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역사

 

1989. 3. 15. 수야

 

본문: 갈라디아서 6장 7절∼8절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와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오늘은 제 3 공과입니다. 공과 받으신 분들은 다 내어 가지고 펴 보면  좋겠습니다.

 본문. 갈라디아서 6장 7절로 8절.

 제목은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요절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세기 12장 1절.

 서론. '보이는 모든 것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더욱 크심을 두려워하고  바라보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보이는 모든 것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더욱 크심을 두려워하고 바라보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본론. 일. '아브람은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였을 때에, 창세기 14장  21절로 24절까지에 있는 말씀입니다. 희생하였을 때에 하나님은 아브람의 방패와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셨습니다. 창세기 15장 1절. 사울 왕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취하였을 때에 사무엘상 15장 12절. 사울 왕은 망하고 또 망하고 마지막은  전쟁에서 자기와 부하는 자살로 세 아들과 충신들은 전사로 망하게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31장 3절로 6절.'  이. '아브람과 사래가 여호와 하나님만 위하여 살 때에 아브람은 아브라함이라는  축복의 이름을 주셨고, 창세기 17장 5절. 사래는 사라라는 축복의 이름을 주셔서  두 분은 천하 만민의 구원의 조상과 복의 기관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17장 15절로  16절.'  삼.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심히 친밀하였으나 항상 조심하여 영감으로 기도하고  함부로 기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창세기 18장 27절로 33절.'  문답에, '모든 영광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모든 영광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영광이라 하는 것은 아주 무엇이 잘됐을 때에 그때에 칭찬을 사람이  받으면 그 영광을 사람이 받은 것이 되겠고, 하나님이 칭찬을 받으면 그 영광을  하나님이 받은 것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무 엇이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만한 그런 일을 했을 때에 칭찬 돌아오는 그 영광을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하는  물음입니다. 거게 대 답에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 지극히 큰 능력과 축복을 받고  자기가 차지하면 비참한 멸망을 받습니다.'  둘째 문답. '아브람과 사래에게 주신 축복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과  사라입니다'  셋째 문답.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하였습니까?' '조심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지금 창세기 공부를 내리 해 가는데 차차 창세기, 출애굽기 그렇게 해서  순서적으로 주일학교를 가르치려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런 공과는  아무런 조직이나, 또 거기세 아주 참, 잘 문법적으로나 문장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만한 그런 가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나 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서 학생들 심리 속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배워서 기억하고 있으면 그들이 자연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따라서 살  것이기 때문에 그런 면을 생각하고 조직이나 순서가 없는 이런 여러 문제에 대한  말씀을 끌어 모아서 공과를 만들었습니다.

 서론에 '보이는 모든 것' 보이는 하늘도 땅도 있고, 보이는 사회도 있고, 국가도  있고, 모든 민족들도 있고, 또 문화들도 있고, 많은 과학들도 있고 이러니까  사람들은 보이는 그런 것을 아주 위대하게도 생각하고 또 두렵게도 생각을  합니다. 네, 그런 것은 괜찮습니다. 위대하게도 생각하고 두렵게도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볼 때에 그런 것들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그분은  그것들보다 무한히 크고 두렵고 한 이 사실을 깨닫고 보이는 큰 것을 볼 때에  그것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더 크신 것을 깨닫고, 또 보이는 모든  두려운 것을 볼 때에 보이는 두려운 그것보다 그것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더 두려우신 것을 깨닫고, 또 보이는 이런 것 저런 것 아름다운 것들이  있습니다. 뭐 자연의 아름다움도 있고, 인간의 아름다움도 있고, 모든 아름다움  있는 그런 아름다움을, 볼 때에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시고 그것을 보존하시는  그분은 그보다 무한히 아름다운 것을 깨닫고 그보다 더욱 아름다운 하나님을  아름답게 여기는 이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보이는 크고, 두렵고,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이것을 없는 가운데서 만드시고  주관하시고 계시는 그분은 이것들보다 무한히 크시고, 무한히 두렵고, 무한히  아름다움을 그런 것들을 인하여 더욱 깨달아지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아닌 사람들은 그만 그런 것을 보면 거게 파묻혀 버리고 맙니다.

