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2008.04.27 20:05

김반석 조회 수: 추천:

제목: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선지자선교회
본문: (에베소서 6장 10절-13절)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서론>

◎ 독생자를 대속물로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우주를 창조하시고 영계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를 우리의 대속물로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그분이 엿새 동안에 만드신 그런 것으로 우리에게 주셔서 필요하다고 하면 얼마든지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독생자의 전체는 내버려두고 독생자의 손가락 하나도, 팔 하나도 당하지 못할 그런 것들인데 독생자를 우리를 대속물로 다 주신 그분이 엿새 동안에 만드신 그런 것은 주시려면 얼마든지 주실 수도 있고 또 그런 것은 아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 말씀하시기를 '독생자도 아끼지 않고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물질계에 있는 이런 것이야 너희들에게 필요하면 얼마든지 주시지 않겠느냐? 그런고로 그런 염려를 하지말고 독생자를 보내시기까지 하셔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준비하신 그 구원 얻는 일에 힘쓰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 어떤 현실에서라도 믿음 지키는 이 일만 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여서 할 것

개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또 지역적으로 사람들은 변동 없는 그런 현실을 자꾸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동 없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있지 않고 마음놓고 게으르게 살고 이 구원에 관심이 없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서 자주 변동을 시켜서 움직이십니다.

이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 광대하신 목적을 우리가 깨닫고 우리의 그 현실이 변동되는데 따라서 낙망할 것이 아니고, 또 이상히 여길 것이 아니라 그 변동되는 이것이, 그 목적이 우리를 연단 시켜서 이런 형편도 저런 형편도 당하게 해 가지고, 이런 형편에서도 우리가 믿음을 보존하고 저런 형편에서도 믿음을 보존해서 어디서든지 그 믿음을 계속하도록 해서 인내를 온전케 하여 모든 면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들이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역사 하시는 이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변동 없는 현실로 만드려고 하는 거기에 정력을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저 우리의 닥치는 현실에도 하나님이 우리 할 일로 맡겨 주신 것이 당신이 우리에게 생애 법칙을 주셨으니까 이 법칙대로 행하는 그 일을 연습하고 또 그 일에 온전함을 갖추어서 하나님이 어떤 그 현실을 주실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법칙대로 그대로 살아가기를 힘써서 어디서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제도와 법칙과 우리가 하나가 되어져서, 그렇게 차차 차차 연성 되어지면 하늘나라에 가서 딱 들어맞는 인격, 그 모든 인간성, 그 소욕성, 이런 사람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환경 변동되는 그것을 변동되지 않게 하려는 그런 헛된 힘을 쓰지 말고, 그것은 나중에 계산해 보면 전부 죄를 지은 것뿐인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믿음 지키는 이 일만 우리가 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여서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환경이 변동 안 되는 것보다 변동되는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더 많은 것을 우리가 알고, 변동 안 되기를 원하는 것보다 변동이 될 때에 거기서 환경이 어떻게 변동이 되든지 우리는 거기 피동 되어서 변동되지 않고,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 한 분에게만 피동 되는 이런 사람이 되어지는 이 연습을 하고. 또 이래 하면 방해하는 그런 데서 연단을 받고 나중에 연성을 해서 모든 면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기가 되어지는 이 면을 소망을 두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본론>

◎ 10절에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그러면 그 힘은 무슨 힘입니까? 주 안에 있는 힘입니다. 주 안에 있는 그 힘 그 힘으로 우리가 강건해져야 됩니다.

