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

2007.05.17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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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반석     번호 : 64
선지자선교회 게시일 : 2003/06/23 (월) AM 09:24:42  (수정 2003/06/23 (월) AM 09:28:01)    조회 : 246  

■ 칼빈주의 - 서나리

                                            
[칼빈주의]는 성경중심의 신학체계를 말합니다.
[칼빈주의]라는 것은 처음부터 있었든 것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자로서 [칼빈]은 젊은 날에 아버지의 권유로 법학자가 되기 위해 법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강력한 부르심에 의해 그는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후일에 종교개혁자가 되었습니다. [칼빈]은 성경을 사랑하였고, 종교개혁과 함께 당시 성경에 대하여 무지했던 사람들에게 성경이 번역되고 보급되므로 성경 강론을 통해 일반 성도들에게 성경을 가까이 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사람입니다. 칼빈의 한 평생은 성경 강론과 성경 주석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칼빈주의 신학의 최고 중심은 성경의 가르침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칼빈주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1장 36절)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이 칼빈주의 신학의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교회 역사상 정통적인 기독교 교리를 체계화시킨 사람입니다. 그는 교리뿐만 아니라, 교회의 행정, 성도의 신앙생활, 인간 사회생활 전반에 대하여 성경을 중심하고 영역주권에 입각한 체계를 갖추었으며, 이를 실생활에 적용하여 전 구라파를 영적인 면은 물론 생활적인 면까지 개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로 인해 전 구라파에서 로마 카톨릭은 힘을 잃게 되고, 개혁주의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라는 대의민주제도(代議民主制度) 아래 교회와 사회는 다방면에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친 개혁주의의 위대한 개가였습니다.

제네바를 기점으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사상과 성경정치(Bibliocracy)를 정착시켜 놓고 개혁주의 교회를 이끌어가던 칼빈은 5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약 40년 후인 1603년, [네델란드]에서 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정부의 관리 출신인 [쿠른헤르트](Dirk Volkerts Coornhert, 1522-1590)가 관용을 주장하며, 칼빈주의의 ‘주권’과 ‘예정’ 등을 반박하는 글을 써서 정부에 올렸던 것입니다. 이 문제로 정부와 국민들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칼빈]의 수제자 [베자](Deodore Beza)는 이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화란신학교 교수 [알미니우스](James Arminius)를 불러 진상을 알아보고, 반박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알미니우스]는 즉시 진상 조사에 나섰고, [쿠른헤르트]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미니우스]는 [쿠른헤르트]의 글을 읽고 감동을 받고 오히려 [칼빈주의]를 향하여 공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절대주권은 잘못되었다.
예정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은 아주 타락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인간의 믿음을 보고 선택한다.
믿음은 인간의 자유의지의 산물이다…」등이 그 요지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지 1년 후인 1610년에 [알미니우스]를 추종하던 무리들, 곧 [알미니안주의자들](Arminianists)은 [알미니우스]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항의문 형태로 [5대 항론]을 [네델란드] 정부에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① 인간은 완전 타락하지 않았고 자유의지가 남아 있다(자율 구원).
② 하나님은 인간의 조건을 보고 선택하였다(예지 예정 및 조건 선택).
③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는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다(만인 구원).
④ 성령의 은혜는 충분히 저항 할 수 있다(자유 의지).
⑤ 구원 얻은 사람도 잘못하면 구원을 잃어버린다(궁극적 구원 실패 가능)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칼빈주의] 정통 신앙을 자랑스럽게 지켜오던 화란정부와 교회는 이러한 반대에 부딪혀 [알미니우스]의 견해를 성경의 빛으로 검토하기 위해 1618년 11월 13일, 세계적인 종교회의를 [도르트](Dort)라는 도시에서 개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회의에는 84명의 정회원이 참여하였는데, 그 중에는 독일, 영국, 스코틀랜드, 스위스, 팔라틴 등 유럽 전역의 개혁파 교회들에서 파견된 26명의 대표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약 6개월 여에 걸쳐 154회의 회의를 가졌습니다. 그 결과 이 대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알미니안주의]의 주장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인간의 공로를 내세우는 이설(異說)임을 확인하고, 만장일치로 [5대 항론]을 기각시켰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책으로 [알미니안주의] 5대 항론에 대치되는 ‘칼빈주의 5대 강령’(The Five Points)을 작성, 채택, 발표하게 되었습니다(1619. 5. 9).

이렇게 해서 [알미니안주의]는 정죄를 받고, 주모자는 처형되었으며, 그 추종자들은 모두 국외로 추방되었습니다. 그 후 잔존자들이 영국으로 건너가 명맥을 유지하다가 [요한 웨슬레](John Wesley)가 그 일파에 감명을 받고 [알미니안주의자]가 되어 마침내 감리교(Methodist)를 창설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칼빈주의 5대 교리]라고 불리는 이 강령은 [칼빈]에 의해 작성된 것이 아니라 [알미니안주의자들의 5대 항론]을 대응하기 위해 작성된 것입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구원의 5대 교리]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칼빈주의]의 핵심은 [5대 교리]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칼빈주의 5대 강령]이 나왔습니다.
그 내용은
1) 인간의 전적 타락
2) 무조건적 선택
3) 제한적 속죄
4) 불가항력적 은혜
5) 성도의 견인 교리를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