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3 22:03
하나님의 아들들
본문 : 에베소서 1장 3절∼14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3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이 아버지라고 한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그 삼위의 층하가 있는 그런 것을 만한 것 아닙니다. 영원 전 계시기도 같이 계셨고. 지혜도 능력도 영광도 다 하나시며 또 그 본체도 하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그 하는 말.'하늘에 속한' 하늘에 속했다 말은 이 공간적인 하늘을 말하는 거 아니고 이 하늘은 가치적인 하늘을 말합니다. 가치적인 하늘, 다시 말하면 평가적으로 어떤 피조물도 따라 오지 못하는 그런 지고한 하나님에게 속한 그런 것을 가리켜서 하늘에 속한 것이라 그렇게 말씀했고,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신다.신령 한 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것은 그 시간의 제한이 없고, 공간의 제한이 없고 또 그 종별의 제한이 없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그러면 그 거는 영원하고 무한하고 완전하기 때문에 꼭 요게만 있어야 되고 조게만 있어야 되는 게 아니라 아무 데나 언제나 다 영생하고 항상 있는, 항존하고 완전하고 모든 것이 무한한 참의 성을 가리켜서 신령한 것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복 줘 가지고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셔 가지고 우리를 자기의 아들이 되게 하셨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자기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실려고 이렇게 하나님의 목적을 정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뜻은 첫째는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어떤 피조물로 나온 것이 아니고 순전히 자존하신 하나님으로서만 나온 그 면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아들이라고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피조물로 인하여 서 이와 같이 됐지만 우리가 구원 얻는 것은 순전히 하늘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오는 것, 하늘에서 온다 말은 이 피조물 차원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자존하신 하나님에게서 우리에게 직접으로 온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또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그 형상과 꼭 같은, 비록 피조물은 피조물이지만 하나님과 꼭 같은 그런 형상을 가진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가지신 그 속성과 같은 그런 속성을 가진, 신격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속성을 가진 그 인격성을 가리 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렇게 둘째로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대 이어서 하나님의 후사라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후손이라.
하나님의 후사라. 그러면 하나님도 뭐 죽고 다시 대를 잇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그 모든 소유도 다 상속받고 또 사역도 상속받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전히 하나님에게서만 난 자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외형은 첫째 아담에게 속한 외형을 가졌으나 이것은 다 썩을 것이 썩지 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다 변화함을 받아 가지고 우리의 외형을 가지게 되고, 우리의 내형은 순전히 하늘에서 내려온 새로 지음 받는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포도나무 비유에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요 주님은 포도나무라고 이렇게 비유한 것은 포도나무 가지는 순전히 포도나무에게서만 나온 것이지 포도나무에게서 나오지 안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온 것이라면 그거는 가지가 아니고 그거는 다른 것들인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에게서만 나왔다. 또 하나님과 꼭 같은 그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것이다. 셋째로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소유적으로 사역적으로 후사로서 계대한다. 유업을 받는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아들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또 외형은 영광의 찬미라. 우리 자체는 하나님의 아들이 요 그 본질과 본성이 모든 속성이 하나님과 꼭 같고. 또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을 다 계대해서 하나님 후사로서 그 모든 것을 맡아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 노릇하시는 그것을 이제 우리가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 노릇을 하고,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시은의 역사했던 것을 이제 우리들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시은의 역사를 하도록 그렇게 되는 것을 가리켜서 아들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에게서만 나온 거 또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과 꼭 같은 거, 하나님의 모든 것을 계대해서 대 잇게 하는 거.
그래서 우리를 가리켜서 복을 대잇게 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복을 대잇게 했다 그래 가지고 화목케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또 만물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케 하는 층만이 교회의 직책이다 그렇게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자체는 그러하고, 자체는 그러하고, 모든 그 외형은 어떠한가? 그 본체는 그러하고 외형은 어떠한가? 외형은 영광의 찬미로 되어 있다. 외형은 영광의 찬미로 되어 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의 교회가 곧 우리 하나님의 아들된 우리들이 천상 천하에 수많은 피조물들이 있는데 그 피조물들과 관계를 맺는 그 관제에 있어서는 어떤 관계를 맺느냐?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의 관계 맺는 그 관계로써 모든 피조물들이 다 그들이 복을 받고 다 생명과 평강을 누리게 되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들 이 다 우리로 인해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감사를 돌리고 찬송을 하는 그러면 우리의 외형은 모든 피조물들과의 관계가 그 피조물들을 하나님이 그 피조물들에 대해서 털끝만치도 잘못함이 없이 바로 하는 것처럼 그렇게 온전한 관제를 해서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에게 감사하고 우리로 인 해서 하나님께 감사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그 영광의 뭉텅이가 우리가 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송의 뭉텅이가 우리가 된다 하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것을 오전에도 많이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야 되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은 그 외형의 용모가 영광의 찬송이 되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영광되게 하지 않는 것은 안된다. 영광 되게 하는 것은 관계 가진 제 삼자가 그로 인해서 유익을 봐야 영광을 돌리고 생명을 얻어야 영광을 돌리지 손해 가면 영광 돌리지 안하고 또 유익 이 된다 해도 옳고 바르고 참된 그 평가적인 감화가 없으면, 펑가적인 감화를 받을 만한 그런 것이 없으면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기독자들은 땅 위에서 사는 것이 모든 것을 다 삼 켜서 자기의 밥을 만들고. 자기의 사다리를 만들고. 자기의 호신의 모든 산성들을 만드는 이것이 이 세상에 힘이라고 하는 것의 그 본질과 본성인 데, 힘이 있는 것만치는 모든 힘을 끌어들여서 자기를 위하도록 이래 가지고 자기를 키우고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를 높이고 이라는 것이 그것이 세상에 있는 것인데.