그러면 주 안에 있는 것이 뭐인가? 우리가 주 안에 있어야 되겠는데. 주 안에 있는 것은 네 가지 안에 있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네 가지 대속 안에만 우리의 피난처가 있습니다. 노아 홍수 시대에 홍수 심판에 방주 안에만 그때에 생명이 있는 것처럼. 지금 불심판으로 온 세계가 다 불타서 이 하늘과 땅이 다 타서 없어지고 이제 원소로 돌아가는 이 때를 우리가 당할 터인데 어디 있어야 되느냐? 노아 홍수 때에 노아 방주 안에 있는 데에만 생명이 있지 그밖에는 다 멸망 받은 것과 같이 이 말세에 예수님 안에만 생명이 있지 예수님 밖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님 안이 곧 진리 안이요, 성령의 감화 감동의 영감 안이요, 주님의 대형의 사죄 안이요, 칭의 안이요, 화친 안이요, 예수님의 부활로 하늘나라의 소망 안입니다. 이 안에만 생명이 있습니다. 이 안에만 우리의 피난처요 이 안에만 우리의 거처할 곳이 있다 하는 이것을 우리가 굳게 잡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안 믿는 사람들은 뭐 자기가 물질로 성을 쌓고, 또 사람들의 모든 옹호로 인성(人城)을 쌓고 이래 하지만 그런 것이 다 허무합니다. 그런 것도 힘이, 권리가 되지마는 그런 것은 하나님이 멸하시는 그런 데에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공연히 그것 믿고 의지하였다가 낭패만 당하고, 공연히 그것 의지하고 준비할 것 준비 못 해 가지고 속아지기만 속아지는 것이지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러니까 주 안에 밖에는 있을 곳이 없습니다. 진리 안에, 성령의 감화 감동 안에, 또 예수님의 대형 하신 사죄 안에, 죄 없는 안에 말이요. 또 칭의 안에, 의로운 그 의 속에, 또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속에, 또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가진 그 영생 속에 거기에 우리가 살아야 된다 하는 그것을 말씀합니다. '주 안에서  살아라'


◎ 10절에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그 힘은 무슨 힘인가? 그 힘은 진리의 힘으로, 성령의 감화 감동의 힘으로. 또 죄가 하나도 없는 그 힘으로, 그러면 천하가 다 달라 들어서 범죄케 해도 죄를 범하지 않아서 죄 없는 그 힘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의로운 힘으로, 하나님으로 더불어 동행하는 그 힘으로, 땅의 모든 피조물 소망하지 않고 하나님 한 분만을 소망하는 그 소망의 힘으로 강건하여지고, 여기가 우리의 피난처요 우리의 은신처요 우리의 거처입니다.

'그 힘으로 강건하여지고' 이러니까 이 힘이 아닌 다른 힘은 힘으로 생각지를 않아요. 아무리 서로 말하다가도 진리대로 됐으면 이는 힘있다 하고, 우리가 주장을 하지마는 진리와 삐뚤어졌으면 천인 만인이 찬성해도 그까짓 것이 소용없습니다. 사람뿐이라면 그것이 힘이지마는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 그것입니다.


◎ 11절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이러면 마귀의 궤계를 우리가 대적할 수 있습니다. 마귀의 궤계가 뭐인지 몰라요, 아무도 마귀의 꾀우는 것은 모릅니다. 마귀에게 꼬여지면 사람이 어떻게 환장을 하느냐 하면, 우리 조상 하와가 마귀에게 꼬여지고 보니까 선악과는 자기와 자손 대대가 전멸이 되어지는 그 독이 많은 선악과이지마는 마귀에게 딱 꼬여지고 보니까 선악과가 어떻게 좋은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로울 만치 탐스럽고,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약속이고 남편이고 다 잊어버리고 그만 그것을 먹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환장이 됐던 것입니다. 이렇게 마귀가 우리 마음에 들어와서 꼬우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이렇게 완전히 거꾸로 변해지는 것입니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마귀의 궤계라 말은 마귀가 꾀우는 계획이라 그 말입니다. 궤계라 말은 꾀우는 것 그 하나만이 아니라, 안 꾀우는 것 같고, 위하는 것 같고, 유익하게 하는 것 같고, 옳은 것 같고, 살살 이래 가지고, 제일 무죄 무악에서 시작해서 지극히 작은 소죄 소악으로, 소죄 소악에서 중죄 중악으로, 중죄 중악에서 대죄 대악으로 이래 가지고 사람을 삼키는 이런 계획이라.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이런 것을 대적하기 위하여, 그것이 뭐 원수인 줄 알아야 대적하지? 꾀우는 이 궤계는 궤계인 줄 알면 그래도 좀 대적할 수 있는데  그것이 궤계인지를 모릅니다.

