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애굽기 공과식 주해
선지자선교회
제목 : 출애굽기와 모세
본문 : 출1:1-22
요절 : 출1:7
[1] 이 출애굽기는 모세가 기록했는데 기록한 시기는 애굽에서 나온지 1년 후 곧 주전 1500년경이다. 기록한 곳은 시내광야다.
이 출애굽기의 외적 증거는 유대 사람의 전설, 주님의 증거 (눅20'37, 24:44, 막12:26)
내적 증거는 출24:4절과 34:27절이다
[2] 출애굽기를 기록한 모세는 레위지파 족속(출2:1-2)이요 고핫 자손이요 (출6:18)
아버지는 아므람이요, 어머니는 요게벳이요(출6:20, 민26:59) 아담의 26대손이다.
주전 1578년에 애굽의 나일강 지방에서 출생했고(출2:1-6) 수명은 120년인데 40년 간 애굽에서 문학공부, 40년 간 미디안에서 신학공부, 40년간 광야에서 구속사업을 했다.
[3] 출애굽기의 내용--장수는 40장, 절수 1213절, 속량책이니 아브라함 자손이 애굽에서 속량하여 나온 것을 기록했다.(창15:13, 출12:40-44)
제1장---새 왕
제2장---모세
제3장---가시덤불
제4장---지팡이
제5장---벽돌
제6장---여호와
제7장---물이 피가 됨
제8장---개구리, 이, 파리
제9장---온역, 창질, 우박
제10장---황충, 어두움
제11장---장자
제12장---유월절
제13장---구름기둥
제14장---홍해
제15장---미디안
제16장---만나
제17장---반석
제18장---이드로
제19장---시내산
제20장---십계명
제21장---국법
제22장---민법
제23장---예법
제24장---40일
제25장---법궤
제26장---장막
제27장---제단
제28장---에봇
제29장---예식
제30장---향단
제31장---공장들
제32장---금송아지
제33장---하나님 등
제34장---수건
제35장---자원 헌물
제36장---예물
제37장---거룩한 기구
제38장---헌금
제39장---제복
제40장---영광
※출애굽기 상의 지리상의 구분
애굽에서 된 일---1장- 12장
광야에서 된 일---13장-18장
시내산에서 된 일---19장-40장
#출애굽기의 표어는 피 (12. 13. 23. 24)
제목 : 선민의 번성과 바로의 학정
본문 : 출1:1-22
요절 : 출1:22
[1]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가 되게 하신 것이나 이스라엘을 애굽에 내려보내어 강성케 한 것이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번성케 하시고 또 학대를 받게 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요. 가나안에 인도하기 위해서다.
[2]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창성케 해주시면 해주실수록 자기 힘으로 그렇게 된 줄로 알고 이러니까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하나님이 애굽과 애굽 사람을 이스라엘 백성의 창성 함에 도구로 사용했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이용도구인 애굽 사람에게는 감사했으나 하나님에게는 감사가 없고 멀어졌다.
하나님과 멀어지니 이스라엘 백성에게 애굽의 후대가 없어지고 박대는 심하여지고 애굽의 박대가 심하여지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박대를 받지 아니할려고 애굽 사람에게 기울어지고 기울어질수록 하나님과는 멀어지고 하나님과 멀어지면 박대는 심하여지고 이렇게 모질고 악한 박대를 견디지 못하게 되자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께서 육체의 이스라엘을 애굽에 보내신 것, 창대하신 것, 학대를 받게 하신 것, 죽임을 받게 하신 것인데 이것은 오늘 성도의 그림자요 모형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왕성 되고 학대당한 이것을 성경에서 깨달을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이 구원하시기 위하심이었고 또 학대 중에서 하나님에게 부르짖게 했다.
이 일은 오래 전에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계획하신 일이다.(창15:13-14)
[3] 이 출애굽기가 외부적으로는 보이는 것은 성경대로의 역사적인 사실이요.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요. 그 이면에는 타락한 인생 생활의 자연성, 필연성이요, 그 이면에 해 아래는 아무것도 없다. 이 말씀은 과거의 열매요 미래의 모형이라는 말씀이다. 이상의 방편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앞길은 환하게 알 수 있다.
제목 : 모세의 출생
본문 : 출2:1-25
요절 : 2:2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일찍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모세를 나게 하신 것이다.
모세의 출생 즉시 강에 던졌으면 모세의 용모가 드러나지 아니했을 것인데 3개월 동안에 숨겨서 기르는 동안에 인물이 나서 귀엽게 될 때에 강에 던졌으니 이것이 부모의 지혜다.
3개월 동안은 부모는 자기의 생명도 돌보지 아니했고, 이것은 굉장히 어렵고 두려운 일이었다.
이스라엘 어린이를 강에 던져서 전멸시키도록 한 때였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면 3개월 동안 키우지 못한다.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하고 아주 위험한 상황 속에서 모세를 키운 것이다.
동정녀 마리아에게도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기가 아주 위험한 입장을 만들어 주시고 그 가운데서 그 어려움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하므로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루신다.
생명을 내어놓아야 모세를 키울 수가 있는데 생명을 내어놓고 3개월 동안이나 숨겨서 키운 부모의 신앙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모세의 부모는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모세가 살 수 있는 길, 바로의 딸의 손에 들어가게 했다 모세의 교육은 외부는 애굽 학문 교육이요, 내부는 이스라엘 민족성의 굳은 교육이다.
[2] 모든 사실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예정이요 계획의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위한 계획인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인간구원을 인간을 통해서 하시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공법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인간구원에 쓰임 받는 자는 사람 중에 인격자인 실력자다.
인격이라는 그 방편이 아니고는 안 되는 것이므로 인격을 이루는 환경을 통하여 만드는데 인격자는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한 어려운 환경에서 양성시키는 것이다.
왜 이런 환경에서 인격자를 만드시는가?
이스라엘을 인격적으로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이런 자가 아니면 안되기 때문이다.
애굽의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앞세우는 이러한 신앙을 가지도록 모세를 기른 것이다.
[3] 성신의 감동을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보이는 이면(뒷면)에 하나님의 절대적 예정과 계획의 면을 본다
절대자인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이 있어 성취하시는데 이것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게 하는 것을 주어 거기에서 이겨 하나님에게 소망을 가지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이 사람을 들어 쓰신다.
하나님의 예정을 믿는 사람은 의와 불의에 대하여 느끼는 자극이 하늘같고 하나님의 예정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의와 불의에 대하여 느끼는 자극이 심히 빈약하다.
제목 : 모세가 부르심을 받음
본문 : 출3:1-22
요절 : 출3:10
[1] 가시덤불 속의 하나님(구원 도리의 성격)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율법을 베푸시고 다스리시지마는 정죄 받은 죄인들을 멸하시는 것이 아니고 긍휼과 은혜를 주셔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모세의 율법으로 택자들을 정죄하지마는 멸하려 함이 아니고 구원하고자 함이니 하나님의 구원하시고자 하는 기간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긍휼 함을 받으나 이 기간이 지난 후에는 정죄 받아 멸하여진다.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하려 하심이 아니고 은혜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구원자로 나타나신 것이다.
죄로 인하여 주님을 피하면 죄의 값을 받고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접촉하면 죄의 값을 받지 아니한다.
죄인이 하나님과 접촉하면 하나님이 멸하실 것 같으나 하나님은 멸하시지 아니하신다.
이것은 가시덤불에 불이 붙었으나 가시덤불이 타지 않음과 같은 초자연의 역사이다.
그런데 여기서 잘못하면 고범죄를 짓게 된다. 고범죄는 사람이 없다.
자기가 죄를 지을 때에 사함 받을 것을 생각하고 시험받는 도리를 속된 것으로 생각하여 죄짓는 마음을 더욱 담대히 하는 것은 사함 받을 수 없는 고범죄다.
그런고로 모세의 율법은 죄를 다스리고 멸망시킬 것 같으나 예수님의 재림 전까지는 복음의 앞잡이로 있고 지금의 시기가 지난 후는 정죄 받아 율법으로 나타난다.
[2] 죄인이 하나님을 접촉하나 멸망 받지 아니하는 것은 구별된 세계이니
[신을 벗고 구별되게 서라]고 하는 것은 형식 계시요 상징 계시인데 옛사람의 길에서 돌아서라는 말씀이다.
즉 하나님의 구원도리는 죄인이 접촉해도 망하지 아니하는 구별된 특수 세계이니 지금껏 살아온 세계는 회개하면서 돌아서야 하는 것이요 다시 말하면 죄인의 길에서 돌아서라는 말씀이다.
[3] 11절에 [모세가 고하되 내가 누구관데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라고 대답했는데 이것은 모세가 구원자로서 일할 수 있는 바탕이 있음을 보여준다.
애굽왕 바로의 궁전에 있을 때에는 자기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보고 이스라엘의 난제를 해결해 보고자 했다.
그 일에 대해서 얼마나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몰랐고 상대방의 세력을 몰라서 함부로 날뛰었으니 최후에 맺은 결과가 광야로 행한 결과밖에 없었다.
자기에게 대하여 사람에게 대하여 일에 대하여 무식했던 사람으로 도망치지 아니하고는 견디지 못하는 자가 되었다.
그러나 40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연단 받은 결과로 자기에게 대하여 사람에게 대하여 일에 대하여 바로 아는 유식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11절의 말을 할 수 있는 자가 되었다.
그런고로 자기를 모르는 자를 도와주면 점점 교만하여 자기가 하나님 될려고 하므로 멸망자가 되고 일을 모르는 자를 도와주면 비뚤어진 것을 잡고 옳다고 생각하므로 점점 무식자가 되고 사람을 모르고 날뛰면 사망을 하게 된다. 사람이나 자기나 일에 대하여 바로 알면 하나님이 미리 예정하심을 보여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바로 알아 결합하면 그 일을 성공시켜 주신다.
제목 :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
본문 : 출4:1-31
요절 : 출4:20
[1]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시했을 때 자기가 어떤 존재이며 민족해방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과 애굽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세는 [내가 무엇이관대 이 일을 하겠습니까?] 하면서 애굽으로 가기를 거절했다.
모세는 자기에 대해서도 사람에게 대해서도 일에 대해서도 바로 알았지마는 1절에 보면 자기편에 속한 민족에 대해서도 바로 알았다.
[2] 하나님이 모세에게 애굽으로 가라고 명령하실 때에 가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2-9)
(1) 막대기 (모세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로 뱀을 만드신 것이다.
이것은 자기가 가장 의지하고 방편으로 삼던 것도 자기를 해하는 원수가 됨을 보인 것이요 또 원수라도 잡으면 꼼짝도 못하고 자기의 수족같이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 되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2) 손을 품에 넣으니까 문둥이가 되게 했다.
이것은 깨끗한 것이라도 하나님이 더럽게 하시면 더럽게 되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인 것이다.
또 더러운 사람이라도 의인이 될 수 있는 권능을 보이신 것이다.
(3) 하수가 피가 되게 하신 것은 피는 살해를 상징한다.
하수라고 하면 먹고사는 물인데 나일강의 식수가 변하여 피가 되는 권능인데 곧 그들의 행복이 변하여 화근이 되게 할 수 있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그런고로 인생의 화복 권세와 선악의 권세와 원수라도 자기의 수족이 되게 하신 권세를 모세에게 보여 주신 것이다.
교회에 나오니 지팡이요 문둥이도 깨끗해지고 행복스럽게 살고 교회를 떠나니 뱀 친한 자가 원수가 되고 깨끗한 사람이 문둥이가 되고 많은 재물이 있으나 불행의 생활을 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도가 점점 권능 있게 퍼져 나가는 권능이다.
[3] 10-12절에 사람에게 있는 재주 곧(言) 재주, 귀 재주, 눈 재주,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되어 있는 것이다.
안 믿는 사람에게는 변사가 하나도 없다고 했으니 자기의 참된 행복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줄 수 있는 변사는 한마디도 못한다는 말씀이다. 그런고로 변사가 없다고 했다.
내가 듣고 보고 말하는 것이 내게 재주가 있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는 것이다.
[4] 13절에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부인한 지나친 겸손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하여 형 아론을 함께 보내신 것이다.
모세의 지나친 겸손의 고집으로 아론을 세우게 되었고 그 결과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3000명이나 죽게 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자기의 부족을 느끼는 것은 좋으나 성경의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는 여기에 거역하는 이것은 지나친 겸손이요 오직 죄인이 성경을 듣고 일어서야 한다.
모세의 지나친 겸손은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원인이 되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진행하는데 인간이 불의를 행한다고 방해를 받거나 중단하지 아니 하신다. 그대로 이루신다.
[5] 24-26절에 할례는 정욕의 대표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깨끗치 못한 자를 깨끗케 하신 후에 하나님의 일을 시키신다.
일을 하면서 자격을 갖추게 하시지 않는다.
먼저 실력을 갖추고 실력에 따라 일을 시키신다.
[6]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 하는 데에는 자기와 가까운 이웃 곧 자기의 아내, 형제, 부모, 자녀가 방해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승리해야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패전하는 만큼 모든 접촉이 실패다.
사람들의 이목구비를 하나님이 주권하시니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기까지의 겸손은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로서 패망의 결과를 맺는다.
제목 : 모세의 해방 운동과 바로의 학정
본문 : 출5:1-23
요절 : 출5:1
[1] 세상에서 일을 할 때에 지나치게 선을 행하면 일찍 죽는다. 하나님과 삶을 해하지 말고 하나님과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에게 있는 힘과 지혜를 쓸 대로 쓰고 이기지 못할 때는 하나님에게 부탁해야 한다.
[2] 세상에서 일을 처리할 때에 파동과 충격 없이 일을 처리해야 한다. 탈출할 것이라고 생각해도 정면 충돌은 피해야 한다.
정면 충돌을 하면 우리 쪽에서 상대방에게 더욱더 충격을 주는 것이다.
정면 충돌을 피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상대방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이요 자기를 아끼는 것이다.
뱀같이 지혜롭게 하고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고 하신 말씀은 안 믿는 사람의 일을 전부 알아 인정하면서 그들을 상대하여 옳은 조화를 맺어 일을 처리하라는 말씀이요.
이렇게 하면서 자신은 비둘기 같이 성도의 순결을 지키라는 말씀이다.
성도는 이렇게 해야 한다.
[3] 6-7절에 고역을 시키니 고역에 눌려서 꺾이는 사람과 고역을 시키니 여기에 반동으로 일어나는 사람이 있는데 이 두 가지 사람은 일반인들이다.
이스라엘은 고역을 시키니 고역에 눌려서 꺾이는 사람들이다. 그런고로 고역을 시키고 탄압을 하니까 이것이 무서워서 탄압하는 자에게 들어붙는 자는 생명이 죽은 자요. 탄압을 하니까 강하게 날뛰는 자는 꺾일 자요. 탄압을 당해도 진리대로면 자기실력에 적당한 도수에 맞도록 일을 하고 탄압을 당해도 진리가 아닌 경우라고 하면 외부는 탄압을 당하면서 내부는 강해야 한다. 내부에서는 생명 운동을 해야 한다.
생명이 있는 자는 자기를 조절하는 자요 나쁜 일보다 옳은 일에 눌리는 자가 더욱더 나쁜 자다.
[4] 23절에 무식한 자는 유식한 자의 일을 넓게 보지 못하므로 원망하기 마련이요 이것이 필연이요 지도자의 일을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므로 필연적인 원망이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선구자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상대방의 원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의 지혜와 지식 안에서 일을 할려고 하면 선구자의 자격이 없다.
지도자, 인도자, 구원자, 교훈자는 상대방을 이해 시킬려고 노력하겠지마는 상대방의 이해에 따라서 일을 할려고 하는 자는 지도자, 인도자, 구원자, 교훈자의 자격이 없다.
지도함과 구원함과 인도함을 받은 후에 이해가 되는 일도 있다.
인도자는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여 불평이나 원망이나 오해하는 그것을 무조건 묵살할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인도함이 잘 되었는지 잘못 되었는지 이것을 심사하는데 참고로 삼아야 한다.
건설에는 응당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언제든지 지도자는 이런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해방 운동을 하는 데는 10가지 재앙이 있은 후에 했으니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에는 마귀의 심한 방해가 있기 때문에 그 만큼 어려움이 있는 줄 알아야 한다.
제목 : 여호와 하나님의 증거
본문 : 출6장 -8장
요절 : 출6:5
[1] 자기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상대자가 사람과 하나님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보이는 상대자요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는 상대자다.
그런고로 보이는 상대자인 사람을 중하게 여겨야 한다.
왜?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뜻이 볼 수 있는 사람을 통하여 나오지 아니하는지 이것을 살펴야 한다.
(1)대다수의 사람이 좋아하면 하나님이 좋아하고 대다수의 사람이 싫어하면 하나님도 싫어하는 일이 많으니 심중히 살필 것이다.
(2) 모든 사람이 반대해도 하나님만 환영하는 일도 있고
(3) 모든 사람들이 환영을 해도 하나님만 반대하는 일도 있다.
그런고로 삼대 사람 사이에서 일을 할 때에 위에 말한 세 가지 면으로 살펴서 인간의 의사가 하나님의 의사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지 그러하지 않은지를 살피고 대중과 하나님이 합치되는지 아니 되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이것을 살펴보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모세의 하는 일에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으나 하나님이 환영했으니 이 때는 그 일을 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자이므로 귀중히 여기고 대우할 것이나 하나님의 처사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사람의 처사를 따를 것이요.
모든 사람이 반대해도 하나님의 뜻에 맞으면 모든 대중이 반대하나 하나님을 따라 그 일을 해야 한다.
[2]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이나 애굽이 알지 못하는 그 일을 이루시는데 있어서 단 번에 하지 않고 자꾸 미루어 왔으니 뱀, 개구리, 피, 되는 이적은 애굽의 술객도 따라 왔다. (복음이 건전하지 못하면 요술로 이적을 행한다고 하여 탈선하기 쉽다. 이적을 보고 무엇을 믿을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셋째 재앙부터는 애굽의 술객들이 따라오지 못했다. 그래도 애굽왕 바로는 강퍅했다. 하나님이 무능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한 번에[ 단 번에 하지 않고 점차적으로 하시는 것인데 인간의 힘을 다 쓴 후 인간의 강퍅성이 다 발동되게 하시고 그들의 실력을 다 발휘한 후 당신의 구원의 손을 펴서 구원하시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1)이스라엘로 하여금 인내성을 배양하기 위함이요
(2)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하시는 솜씨를 여러 가지로 체험하고 경험하게 하기 위함이요
(3)애굽의 힘과 강팍을 낼 때로 다 내고 더 낼래야 낼 수 없어서 그들이 절대자 하나님을 거역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고로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이요 저희자신을 알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에게 대한 소망과 확신으로 굳게 하기 위함이요.
애굽에는 절대자인 하나님을 알게 하여 그들로 대항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요 자신들이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은 10가지 재앙에서 하나님을 알았다. 하나님의 권능은 어떠한 것과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로서 약속이행에 변동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또 이스라엘 자신들은 재앙 때마다 바로왕이 듣지 아니하니 낙망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믿기 어려운데 여기서, 연단을 받아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믿음과 인내를 연단 받았다.
애굽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줄 알지만 끝까지 거역하다가 종말에는 멸망 받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연단 없이 나왔다고 하면 민족 해방의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런고로 오늘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그 일이 될 듯 하면서 안되고, 될 듯 하면서 안 되는 이건 것이 백번 천번 계속하면 계속하는 것만큼 견디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인내를 연단 받는다.
모세는 보지도 알지도 못했지만 10가지 재앙으로 연단 받았다.
[3]하나님은 우리에게 한번 약속하신 것은 호리 라도 어기지 않고 이루시는 계약 이행에 신실하신 하나님이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했다(출3:15, 호13:5, 시68:4)
[4]하나님은 물하고 흙을 가지고 선한 것이나 흉한 것이나 별별 것을 만드실 수가 있다.
이런 것들을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은 장난삼아서 심심해서 만드신 것이 아니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지 아니한 것은 하나도 없다.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도 땅 속에 기는 지렁이 한 마리도 물 속에 헤엄치는 송사리 한 마리도 공기 중에 있는 세균 한 개도 들에 있는 풀 한 포기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곧 하나님의 영원전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만드신 것이다.
본문에 흙과 물의 요소로 된 개구리, 이, 피를 만드신 것도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다.
우리의 구원에 필요하다면 현재에 있는 요소를 변하게 하여 무엇이든지 만들어 내신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다.
당시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땅에 있는 흙과 물을 가지고 개구리, 이, 피, 파리를 만드신 것이다.
애굽 사람들이 의지하는 나일강이요 자랑하는 나일강을 피가 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남아를 강에 던져 죽인 보응이요.
개구리, 이, 파리재앙을 주신 것은 토신(土神)을 섬기므로 흙을 섬기므로 이에 대한 보응이다.
애굽 사람에게는 흙이 그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라 이 흙이 오히려 해가 되게 하신 것이다.
제목 : 모세에게 권능을 주심
본문 : 출9:1-11:10
요절 : 출10:16-17
[1] 다섯째 심한 악질 재앙이 애굽의 생축에게 내렸다.
애굽사람들은 짐승을 섬겼는데 짐승 중에도 검은 소를 섬겼는데 1년에 한 번씩 왕이나 전 백성들이 검은 소의 똥, 오줌에 목욕을 했다.
그런고로 이 재앙은 애굽 사람이 짐승을 섬긴 보응의 재앙이다.
모든 재앙의 내부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죄악을 멸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넓게 보면 이해가 되고 또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이해하면 우연히 뜻 없이 목적 없이 스스로 된 일이 없고 전부 주권자의 뜻대로 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원망이 없고 감사하고 기뻐하게 된다.