그러니까 그거는 전부 사망의 법칙이요 지옥을 향하여 나아가는 사망인데. 그와 정반대로 기독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첫째 아들. 하나님이 피조물되어서 도성 인신해서 오신 것이나 도성 인신해서 오셔 가지고 삼십 년 동안 사생활하신 것이나 삼 년 사 개월 동안 공생활 하신 것이나 그 생활로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대속의 공로를 베푸 신 것이나 또 창조주가 피조물의 형상으로 다시 부활해서 피조물을 위해서 영원히 창조주가 피조물의 추하고 천한 그 위치를 영원히 입고 다시 살아난 그것이 첫 열매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인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된 우리는 곧 하나님의 첫 아들, 맏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그 형상이요. 다시 말하면 그 인격이요, 그 속성이요, 그 생애요, 그 생의 방편이요. 그 결과와 같은 그 결과를 맺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첫 , 우리는 그 다음으로 그와 같은 꼭 동종류의 그 결실을 맺는 우리들이라 하는 것을 성경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자기가 아무리 첩첩 모든 환경과 문제들에게 얽히고 싸이고 이렇게 수많은 궁지에 빠졌고 뭐 수많은 세력과 모든 논리와 사상과 그 악의 세력에게 깊이 깊이 수백 길 수천 길 파묻혀서 파묻혀 가지고 해고날 수 없는 그런 깊은 속에 파묻혀도 언제든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는 것을 언제든지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조만간에 이 장막 생활이 끝나면 만유의 대주재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기업으로 하늘의 것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내가 기업으로 상속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후사로 영원히 나는 모든 피조물을 다 내 것으로 삼아 내게 속한 것으로 삼아 나는 그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시은해야 될 자들이다 하는 것을 언제든지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들에게는 원수가 없습니다. 어떤 것이라 도 그것이 다 나로 말미암아 살아야 할 것이요, 나로 말미암아 보존해야 될 것이요.
나로 말미암아 존귀해질 것이요, 나로 말미암아 영원히 유지될 수 있고. 또 나는 그를 영원히 위해서 있고. 그들은 전부 나를 위해서 있는 이 인간끼리 네니 내니 네 것이니 내 것이니 이런 소유권 제도나 또 자타의 제도나 이런 제도를 무한히, 무한히 탁월해 가지고 초월한 그 아주 다른 그 고차원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우리에게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조부라운 그런 생각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사람들이 볼 때에 저는 참 망했다 해도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것은 다 내 것입니다. 그들이 자기가 몰라 그렇지 뭐라고 말해도 너는 내 것입니다. 너는 내 것입니다.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너는 내 것이다 아무리 자연에 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그런 것들이 많이 있지만 천체에 한없는 것들이 있지만 너거는 다 내 것이다. 내 것입니다. 왜? 성경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 말씀을 우리는 믿습니다. 믿는 자의 것입니다. 이거는 뭐 믿음으로만 얻지 딴것으로 뭐 무슨 공부를 하고 연습을 하고 무슨 준비를 하고 운동을 해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을 믿고, 그분의 선포한 계약을 믿고, 그분의 계약 이행을 믿고 내게 대해서 선포한 그대로 나는 믿고 바라보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생애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이거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다.
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아들이라 말이요, 예수님의 아들이라 말은 예수님 인성이 거기 속했기 때문에 그러나 예수님의 아들입니다. 신성도 인성도 그 자손입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인데, 하나님 아버지는 이사야 9장에 보면 예수님을 가리켜서 영존하신 아버지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언제든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일체의 그 차이점을 두는 것이 이단입니다. 차이점을 아버지는 제일 크고 아들은 그 다음 크고 성령은 제일 적고 이렇게 삼위 일체를 일체인 것을 믿지 안하고 차이점을 두는 그것이 곧 이단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언제나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다 하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고, 살아도 하나님 아버지 아들로 살아야 됩니다. 또 우리가 먹어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의 먹는 식료품을 먹어야 됩니다. 또 우리가 자라가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실력을 갖춰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의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아들의 실력과 이 모든 피조물 인간들의 실력과가 다른 것은 하나님 아버지 아들의 실력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얼마든지 주고 주고 주고 주고 얼마든지 영원히 줘도 모자람이 없는 그 부요의 실력이요, 또 모든 피조물들을 다 통치하는 그 실력입니다. 또 모든 피조물들이 나로 인하여서 영원히 존속하고 살도록 되어 있는 그 실력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실력은 이십 세기에 떠들고 있는 과학의 그런 실력 가지고는 근방에 가지 못합니다. 그 과학의 실력이 지구 땅덩어리도 초월하지 못하는데 그것이 무슨 우주를 통치할 것이요 무슨 영계를 통치할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좀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확 커져야 됩니다. 넓어져야 되고, 커져야 되고. 광대해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자라야 되고, 또 하나님의 아들의 식료를 우리의 식료로 삼아야 되고. 또 하나님의 아들로 자기가 연습할 것을 연습해야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수많은 현실이 닥쳐오는 것은 그것은 다 영원을 위하여서 연습하는 한 토막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 이런 거 저런 거 모든 만물들을 우리가 가지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지만 그것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져 갈 것 아니오. 어떤 자는 땅 위에 돈을 만나고 권세를, 지위를 만나니까 이거 제것인 줄 알고 단단히 강직하지 만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거는 제것이 아니고 두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가지고 우리는 연습하는 것이오.
