지 네가 나를 바라봐야 이 일이 이루어지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말을 하고 떠나고 난 다음에 회리바람 속에서 엘리야를 끝까지 바라보는 데에서 엘리야의 겉옷을 던져주는 것을 받아 가진 그것이 뭐이냐 하나의 형식이라 그 말입니다. 옷이 무슨 상관있습니까? 우리에게 하나의 형식으로 계시해 보이는 모형입니다.

5. 형식 도리

엘리야는 오늘의 예수님의 모형으로 우리에게 보여줬고, 엘리사는 끝까지 주를 따른 성도를 보였고, 선지 생도들은 길갈 정도에서 벧엘 정도에서 여리고 정도에서 예수 믿으면서 그저 성경보고 하나님의 축복받아 별일 없이 살면 잘 믿는 줄로 알고 있고, 하나님 앞에 제단 쌓아 새벽기도나 나오고 기도나 하고 주일이나 지키고 이러면 예수 잘 믿는 줄로 만족하고, 거기서 좀 나아가서 예수 믿어 이적과 기사의 은혜를 받았고 이러면 족한 줄로 알고 있습니다.

6. 거짓 선지자

마태복음 7장15에는 말씀하시기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이랬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누군가? ‘주의 이름으로 내가 많은 선지자 노릇 해서 많은 사람을 인도했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냈고 이적과 기사를 내가 행하지 아니하였습니까’ 말할 때에 주님이 ‘악한 자들아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 한다 내게서 물러가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이것은 너희들로 하여금 과연 주님이 계신다는 증거로 너희들이 똑똑히 의심 없이 믿고 따라오라고 한 것이지 그것이 구원되는 것 아니다. 이적을 보인 것은 이적을 봐서 참 믿으라고 보인 것이지 이적 그것이 구원인 줄 아느냐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지 안하는 자는 다 멸망하리라’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7. 교회

마태복음16장에는 ‘교회를 반석위에 세운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준다. 이는 너희 육신이 알게 한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영이 너에게 알게 해 준 것이니 그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그에게 천국 열쇠를 주겠다’ 하셨습니다.

8. 성전 밖 마당

요한계시록에는 보면 ‘성전 밖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성전과 제단과 그 가운데 경배하는 자들만 측량하고 그 외의 것은 측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해서 믿은 사람에게 전도를 많이 했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했고 이적과 기사를 행했는데 이것이 구원이라 하는 자가 거짓 선지자인 것입니다. 그것은 도가 아니요 구원의 도가 아니요 그것은 구원의 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9. 표적

표적은 믿는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믿지 아니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 말씀이 참되니 이대로 라는 것을 인정하고 주의 말씀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대로 살라니? 그러면 교회는 어디다 세우는데? 천국열쇠는 무엇으로 주는데? 인간의 심신의 연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알려준 그 영감 위에 교회 세우고, 그 영감에게 천국 열쇠를 맡기고, 그 영감이 땅위에 것을 매면 매이고 풀면 풀리지 영감에 집중 하라고 이러는 것이지 표적 그것이 영감 아닙니다.

10. 선지 생도들

그러기에 길갈 생활, 벧엘 생활, 여리고 생활, 이런 일반적인 신앙생활은 참 신앙의 길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길갈 하나님의 은혜 받아 가지고 영육의 새로운 은혜를 받은 생활, 하나님 앞에 제단 쌓는 제단 생활, 이적의 신유생활, 이 선지 생도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던가? 엘리야의 마지막 끝이 마쳐지는 회리바람에서 엘리사가 엘리야를 잊어버리게 되는 이런 일로 그들은 알았습니다, 엘리야가 회리바람에 날려 없어질 것으로 그들은 알았습니다. 그렇게 알았지마는 안 것이 그들에게 어떤 역할을 했던가? 엘리야를 따라가지 못하게 하는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또 그들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엘리야의 영감이 온 것을 보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주라고 시인했습니다. 알았는데 안 것이 뭐 했던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승천시켰는데 하나님의 종말 일에 믿지 아니하고 의심해서 용사 오십 인을 보내서 찾도록 찾아가지고서 ‘보라! 승천이 아니고 여기 지금 막 지금 추락돼 낙상되어 지금 죽어있다’는 그런 것을 원해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되기를 원하는 것보다 안 되는 면을 원해서 언제나 반발하는 그 반대편에 서서 있은  선지 생도들입니다.

