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부활과 주일

2008.03.23 18:15

김반석 조회 수: 추천:

제목: 예수님의 부활과 주일
선지자선교회
본문: (벧전1:3-5)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서론>

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시작된 날이요. 또 택함을 입은 자들이 중생을 입으므로 시작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택한 자들의 중생으로 시작되고 계속하는 것이 주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는 거듭나는 중생이 없습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 기독자들에게 산 소망은 없습니다. 대속만 됐지 대속으로 말미암은 삶의 생애가 건설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대해서 간단하게 증거 합니다.


<본론>

첫째: 구약 이스라엘에게 주신 안식일 폐지

육체의 이스라엘이 안식일로 구원 얻은 자가 극히 소수이고, 구원을 얻지 못했는고로 하나님이 그 후에 다른 날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안식일을 주셨는데, 안식일을 받았지만 저들이 안식일에 대한 순종을 하지 아니함을 인해서 하나님께서 안식을 폐지시켰습니다. 그에 대한 말씀은 히브리서 4장에도 있고, 갈라디아서 4장에도 있고, 골로새서 2장에도 있고, 로마서 14장에도 있고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안식일을 주셨지마는 그들이 안식을 통해서 영원한 구원에 들어갈 수 있는 그 행동인 순종을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들도 버림을 당했고 안식일도 폐지를 당했습니다.


둘째: 신약 교회에게 주신 주일

이차적으로 구원의 날을 주신 것이 주일입니다. 육체의 이스라엘이 끝나고 신령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건설된 하나님의 교회가 있으니 곧 신약 교회입니다. 신약 교회는 안식을 폐지했기 때문에 새로 주일을 하나님이 구원 얻는 날로 정해서 주셨습니다.


셋째: 주일은 으뜸 되는 중요한 날

1) 주일은 모든 날 중에 제일 머리가 되는 날

주일은 모든 날 중에 우리에게 중요한 날입니다. 이 주일은 이레 중에 제일 우리에게 으뜸이 되는 중요한 날로써 이 날에 우리가 제일 중요한 일을 하는 날입니다. 이레만에 하루씩 닥쳐오는 이 주일은 모든 날 중에 제일 머리가 되는 날입니다.

2) 주일 날 하는 일

또 이날에 우리가 하는 일도 우리의 일 중에 제일 머리가 되는 중요한 일을 합니다. 어떤 일을 하는고 하니,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버려 두고 하나님을 가까이 찾는 일을 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찾고 하나님의 은혜에 가까이 연결되는 이 일을 하는 것이 주일날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주일은 날 중에 제일 으뜸이 되는 날이요, 주일날은 우리의 모든 하는 일 중에 제일 으뜸이 되고 중요하고 근원이 되는 일을 하는 날인즉 곧 하나님을 내가 찾아서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다 더 가까이 해서 하나님과 하나님 은혜에 가까워지는 이 일을 하는 것이 주일날 하는 일입니다. 모든 일이 이 보다도 덜 중하고 우리에게 덜 필요하기 때문에 모든 일을 버려 두고 주일날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 이전보다 더 가깝게 하는 이 일을 하는 것이 우리가 주일날 하는 일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이전보다 더 생각하고 연구하고 또 더 알려고 더 깨달으려고 더 가까이 하려고 애를 씀으로 인하여,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한 자로 변화를 받습니다. 이것이 주일을 지킨 결과입니다.

또 한가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가까이 함으로 내라는 사람이 변화가 될 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이나 사상이나 정신이나 소원이 달라졌고 고쳐졌기 때문에 고쳐진 이대로 실행만 하면 그것이 우리 영육에 필요한 모든 복이 됩니다.

그러면 이 날은 우리가 실행만 하면 복이 될 수 있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한 이치를 우리가 깨닫는 것과 이 이치대로 실행할 수 있는 그 능력을 받아 월요일부터 이대로 행동함으로 하나 하나가 다 복이 되어지는 이것을 받는 것이 주일날 받는 것입니다. 이래서 주일날은 날 중에 제일 머리가 되는 중요한 날입니다.