아. 권세를 가졌을 때 이 권세 가지고 이런 거 저런 거 연습하고, 돈 가지고 연습하고, 가난한 것 가지고 연습하고 천대 가지고 연습하고, 존귀 가지고 연습하고 갑자기 커지는 것 가지고 연습하고, 갑자기 망하는 것 가지고 연습하고 모든 세상에 있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노릇을 영원히 하고 모든 걸 통치해야 되는데 그 연습이다. 이럴 때는 내가 어떻게 하며 저럴 때는 어떻게 하는가 하는. 그것을 우리가 가질 하나님의 유업인 모든 피조물에게는 수많은 천태만상의 그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우리가 다 유업으로 받아 가지고 우리가 통치해야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런 통치를 이 세상에서 연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어려서 모르니까, 어려서 모르는 사람은 모를지라도 지금 자라가는 것은 차차 차차 그걸 향하여서 자라가기 때문에 그 사람이 수 믿기 처음보다도 차차 자라가 나이가 많아지면 알게 되고 몰라도 마지막에 죽을 때가 되면 이제 그때는 결론이 나서 '아. 모든 것이 탐했던 것이 다 헛되다. 모든 게 소용없다.' 하는 그것이 하나 결말이 지어지고, 우리의 소원과 소망은 따로 있다 하는 것을 그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그때는 이를 시기가 있든지 없든지 마지막 때는 '하나님이여 나를 한 달만 살려 주십시오. 열흘 만 살려 주십시오, 일 년만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시면 내가 무슨 일을 하겠습니다.' 그때는 신령이 밝아져서 자기가 연성시킬, 자기가 연단시킬 자기가 숙달을 시킬 자기 숙달은 어떤 게 자기 숙달이며. 자기 식료품은 어떤 게 자기 식료품이며, 자기의 실력은 어떤 것이 자기 실력이며 자기는 어떤 것으로 자라가야 되는가 하는 것을 그것을 그 성경이 말한 대로 언제든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인 것을 깨닫고 그렇게 살아야 되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을 잊어버리고 엉뚱한 것으로 거석하면 다 그것은 마귀에게 끌려서 자기를 속이고 자기를 망치는 그런 미혹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들어서 이 말씀을 들어서 아멘 아멘 하다가 꼭 잡고 '주여! 죽어도 나는 요겁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로 살겠습니다!' 이렇게 꼭 잡고 소유라 몸과 생명과 모든 힘을 꽉 기울여도 이래도 뭐 살고 나서 보면 헛일인데, 다 예수 믿기 시작한 날부터 다 그래 믿는 사람들 많습니다. 저도 아주 허무하지만 믿는 그날부터 제대로는 하는 대로는 내가 딴거 소망 한 번도 가져 보지 안했습니다. 그것만 가지고 일생 동안 이래 해도 지금 보면 다 헛된 일만 하고 허공을 친 것뿐이고 참 옳은 진짜배기 생활한 것은 너무 '허무해서 참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뭐 어떤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은 보면 그 속으로는 그럴 란지 몰라도 아, 보기에 예수 믿는 것은 아주 등한히 해 가지고 그거는 껍데기 껍데기 중에 껍데기로 보고 전 소망이 땅에 있는 소망, 불택자들과 꼭 같은 생활의 소망을 가지고 날마다 이루어 가니까 가 봤자 찍해야 나중에 그거뿐이지 뭐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도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또 기독자들이 변화되는 것은 세상 사람이 보고 아는 변화가 되는 줄 압니까? 세상 사람이 모릅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를 모른다고 이랬습니다. 변화된 것이 세상 가치로 변화되면 변화된 거 알겠고, 세상 또 무가치로 변화되면 변화된 거 알지만 세상 가치관, 세상이 알지도 못하는 상관없는 그런 질과 양으로 변화되기 때문에 세상이 알리가 있습니까?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내 외형은 영광의 찬미라. 영광의 찬미라. 영광은 자체에 있는 게 아니고 자체의 여하의 운동으로 말미암아 제 삼자의 혜택을 입은 것들이 이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어떤 여기 미국 가서 공부한 학생이 말하기를 영광을 둘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둘로 말하는데, 하나는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는 영광이고, 하나는 그 영광 이 이제 모든 피조물들에게 이렇게 나타나서 피조물로 말미암아 영광이라. 그래 두 가지 영광으로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하나님 자체에는 영광이 없습니다. 영광이 없어. 뭐이냐? 완전뿐이오. 완전이오. 완전이니 완전이 움직이니까 완전의 사랑. 완전이 움직이니까 움직이니까 그만 다 그게 영광 이 돼 버리고 모든 피조물에 전하니까 막 영광이라 합니다. 그 하나님 자체는 완전이오. 하나님의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 자존성. 단일성 이것이 하나님의 그 본성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우리의 그 형상은 영광의 찬송이라. 그 말을 다른 말로 말하면 우리가 하늘나라에 입고 있을 옷은 다 영광의 옷이 다. 영광의 옷이다. 그 영광의 옷이란 무슨 말인가? 세마포 옷이다. 세마포 옷이라는 것은 뭐인가? 세마포 옷은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성도들이, 성도들이 사람을 대해서, 모든 사물을 대해서, 모든 만물을 대해서, 뭐 짐승 한 마리를 대해서라도 한 것이 그것이 다 우리의 하루 하루의 생애인데 마치 세마포 옷은 아주 곱게 삼을 짜 가지고 째 가지고 날을 만들고, 날을 만들고 그 날에다 씨를 북이 한 번 넣어서 한 오라기 두 번 넣어 두 오라기 자꾸 이렇게 해 가지고 짜 올린 그것이 세마포 아닙니까? 그것이 가는 마포인데, 그게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 그러면 자기의 일생이라 하는 일생이라 하는 그 날 거기에다가 하루 하루의 생 활을 이 생활하고 저 생활하고 해서 그 모두가 다 인간에게 대해서나 또 자기에게 대해서나 모든 세상에 대해서나 만물에 대해서나 그것이 다 피와 성령과 진리의 힘으로 하다 보니까 옳은 행실이라. 그러니까 하루 옳은 행실하고 이틀 옳은 행실해서 이래 가지고 오 년이든지 십 년이든지 흠 없는 옳은 생활을 해 가지고 그것을 하늘나라에 가서 입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일생을 옳은 생활해 나가다가서 한 가지만 삐뚤어졌으면 그것이 얼입니다. 그게 얼. 그게 세마포 옷에 얼진다. 얼진다는 말 압니까? 세마포 웃을 짜다가 한 오라기라도 그래 끊어졌다든지 그게 잘못 됐으면 고 얼이 됐다 말이오. 얼이 돼 버렸어. 요새는 뭐 짜집기가 있어 가지고 짜 쓰면 되겠지만 그거는 짜는 것 없어. 고거는 조짜배기지. 얼이 진 것인데,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의 모든 과거 일생을 나벼 보면서 그 흠이 있는 얼이 있는 거, 그 얼이 있지만 얼 있는 그 그게 큰 수치와 벌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그걸 예수님의 피공로에 고해 가지고 '나는 이런 얼이 있었다. 이 사해 주시옵소서.