11. 갑절의 영감을 원할 때

오늘도 그렇습니다. 길갈을 초월해. 벧엘을 초월해, 여리고를 초월해 아직도 멀었습니다, 요단의 죽음을 초월해서 사선을 넘었을 때에, 생명을 내놓고 죽는 것을 개의치 아니하고 이 육의 생명보다도 신령한 영원한 생명을 존귀하게 여겼을 때에, 모든 피조물보다도 창조주의 그 조물주의 모든 능력이 크다고 인정이 될 때에, 이 세상을 깔볼 때에, 피조물을 깔볼 때에, 땅위의 소망과 조물주와 비교될 때에, 그 비중을 조물주에게 높이고 땅위에 있는 소망과 하늘에 있는 소망을 비교할 때에, 땅위에 소망보다 하늘의 소망을 더 높이고 모든 것 다 끝나더라도 하나님 영감 받아 엘리야 모양으로 일하려는 엘리야 모양으로 신앙생활 할 때에, 모든 것을 다 초월해서 성령이 아니면 인간은 할 수 없는 이 사실을 믿어 이 성신의 감화로 자신과 모든 부패성과 악령의 이 모든 역사가 다 변화되어 탈출되고 자유 할 수 있다는 이 사실을 깨닫고. 길갈보다 벧엘보다 여리고보다 요단강의 생사보다 더 원했을 때에, 네가 원하는 것이 뭐이냐 물었고 원하는 것을 말할 때도 땅위에 있는 모든 것을 원치 안하고 영감을 원할 때에 비로소 영감이 엘리사에게 약속됐고, 약속된 그 영감이 언제 이루어지느냐? 엘리야의 최종 회리바람이 부는 최종까지를 바라보고 끝까지 바라보는 거기에서 영감이 임했습니다.

오늘도 평신도뿐만 아니라 목회생활을 길갈 목회생활에서 만족하는 자들 많습니다. 벧엘 목회생활에서 만족하는 자들 많습니다. 여리고 목회생활에서  만족하는 자들 많습니다. 이적이나 기사나 행하고 교인 수나 모아서 밥이나 먹고 그냥 현상 유지만 되면 만족하는 자들 많습니다. 여기에서 사선을 넘지 못하고, 자기의 생명보다 구원을 크게 여겨서 생명을 투자하지 못하고, 안 믿는 사람들이 세상 것을 탐하는 것처럼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는 그것을 탐해서 그것을 욕망하고 만족하고 이렇게 사는 신자들이 많은 것을 여기에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2. 엘리사가 하나님과 동행

엘리사가 엘리야의 영감을 받은 다음에 그가 한 행사는 여리고성에 그 모든 지질과 수질이 나쁜 그것을 고쳐서 하나님이 고쳐줬다 하고 고쳐서 그 모든 것이 다 변질되어 오늘까지 있다고 했습니다. 왕하2:19-22에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 하셨습니다.

엘리사가 기도한다고 하나님이 들어줬겠습니까? 소금을 뿌린다고 됐겠습니까? 아니요! 하나님과 엘리사가 함께 행동한다는 것을 보인 것입니다. 비로소 영감 받고 난 다음에 하나님과 엘리사가 함께 행동할 때에 먼저 땅위에 있는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 해결지어서 영광을 돌리게 하고, 땅 위에 있는 인간들에게 평강이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조롱하는 대적하는 자들을 저주해서 대적했으니까 엘리사의 실수라 봅니까? 하나님이 하지 안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하셔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왕하2:23-24에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하셨습니다.

사십이 명이 곰에게 찢겨서 죽은 것은 이것이 뭘 보이느냐 땅위에 있는 건설과 파괴, 구원과 멸망, 땅에서 네가 메면 메이고 풀면 풀리고, 하늘에서도 메면 메고 풀리면 풀린다 왜? 영감이 메면 메이지지 영감이 풀리면 풀려지지 풀고 메이고 그 모든 것을 하나님과 같이 움직이는 자 되는 것이 영감에서 되는 것이지 이적과 기사나 그런 것 행하는 데에서 되는 것 아닌 것입니다.

