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3 01:22
하나님의 사랑과 징계
1987. 7. 15. 밤 <수>
본문:히브리서 12장 1절∼2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기에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구름같이 둘러쌌다 그말은 증인들이 많아서 빈틈없이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구름은 안개와 같은 것인데 짙은 안개 속에 들어가면 그 안개는 우리의 전신을 다 폭 싸 버립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갔는데 그 사람들의 살고 간 그 모든 흔적이 우리에게 얼마든지 똑똑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노아 때도 노아는 하나님이 미리 경고하신 그 말씀을 듣고 준비를 하고, 그때에 수많은 사람들은 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집짓고 하는 그 일에 분망했습니다.
홍수가 내리기 전까지는 모든 사람들은 노아를 어리석다고 비웃기도 하고, 아마 노아의 가까운 친척은 심히 안타깝기도 했을 것입니다. 또 그와 반대로 노아는 그렇게 요긴한 의식주, 또 가정, 세상에 있는 온갖 것을 구비하는 그런 일만 하고 하나님이 예고하신 말씀에 대해서 등한히 여기는 사람들을 또 노아는 심히 안타깝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때는 누가 어리석고 누가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하는 것을 판단 못 했지마는 노아 홍수가 내린 지 후는 다 노아는 슬기로웠고 노아의 여덟 식구 외의 사람들은 자기네딴에는 지혜롭다고 아주 슬기롭게 살았지마는 다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것이 다 우리에게 증거를 하고 있다 그말입니다.
노아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조롱받는 그 일을 하면서 하나님이 예고하신 말씀에 따라서 방주 예비하는 그런 어리석고 욕 얻어먹는 그런 일을 했고 모든 사람들은 뭐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또 사고 팔고 집짓고 얼마나 알뜰히 준비합니까? 그런 사람들은 또 그런 준비하고 이랬는데 그 결말이 판단을 내려서 노아의 여덟 식구 외에는 다 어리석어서 자기를 속이는 일 했고 헛일했습니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 다 증거가 된다 그말입니다.
세상에 왔다가 간 사람들이 많은데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왔다가 간 사람들 많습니다. 모두 그 사람들이 자기딴에는 자기 나름대로는 아주 슬기 있는 일을 한다고 뭐 의식 문제, 또 자기 거처하는 거주 문제, 또 이런 모든 사업 문제, 또 이 세상에서 무슨 문화 건설한다, 또 자기는 학식을 갖추겠다 별별 것으로써 그렇게 분망한 사람들이 많았지마는 그 사람들이 그렇게 분망하게 가치로 삼아서 열심히 노력한 그것이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하나도 유익되지 못합니다. 다 자기 속은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심판에 돈이 그 심판을 무슨 면제해 줬습니까, 가정이 거게서 구출해 줬습니까, 사업이 구출해 줬습니까, 지식이나 그런 무슨 문화가 구출해 줬습니까? 아무것도 구출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꼭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순종한 그 순종 행위 그것만 해하지 못하고, 그것만 남아 있고 나머지기는 뭐 별별 참 묘하고 장하고 굉장한 것이 있어도 하나님이 하나님 시키신 말씀대로 한 그거 외에 것은 다 전멸되도록 해 버렸습니다. 전멸되게.
앞으로도 지금 하나님께서 불로 심판하신다고 이렇게 예언을 하셨는데 이 불심판도 그렇습니다. 어리석으나 못났거나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한 자욱 한 자욱 옮겨서 순종 생활 한 그거 외에는 온 천하를 놀래게 하는 뭐 원자, 수소 별별 과학 그까짓 거 다 뚜드려 뭉쳐도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심판에는 털끝만한 힘도 못 됩니다. 우리가 요것을 단단히 알아야 됩니다.
아침에도 제가 그말 했는가? 모든 농업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농약을 연구를 했는데 요 식물을 가꾸는 데에는 그 식물만 해가 되지 안하고 그 식물 외에 딴거는 다 전멸되도록 이라니까 이런 밭에는 이거 치면 딴거 다 제거되고 그것만 남아 있고 저게는 그렇고 사람도 이렇게 할 줄 압니다.
그래서, 나는 그랬어요. 모든 잡초를 제할 때 제초할 때 약으로 제초한다 이래요.
나는 그때 한번도 보지도 못하고 처음 들을 때요. ‘그래, 약으로 제초하면 어떻게 약으로 제초할 수가 있겠노?’ ‘그것만 싹 뿌려버리면 그만 다 제초가 돼 버립니다.’ ‘벼도 다 식물이고 다 식물인데 그것 죽으면 벼도 죽고 다 죽지 그것만 죽고 벼는 안 죽어? 말도 아닌 소리 한다.’ 내가 이래 부정했다 말이오.
이랬는데 그 사람들 참 약을 뿌리니까 전부 잡초는 싹 녹아버리고 곡식은 벼는 하나도 안 죽습니다. ‘그 참 묘하다. 이러니까 이 사람들이 약을 벌판으로 한 게 아니고 연구할 때에 이 벼에 모든 요소를 연구해 가지고 벼는 상하지 안하고 이 잡초들만 상하는 그런 요소로 약을 만들어서 이렇게 농약을 만들어 그렇구나.’ 그때 알았어요. ‘참 가치가 있다. 학자들 가치가 있다.' 이랬어.