거기에 밀려서 아주 처박혀 버리고 맙니다. 이것도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대개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보이는 큰 것을 볼 때에 그것으로 그치고 '아, 크다.'  놀라고 그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연상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은 땅에,  속한 사람입니다. 예수 믿어도 땅에 속한 사람이오.

 땅에 보이는 큰 것을 볼 때에 그것으로 인하여 '아, 저렇게 큰 것들을 없는  가운데서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크냐?' 하여 보이는 큰 것을  인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것보다 무한히 큰 것을 깨닫고, 또 보이는  두려움을 인하여 보이지 않는, 보이는 두려움 그것보다 보이지 않는 무한히  두려우신 분을 깨닫고, 보이는 이런 종류 저런 종류의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아름다운 그것을 없는 가운데서 만들어 내시고 보존하시는 그분은 무한히  아름다운 것을 깨달아 믿고 찬양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제 그러면  지금 몇 가지 말했습니까? 세 가지 말했습니다. 요걸 기억해요.

 이것을 깨닫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사람이요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보이는  것을 무시하라는 말 아니오. 보이는 것도 큰 것만치 크고,두려운 것만치 두렵고,  아름다운 것만치 아름다우나 그것을 만드시고 보존하시는 그분은 그런 걸로 측량  못 할 만치 무한히 크고, 무한히 두렵고, 무한히 아름다운 것을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이 하나님의 크심과 두려우심과 아름다우심을 깨닫는 그 사람이 하나님  백성입니다. 그것이 없이 피조물만 보고 그것만 상대해서 거게서 그것으로  인하여서 하나님을 찾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 아니고 땅에 속한  자들입니다.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뭐 장로 목사가 돼도 땅에 속한 자입니다.

마지막에는 그 행위가 땅에 속한 행위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러기에 기본구원은  있지마는 건설구원은 없기가 쉽습니다.

 본론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자기가 자기 조카가  있던, 소돔 왕이 포로돼 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집에 있는 그 식구들을  거느리고 가 가지고 사대 강국을 쳐서 물리치고 그들이 가진 것과 빼앗아 간 그  적산들을 많이 점령했습니다. 적의 재산을 다 탈취했습니다. 그러면 그 재산은 참  어마어마라고 할 만치 큰 재산이었습니다.

 이랬는데 소돔 왕이 와 가지고 '참 고맙습니다. 우리 백성을 포로된 데에서  구원시켜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사람은 저에게로 돌려 보내 주시고 이 재산은,  적산. 이 재산은 전부 아브라함께서 다 차지를 하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게 또 법리입니다. 전쟁해서 이기면 진 자들의 모든 것을 다  빼앗는 것이 그것이 역사요, 법리요, 통계입니다. 이랬는데 아브라함은 가만히  생각하니까 이 재산은 내가 전쟁해 가지고 이겨서 빼앗은 재산이기 때문에 내가  가질 수 있기는 있는 재산인데 만일 이 재산을 내가 가지게 되면 이들이 저거  나라에 돌아가 가지고 뒤에 말하기를, 아브라함이 뒤에 모든 게 성공되고 부자가  되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겨서 부자됐다' 이렇게 말할 때에 '하나님 섬겨 부자  된 게 아니고 그때 우리 전쟁 났을 때에 와 가지고 그 모든 적들의 재산을 다  전쟁에 이겨서 탈취해서 그래 그것 때문에, 그때 전쟁해 가지고 적산 뺏들은 그  재물 가지고 아브라함이 부자됐다.' '아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자 됐다.' '전쟁 때에 소돔 나라의 전쟁이 됐을 때에 그  전쟁에서 빼앗은 그 재물로 부자됐다' 이런 말들이 있을 거라 그말이오.