하니까 짜깁기 하듯이 달아 짜내기는 짜냈으니까 다 그것이 형벌받는 것은 되지 안하지만 과연 그 사람도 과거에 그렇게 실수했다가 또 그렇게 자라났다. 고쳐 놨다 그러니까 아 이렇게 빠진, 이렇게 어두움에 빠진 사람들도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과 영감과 진리의 능력으로 여기서 또 헤어나 가지고 이렇게 또 깨끗해졌다.
그것이 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언제든지 내가 하늘나라에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에는 영광의 찬미로 보여야 된다. 세마포 옷으로 보여야 된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벗은 자들로 나타나지 안할라고 애를 썼습니다. 벗은 자들로 나타나는 거는 그때는 성도의 옳은 행실을 입고 가 옳은 행실을 입고 사는 세계기 때문에 옳은 행실이 없으면 고 토막은 똘빵하게 구멍이 뚫어 져 가지고 그 살이 나오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래 되는 것이기 때문에 벗은 자들로, 또 흠 없는 그런 옷을 입고 살라고 항상 탄식하면서 애를 쓴다 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또 우리의 외형은 영광의 찬미 인 것을 기억하고 언제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 지금 자라가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자라가는 건 하나님의 아들로 자라가야 되지 세상 뭐 이 세상 어떤 문화로 자라가는 거, 문화로 자라가는 거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 없습니다.
문화로 자라가는 그것이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로 자라가는데 자라가니까, 자라가니, 그 모든 세상 문화로 자라간다고 사람들이 말하면. 세상 문화로 자라가는 그 문화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로 자라가는 그 무대요 자라가는 그 무대요, 자라가는 그 장소요, 그것은 자기 자람은 아닌 것입니다. 요건 똑똑히 구별해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들로 자라갈 때에는 세상 문화라는, 그 문화라는 공장에서 자라가고. 문화라는 그 무대에서 자라가고, 과학이라는 무대에서 자라가고 모든 사업이라는 무대에서 자라가 고, 정치라는 무대에서 자라가고, 또 자기는 이런 저런 구제 자선 사업의 무대에서 자라가고, 그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의 실력이 그 장소에서 그 자리에서, 그 공장에서 거기서 자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따 두고 갈 것이요. 아무리 고관 대작이 됐다 할지라도 그것은 거기에서 내가 자라가니까 그것은 두고 갈 것이요, 거기서 자라간 하나님의 아들의 그 실력, 아들의 형상 그것만 이제 갈 때에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구별해서 언제든지 우리는 살아야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은 무엇을 그라면 먹고 자라가는가? 이래 자라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자라가야 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자라가는 데는 무엇을 먹고 우리가 자라가야 됩니까? 물론 우리는 몸이 있기 때문에 몸은 음식을 먹어야 자라갑니다. 몸은 우리 입으로. 음식을 먹어야만 합니다. 우리 입은 몸이 음식을 먹는 입입니다. 우리의 그 심령이라는 심령은 그 입으로 먹는 게 아니라 우리의 심령이라는 심령은 귀로 먹습니다. 귀로 들어서, 눈으로 보아서, 또 자기가 거기서 보고 깨닫고 느끼고 생각하고 이것을 총 합해서 지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지식이라. 이것을 총합해서. 듣고 보고 접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그런 것을 총합해서 지식이라 그랍니다. 우리는 지식으로 자라가야 됩니다. 우리는 지식으로, 지식으로 자라가야 되고, 또 우리는 실행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그 사람의 양식, 심령의 양식은 뭘로 먹는고 하니 지식으로 먹습니다. 지식으로 먹고. 또 실행으로 먹습니다. 요걸 똑똑히 알아야 돼요. 우리의 인격. 인격이 먹는 입은, 인격이 먹는 입은 뭘로 먹습니까? 인격이 먹는 입은 뮐로 먹지요? 자기가 지식하는 거. 지식하는 거 그것으로써 인격이 이제 좋은 음식을 먹으면 인격이 좋게 자라가고, 그때 독약을 먹으면 그만 그 독약을 먹으면 그만 그 사람이 병들든지 이렇게 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잘못된 지식을 자기가 받아들이게 되면 잘못된 지식을 받아들이는 게 어떤 건고 하니 잘못된 지식을 인정한다 그말이오. 잘못된 지식을 인정하면 그 독약인 쓴 물, 쑥 물을 먹고 그 사람이 취해서 죽습니다. 이런 쑥이 아니라 계시록에 쑥물 먹으면 죽는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인직이 먹는 것은 알고 인정하고 실행하는 것이 그것이 먹는 것입니다.