13. 요단강을 넘는 신앙

그러기에 오늘도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 이런 형식을 가지고 가르쳤으니까 우리가 잘 알게 됩니다. 이 형식을 가지고 가르쳤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잘 깨달을 수가 있다 그 말입니다. 오늘도 길갈 신앙생활에 머물고 있는 자, 벧엘 신앙생활에 머물고 있는 자, 여리고 신앙생활에 머물고 있는 자, 아직까지 생명은 주님의 제단위에 내어놓지 아니하고 생명은 제 것으로 생명의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자, 암만 날뛰어 봤자 마귀는 저까짓 것이야 마지막에 쓸면 다 쓸려올 것 다 쓸려오는 것입니다.

사선을 넘지 안하고는 참된 구원은 이루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죽자 것 해도  마귀의 밥만 만들고 마귀의 소득만 만들지 소용없습니다. 요단을 건너가고 난 다음에 ‘네 소원이 뭐이냐’ 그것은 사선을 넘어서 주님과 주님의 도를 위해서 생명을 제물로 바치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뭐든지 네게 주마 뭐 할래 할 때에 땅위에 있는 모든 것 보다도 영감을 달라고 하는 거기에서 성신의 감동이 자기를 주관하는 그 은혜가 자기에게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높은 가치를 가지고서 있는 것이고 얻기가 힘 드는 것이지, 그저 제 마음대로 욕심대로 날뛸 대로 날뛰고 살대로 살고, 제 모든 심령과 정력은 다 쓰고 찌꺼기 남은 그 까짓것 돈 버는 데도 쓰지 못할 찌끄르기 남은 것 그 까짓것 가지고서 주일이나 슬슬 지키고 성경이나 보고 기도나 하고 뭐 전도나 하고 하는 것 안 됩니다. 이것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길갈을 넘어십시요. 벧엘을 넘어십시요. 여리고를 넘어십시요. 요단을 넘어십시요. 성신의 능력을 받으십시요. 그래 가지고 엘리사는 다시 요단을 건너서 가나안 그 하나님 백성들 있는데 건너갔습니다. 갔으니까 엘리사나 다른 사람들이나 꼭 같은 사람으로 꼭 같이 살고 있지만 이는 길갈을 벗어났고 벧엘을 벗어났고 여리고를 벗어났고 요단강을 벗어났고 회리바람에서 마지막 주님을 이별하고 최종까지 바라보는 이 끝을 마치고 영감을 받아 가지고 다시 요단강을 건너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같이 살았습니다.

14. 모든 것 보다 주님과 하늘나라

이러기 때문에 기름을 준비한 자들도 다 신랑이 더디 오매 졸며 잘새 밤중에 신랑이라 하니까 준비한 자들은 다 혼인잔치에 들어갔고 준비하지 못한 자들은 다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순위를 지내서 모든 것보다 보다보다 주님과 하늘나라를 크게 여기고 자기보다 주님을 크게 여겨서 이 순위를 통과해서 예수를 믿는 자들 있고, 그 안에서 이렇게 꼽작거려봐야 이것은 혹시나 거기서 무엇이 될까 해서 그런 것이지 실은 건설구원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런 말씀들을 믿으면 반석위에 세운 집이 됩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어떤 것이 거짓 선지자인데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많이 가르쳤고, 가르치는 그것은 하나님의 도를 증거 하는 것이요. 가르쳤다고 제가 성화되는 것 아닙니다. 귀신을 쫓아낸 이적을 행했다고 제가 변화된 것 아니요. 주의 일로 능한 일을 능력 있는 큰일을 만났다고 제가 변화 된 것 아닙니다. 어째야 되느냐? 네가 주여 주여 한다고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고 하늘나라에 계신 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뜻대로 행하는 자 그것이 뭐입니까? 그것이 영감입니다. 거기서부터 구원이 되어지는 것이고 다른 것은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뿐입니다.