빌4:4절에 [항상 기뻐하라]고 하신 말씀은 이것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항상 기뻐하라]고 하신 이 말씀의 껍데기만 보고 광신적으로 기뻐하는 것은 일종의 무지한 신앙이다.
일에는 하나님이 잡으신 범위가 있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 이것을 깨닫고 보면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자기의 당면한 문제를 신앙양심으로 판단해 보면 하나님의 그 문제의 범위를 잡은 것을 알 수가 있고 또 하나님의 문제를 일으키신 목적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을 깨달으면 전부는 내게 유익한 것을 알 수가 있다.
악질도 곤충도 질병도 흑암도 광명도 공중의 비도 재앙도 모든 것을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을 위해서 성화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깊은 지하실 감옥에 있어도 주님이 암흑을 주관하시고 사용하시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이 주님이 내 속에 계심을 알아야 한다.
[2] 애굽왕 바로가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지 아니할려고 무척 애를 썼으나 이 마지막 장자재앙에서 해방시켜 준 것이다.
9가지 재앙을 내렸는데 이 중에 한 가지만 계속적으로 내렸다고 해도 애굽 사람을 전부 죽일 수가 있다.
그런데 9가지 재앙을 교체시켜 재앙을 내리신 것은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함이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연단하기 위함이요 애굽 사람에게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보여 하나님을 거역함의 종말이 비참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9번이나 죽을 지경을 당해도 이스라엘을 놓아주지 아니했으니 이것이 악령에게 붙들린 세상 사람이다.
그런고로 그리스도인의 지극히 적은 의라도 이는 전능자의 도움으로 된 것이요 우연적인 것이 아니며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다.
적은 의의 가치를 알아야 강한 힘을 얻는다.
[3] 11:3절에 하나님이 재앙을 여러 번 내리심은 불의를 꺾고 하나님의 사람의 권위를 높히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재앙을 여러 번 내리심으로 바로의 권위는 떨어지고 모세의 권위는 올라갔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장벽이 많아 이것이 꺾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또 꺾어지고 다시 일어서므로 하나님의 사람의 권위는 높아지고 막은 장벽의 권위는 떨어지고 만다.
그런고로 우리 성도들은
(1) 모든 재앙은 하나님의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으로 이 재앙으로 하나님의 사람의 권위는 높아지고 마귀의 권위는 떨어진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을 위해서 흙, 강물, 질병, 곤충, 암흑, 광명 모든 것을 이용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2) 죄 하나 끊는 것, 나쁜 습관 하나 고치는 것, 이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믿는 사람이 의를 하나 행하는 데에 강한 방해자가 심한 방해를 하는 반면에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역사를 하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다윗처럼 주위에 마귀가 천천이요 만만임을 알아야 함.
(3) 성도의 가는 길에 방해가 많은 것은 성도의 권위를 올리기 위함이요 마귀의 권위는 떨어지게 하기 위함인 것을 알아야 한다.
(4) 10가지 재앙을 내리기까지는 놓아주지 않고 붙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제목 : 유월절
본문 : 출12:1-51
요절 : 출12:7
[1] 애굽에 장자재앙을 내리던 날에 이스라엘을 해방과 자유와 큰 보배를 받았고 애굽 사람은 사망, 보화를 빼앗김, 패망을 받았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도 유월절과 같은 재앙을 가끔 만나게 된다.
신구약 성경에 보면 이 유월절 같은 성질의 환난을 당할 때에 유월절에 취급한 대로 취급하면 이 환난으로 성도가 해방과 자유와 큰 보배를 받게 됨을 말씀했다.
이스라엘이 이 양 피를 의지하여 이 유월절 환난으로 인하여 애굽에서 해방 받았고 자유함을 받음과 같이 오늘도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의지하면 유월절과 같은 성질의 환난으로 인하여 세상에 해방 받고 세상의 것들은 정함이 없는 줄을 알아 세상에 대한 애착심과 소망심이 달라 환난 전보다 더욱 자유를 얻게 된다.
그 당시에 같은 나라 안에서, 한 날, 한 시에 같은 재앙을 받았으나 양의 피를 바른 것과 바르지 아니한 것이 달랐다.
하나는 구원이요 하나는 멸망이었다.
이와 같이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자 곧 사죄와 칭의와 중생을 입은 자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국 소망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신 진리 말씀을 이용하여 구원을 이루고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입지 아니한 사람은 다 멸망이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에 준비할 것은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양고기를 불에 구워서 먹고 쓴나물을 먹고 무교병만 먹었다. (유교병을 먹으면 죽는다.)
그렇게 준비한 후에 애굽 사람들에게 손만 내어 밀면 전부 보물로 채워 준다.
[3]지금 우리도 이 유월절에는 그렇게 해야 한다.
(1) 허리에 띠를 띠고 -진실로 띠를 띠고
(2) 신을 신고- 성경 말씀대로 행하고
(3) 지팡이 짚고-언제든지 주님 의지하고
(4) 양고기 먹고-예수의 피와 살 곧 십자가의 고난을 연구하므로 내 인격에 힘을 얻고 죄를 끊고 의를 행하고 새생명으로 살고
(5) 쓴나물을 먹고-고난을 양식으로 삼고 고난에 맛을 붙인다.
# 양식은 힘을 얻고 보존하고 자라 가는 것이니 이 고난으로 결과가 어떻게 될 것임을 생각하면 의로 인한 고난이므로 즐겁고 기쁘고 이로 인하여 인격의 요소가 자라고 힘을 얻어 도리어 즐거움이 되어야 하고
(6) 무교병-누룩 없는 떡, 부풀어짐이 없는 떡 이것을 먹어야 한다.
환난 때에 형제를 사랑하여 화목해야 한다. 불목하면 안 된다.
형제가 나를 해하고 죽는데 내어 줄지라도 불목하면 유월절 환난을 통과하지 못한다.
불목을 가지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즉 환난 때에 패망하고 만다. 화목으로 승리해야 한다.
이방 사람이 무교병을 먹을려고 하면 할례를 받은 후에 세례 받은 후에 즉 자기의 더러워진 것을 모두 버린 후에 먹어야 한다. 회개한 자만이 무교병을 먹는다.
제목 : 출애굽
본문 : 출13:1-22
요절 : 출13:22
1. 하나님께서 가나안 7족속을 전부 몰아내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곳에서 복을 누리고 살도록 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해 주신다고 했는가?
유월절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말고, 가까이 하지 말고 누룩을 전부 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말씀이 잘 기억 되도록 하면 그렇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지시를 지켰을 때에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지켜 주셨다.
2. 오늘도 그러하다.
가나안 7족속과 같은 불의의 세력, 구습, 나쁜 습성 이것을 주님이 몰아내어 주셔야 한다.
주님의 몰아내어 주심을 받으려고 하면 유월절을 잘 지켜야 한다.
즉 대형 대행하신 예수님을 항상 기억하고 죄와 의 문제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피와 살을 항상 기억하여 죄는 죽기까지 대적하고 의를 건설하고 모든 사람과 사랑으로 화목 하려고 노력하면 우리 속에 있는 죄악을 몰아내어 주신다.
그러므로 불의와 죄악을 몰아내려면
* 유월절을 지킬 것이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연구하여 (기념하는 것)
죄와 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생명을 투자할 것이다.
* 무교병을 먹을 것이다.
원수와도 화목하고 형제와도 화목해야 한다.
형제를 사랑하지 못함을 원통히 여기고 형제와 화목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나를 움직일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고 그대로 지킬 것이다.
그러면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해 주시고 불의를 몰아내어 주신다.
제목 : 홍해바다
본문 : 출14:1-31
요절 : 출14:13
(1)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인간이 볼 때는 그 길로 가면 안될 것 같고 쫓아가면 죽을 것 같으나 하나님의 권능으로 안될 것 같았는데 되게 하시고 죽일 것 같았는데 죽이지 못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권능으로 되었다" 고 모든 사람이 공인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한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게 하기 위하여 고난의 길로 인도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군병들이 등을 대고 돌고 있으니 심히 위급하고 다급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을 했으나 심히 다급하니 하나님에게 더 달라붙고 의지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는 고난은 역경은 주님을 더 의지하고 달라붙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을 의지할 대로 의지하고 바라 볼대로 바라보고 순종의 도수가 차야 모세와 같은 평강을 누릴 수가 있다.
그러므로 주위 환경을 고치려고 하지말고 인본주의로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아를 발견하여 고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에게만 순종하여 그 도수가 차도록 노력해야 한다.
(3)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인간이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원망도 하고 어떤 때는 하나님의 인도를 배반한다.
하나님이 이런 길로 인도하시는 것은 얼마든지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권능이 없어서 어려움이 심한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고 얼마든지 인도할 수 있는 권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자만이 이 길로 갈 수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믿음으로 홍해를 건너갔고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전부 몰사했다(히11:29)
애굽인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믿지 아니하고 눈에 보이는 현실인 사실을 의지했다.
왜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전부 죽었다고 했을까?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한 그것이 시험한 것이다.
"물이 합해 질려면 합해져 보아라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가" 보자고 하는 시험이었다.
제목 : 승리의 찬미
본문 : 출15:1-16:36
요절 : 출15:21
(1) 15:1-21절에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후 하나님을 찬미했다.
(2) 15:22-26절에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인도하시는데 이스라엘이 이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원망했으니 실은 원망할 것이 못되는 것이다.
껍데기는 원망할 것이지마는 실속은 원망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구원이다.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대한 미련을 끊기 위하여 광야로 인도하신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원망한다.
세상을 벗어나 천국을 향하여 가는데 더욱더 천국에 재미를 붙이게 하기 위하여 세상 재미를 끊기 위하여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힘드는 길로 인도하신다.
그런데 사지(死地)에서 구원하시는 주님을 믿지 아니하므로 원망하게 된다.
'마라'에서 쓴 물을 달게 하신 이것은 답답할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면 답답함을 풀어서 시원하게 해 주시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하나님을 모셔야만 참된 음료임을 보여 주신 것이다.
16:1에 보면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을 먹이신 것이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이 계시면 의식주가 걱정이 없음을 보인다.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할 때에 먹을 것이 있었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3) 우리는 오직 의만 행할 뿐이다. 우리를 대적하는 원수는 하나님이 갚으신다.
죽겠다고 원망하는 길에서도 참 삶의 길이 있으니 이것을 안 모세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자고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죽을 지경이었다.
(4)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다가 당한 모든 어려움의 해결은 하나님께 순종하면 해결해 주고 다 이루어 주신다.
(5)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원망한다고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니다.
원망할만한 형편에서도 하나님이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 주신 것이다.
원망치 아니할 수 없는 역경에서도 원망치 않고 주님의 일하시는 솜씨만 믿고 기다림으로 그 역경을 해결하여 주심을 받는 이런 신앙 인격을 길러 갔다면 가나안으로 바로 갔을 것이다.
이런 신앙 인격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짜증내고 변덕 되는 이것을 뽑기 위해서 40년 간 광야 생활을 하게 했는데도 도리어 다 뽑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들이 회개하지 않고 원망하는 근성을 뽑지 않으므로 멸망한 것을 알고 우리 속에 있는 이 원망하는 근성을 뽑아야 한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역경을 만나도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을 믿고 감사와 기쁨으로 통과해야 한다.
이것이 아니면 썩어질 것이요, 가나안에 들어갈 것이 하나도 없다. 이스라엘이 원망으로 멸망했다.
제목 : 아말렉을 정복함
본문 : 출17:1-16
요절 : 출17:6
(1)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었는데 이 반석은 하나님을 모형한 것이다.
땅에서 물을 솟게 하는 것도 어려운데 틈도 없고 딴딴한 바위에서 물이 나왔으니 이것은 자연법칙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도무지 될 수 없는데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물이 나왔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은혜는 초자연적인 것이 자연적인 것을 통하여 나오나 초자연적인 역사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통하여 나오는 것이다.
(2)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물이 없어서 모세에게 시비를 걸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단단한 반석에서 해결하여 주셨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으나 하나님이 풍족히 채워 주신 것이다.
"반석을 치라 내가 물을 내리라"고 전능자가 말씀하신 것이니 책임지고 이루신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전능자가 책임지고 말씀하신 것은 전능자의 능력이 일을 하여 주신다.
인간의 생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방편이지마는 전능자가 책임지시고 일을 하여 주시는 것이니 주의 일에는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3) 반석을 쳐서 물을 낸 것은 자연의 법칙으로는 불가하고 자연인은 믿지 못하고 또 자연인은 이런 말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전능자가 반석을 치라고 말씀했으니 전능자가 지시하신 대로 행할 때에 자연법칙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전능자가 명령하신 것이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4) 민20:11-13절에 보면 모세는 이 반석을 두 번 침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말씀을 조금 어겼는데 하나님이 진노하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은 반석에서 물을 냄과 같이 전혀 불가능하나 전능자가 사랑하므로 말씀하셨으니 사람의 생각으로는 허무하게 보여도 순종만 하면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이웃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이 이루어지는데 이때에 내 할 일만 하면 이웃에게 은혜 베푸시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 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웃에게 은혜 베푸는 일을 자기가 할 것 같이 자기가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모세가 범한 죄를 범하게 된다.
이스라엘 앞에서 하나님의 명령 순종이니 하나님의 일을 그들 앞에서 행할 것이다.
므리바에서 반석을 쳐서 물을 내는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는 것인데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반석을 치므로 하나님을 위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웃에게 구제하고 봉사할 때에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웃을 위하여 구제하고 봉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다가 보니 구제하고 봉사해야 한다.
모세는 반석을 칠 때에 인도자의 심정을 잃었다.
인도자의 심정은 죽은데서 살리는 사랑의 심정이라야 하는데 이것을 잃었다.
모세는 하나님 자체에 대한 불신과 모욕을 가졌고 또 도움 받을 자를 어디까지나 불쌍히 여겨야 하는데 자세를 부렸고 사랑과 긍휼이 없었고 또 우월감을 보여 자기에게 시키시는 하나님의 심부름으로 하지 아니했다.
이것으로 인해서 모세는 가나안을 보기만 하고 들어가지 못했다.
(5) 출17:8-16절에 아말렉 족속이 선민구원 운동을 방해했다.
그래서 지면에서 전부 없애버리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이스라엘 왕 사울 때에 전멸시켰다.
선민 구원운동에 협조한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보응을 하신 것이다.
반면에 복음운동에 협조한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
*11절에 보면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가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졌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인도자이니 인도자의 손이 올라가면 이기고 내려오면 졌다.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해도 승패는 모세에게 달렸으니 모세가 기운이 나면 이기고 기운이 없으면 졌다.
그러므로 크게 말하면 그리스도교가 왕성하고 높아지겠끔 도와 주면 전부가 복이다.
그리스도교가 왕성치 못하면 원수가 득세하고 자체는 망하고 만다.
교역자가 권위가 있고 힘이 있으면 교회는 왕성한다
제목 : 이드로의 조직 방법
본문 : 출18:1-27
요절 : 출18:26
(1) 1-12절에 모세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인데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는 뜻이다.
모세는 이방에 있으면서 가나안을 언제나 기억하고 본토에 돌아갈 것을 생각했었다.
그래서 아들 이름을 게르솜이라 지었다.
유대인들은 이방에서 집을 지을 때는 한 모퉁이를 완성치 아니한다.
이는 완전히 집을 짓고 이방에서 살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자기 본향을 추억함인데 우리도 이 정신을 가져야 한다.
자녀에게도 나그네 됨을 인식시키고 본향에 갈 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모세였다.
유대인들은 자기 고향에 대한 심정이 굉장히 강하다.
유대인의 언어를 항상 사용한다. 본향 찾아가기를 늘 생각한다.
또 하나의 이름은 엘리에셀인데 바로의 칼에서 건졌다는 뜻이다.
(2) 13-27절에 이드로의 조직체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미개적이거나 야만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에는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으니 죄 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는 세상법칙이나 방편을 쓸 수 있고 의지할 수가 있다.
사도 바울이 일을 많이 한 것보다 옳은 인물을 많이 양성했으므로 바울의 한 일이 많이 나타났다.
자기 주관으로 강제의 힘으로 사람을 붙들지 말고 모든 사람을 접촉할 때에 사람들이 이런 저런 장점을 이용하여 인정하여 줌으로 그 사람이 나에게 끌려서 소속하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붙어서 끌려오도록 해야 한다. 강제로 끌면 안 된다.
제목 : 모세가 시내산에 감
본문 : 출19:1-25
요절 : 출19:20
(1) 4-5절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약속했다. 독수리가 날개로 새끼를 연단 시키는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연단 시키기 위해서 모든 환경과 환란을 허락해 주시니 이것은 사랑의 선물이다.
(2) 12-14절에 시내산에 올라갈 때에 모세는 시내산 상봉까지 올라갔고 아론은 중봉까지 올라갔고 백성은 산기슭에 있었다.
죄를 두고는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죄를 소멸하는 하나님이심으로 자기를 과대 평가하는 것은 죽는 일이요. 주님과 자기 정도 이상 밀접하려고 하는 것도 자기를 죽이는 것이요, 자기 실력 이상의 행동을 하는 것도 자기를 죽이는 것이니 자기의 분수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하고 일을 맡아야 한다. 자기 분수에 맞는 주님과의 관계를 가져야 한다. 자기의 분수에 넘으면 안 된다.
백성들이 시내산 꼭대기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니 자꾸 올라가고 싶었으나 성결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자기 정도 이상 넘어가면 죽는다.
여러 곳에 있는 기도원에 가서 보면 자기를 과대 평가하고 자기 분수에 넘어가서 죽어 가는 자가 심히 많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로 갈 때에는 먼저 자기를 정평하고 자기의 입장과 분수를 그대로 가지고 받아야 한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다.
제목: 이스라엘의 국법
본문: 출21:1-36
요절: 출21:1
오늘의 법이 세밀하다고 해도 모세오경을 넘지 못한다
모세오경은 지방 풍속이나 제도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것에 대한 자유의 법을 가르친 말씀이므로 모세오경은 법학을 공부하는 이상이다. 지식 없는 양심은 있을 수 없으니 지식이 양심을 낳는다.
2절에 6년을 부린 후 7년에는 안식년으로 돌려 보내준다. 50년만에는 희년이라
재산 및 토지를 개혁하여 빈부의 차별이 없이 전부 재분배하고 빚도 물론 전부 무로 돌린다.
눅14:12-14절에 있는 말씀은 모든 사람은 조물주가 그 주인인고로 인간끼리 상대할 때 권리를 다 써먹을 것이 아니라 사람의 주인이 하나님인줄 알고 공변 되게 쓰고 사용할 것이요 권리를 남용하기 쉬우니 약한 자를 후하게 대접하고 강한 자에게는 바르게 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3-6절에 소유권을 人情(사람의 정)이 침해하지 못한다. 인륜이 소유권을 침해하지 못한다. 권세는 권세만큼 살려야 한다. 미개한 나라일수록 소유권의 한계를 흐리게 한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법을 법만큼 살려 소유권이 강하고 명확하다. 소유권에 있어서 부모가 자식의 것을 침해하지 않고 자식은 부모의 것을 침해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자식은 효도로서 부모에게 권리를 바칠 수 있고 부모는 사랑으로서 자식에게 줄 수 있다.
모든 권리의 생명은 권리만큼 살리는 것이다. 권리를 유린하고 남용하는 것은 죄요 권리는 권리만큼 살리는 것이 법이요 권리를 권리만큼 살려 놓은 곳이 천국이다.
사람이 싸우되 남의 집에 가서 싸워서 때린 것보다 자기 집에서 때린 것이 죄가 적다. 남의 집에 가서 때린 자는 남의 소유권까지 침해한 자다. 그러므로 남의 권리를 옹호해 주는 것이 의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남의 소유권을 침해하지 아니하겠다고 하는 여기에 정신이 밝아진다.
7-11절에 인권옹호가 있다. 종은 종으로 부리나 그의 육체에 침노했으면 아들에게 주기로 했으면 그와 합했으면 종으로 대접하지 않고 정조를 바쳤으니 당당히 요구할 수 있고 또 권리의 침노에 대한 대가를 꼭 지불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노하여 빼앗는 것이면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13-14절에 공변된 복수성 이것은 성경이 인정한다. 법에는 공변된 복수법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큰 빚을 지고 있는 우리는 이 공변된 복수법을 쓸 수 없고 또 쓰지 못한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 수가 있다. 만일 살인자라도 하나님이 지시한 곳으로 피난 갔으면 그 사람을 죽일 수 없다. 그 사람을 죽였다 하면 죽인 사람이 도리어 하나님께 보응을 받는다. 이와 같이 공변된 복수법이 없이 있으나 만주의 주인 되신 하나님에 의하여 이리 저리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도피성은 그리스도교를 상징한 것으로 인간이 무슨 죄를 지어도 그리스도에게 나아오면 살 수 있는 도피성의 교회다.
15절에 부모를 치는 것은 사형을 받을 죄다. 신약시대는 사랑의 시대이므로 죽이지는 아니하나 부모를 치는 것이 사형을 받을 만한 죄가 되는 줄 알아야 한다. 제5계명에는 부모에게 효도하면 자기 땅에서 장수한다고 말씀했다.
16절에 사람 도적질은 사형을 받는다. 사람 도적질은 자유 하는 자를 다시 자유치 못하는 자로 판 것이니 즉 사람의 자유성을 팔고 인권을 팔아먹어 유린한 것을 말한다. 사람의 자유권을 박탈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것은 사형을 받을 죄다.
20-21절에 주인이 종을 쳐서 당장에 죽으면 형벌은 있으나 1일이나 2일이나 경과 후에 죽으면 형벌이 없다. 종은 상전의 금전이기 때문이다. 공변된 이 법을 알아야 하고 그래야 혜택을 혜택으로 알 수 있다. 종을 상전의 금전이라고 했으니 소유권이 정말 강하다. 범죄한 죄인은 종으로 팔려 영원히 요동치 못할 죄에 매인 것이다. 팔린 종이 안 팔린 척 하므로 월권하고 인간의 자유성을 잃어버린다.