사람도 이렇게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이겠습니까? 가만 보니까 노아 때에 홍수로 심판한다고 일백이십 년이나 기한 주면서 일백이십 년 동안이면 넉넉히 준비할 수 있으니까 준비하라 해도 모든 사람이 준비를 안 하고 엉뚱한 일만 했습니다.
뭐 그러니까 노아 배 만든 거, 노아가 배 만든 거 그게 그리 큰 배가 아닙니다.
조그만한 배요. 큰 배가 아닌데 그 배만한 배가 그때에 없는 게 아니라 그 배보다 큰 배도 있고 그런 배만한 거야 꽉 찼습니다.
찼는데 ‘뭐 노아가 그 배에서 구원 얻으면 다른 사람 다른 배도 얻지?’ 이랬는데 꼭 하나님이 홍수에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끊고 쪼개고 붙이고 합하고 한 말씀 시키는 대로 그대로 만든 배 요것만 꼭 홍수를 이기도록 했지 나머지기는 전부 홍수에 다 침몰되는 그런 비를 줬다 말이오. 이러니까 다 헛일 안 했겠습니까? 앞으로도 모든 천태만상의 이 형체가 다 풀어지고 또 체질들이 불에 다 녹아지고 모든 비밀이 드러나고 이렇게 할 때에 뭣만 남아 있느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만 꼭 남아 있습니다. 거룩한 행실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따진 행위, 하나님 말씀 보고 ‘요거는 말씀에 틀렸다. 아무리 우리끼리는 좋아도 요 말씀에 요게 틀렸다. 그라면 요거 고치자. 또 요거는 아무리 내가 싫지마는 성경에 요거는 하라 했기 때문에 해야 되겠다. 요거는 아무리 하고 싶지마는 성경에 하지 말라 했기 때문에 안 해야 되겠다. 요거는 하면 온 가족들이 다 좋아하고 친구도 좋아하고 온 세상이 다 좋아하지마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했으니 이거는 안 해야 되겠다. 이 일은 요거로만 걸어갈라 하면은 온 세상 사람들은 다 좋아하지마는 하나님 혼자는 싫어하시기 때문에 요걸 못 걸어가겠다.’ 요렇게 해서 거룩한 행실과 경건 요것만 불심판에서 타지 안하는 그 불입니다. 요 불은 무슨 불인고 하니 하나님의 말씀에 준해서 믿는 사람이 거룩한 행실 경건 요 두 가지만 불타지 안하고 나머지기는 다 타는 불입니다. 그때는 금도 다 타버립니다. 금도 타서 다 없어져. 금도 타 전부 원소로 다 돌아가 버려. 금은 금 원소가 아니라 그거는 뭐 무슨 원소로 될런지 전부 한 원소로 다 돌아가 버려요.
이렇게 될 날이 우리는 뭐 일 년 후라, 한 달 후라, 오늘이야 닥치겠나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날과 그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뭐 태풍 온다 하는데 지난번에 태풍 같은 것도 와 봐도 태풍이 불어도, 그때 저 오고 난 다음에 무슨 사라호 태풍이던가 그때? 저 여게서 이층에 보니까 저 화랑국민학교 위에 있는 이어 놓은 것이 다 날아가고 모두 기와장이 날아서 똑 연자 날아다니듯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떨어져 가지고 사람도 다치고 뭐 야단지기는데, 그래도 그때 모두 뭐 사람들이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뭐 바람 부는 거야 큰 겁니까? 앞으로 이 지구 땅덩어리뿐 아니라 이 우주에 있는 그 수많은 것들이 다 불에 타서 녹아져서 원소가 될 그때에 얼마나 우리가 참 그 형편이 어렵겠는가 하는 그것을 우리가 좀 생각해 봐야 됩니다.
노아 때 사람들도 그 홍수 심판을 아주 업신여기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홍수 심판은 왔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이 불심판 말하는 것을 다 만홀히 여기고 농담삼아 여기지마는 불심판은 틀림없이 옵니다. 성경에 보면은 여러 종류의 교훈이 있는데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이 가장 많습니다. 그것이 한 오륙십프로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이 생각을 잠시라도 잊으면 안 됩니다. 자꾸 생각하면서 만일, 그러면 그때 뭐 집도 불탈 것이고 바위도 들도 이 부산도 뭐 온 한국도 세계도 다 이 부산 앞바다도 이거 전부 불탈 터이고 해도 불타고 달도 불타고 전부 불탈 터이니까 그때 우리가 어찌 되느냐? “이 모든 것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그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돼야 되겠느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 외에는 피난할 방편은 없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오늘밤에 히브리 12장 1절로 2절까지를 봉독했습니다.
