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자교회의 실체적 진실 (4)

2007.05.1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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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중선     번호 : 32
선지자선교회 게시일 : 2002/04/03 (수) PM 10:05:42     조회 : 69  

■ 삼자교회의 실체적 진실 (4)    



4.6 현대파의 인성론: 인성은 본래 선하다(性善)

이것이 삼자 지도자의 인성론이다. "정주교의 이해에 따르면 원시인의 인성은 첫 사람의 타락에 따른 완전손상 상태에 있지 않았다.(전적 타락이 아니다)

죄의 문제에 대해 전통적 그리스도 선교는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중국의 지식인과 마찬가지로 정주교도 죄의 교리에 대해 엄숙하게 대처하지 못했다.--이점에 중국에서 강조되는 전통적인 성선설이 이 세기의 3-4십년대 자유주의 신학과 맑스주의 사회주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신학지 24-25기, pp.40-41)


이것은 정광훈의 친구인 미국의 신학자의 80회 생일잔치 때 말한 것의 일부인데 정의 인성론의 솔직한 진술이다.
다시 정의 말을 보면 "중국의 몇 천 년이래 성현과 학자의 가르침 중 몇 사람의 뛰어난 인물이 말한 인생의 죄악에 관한 것이 있다.

중국의 고대 전설 중에는 시조의 타락에 대한 이론이나 죄의 존재에 대한 해석이 없다. 맹자는 공자보다 아래임을 인정하면서 성선설을 가르쳤다. 송조 이후 20세기 20년대까지 중국의 지식인은 모두 이렇게 인생을 이해하였다. 중국의 어린 학생들은 바로 삼자경을 읽는다. 삼자경의 시작은 인생의 처음은 선하다는 것이다.(신학지4기, p.9)


정이 다시 말하길 "사람이 어느 정도 타락되었을 때 사람이 말하길 완전히 손상되었다하는데 맞는가 틀리는가?---중국의 과거 수 백년간 아이들이 입학해 첫 수업은 바로 인생의 처음은 선하다이다."(신학지13기, p.6)

성선설은 중국 전통철학중 하나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인성론은 성선설을 거부한다.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갈3:22)

진택민 말에 의하면 "우리는 긍정적으로 세상과 사람은 좋은 것으로 보아야한다."(신학지 2기, p49) 진은 창세기 1장의 "하나님 보시기에 창조한 모든 것이 보기에 좋았더라"를 인용하여 "우리는 긍정적으로 세계와 사람을 좋은 것으로 보아야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기독교가 세상에 대한 기본태도"라 한다. 이 말을 사람들은 해석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진의 성경에는 창세기 3장이 없는가? 오늘의 세계와 사람은 창세기 1장에 관계하지 않고 3장에 관계한다.

죄의 문제는 교리 상 민감한 부분이다. 죄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부인하면 발붙일 곳이 없다. 그래서 사람이 죄가 있다는 것을 억지로 승인한다. 전적 타락의 이 말에서 정광훈과 전택민이 강조하는 것은 죄에 대해 뭔가 목적이 있는 것이다.

정광훈은 "오랜 세월동안 그리스도는 인류의 타락과 선의 결핍에 대해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만이 죄에서의 구원이다라고 설교한다. 그러나 신중국의 출현으로 많은 새로운 현상과 현실에 있어 전통신앙에 대한 반감과 의심을 갖는 일부 성도들이 생겨났다."(신학지14-15기 , p.2)

사실은 성도가 그런 것이 아니다. 여전히 정광훈 스스로 하는 의심이다. 여기서의 전통신앙은 인간의 죄성을 지적한다. 그래서 의심을 갖는 전통 성도라 함은 바로 정광훈이 사람의 죄성에 의혹을 제출하는 것이다.

전적 타락의 개념은 사람이 악한 일을 한다거나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파괴적이다가 아니라 죄가 이미 사람의 각 방면을 타락시킨 것을 의미한다.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4:2).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4:18)

동시에 죄는 전 인류에 미치는 것이다. 이 교리는 아주 정확히 자기와 주위
상황에 맞는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죄에 대해 전도함을 반대한다. 그것은 바로 구속에 대해 터무니없고 아무 내용이 없다.