이것이 궤계인 줄 아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 알 수 있습니까? 주 안에 있는 사람이면 궤계라는 것을 짐작을 하고 그 사람이 주 안에 있는 이 네 가지 힘으로 제 힘을 삼아 가지는 사람들은 마귀의 궤계를 알게 됩니다.

왜? 이 네 가지 생활은 마귀의 궤계하고는 전부 마찰이 되니까. 전부 대립이 되어지니까. 인간이 하나님이 주신 참 생명인 이 네 가지만 쑥 빼놓고 나면 인간은 마귀하고 한 덩어리이며. 근본 하나입니다.

인간이 자기중심 자기위주의 말은 자기에게 딱 들어맞고, 자기위주 자기중심을 죽여 버리라 하는 말은 자기에게 대립으로 보여지는 것이 그것이 뭐이냐? 속에 벌써 귀신이 들어와 가지고 점령을 해서 정상이 아닌 사람이 됐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 11절에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뭐인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갑주라고 말하면 이 갑주는 갑옷인데 이 갑옷을 입으면 머리도 폭 싸이고, 눈도 싸이고, 낯도 싸이고, 눈에는 보이기만 하고 다른 것 들어오지 못하도록 다 싸고, 손이고 발이고 전부 다 싸입니다. 싸여 놓으면 그 원수들이 활로 가지고 탁 쏴도 그  화살이 갑옷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고 툭 튀어나가고 이렇게 되어지는 것인데, 원수가 오만 수단과 방법 가지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삼키려고 이렇게 백방으로 여러 가지 노력을 해도, 이렇게 꾀우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위협도 하고, 또 누르기도 하고, 또 좋은 것을 주면서 달래기도 하고 뭐 오만 짓 다 합니다.

그 사람 성질에 따라서, 그 성질 알기 때문에 돈 좋아하는 자는 돈으로 꼬우기도 하고, 권세 좋아하는 자는 권세로 꼬우기도 하고, 명예 좋아하는 자는 명예로 꼬우기도 하고, 또 이제 미남 좋아하는 자는 미남으로 꼬우기도 하고, 미인 좋아하는 자는 미인으로 꼬우기도 하고, 오만 행락 좋아하는 자는 행락으로 꼬우고, 이래 가지고 온갖 것으로 이와 같이 지금 꼬우고 있는데, 이 꼬우는 이것에 온갖 꼬움에게 손해를 보지 않고 그 꼬움에게 찔리지 않고,  자기에게 명예를 주면서 아' 이렇게 치켜올려 명예를 줄 때에 자기는 명예는 좋은 것인 줄 알고 받았는데 그 명예가 그만 자기를 콕 찔러 가지고 그 명예 탐한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적이 돼 버리고 자기는 멸망에 빠지는 그런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렇게 마귀의 온갖 궤계와 화살 이런 것을 우리가 뭘로 방비할 수 있느냐? 방비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척 입으면 위에서 내리 쏴도, 옆에서 쏴도, 뒤에서 쏴도 이 갑주로 다 착착 받아내서 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전신갑주 이것만 입었으면 좋은데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내나 '주 안에 있으라' 하는 그것입니다. 주 안에 있으라 하는 그 말은 전신갑주 속에는 거기가 영원히 우리가 살 곳이다, 영생할 곳이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 전신갑주를 이렇게 또 이 네 가지를 갑주로 이렇게 비유한 것은 이 갑주는 입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걸어다니고 말 타고 이래 마음대로 이래 활동을 하는데 이 갑주가 따라다니면서 자기를 보호해 줍니다. 이 갑주가 자기가 행동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그 행동까지 다 보호해 주는 그 편리한 면을 가리켜서 전신갑주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전신갑주 이것이 뭐인가? 내나 주 안에 있어라 하는 그것이라, 전신갑주도 네 가지입니다. '전신갑주를 입으라' 진리를 입으라.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네가 살아라. 예수님께서 모든 죄를 대형으로 다 사죄했기 때문에 너는 죄 없는 자라는 것을 항상 믿어라. 의로운 자라는 것을 믿어라.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 되고 하나님이 항상 너와 동행하는 것을 믿어라. 너는 땅에 살 때에 땅을 보고 사는 것이 아니고, 땅에서 하늘나라의 소망을 달성하기 위해 사는 것이기 때문에 어떨 때는 땅에 사는 것이 하늘나라 소망을 달성하는 일도 있지마는 어떨 때는 땅에서 죽는 것이 하늘나라의 소망을 달성되는 일도 있다. 또 땅위의 것을 손해봄으로 하늘나라의 소망이 성공되는 것도 있고, 땅에서 예수님은 인간 생각으로 볼 때는 제일 실패자가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소망을 완전히 성공하신 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전신갑주' 하나님의 갑주, 하늘나라의 소망 이 소망을 자기가 가지고 이런 것을 방비하지 않으면 방비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이 전신갑주를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마귀의 궤계를' 마귀가 우리를 꾀우는 것을 어떻게 방비할 수가 있느냐? 마귀의 궤계가 어떤 것이 마귀의 궤계인지, 마귀의 술법인지, 마귀가 옆에 있는지? 없는지?, 나를 해하고 있는지? 없는지? 그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것을 방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몰라도 좋습니다. 다만 전신갑주를 입고 다녀라. 그만 전신갑주만 입으면 일 없습니다.