사람 가운데는 어떤 사람은 돈 그것만 있으면 될 줄로 생각하고 돈을 위해서 죽는 날까지 전심 전력 기울여서 노력했고 또 날마다 기쁨으로 살았습니다. 왜? 죽는 그 시간까지 그저 보고 들어올 때에 ‘무슨 사업에는 이익이 얼마 남아서 돈벌이가 얼마 됐습니다. 또 무슨 공사에는 돈이 얼마 벌렸습니다. 요번 행보에는 그 상선이 갖다오는 데에 유익이 얼마입니다.’ 그저 늙어 죽는 날까지 기쁘고 즐거워했지마는 그게 자기에게 무엇이 있겠느냐?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한 것이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우리는 이 말씀을 너무 등한히 하고 있습니다. 이거 자꾸 좀 생각해 봐야 됩니다.
여게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이 살고 간 것을 봐서 남을 봐서 깨달으라고 모든 사람이 살고 간 것을 보면서 깨달으라 그말입니다. “허다한 증인들이 구름같이 둘러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갈 때에 자기딴에는 모두 ‘이게 제일 중요하다’ 제일 중요한 일부터 했고, 바쁜 일부터 했고, 요긴한 일부터 했다고 다 자기로서는 힘껏 선택해서 가장 요긴한 일을 하고 간다고 다 그래 했지마는 그의 종말이 다 헛되지 않는가? 이런 것을 보아서 우리는 깨달아서 ‘그러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가고 있나? 나는 뭣 보고 살고 있느냐? 오늘 만일 내가 죽는다든지 주님이 구름타고 오신다면은 나는 어떻게 되나?’ 여게 대해 좀 생각해 보는가? 우리 마음은 너무도 참 어둡습니다.
그러기에 여기 이런 말씀했습니다.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또 우리를 붙들어 매는 밧줄이 되는 이 죄를 어서 벗어버리고 어서 이 밧줄 같은 죄를 끌러버리자. 이 죄를 끌러버리고 또 무거운 짐 이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자.
경주라는 것은 서로 이기기를 다투는 달음질입니다. 이 경주하는 것은 다른 싸움과 다릅니다. 아무리 참 그 전쟁이 맹혹하고 맹렬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래도 자는 시간도 있고 쉬는 시간도 있고 먹는 시간도 있습니다, 아무 전쟁이라도. 이렇지마는 이 달음질치는 것은 그런 여유 시간이 없는 것이 달음질입니다. 여기 경주라 말은 달음질이라 말입니다.
경주하는 사람은 그 경주하는 사람이 뭐 쉬는 시간이 있습니까 먹는 시간이 있습니까 그런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계속 싸우지요.
싸우는 것은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는 그 싸움 아닙니까? 그게 경쟁입니다.
달리는 싸움이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경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경주라 하는 것도 달리는 싸움을 경주라 그렇게 말합니다. 경주라는 것은 쉴새 없는 그 투쟁이, 쉴새 없는 투쟁이 경주입니다.
그러면 이 투쟁은 누구하고 싸우는가? 이 싸움은 누구하고 싸우는 싸움인가? 이 싸움은 악령으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이요 세상으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입니다.
세상하고 악령하고 모든 죄하고 이것이 한덩어리가 돼 가지고 마귀 죄 사망, 마귀 죄 사망 이것을 합한 것을 가리켜서 한 마디 이름으로 말하면 세상입니다. 죄 마귀 사망 이 셋이 똘똘 뭉쳐서 하나가 돼 가지고서 역사하는 것의 이름이 뭐냐 하면은 세상입니다.
저 반사 선생 요새 자꾸 조는데, ○○○ 옆에. 뭐 조는데 뭐 연애하나? 왜 졸아? 요새 자꾸 아침에도 졸고 내가 보니까 새벽에도 졸고 영 뭐 정신 못 차리고 조는데 ○○○○에 있는 직원 아니요? 아니가? 왜 자꾸 졸아? 요새 일을 좀 많이 시키나 어데 연애하러 돌아다니나? 무슨 고장이 났어. 자꾸 졸아. 졸지 말아요.
졸면 안 돼. 졸음 마귀 그놈이 왕마귀라. 그 졸음 마귀만 들어오면 그만 구원 다 헛일이라.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자 그말은 우리 앞에 있는 전투를 전투하자 그말입니다. 전투하자 그말인데 그 전투의 진상을 우리에게 표시할 때에 달음질로 서로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는 그것이 경주입니다. 경주로 비유했습니다.
그 경주라는 것은 이 싸움은 쉴 사이가 없이 시작하면 끝마칠 때까지 계속되는 걸 말했습니다. 우리의 이 신앙 전투는 쉬는 시간이 없고 밤이나 낮이나 그저 세상 떠나는 그 시간까지 이 신앙 전투라 하는 것은 계속되는 것을 표시해서 여게 경주로 나타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하고 싸우는가? 마귀와 죄와 사망 이 셋을 합해서 한 말로 말하면 그것이, 그것의 이름을 뭐라 했습니까? 세상입니다. 요거 똑똑히 아십시오.
아주 세상은 의로운 줄 알고 거룩한 줄 알고 이라지만 이 세상관이 ‘세상은 죄 사망 마귀가 뭉친 것이 세상이다’ 하는 것은 신학자들이 말하지 않습니다. 저도 지금은 말하지만 좀 있다가 말하면 나 모가지 끊깁니다. 인제 이 말이 들려오면 그때 뒤에 가서 다 순교를 당할 것이오.