우리는 복음의 기초를 죄악 가운데 둠을 반대한다. 복음은 교회가 앞길이 있기에 필요하다. 인류가 전망이 없고 세계가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 중에 구속의 수단이 계획되었고, 사람이 완전 타락한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을 찾는다.

인류는 하나님 창조의 면류관이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그리고 세상을 관리하게 하셨다. 그래서 구속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신학지14-15기, p.18) 이것은 지독한 독초요 성경을 벗어난 극악인 것이다.


죄를 말하지 마라. 그러면 복음은 어디에 기초하는가?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사람의 결국은 사망인데 무슨 전망이 있는가?


사람이 이와 같은데 세상은 무슨 희망이 있는가? 만약 사람과 세상이 앞날에 희망이 있다면 구속이 왜 필요한가?
누가 구하는가? 하나님의 창조 중 구속의 수단은 왜 필요한가?

만약 사람이 하나님께서 구원할 가치가 있어 구했다면, 이 말은 사람은 어느 면에서 확실한 가치가 있고 게다가 이 가치는 하나님의 생명의 가치와 같고, 하나님의 생명과 바꿀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구원의 은혜는 어디에 있는가? 바로 복음의 교리를 위반한 것을 드러냄이다.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구속은 그의 은혜인 사랑일 뿐이다. 그의 이름으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의에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다.(시25:11,23;3) 그렇다해도 사람은 무엇을 선택할 수 없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구속에서 사람을 동반함은 찾아 볼 수 없다.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히2;6)



4.7 반드시 버려야할 "그의 이름 외에는" 교도주의

"만약 기독교가 오늘날 중국의 처지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자면 필수적으로 전통을 버려야하는데 "전통적인 그의 이름 외에는"의 교도주의, 다원화의 세계 속에서 모든 배타주의, 모두 고립을 피할 수 없으며 자기를 내몰며 모퉁이에 처하게 한다.(신학지17기, p.13)

"그이름 외에는"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이 교리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에는 절대적인 진리인데 삼자회의 지도자들은 공개적으로 이 말을 버려야한다고 한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믿는가? 전도 때 귀를 기우려야할 그 이름 외에는 구원을 얻을 이름이 없다. 이 정도로 정확히 인도한다. 그 외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 없다.


전도인이 자기는 그것을 불신하며, 하필 기독교를 신앙하는가?
그렇다면 자기를 기만하며 남도 기만하는 것이 아닌가?
진짜와 가짜 신앙은 반드시 분명한데 어찌 배타주의라 하는가?

원칙이 없고 적당히 사람의 귀에 듣기 좋은 이 말들이 사실 적합했어도 무는 소용이 있으며 무슨 가치가 있는가?
또 무슨 실제 의의가 있는가?
적당히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의 이름 외에는 이것을 버리라는 의미는 그리스도 외에 진리와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보편구원론과 모든 종교를 하나로 바로 종교 대 연합의 전주인 것이다.

신학지6-7기 p.12에서 그가 말하길 "우리는 실지로 상상하기 어렵다. 하나님의 모든 계시의 말씀을 베들레헴과 팔레스타인 소수의 사람에게 국한되었다는 것----- 그의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이고 매 시대 각 사람에게 줄 수 있는데----각 지방의 문화와 선지자 성자들을 통해 자기를 계시하시고---만약 기타 종교를 철저히 잘못이다 말하며 기독교의 선에 위배된다면 필자는 기독교를 생명의 고등교육으로 보고 사상을 중등교육으로 보겠다.


"필자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반드시 유교도가 되어 중등교육을 받고 그리고 고등교육을 받은 기독교 신자가 되는가?
이 도리는 성경에서 말한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통해 계시를 하시고 성현에 말하심은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데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그들을 정확히 인도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고 거짓 종교를 만들어 내어 하나님과 맞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게다가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을 통해 세상에 말씀하셨는데 사람이 진리를 행하지 아니하고 반대하는 입장에 서고, 떠나고, 이교를 의지하고, 그것을 대오로 믿고 그들과 형제를 맺으며 생명을 갈망한다면.

이것은 타락이고 배교이며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모욕이요 도에 빛나간 행위이다. 삼자회의 가는 방향은 이교도와 연합이다.
우리는 절대 따를 수 없고 그들은 죄악 속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