전신갑주가 뭐인데? 네가 성경 말씀대로 이렇게 하려고 하면 공산주의가 지금 와 가지고 남한을 어떻게 한다 해도 말씀에 위반되면 생명을 내놔도 그것은 거역해라. 하나님의 말씀에 틀린 말은 듣지 말고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일은 듣고, 하나님 말씀에 위반되는 것은 뭐 위협을 줘도, 돈을 줘도, 명예를 줘도, 직장을 줘도, 뭘 줘도 하나님 말씀에 어긴 것은 탁! 차 내버려라. 그게 전신갑주 입는 것이다. 네 신앙양심보다 영감은 더 깨끗한 것인데, 신앙양심보다 깨끗한 것이 영감인데 네가 성신의 감동이 없는 일이거든 다 물리쳐 버려라. 그 말을 듣든지 하든지 할 때에 성신의 감동이 인정하는 성신의 감화 감동에 맞은 것이면 말도 하고 듣기도 듣지마는 성신의 감동이 안 되는 것은 다 물리쳐라.

여러분들 틀린 것이 숫자가 많습니까 옳은 것이 숫자가 많습니까? 들린 것이 숫자가 많고 옳은 것은 숫자가 적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마귀 이놈이 사람을 미혹시키기 위해서 틀린 것 잘못된 것을 마구 가르칩니다. 이런 것은 이래서 잘못됐고 저런 것은 저래 잘못됐고 전부 잘못된 그것을 가르칠 때에 잘못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가르칩니다.

처음에는, 이 세상 소망하고 이 세상을 위해 사는 그런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가르치다가, 그것을 깨닫고 '이게 잘못됐다' 깨닫고 나면 이제 그 다음에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가르치다가 안 들으면 잘못된 것을 마구 가르칩니다. '이것 잘못되고 이것 잘못되고 잘못된 것 이것 알아야 된다.'

