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3 01:26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기도할것 3가지
1988. 4. 4. 월새벽
본문 : 요한복음 14장 13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하는 것은 모든 우리 구속받은 성도들을 말씀하는 것이고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하는 말씀은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뭐 어떤 것을 기도하든지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주님께서 다 그대로 시행을 책임지고 하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믿는 것은 뭐 잘못하면 지금까지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이러니까 믿는 믿음이 뭘 하는 줄로 이렇게 착각을 하고 있는데 내가 믿는 대로 주님이 해 주시는 것입니다. 믿는 대로 주님이 해주시요. 내가 암만 믿어봤자 믿음, 천하 믿음을 다 뚜드려 뭉쳐도 믿음 그까짓 게 일하는 게 아닙니다. 아무것도 못하요. 다만 주님의 그 진실하심과 위대하심과 그 사랑과 신실하심을 내가 믿을 때에 그분이 해 주신다 그말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내가 고대로 다 해 주리니, 너희들이 참 옳은 거, 필요 있는 거, 좋은 거 유익된 거 그런 것은 구하면 내가 하나도 지체하지 않고 다 그대로 시행을 해주겠다 그말이오.
‘시행하리니’ 그러면 시행하는데 우리가 뭐이기 때문에 우리가 옳은 거 좋은 거 참된 거 그저 유익된 것만 구하면 주님이 다 그대로 해 주실것인가? 그 해 주시는 이유와 목적을 그 밑에 말해 놨습니다. 뭐 때문에 그렇게 해 주시는가? 그 이유는, ‘시행하리니 이는’ 시행하는 이 이유는 ‘아버지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아들을 인하여 말은 성자 예수님을 인하여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기도할 때에 주님이 고대로 다 이행해 주시는 것은 그 이행해 주심을 받음으로 우리가 그것 가지고 아버지에게 영광 돌리도록 아버지를 기쁘시게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일만 구하면 다 해 주시겠다 그말이오.
그러면, 우리가 기도해서 기도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주님이 이루어 주시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이루어 주시는 이유가 뭐인가? 주님이 이루어 주시는 까닭이 뭐인가? 그 까닭과 이유는 우리가 기도해서 고대로 이루어 주심으로 이루어 주심을 받은 그것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할 때에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주님이 신실하셔서 이루어 주시기 때문에 기도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기도한대로 이루어지는 까닭은 아버지를 위해서 주님이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 위해서 이루어 주시는 게 아니라 아버지를 위해서 이루어 주십니다.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그러면 우리에게는 무슨, 아버지를 위해서 이루어 주시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리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큰 복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할 때에 주님이 이루어 주시는 것은 우리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루어주십니다. 그러면 주님에게 이루어 주시는 그 이루어 주시는 것은 뭐인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아버지를 만족케 하는 그런 사람과 행위가 되는 것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들이 잘못 기도하는 것은 그것은 어떤 성자가 말하기를 마치 바다에는 짜운 염분이 있는 염수인데 염수를 증발시켜 가지고서 그것이 비로 내려올 때에는 염분이 하나도 없다. 그것은 증발시킬 때에 염분은 다 놔놓고 맑은 물만 증발시키기 때문에 바다물이 올라가서 내려오지마는 거기에는 염분이 하나도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알지 못하는 벌 기도를 할 때에는 그것은 다 주님이 염분처럼 제거해서 하나님께 못 올라가게 하고 그거는 처지고 참 하나님이 들어서 자신과 하나님에게 기쁨과 영광이 될 수 있는 그런 것만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
그 비유를 하기를 바닷물이 올라가서 비가 내려오지마는 비에는 염분이 없는 것처럼 우리가 혹 기도를 잘못한 기도를 할지라도 그것은 다 주님이 제거하시고 들어서 우리에게 복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될수 있는 그런 기도만 들으시기 때문에 잡것은 그것은 안 올라간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 뿐만 아니다. 잘못된 기도라도 하면 그 사람 그 향은 된다, 성화되는 데는 도움이 된다. 하나님을 말할 때에 거기에서 악은 말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말하면 자꾸 선하게 돼진다.’ 그런 말 한 이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내가 이 말씀을 봉독하는 이유는 그것입니다. 무엇을 우리가 구할까? 우리가 구하는 대로는 주님이 다 이행해 주신다고 했는데 어제 오전 오후에 우리가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될 것 한 서너 가지를 우리가 정했습니다.
뭐이냐? 하나님의 사랑인데 사랑이라는 것은 이상하고 기이한 능력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는 아주 평안하고 기쁘고 또 참 만족하는 그것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사랑에는 평안과 만족과 기쁨이 그 속에서 무한히 나오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안 믿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 그 중에 만족과 평안과 기쁨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 사람이 비록 못나고 약하고 아주 그런 아무 무능한 사람일지라도 그에게서 사랑을 자기가 받고 있으면 그 사람은 만족이 됩니다.