 가만히 생각하니까 으례히 차지해도 되기는 되는 것이지마는 나중에 그리 되면  '아브라함은 우리 전쟁에 탈취한 그 재물로 부자됐지 하나님으로 부자된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으로 얼마든지 부자될 수 있는데 '하나님으로  부자됐다' 이러면 '하나님 섬기면 참 우리 복 받겠다' 이럴 건데, '전쟁 이겨서  그가 부자됐지 하나님으로 부자된 것이 아니라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오히려 전쟁에서 부자됐다고 그렇게 말을 해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부자됐다는 하나님께 영광 돌러는 일을 영광 돌리지 못하게 되겠다.' 하는 그것을  아브라함이 발견을 했습니다.

 발견하고, '아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거 이 전쟁에서 얻은  재물은 실라끈 하나나 신들메 하나라도 내가 차지하지 않겠다.' '왜 그러십니까?'  '이후에. 지금 나는 하나님의 축복받아서 부자돼 가 지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얼마든지 될 터인데, 하나님 바로 섬기면 하나님의 축복으로 못 할 일이  없는데, 너희들이 뒤에 생각하기를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고,  소돔 왕 그 전쟁 때에 적산으로 말미암아 부자됐다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자된  것을 적산으로 부자됐다고 그렇게 말을 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하신 그  영광을 가리울까 해서 내가 절대로 너희 이 적산은 실라끈 하나도 취하지 않겠다.

사람도 가져가고, 재물도 다 가져가라. 이 전쟁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은 그것은  자유로 하지마는 내게 속한 사람들은 한 실라끈도 차지하지 않겠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 말씀이 어데 있는고 하니 창세기 14장 21절로 24절에 보면 그  기록돼 있습니다.

 이랬는데 그 조금 내려와서 15장 1절에 보면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롯하고  시비하고 난 다음에도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또 이 번에 소돔 왕하고 서로  대화하고 난 다음에 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네가 그렇게 많은  재산을 내게 영광 돌리는 그 영광을 조그매라도 감하게 될까 해서, 내게 영광  돌리는 것을 영광 돌리지 못 하도록, 나를 영화롭게 될 일을 영화롭게 이렇게  되지 못할까 해서 네가 이렇게 했으니 네가 내 영광을 위해서 모든 일을  계획하고 판단하고 이렇게 하니 내가 너에게 어떻게 너를 대우할까? 네가 그 큰  많은 재물을 내게 내 축복으로 네가 잘되는 그것을 그게 없으면 하나님, 내게  영광을 돌리게 될 터인데 그 재물 받으면 다른 사람들이 오해해 가지고 내게  돌릴 영광을 돌리지 못하도록 될까 해서 네가 큰 그 재물을 생각지도 않고 내  영광만 위해서 그렇게 했으니 내가 너에게 어떻게 해 줄까?'  15장 1절에, "내가 너의 방패와 지극히 큰 상급이 돼 주겠다" 이렇게 말했어.

"내가 네 방패와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겠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방패라  말은 '내가 너를 어떤 모양으로 해하려고 오든지 네 모든 원수를 내가 다 막아  주겠다' 하는 말입니다. '내가 네 방쇄가 되겠다. 너를 해하러 오는 어떤 것이든지  내가 그것을 다 막아 주겠다' 하는 그 말입니다. '내가 네 방패가 되겠다'  또 그 다음에는 "지극히 큰 상급이 되겠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네가 전쟁에서  이기고 모든 많은 재물을 내 영광 위해서 네가 취하지 아니하고 했으니 내가  이제 너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겠다.' 그 말은 내가 네가 어떤 경쟁이든지  전쟁에서든지 서로 힘을 겨루는, 힘을 겨루는 그 모든 전투에 있어서 내가 그  전투를 승리케 해 가지고 너에게 큰 상급을 받도록 내가 그렇게 해 주겠다.

 그러면 이 상급이라 말은, 선물이라 말은 그저 주는 게 선물이요, 상급이라는  것은 전투해 가지고 승리한 자에게 상급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내가 너에게  모든 것을 무한히 풍부하게 해 주되 내가 지극히 큰 상급이 너에게 되어 주겠다.