종의 무지 자유성을 알기 위해서 청년시절의 얼마동안은 종노릇을 해 보는 것이 좋다. 종이란 얼마나 자유가 없고 수고와 고생이 있음을 알기 위해서 자유의 존귀성을 알기 위해서 종노릇하는 사람은 가치 있는 월급쟁이 종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자유의 존귀성을 안 후에는 자유업을 시작할 것이다.
자유업을 해서 만원을 수입한 것과 월급쟁이를 해서 10만원을 수입한 것과는 사람과 돈이 각각 다르다. 자유업으로 만원을 수입한 여기에는 그만큼 자아가 투입되었다. 업(業)에는 부자 되지 아니할 업이 없고 가난해지지 아니할 업이 없다.
사람의 욕심은 지혜와 능력이다. 욕심에서 지혜와 능력이 나온다.
돈에 욕심을 품은 상인들은 탐험자들이 들어가지 못한 곳을 먼저 들어갔다.
욕심은 이와 같이 지혜와 능력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자유업에는 자기 일이므로 욕심이 나오는 것이다. 욕심이 나오니 여기서 지혜와 능력이 나온다. 그러므로 자유업이 큰 발전을 가져온다. 우리는 소아가 되어야 위대한 사람으로 되는 첫 길이다.
22-25절에 사람은 동등권을 가진 것을 말한다. 신약시대의 사랑의 법은 세상 누구에나 복수할 수가 없다. 공의를 지킬려고 하면 율법으로 가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공의의 복수는 쓰지 못한다. 공의는 다만 각자에게 대한 나의 의무를 이행할 때에 내게만 적용한다. 상대에게 공의를 지키지 아니했다고 시비할 것이 아니고 내가 상대방에게 공의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하여 내가 내 자신과 시비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공의를 지킨 후에 구속의 법을 지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다. 나는 공의가 아닌 대형 대행을 입어 빚진 자이기 때문에 나는 남을 위하여 대형 대행을 하여야 하니 복수할 권한이 없다. 또 여기에 보니 돈으로 생명을 대신했다. 돈이라는 것은 사람의 정력을 바꾸어 놓은 곧 그 사람의 진액이므로 돈과 사람을 동등으로 말씀한 성경 구절이 많이 있다. 사람이 자기의 정력을 투자함으로 생겨진 돈이기 때문에 돈은 곧 그 사람이다. 그러므로 남의 돈을 떼어먹으면 그 사람의 생명을 떼어먹은 사람이다.
26-27절에 종이지마는 활동하는 노동력만 산 것이지 몸은 산 것이 아니다. 종의 몸에 손을 대면 노예제도가 삭제됨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의 노예제도는 그의 활동만 산 것이다. 신체까지 산 것이 아니다. 신체를 해하였으면 사지 아니한 부분을 해하였으므로 계약이 해소된다. 계약은 조건부로 되는 것인데
어떤 부분은 계약이 되고 어떤 부분은 해소가 되어 있는지 이것을 조목별로 세밀히 계약을 해야 한다. 문화인(文化人)일수록 법이 세밀하고 안녕 질서가 유지된다.
반대로 법의 조문이 적으면 사는 것에 억울하고 애매함이 많다. 법이라는 것은 상호 존재권을 확립시켜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은 일방적일 수 없다. 쌍방에 공의를 취하지 않고 일방적인 것은 법이 아니다. 상대방이 어리석거나 어려도 쌍방 동등권으로 계약을 해야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하지 않는 것이 문화인이요 법적인 계약이다. 그러므로 법의 성질은 상호 안녕 질서를 보호하는 것이다. 상호 자주권을 보호해 주는 것이 법이요
그러므로 법에는 일방적이 없다. 우리가 갈 천국은 이런 법의 나라다
28절에 여기에 고기를 먹는 것을 금했다. 이유는 무엇? 모든 물질의 판정이 물질만도 있으나 물질의 이치로는 먹어야 하나 물질이면 도덕의 이치가 앞서고 있으므로 물리에 맞아도 도덕에 위배되면 안 된다. 그러나 물리에만 치우쳐도 안되고 도덕에만 치우쳐도 안 된다. 이것은 폐단이다. 도덕의 이치로 보아 정리(情理)로서는 10만원을 해 줄 수 있으나 물리로서는 만원도 못 해줄 형편이라고 하면 도덕과 물리에 맞추어서 그기에 맞도록 처리해야 한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아깝지만 도덕의 이치에서는 먹지 못할 형편이다. 물리에 맞아도 도덕에 맞지 아니하면 하지 못한다. 또 도덕에만 맞추고 물리를 무시해도 안 된다. 어느 가정에 남편 아내 식모 세 사람이 살고 있는데 아내가 죽었다.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서 식모에게 "한 사람이 죽었으니 계란 1개를 줄이라"고 말을 했다고 하면 (평소에는 3개를 먹었는데) 이것은 물리에는 맞으나 도덕의 이치에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덕과 물리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지 어는 한 쪽으로 치우치면 낭패다. 자기의 정도와 분수에 맞추어 도덕과 물리에 맞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는 조절해야 한다. 두 개의 바퀴가 같이 되어 보조를 맞추어야 앞으로 갈 수 있다.
29절에 모르는 것과 안 책임이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 같은 행사에 모르고 했으면 살리고 알고 고의적으로 했으면 죽인 것이다.
30절에 호주를 죽였으면 그 부양가족들을 살리기 위해서 속죄금을 받는다. 그 남은 가족의 생활을 위해서 속죄금을 받는다. 사람이 사람에게 감당 못할 법을 요구 할 수 없으나 사람이 알고 감당할 수 있는데 부주의로 감당치 못했으면 받는 형벌이 크다. 무엇이든지 우리는 공의와 자비를 하고
33절에 나로 말미암아 손해가 갔으면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전부 보상해야 한다.
35-36절에 법은 울타리다. 그러므로 법에 들어가야 사랑할 수가 있다. 사랑은 생명이요 법은 생명의 울타리다. 인간의 자주권을 인정하고 옹호하는 것이 법이다. 그러므로 법을 모르면 잘한 것 잘못한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제목:이스라엘의 민법(그리스도교의 사회성)
본문:출22:1-31
요절:출22-23
1절에 "도적에 대하여"말씀했다
소는 5마리로 양은 4마리로 갚으라고 말씀했다
소는 양보다 비싸기 때문에 소 하나에 5마리로 하고
양은 소보다 값이 싸기 때문에 양 하나에 4마리로 하라고 한 것이 아니다
죄악성이 크고 작음을 두고 그렇게 정한 것이다
도적질하는 도적 성격이 양보다 소가 더욱 크고 강한 것이다
물질의 경중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도적질의 경중으로 보아 죄의 중량이 무거우므로 5배로 4배로 된 것이다
10만원짜리 물건을 길에서 지나가다가 도적질한 것과
만원짜리 물건을 대문을 열고 들어가서 도적질한 것에 대한 법의 심판은 가격의 높고 낮음보다 도적질한 것의 성격을 보아서 만원 짜리 물건을 훔친 것을 더 악하게 인정하여 형벌을 더 크게 준다
4절에 도적질한 것이 살아 있으면
갑절이나 갚으라고 말씀했다
도적질하다가 잡힌 것과 도적질한 것을 집에 갖다 두었다가 잡힌 것과 다 쓰고 난 후에 잡힌 것에 대한 죄의 중량은 다 쓰고 난 후에 잡힌 것이 제일 무겁다
도적질한 것을 다 쓴 후라 성숙했으니 사용하여 처리한 것이 더욱 죄가 크다
기소와 유예로 보아야 한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죄의 경중 다툼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2-3절에 도적질하는 사람을 쳐죽이라는 말씀이 아니다
살인을 할려고 하는 계획적인 범죄가 아니고 능동적인 범죄가 아니고 피동적인 범죄로서 우연히 돌발적으로 어떤 충격에 피동 되어 살인한 것이니 이 보수의 원인이 도적질한 사람에게 있으니 죄가 없다
정당방어와는 다르다
해가 돋은 후에는 도적질한 사람을 죽이게 되면 고범죄로 도리어 벌을 받는다
그러므로 죄에는 연약성 고범성 피동 우연성 돌발성이 있어서 각각 다른 것이다
5-6절에 이것은 정당한 댓가가 아니고 상대방의 기분(기물)을 침노하여 어지럽혔을 때에 자기의 부주의로 남에게 손해를 보였으면 자기로서는 제일 좋은 것으로 배상을 해야 한다
왜 제일 좋은 것으로 배상을 해야 하는가?
법이라는 것은
죄를 막고 없애는 것이다.
포도원이나 밭에서 소를 먹이다가
곡식을 먹게 했으면 곡식에 대한 애착심이 없었다.
액착심이 없는 자에게는
자기의 가장 귀중한 애착심을 빼앗음으로 보상할 것이다.
남의 것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에게
자기의 제일 귀하게 여기는 것을 깨뜨려야 보응의 벌을 받게된다.
그리스도교는 제일 밑바탕인 죄악성, 마귀성을 전부 빼앗아 그리스도교화 시키는 절대 복수주의다.
인간을 불쌍히 여기나
죄와 마귀를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요,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다.
이 싸움에 있어서 승리의 비결은
[원수를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이 도(道)로서만 죄와 마귀를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승리의 비결이다.
남의 것을 아끼지 않는 것이 죄요,
자기 것만 아끼는 것이 죄요.
자타의 것을 동등으로 평가하는 것은 의다.
자타의 것을 동등으로 아끼나
거기에 대한 책임성에는 자기의 의무와 책임성을 더욱 더 앞서 느껴야 한다.
책임성에 있어서 자타 동등으로 지는 것은 죄다.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먼저 지고 그 후에 남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곧 물물(物物) 수지계산, 덕(德) 세움의 계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있어서는 뒤에 둘 수도 있다.
인격으로 빚진 자의 집과 내 집에 동시에 불이 났다.
이 때에 나는 먼저 인격의 빚진 자의 집부터 불을 꺼야 한다
그러므로 수지 계산에 맞추어 유익점을 취해야 한다.
어떤 때는 돈을 중심 하여,
어떤 때는 인격 중심의 계산을 주로 하여,
어떤 때는 자기가정 단위, 교회단위,
어떤 때는 하나님 전체를 주로 하여 수지 계산을 맞출 수가 있다.
7-9절에. 세상 법이라는 것은
사람의 안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사람의 두뇌로 전체성, 역사성, 사회성으로 보아 옳게 여겨 제정한 것이 법이니
사람의 의사 판단을 중하게 여겨서 여기에 맡겨야 한다
남의 물건을 보관할 때에
보관비를 받고 맡았다가 잃어버렸으면 반드시 배상을 해야 한다.
보관비를 받지 아니했다고 하면 도적 맞은 물건에 대해서 책임성을 벗을 수가 있다.
10-13절에. 보관비를 받지 않고 맡은 의무와 책임 없이 짐으로 지워놓았을 경우에는 잃어버려도 책임이 없다.
12절. 도적놈이 도적질하러 들어와서 남의 맡겨둔 것이 아니면 자기 것을 도적질해 갔을 것이니 이때는 배상을 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구별이 세밀하신 분이다.
14-15절에 짐승을 빌려 온 것은 쓸려고 빌려 온 것이다.
주인이 있을 경우- 주인이 빌려줄 때는 그만한 용도를 알고 빌려준 것이니 상해도 주인의 책임이다.
주인이 없을 경우-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므로 인간의 숨은 이면을 알 수 없으므로 주인이 허락한 범위를 넘었으므로 배상해야 한다.
16-17절에. 성경은 돈을 무시하지 아니하고 사람과 동등으로 했다.
은 30이면 사람 하나를 살수가 있다.
돈은 피. 몸. 지혜. 지식을 판 대가이다.
그러므로 돈을 함부로 쓰는 사람은 자기를 함부로 쓰는 사람이다.
돈이 곧 몸의 피다.
18절에. 이것이 신정국가의 법이다.
무당을 살려 두지 말라고 말씀했다.
예산이 없이 살게 되면 돈이 많이 들게 된다.
안 쓸 돈을 함부로 쓰기 때문이다.
사람은 써야 할 돈을 다 쓰지 못한다.
이것이 일반인이다.
일정한 한도를 정하여 쓸려고 예산편성을 하지 않고 마구 쓰면 필요 없는 곳에 돈을 쓰게 된다.
돈을 쓰고 싶으면 얼마든지 쓰고
안 쓸려고 하면 또 안쓸 수 있는 그 사람이
경제적 초월자다.
미국인은 돈으로 돈을 타산하지 수고를 가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문화인은 놀라는 일이 없도록 살아간다.
금리에 단단한 사람이 일에 단단하고 육(肉)에 위생을 하여 단단한 사람은 영에 빈틈이 없다.
육체의 위생을 잘 배워 위생 함으로 인격의 위생접촉을 잘 조절 할 수 있다.
19절에 인격과 인격의 결합을 비인격과 결합을 할 수 없다
인간이라는 지위를 지켜 인간답게 살아야지 짐승처럼 살 수 없다
20-24절에 사람은 약자를 압제하기 쉽다
강한자에게 눌리는 것이 또한 압제 당하는 사람이다
강한 자에게 눌리는 자가 약한 자를 잘 압제한다
이 사람은 죽은 자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공의와 은혜(사랑) 외에는 할 권리가 없다
공의는 법을 지키는 것이요 공의를 따져놓은 것이 법이다.
사람에게는 최저의 행위가 공정인데 이것을 넘으면 안 된다
항상 사랑 안에서 살도록 노력하되 공정을 넘어서면 안 된다
신자나 불신자에게 마음에 사무쳐 호소하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모질게 사무치게 해서는 안 된다
25절에 이 말씀은 가난한 사람에게 빌려줄 때는 구제하는 성격으로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사람이 자립할 수 있도록 살리기 위하여 빌려주되 변리를 받지 말라는 것이요
또한 빌린 것을 갚을 수 있도록 주선해야 할 것이다
사업을 위해서 돈을 빌려주고 변리를 받지 말라는 말씀과는 다르다
26-27절에 금전은 사람의 수고의 대가임으로 금전 대우가 사람 대우다.
그러므로 전부가 경제요, 인권옹호요, 책임성 옹호요, 사람을 아끼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으로 구원하기 위한 원리로 하지 않으면 결국은 망하는 길이다
28절에 신약시대에도 모든 권세나 정사의 법칙에 순종해야 한다
29절에 무엇이든지 제일 좋은 것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30절에 성숙한 후에 잡아서 드리라는 말씀이다
인권옹호에는 인격의 공정이 있어야 하고 인간 구원에는 인자와 희생이 있어야 한다
제목: 그리스도교의 사회성
본문: 출23:1-9
요절: 출22:2
1절에 허망한 풍설은 떠다니는 말, 뿌리 없는 말이다
말을 할 때에는 반드시 책임을 지고해야 한다 말한 후에 책임을 지지 아니하면 말에 대한 조심이 없으니 자신이 망하고 만다
말을 할 때는 말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해야 한다
자기가 말한 것으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책임지고 말을 해야 한다
또 남의 말을 전할 때도 책임지고 전해야 한다
책임지지 못할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악인과 연합하여 모함하는 증인은 개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가만히 보고 있다가 강자에게 붙는 인간이다
강자에게 보다 약자에게 힘을 쓰지 않고 약자를 동정하지 않고 잔인성을 가지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면 안 된다
악한 자를 악 한자로 정평정가 하여 악 한자로 인정해도 잔인성을 가지고 대하지 말 것이다
2절에 소수를 따라가서도 안되지만 다수를 따라가도 안 된다
진리를 따라 가야 한다
교회 안에서 회의를 진행하는 것을 보면 종다수 가결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러워져 간다
바로 깨닫는 수효가 심히 적고 비뚤어지게 깨닫는 수효가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종다수는 잘못을 따르는 것이니 결국은 실패다
우리 개교회는 종다수 가결이 아니고 자유성을 가지고 진리를 표준 함으로 10인이 있다고 하면 9인이 바로 깨닫고 1인이 바로 깨닫지 못했다고 하면
그 사람도 바로 깨닫도록 하는 것이 앞선 문제요, 결의가 앞선 것이 아니다
왜?
그 사람에게 자유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문제를 바로 파악하도록 한 후 많은 문제를 바로 파악하는 데에 먼저 바로 파악한 이것을 잣대로 삼아서 많은 문제를 바로 파악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른 지도법이다.
선과 악을 구별하는 데는 다수에도 바른 것이 있으나 이보다 진리에 두고 구별해야 한다
그리고 자유성을 살펴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문화인이 지식이 자라고 인격이 자라지 아니하면 강자에 붙는 종이 된다.
주인은 되지 못한다
3절에 잘못하면
강자를 배척하고 약자를 두둔하는 것으로 치우쳐 버린다
강자에게나 약자에게나 공정을 가지고 비판할 것이다
약자는 약하므로 그만큼 두둔할 것이지마는 너무 지나친 것은 범죄하기 쉽다
4-5절에 도와줌에 있어서도
①"너는 나에게 악하게 하지만은 나는 너에게 선하게 한다"고 하여 도와 줄 수가 있고
②상대방을 도와 줌으로 그 사람의 마음이 감동을 받아 그 사람과 내가 화평을 이루어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도와 주는 것도 있는데 전자는 고급 악이요, 선 같은 악이니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
원수에게 후대 받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원수에게 후대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은 다 잘못된 것이다.
후대 받기를 좋아하는데서 벗어나서 후대를 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되고 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된 후에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고받는 이것으로 화평을 가져 사람을 얻고져 하는 이 사람이 위인이다.
사람을 얻는 이것을 귀하게 보는 사람이 위인이다.
사람을 얻기 위해서 화평하 는 것이 제일 좋고 자기를 좋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그 다음 좋고 원수에게 자기의 선을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 그 다음 좋고
원수의 잘못을 아주 다행으로 느끼는 것이 제일 못 쓸 자다.
전도인은 사람을 도울 수 있고 선을 베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지기를 매우 원한다
그런데 가족에게 선을 베풀기가 심히 어렵다. 사욕이 강하기 때문이다.
7절에 거짓 일은 진리에 이탈된 일이요 일 자체가 진리적이 아닌 것이다
유죄자와 불의한 자에게 대하여는 신약시대는 죽는 날까지 그 사람을 구원코져 해야지 사랑의 법만 쓰게 되어 있다.
8절에 불의한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사람에게 물질을 주는 것이 뇌물이다
응당해야 할 일인데 악함으로 하지 아니할 때에는 무엇을 주어서라도 시킬 수 있으니 이것은 뇌물이 아니다
뇌물의 규정은 물질로 인하여 그 사람의 악을 조성하느냐, 선을 격발 시키느냐 하는 이것이 중심이다
정당한 일인데 하지 아니할 때에는 물건을 주어 하게 하는 것은 뇌물이 아니지마는 이것이 지나쳐 그 사람이 응당 할 일인데도 물건을 주어야 해 줄줄 아는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에게 물건을 준다고 하면 악이다
이 때에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아니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우치기 위하여 물건을 준다고 하면 이것 또한 악이 아니다
재물로 불의를 성립시키고 조장하는 이런 것이 전부 뇌물이다
발락이 발람에게 주는 이것이 뇌물이다
일을 두고 사람을 얻기 위하여 주는 것은 뇌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리석어서 뇌물을 바로 판단하지 못하므로 사업에 종사하지 못하고 가난한 자가 되고 만다
의를 지나치면 기한 전에 죽는다
제목: 하나님의 약속
본문: 출23:10-33
요절: 출23:30
10-11절에 안식년
여호와는 이스라엘에게 안식년을 지키라고 명령하셨는데 이스라엘이 이 명령을 지키니 하나님에게는 기쁨이요, 인간으로는 가난한 사람이 덕을 보고 하나님의 백성은 그것만 보면 물질로 손해이지마는 6년 동안에 하나님이 전부 보충하여 배를 거두도록 하나님이 축복하셨다.
이 세상에서는 안식일이 하루 있고, 일하는 날 수는 6일이요, 안식년이 1년 있고, 일하는 횟수는 6년이나 천국에 가서는 전부 안식 생활이다.
히4장에 보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고 말씀했다
천국생활은 안식의 생활이요 천국의 성질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안식년을 지키는 이 법칙대로는 못할찌언정 무슨 업을 하든지 간에 7분의 1은 가난한 사람을 돌보고 사람이 아닌 들짐승까지 돌보는데 써야 한다
그런고로 성경에는 자기만 위하고 자기만 보고 살라고 말씀하지 아니했다
이것보다 섭섭한 생활이 없다
남을 동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잔인한 사람이 되면 안 된다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자기 몸만 생각하고 보는 사람은 제일 불쌍한 사람이다
들짐승에게까지도 자기의 마음이 가서 있어야 한다
어디서든지 인자심을 길러서 인자한 사람으로 길러야 한다
몰인정한 마음을 기르면 몰인정한 사람이 되고 만다
인자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으로 자기를 기르면서도 언제든지 의지적이라야 한다
인자하고 다정다감으로 눈물을 흘린 후에는 곧 그것을 잊어버리는데 이것도 바로 된 것이 아니다
인자하고 다정다감하면서도 의지적인 사람은 눈물이 없다
속으로 눈물을 흘린다
의지적인 깊은 심지를 가진 사람은 속 눈물을 많이 흘린다
잔인하여 눈물이 없는 사람, 동정이 없고 잔인한 사람은 사람을 얻지 못한다
사람은 물질보다 정을 더 좋아한다
우리는 어디서든지 다정다감하면서도 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
요셉도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통곡을 했다 이것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니다
속에다 눈물로 다지고 다지기 때문에 밖으로 나오던 눈물이 말라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잔인하여 눈물이 말라 버리는 이것을 여기다 갖다 붙이면 안 된다
유대 사람은 아직도 안식년을 지키고 있다
다른 사람을 동정하되 까다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 또 까다롭게 하되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잔인한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
12-13절에 안식일은 주일을 말한다. 지키는 규례는 동등이다.