잘못된 것 하나 둘 백 천 자꾸 말하니까,' '잘못된 것 이것 알아야 잘못된 것 그것을 대적할 수가 있고 피할 수가 있겠다. 그러니까 잘못된 것을 알아야 되겠다.' 마귀란 놈이 이렇게 꾀웁니다. 잘못된 것은 수가 많고 바로 된 것은 수가 하나뿐입니다. 알겠습니까? 무슨 일에든지 그 일에 바로 된 것은 하나뿐이오.' 그래서 진리는 하나라 하는 것입니다. 바로 된 것은 하나 뿐이라. 이러니까 바로 된 것 하나 그것만 알고 난 다음에는 바로 된 것 그것 아닌 것, 바로 된 것 아닌 것은 천이고 만이고 전부 거부만 하면 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 그만 첫째가 진리인데 하나님의 신구약 성경 말씀은 간단합니다.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들었고, 배웠고, 읽었고 했기 때문에 그만 성경 말씀에 위반된 것은 '이것은 철학자들이 말했다. 이것은 대성현들이 말했다. 동양 도덕가들이 말했다.' 뭐 도덕가가 말했거나 공자가 말했거나 유교가 말했거나 석가모니가 말했거나, 신구약 성경 말씀에 위반된 것은 전부 부정이라. '이것이 나는 성경이 아니기 때문에 안 한다.' 이래 나가면 이것이 전신갑주를 입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때 전국에서 국기 배례를 우리가 안 하려 하고, 정부는 국기 배례를 우리에게 시키려 하고 이래서 시비가 나서 재판을 했습니다. 그때 제천 있는 교회에 백영침목사님이 그 재판했는데 그때 재판할 때에 우리는 그래 말했어. '국기 배례가 그것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나쁘다 하면 그 사람들 성낼 것이고, 좋다 나쁘다 죄다 뭐이다 하지말고 꼭 진리로 해라. 성경 말씀에 이계명에 그런 데 절하지 말라 했으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거기 절하지 못합니다. '그 뭐 거기 절하는 것이 선인지 의인지 뭐 상을 받을 건지 벌받을 건지 우리는 모르지마는 성경에 하지 말라 했기 때문에 그래 안 합니다.' 우리는 그래 말했습니다. 그 어리석은 것 같지마는 이래 놓으니까 그때 대법원 재판까지 가서 마지막에 그 주장을 가지고 우리가 이겼습니다. 그래 그때  승리를 했습니다. 승소했습니다. 그 승소한 재판의 승소장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열심히 읽고 공부해서 공산주의자들이 '너 예수 믿으면 예수 믿는 사람 우리 이 공산주의적인 예수를 믿으라. 인민공화주의적인 예수를 믿으라.' 뭐라고 이와 같이 말하더라도 그때에 다른 말 가지고 하지말고 진리 가지고 말해요. 진리로 탁 받아내요. '성경은 대주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했지, 일본 예수,  대한 예수, 이북 예수 뺄갱이 예수, 뭐뭐 민주주의 예수 그런 예수가 없다, 예수님은 하나뿐이시다' 이래야 됩니다.

이런데 우리나라는 이상하게도 지금 대한 예수교입니다. 우리는 대한 예수 그것 안 믿어요. 대한 예수 우리가 안 믿습니다. 대한 예수 안 믿어요. 예수 믿어요. 예수는 세계보다 커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교' 예수교 믿습니다. 대한 예수교는 안 믿어요. 이런데 이것도 이상하게 사람들이 어두워져 놓으니까 아무 구별하지를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그때에 갑옷을 턱 입고 갑옷으로 받아내면 턱턱 받아 내집니다. 이 세상에 무엇이든지 진리가 아니면 진리로 받아내면 됩니다. '이것은 진리 아니니까 용납 못한다. 진리는 이렇습니다.' 진리를 말하면 그게  삐쳐 나가고 튀겨 나가고 이래도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용납하지 못하겠습니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 의는 뭐입니까?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것이 의입니다. 의는 하나님 명령대로 순종하는 것이 의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것은 하지 말라 했는데,' '이것은 하라 했는데,'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에 들어간 것은 뭣 때문에 들어갔습니까? 의 때문에 들어갔습니다. 의 때문에. 의를 입고 들어갔습니다. 다니엘이 의를 입고 들어갔습니다. 의를 안 벗으려고, 다리오 왕이 그렇츰 말했지마는 의를 안 벗어 줬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기도하라 했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의가 되기 때문에 이것 못 벗습니다.' '네 이놈 못 벗으려면 너는 이놈 사자구덩이 들어간다.' '사자구덩이 들어가도 못 벗습니다 그때 이겼습니까? 안 이겼습니까? 이겼습니다.