너에게 지극히 큰 상급을 네가 받도록 그렇게 나는 평생 너에게 지극히 큰 상급,  무슨 일이든지 닥치면 승리하고 상급받고, 닥치면 승리하고 상급받고, 이래서 모든  전투 모든 경쟁에서는 다 이기고 상급을 받도록 내가 해 주겠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그분은 늘 하나님이 그와 같이 자기가 평생 살  동안에 그렇게 해 주셨고 자손들에게도 영원히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이래서, 여게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이 영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 욕 돌아가면  어쩌나? 하나님에게 영광이 못 돌아가면 어쩌나? 하나님에게 나쁜 소리가  돌아가면 어쩌나? 하나님에게 욕 돌릴까 해서, 영광이 가리워질까 해서 이렇게  자기의 이해를 상관하지 않고 산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의 방패와 상급이 되어  주신다 하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깨달읍시다. 요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칩시다.

 20세기에 참 인정 없는 세상이요, 믿을 수 없는 세상이요 철통같은 약속이라도  그까짓 저 뭐 조석으로 변해집니다. 이러니까 세계가 흉흉한 바다 물결같이  어데로 어떻게 될런지 모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구 서로 등치고 간  내 먹는, 등어리를 툭툭 두드리며 속으로는 간 내 먹는 기묘한 이 간교, 이간,  술책, 잔인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자기 수욕도 면치 못하고 사람들은 모두 다  힘껏 자기 명예, 자기 지위, 자기 영광, 자기 권위 이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은  사는 이 세상에, 이 세상에 그런 방편으로 사는 자는 지옥 생활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뭐 대통령 꿈을 꾸는 사람들도 결단코 평안하지는  아니합니다. 세계 어떤 강대국의 수령이라도 다 그러합니다.

 이런데, 천지의 대주재시요 모든 것을 주권으로 능치 못하심이 없는 그분이  우리에게 약속을 선포해 놓기를 '네가 내 영광 위해서 모든 것 돌아보지 않고 내  영광 위해서 네가 이해도 불구하고, 명예도 그런 것도 불구하고 내 영광에  조그만치라도 손해갈까? 내 영광이 가리워질까? 내 영광 위해 살았으니 내가  이제 네게 대해서 방패와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겠다.' 약속하신 요 약속을  확신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평안하게 살 수 잇습니다. 평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뭐 그분이 주권으로 계시니까, 그분이 이렇게 해 주시니까 저희들끼리  와닥와닥 싸울 것이 뭐 있습니까? 모든 싸움은 하나님에게 욕 돌아가지 영광  돌아갈 것 없습니다.

 이러니까 뭐 이 험한 세상에도 어떻게 평안하고, 즐겁고, 자유롭고 살기 쉬운  생활을 할 수 있는지. 그러기에 하나님 말씀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길  자도 없고,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에서 평안할 자도 없고,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이 모르는 영광과 존귀와 승리를 가져 올 자도 없는 것입니다. 요 약속을  믿고 학생들에게 단단히 가르쳐 놓으십시오.

 그랬는데, 그 대조의 사람이 있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취하였을  때에 그는 비참하게 일생을 참 왕인데도 멸시, 천대, 모욕 진뜩 당했습니다 일생  동안 항상 왕이지마는 모욕과 천대와 멸시를 당했습니다. 이러다가 마지막에는  전쟁이 났는데 자기에게 아주 참 보배로운 부하, 가장 가깝고 다정한 부하 한  사람과 자기는 동시에 자결해서 자살해 죽었습니다. 전쟁에서 자살해 죽었습니다.

왜? 이는 영광을 하나님에 돌리지 않고 하나님 영광을 가로취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2절에 보면 제가 전쟁을 해서 그만치 이겼으면 하나님 앞에  먼저 경배하고, 또 미진한 게 있으면 다시 자기가 더 수종하고 그럴려고 하지  않고 제 기념비를 세워서 '내가 전쟁해 가지고 이렇게 승리했다' 하는 자기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리지 않고 제가 잘해 그랬다고, 그  전쟁을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 손에 붙여 숴서 그 전쟁 이겼고 이겼는데 끝까지  복종하지 않고 사람 하나 남겨 놓고 짐승 몇 마리 남겨 놨다가 그가 마지막에  이렇게 비참하게 됐습니다.