이 날은 우리가 하는 일 중에 뭐 제가 학문도 또 입신도 출세도 사업도 가정도 세상 이런 저런 맡은 의무와 책임도 다 좋은 일이지만 이날에는 그런 것은 다 손떼 버려야 됩니다. 왜? 그 보다 중요한 제일 으뜸 되는 큰 일을 하는 날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다 쉬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자기가 깨달아 하나님과 자기와의 가까워지는 한 주일, 더 지키면 이전보다 더 가까워지고 또 한 주일 더 지키면 더 가까워지는, 하나님과 자기와의 가까워지는 이 일과, 또 하나님의 은혜에 가까워지는 이 일이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은혜에 가까워지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을 가깝게 한 것만큼 하나님을 알게 되니까, 자기가 어떻게 하면 복이 되고, 어떻게 하면 망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알게 되는 그 진리와 그 진리대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같이 받으면 하나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대로 알고 행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의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가까이 한 증거로 자신이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이것이 주일날 이루어지는 결과이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므로 하나님의 뜻과 법칙이 있는데, 아무 능력 없는 인간이 그를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해봐야 대대로 죽고 망한 것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생이 역사 육천 년에 제 욕심대로 제 잘난 대로 해야 사망 외에는 만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주일날은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그 결과로 자체가 하나님과 멀어진 것, 삐뚤어진 것, 대립된 것, 이런 것이 고쳐져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하나님과 비슷해지는, 자체 성화를 받는 것이 주일날 수입입니다. 자체가 성화가 됨으로 모든 사상이나 욕망이나 지식이나 비판이나 평가가 자기가 성화 된 것만큼 달라집니다. 달라진 그대로 그 지식만 가지고 있으면 소용없는데 그 모든 자기의 사상이나 지식이 달라진 그대로 실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받는 것이 주일입니다.

그러면 참된 이치와 실행의 능력을 받으면 그 이튿날 월요일부터 첫째 날 둘째 날, 월요일 화요일 그것은 우상 섬긴 날인데,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알고 있기 때문에 월, 화 그것을 이용합니다. 성경에는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이렇게 말합니다. 주일 그 날 하나님과 가까워진 그 사람으로 그 둘째 날 셋째 날에 자기가 깨달은 그대로 실행을 하면 그것이 영과 육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주일은 이 일을 하는 날입니다.


넷째: 그러면 주일이 어떻게 생겼는가?

주일이 생긴 그 근거를 말하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되어 오셨습니다.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죽기까지 하셔서 우리를 구속해 놓으시고, 또한 하나님이 구속 해놓은 우리들을 영원히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과 신령에 속한 참 영광스럽고 존귀한 자로 영생을 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또 피조물인 육신을 영원히 입으시기로 작정을 하시고 다시 피조물로 영원히 나타나신 그것이 주일날이 시작된 근거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으면 안식일이 폐지되고, 그 다음에 인간이 구원을 얻는 날이 인간에게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구원의 날, 다시 새로 새 날 다윗을 통해서 예언한 대로 새 날, 이 주일이 우리에게 생겨진 것입니다. 이것을 베드로전서1장 3절-4절에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인해서 이 주일이 생겨졌고, 목적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구속해 놓은 택함 받은 성도들을 영생하는 생명으로 중생 시키시고, 또 영생하는 자에게 시간과 공간의 그 본질 본성에 제한되어 있는, 완전치 안한 것이라면 영생하는 자의 기업이 될 수 없고, 또 영원히 존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중생으로 영생된 자에게 상대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택한 자들의 중생과 영원한 산 기업을 주시기 위해서 주일을 주신 것입니다.

주일의 근거는 하나님이 다시 도성인신으로 부활하신 이것이 근거요, 목적은 구속받은 택자들이 영생과 영원 완전의 세계에서 살게 하기 위해서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의 근거는 이러하고 주일의 목적은 이러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무한한 긍휼과 자비를 베푸신 역사입니다.


다섯째: 그러면 우리가 주일날 할 일이 무엇인가?

주일날 우리가 구체적으로 할 일이 무엇인가? 우리의 할 일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우리의 주일날 할 일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구속하신 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이것이 우리 주일날 할 일입니다.