왜? 세상 제일주의로 살고 있는 세상에게 세상이 죄 사망 마귀 뭉텅이라 하면 둘라 합니까? 오늘은 하나님이 막는 자가 계시기 때문에 지금 그들이 암말도 안 하고 있지 때가 되면 그 소리도 못 할 것이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는 사람 다 잡아 죽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세상하고 우리하고 경주하는데 그 경주는 현실을 통해서 현실마다 이 경주하는 현실입니다. 이 경주하는 현실이오. 그러면 현실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현실이 끊쳐지는 날이 없습니다. 현실은 계속됩니다. 우리가 죽는 시간까지 현실은 계속되는데 계속되는 현실은 전부 우리가 이 세상으로 더불어 전투하는 현실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분이 우리에게 명령해 주신 명령인 이 성경 말씀대로 우리는 살라고 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위함으로 성경 말씀대로 살라 하고 세상은 하나님 위하지 말고 저 위하라고, 성경 말씀대로 살지 말고 저거 주장대로 살라고 그렇게 합니다. 알겠습니까? 이래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하는데 세상은 세상 저거를 사랑함으로 저거 시키는 대로 살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 사랑함으로 하나님 시키는 대로 할라 하고 저거는 하나님 사랑하는 일 버리고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사는 것 버리고 저거 사랑함으로 저거에게 순종해서 저거 뜻대로 살라고 그렇게 해서 이 두 시비가 붙은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이 전쟁은 밤이나 낮이나 쉴 사이가 없이 계속되는 전쟁입니다.
그러면 이 전쟁은, 여게 비유입니다. 이 전쟁은 비유컨대 달음질 하는 경주와 같다. 요걸 알아듣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말한 겁니다. 달음질 하는 경주와 같다.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자” 달음질을 하자 했습니다.
달음질 하는 데에는, 달음질 하는 데에는 제일 중요한 것이 뭣이 달음질 하는데 제일 중요합니까? 달음질 하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은 원력입니다, 원력. 체력 원력이 있어야 됩니다, 원력. 달음질 하는 것은 원력이 있어야 됩니다, 원력.
또 둘째로는 뭣이 필요합니까? 자기가 짊어졌던 짐이 있으면 다 벗어놔야 됩니다.
또 자기를 붙들어 맨, 붙들어 매어 놓은 줄이 있으면 그걸 끌러야 됩니다. 아무리 제가 원력이 있다 할지라도 밧줄에 당글아 매이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야 어떻게 그 경주에서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거는 으례히 지지요?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요 경주로 말하면 그렇지 않소? 요 경주로 말하면, 달음질로 말하면 원력이 제일 중요합니다. 원력이 암만 있어도 또 짊어진 짐을 다 벗어놓고 이거 또 다리나 어데 붙들려 매였으면 그거 다 끌르고 몸이 단순하게 아무것도 짊어지지도 안하고 붙들려 매인 데도 없고 이래야 그 몸이 원력만 있으면 가볍게 뛰어서 그 경주를 이길 것 아닙니까? 요것 비유입니다.
죄를 가리켜서 무겁다 이렇게 말씀한 것은, 비유한 것은 우리에게 뭐 사람과의 관계든지, 인인 관계든지, 사물 관계든지, 사건이든지, 물질이든지, 사람과 관계든지 뭣이든지 자기에게 죄가 있으면 삐뚤어진 게 있으면, 뭐이든지 삐뚤어진 게 있으면 그놈에게 우리 마음은 눌려서 그놈에게 우리 마음이 눌려 가지고 힘을 못 씁니다.
우리가 제일 경주하는 데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실력인데 우리가 경주하는 이 실력은 무슨 실력인고 하니 하나님의 힘과 진리의 힘 그게 우리 실력입니다, 하나님의 힘과 진리의 힘. 하나님의 힘과 진리의 힘을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힘과 진리의 힘이 우리에게 만들어 주신 것이 있으니까 그것이 열한 가지 구속입니다. 열한 가지 구속인데 이것이 우리의 실력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실력이요 진리가 우리 실력이요 예수님의 열한 가지 이 구속이 우리 실력입니다.
이 실력인데 이 실력하고 나하고 연결이 돼야 그 실력이 내것이 될 터인데, 이 실력하고 나하고 연결이 되면 그것이 내 실력이 되겠는데, 하나님은 그 능력을 나에게 주시기를 원하고 진리도 내게 주기를 원하고 열한 가지 구속도 우리에게 그 능력은 전능인데 그 능력을 주기를 원하고 이라는데, 이 주기를 원하는데 내가 무거운 이놈 때문에 주님하고 진리하고 열한 가지 구속하고 나하고 손을 잡지 못합니다. 손을 잡지 못해요. 손을 잡지 못해요.