일하지 않고 사고 팔지 아니하는 것으로만 주일 지키는 것이 아니다.
주일을 지킴에 있어서 소극적인 면은 하나님 앞에 은혜 받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는 것이요 적극적인 면은 다른 날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진리와 영감의 은혜를 받는 것이다.
과거에 잘못한 것, 잘못 계획한 것, 세밀히 반성하여 다시 정리 정돈하고 미래를 계획한 것을 수정하여 바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이것이 주일을 바로 지키는 것이다.
[엿새 동안에 너의 모든 일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부담시켜 주신 일이니 이것이 곧 자기의 지킬 믿음의 일, 명령 순종의 일, 자기에게 배정시켜 주신 일이요 이것이 곧 자기의 일이다.
주일은 하나님의 충족한 은혜를 받는 날이다.
18절에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라.
주님의 피를 의지하고 힘입는 자는 사람과 불목 하는 성격을 가지면 피 공로를 입을 수가 없다.
화평한 가운데 효험을 입을 수가 있는 것이요 불목하면 피의 은혜를 입지 못한다(마18:23-35)
요사이는 사람들이 화평을 말하면서도 불목을 일으키는 일이 많다.
화평을 일으키기 위하여 절교하고 분쟁할 수 있다
[절기 희생의 기름을 아침까지 두지 말라]
기름은 영감을 말하는데 이것을 뒤로 미루지 말고 즉시 행하라는 것이다.
환난 때(유월절)는 영감을 더욱 지체하지 않고 즉시 순종해야 한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를 만날 때에 만일 지체했다면 헛일이다.
말세의 환난일수록 지체하지 말고 즉시 순종해야 한다.
19절에 [염소 새끼는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라]
이는 인격성이 손해 보지 않고 기르기 위함이다.
어미의 젖 짜는 것은 새끼를 먹여 살릴려고 하는 것인데 젖에 새끼를 삶는 것은 자연법칙과 생존경쟁의 법으로 부득이는 할 수 있으나 잔인성을 가지고 하는 것은 거기에 인자성이 없고 잔인성이 행동하는 것이니 이것을 금했다.
고기를 낚을 수 있고 산 고기를 회를 쳐서 먹을 수가 있다.
먹고 싶어서 먹는 것은 당연하나 생명을 잡는 취미를 가지고 고기를 잡는 잔인성에서는 고기를 잡으면 안 된다.
제사장은 하루에 짐승을 몇 마리씩 잡지만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으로 잡았지 잔인성이나 무심히 잡았다고 하면 전부 금하신 것이다. 잔인성을 가지면 안 된다
20-21절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가나안으로 인도할 것이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니 가만 두지 않겠다고 말씀했다.
22절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내 원수 대적은 하나님의 원수 대적이 되고 나는 하나님편이 되고 상대방의 하나님이 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복 받을 마음이다.
23절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에 원수가 멸해진다
24절에 이방 사람이 섬기는 것을 섬길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사람을 섬기고 돈을 섬기지마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사람이나 돈을 섬기는 것이 되는 일치점이 되어야 바로 섬기는 것이다
27절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사자를 미리 보내서 대적들을 떨게 하고 또 달아나게 하신다.
28절에 곤충까지 비, 바람 전부 사용하여 원수를 쫓아내신다
29절에 하나님은 이렇게 알뜰하고 다정하시고 세밀하신 분이다
30-32절에 신자는 불신자와 동업하지 말고 화를 받을 자와 동업하지 말아야 한다
33절에 불신자에게 따라가서 사귀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친할 것이나 듣지 아니할 때에는 발의 먼지까지 털어 버리고 나오라고 말씀했다
제목: 모세가 시내산에 다시 올라감
본문: 출24:1-18
요절: 출24:18
1-2절에 하나님의 계명은 19장에 보면 시내산에 올라가서 받았고 여기서는 성막 설계를 받으러 다시 시내산에 올라갔다
여기에 보면 모세는 상봉 장로 70인은 중간 백성은 산밑에 있게 했다 하나님의 정치가 여기에 나타나 있다
모세, 후계자 여호수아, 70인 장로, 백성 이러한 조직과 질서가 있다
하나님의 수가 70인 장로, 칠칠절, 7년 안식년 이런 것을 보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지킬 율법을 주실려고 백성들을 이렇게 부르셨는데
율법은 어떻게 성막을 지어서 성막 생활을 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이것을 모세에게 주어서 이대로 하라고 말씀했고 이런 것을 율법서에 기록하여 백성에게 주었다
이렇게 하라고 하신 것도 율법이요 이것을 기록해 주신 것도 율법서다
아무 준비 없이 받는 말씀이 있고 명하신 대로 준비하여 받는 율법서도 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하실 때에 그대로 하면 또 이렇게 하라는 말씀을 주신다
모세를 통하여 준 말씀을 질서 정연하게 준행할 때에 다시 그들에게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시키신 대로 모세는 상봉에 70인 장로는 중간에 백성들은 산밑에 질서 정연하게 있을 때에 하나님이 계명을 주셨다
그렇지 아니하면 주시지 아니했다
오늘도 그렇게 해야 한다
가정 교회에도 단체 교회에도 이렇게 해야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질서가 정연하고 정리 정돈된 곳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이니 질서가 있어야 한다
무질서하고 범벅이 된 곳에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지 아니하신다
은혜를 주실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70인을 택하신 것은 인간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인간만으로 또는 하나님만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 인간 자기가 아무리 할려고 해도 안 된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미비하고 미숙해도 하나님이 선택하심으로 책임지시고 그 본인이 충성한다면 자기에게 복이요, 화 받을 일은 없다
하나님에게 선택을 받아 직분을 맡은 자가 인본으로 한다면 자기에게 복 될 것이 없다
모든 사람이 인정해도 질서를 깨트리면 화다
하나님에게 선택을 받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스스로 된 줄 알면 이것은 망령이다
직분에 대하여 언제나 하나님과 관련하여 취급해야 한다
하나님이 성결의 계급을 주시고 구별했으나 여기서 질서와 조직이 정돈되어야 한다
3절에 이렇게 언약을 맺었다
강제로 하심이 아니고 전부 언약으로 맺었다
아담이 하나님과의 계약을 맺음은 전 인류의 대표로 맺었다
언약을 한 후에 처리했다 언약이 없이는 처리함이 없다
약속 안에 있는 것을 어기면 전부 처벌받아야 한다
4절에 율법을 받은 후 언약하고 다음 할 일은 제사를 드렸다
질서 정연히 한 후에 번제를 드리고 그 다음에 화목제를 드리고 그 다음에 양을 잡아 그 피를 순종하겠다고 하는 백성에게 뿌렸다
양 피는 예수그리스도를 모형 한다
제단과 백성에게 피를 뿌림은 이 계약에 동참하면 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입음을 표시한 것이다
거룩하게 구별하여 속했다고 말씀했다 (고전1:30, 엡1:7, 골1:14)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에 또 다시 율례를 받고 구름 속에 들어가 40일을 지내며 받았다.
십계명을 받아 한 행사는 질서를 지켰고 준행 하기로 약속했고 번제를 드렸고 화목제를 드렸고
그 다음 하나님이 불러 올리신 후에 율법을 주사 성막을 만들었다
(성막은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은총이다)
모세의 성막 지음은 이스라엘 전체의 성막인데 그 때는 하나다
이 성막을 짓는데 밑천 든 것은 질서, 언약, 번제 (뼈와 가죽 전부 태워 드리는 것)
화목제 (일부분은 하나님께 드리고 일부분은 자기와 사이가 제일 나쁜 원수와 같이 먹는 것)
그 다음에 하나님이 모세와 여호수아를 불러서 성막의 설계를 받을 수 있는 40일을 거룩하게 변화시켜 성막을 지을 수 있는 설계를 주셨다.
모세가 산 위에 올라가지 아니해도 70사람의 장로가 더 올라가지 않고 내려오지도 않고 오직 자기 질서를 지켜 하나님이 명하시면 무엇이든지 순종할 것을 언약하고 번제로서 전부 바쳐 원수까지 화평하여 순종할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언약을 주신다
이 성막 설계는 산밑에 있는 백성이나 중간에 있는 70인 장로들도 받아 올 수 있다.
질서, 언약, 번제, 화목제가 있으면 받는다. 지금도 같다 구약이 아니면 이것을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백성보다 70인 장로가 좀 더 올라갔고 모세와 여호수아는 더 올라갔다 이것이 성결의 조직이요 정치의 권위요 본분의 위치다.
그런고로 먼저 질서 정연하고 하나님이 어떤 명령을 해도 순종하기로 약속하고 번제 드리고 화목제 드린 후에는 하나님의 비밀을 받을 수, 알 수 있도록 40일을 지내며 자기 양심을 깨끗케 했다.
불꽃은 성신의 감화요 구름은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의 보호다
그런고로 다른 마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보호하여 성령의 충만으로 하나님이 성막 설계를 주셨다.
이 운동은 첫째 하나님 운동이요 둘째 모세 운동이요 셋째 장로 운동이요 넷째 백성 운동이다.
만일 잘못 되었으면 첫째 하나님이 책임이요 그 다음은 모세요 그 다음은 장로 그 다음은 백성들이다.
그런고로 하나 하나가 전부 질서와 정돈이 잘 되어 서로 책임을 져야 한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단체에서도 교회에도 질서가 있다 이 질서가 흩어지면 깨어진다.
유년 주일학교도 인도 받은 학생이 인도한 학생에게 학생은 선생에게 선생은 부장에게 부장은 교장에게 순종해야 한다)
질서를 정연하게 한 후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십시오 무엇이든지 순종하겠습니다]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에 기다리면 하나님은 그 다음에 계명을 주신다 (화목제는 주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셨나? 하는 이것을 기억하면서 화목하는 것이다)
하나로 한 덩어리가 되어야 은혜를 받는다 이것이 중요한 점이다.
제목: 성막
본문: 출25:1-9
요절: 출25:2
(1) 예물은 상대방을 대접하는 성격인데 장사 속으로 갚는 것이나 도와주는 것이 아니고 받은 은혜에 대하여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는 사례의 성격으로 드리는 것인데 하나님께 드릴 때에는 이런 예물적 성격으로 드려야 한다
받은 바 은혜를 연구함으로 감사가 나오고 감사하는 표로 드리고 드린 당신의 것 가지고 자기 것 만들 것이다
(2) 성전은 몸 전부가 성전이요, 기구다
나의 몸, 행동 전부가 하나님의 성전이니 이것 전부를 하나님께 예물로 드린 후 하나님의 것 가지고 나의 이것저것을 만들 것이다
예를 들면 결심도 나의 것으로 만들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예물로 드린 후 나의 것으로 만들 것이요 사은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드릴 것이요
감사해서 드리는 이것은 정서면이요, 율법면으로는 이미 구속을 인하여 당신의 것이요 정서적으로 감사해서 드리는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롬 12: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 고 말씀했다
예법은 감사해서 사은으로 드리고 법적인 구속으로 당신의 것인데 자원해서 드릴 때에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강제로 바치게 함은 무례와 무성의를 꺾고 하나님의 법칙을 가르쳐 주어 하나님의 도에 거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자원적으로, 능동적으로, 사은으로 해야 한다
(3) 이스라엘 백성에게 받은 예물은 어떤 것인가?
①금이다
금은 영원 불변성을 말한다
육체 이스라엘은 금을 바쳤으나 우리는 정금을 바쳐야 한다
이래도 저래도 변하지 않는 마음을 바쳐야 한다
말에는 책임을 진다
변동되고 책임 없는 사람은 일을 할 때에 주의하지 않고 신중을 기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변동할 일을 많이 하게 된다
변동 없는 일을 할려고 하면 심히 어렵다
그러나 심각한 연구와 신중한 계획과 행동이 나오게 되므로 먼저 지혜 있는 사람, 후회 없는 사람이 되어지니 일이 쉽게 풀리므로 모든 사람이 인정하게 된다
사람은 외유 내강해야 한다. 구원의 뿌리가 뽑혀 피동 되어서는 안 된다
외부는 둥글고 부드러우나 내부의 구원의 줏대는 변치 아니해야 한다
아무리 웃어도, 아무리 슬퍼도 이것이 속에 있는 구원을 침범하지 못하고 아무리 큰 유익이 오고, 큰 손해가 와도 변치 않는 이것이 인격자요.
바다 위에는 파도가 일어나도 속에는 잔잔한 것 같은 이런 인격자가 되어야 한다.
②銀이다
銀은 성결, 깨끗을 상징한다
마음, 정성, 봉사를 깨끗이 깨끗이 해야 한다
하나님께 연보를 해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드리고 다른 생각이나 양심이 없이 드려야 한다
사교성으로 드리는 것은 뇌물이요, 깨끗한 것은 되지 못한다
직분 결백. 신용관계 결백. 교제 사교의 결백. 인격의 결백. 물질의 결백. 이것을 가져야 한다
결백은 자기의 힘이 된다
③놋이다
놋은 연단 받는 것이다
불로 연단하면 단단해지고 닦으면 광채가 잘 난다
모든 일에 연단으로 바쳐야 한다
무엇이라도 생각하고 생각하여 심각하게 할 것이다 한번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않고 또 일어서고 또 일어서고 하여 이루어진 이것을 하나님은 좋아하신다
가다가 오다가 이루어지는 이런 일을 하나님은 원치 아니하신다
쉽게 하는 것보다 어려움 가운데에서 하는 여기에 만족이 더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연단을 이런 것을 원하신다
계1:15에는 "불로 연단한 주석 같다"고 했다
세상에 있는 모든 파란을 겪어 "이제는 나 같은 죄인이 없습니다" 하는 이런 상한 심령을 하나님은 원하신다
참 괴수 죄인임을 아는 그 마음을 하나님은 원하신다.
④청색. 생명성을 말한다
팔팔 산 것. 생명적인 것. 삶에 속한 것. 모든 것이 겸하여 있는 것이다.
행동도, 말도, 지혜도, 사랑도 산 것이라야 한다.
우리의 생명은 진리와 성령이 역사 하는 가운데에 피동 되는 것이니, 모든 것이 진리와 영감적이라야 한다
⑤자색. 영광스러운 것을 가르친다
모든 사람 앞에 수치스럽지 아니한 것.
⑥홍색. 피가 다 빠지면 희다
젊은이는 붉다
이것은 강건을 말한다
젊은 청춘의 붉은 입술 같은 강건을 말한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강건해야 한다
아4장에 8가지 선덕 중에 "입술은 홍색실 같고" 무엇이든지 시키면 힘있게 잘 감당한다
그러므로 건강을 바치는 것을 말한다 일, 생각, 마음의 젊음을 바쳐야 한다.
⑦가는 베실. 공들여 짠 베
자기의 목표, 계획, 생활 법칙을 공들여 짜서 일생을 이대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언제든지 규칙적이고, 진실 되고, 조직적이고, 세밀한 생애를 사는 것 이것을 하나님이 받으신다
제목---성막 짓는 법
본문---출26:1-14
요절---출26:1
[1] 앙장은 성막 옆을 두르는 포장이다.
이 성막 옆을 두르는 포장이다. 모든 척수가 하나님의 설계대로 맞추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이루어 갈 성화 구원을 상징한다.
인격 성화에 있어서 하나님이 각인에게 지시하신 그대로의 생활과 인격이라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며 하나님이 지시하는 대로해야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만들어질 수가 있다.
성막은 하나님이 계시고, 영광 받고, 축복 받는 것인데 척수가 틀리면 헛일이니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대로 순종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장관 자리만 찾고 어떤 사람은 낙망적인 신비주의 자리만 찾는데 이것도 욕심이다.
오직 자기의 현재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보면 감옥에도 가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가 보면 가난하게도 되고 부자도 되기도 한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해서 꼭 부자가 된다. 거지가 된다고 판정하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아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조절하신다.
내가 계명을 지키면 미국에 갈지 공산주의에게 잡혀갈지 죽음의 길에 갈지 모른다.
우리는 자기의 처지에서 하나님의 법도대로만 행할 것뿐이지 자기가 주동이 되고 자기 스스로의 소원이나 계획 같은 것은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설계와 척수가 하나님의 지시하심대로 라야 한다. 이런 역경에서는 이런 사람으로 이런 속성으로 저런 역경에서는 저런 사람으로 저런 속성으로 자라가도록
하나님이 우리 구원을 이루는데 순서를 정해 놓으셔서 우리로 하나님이 인도대로만 따라가면 만나도록 하신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인도하심으로만 가다가 보면 자기의 신앙 양심대로만 지켜 행하다가 보면 자기에게 부딪치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척수을 주신 것이니 그대로만 건설할 것뿐이지 자기가 무엇을 해 보고자 하면 안 된다.
[2] 성막을 짜는데는
청색실, 자색실,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는데 그룹을 공교히 수를 놓아서 만들라고 말씀했다.
청색을 예언서에는 전부 생명을 말한다. 전부가 생명적 이라야 한다.
자색은 권위를 말하는데 권위적이라야 한다.
홍색은 희생을 말한다. 희생적이라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런 처지로 저런 처지로 인도하시는데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척수다.
이 인도대로 가면 하나님의 설계와 척수대로 아름다운 성막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척수하신 대로 장막의 베를 짜는데 청색, 자색, 홍색으로 짠다. 또 여기에 천사의 그룹을 수놓아 짠다.
우리는 이런 처지, 저런 처지에서 하나님의 인도대로 생활하되 생명적이요, 권위적이요, 희생적이요, 하나님의 심부름적으로 해야 한다.
우리에게 만난 이런 저런 입장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척수인데 이대로 만들어야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이 거처하시는 것이니
이것을 짜는 데는 우리는 언제나 생명적이라야 한다.
진리와 영감 역사에 피동 되는 것이 생명적이요 신적 요소요 진리와 영감이 역사하므로 움직이는 것이요 이것이 곧 교회다.
<1> 날마다의 생활이 진리와 영감에 피동적이요
<2>날마다의 생활이 왕권적, 주권적이라 아무도 변개치 못하는 것이라야 한다.
<3>모두가 희생적이라야 한다.
교회의 희생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사랑으로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해서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랑의 성격이라야 한다.
<4> 그룹을 넣어서 짜야 하니 하나님의 심부름적 이라야 한다.
<5> 가늘게 꼰 베실이라야 한다. 모든 면에 세심이 해서 성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
에덴 동산-성막-성전-교회-그리스도인의 개인으로 나타났다.
신약시대 교회를 전부 성막에 붙일 수 있다. 곧 개인 신앙 인격의 상징이요
신약의 모든 성격이 나타나는데 진리가 곧 사랑이요, 거룩이요, 속에는 전부가 단일이요, 진실이요, 거룩이요, 의요, 선이요 사랑이다.
그런고로 신약시대의 성막은 우리의 신앙 인격을 표현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설계와 척수에 맞아야 한다.
여기에 맞추는 데에는 생명적이요, 권위적이요, 희생적이요 심부름적 이라야 한다.
[3] 성막 베를 서로 연결하는 고를 만드는데 청색으로 하라고 했다. 매 폭을 연결시키는 곳에는 청색이라야 한다.
요동성이 많은 곳에는 청색으로 했으니 곧 진리와 영감적 이라야 한다.
또 금으로 갈고리를 만들었다. 영원히 불변적이요 후회 없는 것이라야 한다.
착한 양심대로 나아가면 엎어져도 후회가 없다. 마음이 든든하다.
신앙 양심을 쓰지 아니할 때에는 공포와 비겁의 사람이 되고 만다.
또 놋으로 갈고리를 만들어 고를 꿰어 막을 연결하게 했다. 놋은 연단을 말한다.
경험하고, 체험하여, 자꾸 연단 하여 과거의 신앙 경험을 생각하고 생각하여 심각한 재고, 재고로서 진리와 영감적 연결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언제든지 심각한 연구에서 변개할 것이 없고 후회할 것이 없는 것으로 연결해야 한다.
[4] 14절에 붉은 물 드린 수양의 가죽으로 성막 덮개를 했다. 이것은 예수의 대속을 말한다.
전부가 예수의 대속 공로의 혜택 밑에 있어야 한다.
생명, 권위, 진리와 영감, 하나님 심부름꾼이 되는 것도 떡상도 등대 이런 모든 것이 예수의 공로의 혜택이요 공로의 혜택 아래서 된다.
제목---널판 휘장 제단 등불
본문---출26:15-27:21
요절---출27;8
[1]장막의 널판, 휘장, 제단, 등불을 만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시하신 법칙대로 한 것이다. 이 설계는 하나님이 하신 것이니 세밀하고, 온전하고, 구별되고, 구비한 것이다. 아주 든든하고, 편리한 것이다.
사람의 생각으로 되어진 것은 하나도 없고 순전히 하나님의 설계하시고 명령하신 대로 되었다.
널판에는 받침 위에 널판을 세웠다.
이 널판은 우리의 신앙 행위라고 할 수가 있고 신앙 인격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여기는 지성소를 만드는 것인데 이 지성소 속에 법궤를 모시게 했으니 우리는 변치 아니해야 한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은 청색, 자색, 홍색실로 만드는데 그룹을 수놓아 만들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다.
마음과 몸이 성화 되어지는 모든 것의 기초는 결백이다.
결백 위에 건설되어야지 결백이 없으면 안 된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귀한 성질을 가지고 행동을 하지마는 그속의 바탕이 성결이 아니면 하나님께 관계한 것은 용납 할 수가 없다.