그러면 예배드리는 것이 뭐인가? 예배드리는 것은

(첫째):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이 어떻게 계셨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구속하신 주님의 존재를 생각합니다. 아! 주님이 무엇을 힘입어서 생겨졌는가, 영원 자존하신 주님이 계실 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님이 계실 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영계도 없고 우주도 없었습니다. 미국도 소련도 다 없었습니다. 이 지구 땅덩어리도 없었습니다. 우주가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을 때에 그분은 홀로 계셨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죽는 날까지 연구해야 됩니다.

아! 그분이 영원 자존자시라. 그분만이 계셨다. 모든 것은 그분으로 인하여 있어졌지, 불교 무슨 종교 할 것 없이 그것은 지구 땅덩어리에서 하나님이 사람 만든 인간 중에 하나이고, 예수님은 영원 자존하신 분입니다. 이 지구 땅덩어리가 있기 전에, 과학자들이 있기 전에, 지질학자의 망령이 있기 전에, 그들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요. 이 우주가 있기 전에 영계가 있기 전에 영원 전 홀로 그분만이 계셨습니다. 이 분에 대해서 생각하여 그 지식으로 점점 우리가 변해져 가는 이것이 바로 되는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 바로 변해지는, 나쁜 것이 옳게 바로 됨으로써 되어지는 성화입니다.


(둘째): 그러면 우리를 위해서 구원을 주신 그분이 얼마나 큰 분이냐? 얼마나 큰 분이냐?

아! 그분이 대통령만 하나? 그분이 강대국의 그 왕이나 그 머리되는 자 만큼 크냐? 그분이 지구 땅덩어리만큼 위대하나? 우주만큼 크냐? 영계만큼 크냐? 그분이 얼마나 크냐? 이것을 주일날 우리가 연구하고 배우고 깨달아서 그분의 크심에 대한 이 지식과 이 관련과 이 사상과 이 주관이 점점 그의 크심에 가까워져서, 그분의 크심을 알므로 자라 가는 이것이 우리가 주일날 할 일입니다. 이것이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앉아서 설교 듣고 논평이나 하고, 네가 뭐인데 기니 짧으니, 크니 작으니, 유식하니 무식하니, 듣기 싫으니 좋으니, 우리가 망령입니다. 이 날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라'는 말씀은 자기 인격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인데, 하나님 섬기는 것이 당신을 알아 가는 것입니다.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나를 안즉 내가 높히리라' 당신을 알므로서의 행동이 다 영생이요 복 받는 것이요. 그를 해할 자는 없습니다.

그분의 존재가 어떠한지, 그분의 크심이 어떠한지, 주여! 내가 오늘 주일 당신은 어떻게 계셨는 것을 좀더 알게 해 주시옵소서. 당신의 크심을 위대하심을 알게 하시옵소서. 얼마나 큰지 얼마나 위대 하신지 알아 그분의 크심이 무한하니 우리가 끝을 보지는 못하지마는, 그래도 한 주일 지나면 와! 이 분은 나보다는 크구나!, 이 분은 모든 존재보다 크구나!, 이 분은 크신 분이로구나!, 이것을 점점 알아가고 아는 자로 이렇게 대우하고, 이러한 구속주로 자기가 상대하고, 대우하는 이것이 자라 가는 것이, 얻어져 가는 것이 주님을 예배드리는 것이지, 그냥 찬송 기도 설교하고 끝마치면 그것으로 다 인줄 압니까? 그것은 껍데기요.

뭣 때문에 설교합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하나님의 크심을 말하는 것이 성경이요 설교요. 진정 자기가 지난 주일보다 오늘 주님은 이만큼 크시구나 크심을 알아서 찬양할 때에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고 예배가 되는 것이지, 제 심령 찾아서 제 기분 찾아서 노래 부르는 그것이, 저 좋아서 노래 부르는 그것이 찬송인 줄 압니까? 아닙니다.


(셋째): 아! 그분은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시다. 만듦을 받은 것이 크냐? 만드신 자가 크냐?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낫게 여기기 때문에, 모르는 자는 모르는 자로 있다가 지옥 가지만, 알려주기 위해서 주님이 대속의 공로까지 베풀어 알려줬는데, 알고도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크게 여기는 그자에게 대한 복수를 삼 사대까지 갚는다 했습니다.