 그때에 자기 명예의 비, 승리의 기념비를 세울 게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하나님께 감사의 비를 세우든지, 그리 안 하면 감사의 제 사를 드리든지 이럴  일이지 하나님이 하신 것을 제가 잘나서 했다고 그 영광을 가로취한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네가 잘하거든 네대로 해 봐라' 하나님이 손 딱 떼고 있으니까  결국은 그는, 다른 사람은 다 그 죄 때문에 망할 것 없고 가장 자기를 잘 섬기는  부하 한 사람과 자기와 두 사람이 자기 칼에 엎어져 가지고 자살로 마지막  전멸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래서,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무한 하신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그를 위해서 싸워서 그를 영광스럽게 존귀케 하고 하나님 영광을  제가 취한 자에게는 하나님 능력이 그렇게 참 비참하게도 수치를 당하고  망하도록 만드는 하나님이시라 하는 것을 이것을 우리가 깨닫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자기 힘 있는 대로 하나님에게 영광 돌려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한  자는 하나님이 전력을 기울여서 그를 영화롭게 존귀케 했고, 하나님이 하신 그  은혜를, 하나님 영광을 제가 가로막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제가 한  둣이, 제가 한 듯이 그 영광을 제가 가로취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비참하게  수치와 멸망으로 복수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뭐 그러기에 우리 교회서도 뭐 좀 하면 그걸, 이거 그래도 칭찬을 안 해 줘야 뭐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한 것도 진실되게 못 했으니까 이거 저거 혜 버리고 나면  자기에게 상급 될 게 없지마는 그래도 이 칭찬 안 해 줘야 조그만한 뿌스러기  상급이라도 있을 건데 이것도 칭찬 안 해 주면 이거 삐꿔서 도로 죄를 범할  것이기 때문에 할 수 없어 칭찬을 해야 되겠다 말이오. 칭찬해 주면서도 기가  찹니다. 이걸 안 해 주는 게 좋은데 안 해 주면 저게 배나 마귀의 자식이 되어서  날뛸 터이니까 상급이 없어도 어쩔 수 없어 '아, 요번에 참 수고했습니다.' 이렇게  칭찬을 해 줘야 되겠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뽀스래기 상급 만 들어 놓은 것도  톨톨 털어 버려야 마음이 시원하니 이거 마귀 요놈한테 꼬여 놓으니까 우리가 왜  이렇게 자멸하는 행위를 하는지? 오늘 여게서 요걸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전부를 기울여서 그를 영광스럽게  했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고 자기 영광, 자기 존귀, 자기 위해서  사람에게 말해 가지고 '나를 높이라. 나를 인정해라. 나를 따르라. 나를 위해라. 내  힘이다.' 이래서 호주들이 자기 집에서 '허, 하나님이 기르나? 이거 내 힘으로 너거  입에 밥이 들어가. 나로 뭣 돼. 뭣 돼.' 해 가지고 그렇게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아니하고 영광을 제가 가로취해서, 인간이 무엇을 합니까?  아무것도 못 합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그래 해 놨어. 경영은 사람이 하나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했습니다. 인간이 뭐 합니까? 아무것도 못 합니다.

 이런데 하나님이, 보기에는 제가 한 것 같지마는 실은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이렇게 하신 것이니까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하나님께서 또 자기에게 얼마든지  자기가 영광스럽도록 이렇게 해 줄 터인데, 그 영광을 제가 취해서 제가  칭찬받으려고 제가 존귀받으려고 이래 가지고 저를 안 높여 주면 안 됩니다. 무슨  일을 해도 저를 좀 칭찬을 해 줘야 하지 그걸 안 해 주면 그렇게 그것마저도 안  할 것이기 때문에 참 기가 차면서 마귀 그놈이 괘씸하면서도 그저 칭찬을 이래  해 줍니다, 여러 분들. 영광은 하나님에게 돌려야 됩니다. 무슨 일이든지.