은은 성결이니 성결을 기초로 해야 한다.
[2]또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설계대로 해야 한다.
곧 오늘은 하나님의 예정이요. 우리 각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요. 성령이 신앙 양심을 통하여 가르쳐 주심이다.
말씀은 진리이니 이는 원리 원칙만 기록한 것이요.
이 원칙을 알아 진리 지식을 써서 신앙 양심을 통하여 성령이 가르쳐 주시는 이것이 지성소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할 때에 하나님이 축복했다. [시내산에서 보여준 그대로 하라]고 말씀했다.
이 시내산은 우리로 말하면 신앙 양심이요. 여기서 성령의 감화를 받은 대로 해야 한다. 이것이 성령이 우리의 갈 길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요 자기에게 대한 구원도리는 없다.
자기에게 기쁨이 된다고 안심이 된다고 마음이 쓰여진다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된 것이다.
그런고로 이 말씀을 이리저리 생각하여 참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착한 양심(시내산 꼭대기)이것을 냉정히 쓰는 여기에서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가 있다.
또 자기의 신앙 양심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도 그대로 헛일이니 시키신 그대로 해야 하고 자기의 조작이 들면 헛일이다.
이 길이 자기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요 자기 예정의 길이다.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지 않는 것은 헛일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 때에 나의 앞길에 우리가 구할 것은 평안만 구하는 것이 아니요 평안도 환난도 아닌 수수하게 지내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설계해 놓은 길이 있으니 이 길을 찾도록 힘쓰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고난의 종교라고 해서 죽음의 길이면 다 좋은 것이라고 하겠으나 그렇지 않다. 고난도 죽음도 내게 대한 주님의 뜻이 아니면 나는 이 길을 갈 수가 없다.
주님의 뜻이 아닌 고난이나 죽음은 받을 수가 없다.
평안이요 이불 위에 누워 자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는 이 길을 택해야 한다. 자기 갈길이 아닌데 공연히 그 길을 갔다고 하면 이것은 죄다.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고난도 평안도 전부 죄다.
그런고로 우리는 생사고락 간에 무엇이든지 내 행복의 길을 찾는 것은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요
그리스도인은 무엇이든지 어려움을 당하고 고행을 하면 좋은 줄 아는데 이것도 내게 대한 주의 뜻이 아니면 죄다.
오직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행하는 것이 우리의 찾아 갈 길이다.
우리의 모든 생활은 성결 위에 놓여야 하니
성결은 하나님의 뜻이 물론 선하나 내게 와서 선해지는 것은 내가 실행하는 실행이라야 선해진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 이것이 선이요
사람 보기에 선이 아니고 하나님 보기에 선이라야 하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한 실천 행위(은 받침) 위에 지성소, 성소가 되어진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하나님의 성전, 지성소가 되는 것은 내 실행으로 되어지지 그렇지 못하면 될 수가 없다.
은 받침은 성결이니 곧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행동이니 이 행동의 실천 위에 모든 것이 얹혀진다.
그런고로 그리스도교는 실천의 종교다 행함의 종교다.
* 금으로 싸고 테를 두르고 테두리를 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행위가 불변적이라야 함을 말씀한다.
* 놋으로 하라. 여러 번 연단 받는 것으로 하나. 아무리 연단을 받아도 타질 것이나, 감소될 것이 없는 참 연단 받은 생활이라야 한다.
* 청색이라야 한다. 청색의 생명을 말한다. 생명은 진리와 영감에게 피동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진리와 영감의 능력이 움직여지니 이 힘에 피동 되는 이것이 생명이요 이것이 곧 산 행동이요
그런고로 모든 것이 진리와 영감대로 움직여야 한다.
* 자색이라야 한다. 자색은 능력을 말한다. 능력은 지리와 영감으로 움직이는 것이니 곧 하나님의 능력 권위로 해야 한다.
* 홍색이라야 한다. 홍색은 희생을 말한다. 희생은 충성이요 사랑이요 곧 하나님과 진리로 해야 하니 천국은 전부 남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마20:26-28)
* 제단뿔은 속죄하는데 쓰이는 것이데 무슨 죄이든지 뿔을 잡으면 속죄요 죄인이 제단 뿔을 잡으면 자기 죄를 사함 받는다.
* 제단 앞에 등불을 언제나 켜두고 있었다. 믿음으로 행치 아니하는 것은 전부 죄라는 말씀과 같다. 믿음은 자기의 마음과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과 몸의 움직임이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이 순종을 일시적으로 할 것이 아니고 계속해야 한다.
그리스도교에서 만들어진 인물은 세밀하고 구비하고 아름답고 튼튼하고 편리해야 한다.
세상은 전부 기형적이다. 변동 없는 꾸준한 사람에게는 교만과 고집투성이요, 강하고 굳센 사람에게는 세밀한 것이 없다.
우리의 인격은 세밀하고, 구비하고, 편리하고, 튼튼하고, 강인하여 어디서나 쓸 수 있는 것이라야 하니 그리스도교의 인물은 이런 인물이다.
지배도 잘하고, 지배받기도 잘하고, 주기도 잘하고, 빼앗기도 잘하는 그런 인물이다.
교만하면 꺾이기 쉽고, 비굴하면 품위가 없다.
그런고로 교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아니해야 하고 사람을 대할 때는 진실성이 있어야 하고 모가 나지 아니하고 원만해야 할 것이요.
그러면서도 용기도 있어야 하고 과단성도 있어야 한다.
덕성과 인품을 갖추어야 하고 용기와 과단성이 있어야 사람을 거느릴 수가 있다.
천리준마를 구하기 위해서는 죽은 말뼈도 천금을 주고 사들여야 한다고 했다.
원대한 야망 그것을 과감하게 실천하는 용기 만조백관을 쥐고 흔드는 위엄
무엇이든지 하면 된다는 신념이 있어도 덕과 인의 성품이 없을 때에 민심의 물결을 타지 못하고
그것을 거꾸로 흐르도록 몰아치거나 억지를 부리면 치자(통치자)는 물결을 잃게 되고 익사하게 된다.
그럴 때에는 당장에 민심은 잃는 원인을 캐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잘못이면 당장 고쳐야 옳고 마땅히 민심의 물결에 옷을 벗고 함께 헤엄을 쳐야 한다.
제목---제사장의 옷
본문---출28:1-5
요절---출28:4
[1]제사장 아론의 옷을 만들 때 하나님이 모세를 시켜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짓게 했다. 이 제사장 옷이라고 하면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의 소행으로 볼 수가 있으니 제사장의 예복은 믿는 사람의 행위로 볼 수가 있다. 이 옷을 만들 때에 모세에게 시켰으니 모세는 예수의 그림자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시키고 모세는 하나님의 지혜를 충만히 받은 자를 시키어 옷을 만들었으니
이와 같이 제사장은 교회로는 목사일 것이요.
가정으로는 잘 믿는 그 사람일 것이요. 신앙 동지로서는 신앙 선배가 제사장이다.
옷을 제사장이 만들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가 충만한 자가 만들었으니 제사장의 옷을 만드는 사람은 아론 수하의 사람이요. 모세가 하나님의 시킴을 받아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이니
오늘로 말하면 지도 받는 사람이 지도자의 권위를 세우고 지도자의 행위를 협력하여 바로 세워 주어야 한다.
의복은 권위와 행위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택한 자이지만은 의복의 장식으로 알 수가 있다.
다시 말하면 내부는 하나님이 택해야 하고 외부는 의복의 장식으로 제사장을 알게 된다.
그런고로 신앙 선배나 지도자의 권위를 지도 받는 사람이 세워야 한다.
이스라엘이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에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승리했고 모세가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패전했다.
이 때에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어깨에 매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이겼다.
이와 같이 지도자의 권위와 처사를 끌어내리려는 방식으로 하면 안되고 밑에 사람이 협력하여 지도자의 행위와 권위가 서도록 해야 한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신앙 지도자가 비뚤어지면 전부가 비뚤어진다.
신앙 지도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지도자의 하는 일에 충고도 해야 한다.
충신이 없는 곳에 성군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충신을 많이 가지면 성군이 되는 것처럼 밑의 사람의 위의 사람의 권위를 세우고 행위를 바로 하고 처사를 바로 하도록 협조해야 한다.
지도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자기의 지도자가 실수할까 하여 살펴 충고도 해야 한다.
밑의 사람이 지도자를 높임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 지도자를 권위 있게 보도록 협조해야 한다.
함이 노아의 옷 벗고 자는 것을 보고 이것을 셈과 야벳에게 고했을 때에 이 두 사람은 노아의 옷 벗은 것을 보지 않고 뒤로 걸어서 들어가 옷을 덮어 주고 나왔다.
그래서 그들은 축복을 받았다.
함은 지도자의 권위를 떨어뜨렸으므로 저주를 받았다.
형과 아우는 지도자의 잘못을 들은 것이 안 들은 것보다 못해서 이것을 고치려고 애를 쓰고 안 잘못된 단점을 보지 아니할려고 애를 쓴 것이 복 받을 행위다
모세의 누이동생 미리암이 모세의 권위를 떨어뜨리므로 즉시 문둥병이 들었다. 성 밖에서 일주일동안 회개한 후에 모세가 명하여 들어오게 하였다.
하나님의 하실 일을 '미리암'이 가로막아 다른 사람의 영혼 지도에 구원 지도에 방해하므로 저주했다.
가정이나 구역이나 교회의 신앙지도자의 권위와 행위와 처사가 틀렸으면 바로 고치도록 충고도 하고 틀리지 안도록 바로 하도록 협조하는 것이 우리 할 일이다.
지도자의 망함이 자기의 망함인 줄 알고
오직 지도자의 권위를 높이고 세우는 것인 줄 알아 충성하는 충신이 많아야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제사장의 옷은 곧 제사장의 처사 행위 권위를 말하는데 이 옷은 제사장이 만들지 않고 밑의 사람이 만들었다.
# 어떤 집사가 자기 신앙 지도자가 철없이 날뛰는 것을 보고 지도자의 흠 점을 교인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삼가 조심하여 가리우는데 힘썼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70세의 고령 백작이 23세의 어린 교역자를 모시고 심방할 때에 가방을 들고 따라다녔으니 이것이 제사장의 옷을 해 입히는 것이다.
[2] 제사장이 입는 옷은 속옷이 있고, 그 위에 입는 겉옷이 있고, 그 위에 입는 에봇이 있고, 또 관을 쓰고 띠를 띠고 흉배를 붙혔다.
제사장이 옷을 겹겹이 입고 있음과 같이 우리의 인격 마음 행동이 다 같아야 되고 외식이 없고 전부 권위적이요, 생명적이요, 충성적이요, 불변적이요
이 권위를 제사장이 입고 있어야 하고 만들어 입히기는 밑의 사람들이다.
이 옷도 하나님의 지시 대로인데 이 옷은 편리함보다 거창하여 활동하기에 힘들게 만든 옷이다.
예복이기 때문에 경건성이 있게 만든 옷이다.
이것은 지도자의 처리나 행위나 권위는 언제든지 경망하면 안되고 좀 무거워야 하며
어찌보면 아이같이 순하고 어찌보면 두렵고 일을 처리함이 묵직하고 든든하며 믿음직스러워야 한다.
제사장 옷이 거추장스러워 활동하기 불편하다.
지도자가 되어 갈수록 모가 없는 유강하여 어찌보면 아이같이 순진하고 어찌보면 두렵고, 폭이 넓고, 계획이 넓어 둥글둥글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삶이 되어야 한다.
자기 지도자가 실수 없이 나가야 자기도 실수 없이 나갈 수가 있다.
그런고로 지도자의 권위를 밑에 있는 사람들이 세워주고 높혀 주어야 한다.
지도자의 권위를 깍아 내리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
위의 사람에게 간사하지 말 것이요
위의 사람을 헐어 떨어뜨리고 자기가 올라서려고 하는 것은 못쓸 사람이요, 행위다.
[3] 흉패 속에는 우림과 둠밈이 있어 점을 치는 것이다. 이것도 밑의 사람이 만들었다.
제사장은 밑에 사람에게 대하여 관심을 가져 항상 품에 품고 있어야 하고 밑의 사람이 제사장으로 하여금 그런 관심을 가지게 만들어야 한다.
구역장이나 교역자는 맡은 식구가 자기 마음 속에 항상 새겨져 있어야 한다.
일꾼은 큰 일을 처리하는 것이 일꾼이 아니고, 일거리가 없는 곳에 사는 사람이 큰 일꾼이다.
일꾼이 가면 일이 없어진다. 일꾼 같잖은 사람이 가면 일거리가 많다.
사무엘이 사사가 된 후에는 너무 일거리가 없었다.
그런고로 언제나 그리스도교는 오늘 일과에 배당된 그 일을 완료한다.
오늘 일과 속에는 10년 후 20년 후 사후의 모든 것이 다 들었으니 사전 준비로 해야 한다. 이것이 슬기로운 처녀다.
사전에 처리해야지 사건이 터진 후에 처리할려고 하면 일거리가 많아 처리할 수가 없다.
늘 기도로 성경대로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요
명상을 많이 한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봉사를 많이 하고 일을 많이 했으니
모든 것을 심각히 생각하고 생각하여 일을 처리하므로 실수가 없다.
제사장 옷을 입고는 함부로 뛸 수가 없다.
모든 행동 일을 심각히 생가해서 해야 한다.
사람의 행위는 경망치 않고 모든 권위와 행위가 다 덕스럽고 유유해야 한다. 유강을 겸해야 한다. 어떤 삶인지 몰라야 한다.
어찌보면 무겁고, 어찌보면 가볍고, 어찌보면 모가 있고, 어찌보면 모가 없고, 천태만상의 일을 적당히 처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편벽되고 바로 처리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덕망을 가져야 한다.
제목---제사장의 겉옷
본문---출28:6-30
요절---출28:30
[1]에봇은 제사장의 겉옷으로 청색, 자색, 홍색,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에봇에 견장을 붙이고 호마노에 12지파 이름을 새겨 붙이고 띠도 에봇과 같은 실로 짜서 에봇에 붙여 가지고 제사장이 입었다.
제사장이 입고 있는 옷은 자기의 나타내는 그 행위라고 볼 수가 있고 인격이라고도 할 수가 있으니 행위와 인격이 다 진리와 영감적이요, 사랑적이요, 봉사적이요, 희생적이요, 세밀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사슬은 정금실로 만들어 달았다.
띠는 힘이니 힘은 청색 자색 홍색실 외에 금실을 넣어서 짜고 띠의 끝에는 사슬을 만들어 달았다.
우리의 힘은 생명적, 하나님의 권능적, 봉사적, 충성적의 힘이라야 하고 또 변치 않는 힘 곧 하나님에게 피동 되는 믿음이라야 한다.
계속의 인내요 이 계속을 못하도록 오는 것이 시험이다.
인내 곧 계속하는 이것을 힘으로 삼아야 한다.
어깨에 12지파 이름을 새긴 호마노를 달았으니 하나님께서 지운 것이요 지우는 사람과 지는 사람, 이것을 알라.
[2] 15절에 흉패는 가슴에 붙은 것이다.
흉패는 금실, 청색, 자색, 홍색실로 짜는 것이니 우리의 이성(가슴)은 불변적, 생명적, 능력적, 사랑적,(희생, 봉사, 충성) 이라야 한다.
흉배를 금실 청색 자색 홍색실로 짜서 만들되 16절에, 하나님의 법도대로 만들어야 한다.
내 마음도 버리고 예수의 마음으로 전부 화해져야 한다.
또 17절에, 4줄로 보석을 물리고....
보석은 불타지도 않고 변치 않는 보배로운 것이다.
사랑, 생명, 능력으로 된 것인데 이것이 광채로 빛나는 마음씨로서 우리는 이 마음씨를 가져야 한다.
보석을 4줄로 달아놓으니 환하다. 이는 세상의 덕이니 감화 준 것을 말한다.
첫째 줄은 황옥, 홍보석, 녹주옥이요
둘재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인대 금테를 물린 것이다.
이런 마음속에 우림과 둠밈이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보석을 가슴에 달았는데 이것은 남에게 감화를 줄 수 있는 이성 (생각, 뜻)이다.
[3] 21절에 12지파에게 비추는 12지파의 빛이 되어야 한다.
12지파가 제사장의 빛이요, 제사장이 12지파의 빛이다.
12지파가 제사장에게 좋은 감화를 주고, 제사장이 23지파에게 좋은 감화를 주어야 한다. 이런 후에는 요동치 말아야 한다.
[4] 22-30절에 우림과 둠밈이 무슨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약속은 선포하시고 그렇게 했으므로 그대로 이루었다.
에봇속에 우림과 둠밈을 넣었는데 이것은 우리의 착한 양심이다.
이 깨끗한 신앙 양심 속에서 이것이 옳은가, 저것이 옳은가 찾을 때에는 하나님이 찾겠끔 해 주셨으므로 옳고 그릇됨을 찾을 수가 있다.
우림과 둠밈이 무슨 힘이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계약을 성령이 선포하셨으므로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알게 하신 것이요.
우림과 둠밈은 인적요소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포하신 성령의 알게 하심으로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제목---제사장의 속옷과 판과 띠
본문---출28:31-43
요절---출28:41
[1] 31-35절에, 석류는 외부는 한 열매로 볼 모양이 없으나 내부는 수많은 알이 혈색으로 끼인 속에 열매가 가득차 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생활은 외부에 나타난 한 행위에, 나타난 한 덕행에 보이지 않는 계획이 주밀 해야 함을 보인다.
세밀한 계획으로 이루어진다.
바울은 어디 가든지 그의 행한 모든 행동이 뚜렷해야 한다.
[2] 36-39절에, 언제나 머리에는 성결을 기억하고 언제나 성결로 관을 써야 한다. 그래야 이스라엘 백성의 제사를 대신 드릴 수가 있다.
주님 앞으로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가 있다.
패를 다는 것은 관은 예관이므로 언제나 성결로 위관을 삼아야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가 있다.
[3] 40-43절에, 모세가 기름을 주어 제사장 위임을 시켰다.
지금도 우리는 예수께서 기름 부어 세운 그리스도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장립 시켰다.
신령적으로 제사장 선지자 왕의 장립을 받은 우리들이다.
속옷을 입어 하체를 가리우고 예복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했다. 하체가 보이면 죽는다. 가리워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걸음에서 하체가 보이면 죽임을 받을 만한 죄다.
하나님에게 나아가면서 예복 밖으로 나온 하체이니 우리의 행위를 믿음의 의로 가리우지 않고 의가 아닌 행위로 나타나면 죽임을 당한 때다.
하나님을 섬기고 위하는 운동을 죄 되는 방편을 써서 하면 크게 무서운 죄를 짓는 것이다.
죄를 지었으면 사유함을 받아야 한다(죄인 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죄악의 일로 하면 죽임을 당할 하나님의 노여움의 죄다.
하나님 앞에서 연보를 죄 되는 방편으로 하고 복음을 죄 되는 방편으로 하고 부흥을 죄 되는 방편으로 하면 하나님 앞에 죽임을 당할 노여움의 죄다.
죄 된 방편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성전을 짓기 위하여 불의한 행동을 하고 찬양하면서 죄 되는 방편을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죽임을 당할 진노다.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점점 벗고 의로 나아가는 것인데 하나님의 일을 속된 것으로 하면 죽임을 당할 죄요 하나님의 일을 죄된 방편으로 하면 죽임을 당할 죄다.
그런고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죄를 점점 벗고 의로 나아가는 것인데 하나님의 일을 죄 된 방편으로 해도 하나님이 받으실 줄 아는 이 죄악을 버려야 한다.
제목---위임식과 제물
본문---출29:1-18
요절---출29:2
[1] 1-9절에, 제사장직을 위임시키는 위임식에 사용된 재물은 젊은 수소 하나, 흠 없는 수양 둘, 무교병, 무교 과자, 무교전병 (지진것)이다.
떡은 신약시대에는 몸을 상징
누룩은 모든 죄악의 요소, 서로 불목케 하는 것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사람과 사람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우리는 어떻게 바치든지 누룩이 없어야 한다.
이간시키고 불목 시키는 작은 말 한 마디로 인격 전부를 상하게 한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유익 되게 하고 그 사람을 돕기 위하여 말하는 것은 심히 어렵다.
사람에게 마귀가 따라다니기 때문에 한 사람이 잘못 왔다가 가면 마귀가 따라와서 공작을 일으켜 해를 반드시 주고 만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한 번 가면 큰 유익을 준다.
떡으로나 과자로나 전병으로 무엇으로 바치든지 불목이 없어야 한다.
누룩 없는 몸이 되어야 한 사건, 한 사건을 행할지라도 제사장 위임에 도움이 되지 그렇지 못하면 제사장직을 받는데 큰 손해를 준다.
시15:3절에 [혀로 참소 하는 것은] 혀로 발바닥 삼아 말로 말썽을 일으키는 것이요 누룩은 작은 말 한 마디로서 화친의 사이를 불목케 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도 누룩이 되기 쉽다.
사두개인의 누룩을 삼가라고 하신 말씀은 전부 사람을 상징한다. 불목을 일으키는 것은 누룩이다. 제사장 위임식에는 누룩 없는 것을 드렸고 또 소와 양을 잡아야 제사장이 된다.
[2] 10절에 송아지 머리에 안수함은 위임한다는 것이요 전가시킨다는 것이요 자기들의 모든 것을 송아지에게 전가시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룩해진다.
이는 예수를 모형함이다. 제사장은 예수이시오 제사장을 대리하여 위임받는 것은 모든 것을 예수께 위임시키고, 부담시켜 예수의 부담 공로 밑에서 이 직분을 행할 수 있음을 말한다.