나는 요새는 학교 운동하는 걸 내가 보지를, 가 보지 안했기 때문에 모릅니다마는 내가 학교 다닐 때에 조그만할 때인데 그때 ‘너는 아무것이를 모시고 오너라’ 아무것이 모시고 오라 하는 그게 모두 다 쓰여 가지고 있어요. 쓰여 가지고 있는데 내가 딱 준비하기를 ‘누구를 모시고 오라 할란지 그 사람을 일찍 찾아야 내가 이김을 이기겠다’ 요걸 생각을 가지고서 그래 보니까 누구라고 딱 있는데 그만 그때 그만 고함을 질렀습니다. 누구 어데 있느냐고 이라니까 얼른 그분이 나오더니마는 그만 내 손목을 거머쥐고 막 달아나는데 나는 거기 끌려서 가니까 벌써 저 앞에 가 있으니까 다른 사람은 저게 아직 사람 찾고 있어. 나는 힘이 없었지마는 힘센 사람이 내 손을 거머쥐고 달아나니까 그바람에 내가 그만 일등 해 버렸어. 일등 하고 나서 한참 있어도 안 와요.
이와 마찬가지로 이 경주 하는 데는 제일 실력이 첫째 중요한 것인데 그 실력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실력이요 진리의 능력이 우리 실력이요 예수님의 열한 가지 구속의 실력이 우리 실력인데 이 세 가지의 실력하고 나하고 손을 잡아서 세 가지 실력이 내 손을 붙들고 내가 그 실력에 붙들려 가지고 가야 내가 실력이 있겠는데 이 실력하고 나하고 손을 잡을라고 할 때에 죄 이놈이 들어서 손을 잡지 못하게 합니다. 여러분들 그거 경험 있습니까? 아무리 하나님을 부르짖어도 내게 죄가 있으면 나도 하나님께 못 가고 하나님도 내게 못 옵니다. 자기가 그 께꾸름한 죄를 두고서 기도할 때에 기도가 됩디까? 제가 자기 마음에 이게 죄라 하는 것을 느끼고 있는 그것을 회개하지 안하고 죄를 가지고 하나님과 자기와 연결이 된다고 여겨집디까?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설교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어짜든지 이 중간반 반사들 그 지역 예배 가서 예배를 많이 드려라’ 말하는 것은, 거게 대해서 또 어떤 사람이 말합디다. ‘중간반 반사들 이 설교하는 것 보니까 목사님은 자꾸 지역 예배 많이 인도하라 하는데 그 돌아다니며 지역 예배 많이 인도하면 큰일나겠습디다.’ ‘왜요?' ‘목사님이 교훈하시는 교훈의 진리는 처음에 선두는 내지마는 마지막에는 전부 제것을 가지고 하니까 그래 가르쳐 놓으면 뭐 학생들 전부 다 버리겠고 안 되겠습디다. 그 너무 허무합디다.’ 그래 말해요. 나는 그래도 또 자꾸 지역 예배 많이 드리라 합니다.
왜? 제가 지역 예배를 참말로 인도해서 모든 교인들이 은혜를 받고 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구로 할라 하면은 회개 안 하고는 안 됩니다. 회개 안 하면 하나님께서 자기와 같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일 설교자가 제일 잘 압니다.
회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그거는 고함만 지르고 이렇게 야단만 지기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없기 때문에 변화는 안 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진리와 예수님의 대속과 나와의 하나가 돼야 이 실력이 생겨지는 것인데 죄를 두고는 하나가 되지를 못합니다. 제가 뭐 산에 가서 밥을 굶고 뭐 며칠 금식하고 산에 가서 어떻게 하고 아무리 새벽기도 나와도 죄를 회개하지 않고는 절대 그는 하나님하고 연결이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그게 이해가 됩니까? 그런 경험을 해 본 사람들 있습니까? 아마 그런 경험은 다 해 봤을 걸요. 죄를 두고는 암만 하나님하고 연결할라 해야 안 됩니다. 저 혼자 하지.
하나님이 만일 저에게 가면 그 사람 죽여야 될 터이니까 갈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 안 된 사람 인간들은 봐서 잘 모릅니다. 그래 다소는 표가 납니다. 또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들은 잘 압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과 연결된 목회를 하고 있다. 그 사람은 하나님과 연결된 신앙 생활 하고 있다. 그거는 공연히 저 혼자 날뛰고 있지 하나님과는 절대 그 죄를 회개하기 전에 하나님과 연결 안 된다. 또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저는 저고 그래 있지 그거는 뭐 암만 해야 강퍅해 가지고 회개 안 하지만 앞으로 이 대환난이 오기 전에 사소한 환난이 와 가지고 큰 징계를 받아서 제가 회개를 해서 하나님하고 한덩어리가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대 환난 만나면 그때 녹아지고 절단나 버리고 만다. 빠사지고 만다. 그거 다시 구원이고 뭐이고 기본구원은 얻지마는 구원이 없어진다.’ 이런 것을 다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봅니다.여러분들도 다소 볼 걸요.