잘됐느냐? 잘됐으면 그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십시오. 잘못됐으면 내가 들어서 잘못되게 했다는 걸 생각하고 책임을 내가  지고 하나님 앞에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이렇게 아름다운 일을 했습니다. 14 장에서 이런  아름다운 일을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살고 하니까 15장에 하나님이  칭찬을 하시고 17장에 가서는 이제 개명을 해 줬어 개명. 이름을 갈아 줬습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 이름을 이제 개명을 해 좋고 또 사래를 사라라 하는  이름으로 개명을 해 줬습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것은 모든 열국의  조상이 된다 복의 기관이 된다 하는 것으로서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됐고 사래가  사라가 됐습니다. 그것은 전부 둘 다 17장에 있습니다. 요것은 앞으로도 나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는 아브람 이름을 개명해 준 것은 17장 5절에 있고 아내  사래의 이름을 바꿔 주신 것은 17장 15절로 16절에 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을 바로 섬기는 자에게는 사람이 모르는 모든  면까지도 전부 축복으로 바꿔 주십니다. 여게 대한 깊은 뜻은 말할 시간이 없고  다만 학생들이 '아브라함이라 하는데 이래 됐는가?'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진 것, 사래가 사라로 이름이 바꾸어진 것 그것은 천하 만민의 조상과  축복의 기관이 될 것으로서 그 이름을 개명해 줬습니다. 시몬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 이다' 할 때에 베드로라는 이름으로써  개명을 해 줬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어떻게 그렇게  세밀하고 역력이 역사하시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셋째로는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심히 친밀했습니다. 아브라함을 성경에 말하기를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벗이라 했어. 하나님의 친구라 했어. 얼마나 친해 친구라  했겠습니까? 친밀하였으나 항상 조심하여 영감으로 기도하고 함부로 기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18장 27절 이하에 보면 소돔 고모라가 유황 불비로 전멸될것을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전멸하기 전에.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기도를 꼭  여섯 번 했습니다. 처음에 50인 기도하고, 사십오인 기도하고, 40인 기도하고, 30인  기도하고, 또 20인 기도하고 마지막에 여섯번째는 열 명까지 기도했습니다. 열  명까지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어, 의인 열 명이 있으면 그로 인해서 소돔을  멸하지 않고 참고 있지' 여섯 번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다 응답해서 아브라함의  소원대로 다 들어 줬습니다. 다 들어 줬어.

 그랬는데 그러니까 '의인 한 사람이 있으면 어쩔 것입니까?' 이렇게 기도할  것이고 그래도 저거 조카 롯은 의인인 줄 알기 때문에 '한 사람 있으면  어쩌렵니까?' 이래 기도해도 하나님이 들어 주실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이러나  아브라함은 그 다음에 다시 기도를 못 했습니다. 아브라함 마음에야, '열  사람까지는 허락을 해 주신다고 했는데 한 번 더 기도해서 만일 다섯 사람이나  한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이렇게 기도하고 싶었지마는 아브라함은  그 다음에 그 기도를 못 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그때 그 뒤에 그 이상 기도를 했더라면 하나님 앞에 대책망을  받았을 것입니다. 버릇 없는, 함부로 입을 벌려서 버릇 없는, 참 불효의 그런  책망을 받을 터인데 아브라함은, 일차 기도에 기뻐 웅답했고, 두번째 응답했고,  세번째 응답했고, 네번째 웅답했고, 다섯 번째 응답을 했고, 여섯번째 응답을  하셨지마는 일곱번째 감히 기도를 못 하고 중단했습니다. 그게 뭐이냐? 왜  중단했을까? 하나님께 그 안에 기도할 때 보면 '용서하십시오. 노하지 마십시오.

한번 더 기도 합니다.' 이랬으나 여섯번 기도하고 일곱번째 기도하지 못하게 된 게  뭐입니까? 그는 제 주장대로 하지 않고 자기 속에 신앙 양심 속에서 성령의  감동의 영감대로 기도했지 제 사욕대로 기도한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요것을 뭐  순서도 없지마는 우리들이 배워서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벌리면 안 됩니다.

또 기도하고 나서 아무나따나 그저 마구잡이 한 것처럼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것을  자기가 조심 없이 잊어버리고 그렇게 망령되어서는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됩니다.