다니엘이 살아 나왔다면 이겼습니까? 아니 살아 나온 그 승리가 완전 승리인가?, 그때에 의를 입고 사자구덩이에 들어가서 사자에게 물려서 죽었으면 그것이 완전 승리인가? 어떤 것이 완전 승리입니까? 살아 나온 것이 완전 승리입니까 그 안에 들어가서 의를 입고 죽었으면 완전 승리가 되겠습니까? 어느 것이 완전 승리가 되겠습니까? 나온 것이 완전 승리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그때 들어가서 죽었으면 더 완전 승리가 된다고 아는 분들 손들어 봐요. 그거면 완전 승리돼. 이러니까 어디서든지 의를 입고 의 속에 살아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하나님과 동행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고, 하나님이 가자 하면 가고, 섰어라 하면 섰고, 하나님이 하라하면 하고 안 하라면 안 하고, 이렇게 하나님과 같이 동거하고 동행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또 전신갑주는 무엇이 전신갑주입니까? 이것은 땅에 피조물에게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둡니다. 하나님과 하늘나라에 소망을 둡니다. '좋은 것 이것 줄터이니까 이래라.'  '이거는 땅의 소망이지 하늘의 소망이 아닙니다.' 하늘의 소망이 아닌 것은 전부 물리치고 하늘에 소망만 자기가 전부 받아들이고 하늘나라에 소망이 되는 언행심사라면 하고 하늘에 소망이 안 되는 언행심사라면 하지 말아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신갑주 입는 것입니다.

이제 전신갑주. 진리, 영감, 사죄, 칭의, 화친, 소망. 하나님께 대한 소망. 그러면 몇 가지입니까? 몇 가지인지 한번 세어 보십시오. 진리. 영감, 사죄, 칭의, 화친, 하늘나라의 소망, 이 여섯 가지. 이것이 전신갑주입니다.

또 달리 말하면 네 가지가 전신갑주입니다. 왜 여섯 가지라 하다가 네 가지라 하는가?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은 '피'하면 셋을 합해 하나인데 그것을 해석하면 셋이 되니까, 네 가지가 됐다가 여섯 가지가 됐다가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과, 사활의 예수님의 대속이 틀리기 때문에 그래 그런 것입니다.


◎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그러면 우리가 전신갑주 입고 뭐하고 우리가 씨름합니까? 뭐하고 지금 전투합니까? 우리가 전투하는 것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이 혈육전이 아니라. 그쪽에서 칼 들고 오니까 우리도 칼 들고, 그 쪽에서 창 들고 오니까 우리도 창 들고, 그쪽에서 악을 가지고 마구 독을 가지고 하니까 우리도 악독으로, 그쪽에 유도 가지고 하니까 우리도 유도로, 그게 아니고, 그런 것은 혈육전인데, 그런 혈육전이 아닙니다.


◎ 12절에 우리의 싸움은 '정사라'

이 모든 정사, 남한은 민주주의 정사요, 또 이북은 공산주의 정사요, 또 이 회사는 그 회사의 정사가 있고 저 회사는 저 회사의 정사가 있습니다. '정사' 그 모든 것을 다스리는 것. 정치하는 것 말이오, 정사, 그 정사하고 우리는 싸워야 된다, 왜 싸워요? 그 정사를 어찌 하라고? 그 정사가 나를 전신갑주 벗으라고 할 때에 우리는 벗지 않고 입고 살려 하고,