안수했으니 송아지가 위임받아 이 송아지가 제사장의 직분을 다 하고 제사장 되기 전의 모든 과오를 송아지에게 책임 지우고 책임지므로 이 혜택을 힘입어 제사장직을 대행 할 수 있다.
모세는 예수의 상징이요 아론과 그 아들들도 예수의 상징이요 곧 우리들의 상징이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 됨같이 우리도 제사장이 된다. 그들은 그림자요 우리는 실상이요 구약 시대는 전부 소에게 위임하고 책임 전가하여 소가 책임지므로 제사장이 될 수 있었으니 소는 주님을 상징한다.
[3] 11-14절에, 송아지를 회막문 앞에서 잡아 피는 손가락으로 찍어 제단 뿔들에 바르고 남은 것은 전부 단 밑에 쏟고 내장과 내장에 덮인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고기와 가죽과 똥은 진 밖에서 불살랐다. 일부는 제단 위에서 일부는 진 밖에서 불살랐으니 이렇게 해야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한 부족함을 모두 속하는 속죄제이다. 이는 주님이 골고다에서 피흘려 죽으신 육체를 상징한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실 때에 위로 하나님께 바쳐진 것도 있고 아래로 땅에 쏟은 것도 있다.
제단 위에서 불사른 것처럼 주님의 마음, 정신, 모든 신령한 이성의 모든 것은 위로 하나님께 바친바 되고 진 밖에서 불사른 것처럼 주님의 몸과 피는 땅에 흘렸다.
다시 말하면 피를 흘리시고 살을 찢으신 것은 진 밖에서 불살라진 것으로 이는 우리의 대신으로 죽으셨고 이성과 영은 하나님께 바쳐져 일했다.
우리도 제사장직을 인계해야 하는데 아론같이 속죄제를 드림으로 거룩해져야 한다. 주님의 하나님의 어린 양이요
송아지에게 안수하고 거기에 전부를 전가시킴 같이 주님의 인성이 나를 대신한 그것을 내가 느끼고 대신함을 받은 그것만이 제사장이 될 수가 있다
송아지에게 안수하여 속죄제를 드린 후에 제사장 위임식을 받을 수 있었으니 이와 같이 우리도 속죄제를 통과한 후에야 제사장이 된다.
제사장 위임을 받는 것은 속죄제를 통과한 후에 제사장이 된다. 고기와 가죽과 똥을 진 밖에서 사름같이 주님의 몸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은 나를 대신하여 죽으심이니 주님이 나를 대신한 것을 인정하고 느껴진 자기는 주님의 것이 되었으니 이것이라야 제사장 위임이 된다.
송아지의 내장에 덮인 기름, 콩팥, 간 위에 있는 거풀을 제단 위에서 불사름같이 주님의 영과 이성을 하나님께 바쳐서 나를 대신하였으므로 공로 없는 내가 사죄와 칭의를 받았으니 주님이 제물 되심으로 새 것이 되어졌으니 이제 나는 주님의 것이 된 것을 느끼고 느낀 만큼 제사장이 된다.
수송아지는 주님의 상징이요 아론과 그 아들들은 우리의 상징이다.
주님이 나를 대신해서 일부는 하나님께 바치고 일부는 골고다에서 죽으셨으니 주님의 대신하심으로 제사장직을 위임받았으니 나는 위임받은 그 분의 것이다.
속죄제를 드린 후는 아론과 그 아들은 송아지의 것이 되고 송아지는 이들의 것을 위임받았다.
그런고로 주님이 위임시켰으니 주님이 내 대신 다했으므로 나는 주님 대신으로 행할 수 있는 지위를 가짐이 제사장 위임식이다.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제사장을 위임시킴에 있어서 자기의 죄와 허물을 송아지에게 위임시키니 이 송아지가 이들을 대신하여 만족하시기까지 다 태워 졌으니 이들을 위하여 제단 위에서 또 진밖에 불살라졌다.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제사장을 위임시킴에 있어서 자기의 죄와 허물을 송아지에게 위임시키니 이 송아지가 이들을 대신하여 만족하시기까지 다 태워졌으니 이들을 위하여 제단 위에서 또 진밖에 불살라졌다.
아론과 그 아들들을 대신하여 송아지가 불살라졌으니 송아지가 이들을 대신하여 이들의 직분으로 하나님 앞에 대리자가 되었다.
이와 같이 주님은 나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나는 주님의 대리자가 되었으니 이렇게 된 것만큼 제사장이 위임된 것이다.
우리가 제사장 되는 것은 내가 주님의 것으로 완전히 되어져야 한다.
나는 죽고 주님의 것으로 살게 된 것만 제사장이 될 수 있다.
위임받았으면 우리는 제사장 노릇을 할려면 주님 (송아지)같이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행할 제사장 노릇이니 우리 제사장의 할 일은 일부는 제단 위에 바쳐졌고 일부는 진 밖에 불살라졌다.
모세가 피를 제단 뿔에 발랐으니 어떤 죄든지 제단 뿔만 잡으면 깨끗해진다.
이와 같이 주님이 우리 모든 죄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으니 인간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하는 피다.
피는 생명이니 우리의 영과 이성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이다.
제사의 제물은 안수 받고 죽었으니 우리의 몸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어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말한다.
[4] 15-18절에, 번제는 하나도 버림이 없이 전부 제단 위에 불살라 드림이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것만이 아니라 도성인신하여 세상에 살아 계신 모든 것이 전부 번제로 드린 것이다.
수양이 세 사람을 대신하여 전부 불살라 드린 후에 제사장 위임을 받았다.
주님이 나를 위하여 도성인신 하시고 지상의 전 생애와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신 것,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해 하심인 줄 알고, 확실히 깨닫고 자기가 죽고 사는 것이 주님의 것인 줄 확실히 깨닫고 주님의 것이 된 것만큼 제사장 위임을 받을 수 있다
속죄제---하나님 앞에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책임지고 행하심이요
번제---속죄제 후, 모든 것을 전부 바치지는 것이다.
속죄제 후 사죄, 칭의 모든 것을 받은 후 하나님에게 영영히 바쳐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다. 되어 지는 것만큼 제사장 위임이 될 수 있다.
제목: 제사장 위임식
본문: 출29:19-25
요절: 21절
[19-25]이는 아론의 귀와 수족과 의복에 양의 피를 뿌려 거룩히 한 위임식임, 무교병을 구워 이것을 하나님앞에 드림, 구원도리 위임식이니 그리스도를 대신하는데는 그리스도를 대신 제사장을 인계하는 것.
모세를 대신하여 위임하는데 이를 받은 자는 양의 피로 옷에 뿌려 속하고 오른손에도 뿌려 속하는 이것이 위임식이 되는 것이요.
안수한다는 것은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이니 안수하여 양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양이 안수한 사람의 죄와 의에 대한 것을 책임지고 죽은 것이니 이것은 예수님을 그림자 함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죄에 대한 영원한 사죄와 의에 대한 영원한 지사충성 하심이요
이를 위하여 양에게 부담하여 잡은 피에 깨끗함을 씻어야 하니 씻는 것은 책임 전가하여 완전히 그 책임에 대하여 공로 입는 것을 말함이니 피는 안수 받아 대형 대행하사 저주와 사망 속에서 죽음을 통과하여 나온 생명의 공로요. 피는 안수 받아 죽었고 죽음 속에서 흐른 피니 사망을 이기고 나온 새 생명의 피요. 예수의 피는 대형대행의 피요. 사망을 이기고 나온 피. 옷에 귀에 수족에 피 뿌려 거룩하게 함은 예수의 대형대행의 사죄 칭의의 공로를 입고 영원한 새 생명으로 깨끗케 하는 것이요. 옷에 뿌림은 외부 나타나는 행위를 깨끗하게 하는 예식이요.
깨끗게 함은 하나님의 지공의 법 앞에서 사죄. 칭의 받았으니 온전한 귀요 하나님의 공의에 정죄할수 없는 귀요 새 생명 받은 새사람의 귀요.
이 귀가 되어야 그리스도의 제사장 위임받은 것처럼 그리스도를 계대할 수 있다. 위임식전에는 제사장 대리 못해 위임 후 할 수 있고 효험이 있었다.
실질적으로 이성과 몸은 그리스도의 사죄 칭의 대속 함을 받은 줄 알아 새사람의 귀. 수족. 행위. 심정과 인격을 가진 그것만이 제사장직을 위임할 수 있고 제사장의 효험을 발생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사죄. 칭의 받음으로 영은 중생 되었으니 이성과 몸이 법적 사죄. 칭의를 받았으니 영은 두고 이성과 몸이 사죄. 칭의 받는 것이 법적인가? 실직적인가?
영적으로는 제사장 위임식을 받아 제사장이 되었다. 이성과 몸이 제사장 위임을 누리려한다.
법적 사죄.칭의 받은 것이 되어져야 하고 인정받은 것과 실질적으로 이성이 감각하고 육이 사용 혜택 입는 둘이 있는데 우리의 할 노력은 육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는 이 일에 있어 법적, 실질적이 있으니 현재 우리가 입어야 할 것은 영은 법적. 실질적인 것이 있고 육도 법적. 실질적 다 입었다.
피는 몇 가지 소유했는가? 사죄. 칭의. 새생명.
예수님의 피는 3가지를 가지고 있으니 죽음에서 나온 생명을 상징한다.
예수님의 피로 사함을 받았다고 함은 예수님의 피는 3가지 역사를 이루신 한 표적이요
피를 흘리신 이면에 이루신 일이 있으니 대형. 대행과 죽음으로 사망을 완전히 이기셨으니 이 세 가지를 이루신 것이 예수의 피요
모세는 예수님을 그림자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예수를 그림자 함과 동시 우리를 그림자 했으니 양의 피는 예수님의 그림자 했으니
양의 피는 3가지 승리한 공로를 가졌으니
안수자의 대형
대행
사망을 이긴 영원한 새생명
사망을 이기고 이 피가 지성소의 그룹사이 속죄소까지 올라가니 이는 대형 대행하고 살아 나온 생명 피요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를 먹는 자마다 영생이 있다는 그것이 구약의 상징계시를 한 모형이요 양의 피는 안수한자의 형을 대신한 대형의 피요, 안수한 자의 모든 책임을 의무를 하나님 앞에 완수할 권세를 가진 피,요 대형 대행으로 사망을 완전히 이긴 영생하는 새생명을 상징하니.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야 하는데 피로 제사 드려 하나님 앞에 나온 것처럼 우리도 3가지 피로 구원 얻었으니 이 3가지의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는 다 힘입었다.
사죄 칭의 새생명을 다 입었으니 우리가 대형 대행하고 승리하신 새생명을 내포함이 그리스의 피 공로인데 이를 영육이 입어야 하는데 영육이 입을시 실질적 법적 입어야 하니 영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택 된 사람은 그 사람이 나지 않았을지라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후에는 예택을 입은 자로 그리스도의 공로가 실질적 설정되었으니 영은 법적 실질적 혜택을 입은 자요 구약 시대인들을 미래를 두고 법적 입는 것이 예수의 부활하심으로 완전히 실질적 혜택을 입는 것이요
그러나 신약은 예수의 공로가 설정한 후는 하나님이 예택한 자는 나지 않았을 지라도 법적 새생명을 받았고 본인이 중생시에는 실질적으로 입게 된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법적 실질적 혜택 입어 하나님 앞에 사죄 칭의 받는 새생명 가진 자로서 생활하니
지금은 조직 이성과 몸을 점령하여 이것을 자기 도구로 쓰는 것이 하는 사역이요 죽은 후 이미 만들어 놓은 것으로 영원히 사용하게 된다.
영은 영원불멸 불사망이요
예수님이 한집에서 동생들과 비슷 비슷이 살았으나 한사람은 성신의 소욕 새생명으로 삶으로 그 사람의 희로애락 전부는 영생이요 그러나 육만이 한번 죽어 죄악 요소를 벗어나야 하는 것이요
그리스도 예수는 죄가 있어서 벗기 위함이 아니고 우리 죄를 위해 대형 대행하사 예수의 육은 죽으심이 아니고 이 모든 죄악을 정복한 영의 충만으로 산 자요 바울은 왔다 갔다 함으로 살았고 영의 생활을 좀 많이 머물게 살았고 어떤자는 육의 생활 가깝게 사니 이 사람은 산 만큼 불탈 것이요. 그러므로 바울의 담대는 소멸의 담대는 적고 우리는 소멸될 담대가 많다.
우리는 죽을 사람의 소욕 담대로 사는 모든 것은 죽은 것이요
우리는 여기서 논리로 옛사람과 새사람을 구별해야 한다.(롬7장 참고)
우리는 피를 힘입을시 영도 육도 법적 실질적 입어야 하니 영은 예수님이 벌써 대형 대행 부활시 법적 완료 공로를 입었고 실질적으로는 중생시 입었다.
하나님의 법적 실질적 예택적 구원을 말함은 이를 구별하기 위함이요 예택적 구원은 창세전에 입었다. 계약적 구원은 계약이 선포되는 그때 입었다. 계약이 선포된 그때부터 입었으나 법적 구원을 미래에 두고 예수의 공로가 완전히 설정된 후 우리는 법적 완전 설정함을 입었다. 롬8:1-엡1:4
영혼은 이 공로를 법적 선택적 예약을 예정적 실질적으로 입었다. 이 다음 하늘나라는 마귀와 죄가 없고 몸이 신령한 몸으로 되어 지금 사는 이 주격체 성신의 소욕으로 기뻐하고 욕심 품은 이 사람이 그대로 죽지 않고 하늘나라에 간다.
육으로는 법적 입는 것은 입고 있는지? 벗고 있느지?
법적으로 우리가 입고있는데 실질적으로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중에 있으니 이것이 문제요
[요6:]내피를 먹는 자마다 목마르지 않는다
주님의 피는, 먹을만한 참 양식이란 실질적 혜택을 입는 것을 말하니 우리의 양식은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사 벌받고 행하시므로 새생명을 주시고 살아난 것은 실직적으로 느껴지는 이것이 새생명을 실질적 입는 것이요
느꼈다가 잃으면 입었다가 벗은 자요 느끼는 것이 먹은 양식이요 이 양식은 영의 양식이요 인격의 양식이니 우리의 영이 떠나면 그 인격이 죽었오? 살았오?
인격이란 하나님 속성과 같은 모든 선에 속한 것을 자기 본질로 가져 그대로 사는 것을 인격체라고 한다.
인격은 살았오 이 인격은 물질을 먹은 것이 아니고 근원이 하나님의 속성과 본질 본성에서 나왔으므로 진리. 능력. 사랑을 먹는다.
이 능력, 사랑, 진리는 분리치 못한다
이 면은 능력
이면은 사랑
이면은 진리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리 능력 사랑 이것을 느끼는 것이 배부른 것이요 느끼는 것만큼 육에 나타난다 제사장 위임식 피 뿌림은 그리스도의 대리하는 역할은 피와 관련된 인격체와 육이라야 비로소 그리스도의 계대자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울 수 있어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남에게 전하는 것이요 피를 뿌려야 거룩해져서 피를 뿌려야 구별해졌으니 구별은 하나만 두고 할 수 없으니 이는 그리스도의 피 이 3가지를 완전히 입었을 시 비로소 완전히 지는 것이요 죽을 자가 아니요, 영생할 자요
[29:35-37] 매일 소 한 마리씩 잡아 7일 동안 매일 드린다.
그러면 재단이 거룩하여 접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다.
우리가 날마다 예수님 앞에서 죄사함을 받아 날마다 자기에게서 새로운 죄를 발견하여 용서함 받고 속죄함 받는 것이 법적 되었으니 할 것 없고 하나님 앞에서 진노 받을 사람이 변화 받는 것이니 곧 해방 받는 것이요 날마다 해방 받아야 하니 자기의 잘못을 고치려고 애쓰면 날마다 성화 시켜 주시는데 대속의 공로로 인하여 그 은혜를 이 성화 시킴을 관련된 모든 것까지도 해 주신다.
힘입어 잘못을 고칠려고 애쓰면 자체가 깨끗하고 자체에 관련된 것같이 거룩히 깨끗이 해 주시는 것이요
분깃이란?
추수하여 거둔 것이 자기 분깃인 것처럼 요제 드린 후 남은 것이 분깃이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 위치에 삼았으므로 우리가 참 제사장이 되면 번제외 먹을 제물이 나오니 무교과자, 무교병, 무교전병 이런 것을 먹는다.
하나님만을 위하고 이웃 형제만을 위하면 자기사욕을 빼면 누룩 없는 양식으로 단합으로 배부르고 성결로 언제나 배부를 것이요
진리로 화평으로 언제나 배부르니 이 사람으로 배부른 것이 참 사람이요 이것으로 요제물, 화제물, 속죄제물, 각 요제 이런 성격의 것을 먹고 자라고 배부른 사람은 얻은 힘 이것만 가지고 천국 갈 사람이요.
사람이 물질만 먹고 배고픈 줄 모르는 사람은 짐승 같은 사람이요.
참 사람은 육은 물론 물질을 먹어야 하나 이것 배부르지 않고 진리를 먹고 예수를 명상하고 묵상하여 느껴 깨달아 깨달음의 감동이 아니면 배부르지 않아 육은 배고프나 진리만을 먹으면 기쁘고 즐거운 이 사람이 재물을 먹고사는 사람이니 이런 사람이 되려면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왜 다윗이 먹은 사건이 생겼나?
제사장의 위치만 귀중한 것이 아니고 그 성질이 귀중함을 나타낸 것이라 천국양식은 10명이 먹을 것을 100명이 먹으면 모자라지는가? 천국양식은 사람이 많을수록 몫이 많이 돌아온다.
그러므로 아무리 먹어도 무한정이요.
[29:29-30] 제사장의 옷은 항상 계대 한다. 우리를 택하여 왕 같은 제사장 삼으신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심 위임식은 언제나 옷을 받아 입고 7일 동안 계속하여 섬겨야 한다.
[29:30-34] 먹은 장소 시간에 하나님이 정해주신 장소 시간이어야지 시간이 지난 후에는 먹지 못하고 다른 곳에 쓰지 않고 불살랐다.
이와 같이 오늘 신약시대도 우리가 하나님으로 신령한 양식을 먹는 예수의 그 모든 인격 생애와 성자들의 인격 생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 모든 것이 언제든지 그것이 우리의 주관으로 사용할 수가 없다.
성자의 모든 전기를 보고 느껴지고 이라면 양식이 된다.
예수님의 행적을 묵상함으로 양식이 되지만 그 시간과 장소가 지나가면 다름 곳에 쓸 수가 없고 그것으로 다시 만나지 못하고 소화가 되고 마는 것이요 예수님의 생애를 연구하여 본받자. 성자성녀들의 발자취를 따라 간다.
이것이나 당신의 뜻을 이루는 것이 반드시 때와 장소가 있다.
정말로 먹는 시기 장소가 오니 성자들의 당한 그런 일이 실질적으로 당하는 그것이 곧 참 정말로 먹을 그 시간 장소이니 그 성자가 어떻게 했으니 나도 이렇게 해야겠다고 하여 하는 이것이 곧 시(時)와 때와 장소에서 써먹는 것이요 손양원 목사님의 전기를 읽으므로 손양원 목사님의 당한 그런 성질의 것이 나에게 올 때 나도 그대로 사는 것이 곧 참 양식으로 먹는 사람이요 오늘 이때가 거룩한 장소에서 먹어야 하는 것이니 손양원 목사님이 이렇게 했으니 나도 이렇게 해야겠다고 하여 함으로 참 먹은 양식이다.
본문: 출애굽기 29:23-37
제목: 제사장 위임식
요절: 출 29:26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곧 받는 것이요
사람에게 주는 것이 곧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요
선하게 하므로 사람에게 받은 것이 하나님께 받은 것이요.
요제란?
하나님께 드리고 받고 사람이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의미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곧 받은 것이요 사람이 서로 주고받는 것이 곧 하나님께 드리고 받는 것을 표시 요제 후 제물을 제사장이 먹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 돈, 힘 무엇을 바치든지 이는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드리므로 영영히 자기 것이 되는 것이요. 몸은 하나님 앞에 헌신하면 이것이 자기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영영히 자기 것 삼은 것이요 몸을 하나님 앞에 바쳐 쓰면 그것이 하나님 것이 되는 것이 아니고 임시 보관한 그것을 영영히 자기 것 삼는 것이요. 자기의 부요의 재산을 가난한 자를 위하여 봉사하는 이것이 곧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니 이는 자기의 있는 것을 보관하는 것을 이것을 진리를 위하여 쓰면 영영토록 자기 것이 되는 것이요 없어질 세상에서는 없어졌으나 하늘에서는 영영히 자기 것이요 ]
그러므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했다. 사람에게 주는 것이 곧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요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지극히 적은 소자에게 하는 것이 곧 나에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깨끗한 노동으로 돈 100원을 받았으면 이는 곧 하나님께 받은 것이요.
[26-] 제사장은 제물을 요제로 흔든 후 분 깃으로 자기들이 먹었다.
제물은 누구나 먹을 수 없고 제사장만 먹는 것이요 양을 바치는 것이 예수님이 대속 제물이 됨의 예표요.
제물은 양의 고기는 제사장만 먹고 다른 사람은 못 먹었다.
이 제물의 혜택을 모든 사람이 받으나 예수님의 대속 공로를 힘입은 것은 택한 백성은 다 힘입었으나 양의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으니 그리스도 예수의 피와 양식으로 먹는 것은 위로 하나님을 위하여 옆으로 형제를 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수님의 공로의 혜택을 사욕쟁이라도 입으나 예수님의 피와 살인 공로를 양식 삼아 자라고 힘 얻는 것은 제사장만 삼지 일반백성은 못 먹었다.