요것이 여러분들이 자꾸, 억지로 꾸며 댄 게 아니고 요것이 달리는 변동 할 수가 없는, 그 인격의 양식은 인격이 보고 듣고 접촉하는 모든 시청각 모든 데에서 자기가 그것을 알고 지식하고. 지식하는 그것을 인정하느냐? 이렇다고 저거들이 말하기는 불교 지식은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이 겨는 부인한다. 그럴 때 그걸 안 먹는 것입니다. 그걸 인정하면 머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청각의 모든 지식으로 그 지식을 인정하는 것이 자기가 먹는 것이요. 또 인정한 것을 그대로 실행을 하면 또 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정하고 실행하면 먹고 소화되는 것입니다. 인정하고 실행하면 먹고 소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소화되면 그것은 자기의 신령한 자의 뼈와 살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령한 사람은 무엇을 먹는고 하니 진리를 먹습니다.
진리를 먹는 것은 신구약 성경 말씀이 진리인데 이 진리를, 자꾸 성경을 읽는 것은 성경을 읽어도 또 읽어보면 또 알겠고. 또 알겠고 읽어보니까 처음에 다 알았다 싶었는데 또 읽어보니까 또 올라서 또 새롭고 새롭고 자꾸 알아진다 말이오. 그러면 성경에 있는 문서 지식을 이것을 자기 가 알고, 그 다음에는 먹는 것은 문서 지식을 인정하고 다음에는 무서 지식을 자기가 실행을 하면 벌써 소화가 돼서 가기의 뼈와 살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뼈와 살이 되어집니다.
그러기에, 문서 계시를 우리가 먹어서 문서 계시 이 진리로 우리는 배불러야 되고 진리로 자라가야 합니다. 또 진리로 자라가면 그 다음에는 장성하면, 무른 음식을 먹다가 나중에는 단단한 그 여문 음식을 먹어야 영양이 더 많은 거와 마찬가지로 이래 문서 계시의 이 진리로 양식 삼아서 진리 먹고 진리로 자라가면 그 다음에는 장성해서 영감 먹고 영감으로 자라 갑니다. 영감 먹다니? 영감을 자기가 인정하고, 영감도 악령의 감화도 있고 성령의 감화도 있기 때문에 요한 일서 4장 절 이하에 보면. 영이라고 다 믿지 말고 영을 분별해라. 거짓 영도 있고 참 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이 진리를 먹어서 장성해 가면 그 옳은 영감 받지 귀신의 영감은 악령의 영감은 오지를 못합니다. 그것은 근방에 오지를 못 합니다. 그 빛이기 때문에 가까이 오지 못합니다. 이래서 영감을 자기가 받아들이고 그대로 행하게 되면 이제 그만치 영감을 먹고 자라게 됩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진리와 영감으로 자라게 되면 그 다음에는 진리와 영감은 무엇을 소개하는가? 진리와 영감은 예수님의 대속하신 그 대속. 예수님이 어떻게 크신 분이 어떻게 천한 것을 위해서 어떤 사랑으로 어떤 고 난의 대속을 했으며.
대속하신 것이 얼마나 그 범위가 얼마나 넓으며 몇 종류나 대속을 했는가 하는 것을 차차 장성해지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그 종류가 얼마나 않고, 그 범위가 얼마나 넓고, 얼마나 구비하고 세밀한지 하는 것은 자기 신앙이 자라감에 따라서 자꾸 그 깨달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리 되면 어찌 되는가? 너희는 내 안에 있고,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내 안에 있고 나도 너 안에 있고 주님은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주님은 나 되는 나는 주님되고 주님은 나와 하나되어 지는 것이 이것이 마지막에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와 살에 대해서는 말씀하시기를 '피와 살을 먹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 이렇게 말했고, '영의 생각으로 살면 생명과 평강이라' 생명과 평강이 되어진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 진리를 먹고 진리로 양식 삼아서 진리를 먹어서 자꾸 진리가 내 뼈와 살이 돼 가지고 진리로 우리가 자라서 진리의 능력으로 자라갑니다. 그러면 진리의 능력이 우리 능력입니다. 진리의 능력이 우리 능력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람들이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말한다 해도 거기에 대해서 뭐 세상적으로 어떻게 삐뚤어졌다 해도 거기에 대해서는 별로히 그렇게, 다른 사람을 위해서지 별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삐뚤어졌으면 그는 참 곧 죽는 것인 줄 압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의 힘이라야 힘이지 진리의 힘이 아닌 것은 힘이 아니라 고 생각하고 진리가 병들었어야 병든 것이지 진리가 병들지 안했으면 다른 병 그까짓 거야 뭐 있든지 없든지 그런 건 다 하나님이 적합하게 해 주실 것이니까 관심을 그렇게 가지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진리를 먹고 진리로 자라고. 진리의 힘으로 우리를 장성케 합시다 그러기에. 이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든지 사람의 힘이라고 하는 거는 세상에 천도 만도 넘습니다. 제가 지금으로부터 한 이삼십 년 전에 그런 말 많이 해쌓았는데 그 힘에 대해서 많이. 그거 정의를 해서 말했는데 재물의 뭐 재물의 힘도 있고, 건강의 힘도 있고 또 자기의 사업의 힘도 있고 많은 사람을 얻었으니까 사힉 힘도 있고 인성의. 사람을 얻어서 인성의 힘도 있고 과학의 힘도 있고 모든 힘이 있으나 이것은 힘이 아니라 말했습니다. 이거는 힘이 아니라 힘의, 그거는 참 힘이 아닙니다. 불택자가 가지 그도 그거는 힘 아니오.