 이래서, 아브라함은 그는 어떻게 해서 여섯번까지 기도해서 하나님이 웅답해  주시는 그 하나님이 그렇게 친밀하고, 친밀하고 만만한 그 하나님인데 어렇게  여섯번만 기도하고 더하지 못했을까 하는 그것을 우리가 잘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 두려워서 당신 양심 속에 영감의 허락이 아니면  기도를 못했습니다. 아무나따나 중얼중얼 마음대로 한 게 아니오.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함부로 하나님 앞에 지극히 크신 하나님인데 그분 앞에  그저 입을 중얼중얼 놀리는 그런 기도 하면 안 됩니다. 자기 마음은 이러면서  저런 기도 합니다.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아주 하나님 모욕하고 멸시하는  것입니다. 멸시하면 하나님이 당장 불을 내려 주십니까? 아니오. 그러나 하나님은  만흘히 여기심을 받지 않습니다. 멸시를 받지 않습니다.

 이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이 두려우신 분이요 어떤 분이신 것을 깨닫고 그분에게  내 중심이 아니면 기도 못 하는 것입니다. 나는 속은 이러면서 기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크게 멸시하고 모욕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아무래도 이거는  양심상 이 기도는 해야 되겠다. 이 기도는 당당히 해야 되겠다. 이 기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노여워하시지 아니하실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노여워하신다면  나는 거게 대해서 당당히 하나님 앞에 답변할 수가 있다.' 하는 그런 기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모세가 출애굽기 33장에 보면 하나님 앞에, 하나님께서 '내가 이스라엘을  진멸하겠다. 이스라엘을 진멸하고 내가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만들겠다.'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했어. '이스라엘이 이렇게 패 역하고 이러니까 이걸 다 없애 죽여  버리고 내가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겠다.'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모세가 거게서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노여워하시는데 거게서  무슨 기도를 하겠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깊이 양심 깊이 생각해서 하나님  멸시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해야 될 기도를 생각해 가지고 그가 기도했어.

'하나님이여 옳소이다. 이건 멸해야 됩니다. 멸하실라면 저도 같이 멸해 주십시오.

저도 같이 멸해 주시고 구원하려면 같이 구원해 주십시오.' 요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노를 돌이켜 버렸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고 조심 있게 우리가 기도해야 되지 그저 하나님의  기도 응답 듣는다고 아무 나따나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으로부터 한 40년 전인데, 이름은 내가 말하지 않습니다.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O장로님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참 기적을 많이 행한  그 기적의 장로님이라 하는 분인데 거게 와 가지고 집회를 한다고 해서 내가 꼭  한 시간 가서 들어봤습니다. 가족들은 보내고 나는 집을 지키고 있다가 한 시간  가서 들어봤는데 가보니까 누구든지 만나니까 이리 저리 자챠 이래 병낫게 해  달라고 자꾸 기도를 하는데 그래 내가 그때에 그걸 보고 뭐 기도하는 거야  나쁜가? 병 낫기야 나쁜가? 이렇지마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많고 함부로  기도한다. 하나님이 저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아니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노여워하실 것이다.' 그래 생각했는데 그번에 와 가지고 며칠 집회해도 환자  하나도 안 나았습니다. 병 하나도 안 나았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고 조심 있게 그분에게 입을 벌리고 해야  되지 그저, 자기 양심끼리도 생각해 가지고 '옳다' 판정되지 않는 그런 것을 마구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또 자기 마음에는 이러면서  속으로는 이러면서 겉어머리로는 위하는 척 하는 그 기도 가증스러운 기도입니다.

속으로는 미워하고 해치면서 겉어머리 입술로는 위해서 기도하는 것 하나님을  업수이 여기는 것이오. 우리가 사람에게 대하는 것이나 모든 대하는 것이  껍데기는 사람 같지마는 그것은 실은 책임자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마지막에  종착으로 봉착되는 것은다 하나님에게 가서 부딪혀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밤 공과에서 요것을 몇 가지를 기억해서 반사 선생님들이 외우고  자기도 요 안 지키면 안 돼. 지켜야 살고 안 지키면 죽습니다. 망합니다.