15.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태복음16장에 보면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준다. 네 이름을 반석이라 하라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반석이 무엇이며 천국 열쇠가 무엇입니까? 네가 나를 아는 것이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 아들이니이다’ 이렇게 네가 안 것이 모든 선배들 대대로 내려온 신학자들에게 배운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배운 것 아니다. 네 속에 아버지의 영감으로서 너에게 알려준 그 영감을 그대로 배워서 그대로 네가 인정하고 그 영감대로 인정하는 그것으로써 네가 안 것이지 육신이 너를 알리는 것 아니다. 거기 네 속에 성신의 감화가 인도해서는 영감 그대로 네가 행동하는 그 행동 그 사람 위에 교회를 세우고 거기에 천국 열쇠 준다. 네 속에 영감 된 그 영감이 메면 메이고 풀면 풀린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16. 살았다 이름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이제는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까 마지막으로 우리가 정신을 차려서 산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사데 교회 말씀하시기를 ‘네가 살았다 이름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네 행위에 온전한 것을 내가 보지 못했다’ 백 가지 중에 한 가지나 행하고 어떤 자는 만족하고, 백 가지 가운데에 오십 가지나 행하고 만족하는 것 아니다. 온전한 행위 거기서만 생명 역사는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제 하나님 도를 에누리하고 행동을 에누리한 이런 것을 다 버립시다.

17. 기름 부음

요한일서 2장 26절 이하에 보면 ‘너희들에게 기름부음이 너를 옳고 바르게 가르치는데 인간에게 배울 것이 없다’ 사람에게 배울 것이 없다. 사람에게 배운 그것은 성경 상식으로 배우고 있고 네 속에 영감이 시켜준 그대로 하는데 구원이 있고 거기에 교회를 세우고 거기에 네가 건설되고 거기에 변화가 되고 거기에 능력이 있지 일반 상식으로 성경 가르치는 거기에 구원 있는 것 아니다.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치 말라 그리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네 속에 거하지 아니하나니 세상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는 쫓겨납니다. 못 있습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자에게 예수님의 삼대 구속이 거기에 역사할 수가 있습니까? 삼대 구속은 당장 나갑니다.

18. 삼대 구속

삼대 구속은 그 사람에게 있는 세상을 죽이고 세상을 구출하고 세상을 잡아먹어 이용하는 것인데, 세상을 기르는 것과 주의 구속의 역사는 정 반대인데 구속의 역사는 세상을 죽이고 세상은 구속의 역사를 죽이려고 서로 반대인데, 세상으로 사는 자가 어떻게 되겠느냐? 아버지의 사랑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는 구원이 네 속에 거하지 아니하느니라. 이는 다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니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니 세상 새끼다. 아버지로 좇아온 것이 아니다.

세상 정욕, 세상 것을 욕심내는 그 욕심내는 자, 안목에 좋은 것을 욕심내는 그 자가 사는 생활이니 그자는 멸망할 자식이라, 그 자는 옛사람이라, 그자는 주의 피와 원수 된 자라. 이러기 때문에 세상도 가고 정욕도 가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너는 그 사람으로도 살 수 있고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자들로도 살 수 있다. 세상과 세상을 사랑하는 그 자는 세상으로 좇아온 자다. 아버지께로 온자가 아니다. 그자의 모든 행위는 주의 역사를 대적하는 그 행위기 때문에 주의 공로는 거기에 거할 수가 없다.

19. 엘리사를 반대

네가 그것 되어 대적하니까 쫓겨나가야 될 것 아니냐. 길갈의 선지생도, 벧엘의 선지생도, 여리고의 선지생도, 그들은 하나님의 선지생도이고 하늘나라를 그렇게 고대했지마는 그들의 행동은 전부 엘리사 행위를 반대했습니다. 미혹하고 반대했습니다. 하나님이 완성해놓은 일도 다 의혹해서 반대하고  조롱하는 입장에 섰습니다.

20. 주님의 재림

우리가 이제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왔습니다. 재림이 늦어도 세상은 못 견딥니다. 세상은 모든 면이 멸망의 직전에 있을 만큼 죄악이 관영해 있습니다. 모든 면이 다 죄악이 관영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 재림이 가까왔습니다. 빨리 빨리 그들이 멸망하는 그 죄악에서 나와야 됩니다.

