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20 12:46
이러한 회화사적 흐름 속에서 보면, 중국 그림은 문인학사들의 사의화적 전통과 화원화가들의 사실화가 양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중국 그림의 또 다른 특징은 무엇인가? '시서화' 전통이 또 다른 특징일 것이다. 중국인들은 '시와 서예와 그림에 모두 뛰어나다(詩書畵三絶)'라는 말을 종종 쓴다. 즉 한 사람이 문학과 서예와 회화에 모두 탁월하다는 말인데, 이는 문학과 회화, 그리고 서예가 하나라는 인식을 기초로 하고 있다. 대상을 보고 마음에서 감흥이 일어 문득 그것을 노래로 부르면 시가 되고, 그것을 종이에 문자로 표현하면 서예 예술이 되며, 그 대상의 형상을 직접 화면에 묘사하면 그림이 된다. 이 순서는 정해진 것이 아니다. 그림을 먼저 그리고 나서 그림에 나타난 형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시를 쓴다. 이것이 제화(題畵)이다. '제화'는 단순히 화면에 묘사된 대상의 아름다움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미처 표현하지 못한 작가의 정신 세계를 설명하기도 한다.
高侯落筆有生意
고선생의 붓끝에 생동감이 넘친다
玉立兩竿煙雨中
안개 비속에 두 그루의 대나무가 곧게 서 있다
天下幾人能解此
세상에 몇 명이나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
蕭蕭寒碧起秋風
쏴쏴하며 푸른 대나무에 가을 바람이 인다
이 시는, 조맹부가 고극공이 그린 대나무의 의미를 읊은 것이다. 이것은 화가가 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대신 쓴 것이므로 타제시에 해당된다. 조맹부는 고극공의 대나무 그림을 '생동적(生意)'이라고 표현하였다. 안개비 속에 곧게 서 있는 대나무가 가을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과 그것이 가지고 있는 생동적인 세계를 언어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중국 그림은 이들 두 세계를 함께 표현하려고 하였고, 따라서 이미지와 텍스트가 동시에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면 두 세계를 한 화면에 표현하려는 관념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아마도 위진(魏晉)시대 현학자(玄學者)들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들은 자연 산수를 인생의 안식처로 생각하였다. 점점 '자연을 인격화·감정화'2)하였고, '자연'을 보는(見) 것이 아니라 느끼는(感) 것으로 여겼다. 중국의 산수화는 이러한 '자연의 감정화' 위에서 성립하였으며, 이것은 다시 '느끼는' 예술인 시(詩)와 만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림과 시의 융합은 바로 사람과 자연의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문인들이 화단의 한쪽을 차지하게 된다.
당대(唐代) 중엽부터 북송대(北宋代)까지 미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들은 그림을 통하여 철학적 사유와 심미적 사유를 조화시키려고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산수화를 중심으로 하는 남종화(南宗畵)의 특징이다. 그 이전 그림이 주로 화려하게 성장한 제왕과 지배자 및 아름다운 사녀(仕女)를 그리던 것과 달리, 이들은 자연의 소박한 모습을 주로 그렸다.
또한 대상의 형체를 가급적 똑같이 닮도록 그리기(形似)보다는, 형체가 가지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표현(傳神)하려고 하였다. 우리들은 이 그림을 문인화라고 통칭한다. 그 문인화의 시조는 당나라 왕유(王維)로 알려져 있다. 문인화는 송대에 들어서 소동파(蘇東坡)에 의하여 흥성하였고, 그후 문인화는 중국 그림의 특징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문동(文同, 1018-1070)의 〈묵죽도(墨竹圖)〉는 문인화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림으로 평가된다. 이 그림에 대하여 소동파는 다음과 같이 문인화의 세계를 표현한 바 있다.
문동은 대나무를 그릴 때 대나무만 응시하고 사람은 보지 않았다. 어찌 사람만을 보지 않았겠는가. 멍하니 자기 자신의 존재마저도 망각하고, 그 자신이 대나무와 하나 되었다. 그래서 청신(淸新)함이 끊임없이 배어 나온다. 장자가 세상에 살아있지 않으니, 누가 이 예술적 경지를 알아주랴.
(與可畵竹時, 見竹不見人. 豈獨不見人, 幸然遺其身. 其身與竹化, 無窮出淸新. 莊周世無有, 誰知此凝神.)
이처럼 수묵을 위주로 하는 문인화는, 사물의 외형에 대한 묘사보다 대상의 내면과 작자의 정신세계를 표현하였다. 그 세계 역시 이미지와 텍스트가 조화될 때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시간과 공간을 조화시키는 시화의 통합 결과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