 문답에 '모든 영광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 지극히 큰  능력과 축복을 받고 자기가 차지하면 비참한 멸망을 받습니다.' 요것이 첫째  문답입니다.

 둘째로는 '아브람과 사래에게 주신 축복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과  사라입니다' 요것은 앞으로 성경 공부 해 나갈 때에 아 이들이 이름에 대해서  혼돈될 것이기 때문에 요걸 하나 넣어서 가르쳐 놨습니다.

 셋째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하였습니까?' '조심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 대우하는 것이 뭐 '하나님, 하나님' 사랑한다고 이게  아니고 하나님 대우하는 것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그분을 그분으로 알고  그분에게 당연한, 그분에게 마땅한 우리가 생각과 창대로 언행심사를 하는 것이  그것이 그분을 대우하는 것이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라고 말씀했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할 때에 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라는 요 말씀을 기억해서 아주 인간적으로 보면 그까짓 거 말할 수 없이  멸시 천대를 하지마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에게 대해서 자기가 조심하는 그게  바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인 것입니다.

 광고합니다. 주일학교와 중간반 학생들 어쨌든지 새벽기도에 참석을 시키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뒤에 가서 자기가 눈물 흘리면서 자식을 바로 잡으려고 해도 안  되는 것을 이럴 때 새벽기도에 참석시키면 사람이 됩니다. 이래서 새벽기도  주일학생, 중간반 다 다섯시 반에 예배 보니까 어쨌든지 빨리 가 가지고 새벽기도  마치면 빨리 가 가지고 참석을 시키도록 그래 하고, 그것이 힘 안 들고 뒤에  탈선되는 자녀를 바로 잡는 일이 됩니다. 이것 뭐 어려서 새벽기도 안 나온 것은  뒤에 잡을 도리가 없어. 공부 때문에. 공부시킨다고 공부 이거 때문에 그만 못 해.

나도 실패자 중에 하나라. 어쨌든지 공부 못 해도 새벽기도 참석시키십시오.

그러면 그의 장래도 행복이요 부모도 행복입니다. 요것 꼭 기억합시다.

 그러고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꼭 외우도록 해요. 어떤 부장이 말 하기를 쭉  둘러 보니까 도무지 반사들이 공과를 다 외우지 못하고 이래 가지고 보고  이러니까 떠듬떠듬 이래 가르친다고. 그거 안 됩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꼭 공과를  외우도록 하십시오. 외워 봤자 일 년에 열 명 공과밖에 안 됩니다. 열 몇  공과밖에 안 되는데 그것을 외우고 실천하면 그것으로 자기들의 구원이 굉장히  이루어집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공과가 나왔는데 요번 공과는 이번에는 보고 가르치지마는 그  다음 둘째 주일째 가르칠 때는 아무것도 종이를 들지 아니하고 외워 가지고  가르치라고 그래 할 것입니다. 이래 쭉 내가 시간만 있으면 내가 다른 사람  시키지 않고 쭉 돌아볼 것입니다. 어느 반사가 지금 공과를 안 외우고 그래  쪽지에 적어 가지고 가르치는가 그걸 한번 검사를 하겠습니다. 외워 가지고 이래  가르치면, 외워 가지고, 실천하고 외워 가지고 가르치면 막 반사가 가르칠 때에  속에서 불이 막 떨어져 나옵니다. 요번 주일은 냅두고 그 다음 주일에는 할 수  있으면 내가 한번 쭉 돌아봐서 만일 종이를 들고 가르치는 반사가 있으면 내가  다 기억하고 그 반사에게 좀 우사를 좀 시켜 줄 것입니다.

 그러고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고. 새벽기도를 계속해 나와요. 못난 짓  하지말고. 부장 선생님은 자기에게 속한 모든 믿음의 자녀, 제자들을 꼭 마음 속에  넣고 길러야 됩니다. 권찰도 그래요. 권찰도 자기 마음 속에 자기 식구를 길러야  그게 잘 자라지지 다 잊어버려 놓고 심방 갈 때 그때사 생각하고, 자기 마음 속에  오랫 동안 생각해 가지고 있는 거게서 삽니다. 다른 걸로는 살리는 길이 없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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