‘그분은 하나님과 교제가 있는 사람이다. 그래도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과 약간 좀 그래도 친교가 돼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뭐 저 혼자 하지 하나님과는 연결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알 수 있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무거운 죄를 벗어야 달음질 할 이 전투를 승리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대로 살라 하고 세상은 세상 저와 저거 생각대로 살라 하고 이게 내 싸움인데, 현실마다 이 싸움이 없는 싸움 없는데, 요 현실마다 요 싸움을 싸울 때에 내게 첫째 실력이 필요한데 실력은 하나님하고 나하고 하나가 돼야 이 승리할 수 있는데 하나되는 데에 제일 방해가 뭐이냐 하면은 죄 이놈이 제일 방해하고 있습니다. 죄 이게 제일 방해하고 있소.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와 하나가 돼야 우리가 이 현실 전투를 승리해서 죄와 사망과 마귀는, 나를 해할라 하던 죄와 사망과 마귀는 멸망을 하고 마귀가 멸망받고 죄와 사망이 멸망받으니까 나는 살아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현실에 영생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현실에서 하나님과 진리와 구속으로 살지 못하고 세상이 말하는 세상 또 세상 저거 주장 마귀 이놈 법대로 내가 살았으면은 그거는 승리했기 때문에 지옥은 채웠지마는 나는 지옥을 채우는 내가 됐지 하늘나라에 구원은 헛일입니다. 사망이 되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실력 있는 사람이 되는데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야 사업을 하는 데도 실력 있는 사람 되고, 공부를 하는 데도 실력 있는 사람 되고, 목회를 하는 데도 실력 있는 사람 되고, 하나님과 연결이 돼야 뭐 돈벌이 하는 데도 실력 있는 사람 되고 어짜든지 하나님과 연결이 돼야 이 실력 있는 사람이 되는데 연결되는 데에 제일 방해물이 뭐이냐 하면 죄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연결되는 데 진리와 나와 연결되는 데에 예수님의 구속과 연결되는 데에 제일 방해하는 것이 죄이기 때문에 이 무거운 죄 이놈을 벗어버리라. 이놈 때문에 하나님 만날 수가 없다. 무거워 놓으니까 갈 수가 있어야지? 또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 아무리 내가 실력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나하고 아무리 연결이 됐다 할지라도, 연결이 됐다 할지라도 나에게 그때라도 무엇인가 죄가 있으면은 그놈은 또, 연결도 못 하도록 할 뿐 아니라 죄가 있으면은 내가 하나님께 나아갈라 할 때 못 가게 합니다. 하나님 친하러 하나님하고 친교를 만들라고 하나님하고 친교 맺을라고 하나님께 가까이 갈라 할 때 죄가 나를 못 가게 합니다.
여러분들 죄를 두고 하나님 암만 찾아 보십시오. 가지는가? 하나님 만나지는가? 밤새도록 가도 못 만납니다. 일생 동안 해도 저는 헛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아무리 죄를 두고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이러기에 이 얽매인다 말은 붙들어 맨다 그말입니다. 죄 이놈이 있으면 하나님하고 친교를 맺지 못하도록 붙들어 매 가지고 하나님께 가지 못하도록 만들지, 또 이 진리대로 사는 걸음을 진리대로 걸어가는 걸 진리대로 걸어가지 못하도록 만들지, 예수님의 구속으로 살라 해도 구속으로 살지 못하게 만들지 이라니까 꼼짝 못하게 매이는 거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은 어짜든지 우리가 죄 이놈이 하나님 만나지 못하게 하는 놈이요, 진리 만나지 못하게 하는 놈이요, 예수님의 구속 만나지 못하게 하는 놈이요 하나님과 진리와 구속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원수요, 그러면 이 죄는 누구의 것입니까? 죄는 누구의 것입니까? 누구의 것이요? 세상의 것이요 마귀의 것이요 세상 그들의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놈이 있으면 그 줄을 잡아댕기기 때문에 나는 못 합니다.
어떤 사람 보니까 어떤 죄 하나로서 그 협박을 받아 가지고 그 죄 때문에,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를 못해. 염려하지 말고, 죽어도 염려하지 말고.
여러분들 우리가 회개하는 데에는, 회개하는 데는 비유로 뭐라 했습니까? 회개하는 데에는 회개 하는 사람은 누가 아듬고 간다 했습니까? 회개하는 자는 누가 보듬고 갑니까? 회개하는 데는 누가 보듬고 갑니까? 예? 왜 말 안 해? 마음에, 자기가 죄 없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느낌이 있으면은 막 큰 소리가 발뜩 나올 건데 안 나오네.
회개하는 사람은 누가 보듬고 갑니까? 큰 소리로. 회개하는 사람은 누가 보듬고 갑니까? 예? 뭐? 좀 큰 소리 해 봐요. 회개하는 사람은 누구가 보듬고 누가 어깨에 메고 갑니까? 대통령이 메고 간다 하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세상에 권력가가 메고 간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하나님이 메고 간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왜 안 들어? 저 모르는가배, 모두? ○○○씨 몰라요? 왜 손 안 들어, 그라면? 들어 봐. 들어야 돼요. 그게 하나님 앞에 작정이라.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의 전능자의 품에 안겨 가기 때문에 회개하는 걸 방해해 버리면 죽여버립니다. 알겠습니까? 회개하는 자는 아무도 방해 못합니다. 담대히 회개하십시오. 빨리 회개하십시오.