그거는. 힘은 진짜 3은 아닙니다. 힘은 아니고 그것은 사람의 힘은 진리의 힘이 사람의 힘이요, 영감의 힘이 사람의 힘이 주님의 대속의 힘이 사람의 힘인데 그 힘이 돈을 입고 나타나고 그 힘이 정권을 입고 나타나고, 그 힘이 과학을 입고 나타나고, 그 힘이 인간들의 운동을 입고 나타나고 이라니까 사람들은 돈이 운동해서 이리 운동하니까 '아. 돈이 힘 있는 갑다.' 하지만 돈 힘뿐이고 그 속에 진리라는 그 힘이 돈을 통해서 움직여서 껍데기는 돈이지만 속에는 진리의 힘이 움직이지 안한다면 그거 다 죽은 것입니다. 있어 봤자 없는 거와 꼭 같소.
그러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의 힘은 진리의 힘 영감의 힘, 예수님의 대속의 힘 이것만이 우리 힘인데, 이 힘이 이 세상에 나타날라고 하니까. 이 힘이 세상에 나타날라고 하니 이 힘이 직접 이 세상에서 나타날려고 해 가지고는 그 자유의 활동하기가 불안하니까 부득이 돈을 타고 나타나고, 권세를 타고 나타나고, 지위를 타고 나타나고. 모든 인간의 활동을 타고 나 타나는데, 이렇게 나타나다가 세상을 떠날 때는 그런 건 쏵 벗어 버리고 그거 하나도 없는데 순전히 이 세 가지로만 자란 이 힘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유익하게 여기던 것을 이래 배설물과 같이 여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것이 참된 줄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를 힘쓴다. 거기서. 거기서 나타나는 것을 힘 쓴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러면, 진리와 영감과 주의 공로를 배불리 먹으십시오. 요것을 언제 먹습니까? 현실이라는 고 현실은 우리에게 요 세 가지 양식을 먹으라고 현실을 주신 것이기 때문에 고 현실에서 이 세 가지 양식을 놓지 말고 언제든지 또박또박 먹어서 자꾸 이 세 가지로만 자라가야 됩니다. 우리가 나기를 또 그렇습니다. 나기를 주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가 잉태됐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구원의 씨는 뭐이 구원의 씨입니까? 구원의 씨는 뭐이 구원의 씨지요?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선택이 우리의 구원의 씨입니다. 씨가. 씨가, 마치 씨가, 부정이. 부정이, 어머니의 모태에, 배란에 가 가지고 비로소 거기서부터 장성하기 시작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구원의 씨는 하나님의 목적이 뭐인데 하나님의 목적인 구원의 씨가 어데서부터 자라기 시작합니까? 어데 잉태돼 가지고 자랍니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속에 잉태돼 가지고 자랍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속에 잉태해 가지고 그 공로로 자라고, 그 공로로 말미암아 영감으로 자라고, 그 공로로 말미암은 진리로 자라고, 거기서 우리가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분석하면 우리 중생된 새사람을 분석하면 뭐이요? 세 가지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세 가지 주의 대속의 피공로의. 피공로 이거는 완전이요 이거는 그게 아니면 크질 못해. 대속의 공로가 그 속에 들었고 영감이 들었고 진리가 들었고 우리는 이 세 가지 사람입니다. 세 가지 요소로 되어 있는 사람이오. 그러기 때문에 진리 먹고 내가 진리의 요소가 자라고 영감 먹고 영감 요소가 자라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먹고 대속의 공로의 요소가 점점 자라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자라는가? 그러면 그것은 우리 당면한 대내적인 이 안에서 자라고, 자라고. 우리 밖에서 우리 밖에서 역사하는 그 분위기, 다시 말하면 내가 식물을 먹는 것은 또박또박 떠서 식물을 먹지만서도 그 뭐 누가 공기 먹는 줄 압니까? 공기 먹는 줄 모르지만 분위기의 공기를 먹습니다. 그러면 음식은 내가 마셔야 되고 떠먹어야 되지만 이 공기 먹는 것은 그것은 먹을려고 뭐 숟가락도 들이대지 안하고 그 뭐 컵도 대 마시지 가지고 안하지만 장 그저 이래 먹습니다. 히 이라면 먹었고 또 후 내놓고 또 먹고 내 놓고, 히 후 히 후 이래 가지고 자꾸 먹고 먹지 않습니까? 또 그것은 또 그래도 먹는 걸 좀 알지만 이 햇빛이 빛이라 하는 건 빛을 먹는 것은 우리는 또 그것도 모릅니다. 빛을 먹는 것은 뭐 빛 먹는 건 먹는 거 모르지만 우리의 피부 안팎에 있는 모든 그 내용 지체 전부는 안에 있는 지체는 햇빛 못 보지만 그게 전부 이 광선을 먹습니다. 전부 안에 있는 내장들도 이 광선을 먹습니다. 광선을 먹고, 피부로 먹고. 피부를 통해서 광선을 먹고 있습니다. 마치 나무 뿌리는 땅 속에 들어 있지만 나무 뿌리가 이 햇빛의 태양 빛을 그것을 빨아들여 가지고 나무뿌리가 그 햇빛을 먹지 안하면 나무뿌리가 썩어 버리고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진리와 영감과 주의 피를 먹고. 그 외에 먹는 것이 무엇인가? 그 외에 먹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를 먹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섭리라 말은, 하나님은. 주님은 주권자이신데 주님이 주권자로서 어느 정도를 섭리하느냐? 하나님의 섭리를 어떻게 보느냐? 하나님의 섭리를. 모든 신학자들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는 기독자의 구원에 대한 것만 섭리한다.