진리를 벗으라고, 의를 벗으라고, 예수님의 대속을 벗으라고, 하늘나라의 소망을 벗고 살라고 꾀우고 달래고, 이것 회사에서 그러면 회사 정사하고 지금 싸웁니다. 못 있으면 못 있지 거기서 정사에게 끌려서 갑옷을 벗어버리면 내가 지는 것이고, 아무리 그렇게 해도 그 갑옷을 벗지 않고 입고 살면 내가 승리하는 것이고,  


◎ 12절에 '정사와 권세와'

이 권세는 남한에도 권세가 있고, 이북에도 권세가 있고, 회사에서도 권세가 있고, 이 모든 경찰에도 권세가 있고, 사법에도 권세가 있고, 의회에도 권세가 있습니다. '정사와 권세와' 권세 이 권세하고 왜 싸우느냐? 이 권세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벗으라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안 벗어 놓으려 하고 그들은 벗으라 하고 이러니까 우리가 싸움이 된다 그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왜정 말년에도 이 권세가 들어서 신사참배 하라 하니까 전부 신사참배 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이 권세하고 정사하고 다 싸워서 패전한 자들입니다. 이제 그때에 뭐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죽기도 많이 죽고 이래도 일본 나라 정사가 말해도 전신갑주 벗지 않았고, 또 조선에 있는 총독 정사의 세력이 그래도 벗지 않았고, 권세가 말해도 벗지 않고 정사가 말해도 벗지 않는 그것이 우리 싸움이라.

앞으로 말입니다, 어떤 정사 어떤 권세가 '전신갑주를 벗으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 구원을 내놔라.' 이렇게 해도, '네가 예수는 잘 믿어라. 잘 믿지마는 이 계명 하나 이것 어겨라.' 이럴 때에 그것 어기면 어찌 됩니까? 그것 어기면 그만큼 병이 들었기 때문에 결국은 죽습니다. 그 사람이 성해도 무슨 불치병 병균이 하나 들어가서 병에 걸렸으면 결국은 죽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조그만한 것도 안 됩니다.


◎ 12절에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은 뭐이냐 하면 세상을 주관하는데 하나님의 이 법칙대로 주관하지 않는 그것은 어두움이 세상을 주관하는 것이라 말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이 아닌 하나님의 법칙에 위반된 모든 세상 주관은 어두움이 주관하는 것들이라. 어두움이 주관하는 거기에 나는 그 어두움 주관에게 끌리지 않으려고 그로 더불어 싸우는 것이 우리의 싸움입니다.

온 세상이 다 하나님 법칙을 어기는 이런 것으로 통일이 돼 가지고 뭐 목사들이고 장로들이고 교회들이고 막 전부 하나로 똘똘 뭉쳐 가지고 성경 말씀에 위반된 그 사상 주장대로 움직여 나간다 할지라도 나 혼자라도 낙락장송처럼 요동치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싸워 나가는 이것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로 더불어 싸우는 것입니다.


◎ 12절에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하늘에 있는 악의 영이라 말은 이 공중에 돌아다니면서 인간들의 마음에 들어가서 인간들의 마음을 꾀우고 어지럽히고 어둡게 만들어 가지고 자꾸 이렇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벗도록, 벗으면 절단 나니까. 벗으면 마귀 밥 돼 버리고 마니까. 전신갑주를 벗으라고 이렇게 할 때에 전신갑주를 벗지 아니하려고 우리가 싸우는 것은 공중의 악한 영으로 더불어 싸우는 것입니다.

악한 영. 악한 영은 뭣을 악한 영이라 합니까? 마귀를 악한 영이라 하는데 왜 마귀를 악한 영이라 합니까? 자기중심으로 살도록, 자기중심으로 행동하도록, 자기위주로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하도록 하는 그것이 마귀가 들어서 그런 것입니다.

오늘 그러면 믿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계획하는 것이나, 옳다 그르다 하는 비판하는 것이나, 평가하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이 자기중심 자기위주이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해요 싫어해요?  말해 봐요. 모든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봐요. 자기중심 자기위주의 말, 행동, 그런 것을 모든 사람들이 좋아합니까 싫어합니까? 좋아하는  것으로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 손들어 봐요, 좋아해요, 좋아해. 저희 중심으로만 말하면 '이것 내 편이로구나.' 다 좋아해요. 저거 중심으로 말해 주면 '나를 위하는구나.'