요6:예수님의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고 했으니 이 양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한 피와 살을 먹는 것은 예수님의 정신 활동의 생애를 연구함으로 자기에게 힘이 되고 심정이 만족함을 얻어 자라게 된다.
예수님이 대형의 공로가 인격적 양식이 될 수 있는 것은 제사장이 되어야 양식이 될 수 있어 제사장은 위로 하나님을 섬기고 옆으로 형제를 대신하며 하나님 앞에서 이웃을 복되게 하기 위하여 이웃을 섬기는 것이니 위로 하나님을 위하고 옆으로 형제를 위하는 이 뜻, 마음, 성질을 가지고야 예수님의 피와 살이 양식이 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제사장 아닌 다윗이 먹었으나 다윗은 이름은 제사장은 아니나 제사장과 똑같은 성격으로 위로 하나님을 섬기고 옆으로 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똑같은 성격으로 다윗이 먹은 것이요.
제목: 소제와 번제
본문: 출애굽기 29:38-46
요절: 출 29:38
번제란?
전소(全燒)하여 바치는 것이요. 번제물은 예수님을 그림자한 것인데
예수님이 속죄제 (우리를 대신해서)
화목제 (우리의 불목을 대신해서)
속건제 (우리의 실수. 허물을 대신해서)
번 제 (우리의 전 헌신을 대신해서)로 대속 함이 있으니
예수님이 나의 속죄제와 속건제 화목제 번제로 드린 제물이요,
제사장인줄 기억하고 전제와 소제는 예수의 몸을 그리스도가 대신한 것을 그림자 하여 모형한 것이다.
아침에도 드리고 저녁에도 드린다는 것은 아침저녁 번제를 드림은 아침에도 예수의 공로를 힘입어 사죄 칭의를 받은 자니 저녁에도 주님의 것으로 다 바쳐 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하루종일 전부는 다 바쳐야 한다.
전제는 소제로 양을 제사 드린 다음에야 이것으로 드리지 그렇지 못하면 안되니 이와 같이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림도 사죄 칭의 번제 화목제도 드린 후 4가지 제사에 속한 후 몸을 드려 받을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몸으로 아무리 충성해도 4가지 제사에 속한 몸이 아니면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다.
양으로 제사드린 후(마음.성품.뜻을 다 드린 후)즉시 몸으로 드리는 것을 가해서 드려야 한다.
양은 신령한 이성면.
소제, 전제 육체로 드리는 것.
그러므로 이 둘을 겸해야 함을 깨닫고 아침저녁 종일 드림을 깨닫고 이렇게 드리면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회막이 거룩해진다.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회막을 제단을 속한 백성을 깨끗이 하고 애굽에서 우리를 불러낸 것을 체험하게 된다. 우리를 천당만 가게끔 옳은 줄 아니 믿으니 아무 맛이 없으나 번제 소제 전제를 하루종일 드리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는고 하니 회막을 거룩히 하고 (우리 생활의 모든 전체) 제단(하나님 앞에서 깨끗이 잘 바치게 끔 해 주시고)을 거룩히 하고 제사장(하나님 섬기는 인격을 깨끗이 잘 바치게끔 해 주시고)을 거룩히 하고
우리에게 소속한 사람도 다 거룩히 해 주시니 이것이 체험이 된다. 자신이 어떠한 것인가를 깨달아 알아진다. 이일이 참 할 일이며 가치 있고 존귀한 일임을 알게 된다.
이렇게 느끼게 되는 이유는?
[:42] 번제 드리는 이것을 인하여 하나님 만나게 되고 교제하게 되고 하나님으로 이야기 할 수 있고 같이 만날 수 있고 나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니 변화하여 지니 맛을 본 후 예수님 믿게 한 것을 체험하고 경험하게 되어 누리게 한다.
하나님 만나는 것은 나에 대한 하나님 뜻을 만나는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번제를 드려야 하나님을 만나고 회막도 제단도 거룩히 할 수 있다 말하는 것은 기도.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도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하나님 만나면 (멀던 것이 하나님의 모든 속성이 가까워진다는 것이요)사랑이 멀던 것이 가까워진다.
진실이 나와 거리가 멀더니 나와 점점 진실이 가까워지고 롬12:1-3과 꼭 같단 말이요 전제 번제 소제를 드리면 몸으로 산제사 드리면. . .
하나님 만나는 것은 이 제사 드린 후 할 수 있고 나에게 속한 모든 것이 거룩해지는 것은 이 제사 드린 후 된다.
하루종일 드리니 우리의 전 생애는 하나님께 다 드리는 생활 죄를 벗고 의를 행하는 것.
죄는 벗고 적은 선에서 점점 큰 선으로 나가는 것이 곧 하나님께 가까워지는 것이요 전부가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것으로 살아야 하니 자기의 신앙양심으로 작정한 생활 이것을 순종해야만 하는 것이요.
작정해 놓은 생활을 자꾸 발전시켜야 한다.
처음 예수 믿을 시 작정한 그 선이 점점 큰 선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처음부터 점진하지 않고 조절하는 것도 헛일이요 점진치 않는 것도 헛일 지극히 적은 곳에서 점점 점진적이어야 한다.
제목 : 향단, 속전, 물두멍, 관유, 향
본문 : 출애굽기 30장 1-38
요절 : 38절
(1) 깨달은 점
움직이는 곳마다 금으로 했으니 활동적이나 불변의 성질이어야 할 것이요
(例: 예배의식은 얼마든지 변개 할 수 있으나 변개 할 수록 진리에 맞게끔 영원히 가나 정죄 하여 변개 할 수 없게끔 해야만 할 것이요 영원히 변치 않는 참된 이치로 해야 한다. 변치 않는 진리 참된 방편으로 해야 한다.)
( 2) 제사장이 출입 시마다
물두멍에 손 씻고 죽음을 면한다 했으니 씻는 방편이 지금과 다르나 이 방편 예수님 재림시 까지도 영원한 그 나라에서도 씻어야 하니 반드시 기도 할 때마다 반성하여 자기를 깨끗이 하도록 언제나 주님 앞에 나타날 때마다 구원을 이루지 못하면 자기는 육체는 죽지 않을지라도 죽는 것이요 언제나 성결로 주님 앞에 나가야 한다.
[:25] 여러 가지 향에 대한 것이 있으니 이 향 저 향을 가르친 것이 아니다. 여러 종류의 향을 말함은 관유는 하나님 앞에서 붓는 기름이니 하나님 앞에 바치는 영감 생활이니, 영감생활의 관유는 향기로운 각양 기름으로 했으니. 향기는 덕이니, 신덕이 있는 염감이어야 하나님 앞에 바쳐진다. 타(他)에 좋은 덕을 줄 수 있는 염감이어야 하니 즉 영감 받아 실천에 옮긴 영감이어야 하나님이 받으시지 그렇지 않으면 받으시지 않는다.
[:26-29] 우리의 바치는 마음, 몸, 정신, 뜻 그 모든 것이 물론 깨끗해야 하나 그 위에 기름을 바르면 더욱 깨끗하니 그리스도의 피 공로 받아 깨끗이 되었으나 이 위에 우리의 아름다운 향기를 발라 나의 신앙 생활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 관련된 일, 물건은 깨끗이 해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구속받은 사람이 신앙 생활로 말미암아.
[:31-33] 관유를 바르라는 곳만 발라야 하니 우리 그리스도인이 제단 제사장 회막, 증거궤에는 바르나 하나님 말씀하신 외에는 발라서 안 되니 우리 행위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 정신으로 하나님께만 기울어야 하지 성경에 하나님 섬기는 법으로 임금이나 사람을 섬기면 백성 중에 끊어진다고 했다. 즉 자신이 더러워진다는 것이요 우리는 모든 일이 하나님 중심해서 해야지 다른 것 위해 향기 피울 수 없다. 이와 같이 기름을 만들지 말며. 다른 어떤 조직을 교회조직으로 말하는 것이요 교회조직을 사회조직으로 쓰는 자 있으니 이는 하나님이 금하셨다. 하나님을 위하여 쓰는 방편이라야 한다.
제목-안식일에 대하여
본문-31:1-18
요절-13절
1.하나님께서 성막을 건축할 시 누구의 자손 누구누구를 택하여 하나님의 성령을 충만케 하여 지혜와 지식이 충만하여 그 일을 하겠금 하셨고
6절 하반; 오홀리압을 세워 지혜를 주어 명한 것을 행하게 했으니 즉 누구의 자손 누구를 택하여 하나님의 성령을 충만케. 이런 말씀과
6절 하반의 말씀이 있으니 여기서 알 것은 하나님이 택하사 일을 시키신 것은 만세 전부터 하나님이 일꾼으로 쓰기를 작정하시고 선천적인 은사를 주시고 후천적인 은사를 주사 일을 시키시는 것이요 이 분들은 좁은 의미는 교육자요 넓은 의미는 전 그리스도인이요. 그러므로 우리는 적은 반사 직분이나 가정의 지도자로 된 것은 단번에 된 것은 아니고 하나님의 만세전 택하사 하나님이 또한 후천적 지혜를 더하사 행하게 하셔 복음에 대한 적은 일, 큰 일한 사람이라도 맡아 신앙을 인도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사의 교권임을 기억해야 한다. 자기가 한 사람이라도 밝은 데로 옳은 곳으로 인도할 수 있는 직분은 경솔히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은사를 받아 사람들을 옳은 곳으로 돌아 오겠금 하는 권찰, 주일학교 반사의 직분이 자기 혼자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통하여 우리를 택하여 은사를 맡긴 것이니 이 근거가 심히 거룩함을 알아야 한다.
자기 주관에 대하여
2. 사람을 선택하여 쓸 때에 선천적인 요소를 보아야 한다. 사람을 택하여 쓸 때에 (교육자 및 모든 면에 있어)
1> 그 사람의 도덕면을 근거해야 하고
2>선천적인 소질이 있어야 합니다. 웅변, 명철, 담력, 등.
3> 그 사람에게 사명감과 하나님의 성령이 붙들고 역사 하는 사명감과 그 사람에게 대한 추가 역사가 있어야 한다. (후천적 그리스도의 추가적 은사)
이 3가지가 구원의 일에 필요한 것이요.
3. 안식일에 대하여
엿새 동안 모든 것을 만드시고 칠일에 쉬셨다고 함은? 엿새 동안의 만든 모든 그것이 제 7일 그들의 행복이 이 날에 매였으니 이 날에 모든 지음 받은 것이 평강을 얻은 것이지 하나님이 엿새 동안 일하시고 나니 고단하사 쉰 날이 아니고 거룩히 하여 복 주신 날이요. 1차 창조를 하시고 이것들에 대하여 참 복인 안식, 2차 창조인 그리스도께서 도성인신 하사 복음의 대속 역사 하시고자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2차 창조를 다하시고 주일날 부활하셨으니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대속이 가치 있는 것이요. 아무리 사죄 칭의를 주었으나 우리가 중생치 않으면 다시 살지 않으면 무슨 소용 있소. 2차 창조 주일날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효험 있고 가치 있게 되었다. 주님이 부활하시므로 새 생명을 주셨다. (벧전 1:23)
안식일을 노는 날로 보아서는 안 된다. 엿새 동안 이것보다 7일 이것이 아니면 아무 가치 없어. 예수님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사 죽으신 후 부활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어. 엿새 동안 우리의 한 일 모든 것이 주일날 살아나고 복된 것이요. 주일날 특별히 잘못된 것을 고치고 잘 된 것도 모두 열매 맺어 성공하는 날로 보아야 한다. 6일 동안 한 것을 주일날 온전케 복되게 하는 일을 이 주일날 영원한 안식을 누리겠끔 하는 중요한 날이요. 또한 미래적 영생을 가져 오겠끔 복되게 하니 안식일을 과거 미래적으로 복되게 하는 거룩하게 깨끗하게 되는 날이요. 그러므로 1차 창조는 안식이요, 2차 창조는 주일이요 이 날을 범하는 자는 이스라엘 회에 참여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이 날은 과거를 반성하고 정리 정돈 은사와 미래적 은사를 받으니 이 날 과거 미래를 거룩하게 하고 복되게 하여 받은 은사가 주일날 있어야 합니다. 분주한 이 일이 옳고 그른가 또한 미래를 고치고 깨달은 은사를 주일날 받게 되는 것이니 이 날 범죄하면 이 주일의 은사를 받지 못하면 자기의 들어갈 세계를 들어가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다. 그런고로 우리는 매일 주일이 있어야 하고 주일의 성격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4. 18절. 증거판 계명 주시기 전보다 안식일을 말씀하셨고 모든 성막 지은 후 안식일 날을 말했다. 성막 짓기를 마친 후 안식을 바로 말함은 하나님께 은혜 받을 시간 이것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말하니 성령의 은사 받은 것이 제일이요. 계명 주시기 전에 안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제목: 금송아지를 만듬
본문: 출애굽기 제 32장
요절: 35절
1.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음 1-6절
2.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모세의 강구함 7-14절
3. 모세의 울분 15-20절
4. 형제 이웃 친구를 도륙함
5. 지도자의 강구와 죄의 보응
1. 하나님이 사람을 쓰시는 데에는 이웃을 사랑하는 이런 마음의 심지가 있는 사람을 사람이 붙들어 쓰신다.
2. 죄를 청산할 시 하나님의 진노가 머무는 것.
3. 그들이 실수한 것은 체험적 신앙을 가지지 안 했기 때문에 미신적 신앙을 가졌다.
제목: 모세의 기도
본문: 출애굽기 33장
요절: 13절
3절; 하나님께서 함께 올라가시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이유는?
이는 너희가 목이 곧은 백성이므로 가다가 너희를 진멸 할까 두려워 함께 올라가시지 아니하신다고 하셨다.
9절- 같이 안 가시겠다는 이유는 목이 곧은 백성이므로 우리를 하나님이 동행치 않고 피하심은?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에게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변함이 없습니다. 멀리 피하시는 목적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가 멸하여 질 것이기 때문에 이유는? 우리가 목이 곧은 백성이므로 같이 안 가시겠다는 목적은? 이스라엘을 멸하시지 않게 하실려고
14; 같이 가시겠다함은? 같이 가도 멸하시지 않을 이유가 있기 때문이니 멸하시지 않을 이유는? 목이 곧지 아니하는 자일 것이니 목이 곧지 않은 자란? 12절부터 13절까지의 모세의 행위에서 하나님의 노는 풀렸다. 그 행위에는 하나님과 같이 가도 진멸 받지 않기 때문에 그런고로 성도가 하나님 앞에 은총 받은 이유가 이것이요.
1> 12-13; 주께서 모든 지도하심이 마땅히 있을 것인데 없을 보고 심히 근심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멸망을 피하는 일 중에 큰 일이요. 지도 없음을 두려워하는 이것이 곧 지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다.
2> 13;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말씀을 항상 기억했습니다. 12-13절에 모세의 말을 들으시고 친히 가시겠다고 하시니 이것이 중합니다. 친히 가겠다고 말씀하심이 모세의 12절 이하의 말씀을 듣고 허락하셨다.
1) 하나님이 나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가라 했으면 하나님의 지시하심이 있어야 할 것인데 왜 하나님의 지도가 없는가 심히 두려워 떨었다. 이것이 지도 받을 수 있는 자격이요 구원받을 수 있는 자요. 백성의 목이 곧다란?
세상적으로는 자존심 많은 자라고 할 수 있으나 여기 백성은 하나님의 지도가 없음에 두려움과 염려가 없는 이것이 목이 곧은 자요 예수 믿는 사람 가운에 자기 양심 속에서 부지런히 자기 심령 속에 성신 감화 없음을 염려하는 이 자와 곧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자요. 양심의 자극이 없고 양심의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이 목이 곧은 자요. 주님 감화 없음을 심히 모세는 두려워했다. 12절 하반부터 13절 모세는 주님이 한 번 말씀하신 일이면 그것이 곧 실제였다. 그런고로 주님이 한 번 말씀하심이 자기에게 있어 영원히 변치 못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둘째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자격입니다. 하나님께로 절대 변개할 수 없는 줄 확실히 가지고 자기로 변개할 수 없는 줄 아는 것이 주님과 동행할 자격이요.
3>13절 이하 주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이 길을 주님이 인도해 주십시오 하고 자기의 앞길을 주님께 맡기는 이것이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자격이요. 내가 나를 인도하지 않고 당신의 인도하심대로 행하는 것이 곧 주님께 책임을 지우는 것이요. 순종하는 것이 곧 주님께 일 시키는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실력 정도로 요구하시는 하나님이요 진리 지식으로 비판하여 가장 옳은 길로 가는 이는 하나님께 책임을 지우는 것이요 자기 자율로 계획하면 하나님은 부담을 다 벗고 자기 짐을 자기가 져야 합니다. 오직 우리는 주의 말씀을 책임지면 이 말씀이 너를 들고 다니지 수고러움이 없는 것이요.
4> 13절 하반절.
이 백성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이것이 또 하나님과 동행할 자격이 있는 것이요 32장 9절-14절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다 책임지고 간구할 시 하나님이 그 뜻을 돌이키사 용서하셨으니 이와 같이 여기도 주님 앞에서 은총을 입히실려면 이 백성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하셨으니 모든 백성과 화복을 같이 할 때 하나님은 귀히 보시고 진노를 거두신다. 모든 성도의 구원을 자기가 삼아 회개도 구원도 연대 책임을 지고 형제 구원을 위하다 보니 자기 구원이 이루어지는 이 심지를 가졌을 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수 있다.
5절; 단장품을 제하여 노가 풀린 이유?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중심 하여 살았음으로 하나님 중심 하여 살지 못함을 회개하고 원통해 하였으니 이 표시로 단장품을 제한 것이요. 모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죽고 사는 생사의 화복 전부가 이 교제에 메인 줄 알아 전 관심이 여기 쏠렸음으로 하나님의 노를 풀어드렸다. 하나님께 대한 관심과 하나님이 나에게 대해 어떻게 하시나 당신 움직임의 여하가 어떠한가를 기울이실 때 하나님은 이런 자와 동행하신다. 모세는 적게 말하면 교회의 목회자라고 말할 수 있으니 하나님과 목회자 사이의 교제가 전 교회 성도의 전부임을 알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교제가 바로 되어야 전 교인의 영육이 바르게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신앙이 안정되어야 정신 마음이 안정되고 그러므로 올바른 계획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런고로 기독자는 자기의 적을 둔 교회에 대하여 관심 없이 개인적 생활에만 중심하면 그 사람의 영육은 차차 다 실패로 돌아간다. 그런고로 기독자는 자기의 소속한 교회가 신앙의 안전을 가지고 견고히 서서 가야 교회에 속한 가정이 안전하고 가정이 안전해야 개인이 안전하고 견고히 서 갈 수 있으니 먼저 자기 신앙 안전부터 정리 정돈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기 활동 무대로 취미로 종교 한 의식 무대로 삼아 나아가는 것은 이는 깨닫지 못한 무식이요
제목: 둘째 돌비
본문: 제 34장 1-17절
요절: 6절
1-5절; 돌판 계명이 두 번째이니 이는 돌판은 사람에게 만들게 하시고 기록은 하나님 하셨으니 율법제도는 사람의 잘못을 그대로 갚아 나가고 점점 쌓이고 축복이 제감(弟監) 되어 가지 회복되거나 변화되는 그것이 아니요 점점 후퇴요 그러나 은혜는 잘못에서 돌이키면 더 잘 될 수 있어 점점 더 향상이다.
2절; 이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 순종하는 그것을 일찍 해야 할 것이요 아브라함도 아침 일찍 출발했다. 하나님 명령 순종 및 요구 순종이 언제나 아침에 화는 성격같이 일찍 빨리 머리로 첫 그것으로 해야 하니 마음도 정성도 첫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쳐야 할 그것이요
3절; 일반 사람은 못 오게 하고 모세만 오라 함은 하나님은 성결의 본체임으로 성결의 차이로 하나님과 원근이 결정되는 것이요 율법에서는 자기 도수 이상 오면 상하고 죽고 은혜에서는 성결의 정도에 따라 하나님이 피하신다 하나님이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못 만나기는 같으나 율법을 넘으면 벌받으나 은혜 시대는 넘으면 은혜를 받는다.
