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그림과 글씨의 관계를 알아보자. 중국 사람들은 '글과 그림은 근원이 같다(書畵同源)'는 말을 자주 쓴다. 즉 서예와 회화는 시작이 같다는 말이다.중국의 글자인 한자(漢字)는 상형문자를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림과 같은 장식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갑골문과 금문, 그리고 전서·예서 등은 도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또한 실용적 필요성에 의해 서사 기능을 감당하던 '서(書)'가, 한말(漢末) 이후에 등장한 초서(草書) 단계에 오면, 그림과 같은 예술적 선묘감(線描感)과 율동미를 갖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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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관계가 이처럼 하나로 인식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국의 그림과 글씨가 모두 붓이라는 동일한 도구를 사용하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붓은 짐승의 가는 털로 만들기 때문에 '모필(毛筆)'이라고 부른다. 중국의 붓은, 끝이 평평한 서양화 붓과 달리 중심이 뾰족하게 모이도록 만든다. 뾰족한 붓끝을 중봉(中鋒)이라 한다. 중국의 그림이나 글씨에서는 붓끝이 선의 중심을 지나가도록 하는 중봉필법(中鋒筆法)을 주로 쓴다. 따라서 글씨와 그림에 있어서 선의 질감이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장르가 분화된 근대 이후, 수묵화(水墨畵)나 문인화(文人畵)가 여전히 서예 영역에 속해 있는 것도 중국 그림의 이런 전통과 관련이 있다. 또한 중국 그림이 면(面)보다는 선(線)을 중요시하는 것도 이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면 글씨(서예)와 글(문학)은 어떤 관계인가? 글씨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혼합되어 있기 때문에 공간적이며 시간적이다. 반면에 글은 시간적이다. 왕희지의 글씨를 통하여 그 관계를 알아보자. 옆 페이지 상단의 글은 왕희지(王羲之)가 진(晉) 목제(穆帝) 서기 353년 3월 삼짇날 당시의 42명의 명사들과 절강성 소흥 난저(蘭渚)에 있던 정자에 모여 곡수연(曲水宴)을 베풀고, 여기서 지은 시를 모아 만든 시집의 서문을 쓴 것이다. 먼저 작가는 연회의 시간, 장소, 이유, 참석자의 면모를 밝혔고, 이어서 연회 장소의 풍광을 서술하였다. 또 참석한 사람들이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 한 잔 술에 시 한 수를 읊조리며 마음 속 깊은 곳에 담긴 그윽한 정을 풀어내는(暢敍幽情) 모습을 그렸다. 그러므로 이 글은, 수미가 일관하도록 감정이 시간의 순서에 따라 서술되어 있다.
그 행간에는 인생과 자연을 대하는 시인들의 감흥과 상상력이 나타나 있다. 인간의 자족(自足)과 비애가 교착하고 있어, 현실 속을 살고 있으면서도 정신세계로 초월하려고 한다. 조물주가 만든 영원한 시간, 그 속에 사는 인간의 유한한 삶에서 오는 슬픔이 대비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유한(有限)한 삶이지만 인간의 감회로 빚어낸 문학은 영원할 것이라며 작가는 글을 맺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영원한 것을 동경하는 인간의 애절한 소망, 유한한 인생에 대한 애상, 그러면서도 유한한 삶을 영원한 세계에 담아보려는(世殊事異, 所以興懷, 其致一也.) 중용적 사유가 잘 나타나있다. 이 글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 속에 작자의 감정과 정서가 녹아 있다. 그러면 왕희지는 이러한 정감과 사상을 공간적으로 어떻게 표현하였는가? 글자는 크고 작은 것, 길고 짧은 것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고, 물 흐르듯이 내려쓰고 가로 열을 맞추지 않아 딱딱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점과 획이 서로 어울려 다양하면서도 변화된 글자의 구조를 이루고 있어 글자마다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다.
어떤 필획은 평온하고, 어떤 것은 험준하며, 어떤 것은 편안히 쭉 편 듯 하고, 어떤 것은 안으로 수축하고 있다. 해서처럼 반듯하면서도 초서처럼 유려하다. 붓을 마음껏 휘둘러 한 글자도 구속됨이 없으면서도, 필획의 시작과 끝이 적당하고 중봉이 필획을 관통하는 법도가 매우 정확하다. 공간적으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적 미학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즉, 왕희지가 추구하려고 했던 시간의 중용적 세계를 공간의 중용적 미학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이처럼 서예는 글자를 형상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공간적이지만, 일을 시간적 흐름에 따라 기술한다는 점에서 시간적이다. 이 두 차원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서예이다. 따라서 서예예술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조화가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