‘내가 회개할라 하면 이제 전주가 어떻게 하겠다. 뭐 상관이 어떻게 하겠다.
권력가가 어떻게 하겠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것보다 하나님은 더 강하십니다.
염려하지 말고 회개는 담대히 하십시오.
이 회개는 우리가 하나님과 진리와 예수님의 구속과 나와 하나되는 데에 모든 방해물을 다 제거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돈벌이 하는 것보다도 자기가 이 세상에서 의로운 일을 하는 것보다도 죄를 청산할 때에 기쁘고 즐겁고 평안한 그 맛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아직까지 예수를 못 믿는 사람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행복스러운 행복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이오. 죄를 청산하는 것. 하나는 하나님과 한 덩어리 되는 것입니다. 죄만 없으면 하나님과 하나돼. 죄를 두고하는 하나님과 하나되지를 못해요.
우리의 피난처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요, 우리가 능력 있는 것도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요, 우리가 모든 지혜 있고 성공하는 것도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죄를 회개하는 것은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죄를 회개할라 하니까 이 문제가 걸린다 저 문제가 걸린다 그 염려하지 말고 회개하십시오. 죄에 대해서는 담대히 회개하십시오. ‘내가 이 회개하면 당장 지금 칼로 나를 찔러 죽인다.’ 염려하지 마라! 칼로 찌를라 하는 그놈보다도 하나님은 몇천 배 몇만 배 강하다! 그까짓 놈을 딱 뭉쳐서 다 가루를 만들어 버린다! 어데 겁을 내, 내기를! 죄를 회개하는 자는 아무도 방해를 못 합니다.
사람들이 죄를 회개할라 할 때에 어떤 나라의 권세, 정권, 사상 권세, 뭐 공산주의 권세, 또 가족 권세, 사업 권세 뭣뭐 이런 것, 형제 권세 이런 것, ‘내가 이 죄 회개할라 하면 이 깨질 터인데 박살날 터인데 어찌 되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의 품안에 하나님 어깨에 메여 갑니다. 그때부터, 회개하는 그 시간부터 제 심령이 평안하고 모든 일이 다 형통해집니다. 아무도 방해하지 못해요.
마치 밧줄에 매였던 자가 놓임받는 거와 같은 기쁨을 가지게 되고 무거운 짐에 치여 가지고서 꼼짝 못하던 자가 무거운 짐을 벗어놓는 거와 같은 그런 평안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능력 있는 자 되니까 현실 현실이 다 영생이 돼. 다 승리요 성공이요 다 영생돼.
그러니까 어짜든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때에 우리는 깨끗하게 회개합시다.
뭐 산에 가도 회개해야 되겠고, 집에 있어도 회개해야 되겠고, 또 그리 안 가도 자기 집에서도 회개할 수 있고, 직장에서도 회개할 수도 있고 어짜든지 자기 마음에 이 하나님 말씀에 거리낀다 싶으면 뭐 직장이고 인인 관계고 인정이고 사정이고 뭐 볼 것 없습니다. 오늘 주님 올지도 모르는데 그게 뭐 그런 게 나를 책임집니까? 땅위에 있는 인간이 나를 책임져 줍니까? 못 집니다. 이러니까 어짜든지 죄라고 생각되는 일 있으면 회개를 합시다.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죄를 회개합시다.
그런데 죄를 회개하는 데에 그 회개하는 방편을 몰라서 벌로 하면은 손해보기 쉬워. 우리 몸에 병이 있는 그 병을 수술을 해서 병을 떼내 버려야 되는데 잘못 수술하면 후유증도 있고 잘못 수술하면 병도 떼내버리지 못하고 어만 데를 성한 데를 그래 가지고서 도리어 병 얻기가 쉬워, 병신되기 쉬워. 그러니까 이 회개하는 데에는 지혜롭게 회개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회개하는 것은 자기 구역장에게 묻고, 구역장에게 물어도 구역장이 입을 가지고서 돌아다니면서 벌로 이리저리 씨분거리는 그런 구역장은 자격이 없습니다. 그 구역장이 언제든지 비밀을 둬야 됩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해 가지고서 그 구역장에게 의논했을 때에 그 구역장이 내가 하나님에게 말한 것같이 하나님이 딱 품으시고 그것을 잘 발표하지 안하시고 잘 지도해서 복되게 하는 것처럼 그럴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종입니다. 자기가 죽어도 자기를 하나님의 종으로 믿고 하는 그것을 그는 폭로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잘 보존하고 그저 그 구원에 유익되게만 합니다.
이래서 회개하는 걸 물어 가지고 어짜든지 우리가 이 죄를 두고는 우리는 영육이 다 곤고한 사람이요 모두가 다 실패됩니다. 이러니까 요 죄를 회개하도록 우리는 작정하고 염려하지 말고 죄를 회개합시다.
그 죄라 하는 것은 뭐이 죄인가? 모든 게 다 삐뚤어진 게 죄입니다. 사람의, 가족과 가족끼리의 삐뚤어진것, 가족과 가족끼리의 삐뚤어진 것, 사랑도 삐뚤어진 사랑 있습니다. 정리도 삐뚤어진 정리 있습니다. 친근도 삐뚤어진 친근 있습니다.