그래 내가 어떤 때에 오래 됐는데 여기에 있는 필름 만드는 데인가 그때 그 업을 차려 놓고 있었는데 그분이 그 여자가 아주 똑똑하고 아주 여자로서는 참 ‘가다’라고 할 수 있는 똑똑한 분입니다. 이런 분인데 나는 직접은 만나보지 못했지마는 그분이 미장원에 와 가지고서 말하기를, 자기 남편은 조금 모자란답니다. 모자라는데 오며는 자기 남편을 자랑하고 남편을 뭐 두려워하고 이렇게 존대하고 천하에 자기 남편 같은 이가 없다는 그런 만족한 남편의 사랑으로 만족을 하고 있는 그것을 볼 수가 있다고.
그래서, ‘그거 어떻게 그래 됐느냐?’ 자기는 자꾸 남편으로 만족하고 남편의 그 사랑을 자꾸 자기는 새겨서 만족한 것을 깨닫고 이래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랑에 만족한 그런 남편이 있으니까 자기는 행복되다. 그러기 때문에 남편에 대해서 불만이나 불평을 품는 사람은 여자로서는 행복한 여자는 하나도 없다.
자기 남편의 사랑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여자로서는 세상에 제일 행복을 가진 여인이다 하는 그런 말을 내가 그 미장원에 가서 한다는 말 듣고 나는 그 후에 보지는 못했지마는 저 건너 집에 있었는데 그분이 지금 어디로 이사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늘 멀리 건너다보면서도 ‘저 집에는 참 안 믿는 사람이지마는 그 슬기로운 여인이 살고 있다’ 하는 것을 그거 제가 늘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랑은 그러합니다. 사랑을 받을 때에는 만족과 평안과 기쁨을 가지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만족하고 기쁘고 평안하도록, 만족과 기쁨과 평안을 주는 그 능력을 가진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깨닫고 믿을 때에 거기에서만 우리들은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연구해서 깨닫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믿는 거기에서만 이 인간으로서는 완전한 행복과 완전한 평강과 완전한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만치 믿는 것만치 그 사람에게는 완전한 평안과 만족과 기쁨이 있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기쁜 사람으로 살고 만족한 사람으로 살고 평안한 사람으로 사는 데에는 그 비결이 뭐이냐? 주님에게 주님의 사랑을 알고 믿게 해 달라는 것을 구해서 알고 믿는 것만치 우리는 행복됩니다. 온 천하를 다 가지고 온 천하 사람이 다 자기 사람이 된다고 해도 절대로 인생이라 하는 거 평강이 없고 기독자는 더욱 평강이 없습니다.
왜? 기독자는 눈이 밝아졌소. 눈이 멀리 보요. 원시 봅니다. 이것이 그 다음에 어찌 되느냐, 그 다음에 어찌 되느냐, 그 다음에 어찌 되느냐, 자꾸 천 년 후는 어찌 되느냐 만 년 후는 어찌 되느냐 그것을 연상해서 쭉 시간으로도 무한을 볼 수 있고 공간으로도 무한을 볼 수 있고 종류로도 수많은 무한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것에게는 환영을 받았지마는 저것에게 불평을 받으면 어찌 되느냐?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내가 알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걸 내가 믿고 그 사랑을 알고 믿는 그 밖에는 영안이 뚫힌 기독자로서는 평안과 만족과 기쁨을 얻을 곳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게 해 달라는 그 기도를 우리가 하나 해야 되겠고, 또 무지하든지 약하든지 어리석든지 등신이든지 사랑은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여인은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여자는 약하기는 약하지마는 어머니가 자식에 대해서는 사랑을 가졌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무한히 강함을 가졌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희생의 능력이 있다.
하나님이 짐승에게도 사랑을 주시니까 그 짐승이 저 죽을 줄 모르고 전적 희생하고 생명도 뭣도 애끼지 안하고 피곤치 아니하고 원하고 원함으로 희생을 하고, 자기가 희생을 다하고 난 다음에 죽을 때도 만날 뭣을 못 줘서 못 가르쳐서 어째서 그 못 준 것을 다 주지 못한 것, 다주고도 또 모자랐다는 것으로서 느껴지는 것이 그게 사랑의 능력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희생은 이 사랑의 능력으로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존재에 대해서 주님의 그 발자취를 따라가는, 남을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하고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왔다, 내 몸과 생명까지 다 바쳐서 섬길라고 왔지 상전 될라고 온 것 아니다.’(마20:28) 하는 그 말씀대로 주님이 살고 가신 그 능력이 어데 있는가? 주님에게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모든 피조물도 기뻐할 수 있는 이 일은 우리가 소금되는 이것인데 이 능력은 사랑에서 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존재에게 이렇게 참 없어서는 안 된다고, 찌그러지고 못났지마는 누구보다도 자기에게는 어머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은 거기에 사랑과 희생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사랑을 주셔서 나로 하여금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사랑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하고 이웃과 만물 위해서 희생해도 그게 기쁘고 즐겁고, 희생하는 것이 그것이 고통스러우면 억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행복되지를 못하는데 희생할수록 기쁘고 즐거워.