알고 행하면 복이 되지만, 알고 버리고 짐짓 죄를 지으면 아는 것이 벌이 더 커질 것 아니겠습니까?


<결론>

그러므로 신약 교회에 이 주일을 주셨는데, 구약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셨으나 그들이 강팍하여 믿음을 합하지 안 하므로 멸망한 것과 같이, 너희들도 오늘날 새로 한 날을 정해 주거든 그 날에 너희들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라, 또 완패케 하지 말라, 강팍하게 하지 말라, 완패케 하지 말라, 이 말씀을 많이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주일은 날 중에 제일 으뜸이 되는 날인 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이날은 노는 날이라서 으뜸 아니요. 이 날은 제일 중요한 일을 하는 날이기 때문에 그 다음 일은 할 여가가 없습니다. 다른 것은 다 제거하고 제일 중요한 일과 제일 중요한 수입을 하는 이 날입니다.

중요한 일 무엇을 하는 날인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에 가까이 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으로 성화를 받는 날이요, 하나님의 은혜에 가까이 함으로 진리대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는 날입니다.

이러므로 이 큰 날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하나님이 크게 희생해서 영원히 큰 희생을 하셔서 영원히 크게 작아지고 낮아지고 천해져서, 이 큰 희생을 무엇 때문에 제공했는가?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우리를 중생 시키시려고, 우리에게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낡아지지 안한 산 기업을 주실려고 큰 희생당한 날입니다.

여기에 합당치 안한 자는 다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길이 참으시나 언제든지 참으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끝납니다. 개인의 생명이 끝나면 끝납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생명이 끝날 때까지 당신은 기다리고 마지막이라도 기다리지마는, 죽는 그 시간까지 돌이키지 안하고 망령 부리고 제 욕심대로 제 생각대로 땅의 것만 소욕 했다가 소욕한 것을 두고 가니, 고기 덩어리의 생명으로만 유지했는데 죽어지니, 고기 덩어리만 자꾸 가다듬고 했는데 썩는 송장이 되어지니, 기가 차지마는 그것이 보응이요.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사치했는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자연의 보응이 이루어지리라 이것이 계시록 18장의 말씀입니다.

이러나 하나님은 마지막 그 사람이 숨이 끊어지는 그 시간까지 당신은 기다리면서, 사상이라도 돌이키기를, 소원이라도 돌이키기를, 정신이라도 돌이키기를, 지식이라도 돌이키기를, 잘못된 것을 후회라도 하여 사유를 받기를, 하나님은 원하시고 끝까지 자비를 베푸시지만 안 들으면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강제로 할려면 하지만,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최귀한 요소 중의 하나는 자유성입니다. 자유성 이것을 죽여서 짐승처럼 취급을 못하기 때문에 달래고 타일러서 이렇게 주님이 어떻게 큰 희생을 하셔서 이 큰 구원을 받게 하려고 하지마는, 제 마음을 돈으로 강팍하게 만들고, 권세로 강팍하게 만들고, 돈과 권세는 아닐지라도 자기 자존심으로 강팍하게 만듭니다. 너를 자존해서 뭐 할 것이냐? 하나님을 모신 자로 자존해야지!

나는 하나님 모신 자니 내 주관에게, 내 욕심에게, 내 사욕에게, 내 습성에게, 내 관념에게, 또 세상에게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다, 하나님 모신 자로 당신 뜻대로 그에게 피동 되고 그를 사랑하고 그를 섬기는 자로 죽어도 살아도 이것으로 끝마치겠다, 이것이 기독자의 자존심입니다. 썩어진 것을 버리고 회개해야 됩니다. 다 돌이켜야 됩니다.

자기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맙시다. 완패하게 하지 맙시다. 세상 어떤 것으로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자기를 강팍하게 하지말고 완패케 하지말고, 오늘날이란 이 말을 들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 주시 때에 우리가 받아야 합니다. 주일은 날 중에 으뜸 되는 날입니다.

◎ 백영희목회설교록 (1980. 10. 19. 주일 오전설교)/ 김반석목사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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