21. 자기를 위해 예수 믿는 생활은 성전 밖 마당

그 죄악이 뭐인데? 주님보다 저 사랑하는 것, 예수를 믿되 이 선지 생도들 모양으로 저 위해서 예수 믿는 것, 주님이 나 위해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베푸셔서 모든 것 다 제물 되어 나 위해서 나를 구해 줬으니까 구출 받은 나는 이제 남은 때는 당신 위해 사는 것이 법이며 마땅히 법리입니다. 이런데 아직도 예수 믿는 것도 자기 위해서 예수 믿는 이 생활하는 것 그대로 붙여 두는 것은 성전 밖 마당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행여나 일어날까 살아날까 하는 것이지 주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고 자기를 중심해서 사는 그 생활 행동이라 하는 것은 건설구원에 속한 것인데 건설구원은 털끝만치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본구원은 있습니다.

이제는 마지막이 됐기 때문에 최종적인 교훈을 숨겨 가릴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이 됐기 때문에 듣든지 안 듣든지 넣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실은 자기가 자기를 기쁘게 좋게 하기 위해서 자기 중심으로 사는 그 죄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제는 내 중심으로 주님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전부는 대속 하신 주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 자로 인식하고 살 자로 출발하고 주를 위해서 사는 걸음에서만 털끝만치라도 거기서만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다른 데는 건설구원은 절대 없습니다. 이것을 구원 있다고 하면 다 거짓 선지자입니다.

22. 신유 은사

아무리 신유의 은혜를 받아서 신유의 행사를 해도 안 됩니다. 많은 전도를 해도 안 됩니다. 전도했으면 전도는 전도 됐는데, 전도 받은 그 사람이 자기를 주를 위해서 바쳐 살든지 죽든지 주를 위해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 살아도 주를 위해서, 죽어도 주를 위해서, 먹어도 주를 위해서, 마셔도 주를 위해서 하는, 자기를 향한데서 방향을 전환해서 빽돌아서서 이제는 내가 주를 나 위해서 이용할 것이 아니라 내가 주의 이용물로 주의 것으로 주를 위해서 사는 여기에서만 건설구원은 이루어집니다.

(결론)

1.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 같이 한자리에서 먹고 마시고 일하나 기름준비 한 자 엘리사는 벌써 요단을 건너서 그 선지생도들 하고 여리고에 같이 있었습니다. 같이 있었지마는 그 순서를 통과해서 같이 있는 자 또 가지 안하고 있는 자, 기름을 준비하고 조는 자 또 기름준비 하지 안하고 조는 자,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는데 그런 자들은 그러다가 될까 싶어서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대로가 무슨 말씀입니까? 영감에 피동된 거기서만 구원이 있습니다. 다른 데는 없습니다. 헛된 재앙을 받지 맙시다. 다른 데는 구원 없습니다.

2. 주의 영감의 인도

이제는 마지막으로 단언을 내립니다. 이제는 슬슬 붙들어서 이래라 저래라 했지마는 그것 가지고서 정말 안 됩니다. 이제 나도 마지막으로 단언을 내려야 뒵니다. 주의 영감의 인도하는 거기만 성화도 되고 그 행위도 영생이 되고 주님에게 속하게 되지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 시비, 비판, 이해, 평가, 자기가 주관되어서 자기는 껍질보다 강한 왕이 되어 있으면서 주님을 대해서 이렇게도 상대하고 저렇게도 간교부리고 웃기도 하고 예물도 드리고 암만 해 봤자 그것은 옛사람의 행위요, 새사람의 행위는 아닙니다.

3. 주일학교 반사 노릇

반사 노릇을 하는 것도 그러는 가운데에서 가장 영감이 접하기 쉽고 그런 가운데서 세상 재미 취미는 멀어지고 하나님의 나라의 인간 구원의 취미로 슬슬 껍데기서 부터 바꾸어 나가다가 자기와 주님을 완전히 바꾸는 이 역사가 하기 쉽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그것이 되지 않으면 암만 해봤자 ‘내가 선지자 노릇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 악한 자들아 내가 너희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그것이 자기 구원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자기 구원되는 일에 가장 용이한 방편입니다. 가장 가까운 방편입니다.

○설교: 백영희목사(1982.10.3. 주일오후)/ 정리: 김반석목사(20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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