구원에 대한 것을 섭리하되 구원의 강령되는 거 굵닥굵닥한 그런 것만 섭리하지 사소한 그런 것들은 섭리하지 않는다.' 이래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제한을 두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그 사람들 그것은 아직까지 깨닫지 못해 그렇습니다. 제한의 하나님의 주권 섭리를 두면 결론적으로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주권 섭리는 주권이 아니라는 말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해석하면 마지막에는 개별 섭리가 그것이 다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를 우리가 믿고 있습니다. 이 믿는 것은 이 교계에 나가 가지고 모든 그 신학 박사들에게 말하면 인정하냐? 인정 안 합니다. 인정 안하는 박사들이 십의 구는 넘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나가 놓으면 뭐 아 이거 뭐 백목사야 캄캄 무식한 사람이고 저 박사들이 이래 하는 것인데. 나중에 간판보고 따라가면 여러분들은 망하고 맙니다. 그거 알아야 돼요. 지금 여기서 똑똑히 깨달아 가지고 요동치 안해야 되지 요동하면 구원은 헛일 아닙니까?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섭리하시는데, 그 하나님이 섭리 안 하고는 일이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섭리를 하시되 어떻게 섭리하는가? 하나님의 예정대로 섭리하십니다. 영원 전 단번에 하나님의 영원을 예정해 놓으신 그 예정 순서대로 하나님이 그것을 성취하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섭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섭리. 이거 저거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섭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앞에는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그 섭리가 우리에게 하루도 뭐 천 가지도 백 가지도 더 당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그 수많은 섭리는 내게 부딪히는 모든 현실들이라 그말이오, 부딪히는 현실. 부딪히는 현실들은 주님이 주권하셔서 섭리하시는 그 섭리라. 그거 또, 하나님이 섭리하시는데 우리에게 부딪히는 그 모든 현실에 이런 조런 모든 그 종류대로의 순서가 나오는 그거는 뭐인가? 하나님의 예정이라. 그런데 또 그 모든 것이 이런 거 조런 거 나타나는데 그게는 사람도 들었고 재물도 들었고 짐승도 들었고 뭐 공기도 들었고 땅도 들었고 하늘도 들었고 뭐 오만 거 다 들었으니까 현실은 여러 것이 종합해 가지고 내 현실을 만들었는데 그 모든 존재는 뭐이냐? 하나님의 창조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도, 하나님의 예정도, 하나님의 섭리도 다 택자의 하나님의 목적 달성을 위해 가지고 그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양식으로 먹습니다. 내게 어떤 하나님의 섭리가 와도 아,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된 나로 하여금 자라게 하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이 있는 것이다. 이 예정도 자라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존재들이 나타나는 것도 자라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나를 하나님의 아들로 가라가도록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인 것을 내가 믿습니다. 믿는 거는 뭐냐 인정합니다. 인정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이것은 성경대로 이 모든 섭리 예정. 모든 존재 이것은 존재는 하나님의 창조하신 것이요, 모든 순서로 나타나는 것은 이 모든 운동들은 하나님의 예정이요.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주권 능력으로 개별을 섭리해 가지고 이루는 것이니까 이 섭리나 모든 순서의 예정이나 모든 존재의 창조나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아들인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의 실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
나를 먹고 살찌라고 하기 위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먹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을 먹고, 하나님의 창조를 먹고. 하나님의 섭리를 먹습니다.
먹는 것은 어떻게 먹습니까? 자, 말해 보십시오. 어떻게 먹습니까? 대답해 보십시오. 첫째? 지식. 이 성경 말씀이 말했기 때문에 첫째 지식, 요대로 알고 지식하고, 고 다음에? 인정하고, 고 다음에? 실행, 이러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내 구원을 위해서 있다는 요 지식을 가지고 요 사실을 자기가 인정하고. 내 구원을 위해서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대로 나는 삽니다. 알고 인정하고, 요거는 내 구원 위해서 있는 것이라 하는 것을 자기가 알기 때문에 그게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 삽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살면서 그것을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내가 상대해서 사는 거, 그것을 그대로 상대해서 사는 것이. 그것이 상대해 사는 것이 그것이 행하는 것이라 상대해서 사는 것이 행한다는 것을, 틀림없는 것을 알아 집니까? 이거는 상대해 사는 게 그게 틀림없이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세상을 대해 살 때에 이 세상을 대해서 살 때에 그 세상은 주님의 섭리요 내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세상을 대해서 사는 것을 내가 그렇게 지식하고 인정하고 나는 요대로 사니까 그들이 때려도 요대로 살고 죽여도 요대로 살고 불에 태워도 요대로 살고 요대로 사는 것이 요것이 나는 먹는 것이요, 알고 인정하면 먹는 것이요, 그대로 사니까 먹을 뿐만 아니라 속에서 소화가 됩니다. 그 다음에는 뭣 됩니까? 내 피와 살이 되지.
