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20 12:35
1840년 아편전쟁(阿片戰爭)에서 패하고 난 뒤, 중국에서는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전통적인 중화주의적 세계관이 동요하기 시작하면서 대포와 군함으로 상징되는 서양의 힘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기에 이른다. 여기서 일군의 지식인은 중국의 정신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서양의 과학기술(구체적으로는 대포와 군함)만 가져오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 데 반해, 또 다른 일군의 지식인들은 그것을 만들어낸 정신 자체를 배워야 함을 역설했다. 이것이 정치적 맥락에서는 각각 '양무운동(洋務運動)' (1862)과 '변법유신운동(變法維新運動)' (1898)이라는 형태로 나타났고, 정신사적 맥락에서는 계몽운동의 형태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