어떤 여기 보면 늙은 여인이 자기 며느리에게는 조그만한 손수건 하나라도 만일 빨게 되면 군담하고 빠는데 그 모처럼 가면 딸한테는 가 가지고 갔다오면은 꼭 몸치를 한대요. 딸한테 가 가지고는 가 가지고서 뭐 있는 힘을 다 기울려서 딸을 위해서 해 주고 온 다음에도 실컷 그래 해 주고 와서도 또 와 가지고는 군담하기를 ‘그 뭘을 내가 해 줄건데 못 해 줬다’ 만날 못 다 준 것같이 여겨지고 그러니까 주는 것이 기쁘고 만족해.
이럴 수 있는 사람은 이거 사랑의 능력이기 때문에 주님에게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이것을 우리가 기도하는 것 이 두 가지 기도하고, 한 가지 기도는 뭐입니까? 한 가지 기도는 뭐이지요?
사랑을 빼앗기지 안하고 사랑을 보수할 수 있도록, 이 사랑이 병들면 안 돼요.
사랑을 뺏기면 안 돼요. 이 사랑이 뿌럭지에서 끊어지면 안돼요. 이 사랑은 하나님께 왔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이 돼야 되지 연결 안되고 그분에게 피동되지 안하면 그만 절단나 버리고 그거 변질되면, 사랑이 변질되면 망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해와가 아담 사랑하고 아담이 해와 사랑한 것은 사랑이 변질됐기 때문에 변질 거기에서부터 그만 죽이고 망쳐 버렸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제 사랑을 가지다 보면은 잘못하면 사랑에 병드는 것이 죄로 병듭니다. 정실 문제, 지방 정실 문제, 혈육 정실 문제, 동류 정실 문제, 남녀 이성 정실 문제 그만 이놈이 들어오면 그 사랑 이거로 들어왔는데 사랑인 줄 알았는데 그게 사랑을 죽이는 거, 참사랑을 죽이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사랑을 병들지 않게 하는 데는 죄가 못들어와야 되고 죄가 안 들어와야 되고 죄가 안. 들어오는 사랑은 암만 사랑해도 사랑할수록 이 저도 좋고 남도 좋고 다 만족의 초자연의 능력을 초인간의 능력을 가지고 역사하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사랑에 병이 안 들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되겠고, 또 이 사랑을 잘 보호하도록, 사랑에 보호는 의 뿐입니다. 내가 의를 놓지 안하면 사랑은 이 의속에서 보금자리치고 얼마든지 잘 자라갈 수가 있습니다. 또 이 사랑이 능력 있게 역사하는 데에는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쳐지지 안할 때에 역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이 사랑에 대해서 세 가지 기도를 우리가 앞으로 계속해서 합시다.
이래서,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기선 목사님이 이북에서 순교당하셨는데 그분이 같이 나가자 하니까 안 나가고 월남 안하고 거기 있으면서 마지막으로 ‘그러면 우리가 이 환난에서 이기는 비결이 뭐입니까? 또 담대한 비결이 뭐입니까? 평안한 비결이 뭐입니까?’ 말할 때 그분이 한 마디로, 사랑을 말하더라고서.
너희들이 사랑을 뺏기지 안하고 사랑을 가지면 죽어도 만족하고 살아도 만족하고 그들이 어떻게 독침이나 독약을 가지고는 그 사람에 대해서 조그마치도 두려움이 없다.
사랑 하나로 가지라고 하는 그것을 말해 준다는 말을 제가 관악산 그산 삐알에 그때 달아 밑에서 어떤 그 목사님 김 목사님이라는 그 목사님하고 둘이 누워서 얘기하는 데에 그때에 그 이기선 목사님의 전기에 대해서, 제가 물을 때에 그런 얘기해 주는 소리를 제가 들었습니다.
그런고로, 어짜든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구하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는 내가 되기를 구하고, 이 사랑이 병들지 않고 잘 보장되고 이 사랑에 연줄이 끊어지지 안해서 능력 있게 역사할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의 구하는 것을 다 들어 주신다 했어. 이런 것을 기도할 때는 주님은 즉시 들어 주십니다. 왜? 이 기도를 들어 주셔 가지고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된다면 아버지 하나님에게 얼마나 영광이 되겠습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