다 좋은 게 아니라.
뭐이든지 삐뚤어진 거는 다 고쳐야 되고, 또 이 사회에 모든 사람과 삐뚤어진 것도 고치고, 이웃과 삐뚤어진 것도 고치고, 또 물질적으로 삐뚤어진 것, 서로 말을 삐뚤어지게 한 것, 내가 마음을 잘못 가진 것, 내 마음 잘못 가진 것이야 남이 압니까? 몰라도 그 사람은 모르지마는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에 그 마음을 고치기 전에는 하나님과 연결이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 하나님의 법도에 삐뚤어진 것, 자기 생각 삐뚤어진 것, 자기 욕심 소원 삐뚤어진 것, 자기 지금 기쁨 삐뚤어진 것, 자기 재미 삐뚤어진 것, 평안 삐뚤어진 것 그 뭐이든지 우리가 삐뚤어진 것을 이것을 고쳐야 하나님하고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서 그분하고 나하고 연결이 돼야 온 우주가 불탈 때도 나는 거기 타지 안하고 살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구원 얻는 것이지 하나님 능력 아니고 뭘로 구원 얻습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미 속에 들어가 가지고도 불내음새가 나지 안하고 타지 안했는데 그러면 그 사람이 제 뭐 능력으로 그리 됐습니까 무슨 능력입니까? 무슨 힘입니까? 무슨 힘으로 불타지 안했습니까? 무슨 힘이요? 하나님의 능력 아닙니까?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은 자기하고 하나님하고 연결되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 주시기를 원하고 원합니다. 주님하고 자기가 연결만 되면 하나님의 능력은 다 제것입니다. 다 이 연결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면 연결되는 데에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가지고 다 연결되도록 했는데 왜 연결 안 됩니까? 연결 안 되는 거는 죄를 두고는 연결 안 돼. 무슨 죄라도 죄 두고는 연결 안 됩니다. 죄 요걸 회개해야 되지 죄 두고는 연결이 절대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벌써 마귀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인 줄 알고 또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을 법적으로 믿고 있는 줄 알고 있기 때문에 마귀는 제것이 안 될 줄 알기 때문에 어짜든지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서 우리의 신앙 생활을 방해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런 원수의 방해가 많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하고 나하고 같애야 마귀란 놈을 그놈이 내게 방해를 못하도록 하고 이겨야 되는 것이지 그놈이 나한테 방해하면 그놈이 나한테 좋게 하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죄를 회개하지 안하면 육신의 일도 하루의 일도 우리에게는 반드시 저는 자꾸 멸망으로 멸망으로 파고 들어가서 그날 그날 지내지마는 그 뒤에 결론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요번 주간에는 처음부터 이 말씀이 늘 나오는데 이번 주간에는 어짜든지 자기가 성경 보고 하나님에게 대해서나 사람에게 대해서나 또 가족에게 대해서나 사업에 대해서나 위에 사람에 대해서나 밑에 사람 대해서나 모든 물질적으로나 또 언행심사적으로나 모든 면에 있어서 어짜든지 ‘요게 틀렸다 요게 삐뚤어졌다’ 싶은 것은 남김없이 전부 다 회개를 하도록 합시다.
이래 가지고서 요번 주간에는 회개해서 하나님과 우리와 아주 밀접해져 가지고 하나님과 나와 그 사이에 하나도 끼어 있지 안하고 끼인 것을 다 파내버려 버리고 하나님과 나와 직접으로 딱 들어붙어 가지고서, 하나님의 그 충만이 내것이 되어서 하나님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담력이 내 담력이 되고, 하나님의 지능이 내 지능이 되고, 하나님의 그 모든 그 권능이 내 권능이 되고, 하나님의 성공이 내 성공이 되도록 어짜든지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죄를 요번 주간에는 깨끗이 청산하도록 합시다.
이것 뭐 그저 무슨 염려하지 마십시오. ‘내가 이래 근근히 아랫돌 빼서 웃돌 고우고 웃돌 빼서 아랫돌 고우고 자꾸 하석상대로 이와 같이 지금 하는 이거 내가 이거 만일 죄를 정리하는 날이면 당장 절단난다.’ 절단나도 하십시오. 없는 가운데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이 계십니다. 그게 절단날 건 절단나도 하십시오. 뭐 사업 해도 안 되는 건 죄가 들어서 아 주 절단나져 버려 빨리 나야 됩니다. 죄를 청산하기 위해서 절단만 나면 절단나고 난 다음에 성공은 하나님이 일조 일석에 다 해 줄 수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뭣이 어찌 되든지 요번 주간 내로는 자기 마음에 이게 죄다 싶은 거는 전부 다 정리하고 하나도 남김 없이, 뭐 발가벗고 나 앉아도 정리하고, 또 아주 뭐 좀 자본 있던 거 톨톨 털어 거지가 돼도 정리하고, 어찌 됐든지 요번 주간 내로 죄 없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그이의 여생에 행복을 약속합니다. 죄 없는 사람 되도록 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합시다.