제 중심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하면 '아이고 내 대적이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기에 세상은 전부 다 자기 중심의 마귀가 들어 가지고 전부 자기중심 자기위주로 날뛰고 있습니다. 이 귀신이 공중에 권세 잡고 있는데 '악의 영들이라' 인간을 자기중심 자기위주로 살게 하는 마귀 그놈하고 우리가 싸우는 것이 우리의 싸움이라 그 말입니다.


◎ 13절에 '그러므로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악한 날이라' 악한 날이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자꾸 세상이 점점 악한 날이 돼 갑니다. 악한 날이라는 것은 말세라 말입니까?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왔다 말입니까? 전쟁이 되는 날이라 말입니까? 악한 날이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악한 날이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크게 모두 한번 해요. 악한  날이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크게 말 한번 해 봐요. 공산주의에게 찔려 죽는 것보다 낫지 뭐. 그때 가서 항복하지말고 정신차려요. 악한 날은 뭣을 가리켜 악한  날이라 합니까?

공산주의에게 꽉콱 쥐박히면 그때 뭐 '네, 예수 안 믿을렵니다.' 오만 소리 다 할 것 가지고 뭐 여기서는 말하지 않아요. 악한 날은 어떤 날이라 말이오? 자, 이 남반에 한번 악한 날이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저 뒤에는? 악한 날이라 하면 무슨 말이오? 빨갱이들이 막 때려 주면 막 활활 오만 것 다 불어! 뭐 6·25 때 보니까 그 뭐 막 떠들어 쌓고 한 그런 것들 뺄갱이 와 가지고 야단 지기니까 막 땅에 기어. 아예 뭐 땅에 코가 딱 들어붙어 가지고 막 기어 가지고 벌벌벌벌 떨고 기어. 여기서는 왜 말 못 해, 말 못 하기를.

악한 날은 전 인류가 자기중심의 인간들 세계가 된다 그 말이오. 전체가 자기중심, '야, 등신아. 이렇게 해야 네게 유익 된다. 저렇게 해야 유익 된다.' 인간들이 전부 말하는 것도, 달래는 것도, 꾀우는 것도, 권면하는 것도, 부모도 자녀도 전부 다 자기 중심으로 해야 산다고 다 자기중심의 온 세계 전 인류의 공통 여론 말들이 다 되는 여기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 하니까 온 세상하고 이렇게 대립이 되어지니 이것을 요량하고, 그래도 거기에 유혹 받지 않고 하나님 중심의 행동하는 그 사람이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과 모든 것을 다 하나님 앞에 유업으로 상속받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겼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내게 주셨으니 주님이 상속받았습니다.


<결론>

하룻밤 나그네와 같이 잠깐 살다가 말 세상에서 이렇게 좋은 영원한 승리가 있는데 이 승리를 팔고 뭣 할 것입니까?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적은 자기중심이 적입니다. 말할 때도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전부 패전합니다. 계획할 때도 자기중심으로 계획하는 사람은 전부 패전합니다. 말이고 행동이고 전부 자기중심으로 하는 자는 전부 패전이오. 자기중심, 만물보다 거짓된 것이 자기인데 자기중심이라 하는 것은 만물보다 거짓된 그 중심이기 때문에 망하고 만다 그 말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살아야 됩니다.

작정을 해요. '나는 전신갑주를 벗지 않겠다. 전신갑주를 입고 나는 살겠다. 주 안에 살겠다. 전신갑주 안에서 나는 살겠다.' '그 힘의 능력으로' '전신갑주의 힘의 능력으로 나는 강건해지겠다.' 이것을 작정을 합시다.


◎ 백영희목회설교록 (1989. 4. 2. 주일오후 설교)/ 김반석목사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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