그런고로. 우리가 요 현실에서 먹는데. 현실에서 먹을라고 할 때에 요것을 먹지 못하게 애를 씁니다. 먹지 못하게 애를 씁니다. 먹지 못 하게 한 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첫째로 먹지 못하게 하는 게 뭐입니까? 또 한번 물어야 되겠어요.
여러분들이 알아야 뭐이 되지. '그거는 거짓 말이다. 잘못 알았다.' 이렇게 하고 그 다음에는 또 '인정 말아라. 그거는 다 허무 한 소리다.' 그 다음에는 그대로 실행하지 못하게 그런 것을 알고 믿고 고 대로 모든 현실 대해서 그대로 딱 대해서 행하는 고 일을 하지 못하게 하면, 우리가 그때 행할라고 하면 얼마나 좀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뭐 행할라고 하면, 그대로 이 양식 먹을라 하면, 이 양식을 새사람의 양식을 먹을라고 하나님의 아들의 양식을 먹을라고 하면, 이것으로써 영원한 성장을 가져올라고 하면 여기서 돈 뺏기는 것도 있고. 또 권세 씻기는 것도 있고, 몸뚱이가 자유하지 못하고 감옥에 갇히는 것도 있고. 매 맞는 것도 있고 죽는 것도 있고.
이라기 때문에 요것이 예수님의 제자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성장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되는 것입니다. 제자라 하는 건 선생하고 꼭 같은 것 아닙니까? 예수님과 꼭 같이 되는 것인데. 예수님의 제자가 될라고 하면 이런 모든 지장물들이 많은데 그럴 때에 어떻게 해야 된다고 했습니까? 어짜고는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무엇이든지 가지고는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내가 생명만은 내 주지 못한다 하면 안 된다. 내 재산만은 내 주지 못한다 하면 안 된다. 내 가족만은 내 주지 못한다 하면 안 된다. 내 몸뚱이만은 내 주지 못한다 하면 안 된다. 내게 있는 모든 거 다 내어 줘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자라가는 이 자라가는 것은 내가 양보하지 못한다, 이럴 때에 비로소 내 제자가 된다. 예수님과 같은 자가, 되어진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렇게 이걸 알고 싸워, 알고 힘써 나가면 얼마나 기쁩니까? 얼마나 즐겁습니까? 얼마나 힘이 쥐입니까? 뭐 떠듬떠듬하다가 사람이 지는 것이지 확실히 알고 난 다음에 주저할 게 뭐이요? 아무래도 한 번 죽을 거, 또 하나님이 생명을 거될 가지 안하면 일 분 일 초라도 죽 이지 못한다 했어.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지만 아버지가 허락지 안하면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일각도 더 살지도 덜 살지도 못하니까 공연히 마귀에게 위협 당하지 말고 담대히 턱 내 놓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시간마다 현실마다 진리 먹고. 영감 먹고 주의 대속의 피 먹고 주님의 모든 개별 섭리, 섭리 먹고 하나님의 창조 먹고 하나님의 예정 먹고 하나님의 모든 존재 먹고 모두 하나님의 모든 이순서 먹 고 하나님의 섭리 먹고 참 잘났습니다.
이 양식이 땅의 양식이요 하늘의 양식이요? 이 무슨 양식이요? 하늘의 양식이라. 이것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하늘과 땅의 것을 통치하지. 이러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은 이거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그와 같이 말씀을 한 것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저 뒤에 있는 사람들도 듣는지 모르겠어. 알아들으면 속으로 아멘 아멘 해요 어쨌든간에. 겉으머리로 다 고함지를 계산해 가지고는 분주하니까 못 해도 속으로 아멘! 자기 속에 있는 그 모든 견해와 같고 자기 속에 있는 지리와 같으면 이래 듣다가 속으로 내가, 아멘! 아멘! 이래야 돼. 아멘! 아멘! 고 다음에는 또 고와 같이 되어지기를 원하는 것은 '주여 믿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하면 내 이름으로 구한 것은 다 내가 시행한다 했으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해 버리면 그만 다 돼 버렸어. 그러면 딱 인쳐 버렸는데 누가 변동시키겠어? 이러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은 한목 기도를 많이 못 해요. 많이 안해. 하다 보면 나중에 중간에 가서는 다 헛일해 버리고 말아. 해 놓은 것도 다 헛일이 돼.
이러니까 고 마음을 기울여 요 쪼르르르르 기도하다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고래 버리고 난 다음에야 되지. 변동이 안 되야 되지.
자꾸 중간에 가다가 변동되면 헛일이라 말이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뭐 기도 많이 하는 사람들 보면 다 그래. 그만 이 하다가는 그만 마음에 꼭 다져서 딱 도장을 찍어서 '예수님의 아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래 놨으면 내 이름으로 기도하는 거는 다 주신다고 했으니까 약속했으니 당신이 안 줄 수가 없다 그말이오. 그렇게 도장을 딱딱딱딱 찍어서 어짜든지 한번 살아봅시다.
여러분들, 우리가 가는 길이 참 길입니다! 구원의 바른 길이요! 지난번에도 하나님께서 육백여 명에게 다 표적으로 인쳐서 인정시키지 안했습니까? 이게 진리입니다. 이게 진리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작정을 해요. 지금 여기서 실행해야 됩니다. 여기서 실행하는 것은 자기가 요 사실을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각오하고 여기서 마음으로 행하고 나가서는 이제 현실 닥치면 나는 몸으로도 한 번 행해 보겠다 하고 닥치면 행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