5절; 구름- 하나님을 상징. 우리 육안으로 보이지 않으나 물질의 경계와 층대 차이가 있는 그것보다 무형 중에 계시나 거룩 완전의 차이는 물질의 경계와 같이 뚜렷이 있음을 표시함. 하나님과 우리의 차이는 마치 물질계의 차이 모양, 하나님의 도덕의 길, 영광의 길, 권능의 길, 은총의 길이 물질계의 길 모양 각각 다 있으니 이 길을 찾아가야 할 것이요
6절-9절; 여호와로라
또 이렇게 말씀하심은 약속 이행의 불변의 하나님이심을 제일 먼저 말씀하십니다. 모세의 첫 선물로 은혜를 주셨고 또 모세는 첫 선물로 받아 가질 것은 계약 이행의 불변의 하나님이심을 받아 가져야 할 것이요 우리 이성은 순전히 짐승 같은 것이므로 시청각으로 길을 들여야만 합니다. 자꾸 선만 생각하고 귀로 듣고 행하면 선으로 길들게 된다. 그런고로 우리는 "여호와로라" 또 이것을 자꾸 길들여 습관화 시켜야 할 것이요. 그런고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듣고 실행함이 대단히 필요한 것이요. 자비롭고 은혜롭고---- 하나님 사랑을 첫째 말씀하셨고 7절 둘째는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시고 형벌 받을 자는 ---- 유기자와 선택자를 가려 말씀하심
10절; 이는 전쟁을 이르러 이 족속이 저 족속을 토벌하는 일이 없었다는 그것이 아니라 여기 적은 지금까지 전쟁은 땅에 속한 것이나 이제부터 특수한 구속 운동(특수 은총)을 너희를 붙들고 일으킬 그것이니 너희는 삼가라 특수한 구속 운동이란? 구체적으로
1>너희 앞 족속을 몰아내겠다는 그것이 하나요 족속을 총칼로 몰아내는 그것은 많으나 하나님 말씀 지킴으로 몰아낸 것은 역사상으로 없으니 곧 이 이적이요 가나안 칠 족속 몰아내는 것이 하나님 법도 지킴으로 하나님이 몰아내는 이러 것은 역사에 없었다. 여호수아 3장 여리고 성 함락 우리의 승리는 여호와 말씀 순종으로 원수를 몰아내는 이것이 우리에게 준 특수 은혜요 역사상 없는 우리에게만 행한 하나님의 뜻이요
2> 그들로 더불어 화친치 말 것, 타협치 말 것, 이것이 신약 시대에 와서 이 사람 저 사람을 사귀지 말라는 말인가? 구약 시대에서는 이방 사람과 절교하라고 했으니 절교치 않으면 그들과 혼사하고 제물 먹고 그들 신 지키니 망하고 말아. 그런고로 우리는 안 믿는 사람과 절교해야 합니다. 화친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의 절교란 이방 사람과 교제를 어떻게 가지고 또 절교를 해야 됩니까? 밤낮 친교하나 이방사람과 이스라엘과 절교하지 않으면 결국 결혼하게 되고 결합이 되면 나의 의와 불의가 합한 행위가 나오고 그들이 좋아하고 귀히 여기고 안 믿는 사람이 생명을 걸고 전 소망을 붙이고 있으니 세상에 그들의 소망을 두고 우상 섬기니 이런 일이 우리에게 생기는 일이 있으니 우리는 언제나 이방과 같이 생활하고 사업하나 나는 이스라엘이라는 것. 이 사람과 절교해야 할 자인 줄 알고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입장과 소속을 언제나 가지고 같이 사업하면서 동역하면서 절교해야 합니다. 그들의 행위에 우리가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절교란? 그들의 행위를 따라가지 않은 것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므로 화평을 그들과 취한 후는 혼사 합니다.
혼사란? 그것이 곧 같은 사람이 되었으므로 말이요 그 사람이 우리를 헐 때에 우리도 그 사람을 헐면 그만 짝이요 혼사 후는 결국 그 사람의 우상 그 사람들의 좋아하는 돈 권세 좋아하고 그것 따라 가지. 별거 없어.
제목; 삼대절기
본문: 34;18-18절
요절; 24절
18-20 유월절에 관한 절=무교절 이스라엘 사람의 생활을 가르킴
유월절의 뜻-
하나님이 대속물로 세우신 대속의 혜택으로 멸망할 재앙이 해하지 못하는 것을 표시로 유월절이라 했다. 그런고로 유월절 기념할 것은 하나님이 구원으로 세워주신 약속을 힘입을 시, 첫째로 유월절이라 표시함 노아 시대도 유월절은 노아 시대 하나님이 방주로 구원하시기를 선포하실 시 방주를 뛰어넘어 홍수를 멸망했으니 홍수는 장자 재앙이요. 방주는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것이요 오늘 그리스도의 피는 구속의 중심이요 이외는 전부 피의 분다요 하나님의 구원 약속 선포대로 지음에는 멸망이 가까이 오지 못하나?(수정부분)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불순종으로 끊어졌던 것이 문설주에 피를 발라라 했으니 이것이 곧 에덴의 선악과요 생명과이니 피를 바르지 않는 자는 선악과를 먹어 하나님과 절단된 것이요. 피를 바른 그것이 곧 생명과를 먹음 것이요
1> 하나님과 원수 됨을 화평케 함이 유월절이 중심이라는 뜻 중의 하나요
2> 하나님 계약을 순종하는 (마음. 몸) 도요 하나님과 원수됨을 화평케 함의 발산은 사람과 사람의 사이의 화목으로 발산되니 이 도는 화목의 도요 그러므로 이 도는 화목과 순종의 도요 오늘도 기독교 믿음의 도요 화평케 하는 도라 말이요 이것으로 재앙을 면했다. 유월절 지킬 때는 집안에 누룩을 전부 없앴으니 만일 두고 유월절 지키면 죽고 만다. 그런고로 기독교는 순종의 도요 구원은 순종의 도로 받았는데 유월절을 기념할 시는 무교절이라는 것이 들어 있으니 내면은 순종의 도나 외면은 화평의 도가 기독교요.
그러므로 오늘도 기독자가 환난의 재앙이나 저주의 재앙 무슨 재앙이든지 받지 않은 것은 둘 뿐이니 유월절을 차지한 사람 소유한 사람 유월절 혜택을 입은 사람이 되야 재앙을 면하니 유월절을 기념하는 그것은 양 잡아 제사 드리고 누룩 없는 떡 먹는 것이요. 그런고로 재앙을 면하는 방편은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로 명령해 주신 즉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하시고자 하셨음으로 구원이 효험 있는 것이요 그런고로 예수님의 피는 신구약 성경의 중심 빛이요 주님의 나타나는 전부라고 볼 수 있다.
그런고로 이들이 유월절 양의 피 발라 구원 얻는 것이 곧 주님의 피 공로 써먹은 것이요 그런고로 하나님 말씀 써먹는 것 순종하는 것. 예수님의 피 공로를 써먹는 것 이 모든 것이 동일의 말 이것과 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것과 하나님 말씀을 써먹는 것이 유월절의 중심이요 곧 오늘 우리 구원의 중심이요
그런고로 기독교는 화평의 도요 계약 이행의 도요.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임은 것이 기독교 인줄은 아나 이것이 곧 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가지는 것은 잘 모르고 있다. 첫 새끼는 하나님 것으로 바치는 이것이 무엇 때문인가? 애굽 재앙에서 장자 재앙을 받지 않는 그것을 기념하여 초태생 머리를 바치라고 했다. 장자 멸망은 곧 머리 재앙이요 머리 멸망 받으면 꼬리는 자연 죽으니 머리 멸망에서 구원 얻었으니 머리를 드리라는 말이요 전부 멸망에서 구원 얻었으니 전부 바치라 하지 않고 초태생을 바치라고 함은 몸이나 꼬리가 아니고 하나님께 전부 바치는 것이지만 초태생 첫 열매 머리라고 말함은 가장 귀하고 중심 되고 하나님의 지성에 대한 섬기는 방법을 표시한 것이요
그런고로 우리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다 바쳐야 합니다. 다 바쳐야 하면서도 그 중에도 제일 중요하고 정성 되게 우두머리 됨을 바쳐야 함을 넣어 주시기 위하여 초태생 머리라고 한다.
공수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언제난 이 은혜를 깨달아 감사하는 감사하므로 감사를 표시하는 감사의 느낌의 그것으로 나타나라는 것이요.
21-24절 칠칠절=오순절=-초실절= 율법주심 기념과
수장절=장막절= 하나님 지켜 보호해 주심에 대한 감사
이 두 감사를 행위로 나타나면 하나님이 그 지경을 넓혀 주시고 ----- 하나님의 보호와 지혜보다 더 다른 것을 구할려고 하다 인간이 범죄 하는 것이요
25절-26절 그리스도인은 불목으로 구원을 이룰 수 없다. 주님의 공로는 그 때 그때 힘입어야지 하나님 계명은 지켜야 할 그 때 지켜야지 그 시기 지난 후는 아무리 지키고자 하나 쓸 데 없는 것이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전부가 하나님의 사랑과 건설의 운동이지 거기에 잔인성을 용납지 않는다는 것이요
27-28절 고요한 명상의 시간을 많이 가져 하나님 앞에 성의를 드려야 하나님의 뜻을 할 수 있지-----
29절 하나님과 가까이 하면 광채가 나고 변화가 된다. 진리와 동행하면 그 인격이 점점 빛나고 광채가 난다.
30-35절 '수건 가린 것'
두려워한 것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가루어 진 것 하나님께만 전적 소망치 않고 마음을 전적 기울이지 않음으로 하나님과 사이에 담이 막히니 담이 트이는 그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에게 속해야 합니다. 독립성이 되면 독립성을 가지면 하나님과 하나가 아니요. 수건 가린 것은 그들과 하나님과의 가루어진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에 가루어진 것 즉 하나님과 너희가 두 조작이요. 이것이 이 한덩이 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면 하나요 자기가 독립하면 둘이요
제목: 안식일
본문: 35장 1-29절
요절: 2절
2> 주일 지킴의 엄격성
2> 안식이 주일로 바꾸어진 이유- 히브리서 4장7-8절을 들어 가르칠 것.
이스라엘을 대표한 여호수아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므로 주일이 있다. 율법으로 이스라엘이 완성할려고 했으나 안되었음으로 이제 은혜로 완성하셨다. 구약 일차 창조를 하시고 그대로의 축복한 안식을 그대로 지킴은
일차 (육체 이스라엘 소속),
이차 (신령 이스라엘 소속)
창조가 다름 같이 ---------
그런고로 안식할 때가 하나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7,8절을 연결하면서 가르칠 것 안식일이 주일로 다시 변개 함이 아니고 첫 안식으로 범죄 함으로 신령한 주일이 우리에게 나타났다.
3> 마음에 원하는 자가 하나님께 바칠 것.
4>무릇 마음에 감동된-------------
1-2절; 성일-
칠일 가운데 엿새를 두어 이를 완료 끝맺은 것이요 칠일 중에 육일은 일하고 칠일 중에 하루는 쉬는 날로 알기 쉬우나 이는 한정이 있으나 안식은 영원무궁이요.
히 4장 힘써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힘써 안식에 들어가도록 온전에 들어가도록 힘쓰라는 말이요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이리이리 하여 완성하라 했으나 순종치 않음으로 구약의 사람들은 완성치를 못했다. 히11:40절 첫 이스라엘은 실패했다. 둘째 이스라엘이 완성함으로 첫 이스라엘도 완성을 얻게 되어진다.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 이 의미의 예표는 안식에 속하지 못한 것은 전부 죽은 것이요. 그러면 구약 이스라엘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으니 구약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을까? 죽은 것이 안되겠습니까? 신약 이스라엘이 아니면 그들은 전부 멸망 받은 것이 되나 신약 교회 이스라엘이 있으므로 이 신구약이 합하므로 신약 교회 완성이므로 구약 교회가 온전함을 이루어 완성하게 되는 것이요 히11장 40절.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은 다 죽인다. 이 죽인다는 것이 안식을 범하는 자를 죽였으니 안식에 속하지 못한 것은 다 사망 아래 있는 것이요 사망에 벗어나 생명에 속한 것이 안식이요 사망을 벗어나 안식에 속하지 못한 것은 전부 죽음에 속한 것이요 오늘날도 안식을 범하면 그 만큼의 생명의 은혜를 받지 못하니 생명에 속한 은혜를 손해본다. 그런고로 주일을 거룩히 지켜야 한다.
4-9절;
5; 무릇 마음에 원하는 사람은 그것을 가져 여호와께 드리라 하나님 앞에는 언제나 자원함이어야지 억지로 바쳐서는 안됩니다. 그래야 그 인격이 바쳐질 수 있는 것이요 인격 없이 바침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억지로 선행을 시킴은 길들이기 위함이지 이는 인격 바침이 없음으로 인격교제와 상관없는 것이요 그런고로 물질, 몸을 바칠 때 바치는 그것이 귀중한 것이 아니고 그 인격 바침이 귀하다 20절: 교훈의 말씀을 듣고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망을 지었으니 감동은 사은에 대한 감사이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숭배하는 자원함과 감동함이 둘에 바쳐야 참된 제사가 될 수 있는 것이오 귀한 것이다. 원치도 않고 하는 것과 하나님 앞에 무슨 빛 진 것에 눌려 바쳐서는 안 된다. <고후3;12절-18절>
'12절-13절' 없어질 것도 그들이 주목치 못하겠끔 수건을 쓴 것이요
14절 지금도 자율을 가지고 자기의 독립성을 가져
15절-18절 중생은 수건을 완전히 벗었으나 육체 아직 벗기지 못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과 같은 것이요.
제목: 성막
본문: 36-40장
요절: 39;43
40장:
1-16절; 성막에 속한 모든 것을 만드신 후 나열시키는 일을 말씀하심
17-38절; 실지 있을 곳에 나열시킴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막 짓는 것을 말씀하시고 모세 이 성막 짓는 것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는 백성에게 구원이 되지 못하고 그것을 실제 이루기 위해서 하나씩 명령하고 적응되어 이루는 여기에서 성막이 이루어진다. 오늘 우리에게 성경 주심은 모세에게 설계주심과 같고 이것을 우리가 하나 하나씩 실행함이 백성이 하나씩 만들고 진열한 것과 같다. 말씀을 단 번에 주심이 있고 또 이 성경을 실질 생활에서 하나 깨닫게 하시고 영감을 주사 실천케 하여 깨닫게 하신다. 성경을 아는 것으로 구원이 되지 못하고 때를 따라 지도하시고 교훈 하시는 이것이 있어야 성막이 이루어진다.
성경을 읽고 아는 것은
35장 5절 이후-------때를 지도하시고 감동하게 하시는 것이요
1-16절---------서로 서로의 상호관계 조절과 구성
17-38절--------우리의 실생활에 하나님이 지도
도덕질 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이 도적질 할 수 있는 형편을 허락하시고 이런 환경에서 이 도적질하지 말라 하는 말씀이 와서 나에게 깨우쳐 주심이 일차 백성에게 지시하심과 같은 것이고 우리가 실지로 그런 환경에서 안 하는 이것이 곧 성막 이루어 가는 것이요
39장 42절-44절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역사를 필하매---역사 마침은
재료 그것을 소속한 부속들을 만드심을 필했으니 여기에서 하나님이 축복하셨다. 하나 만든 후 축복함이 아니고 다 이루신 후 축복하여 복 주셨다.
40장2절 성막을 짜서 세운다.
말씀대로 행할 시 안될 경우
1> 우리는 아직 필하지 안한 것이 없는가를 찾아야 하겠고 물질 도덕 종교면에 있어서 부분적 순종으로 완료한 것이 아닌가를 미(未) 순종이 아닌가 살피고 또 다 해도 안 될 경우는 하나님이 가장 그것에서 좋은 시기를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것이요 다윗이 왕위를 기름 부어 세웠으나 다윗을 사울이 많이 죽일려고 하는 그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긴 후에 사울이 전쟁에 죽은 후 왕으로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모든 전체 존재에 다 유익하겠끔 하시고자 하나님이 사랑하심으로 더 좋은 복을 주실 줄 알고 길이 참고 기다려야 할 것이요 모르드개가 왕에게 베푼 공로를 일찍 얻어먹었으면 50척 나무에 죽었을 것이나 이것을 오래 동안 숨겨 자라게 한 후 내일 죽을 밤에 들고 나와서 구원하게 하신 것이요. 그런고로 모든 역사를 다 마친 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요 그런고로 모든 면이 구비해야 한다. 과학, 도덕, 종교적이야 할 것이요. 우리는 기도를 할 시 바른 깨달음을 많이 주시겠금 기도해야 할 것이요 주님의 피는 화목을 위해서 흘린 피요 주님은 화목의 제물이요 화평을 노력하는 여기에서 주님의 피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요
39장 43절; 명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모세가 축복했다.
하나님 말씀.
1> 계시가 다 두 번씩 나타났다는 것 하나는 그저 상식으로 주셨고 하나는 실제로 이루도록 주셨으니 이중 계시로 완성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도 하나님 말씀대로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이 말씀이 써야 할 그 시간 그 형편에 말씀이 떠오르고 나타나는 것이 둘째 계시오
2>모든 역사 필한 후 된 것.
3> 모든 역사가 미쳤으나 하나님의 명하신 역사가 필해졌을 그 때 축복해 주셨다. 성막 짓는 데의 든 재료와 속한 기구 및 사용하는 모든 사용법 사용하는 목적이 어디 있나?
1. 성막 짓는데 필요한 재료.
금, 은, 놋, 청색, 자색, 홍색실, 가는 베실, 염소털,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 해달의 가죽, 조각목, 등유, 관유에 드는 향품, 분향할을 만들 향품, 호마노, 보석,(24가지)
정금; 속죄소, 등대,
조각목; 궤, 상, 번제단, 분향단, 기둥, 판자
놋; 번제단, 뿔 (입힘), 통, 부삽, 대야, 고기, 갈고리, 불 옮기는 그릇, 물두멍
계시록 11장 22절을 이방사람들이 밟도록 42달 동안 내어 주라는 것은 하나님 간섭 교회가 적고 세상권세에 억눌린 교회가 많을 것을 말하심 성전 밖 마당 세상에 (이방에) 억눌린 교회에서 한 층 들어가서 번제단을 통과해야 됩니다. 번제단은 하나님께 다 바치는 제사가 번제단이요 이것은 자기의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니 다 자기 전부가 주님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번제단을 드리는 것이요.
출12장1절; 자기 몸을 번제단으로 드린 후 옳고 그릇된 것을 분별할 수 있어 외부에서 교회라고 하나 내부에는 번제단을 통과치 않은 것은 전부 이방인에게 내어준 이방인의 마당이라고 했으니 기독자가 번제단을 통과하기 전에는 전부 이방인이요 교회가 번제단을 통하기 전에는 전부 세상이요 이방인의 마당을 외부에서는 저것도 교회라고 하나 예수 믿는 안에서 들어와서 보면 그것을 곧 세상사람이라도 말이요
그런고로 번제단을 통과한 것은 자기의 전부를 주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그 때부터 하나님의 성전이요 번제단은 성전 밖 이방인의 마당에 있습니다. 자기 전부는 예수님의 피로 산 것인 줄 아는 것이 예수 믿기 시작한 것이요.
세수통은 번제 드린 후 세수통에서 손을 씻게 되니 이는 정신 목욕한 것을 상징하니 이는 성결케 하는 통이요 이는 자기 성결케 하는 것이니 자기 전신이 주님의 것인줄 알고 바칠 때 주님의 피로 깨끗케 되는 것이요 인정하여 살 때 그 때는 성결이 시작되는 것이요 성결하면 성소에 들어간다. 성결 후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이 계시는 성소 곧 성전이 되었으면 첫째 할 것은 등대와 떡상이니 이 둘은 나란히 같이 있으니 떡상의 상징은 우리 몸을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소비된 나의 정력 그것이 떡이요 등대의 상징은 세상에 환하게 비추는 세상의 신덕 빛의 생활에는 떡상과 나란히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잡수실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떡상이 될 수 있다 떡상과 등대가 나란히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 참 하나님이 잡수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약식, 떡 즉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나의 자체가 희생되어지는 이것을 하나님이 흠향 하시고 이것이 곧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등대가 되는 것이요 희생했으나 이것이 빛이 되지 못하면 안 되는 것이요 희생하는 것과 신, 불신의 덕되는 것은 별개이니 이는 희생은 했으나 덕이 없으면 이는 떡상만 있는 것이요 빛은 있으나 희생이 없으면 이는 떡상이 없는 것이요. 그런고로 우리는 떡상 등대를 나란히 겸전해야 한다.
향단은 성소에서 제일 깊은 자리 있으니 향단은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위치를 가르쳐 향단이라고 하니 기도, 찬송, 영감 받는 이것 모두 향단에 속하는 것이요 이것이 죄가 있는 범위에서는 최고로 높은 것이요 성소는 죄의 문제가 완전히 청상되지 아니한 범위 안이고 지정소는 완전히 죄의 문제가 청산된 죄가 없는 곳 아직도 죄의 요소를 가지고 영감 받고, 찬송, 기도할 수는 있어.
그러나 그 안에 법궤 하나님의 법 마련한 그 위 속죄소 이는 최후 관계를 맺는 곳이니 법궤는 오늘 우리의 하나님의 법도가 나의 주관 자율이 되어지는 단계에까지 가는 곳에서는 나의 죄가 전부 청산되어야 한다.
휘장은 하나님과 사람간에 가루어져 있는 죄악이니 이것이 해결되어야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있다. 휘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가로막과 있는 죄악을 모형 하여 만듬. 이는 우리로 말하면 성소에 속한 것은 마치 우리의 육과 같고 (아직 중생 밖의 곳이요) 이것이 육체가 지성소 되는 것은 이다음 주님이 오셔서 부활 후는 지성소요 지금도 우리의 지성소 된 부분이 있는데 이는 중생 된 영이요 육은 부활하면 휘장을 털치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요 영은 중생 되는 이것이 지성소 들어가는 것이요 부활 후 무궁세계에 들어가는 이것이 곧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요 하나님의 모든 법이 나의 자율과 같게 되니 중생된 영의 성질이 곧 하나님의 성질이요 중생된 영과 하나님은 한 덩어리이요 그러면 이 후는 법궤 위에는 구름이 옹위 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법이 자기 주관이 된 후에는 천군 천사가 우리의 수종자가 되는 것이요 우리의 영은 천군 천사 위에 있어 우리 영을 도우고 있다.
속죄소는 하나님이 강림하여 계시는 곳이니 하나님이 자기 율법과 자율이 된 후는 천군천사가 옹위 하는 하나님의 속죄 구속받은 자로 영원토록 하나님을 모시고 있으니 거기 가야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해 주신 구속을 바로 깨닫고 구속받은 자로 구속을 바로 알아 이 구속 가지고 영원히 하나님은 우리를 대하고 이 구속으로 하나님을 대하여 하나님과 우리와 연결되니 이 연결은 우리편은 구속이요 상대는 하나님이요 하나님과 가장 가깝게 나아가는 머리가 마주치는데 이 제일 첫 대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구속이요 사죄 칭의 받아 얻은 새생명 이것이 하나님과 영원토록 결합하여 사는 이 생활이 지성소 생활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